사유(思惟)

개슈탈트Gestalt 개념의 형성사

나뭇잎숨결 2022. 3. 23. 01:21

Gestalt 개념의 형성사(Ⅰ) : Descartes에서 Hamilton까지

 

                              - 이 정 모

 

 

Gestalt 개념의 형성 역사를 밝히기 위한 시도의 제 1부로서, 17세기와 18세기를 중심으로한 요소주의적 경험주의와 전체지향적 합리주의가 상호영향주는 과정에서 emergent whole로서의 Gestalt개념이 어떻게 胚胎되고 가다듬어졌는가를 영국의 요소주의적 경험주의 발전사에 비중을 더 두어 고찰하였다.

 

 

서   론

 

대상은 그러한 대상으로 보이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답을 구하기 위한 노력들이 희랍 시대이래 철학자들과 심리학자들에 의하여 계속 시도되어 왔다. 20세기 초의 형태주의 심리학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제기되었다.

 

형태주의 학파의 창시자인 Wertheimer, KӦhler, Koffka 등은 그 당시 유럽의 과학계를 지배하고 있던 요소주의적 경험주의 사조와 이를 도입한 Wundt학파의 구성주의적 심리학이 그릇된 방향으로 나가고 있음에 대하여 반발하였다. 물론 Murray(1983)가 지적하였듯이 형태주의 학파가 단순히 Wundt학파의 요소주의에 대한 반발로서만 제시되었다고 규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형태주의 개념과 이론의 핵심은 Wundt학파로 대표되는 요소주의적 구성주의 심리학의 개념 및 이론체계에 대한 반발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후에도 언급되겠지만 구성주의 학파는 대상이 어떠한 형태로 보이는 까닭은 인간이 감각 경험을 통하여 감각요소들을 연합․조합하여 복합적 의식내용으로 형성하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심리학의 과제란 모든 의식경험을 감각구성요소로 분석․환원시키고 그들의 조합특성을 밝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일반적으로 이해되어온 Wundt적 입장의 내용과 실제의 Wundt의 입장과의 차이가 있지만(조명한, 1979 : Mandler & Mandler, 1964), 의식내용을 의미없는 인위적인 요소로 분석할 수 있으며, 지각된 질(質)의 내용이 직접적이며 일차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하여기계적으로 조합되거나 추론되어 진다는, 이러한 구성주의 학파의 요소주의적 경험주의에 형태주의 학파는 반발하였던 것이다.

 

형태주의 학파는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개별적 감각요소로 주어지거나 그것들의 단순한 조합으로서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주어지며, 하나의 현상 자체인 동시에 부분으로 환원지을 수 없는 전체적 통일체의 구조로서 주어진 바(所與)라고 하였다. “ 이 所與는 정도를 달리하여 구조화되어 있으며(gestalt), 상당히 구조화된 전체 또는 전체 과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전체란 그 나름대로의 특징적인 전체화 경향성과, 전체가 부분을 결정하는 특징 등의 전체적 특성, 법칙을 지니고 있다. 낱개 조각이란 항상 전체과정의 부분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Wertheimer, 1922).“

 

부분의 특성과는 다른 새로운 특성을 지닌 불가분의 전체로서 인간의 의식에 떠오르는(出現) 전체(emergent whole)를 그들은 Gestalten이라고 명명하였다.

 

즉 이러한 Gestalten은 ‘맹목적인 외적 요인(기계적 습관과 같은)‘이나 ‘지적 추론 또는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Gestalten법칙에 의해 결정되며 ‘ 단순히 맹목적으로 첨가된 질(Qualitӓn)'도 아니며 이미 있는 재료에 주어진 형식적인 어떤 것도 아니고, 특별한 내적 고유의 법칙을 지닌 전체 내지는 전체의 과정, 즉 구체적인 구조적 원리를 지닌 구조‘를 의미한다는 것이다(Wertheimer, 1922). 또한 형태주의 학자들은 심리학의 과제가 구성주의 학파와 같이 의식을 요소로 분석하고 이를 다시 종합하여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에 의해 직접적으로 경험되는 독특한 현상인 전체로서의  Gestalten을 관찰하고 기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표 1 참조)

 

형태주의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확대하여 영국의 요소주의적 연합주의를 그대로 물려 받아 나타난 미국의 행동주의의 주장에 대해서도- 물론 행동주의는 구성주의 학파와는 방법론과 심리학적 연구주제에 있어서 의견을 달리했다- 반론을 제기하며, 행동주의적 심리학 접근 방법의 부적절성을 제기하였다.

이 Gestalt학파의 이론은 우리의 의식경험 내용이 감각 요소들의 단순한 조합이 아니며, 부분요소들의 특성을 넘어서서 나타나는 전체의 특성을 지닌 것으로서 접근해야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형태학파의 입장은, 심리학이 그 형성초기에 나타난 구성주의와 행동주의에 의해, 지나치게 편협한 요소주의, 연합주의, 환원주의, 기계주의, 수동적 심리현상 觀에 빠져 편중되고 편협한 개념적․방법론적 체계로서 형성되는 것을 제지하며, 보다 조화되고 균형있는 형태로 발전할 수 있는 틀을 제시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형태주의 학파의 개념과 이론체계, 특히 emergent whole로서의 Gestalten이란 개념이 어떠한 역사적 과정을 거쳐서 형성되었는가 하는 문제를 밝혀보려는 것이 본 연구의 목적이다.

이러한 연구문제를 제기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어떤 학문 분야이건 어느 한 시대에 급격한 이론적 변혁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 그러한 생각의 변혁이란 외형적으로 나타나 보이는 것처럼 급격히 이뤄진 변혁이 아니라, 어떤 핵심적 아이디어가 참으로 오랜동안 끈질기게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기되고 수정되어 다듬어진 연후에야 나타나는 생각의 진화적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결과가 변혁으로서 간주되며 수용될 수 있다는 것은 이러한 오랜 동안의 가다듬음이 충분히 축적되고 또 그것이 어느 시대의 특별한 당대 분위기 또는 사조에 마주치고, 또 그러한 생각의 포괄적인 의의를 적기에 파악하여 그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체계화하여 제시할 수 있는 체계적 이론가 또는 천재들이 있으므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생각의 혁명․변혁이란 오랜동안 집적되어온 가다듬음과 어느 특정시기의 시대적 분위기와 거기에 불을 붙이는 전재의 3요소의 결합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생각의 변혁 또는 새로운 학파의 대두는 기존의 독립된 어떤 관념이나 한 학파에 대한 급격하고 고립된 반작용적 움직임 이상의 것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형태주의와 같은 각각의 혁명이 일어나게 된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서, 단순히 구성주의 학파의 편협한 주장과 그 당시의 시대정신(Zeitgeist)과 그러한 혁명에 불을 붙인 K. Stumpf 실험실의 Max Wertheimer, Wolfgang KӦhler, Kurt Koffka와 같은 사람들을 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며, 그에 앞서 Gestalt 개념의 근원, 가다듬어 온 과정을 함께 진술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이러한 생각의 가다듬음이 Gestalt 개념의 발전에서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를 알기 위하여 심리학사 교과서들과 논문들을 분석해보면, 이러한 논저들은 Gestalt개념이 어떻게 시작되고 가다듬어져 왔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대부분의 경우는 기껏해야 형태주의 학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Brentano-Stumpf 流의 현상학파에 거슬러 올라가 Gestalt 개념의 근원을 찾는 수준에 멈추고 있다. 예외적으로 Schultz(1981), Capretta(1967), Klein(1970), Wertheimer(1976) 등의 논저에서 보다 초기의 학자들에서 나타난 Gestalt 또는 전체의 개념이 논의되고 있으나, 이들 논저들도 Gestalt개념과 관련된 개념을 제시한 학자들의 입장을 단편적으로 나열하는 수준에서 머물고 있다.

 

Gestalt 개념에 관하여 기존 심리학사 논저들이 보여준 기술의 제한성은 두가지 면에서 문제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첫째는 과학적 현대 심리학의 형성이 17세기의 Descartes에 뿌리를 두고 이루어졌다고 보면(Boring, 1950; Murphy & Kovach, 1972), 심리학내의 어떤 생각의 형성․발전 과정을 논하기 위해서는 그 생각이 뚜렷이 나타나기까지의 형성과정을  Descartes에서부터 시작해서 명확히 진술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심리학사 논저들은 19세기말의 오스트리아 학파직전에 이르기까지의 Gestalt 개념의 가다듬음의 역사는 논하지 않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아이디어의 역사로 보아서, 한 아이디어가 생성되고 가다듬어지는 것은 그 아이디어 자체를 실제 현상에 적용하여 설명하려는 많은 시도를 통해 세련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그 아이디어와 대립되는 다른 아이디어와의 상호작용 관계에서 그 아이디어가 보다 더 뚜렷해지고 가다듬어지며 정교화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Gestalt 개념의 形成史도, 이러한 입장에서 논해야 하며 Gestalt 개념이 대표하는 합리주의 전통과 이와 함께 오랜 역사를 걸쳐 대립되어 내려온 경험주의, 또는 연합주의와의 대립․상호작용의 역사적 조망 위에서 이해하여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기간된 논저들은 Gestalt 개념의 배태와 형성 발전사를 이러한 입장에서 진술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불충분한 진술의 까닭은 형태주의 학파의 Gestalt 라는 전체의 개념이, 전체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설명함에 있어서 이전 학자들의 전체의 개념과 상당히 다르다는 데 있다고도 볼 수 있다.

