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마스에서 해방의 문제
김재현(경남대 교수, 철학과)
1. 들어가는 말
하버마스(1929- )는 지난 20여년 동안 가장 많은 논의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회철학자이다. 그는 영미의 철학과 경험주의적 성과를 독일철학의 전통 안에 포괄하면서, 사회학, 심리학, 언어학, 정치학, 역사학 등의 연구를 통해 유럽사회에 대한 현실적 분석과 참여, 이론과 실천의 통합 시도, 정통 맑시즘 비판,민주주의와 학생운동에 대한 논쟁, 실증주의 논쟁 ,해석학 논쟁, 체계이론 논쟁,포스트모더니즘 논쟁, 신사회운동 논쟁, 시민사회 논쟁, 역사가 논쟁,형이상학 논쟁 등 여러 논쟁 속에서 자신의 이론을 발전시키면서 '이성'에 대한 신뢰를 확고하게 갖는 '계몽주의자'로서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2. 삶과 저작
하버마스는 파시즘의 등장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초등학교 시절 '나치 소년단'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는 파시즘의 몰락을 체험했으며 뉘른베르크의 재판으로 상징되는 그 당시 정치적 혼란과 2차 세계대전 뒤에 나온 강제 수용소와 대학살에 대한 기록영화를 보고 엄청난 충격을 받으면서 사회적 ,정치적 의식을 갖게 되었다. 1953년에 1935년 여름학기 강의록이었던 하이데거의 {형이상학 입문}이 아무런 수정없이 간행되자 하이데거 철학에 영향받았던 하버마스는 철학과 정치가 분리될 수 없음을 깊이 자각하여 하이데거에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의 철학이 1933년 이후에도 계속 나치즘의 정치이데올로기와 연루되었음을 폭로한다. 하이데거에 대한 대결의식은 이후에 가다머의 해석학에 대한 비판, 니체, 하이데거의 영향을 받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비판,그리고 형이상학 비판 등으로 나타난다. 그는 괴팅겐, 본, 취리히 대학에서 철학, 문학, 역사학 뿐만 아니라 경제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면서 루카치를 통해 '청년 맑스'를 알게 되고 특히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계몽의 변증법}을 읽고 충격적인 지적 감동을 받았다.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 잠깐 활동하다가 1956년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아도르노의 조교가 되어 비판이론의 정통 계승자로서 길을 가기 시작하면서 사회학의 경험적 연구방법을 접하게 된다.1961년에 {학생과 정치-프랑크푸르트 학생들의 정치의식에 관한 사회학적 탐구}를 몇 동료들과 같이 출간하고 62년에는 교수자격취득 논문인 {공론영역의 구조변화}를 통해 경험적 연구와 이론적 탐구를 종합하는 통합적 연구자세를 보여준다. 하버마스는 63,64년 서독사회학회가 주관했던 '실증주의 논쟁'에 참여하여 실증주의를 비판하고 변증법과 비판이론을 옹호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의 실증주의 비판과 비판이론 옹호는 사회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0년대 유럽사회 특히 서독은 복지국가체제가 확립된 상태였으며 노동자계급은 체제저항세력이기보다는 체제의 중요한 동반자로서 노동조합과 정당 및 복지정책을 통해 체제의 번영과 안정에 공헌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실증주의적 자연과학에 기초한 과학, 정보, 기술의 발달이었고 과학과 기술은 곧 체제유지의 합리적 수단으로서 정치적으로는 기술관료조직을 강화시키는 역할을 했다.({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 60년대 후반 독일대학에서 '신좌파'가 나타났을 때 하버마스는 신좌파 운동이 대변하는 철저한 사회변혁의 가능성을 인정했고 이를 통해 독일학생운동의 이론적 지도자로 추앙되었지만 학생운동이 급진화되면서 현실의 진단과 대안의 처방에서 점점 사이가 벌어져 서로 대결하는 사태로 나가고 마침내 급진파 학생들은 비판이론의 본거지였던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사회조사연구소'에 침입하였고 이에 경찰이 개입하여 사태가 확산되어 마침내 아도르노는 학생들의 비난과 갈등 속에서 얼마 후에 사망했고 하버마스는 '좌파 파시즘'의 위험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하버마스는 69년에 {저항운동과 대학개혁}을 출간하고 이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교수생활을 하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스스로 교수직을 사임하고 뮌헨 근처의 스타른베르그에 있는 '과학-기술세계의 삶의 조건연구를 위한 막스-프랑크 연구소'로 옮겼다.이곳에서 그는 과학과 기술이 자본주의의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통해 {후기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1973), {역사적 유물론의 재구성}(1976)을 출간한다. 1971년부터 1983년까지 막스 프랑크 연구소 소장을 하면서 81년에 대저작인 {의사소통행위이론 1,2}를 출간하고 83년에 다시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철학교수로 취임하면서 이제까지의 이론적 기초를 토대로 구체적인 현실적 발언을 많이 하게된다. {현대에 대한 철학적 논의}(1985)에서는 이미 [현대-미완의 기획](1980)에서 보수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적 경향에 대해 비판한 입장을 철학적으로 강화시킨다. 80년대 중반에 보수적 역사학자들이 히틀러 정권을 변명, 정당화하려는 주장을 반박하고 맹목적 민족주의적 경향을 비판하자 일부 보수주의자들로부터 독일공산당의 대변자라는 비난까지 받았다.하버마스는 좌파로부터 수정주의의 사상발전 과정 중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분명히 나타나므로 이 저작을 중심으로 하버마스의 사상을 초기와 후기로 나누어 살피겠다.