 

Democritus나 Epicurus에서 볼 수 있듯이 희랍시대에서 중세에 이르는 여러 학자들은 어떤 전체적 형태의 지각은 외부대상 자체를 구성하고 있는 원자 또는 입자 하나 하나가 대상 전체의 상의 특질을 그대로 간직하고 감각기관에 전달되어 그대로 각인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기계적 연합주의자들은, 대상의 부분들에 대한 감각적 인상이 기계적으로 연합, 조합되어 전체 형재가 이차적으로 주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후기 영국 연합주의자들은 연합의 정신화학 또는 융합의 과정에 의해 전체적 지각 내용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일부 연합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은 감각내용에 대한(특히 관계성에 대한) 지적 능력의 통합적 활동의 결과로, 전체 형태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추론, 판단, 이해, 상상, 구성, 산출되어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다. 한편 생득론적 합리주의자들은 대상의 형태에 대한 관념이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으며 그것을 창조적으로 통합하여 대상의 형태질을 지각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형태주의자들은 Gestalt 즉, ‘의식에 떠오르는 체계화된 구조‘로서의 전체란 일차적으로 의식에 주어진 바이며 하나의 현상이고 부분들을 결정하는 조직된 전체적 구조 또는 과정이며 이는 의식속에 지각된 전체의 특성과 두뇌의 신경흥분의 장(場) 특질의 상응, 즉 isomorphism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라고 보았다.

 

전체를 보는 관점의 바로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Gestalt 개념의 형성 배경을 추적함에 있어 임의로 어떤 제한을 둔다는 것은 위의 서로 다른 입장들의 연계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 까닭이라고 비판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 이유에서 기존 논저들에서 나타난 바와 같이 Brentano를 중심으로 한 현상학파나 오스트리아 학파에 한하여 형태주의 개념의 근원을 제한하는 것도 결함이 있다고 비판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그 결점을 보완하려는 본 연구의 기본 입장은, 형태주의 학파란 단순히 Wundt학파의 요소주의에 대한 고립적․일시적 반동․변혁이었다기 보다는, 희랍 시대이래 요소주의적 경험주의와 전체지향적 합리주의 사이의 오래된 논쟁이(독일식의 개념으로서는 ‘von unten nach oben'과 ‘von oben  nach unten'의 생각의 대립이) 보다 체계를 갖추어 나타난 결과라고 보는 것이며 Descartes가 생득적 관념과 마음의 통일성을 주장하므로써 시작되었고, 이에 반발한 영국의 Hobbes, Berkley, Hartley 등의 연합주의적 경험주의와 이러한 반발을 프랑수에 도임한 La Mettrie, Condillac등의 기계주의적 경험주의에 의해 전개되었다.

 

제 2국면에서는 먼저, Leibnitz의 전통을 이어받는 Wolff, Tetens, Kant 등이 창조적이고 통일적인 마음의 활동또는 능력을 강조하여 합리론을 발전시키며 영국과 프랑스의 경험주의를 기계적 요소주의적 특성을 제거하여 도입하여 합리론과 경험론의 조화를 시도한다. 다음에 이에 영향받아 Scottish학파가 형성되며, 영국의 연합주의적 경험주의가 합리론의 개념을 일부 도입하여 종래의 기계적 연합의 개념을 ‘心的化學‘과 ‘융합‘의 개념으로 변형하여 제시한다.

 

제 3국면에서는 스코티쉬학파와 후기 연합주의자들의 입장에 영향을 받아, 독일의 Herbart, Lotze, Helmholtz, Wundt 등이 독일의 합리론적 경향을 영국의 후기연합주의의 분석적 연합적 경험주의의 방향으로 밀고 나아가려 한다(이는 영국의 연합주의가 과학적 심리학 체계로 발전하려는 움직임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다음에, 이러한 독일 내의 경험주의적 움직임에 반발하여 심리학을 다시 합리론의 방향으로 전환시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러한 반발은 3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 단계의 반발은 Brentano를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학파 또는 현상학의 형태로 나타났으며 제 2단계의 저항은 G. E. Müller, Külpe 등을 중심으로 한 Würzburg 인들과 Göttigen인들이 감각적 근거가 없는 즉 심상이 없는 사고를 강조함으로써 이루어졌으며, 제 3단계의 반발이 감각요소 부분으로 환원시킬 수 없는 전체를 강조하는 Gestalt 학파의 움직임으로 나타난 것이다.

 

경험론과 합리론의 이러한 지속된 상호작용의 역사를 인정한다면, Gestalt 개념의 배태와 형성은 이런 전 국면들과 단계들을 연결지워 논하여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본 연구와 같은 양식의 고찰이 필요한 것이다. 단, 지면의 제약으로, 본 연구에서는 위의 3개의 국면중 제 1과 제 2의 국면을 중심으로 고찰하고 제 3의 국면은 추후의 기회에 고찰하겠다.

 

 

Descartes 이전의 생각과 과학적 체계 형성에의 노력

 

과학의 시조인 Descartes에 이르기 이전에 전체와 부분의 개념이 감각과 지각의 문제에서 논란되어지고 가다듬어진 것을 살펴보자면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에게서부터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이미 감각과 지각의 문제에 있어서 전체와 부분의 개념에 관한 논쟁을 제기하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물체를 구성하는 요소를 밝히고 이 요소들의 합으로서 전체를 설명하려는 입장을 지니는 동시에 대상 자체의 특성이 그대로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하여 전달․반영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인 인물은 원자론을 주장한 Democritus 이다. 그는 대상에서부터 그 대상의 감각적 특징의 복사입자인 eidola가 발산되고, 이것이 그 본래의 형태를 잃지 않고 인간의 감각기관을 자극하여 인간 영혼의 원자들 중에서 그 eidola와 같은 유형의 원자들에게 충격을 가함으로써 그 대상의 심상이 영혼에 반영된다고 보았다.

 

이에 反하여 Pythagoras학파는 ‘질서 있는 구조’라든가 ‘수학적 단순성’ 등의 개념들을 강조하여 구조화된 전체로서의 Gestalt 개념의 선구를 이루었다. Heraclitus 가 제기한 ‘결핍 상태에서 충만한 상태로의 변화를 위한 긴장된 투쟁’ 개념이나 Empedocles의 ‘부분을 조합하여 완전히 하려는 욕구’등의 개념은 Gestalt의 pragnanz의 개념과 관련지울 수 있다. 또한 Plato와 Aristotle 의 ‘충만하여 온전하고 독립된 존재의 이데아,’ ‘통일성과 활동성을 지닌 이데아,’ ‘조화,’ ‘형상,’ ‘활동성로서의 영혼,’ ‘상이한 기눙의 통합제로서의 불가분의 영혼,’ ‘entelechy,' ‘상이한 감각중에서 적절한 감각의미를 추출하는 Common Sence ’등의 개념들은 통일적 전체로서의 Gestalt개념의 선구라고 할수 있다. 특히 Aristotle의 ‘형상원인(formal Caurse )' 에서의 형상의 개념은 물질을 연결하고 그것을 의미있는 대상으로 바꾸는 知的 구조라고 볼 수 있어, 조직화된 전체로서의 Gestalt 개념을 예상하였다고 할 수 있다. (Wertheimer, 1970).

 

한편 희랍인들이 대립적 입장으로 제시한 경험론과 합리론은 희랍, 로마, 중세를 거쳐 17세기에는 유럽 철학에서 2 가지의 중심 사조로 발전하였다. 희랍의 Democritus 와 후의 Epicurus 학파로 이어지는 경험주의자들은 마음 (당시에는 영혼이란 용어로서 표현됨)의 내용이 감각경험으로부터 온다고 주장하였고, 원자적이며, 요소적이고, 유물론적인 입장을 제기하였다.

 

Plato , Aristotle, 일부 Stoic학파, Aquinas로 이어지는 합리론적 전통은 감각 경험을 초월한 본유적 관념, 활동으로서의 관념, 불가분의 영혼의 개념을 제시하여, 통일된 전체로서의 마음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흐름이 중세를 거치는 동안 유럽에서는 합리론과 심령론 (Spiritualism)이 결합되어 철학적 사조를 지배였고,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희랍의 경험주의와 자연주의가 결합되어 지배했다. 중세말의 기독교 철학에서 St. Augustine (395 A.D.)은 의식의 통일적 본질을 설명함에 있어서 의식의 고립된 자극을 통일된 전체 단위로 능동적으로 조합하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하였다. Scholastic 철학자들은 물체의 外樣으로부터 형태를 추출하는 ‘知的 行爲體’ (agens intellectus)를 강조하여 간접적으로 Gestalt 개념과의 연관을 보였다. 그러나 ‘감각에 있지 않던 것은 知에서 있을 수 없다’ 는 입장이 계속 강조되어 옴에 따라 경험주의의 경향이 강해지고 Grosseteste, Duns Scotus , William of ockham 등에 의해 실험적 접근 방법이 제기되었다. 르네상스시기에 Islam 을 통해 희랍의 자연주의가 재도입됨에 따라 심령론적, 합리주의적 전통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도전이 주로 자연과학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예컨대 Kepler, Galilei, Newton 등의 실험적 관찰이론과 예증은 제반 우주현상에 대해 기계적 결정론적 해석의 타당성을 강력히 제시하였다.  특히 Newton 이 인간의 심적현상도 물질과 마찬가지로 기계적 결정론에 의해 설명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물론 신의 개입에 의한 결정의 여지는 남겨 두었으나) 새로운 심리학적 접근방법의 출현을 촉진시켜  주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심령론과 경험적 증거에 기초하지 않은 독단론을 배격하고, 경험적 관찰, 체계적 설명, 수학적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물리학은 16세기말과 17세기 초기에 철학으로부터 독립된 과학으로 형성되었다.

 

이러한 체계화 및 과학화의 시도와 성공은 인접 분야에도 영향을 주어 물리학의 체계화를 전형으로 하여 각 학문 분야들이 독립된 과학으로 형성되려는 시도를 전개하였다.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체계화를 도입하여 철학에서 갈라져 나오려는 시도가 서서히 이루어졌다.  물론 이것은 사실상 철학자들이 마음의 문제들(당시는 영혼의 문제였음)보다 체계적으로 묻고 대답하려는 노력에 의해 간접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이러한 체계화의 시도의 첫째 국면은 17세기와 18세기에 걸쳐 철학 내에서 인간의 영혼과 마음의 문제를 제기함에 있어, 영혼의 개념을 버리고 마음의 개념을 문제 삼으며 심적 현상의 이해와 설명에 경험적이고 기계적인 체계화를 시도한 (그러나 아직도 비실험적인)것이었다.  두 번째 국면은 19세기에 이르러 수학적 방법과 물리적, 생리적, 실험 방법을 도입함으로써 철학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실험과학으로 심리학이 형성된 것이었다.