3.1. 초기 하버마스
3.1.1. 하버마스는 {학생과 정치}의 서문,그리고 {공론영역의 구조변화}에서 자본주의적 발달과 자유주의적 공론영역의 발생 및 몰락의 역사적 연관을 분석했다. 하버마스는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주주의 발전' 사이의 '모순'에 관심을 갖는다.이러한 관심에 기초하여 그는 {공론영역의 구조변화}에서 "시민적 공론의 자유주의적 모델의 구조와 기능,발생과 전환" 을 해명한다.
공론은 자본주의의 발전과 함께 분리되기 시작한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긴장관계에 있는 하나의 사회영역으로 출현하였으며 새롭게 형성되어 가는 이 사회영역 내에서 쌀롱과 클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문예적 공론영역'에서 신문 및 인쇄물의 보급과 특히 시민혁명의 경험을 통해 '정치적 공론영역'으로 변화됨으로써 이른바 정치적 여론을 형성하게 된다.
근대적인 공중은 민주적이고 비판적인 여론 정치의 주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동시에 부르조아지의 정치적 참여의 척도로서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러한 부르조아적 비판적,정치적 공론영역의 형성은 영국에서는 18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프랑스혁명 후, 독일에서는 19세기에 와서 실현, 발전되고 이러한 과정은 정당의 결성, 의회민주주의의 확립 등을 통해 근대적 법치국가의 조직원리가 된다.
그러나 "자유주의의 전성기에 이어 점차로 '조직화된' 자본주의의 백여년간에 공론영역과 사적영역과의 근본적인 관계는 실질적으로 해체된다. 즉 부르조아적 공론의 윤곽은 소멸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모델도 사회주의적 모델도 이 모델로 유형화된 두 위상 사이에서 고유하게 유동하는 공론에 대한 진단에 적합한 모델이 아니다. 상호 변증법적으로 관계하는 두 경향은 공론영역의 한 붕괴를 나타낸다. 즉 공론은 사회의 보다 넓은 <영역>을 관철해 나감과 동시에 그의 정치적 <기능> 즉 여론화된(공공화된) 사실을 비판적 공중(Publikum)이 조종하는 기능을 상실한다. '공론'은 그것이 사회적 <영역>으로서 확장되고 또한 사적 공간을 공동화(비게하여 축소) 하는 정도 만큼 그 <원리>의 힘, 즉 '비판적 공중성'(kritische Publizitat)의 힘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인다."
후기자본주의의 국가개입주의 이후 기술관료적 제도와 함께 공론영역은 크게 축소되고 '기술적 합리성'에 의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조작되고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구조가 심화되는 현상이 생긴다. 하버마스는 문화산업의 등장과 관련해서 공중영역의 몰락을 분석하여 이를 "정치적 공론영역의 재봉건화" 라고 표현했다. 또한 하버마스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기술과 과학], [기술적 진보와 사회적 생활세계] 등의 글에서 공론영역의 탈정치화라는 관점에서, 고도 자본주의의 특징을 이루는 발전의 두 경향에 대해 탐구했다. 일차적으로, 그는 경제 체제의 안정과 성장을 보장하게끔 설계되어 있는 국가의 개입주의적 행위가 누적적으로 증가되어 왔다는 것을 언급했으며 다음으로, 과학의 체계를 일차적 생산력으로 전화시키는 학술연구, 기술, 정부 행정의 상호 의존성이 증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부르조아 공론영역의 해체에 대한 하버마스의 설명과 문화산업에 대한 구비판이론 모델(문화산업테제)은 서로 연관된다.하버마스는 후기 저작들에서 국가와 시민사회를 매개하는 이 개념을 더욱 발전시키면서 대중매체의 '양면성' 이론을 통해 초기의 문화산업테제에 접근했던 입장을 스스로 비판한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미래의 사회주의적 정치를 위한 모델로서 부르조아적 공론의 가치에 대한 신념을 결코 잊지 않았다.
이처럼 '공론영역' 개념은 하버마스의 철학 초기부터 현재에까지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그의 철학에서 주도적인 이론적 동인이 되어왔으며 특히 그의 의사소통행위이론과 민주주의론, 그리고 이에 대한 규범적 뒷받침을 하는 토의윤리와도 깊이 관계된다.
3.1.2. 하버마스는 '실증주의 논쟁'과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활세계의 변화를 고려하여 이론과 실천의 관계에 대한 이론사적 연구({이론과 실천}1963)를 한 후, 비판이론의 정초를 인식론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메타이론적 작업을 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트대 취임강연인 [인식과 관심](1965)에서 인간이 갖는 세가지 인식관심들을 구분한다. "경험적-분석적 학문의 발단에는 기술적 인식관심이, 역사적-해석학적 학문의 발단에는 실천적 인식관심이 그리고 비판적으로 정향된 학문의 발단에는 해방적 인식관심이 들어간다." 특히 세번째 관심이 중요하며 이 관심에 의해 비판이론(비판적 사회과학)이 탐구된다. 그리고 "비판적 사회과학은 경험적-분석적 학문과 역사적-해석학적 학문의 변증법적 종합이다." 하버마스는 기존의 경제학,사회학 그리고 정치학을 '행위과학'으로 구분하고 이들이 경험분석적 자연과학처럼 사회의 법칙적 지식을 탐구하지만 '비판적 사회과학'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해 '해방적 관심'을 추구한다고 한다.
모든 '지배'와 강압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율성과 책임과 정의에 대한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서의 이 세번째 관심이 '비판'으로서 철학이, 비판적 사회과학이 추구해야할 과제이다. 왜냐하면 철학의 역할은 인간역사에서 대화를 끊임없이 왜곡시키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방해해 온 폭력의 발자취를 발견, 폭로(비판)함으로써 자율과 책임을 향한 인류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비판은 법칙연관에 대한 지식을 매개로 해서 당사자 의식 속에서 반성과정을 작동시키고 정신분석은 이 반성의 힘을 통해서 그러한 법칙의 출발조건에 속하는 무반성적 의식의 단계가 변화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자기반성은 실체화된 권력의 종속성으로부터 주체를 해방한다. 자기반성은 해방적 인식관심에 의해 규정된다. 비판적으로 정향된 학문은 해방적 인식관심을 철학과 공유한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생략)
하버마스는 {인식과 관심}에서 인식관심이론을 더욱 심화시켜 "철저한 인식비판은 단지 사회이론으로서만 가능하다" 는 것을 입증하고 실증주의가 무시해온 '자기반성'적, '비판'적 정신을 회복하여 '실천적 의도를 지닌 역사철학'을 재구성한다. 이와 관련해서 하버마스가 특히 주목하는 사람은 맑스와 프로이드다.맑스는 노동에 의한 물질적 생산과 생산을 둘러싼 사회적 관계인 생산관계를 중시하면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인 계급투쟁을 통해 인간해방과정의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하버마스는 맑스가 독일 관념론에서 인식주체의 개념을 계승했으나 인식주체의 노동에 의한 물질적 세계변형의 이론은 '노동'과 '상호작용'을 포괄하는 인간의 '실천'을 도구적 행위, 즉 노동에로 환원시킴으로써 맑스의 인식론은 자연과학적 인식론으로 된다고 본다. 즉 사회적 노동을 통해 맑스가 정립한 유물론적 종합개념은 인류의 자기창조의 행위를 단지 노동으로만 한정시킴으로써 실증주의적 과학으로 변형되고 그럼으로써 인식의 자기반성을 위한 철학적 기반을 제시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맑스의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하버마스는 맑스이론에 내재해 있는 두가지 차원을 <범주적인 수준에서> 노동과 상호작용, 즉 '도구적 행위'와 '의사소통적 행위'로 구분한다. 외적 자연력으로부터의 해방은 노동과정 즉 기술적으로 유용한 지식의 산출 즉 도구적 행위인 노동에 의존하며, 내적자연(본성)의 강제로부터의 해방은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의사소통'영역의 확장에 따라 실현된다. 권력지배로부터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은 이데올로기 비판을 통한 자기반성(성찰)에서 가능하다.