 

첫째 국면은 심리현상의 연구에 기계적, 요소주의적, 연합적, 유물론적, 생리적 입장이 강조된 경험주의적 접근 방법을 가져왔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Plato-Aristotle, Acquinas 등으로 이어지는 본유적, 통합적, 활동적, 정신기능적, 유심론적, 현상적인 면을 강조해 온 합리주의 전통과 항상 상호작용하며, 그에 대한 대안으로서, 그리고 타협으로서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첫째 국면의 이러한 움직임의 내용은 두 전통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며 심리 현상의 연구의 체계화에 영향을 주어 왔는가를 파악함으로써 적절한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17세기를 기점으로 생각할 때, 첫째 국면에 있어서 중요한 첫 사건은 Galilei와 Bacon 의 출현이었다. Galileo Galilei (1574 -1624)는 실험방법이 유일한 과학적 방법임을 실증을 통해 제시하였고, 기계주의 개념과 운동의 개념을 체계화하여 후대의 경험주의자들에게 넘겨줌으로써 요소주의적 사조를 촉진했다. 그러나 그는 자극 자체에서 주어지는 일차적 특질이 아닌, 심적 작용에 의해 주어지는 이차적 특질을 인정하므로써 후대에 있어서 감각과 지각의 구별을 둘러싼 논쟁을 자극하였다.

 

동시대의 F, Bacon(1561 - 1626)은 D. Scotus, W. ockaham, W. Gilbert, G. Galilei 등의 영향을 받아 Aristotle -Acquinas전통의 합리주의적 연역적 방법에 반기를 들었다. Bacon은 인간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귀납적이며 실험적인 연구방법을 강조하였으며 감각 경험이 모든 지식의 근원임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이어서 Harvey (1578 - 1657) 는 인간 신체의 작용을 기계주의적 체계화에 의해 설명하려 했고, 인간 연구에 감각 경험을 근거로 한 실험적 방법의 적절성과 필요성을 제기하였다.

 

 

Descartes 와 그에 대한 일차적  반응

 

 체계적 과학적 심리학에의 진정한 전환점은 Descartes에 의해 주어졌다.

 

Aristotle 이래 최초로 Descartes에서 우리는 합리주의적 전통과 자연주의적 경험주의적 전통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찾아 볼 수 있다. Descartes(1596 - 1650) 는 Harvey와 당시의 시대정신인 기계주의의 영향을 받아, 인간의 신체를 동물과 연속선 상에 있는 하나의 자동기계로 개념화하며, 신체의 과정을 강조한 2원론을 제시하였다. 그의 2원론에서는 신체와 영혼 등의 운동에 의해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진술되었다. 그는 마음의 idea영역에서 감각경험에 비롯되지 않는 것은 없으나 지각된 내용의 질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주장했다. 즉, 지각의 질은 대상의 단순한 복사라는 종래의 단순한 표상이론을 반박하므로써 감각 요소의 특성을 초월하는 전체인  Gestalt 개념의 가능성을 시사했고, 물리적 (신체 내의)세계의 운동과 영적 세계의 활동의 상호작용에서부터 감각의 질이 나타날 수 있으며 이는 신경섬유의 당기는 힘, 양, 진동의 차이 와 동물영기의 양의 차이 및 영혼의 개입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즉 감각내용이란 대상과 중개 신경과 感知하는 영혼의 三者의 함수라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Gestalt 이론의 isomorphism을 예견한 것이긴 하지만 충분히 발전된 것은 아니었다. Descartes에 의하면, 마음이란 기능과 능력을 지니고 있으나 부분으로 나눌 수 없는 통일적 전체이며, 마음의 능력들은 통일성, 활동성을 지니고 있다. 마음은 감각에서 파생된 관념과 선험적 생득적 관념을 지니고 있으며, 생득적 관념에는 시간, 공간, 質과 통일성, 완전성 등이 있어서, 이에 의해 사고, 이해, 지각 등이 결정된다. Descartes는 또한 감각의 오류가 물리적 현실과 현상적 현실의 차이임을 지적하였다. 이와 같은 그의 통일성, 활동성, 생득적 관념, 현상성 등의 강조는 후의 대륙의 합리론자들을 통해 현상적, 통일적 전체로서의 Gestalt개념이 胚胎될 수 있는 바탕을 제시한다. 그러나 Watson(1976), 李義喆(1971)등이 지적했듯이 Descartes는 지각의(전체적으로 知의)문제에 대하여 情(Passion)의 문제보다 더 명확한 이론을 제시하지 못하였으며 前述한 바처럼 기계주의적 요소주의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었다. 그의 체계에는 합리주의, 심령론, 자연주의, 경험주의, 기계주의, 생리적 입장 등이 통일성을 이루지 않은 채 제시되었다고 하겠다. 이러한 Descartes의 체계는 그에 대한 다양한 해석 즉, 마음의 활동성, 전체성, 현상성, 생득적 관념 등을 강조하는 입장과 기계적 물질론, 생리학적 설명론, 철학적 심리학 등의 흐름을 낳았다.

 

프랑스 내에서의 Descartes입장의 첫 해석은 Gassendi(1592 - 1655)에 의하여 제시되었다. 그는 Descartes의 기본 입장을 수용하되, Aristotle과 Epicurus학파의 감각, 경험주의를 재강조하여 심적 현상을 생물학적으로 해석하며 모든 현상을 물질과 운동으로 환원시키려는 유물론적 입장을 제시하여 Descartes의 생득적 관념론의 비경험적 특성을 보완하였다. 뒤를 이은 Malebranche(1638 - 1715) 는 Descartes의 심신상호작용적 이원론에 반발하나 Descartes의 생리적 기계론은 이어받는다. 그는 마음을 연구함에 있어서 Aristotle 의 연역적 방법보다는 실험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모든 복잡한 심적현상을 단순한 것으로 환원시킬 수 있으며, 이데아들 사이의 연결은 생리적 법칙에 의해 기계적인 연결과 설명할 수 있으며, 인과율을 접속성의 법칙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고 하여, 영국의 Locke에 대응하는 프랑스의 요소주의적 연합주의의 시조가 되었다. 그는 이러한 감각적 연합주의에 의해 지각된 내용을 설명함에 있어서, 지각된 내용은 대상으로부터 눈에 도달한 입자의 내용과 또 눈에서 대상으로 보내어졌던 개개의 입자들의 내용에 의해 결정된다는 中世의학자들이 주장했던 입장을 반박하였으나, 지각된 내용의 원인으로서 신의 암시를 배제하진 못하였다. 즉, Descartes는 신체와 마음 각자의 작용 및 이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법칙을 神이 미리 설정해 놓았으며, 이 법칙이 기계적으로 작용하여 외부 자극이 일으킨 대뇌의 생리적 像에서 감각과 지각이 기계적으로 마음에 일어난다고 보았다. 따라서 Descartes 는 각개의 감각과 지각 경험이 神의 개입 없이 기계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이다. 反面 Malebranche는 감각 질은 신의 개입에 의해 이루어진 ‘자연적 판단’에 의해 주어진다고 본다. 즉 대뇌의 생리적 흥분이 일어나는 매 순간마다 신이 개입하여 ‘자연적 판단’을 일으켜 이를 대뇌의 흥분에 연결시킴으로서 감각과 지각 경험이 일어난다고 본다.

 

한편 영국에서는Descartes의 생득적 관념론에 반발하며 Aristotle의 자연주의를 장조하며 당시의 시대사조인 ‘운동’과 ‘힘’의 개념과 Bacon 의 경험주의를 도입하여 Hobbes(1588 - 1679) 가 감각주의 , 환원주의, 연합주의를 출발시켰다. 그는 모든 심적 현상은 감각경험으로 환원시킬 수 있으며 기억이나 상상도 쇠퇴해 가는 감각 이상의 아무것도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감각경험의 내용이란 외적 자극의 운동에 의해 시작되며 이것이 신체 내의 신경섬유의 운동 또는 압력을 일으키게 되며 이에 대응하는 역 운동 또는 압력이 혈관 또는 심장에서 발생되고 이것이 감각質을 결정한다고 하였다.

 

J . Locke(1632 - 1704)는  Descartes 의 생득적 관념론에 반발하며 Bacon의 귀납법과 Hobbes 의 감각주의를 확대하여 인간의 지식의 획득과 이해의 과정을 분석하므로서 Hobbes의 감각주의, 연합주의를보다 체계화하여 영국 연합주의의 틀을 제시하였다.

 

Locke는 모든 심적현상을 단순관념들과 복합관념들로 분석할 수 있으며, 단순관념은 생득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감각경험에서 파생되며 감각에 근거한 단순관념의 조합에 의해서 그리고 반성 (reflection)에 의해서 복합관념이 형성되고, 이들 관념들의 연합적 조합(Composition)에 의하여 심적 내용이 결정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입장은 감각적이며, 요소주의적이고, 비활동적이며 다분히 수동적인 마음에서 관념의 조합이 기계적으로 이루어짐을 전제하는 것 같으나, 실상 Locke 의 입장에는 합리론적 개념들이 내재해 있다. 그는 단순관념의 생성 원천으로 반성을 상정하므로써 자극특성 자체에 내재하여 그대로 주어지는 일차적 지각 특질이 아닌 마음에 의해 지각되는 이차적 지각 특질을 상정했다. 관념 자체가 방향지우며 통합하는 force로서의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고, 그가 시작한 관념의 조합이란, 기계적 조합보다는 융합적 조합인 mental chemistry의 특성을 부분적으로 내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그의 온도 지각의 설명 예에서는 자극 자체의 특성이 아니라 자극들 간의 상대적 관계에 의해 온도가 지각됨을 보임으로써, Gestalt 개념에 내포된 ‘상대적 관계성’ 의 개념을 예상하고 있다.