하버마스는 헤겔에서의 반성경험을 토대로 맑스를 보충하기 위해 방법적 자기반성을 구체화하는 유일한 학문의 예로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을 끌어들인다. 정신분석의 과정은 의사와 환자사이의 일상언어적 차원에서 일어나는 자기반성의 과정인데 이때의 자기반성은 고독한 작업이 아니고 다른 사람과의 언어적 교제,상호주관성에 결합되어 있다. 환자는 자신의 고통과 억압에서 벗어나 건강한 삶을 회복하기를 원한다. 환자는 의사와의 대화를 통해 억압된 무의식을 인식함으로써 왜곡된 자아의 모습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올바른 자기인식에 도달함으로써, 억압에서 자유로와질 수 있다. 정신분석에서 의사와 환자의 치료적 대화에서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이 극복되어야 할 상황인 것처럼 사회의 경우에는 집합행동 및 전체사회 체제의 병리와 이데올로기적 왜곡으로부터 사회구성원들이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비판이론가의 역할은 사회구성원으로 하여금 자기성찰을 통해 사회적 세계에서 그들의 억압되고,왜곡된 상황을 이해하여 잘못된 의식에서 벗어나 해방되도록 도움을 주어야 한다. 이는 곧 이데올로기비판이며 이를 통해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의사소통'에 도달할 가능성이 주어진다. 이데올로기비판은 곧 자기성찰이며, 자기성찰과 자기형성(도야)과정을 통해 인간은 스스로 해방되고, 사회적 해방도 가능하게 된다. 이처럼 왜곡된 의사소통이 자유로운 대화로 되는 정신분석적 관계는 해방적 사회변혁의 모델이 된다. 결국 해방적 자아성찰 이론은 도구적 인식과 실천적 인식에서 결여되어 있는 반성적 인식을 되찾음로써 오늘날 과학주의의 지배에 따른 비인간화와 가치상대주의, 그리고 이와 관련된 허무적인 태도를 비판,극복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미 초기 논의에서 '의사소통행위'의 중요성이 제시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초기이론에서 여러 결점들이 지적되었고 하버마스는 해방적 사회론에 대한 일정한 수정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초기 통찰을 <보존>하면서 그 부적합성을 <수정>하고 탐구의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는 새로운 체계적인 종합으로의 발전이 시도된다. 이 발전과정은 주요 이론적 저작과 결부되는 다음 네 단계, (1) 의사소통능력의 이론, 체계적으로 왜곡된 의사소통과 '이상적 발화상황', (2) 토의(담화)이론과 진리합의이론, (3) 보편적 화용론과 사회진화론, (4) 의사소통행위와 합리성이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이는 {의사소통행위이론} 안에서 집대성된다.
3.2. 후기 하버마스
3.2.1 하버마스는 구비판이론의 약점을 "'규범적 기초'와 '진리개념과 과학들과의 관계' 그리고 '민주적-법치국가적 전통에 대한 과소평가'라는 세가지" 로 파악한다. 특히 세번째 문제와 관련하여 민주주의이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민주주의이론은 발전논리이론과 연관된다.법과 규약을 갖춘 부르조아체제, 일반적으로 부르조아 정치제도의 공식적인 형태는 전통적인 법제도 및 정치제도 속에 들어있는 도덕적 범주와 비교해서 .... 도덕적,실천적 문제에 대한 해답을 할 수 있는 능력에서 더 우월하다"
하버마스는 구비판이론은 이 점을 소홀히 함으로써 이론적 비관주의를 벗어날 수 없었으며 또한 마르크스이론에도 이러한 민주주의이론이 취약하다고 본다. "마르크스는 ...부르조아 법치국가에 대한 이데올로기비판을 하면서 법치주의 이념자체를 그리고 자연법의 토대를 사회학적으로 해체하면서 자연법의 의도자체를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영원히 불신의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으므로 그후 자연법과 혁명의 연관이 해체되었다."고 비판하면서 자연법 이념의 보편적, 민주주의적 측면을 강조한다. 하버마스는 구비판이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의사소통행위이론을 발전시켰다. 그는 {의사소통행위이론}을 쓰게된 네가지 중심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번째 동기는 합리성이론에 대한 탐구이다. 이는 새롭게 문제시되는 니체의 구호 안에서 상대주의가 모든 변형태로 우세한 힘을 행사하는 오늘날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두번째 동기는 시대에 적합한 의미를 갖는 사회이론을 위해 이해지향적 행위의 유용성을 해명하는데 도움이 될 논증이론이다.
"세번째 동기는 사회적 합리화 과정의 변증법이다. 그것은 이미 {계몽의 변증법}의 중심주제였지만 나는 우리가 의사소통이론적 개념들 속에서 사회병리적 현상들, 즉 마르크스주의적 전통에서 물화로서 파악되는 그러한 현상들에 대한 필요한 분석적인 세련된 틀을 갖는 '현(근)대에 대한 이론'(eine Theorie der Moderne)을 발전시킬 수 있음을 제시하려 했다. 이 목적을 위해 아마도 네번째 동기인 체계이론과 행위이론을 포괄하는 하나의 사회개념을 발전시켰다."