  

독일 합리주의와 영국 연합주의의 형성

 

한편 독일권에서는 Gestalt와 관련된 전체라는 개념이 오랜 역사를 지니고 내려왔다.거슬러 올라간다면 독일의 신비주의에 까지도 그 근원을 찾을 수 있겠으나 이 개념이 뚜렷이 나타난 것은 17세기의 Spinoza와   Leibnitz 와 그 뒤를 이은 비판전기(pre-critical period)학자들의 생각이라고 하겠다.

 

?홀랜드?의 Baruch Spinoza (1632 - 1677)는 Descartes의 이원론을 수정하고 ?플라톤?의 세계 영혼의 개념을 도입하여 심신 관계의 二面性이론을 제시하였고 그를 基點으로 하여 Descartes 의 기계적 합리론과 Hobbes의 경험주의가 결정적으로 갈라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인간의 마음은 신의 마음의 한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나, 심신 병행론을 주장하는 그는 인간의 신체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도 동일한 자연법칙에 의존하기 때문에 마음도 물질과 마찬가지로 결정론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그는 인간의 신체에만 기계적 결정론을 적용하려 했던 <데칼트>의 생각을 넘어서서 인간의 마음에까지 기계론을 적용한 최초의 철학자 였으며 Newton이 제기한 바 있는 비슷한 생각을 보다 명확히 했다고 할 수 있다(물론 두 사람 모두 신의 섭리에 의한 결정 원인을 인정하기는 하였다).

 

그러나 Spinoza의 기계론적 입장보다는 전체론적(holistic) 통일적 입장이 후대에 더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그러한 영향들을 열거하면, 첫째로, 다른 것의 존재를 전제로 하거나 의존함이 없이 그 자체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불가분의 본질’의 개념이라든가, 둘째로, 부분의 결합으로 이루어지는 ‘경험적 연합’과 知의 규칙과 질서에 의해 이루어지는 ‘지적 연합’을 구분한 것, 셋째로 , ‘지각(perception)’은 대상에 대한 마음의 ‘수동성’을 의미하기 때문에 마음의 ‘활동성’을 의미하는 ‘개념화(conception)’의 용어를 써야 한다는 것은 후의 독일학자들을 통해 Gestalt 개념의 기초를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가 Descartes와 Hobbes를 비판한 편지에서 말한 바, “혈관 속에서 살고 있는 기생충은 피 한 방울을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전체로 볼 수 있으며 그 한 방울들이 혈관이라는 전체 체계의 특성에 의하여 주어짐을 알지 못할 것이다......(중략).....

 

우리는 부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기 전에 전체로서의 체계의 본질을 파악하려 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부분의 본질은 전체 체계 내의 그 역할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MacIntyre,1978), ‘따라서 자연의 (전체적)체계를 파악하지 못하는 자는 기생충과 같은 image를 지닌다. (전체적)자연의 체계를 파악한다는 것은 부분에서 전체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 부분으로 옮아가는 것이다’는 그의 주장은 後代의 Gestalt의 개념을 잘 표현하고 있다. 또한 모든 것이 그 자체의 존재를 유지하려고 하는 ‘자기 보존에의 욕구’ ‘스스로 진화하려는 힘’등의 개념은 Gestalt의 pragnaz의 개념과 연결지울 수 있을 것이다.

 

Spinoza를 계승하여 18세게 초에 독일에서는 G.W. von Leibnitz(1646-1717)가 나타나 Descartes의 생득관념과 Spinoza의 통일성 개념 및 Locke의 경험론을 조화하여 대륙의 합리론의 체계를 세웠다. 그는 귀납법을 기본 방법으로 상용하되, Descartes의 이원론을 공격하며 Spinoza의 전체의 개념을 발전시켜 單子論(monadoldgy)을 제시하였다. 그는 Plato가 제시한 불가분의 영적 본질이라든가 조화의 개념을 강조하면서 모든 사물의 핵심이 되는 불가분의 통일된 유일의 단순한 실체이며 부분이란 것이 전혀 없는 참된 통일체이며 활동 그 자체인  單子(monad)의 속성으로서 개념화하였다. monad의 내적인 활동과 質이 지각인데, 지각은 완전히 조화된 지각의 상태를 향하여 끓임 없이 활동하는 경향성인 appetitions(Gestalt학파의 pragnanz개념과 관련지울 수 있음)에 의하여 활동적 통일체로 형성된다. 혼돈되고 무의식적인  小지각(petites perception)에서 외적인 대상을 내적으로 표상한 상태인 일반 지각을 거쳐, 완벽하고 명확한 의식의 상태인  統覺(apperception)으로 변화되어 나간다고 하였다. Leibnitz는 질적으로 다른 세 과정을 거치는 이렇나 지각은 단순한 경험에 의해 바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며, 기계론적으로 환원될 수 없고, ‘지각과 지각에 의존하는 것을 기계적 원리로 설명할 수 없다(1898)고 하여  反요소주의를 제기하고 전체주의를 지지하였다. 이러한 개념과, Locke의 ’tabla rasa'란 하나의 허구라고 한 그의 주장과(Robinson,1976)통일체란 어떤 것이든 그 자체의 완전한 자발성을 통해 일어난다는 개념 등은 Locke의 마음의 원자적이론에 대응되는 전체적 (holistic) 이론이라 할 수 있다. (Klein, 1970). 감각 경험이 마음 또는  知에 선행한다는 경험주의에 반대하여   知에 선행한다는 경험주의에 반대하여  知가 본유적이고 선험적이라는 그의 주장(Brett.1912)과, 끊임없이 생성해가는 통일체로서, 그리고 활동으로서 심적 경험 내용을 보는 그이 입장뿐만 아니라 그의 ‘통일성 內의 복수성’이란 개념은 통일성(즉 전체)이 먼저 있고, 그 안에 부분의 다수가 내재함을 강조함으로써 전체가 부분에 선행된다는 Gestalt 개념을 예견하고 있다. 단 Leibnitz의 통일성의 개념은 신경 운동의 물리적 조화로서의 통일성과, 이데아의 논리적 조화로서의 통일성 사이에 어중간하게 위치한 개념임을 유의해야 한다. 그의 심신병행론의 이론도 의식된 형태의 내용과 두뇌의 신경 흥분의 특성間의 일치를 찾는 Gestalt의 isomorphism 개념의 선구로 간주할 수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Bdrkeley(1985-1753)가 Descartes의 생득적 관념에 반발하고 Hobbes와 Malebranche의 감각주의를 도입하고, Locke의 경험주의와 관념의 연합논리는 도입하되 Locke의 일차적 감각 질의 개념은 버리며 Malebranche의 神的 원인의 개념은 살린 형태로 주관적 관념론을 제시한다.그는 감각경험에 근거한 단순관념과 (상상의 관념도 인정함) 이들의 복합으로 이루어지는 복합관념이 모든 지식을 이룬다고 보고 특히 이렇나 감각요소의 분석을 통해 시각적 지식을 설명하려 한다. 그는 지식은 경험에서 출발하나 (단 신의 개입에 의한 지식은 인정), 대상 자체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지각하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보고 일차적 질과 이차적 질은 구별할 필요가 없고, 모두가 경험하는 자의 idea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대상을 지각한다고 할 때 우리는 요소적 감각들을 조합함에 지나지 않으며 (compounding), 이렇게 조합된 것이 인간 마음의 기본 단위가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또한 視空間 지각에서 거리감각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촉감각의 도움을 받아 神감각 내용을 연합·조합하며 무의식적 추론(unconscious inference)을 통하여 얻어진다고 하여, 후의  Gestalt 학파의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전체에 의해 부분이 결정된다는 개념에 反하는 요소주의를 제시하였다.

 

심리과정을 감각의 연함으로 설명하려는 Berkeley의 시도에 뒤이어, Hume(1711-1766)은 이러한 시도를 보다 엄밀히 체계화한다.Newton의 실험적 관찰 방법에  영향받은 Hume은 Locke, Hobbes의 입장을 받아들이되,Locke와 Berkeley를 포함한 이전 학자들의 주장에 내포된 선험적 개념들을 가차없이 제거해 버렸다. Hume은  Descartes의 생득적 관념과 神的 원인, Locke의 반성과 이차적 감각質Berkeley의 영혼과 신적 원인 등을 모두 제거하고, 영혼이 아닌 마음의 연구를 확고한 경험주의의 위에 놓는 다.(李義吉, 1971),그는 감각(impression)과 관념을 명백히 구별하되 감각과 관념은 동일 연속상에 있어서 명료성과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관념은 감각의 희미한 복사로서 의식에 남아있는 것일 뿐이라고 하였다. 이렇나 감각이나 관념은 기계적 연합의 힘에 의해 결합되며, 특히 접속성(contiguity)법칙에 따라 연합되어 심적현상을 이룬다고 본다.

 

Hume은 모든 사고의 흐름을 이렇나 감각인상 요소들의 연결로 분석하여, 마음을 단지 감각의 다발(bundle of sensations)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환원한다. 비록 Hume의 이렇나 분석이 모든 심리현상에 걸쳐 다 적용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렇나 극단적 환원주의는 이후 연구자들이 의식의 내용을 감각요소의 내용으로 분석하며 이 요소들을 연합시키는 법칙을 찾으려 한 反 gestalt적 경향에 박차를 가했다.

 

Hume과 동시대 인물인 Hartley(1705-1757)는 영국의 연합주의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는 Descartes와, Malebranche의 기계적·생리주의적 입장과 동물영기의 순환개념과 Newton의 기계적 분자운동 개념을 합하고, Locke의 관념의 요소주의적 조합의 개념, Berkeley, Hume의 경험적 분석 태도 및 Hume의 접속성을 중심으로 한 연합 법칙 등을 모두 종합하여, 지각된 내용 신경內미립자들의 운동의 연합에 의해 주어진다는 이론을 제시하였다. 그는 무한히 작은 입자들(infinite-estimal particles)이 감각 신경에 있으며 이들은 일종의 흔적인 小진동 입자(vibrati-uncles)로서  뇌에 남으며, 진동들간의 연합은 Locke와  Hume의 법칙 등을 따르긴 했지만 그 근본 법칙은 접속성뿐이라고 하였다. 외부 자극이 감각기관에 영향을 주면, 신경內 미립자들이 진동하기 시작하고, 이 진동이 감각적 진동을 발생시킨다. 이 감각적 진동이 더 약한 微진동을 초래하는데, 이것이 감각의 희미한 복사판, 곧 관념 또는 기억심상이다. Hartley는 관념의 小진동은 감각의 진동과 일대일의 대응관계에 있고, 단지 강도만이 다르다고 본다. 따라서 지각된 내용은 감각적 진동과 관념의 微진동 間의 대응관계에 의해 주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이론은 Hobbes의 개념을 발전시킨 것으로, Gestalt의 isomorphism개념을 예견한 것이다. Hartley는 이 연합법칙으로 감각, 지각, 정서, 기억, 언어 등의 제반 심적 활동과 운동 활동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요소들의 결합에 의한 변형이나 생성을 언급함이 없이 단순히 접속성 법칙에 의해 감각요소와 관념요소들의 결합을 설명하려 한 Hartley의 입장은 反Gestalt적인 영국 요소주의의 絶頂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프랑스式의 경험주의, 기계주의 및 유물론이 대두되었다. 그 대표적 인물인 E. de Condillac(1715-1780)은 프랑스의 Locke라고 칭할 수 있다. 그는 Descartes의 생득적 개념, Malebranche의 능력 개념 및 Leibnitz의 單子개념에 반발하고, Locke의 경험주의를 기계적 결정주의․감각주의로 전환시켰다. Condillac의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인간의 모든 심적활동은 감각으로부터 도출된 것에 지나지 않고, 모든 복잡한 경험도 감각들이 연합법칙에 따라 연결된 것이다.

 

감각에는 연장, 형상, 질서와 같은 속성들이 없으며 각 감각質은 촉감각을 통하여 (Berkeley에서와 같이 ) 연합에 의해 학습된다. 그는 인간을 아무런 이데아가 없는 수동적인 동상(statue)에 비유하여 이 동상이 주의력과 쾌와 고통의 감지 능력만 가지고 감각적, 기계적 연합경험을 통하여 어떻게 각종 복잡한 심적기능과 이데아를 지닌 존재로 형성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다. Locke의  idea의 한 原由因으로서의 반성의 개념까지도 버린 Condillac의 냉철한 기계적 감각주의는   Gestalt의 배경 개념인 독일의 전체적 통일주의, 주지주의는 대립적인 요소주의, 연합주의, 감각주의를 극단으로 밀고 나간 것이다.

 

같은 시대의 La Mettrie(1709-1751)는  Descartes의 이원론에서 감각적이며 유물론적 部面과 Locke의 경험주의와  Malebranche의 감각적 연합주의를 강조하며, 그 당시 생리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을 자동기계로 보았다. 즉, 물질이 운동뿐만 아니라 의식의 속성까지 지니고 있고, 인체는 스프링(spring)의 조합이며 영혼은 이러한 스프링(특히 감지적인 물질인 두뇌라는 스프링)의 운동 원리에 지나지 않는다. ‘思考筋肉’이 있으며 인간의 모든 심적 현상은 물질의 감각적 機制의 조합으로 환원시킬 수 있다. La Mettrie의 입장은 종래의 유심론을 기계적, 생리적 자연주의로 전환시키는 기점을 이루었고, 후의 Gestalt이론의 입장에 반대되는 개념들을 강조한 것이라 하겠다.

 

Condillac과 La Mettrie의 입장이 그 후 지지되거나 수정되는데, 스위스인인 Bonnet (1720-1793)는 Condillac의 입장을 수정하여 Malebranche와 Condillac 등이 연합과정을 생리적 측면에서 해석한 것을 Newton의 운동개념과 Hartley의 신경섬유진동 개념으로 재현시켰다. Bonnet는 뇌의 특정 신경의 진동에 의해 심적활동이 일어나고, 이 움직임이 뇌의 섬유를 움직이고 이 움직임이 뇌의 섬유를 움직이고, 이것이 영혼(마음)을 흔들어 놓아 감각이 일어나며 감각 내용은 어떤 감각 신경 섬유가 어떤 조합에 의해 움직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Bonnet의 생각에는

Condillac의 ‘동상’개념에서 기계적, 경험적, 연합적으로 심적 내용을 조합․형성한다는 생각이 그대로 살아있으나, Condillac과는 달리, 신경섬유의 활동에 관여하여, 심적 내용을 결정하는 주의과정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영혼의 활동성을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Bonnet의 신경섬유들의 조화된 연주(play)의 개념과 영혼의 활동성의 개념은 전자는 Gestalt이론의 이형동질 개념과 연관될 수 있으며, 후자는 Gestalt이론에 크게 자극을 준  Brentano의 활동으로서의 마음‘의 개념과 연관지을 수 있다.

 

Bonnet의 뒤를 이어 Helvetius, de Tracy, Cabanis, M. de Brian, Mervoyer, Traine 등이 18세기에서 19세기를 거쳐서 감각주의적, 경험주의적, 연합주의적 전통을 수정, 보완하지만,  de Tracy의 입장에서부터 독일의 합리주의적 전통의 개념인 ‘mind as activity’가 재생하게 되는데 이는 후에 다시 언급하겠다. 

 

 

독일 합리론의 성숙과 그 초기 영향

 

독일에서는 Leibnitz의 제자였던 von Wolff(1679-1754)가 최초의 대학 심리학자로서 Aristotle  과 Thomism에 반기를 들고 Leibnitz(그의 單子개념을 버리고)와 Locke를 조화하여 ‘합리적 심리학’과 ‘경험적 심리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합리적 심리학은 이성에 의하여 명료한 이데아를 다루며, 경험적 심리학은 경험에 의지하여 모호하고 혼동된 이데아, 즉 감각을 다룬다고 보았다. 비록 후에 Locke의 영향을 더 받아 경험적인 것을 더 강조하였으나,  Wolff의 주제는 활동의 잠재성을 지닌 마음의 여러 기능, 인식, 감정을 진술함으로써, 통합하는 힘으로서의 마음의 역동성, 통일성, 활동성을 강조하는데 있었다. 그에 의하면 마음 또는 심적 통일성이란, 끊임없이 활동하려는 힘(power)과 활동의 잠재성, 가능성인 능력(faculties)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실체이며, 사물을 내적으로 표상하려는 끊임없는 활동 또는 노력(vis representation)이다.

Wolff는 영혼의 이러한 지적 능력 또는 힘은 Leibnitz에서와 같이 혼돈된 小(petis)지각인 ‘감각’에서, 보다 뚜렷한 지각으로, 그리고 여기서 절대적으로 명료한 표상이 형성되는 ‘統覺’으로 그 정도를 달리하여 이루어진다고 보았고, 이 활동의 산물은 하위 능력에서 결합된 idea들의 단순한 재생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임을 강조하였다. 이 입장은 요소적 내용을 제거한 ‘total idea’의 의미를 가진 그의 redeintegretion의 개념에서도 나타나며 형태학파의 조직화의 개념을 예상하고 있다.

 

Wolff의 입장은 Mendelssohn-Tetens-Kant로 이어지는 독일의 합리주의적 전통과  Reid-Stewart-Hamilton으로 이어지는  Scottish학파의 ‘통일체’개념과 ‘활동으로서의 마음’개념이 발전하는데 직접적인 자극이 되며, 간접적으로 프랑스의 관념론자에게도 자극이 된다.

 

Wolff의 생각을 이어 나타난 학자들 가운데에는 비판前期학파의 Plattner, Maass, Schmidt 등이 있다.  Ernst Plattner(174401818)는 統覺이란 개념을 마음의 통합적 활동개념으로 제시하였다. 즉 통각이란 마음 내부에서 대상특성을 통일하여 표상하려는 끊임없는 활동이다(Brett, 1912).  J. G. E. Maass는 연합주의에 대한 독일 최초의 명백한 반항을 제기하였는데, 영국의 연합주의를   의 능력 심리학과 타협시키려고 하면서, 그는 유사한 이데아들은 전체 지각을 형성하지 않고는 연합할 수 없다고 보며, 부분과 전체가 다르며, 부분을 전체로 통합하는 능력을 강조하였다.

 

K. C. E. Schmidt는 Maass에 이어 모든 심적활동이란 단일한 핵심적인 심적활동에 불가분으로 결속되어 있어서, 모든 심적활동은 핵심적 심적활동으로부터 떼어 내거나 제거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이 개념들이 J. N. Tetens(1736-1807)에 의해 종합되어 Kant에게 영향을 준다.  Tetens는 심리학을 기계적 생리적 연합주의로 환원시키는 것의 오류를 지적하고 심리학은 심리학적 방법을 사용해야 하며 현상만을 다루어야 한다고 본다. 유사성과 접속성을 통한 연합 기제는 과도하게 강조되어 왔다. 연합이란 수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능동적 활동에 의해 이루어지며 연합은 전체 심적 과정의 機制를 부분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이라고 본다. 이러한 편협한 연합 원리 대신에 그가 제시한 것이 창조적 상상 원리 ( Doctrine of creative imagination 또는 Dichtkraft )이다. 이 개념은 Kant, Helmholtz, Wundt에게 변형된 형태로 전수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원리가 적용되어 지각 또는 統覺된 내용이 gestalt적으로 전체 형태가 즉각적으로 주어지는가, 부분 지각에 선행되는가 여부에 관여하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비관전기학파들에 의하여 독일내에서의 감각주의, 경험주의 및 합리주의 간에의 조화가 시도되었으며, 근본적으로 마음은 통합적 활동이며 능력이고 연합과정은 전체 심적과정을 설명할 수 있는 기제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연합도 능동적 지적 활동에 의하여 결정되며 범주적 형상이 지각 내용을 결정한다는 생각이 현저히 대두되었다.