3.2.2. 초기에 혁명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구비판이론이 혁명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고 '도구적 이성비판'과 '부정변증법'에 이르러 이론적 비관주의에 빠지게 된 주요한 이론적 동인은 {계몽의 변증법}에 대한 통찰이었다. '계몽의 변증법'이라는 말은 신화(마술)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던 계몽이 다시 새로운 형태의 신화로 퇴보할 수 밖에 없는 자기파괴성의 계기가 바로 서구 계몽의 역사 속에 내재한다는 것이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베버의 사회적 합리화이론은 루카치에 의해 마르크스의 재구성과 연관된 물(상)화이론으로 변형되었고 물상화이론은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가 목적합리성을 도구적 합리성 개념으로 대체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었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특성 하에서 자연정복의 합리성은 계급지배의 비합리성과 합쳐진다고 본다. 그들은 이성이 목적합리성에 종속되고 현대과학은 실증주의로 전락했으며 도덕과 법의 영역에서 객관적 이성이 추방되고, 대중문화는 비판적 능력을 상실함으로써 도구적 이성은 계급지배를 옹호하는 권력수단으로 기능한다고 본다.
"{계몽의 변증법}은 베버가 합리화과정에 대해 가졌던 '양면적 입장'을 제거시키며 또 마르크스의 긍정적인 평가를 직선적으로 뒤집는다. 마르크스에게는 명백하게 해방의 잠재력이었던 과학과 기술 자체가 사회적 억압의 매체가 되고 있다."
과학과 기술이 도구적 '기술적 합리성'으로서 '총체화된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는 비관주의적 시대진단과 이성에 대한 회의 때문에 이들은 변혁에 대한 전망을 가질 수 없었다. 따라서 "체계합리화라는 물화된 힘에 의해 파악되지 않는 '자율성'을 현실적 사회적 세력에서 찾지 못하고 비합리적인 힘으로 국부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즉 카리스마적 지배, 예술과 사랑의 미메시스적 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들의 비관주의가 40년대 초의 암울한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지만 이러한 입장은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도 그리고 현실적 가능성에 의해서도 제대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구비판이론에서는 비판의 '규범적 기초'와 '현실적 실천적 힘'이 확보되기 어렵다.
3.2.3. 하버마스는 한편으로 역사적 과정 속에 실현되어 왔던 이성 즉 '역사 속에서의 이성'을 경험적으로 밝혀 해방적 가능성이 서양근대화 과정 속에서 점차적으로 실현되어왔음을 제시하고 동시에 의사소통자체 내에 해방적 가능성이 선험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재구성적 과학을 통해 밝힘으로써 구비판이론에 결여된 규범적 기초와 실천적 힘을 확보하려 한다. 하버마스는 후자의 작업을 일상적 의사소통행위 안에 해방된 삶의 정형('이상적 담화상황')이 구조적으로 내재해 있음을 밝히는 '보편적 화용론'에서 수행한다. 그리고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는 이전의 작업들을 기초로 '사회진화론'과 연결시켜 '합리성'이론과 '현대'의 문제를 다루면서 '역사 속에서의 이성의 흔적'을 찾는 역사적, 이론적 고찰을 더욱 포괄적으로 한다.
"만약에 우리가 상징적으로 나타나고 역사적 상황 속에 나타나는 이성의 현존하는 형태를-비록 그것이 단편적이고 왜곡되었을지라도-이미 갖고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해지향적 행위의 합리적인 내적구조를 확증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활세계의 '진보하는' 합리화의 경향을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로 본다. 근대사회가 전통사회와 구별되는 이러한 경향은 무엇보다 문화적 전승에 대한 반성, 가치와 규범의 일반화, 그리고 규범적으로 좁게 기술된 맥락으로부터 의사소통적 행위가 자유로와지는 것, 그리고 사회화유형의 확대, 추상적 자아동일성의 형성을 요구하는 것 등에 의해 지속적으로 확증된다." 즉 의사소통행위에 체현된 그리고 체현될 이성의 현실성과 가능성은 <선험적> 측면을 가짐과 동시에 세계사적 발전과정이라는 <경험적> 측면도 갖는다. 그러므로 "하버마스의 보편화용론이 그의 초기 비판이론에서 칸트적 요소를 재구성하고자 한 것이었다면 그의 사회진화이론은 헤겔-마르크스주의적 요소의 재구성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하버마스는 근대의 이론과 '합리성'이론의 재구성을 위해 우선 근대화과정에 대한 여러 이론가들의 입장을 검토한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사회의 합리화는 바로 생산력의 발전에서 즉 경험적 지식의 확대, 생산기술의 향상, 사회적으로 유용한 노동력이 점차 효율적으로 동원되고 자격을 갖추며 또 조직화되는 것에서 일어난다. 