 

E. Kant(1724-1804)는 Leibnitz, Wolff Tetens의 합리론적 전통과 Locke, Hume의 경험주의적 전통을 종합하고 조화하여 통합적 인식론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Kant는 마음이란 경험적으로나 직관적으로 지각될 수 없으며, 심적 현상에는 수리적 개념을 적용할 수 없고, 심적 현상은 부분으로 분석하였다가 다시 조합하여 연결할 수 없는 통일적인 성질을 지니고 있기에, 심리학이 과학이 될 수 없으며, 심리학이 의식의 사실들에 대한 경험적 연구라든가 자아나 능력에 대한 과학이 될 수 없고, 단지 선험적으로 이루어진 spirit의 역사의 연구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하여, 과학으로서의 심리학의 형성과 발전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Kant는 희랍시대부터 18세기까지 서구를 지배해 온 관념인 ‘영혼’을 의식 내의 한 이데아로 간주하므로써, 전래의 ‘영혼’이란 개념을 제거하고 ‘마음’만을 연구하는 심리학을 출발시켰을 뿐만 아니라 현상학적 개념․생득관념․지각행동의 통일성 등을 논함으로써 경험주의적 연합주의의 몰락을 재촉하였다. 그는 마음은 세상에 대한 감각자료를 선험적 규칙 또는 선험적 범주에 의해 질서를 부과하여 개념적 현상으로 이르게 하는 형식적이고 활동적인 통일체라고 하여, ‘von unten nach oben'의 개념보다는 ‘von oben nach unten'의 개념을 강조하였다. 즉 경험에서 주어진 내용은 이것을 감각 내용이나 다른 어떤 요소 구조로 환원시킬 수 없는 독특한 통일성을 지닌 Gestalt 즉, 총체라고 하여, Kant는 지각된 경험 내용의 통일성을 강조하고, 일관성 있고 단일적이며 통일성 있는 경험 내용이 창조 또는 형성된다고 하였다. Kant의 이러한 생각은 Gestalt학파의 현상에 대한 강조, 통일적 전체에의 강조, 구조화된 전체에의 강조 등의 경향의 가장 큰 원천이 되었으나, 그의 생득적 범주를 통한 지각의 개념은 Gestalt학파에 오히려 난제를 안겨주었다. 생득론이 아니라고(Henle, 1980) 볼 수 있는 Gestalt 이론은 이 문제를 isomorphism의 개념을 제시하여 해결한다.

 

대륙에서 이러한 흐름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영국에서는 Descartes의 개념이 다시 해석되고 Leibnitz, Wolff의 이론이 도입되어, Hume과 Hartley에서 볼 수 있던 극단적 연합주의가 서서히 붕괴되며,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적 연합주의를 조화시켜려는 노력이 시도된다. 이 시도가 Scotland에서는 Scottish학파의 형성으로 나타나며, 영국에서는 진화론적 연합주의와 정신화학(mental chemistry)을 강조한 연합주의가 대두되게 된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Descartes와 영국의 경험주의와 Wolff 등을 결합한 관념론(idealism)이 대두된다. 영국의 A. Tucker(1705-1774)는 Locke의 ‘이데아의 원천으로서 감각과 반성’을 재도입하여 이데아들의 결합에 ‘조합’(combination)이라는 명칭을 주며, 반복된 이데아의 동시 발생은 점차 변화하여 ‘부분으로 분리할 수 없는 융합’(inseparable union)을 형성한다는 John Gay(1699-1745)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이 조합에는 두 가지 양식이 있는데 그 하나는 두 부분의 특성이 변함이 없이 이루어지는 ‘연합’(association)과 그 다른 하나는 이데아들이 융합되어서 단일한 복합이데아를 형성하는 ‘구성’(composition)으로 구분될 수 있다. Tucker는 부분의 특성과 다른 특성의 복합체가 요소의 구성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다(Warren, 1921, p66)고 하여 단순한 조합의 개념과 새 특성이 출현된 융합의 개념을 처음으로 구분한 사람이 되었다. Tucker의 입장은 이전에는 단순한 부분의 조합이라는 개념에 지나지 않던 compounding 또는 fusion의 개념을 더 발전시켜, mental chemistry나 mental synthesis와 같은 Gestalt개념의 배경개념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J. Priesteley(1733-1804)는 Tucker의 변화된 융합(altered fusion)의 개념을 확대시켜, 후에 Brown이나 Mill부자, Spencer 등에게도 연결지워 주었다. 그러나 그는 Tucker와는 달리 Hartley의 감각주의적 경험주의를 옹호하여 관념의 연합의 근원은 감각에만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부분적인 관념의 조합에서 융합이 일어나고, 이 융합에서 나타나는 것은 부분으로 도저히 분석될 수 없는 완전히 단일한 융합으로서 나타난다는 즉, 통일된 전체의 개념을 강조하였다.

 

영국 경험주의자들이 이러한 개념을 소화하기 이전에-즉, J. Mill이 소화하거나 T. Brown이 보다 세련된 형태로 이 개념을 제시하기 전에-, Scotland에서 T. Reid를 중심으로 한 Scottish학파가 형성되어 미숙하고 기계적인 영국의 연합주의를 보완하는 이론을 제기했다. 이들은 심적 과정을 단순한 기계적인 연합으로 분석하며, 지적 추리 능력이라든가 신의 역할을 무시하는 영국(British) 경험주의자들의 경향에 대하여 강하게 반발한다. 이들은 Hobbes의 요소주의적 감각주의, Hume의 회의적 경험주의 및 Hartley의 기계주의에 반발하고 스콜라 학파에서 독일의 Leibnitz를 이어 Wolff에 내려온 ‘통일된 활동으로서의 마음’이란 개념과 ‘능력으로서의 마음’의 개념을 도입하여, 특히 Wolff에게서 강한 영향을 받아, 영국 연합주의의 극단적이고 협소한 기계주의의 단점을 보완하였다. 이러한 입장을 대표하는 Reid는 Bacon의 귀납적 방법을 심리현상 특히, 인간의 지적 이해와 정서 과정에 체계적으로 적용하고자 하였다.

 

그는 마음이 그 자체 과정뿐만 아니라 다른 대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감각과 지각을 구별해야 한다고 하였다. 명확히 그가 정의하지는 않았지만(Pastore, 1976), 감각이란 의식에 각인된 감각기관의 활동내용이며, 지각이란 지각자가 사물을 의식하여 감각내용과 그 원인인 것을 생각 속에서 조합함으로써 - 마음의 작용에 의해 - 대상 자체의 존재함과 속성들에 대해 지니고 있는 강한 생각 또는 강렬한 신념이며 지각의 존재적 질을 결정하는 직관적이고 본능적인 강한 경향성이 인간 내에 있다고 하였다. 즉, 지각 내용은 자극 자체에 대한 감각인상 또는 그 복사가 아니라 마음의 산물이며, 마음이란 이데아들의 단순하고 비합리적이며 기계적인 연합의 집적이 아니라, 수의적이며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고, 이러한 능력이 ‘일관성․통일성․활동성 있는 전체’라는 속성을 마음에 제공한다. 즉, 마음에는 이데아의 연합에 의해 지배되는 자생적이며, 무질서하고, 비합리적이며 기계적인 사고의 원칙이 있는가 하면, 의도․의지․성찰 즉, 마음의 ‘능동적인 노력’(active effort)에 의해 규제되는 수의적이고 질서 있는 사고의 원칙이 있으며, 후자의 원칙에 의해 지각내용이 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Reid의 이러한 입장은 단순한 감각의 기계적 조합에 의해 지각내용을 설명하려던 영국의 연합주의가 후에 나타날 형태주의에 근사한 형태로 변화해 갈 수 있는 소지를 제공했다고 하겠다.

스코틀랜드에서 연합주의와 합리론의 이러한 조화가 시작되어 이 전통이 Brown, Hamilton 등에 의해 완성되고 영국의 연합주의가 이와 결합하여 J. S. Mill, Bain 등을 통하여 성숙된 연합주의로 발전되기 이전에, 프랑스에서는 Condillac 등의 기계적 요소주의에 반발하여 de Biran 등을 중심으로 한 관념주의의 발전이 18세기 말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중엽까지 지속되었다.