또 한편으로는 생산관계, 즉 사회적 권력의 분배를 표현하고 생산수단에의 차별적 접근을 규정하는 제도는 생산력의 합리화의 압력 하에서만 대변혁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막스 베버는 자본주의적 경제와 근대국가라는 제도적인 틀을 다른 방식으로 보고 있다. 물론 그는 관료제화가 사회적 관계의 물(상)화를 초래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왜냐하면 사회적 관계의 물상화는 합리적인 생활태도를 유발하는 동기를 질식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 그리고 후기 마르쿠제도 마르크스를 이러한 베버적인 시각에서 해석한다. 자율적이 되어버린 도구적 합리성이라는 특성 하에서 자연정복의 합리성은 계급지배의 비합리성과 합쳐진다. 해방된 생산력은 소외된 생산관계를 안정시킨다. {계몽의 변증법}은 베버가 합리화과정에 대해 가졌던 '양면적 입장'을 제거시키며 또 마르크스의 긍정적인 평가를 직선적으로 뒤집는다. 마르크스에게는 명백하게 해방의 잠재력이었던 과학과 기술 자체가 사회적 억압의 매체가 되고 있다"
하버마스는 베버가 합리화과정에 대해 가졌던 '양면적 입장'에 주목함으로써 "베버의 합리화 이론을 재구성하면 그것이 자본주의적 합리화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사회병리현상들을 설명하는데 유력한 접근방식" 을 제공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버마스는 베버의 이론을 현대사회이론의 출발점으로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근본문제,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일면적인 합리화의 과정으로 파악될 수 있는지 그리고 만일 그렇다면 어느정도로 그러한지" 라는 문제의 출발점으로 간주한다.
3.2.4. 베버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에로 이행하는 역사적 과정을 '합리화'라는 개념으로 파악한다.베버는 우선 "세계상의 합리화를 마술적 사유의 극복수준에서 측정한다." 이 과정은 과학과 기술의 발달, 학습과정과 예술의 발달로 나타나는 합리적 진보의 과정이다. 이러한 진보는 '신교윤리'의 출현과 과학과 종교,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들에로 분화 그리고 후기 관습적 근대적인 법의 출현이라는 세가지 상호연관된 발전을 통해 이루어진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이 과정을 통해 문화적인 전통영역은 인지적 이념, 규범적 이념, 미학적 이념으로 분화되어 독자성을 갖게 되고 이 세가지 영역에 상응하여 문화적 전통의 영역을 진리, 정당성, 진실성 중 어느 특정한 타당성의 측면에서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과학자 집단, 종교적 공동체, 예술가 단체들과 같은 문화적 행위체계의 제도화가 이루어 진다.
한편 베버는 '형식적 합리성'과 '실질적 합리성'의 구분을 통해 이러한 진보와 해방의 과정 즉 탈마술화 과정은 무가치하고 자기모순적인 그리고 상호적대적인 목적에 봉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본다. 즉 윤리와 문화의 합리화의 결과로 전통적인 가치통합의 상실, 정당성 위기, 생활양식의 양극화가 일어나며 사회합리화 즉 관료조직의 확대가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합리성을 증대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 목적합리적인 행위체계의 증대로 인한 인간의 예속과 인성의 분열을 가져왔다고 본다. 이러한 인성의 분열과 분리된 이성의 계기들 사이의 통일성 상실에 대한 베버의 통찰이 문화적인 빈곤, 정치체계의 정당성 위기, 무정신의 전문인과 무감성의 향락인이라는 양극화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기반이 된다. 베버는 문화적 합리화의 사회적 합리화로의 전환과정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위기현상을 '의미상실'과 '자유상실'로 진단했다.
"고유한 문화적 가치영역들의 분화와 함께 그들의 고유한 법칙성이 또한 명백해 진다. 이러한 상황은 베버가 생각했듯이 분열적인 결과를 갖는다. 한편으로 이를 통해 상징체계들의 합리화가 그때그때의 추상적인 가치척도(진리, 규범적 정당성, 아름다움 그리고 진실성처럼) 하에 비로소 가능하게 되고 다른 한편으로 그럼으로써 형이상학적-종교적 세계상의 의미형성적 통일성이 해체된다. 즉 독립적인 가치영역들 사이에 하나의 신적 또는 우주적 세계질서라는 고차적 관점하에서 더이상 조정될 수 없는 경쟁이 생겨난다." 베버의 근대화과정,합리화과정에 대한 하버마스의 해석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 생략)
베버의 관점은 A1 과 B2의 실선을 따른다. 즉 첫번째 국면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분석은 문화와 윤리의 영역에서 분화, 전개된 발전논리의 관점에서 파악되고 두번째 국면은 의미의 상실과 자유의 상실로 표현되는 합리화의 부정적인 측면인 '쇠우리'(ein stahlhartes Gehause,Iron Cage)로서 나타난다. 그런데 문제는 첫번째 국면에서 두번째 국면에로의 전환에서 경제와 국가에서 권력의 사회적, 구조적 제도화라는 관점으로 '일면적으로' 설명하는 설명틀의 모순과 비연속성이다. 하버마스는 이를 "문화적 합리화에서 사회적 합리화로 이행에서 베버의 합목적적 행위유형에 기초한 행위이론이 결과한 합리성개념의 협소화"로 즉 "총체화된 합목적성으로 축소된 합리화" 로 파악한다.
그는 베버의 불일치와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고 "지배와 해방의 연속성과 비연속성" 을 밝힘으로써 세계사적 과정으로서의 합리화의 전체적인 측면을 온전하게 파악하여 그 보편적 의미를 제시하기 위해 A1, B2의 과정과 함께 점선 B1, A2의 과정을 보충하고 확장한다. 특히 B1의 과정에서 무시되었지만 중요한 '법의 발전'을 강조한다. 이러한 재구성을 통해 A2에서 지속되지만 베버와 "베버주의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무시되었던 과정을 밝혀낸다. 그리고 문화와 이념, 윤리의 근대성과 권력과 경제적 이해관계가 표현되는 구조의 근대성 사이의 '변증법' 즉 A와 B라는 두 길을 따라 전개된 문화와 구조의 변증법 또는 관념적 관심과 물질적 관심과의 변증법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르크스와 베버는 본질적으로 상호보완적이라는 하버마스의 견해를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버마스는 "베버의 합리화 이론은 한편으로는 종교적 세계상의 구조변화와 분화되어진 가치영역들 즉 과학, 도덕, 예술의 인식적 가능성(세계상의 합리화, 문화의 합리화)을 가져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적 근대화(사회적 합리화)의 선택적 유형을 가져왔다."고 보면서 생활양식이 다양하게 분리되는 것 그리고 합리화가 법, 교육, 및 인지발달 등의 영역에 확대되는 것을 사회진화론적 발달로 본다. 베버는 목적합리성 모델에 집착하여 '도구적 이성의 비판'을 '기능주의적 이성'의 한 비판으로 확장하지 못했다. 기능주의적 이성 비판은 합리화 과정의 양면성을 제시한다.이 양면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동의와 합의를 지향하는 상호작용인 '의사소통행위'를 도구적, 전략적 행위와 구분해야 하며 의사소통적 행위와 연관된 합리화 과정과 합목적적 경제행위-행정행위라는 하부체계의 발생과정이 분석적으로 명백히 분리되어야 한다. 즉 "역사적으로 서로 의존하고 있지만 범주적으로 구별되는 가능한 합리화의 두과정들을 구별해야만 한다." 여기서 의사소통적 행위와 연관된 합리화 과정은 의사소통능력의 발달과 규범구조의 발달로 나타난다.
3.2.5. 하버마스는 미드에서 사회적 행위이론을 의사소통적 행위이론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요소를 발견하고, 뒤르껭, 파슨즈를 통해 사회통합과 체계통합을 결합시키는 이론의 특징을 발견한다. 특히 베버의 재해석을 통해 사회적 합리화의 부정적인 측면과 함께 과학과 도덕, 예술이라는 가치영역들의 분화인 문화적 합리화 이론이 이성의 세가지 계기-인지적, 규범적, 표현적 계기-로의 분화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을 밝히고 이를 자신의 의사소통이론과 연결시키면서 세가지 타당성 주장들의 분리와 이에 상응하는 논증형태들의 생성을 밝혀낸다. 하버마스에 의하면 의사소통합리성이 사회에 실현될 때, 즉 의사소통행위에 내포된 타당성 주장의 합리성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때 생활세계의 합리화가 진행된다. 생활세계의 합리화 과정을 진보적으로 보면서 동시에 위기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는 하버마스의 입장은 생활세계와 체계를 나누는 그의 사회이론적 전략에서 잘 나타난다.