 

이 움직임은 C. A. Helvetius(1715-1771)의 살롱을 중심으로 시작된 정치적-심리적 관념론자들(ideologues)에 의해 이루어졌다. 이들은 중세의 심령론, Descartes의 기계주의와 생리적 입장, Malebranche의 경험적 연합주의, La Mettrie의 기계적 연합주의, Condillac의 감각적 유물론, Bonnet의 신경생리적 관점, Berkeley에서 시작된 감각적 운동의 강조, Wolff와 Scottish 학파의 ‘활동으로서의 마음’, ‘능력으로서의 마음’, Leibnitz의 ‘무의식적 관념’ 등의 모든 사조를 혼합하여 산발적인 이론들을 제시하였다. 이들 중 Holbach, Cabanis, Mervoyer 등은 생리적 기초 위에서 감각 경험을 근거로 일어나는 연합과정으로서의 심적 현상을 강조했다. 반면에 de Tracy, de Biran, Laromiguiere, Taine 등은 스코티쉬 학파의 능동적 지각 또는 활동으로서의 마음, 능력, 주의, 이해, 의도, 판단 등을 강조하였다.  특히 de Tracy는 Condillac을 부분적으로 비판하면서 감수성, 의도, 기억, 판단,  등의 심적 능력은 감각으로 분해 또는 환원될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Mervoyer는 다른 근원에게 비롯된 감각은 내적인 정교화 과정에서 극도로 밀접하게 결합 되여 그 결과로 나타나는 복합 이데아는 단순 이데아로 보인다고 했으며 ‘무의식적 연합’의 개념을 제시하여 Berkeley와 Helmholtz를 이어 주었다.  (Warren, 1921, p,195)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아 19세기 말에 나타난 H. A. Taine(1828-1893)는 심적 화학의 개념을 보다 진전시켰는데 그는 역치 이하의 감각은 접속되어 일어날 때 전체로서 지각된다고 하였으며Mervoyer와 마찬가지로 단순하게 보이는 감각내용이 실제로는 여러 감각들의  복합에 의해 이루어진 감각 내며 의식적으로 분해 될 수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프랑스 내의 기계론적, 감각주의적 연합주의에 대해 프랑스의 관념론자들이 ‘활동성의 마음’, ‘전체적 통일성으로서의 마음’을  부분적으로 대응시켜 지나친 요소주의에 반발하여 통일된 전체의 개념을 소생시키려 노력하고 있었다.  한편,  19세기의 (후반의) 이태리는 이러한 갈등을 크게 겪지 않는데, 그것은 L. Ferri(1826-1895)의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Ferri는 마음에는 상위능력과 하위능력이 있으며 상위능력이란 통합(Syntheses)작용으로 이해의 작용이며 단순한 감각적 연합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는 것임을 주장하며 부분과 다른 전체의 개념을 강조하여 프랑스와 영국의 요소주의적 사조가 이태리로 흘러 들어옴을 막았다. 

 

 

스코티쉬 학파와 영국 연합주의의 성숙

 

독일의 합리론자들이 영향과 T. Reid, 그리고 상술한 프랑스의 초기 관념론자들의 영향이 영국의 연합주의와 결합되어 보다 성숙한 형태의 Scottish학파와 영국의 연합주의가 이루어지는데, 이는 Stewart, Brown, Hamilton등 에 의해 이루어진다.

 

  D. Stewart(1753-1823)는 Reid의 입장을 대부분 받아들이며 심적 능력의 작용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주의의 능력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분석한 나머지, 형태가 지각되는 과정에 대해 결과적으로 요소적인 설명을 제시한다.  그는 마음은 어느 한 순간에 한 대상의  어느 한 부분에만 주의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떤 대상의   형태 지각은  그 대상의 윤곽을 이루는 각 개의 작은 분산된 점(minimum visible) 들에 마음의 주의가 계열적으로 아주 빠른 속도로 주어져(현대의 인지심리로 scan을 의미) 그 주의의 결과들이 연합-조합되어 그 대상이  지각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Postore, 1976, p121). 이러한 입장은 비록 Stewart가 통일적 마음의 개념을 Reid를 따라 강조하긴 했으나, 현대의 反Gestalt적 형태지각 이론의 선구를 이루었다 하겠다.

   Thomas Brown(1778-1820)은 Wolff와  Reid, Stewart의 영향을 받아 스코트랜드학파를 익혔으나, de Biran의 관념론을 따랐고 영국의 연합주의를 수용하되 Hume-Hartley와 프랑스의 Condillac으로 이어지는 기계주의적 연합주의를 수용하되  de Biran 과 스코티쉬 학파의 활동성, 통일서의 개념을 강조하며 Priestley와 Tucker의 정신 화학작용으로서의 연합의 개념을 도입하므로써,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의 결정적인 교량역할을 하였다.  그 결과로  스코트랜드에서는 스코티쉬 학파가 그 특성을 상실하고 영국의 연합주의와 융합되어 사라지게 되었고 영국의 연합주의는 성숙한 체계를 지니게 되었다. 

 

Brown은 ‘연합’이라는 개념 대신에 심적 능력의 활동으로서 ‘제기(Suggestion)’ 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는 영국 연합주의의 오류는 한 관념이 다른 관념을  감각 수준에서 불러일으키는 것을 강조하고 개개의 관념 위에 존재하는  종합적 능력을 무시했다는데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종래의 순수 연합주의를 ’단순 제기‘의 개념으로 묶고, 추가하여, 관계를 파악하여 연합하는 의미의 ’관계적 제기‘의 능력 개념을 제시함으로써 전통적 연합주의를 넘어 Wolff, Scottish학파의 입장을 도입하였다. Brown은 이러한 ’제기‘의 세 가지 법칙을 제시하였다. 일차적으로 법칙에서는 유사성, 대비, 근접성과 이차적 법칙에서 관습성과 명백성을 강조하여 후의 Gestalt학파의 조직 기본원리 개념을 간접적으로 제시하였다. 제 3의 법칙인 ’관계적 제기(Relative Suggestion)‘법칙에서는 모든 연합의 관계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는 함께 지각되는 관계성을 부여하려는 마음의  본질적 경향성과 감수성에 의하여 가능하게되는 것이며, 직접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이지, 경험에 의하여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Brown은 심적 활동이 단순한 감각 자료의 연쇄가 아니라 관계성을 파악하고 도출하는 능력에 의해 특징 지워 진다고 보았다. 활동적이며 통합적인 마음의 현상적 결과로 이루어지는 ’관계성‘에의 강조와 ’관계적 제시‘에 의한 요소의 통합의 개념은 Bain에게로 그리고 종국에는 Gestalt학파에게 영향을 준다. 즉 Tucker와 Priestley의 ’융합‘의 개념을 도입한 Brown은 복합적 심리상태란 단순한 제시(연합)나 관계적 제시의 조합(composition)이 아니라 구성요소들과 그 특성이 달라지는 ’융합(fusion)‘임을 강조한다.  즉 화학작용에 의한 새로운 복합체의 형성이며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기계적 연합의 산물이 아니라 de Biran, Reid등의 ’활동으로서의 마음‘의 작용에 의한 산물이란 의미이다.  이러한 새로운 복합체 형성의 심적 화학의 개념은 J. S. Mill, Hamilton, Spencer, Wundt 등을 거쳐 Gestalt개념 형성에 영향을 준다.

 

Brown의 입장을 다시 Hume의 요소주의적 기계주의의 입장을 강조하여 해석한 1773-1836)은 de Biran, Reid등의 스코티쉬 전통을 받아들이긴 하되 전통적인 연합주의인 Hume-Hartley의 입장을 다시 강조하여 새로운 형태의 연합주의를 제시한 다. 그에 의한 면 모든 지각, 기억, 사고는 감각과 그것의 복사 또는 흔적 인 관념의 자료에 의거하여 이런 한 심적 과정들은 영혼과 같은 독립적이고 원인 적인 능력의 개입 없이 감각요소들이 접속서의 연합법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조합(compound)됨으로써 일어난다. 즉 모든 심적 현상이란 마치 자연의 물질 세계에서 원자들이 화학적으로 조합하여 하나의 물체가 되듯이 기계적으로 조합되어 일어난다. 이와 같이 이루어진 복합 이데아는 그 구성요소의 특성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따라서 심적 조합이란 통합적(synthesis)인 것이 아니라 단순한 연쇄(concatenation)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J. S. Mill의 연합주의에서 전체란  개념은 부분들의 특성에 의해서 규정 지워지는 단순한 부분의 합에 지나지 않는 개념이다.

 

이와 같이 지나치게 단순화된 기계적 조합의 연합주의에 대하여 J. S. Mill이 이를 다시 스코티쉬 학파와 독일 합리론 쪽으로 밀고 나가 보다 성숙된 연합주의를 형성한다. 

 

J. S. Mill(1806-1873)의 자기 아버지 J. S. Mill의 영향을 크게 받았으나, J. S. Mill의 기계적 연합주의보다는 Tucker와  Priestley의 ’융합‘의  개념을 강조하여 ’융합으로서의 ‘심적 화학’의 개념을 연합주의에 제시하였으며 스코티쉬 학파의 ‘의지’ 등의 능력적 개념을 강조하였다. 그는 Hamilton과는 달리 형태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는 시각적 형태지각이 시각 내용과 촉각 내용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는 이전의 주장에 反하여, 시각적, 촉각적 관념은 최종 형태가 지니고 있는 (복합적)관념을 지니고 있지 못하여 따라서 두 관념의 조합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성(generated)'되는 것이라고 하며, 빈번히 함께 경험되는 관념들은 서로 녹아 융합되어 하나가 되며 연합된 전체는 단순히 요소 부분들의 합이 아니라 새로운 것(마치 물이 산소와 수소의 결합 이상인 것과 같이) 이라고 하였다. 또한 함께 일어나는 원인들의 효과는 그들이 따로 따로 일어날 때의 효과의 합과 꼭 같지는 않으며 새로 생성된 전체의 법칙은 부분의 법칙에서 예언될 수 없다. 따라서 기존의 한 현상(P)에서 다른 부류의 심적 현상(G)이 생성되었다고 하여 생성된 현상(G)과 그 법칙에 대한 별개의 새로운 실험 연구를 할 필요성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Warren, 1921)라고 했다. 즉, 생성된, 지각된 전체란 별개의 법칙과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러한 전체의 연구는 연합주의의 기존 접근방법을 떠나 독립적인(Gestalt이론과 같은) 접근방법을 통해 시도해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였다.

이들 Mill부자의 입장을 배경으로 하여 Reid, Stewart, Brown으로 이어져 내려온 스코티쉬 학파의 말미를 장식한 사람은 W. Hamilton(1788-1856)이었다. Hamilton은 Leibnitz, Wolff의 생각을 도입한 Scottish학파의 입장에 Kant와 Herbart의 생각을 도입하여, 統覺, 통일성, 활동성, 현상성 등의 개념을 중심으로 심적 현상에 대한 체계를 세웠다. 따라서 그를 기점으로 하여 Kant전통이 연합주의에 영향을 주게 되었고, 또한 종래의 Hartley식의 기계적, 생리주의적인 지나치게 단순화된 영국의 연합주의를 ‘활동으로서의 마음’이 충분히 고려된 성숙된 연합주의로 발전할 바탕이 마련되었다.

 

Hamilton은 이데아의 연합은 접속성과 유사성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으나 실제로 이데아들은 하나의 통일적인 인지적 활동에 의해서 그 통합성이 유지되는 전체의 요소들로서 획득된다고 하였다. 그는 Leibnitz, Kant, Reid, Stewart로 이어지는 현상주의적 개념을 도입하여 지각 대상은 요소들의 기계적인 조합이나 주의집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보다 큰 전체의 부분으로서 직접적으로 주어진다고 보았다. 의식 내에서 이데아가 전체의 부분으로서 나타날 수 있는 것은 마음의 활동의 통일성의 결과이며, 우리는 어떤 한 순간에 단일한 요소 이데아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총체적 경험으로서 전체적인 상태로서 경험하는 것이며, 이데아들의 연결은 이러한 한 부분(part)이라기 보다는 한 국면(phase)으로 볼 수 있으며, 하나와 다른 하나가 통일성의 전체 속에서 연합되고 기억되는 것은 단순한 조합이 아니고 통일의 원칙인 Redeintergration의 법칙에 의한다고 하였다. 그는 스코티쉬 학파의 Stewart와 Brown에게 아직 남아 있던 요소주의적 反현상주의적 입장을 비판한다. 그는 Brown이(Hume, Berkeley의 입장을 확대하여) 시각적 형태지각은 대상에 대한 촉감각 경험 내용과 눈의 움직임 감각과 색채감각들이 밀접히 연합되고 융해되어 하나의 통일적 형태로 지각된다고 주장한 것에 관하여, 이는 Stewart의 minimum visible이라는 요소 점과 동일한 개념이라고 비판하고, 이를 인정한다면 한 형태를 지각하기 위하여 무한히 작은 부분순간들로 나누어야 하고 그 작은 부분순간 각각에 별도의 주의활동이 각각 수행되어져야 함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다(Hamilton, 1880). 즉, 거의 무한한 수의 개별적이고, 계열적인 주의활동들의 직접을 전제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입장은 한번에 하나의 작은 지각 미립자의 파악 이상을 설명할 수 없으며, 어떻게 전체라는 앎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는가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크나큰 수수께끼로 남게 될 것이다(Pastore, 1971, p.123)라고 비판한다. 동시에 그는 ‘마음이란 지식을 정교화함에 있어서’ 부분에서 전체로가 아니라 ‘전체로부터 부분으로 분석하여 진행된다’고 주장하여 지각된 전체는 부분들의 지각에 선행된다고 하며 단적인 명증 예들을 제시한다. 이러한 생각은 후의 Gestalt학파의 주장과 상당히 유사하다. 단 Hamilton은 후의 Gestalt학자들과는 달리 심리학자라기보다는 철학자였으며 그가 제시한 전체의 구성법칙인 Redeintegration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하지 못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스코티쉬 전통의 영향과 영국의 연합주의가 Mill부자 이후에 나타난 A. Bain에 의해 최종 통합된다. A. Bain(1818-1903)은 Brown 및 스코티쉬 학파의 ‘통일성’, ‘능력으로의 마음’의 개념과 생리주의와 경험주의에 영향을 받고 19세기의 시대사조인 실험과학적 입장에 영향을 받아. 영국의 심리학이 사변적 연합주의로부터 생리적이며 실험적인 연합주의에 근거한 체계로 옮아가게 한 전환점을 이룩하였다. 그는 심리현상을 知․情․意로 나누고 다시 知를 연합법칙에 의해 분석하였다. 그가 제시한 4개의 연합법칙은 다름 아닌 구성적 연합(Constructive Imagination, Creation, Origination, Invention 등으로 표현함)원칙이다. 그는 마음은 과거 경험에 제시되었던 어떤 것들과도 다른 새로운 집적 또는 조합, 연합을 통해 형성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보아, 창조적 상상 또는 구성의 법칙에 의해 부분들의 특성과 전혀 다른 전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그러나 Bain은 독일 학자들과는 달리 마음의 이러한 능력이 연합원리 이상의 별도의 능력이 아님을 강조한다. 또한 그는 최초로 지각의 생리적 이론을 제시하면서 모든 의식내용은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개의 연합은 그에 상응하는  연결 또는 Track을 뇌에 지니고 있어서 뇌의 세포 접속점의 독특한 성장(불어남)에 의해 운동감각이 grouping이 되거나 조정되고 이에 의해 각종 심적현상이 일어난다는 신경섬유체계 이론을 제시한다. 이러한 생각은 Gestalt학파의 isomorphism을 예견한 것이다.

 

한편 연합주의와 C. Darwin의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던 H. Spencer와 H. G. Lewes는 19세기 중엽에서 전통적인 연합주의와 진화론을 결합하려는 노력에서 부분적으로 Gestalt이론과 연관지울 수 있다는 생각을 제시하였다. Spencer(1820-1903)가 상대성을 강조한 것과, 관념의 연합을 감정의 관계성 개념을 근거로 설명하려 했다는 점, 복합적 경험을 구성하는 낱개의 감각경험이 복합경험의 속성을 나타내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역도 가능함을 인정했다는 점과, 통합(integration)이 새로운 기능을 하는 전체를 가져온다는 생각은 Gestalt적 전체개념과 연관 지울 수도 있다(그러나 Warren (1921)은 Spencer의 ‘심적 통일성’의 개념은 모호했다고 한다.). 또한 Spencer가 감각경험의 내용을 두뇌 연결의 변화와 상응시키려 한 것이나, Lewes가 감각경험을 신경충격 또는 진동의 Grouping의 개념으로 나타내려 한 것은 Gestalt의 이형동질적 개념과 연관지울 수도 있을 것이다.

 

 

결    론

 

Gestalt 개념의 배태와 가다듬음의 역사를 밝히려는 시도의 제 1부로서 Descartes 이후의 17, 18세기의 철학적 심리학적 사조와 현대 영국 연합주의의 입장을 고찰하며 ‘부분을 결정하는, 떠오르는 전체’로서의 Gestalt개념이 변천해온 과정을 살펴보았다.

 

희랍 철학에서 비롯된 요소주의적 경험주의와 전체지향적 합리주의 전통내에서 Gestalt적 전체의 개념의 뿌리가 어떻게 제기되고 가다듬어져 왔는가를 두 대립된 사조가 상호영향을 주는 역사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Descartes, Leibinitz, Wolff, Kant 등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합라론과 Scottosh 학파가 마음의 통일성, 활동성의 개념을 계속 제기하고 가다듬고, 주지적 심적 능력에 의해 통일된 전체로 파악되는 지각내용과 그 현상적 측면을 강조하므로써 Gestalt 심리학의 개념의 바타응ㄹ 마련했다. 한편 이러한 합리주의에 반발하거나 타협하며 영국의 요소주의적 연합주의가 ‘융합’된 전체의 개념을 발전시킨 역사를 보면, 하나의 개념이 성숙된 형태로 나타나기 위하여 거쳐야할 수많은 세런과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완전히 독립적으로 전체의 특질을 지닌 원자 요소를 인정하던 입장에서, 감각경험 요소의 단순한 접속식 조합으로, 감각경험 요소의 ㅣ복사인 관념들의 나열식 조합으로, 또 요소 관념들의 기계적 조합으로, 그리고 요소관념들의 융합으로, 또 부분 요소의 특성을 넘어서며 오히려 그 특성들을 결정하는 창조적 통합, 구성, 또는 융합으로, 요소주의적 개념이 계속 세련되어왔다.(표1 참조)

 

요소주의의 이러한 변화에 계속 영향을 주던 대륙의 합리론이 이와같이 변형된 요소 주의를 받아들여 합리론 본래의 입장과 조화시키려 하는 시도가 19세기 전반에 걸쳐 일어나게 되며 그러한 독일 내의 요소주의적 움직임에 대한 전통적 독일 합리론의 반발이 Gestalt 개념을 중심으로한 Gestalt 학파의이론체계로 20세기에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독일 내에서의 요소주의의 영입과 그에 대한 Gestalt학파들의 반발의 흐름의 내용(제 3국면의 내용)은 차후 논문에서 다루기로 한다.

 

영국의 요소주의적 연합주의자들이 오랜 기간동안 그들의 요소주의적 입장을 수정하며 ‘전체’, 지향적 융합의 개념을 발전시켰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전체 또는 유합의 개념이 Gestalt 학파처럼 성공못한(Helson, 1969) 까닭을 찾는다면 다음과 같이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 학자는 그 시대의 시대정신의 관성(inertia)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무리 한 문제에 대하여 뛰어난 통찰을 하였다 하더라도, 현재의 지배적 생각의 경계를 완전히 넘어서 나아간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 하겠다. 그 Rkdfr은 우리가 한 시대의 지배적 생각에 반기를 들고 반대되는 생각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역시 우리는 반대하려는 그 생각을 근거로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생각의 완벽한 변혁이란 극히 드문 일이며 대부분의 경우 현재의 지배적 생각을 다소 수정하여 제시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영국의 연합주의자들이나 스코티쉬 학파나 Gestalt 학파 이전의 독일 학자들이 새로운 전체의 개념을 성공적으로 제시못한 것이라고 하겠다.  영국의 연합주의자들의 경우, 그들은 전체라는 개념을 그들의 체계의 부차적인 개념으로만 생각했고, ‘융합’을 강조한 사람들도 단순히 그 러한 현상이 있음을 언급하고 그것에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지, 어떻게 해서 그러한 독특한 전체가 생성되고 그것이 부분을 결정하며,, 또 그러한 전체의 개념을 심리현상 전반에 적용시킬수 있는 개념으로 체계화 할 수 있는 가를 추구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이러한 추구는 앞서 서론에서 진술한 바와 같이 시대사조의 성숙과, 그에 불을 붙여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천재들의 출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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