그는 의사소통행위 개념의 필연적인 보충으로 생활세계 개념을 도입하면서 합리화과정을 파악하기 위해 체계-생활세계라는 2단계 사회개념을 제시한다. 2단계 사회모델은 합리화 논리를 2가지 수준에서의 분화이론으로 해석한다. 첫째 수준에서의 분화는 조정매체(화폐,권력)의 제도화를 통하여 가능하게 된 생활세계와 체계의 분리를 의미하며, 둘째 수준에서의 분화는 생활세계와 체계 각각의 차원 내에서의 분화를 의미한다. 생활세계에서는 합리화의 결과 구조적 요소들의 분화가 진행되며 체계의 수준에서는 체계의 기능적 분화결과 체계복잡성이 증대한다.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변화는 점진적 분화와 합리화 과정으로 이는 사회체계가 더욱 분화되고 복잡해짐과 동시에 생활세계의 합리화의 증진을 의미한다. "생활세계의 합리화 특히 법과 도덕의 합리화는 합목적적인 경제적 행정적 행위의 형식적으로 조직된 하부체계의 통합 즉 체계통합의 새로운 메카니즘이 제도화되기 위한 하나의 필수조건이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증대를 뜻하는 이러한 생활세계의 합리화는 근대화의 밝은 측면이지만 동시에 어두운 측면도 나타난다. "합리화된 생활세계는 경제나 행정과 같은 형식적으로 조직된 행위영역에 의해 분리되어 이에 종속되었다. 체계요구를 통한 생활세계의 병합으로 소급되어지는 이러한 종속은 물질적 재생산에서의 위험한 불균형이 피해지는 정도로 '내적 식민지화'라는 병리적 형태를 취하게 된다." 즉 자본주의적 근대화라는 체계요구의 '선택적' 압력 속에서 자본주의적 경제와 근대적 관리국가의 확장은 사실상 일면적이고 왜곡된 그리고 위기를 내포한 사회적 합리화 즉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가져왔다. 정치적 수준에서 볼 때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는 체계복합성의 증대에 따른 국가관료제의 비대화와 자발적인 의사결정과정과 여론형성을 고갈시키는 정치적 공론의 비판적인 잠재력의 약화로 나타난다.
그러나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라는 사회병리적 현상은 동시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다양한 요구에 부딪친다. "이성의 다양한 측면의 지속적인 발전과 균형적인 제도화는 생활세계의 탈식민지화를 요구한다." 포괄적 이성의 발전과 균형적인 제도화는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그리고 목표된 동의가 토론에 의해 결정되는 공론영역을 보장한다. 따라서 이 '공론영역'은 '의사소통적 합리성', '의사소통적 이성'의 개념과 함께 하버마스 사상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입지점은 이성비판을 통한 이성의 회복으로서 계몽주의의 전통에 일치하는 것이다.
3.2.6. 하버마스는 언어철학과 사회학적 성과 등을 수용하여 의식철학으로부터 의사소통행위이론으로 전환함으로써 근대의 기획이 한편으로 과학적-기술적 합리성에 의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와 전문가들의 문화에 의한 일상적 삶의 지배를 가져왔지만, 다른 한편으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역사적 흔적과 현존하는 형태들(사회진화론)과 "의사소통적 일상적 실천에 내재하는 합리성"(재구성적 과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근대의 미완의 기획이 "보다 합리적인 사회를 가능하게 할 해방적 학습과정의 제도화"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방안을 '의사소통적 합리성''포괄적 이성'의 개념으로 제시한다. 그러므로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가장 핵심적 개념이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인식적 -도구적 합리성 측면', '도덕적-실천적 합리성 측면', '미학적-표현적 합리성 측면'을 다 포함하는 포괄적인 합리성과 같은 개념이다. 따라서 '인식적-도구적 합리성'과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을 대립시키는 것은 잘못으로 이는 "인식적-도구적 이성계기를 포괄적인 이성개념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잘못된 시도의 결과다."
그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으로 인지적, 규범적, 표현적 측면의 통일 위에 확보된 합의이념을 지칭하면서도, 인지적, 규범적, 표현적 이성의 계기들 간의 통일성을 '실체적 이성'에 기초하려는 것이 아니라 논증들의 '형식적, 과정적 통일성'에서 근거지우려 하므로, '규범적', '후기형이상학적', '복수적(plural)', '비통합적'이면서 또한 '비분리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이처럼 절차적 개념으로서, 형식적으로 이해할 때, 의사소통의 보편적 특성을 경험적, 재구성적인 검증과 반박에 개방되어 있는 구조와 발전이라는 보편적 성격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버마스는 의사소통적 합리성 이론을 통해 다음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다. "첫째, 마르크스에 반대해서 보편주의적 도덕성과 보편주의 법의 부르조아적 형태가 단순히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 아니라 그것들이 자본주의의 출현과 생성론적으로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것, 따라서 과학기술 영역에서의 학습과정과 범주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불가역적인 집합적 학습과정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는 것. 둘째 베버에 반대해서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특수하게 근대적인 개념을 낳는 이러한 보편주의적 도덕과 법개념의 출현은 형식적 관료주의적 합리화라는 의미에서의 합리화와 범주적으로 구분되어야 할 합리화과정의 한 유형을 대변해준다. 세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에 반대하여 사회구성원의 자유로운 합의에 기초할 사회의 합리적 조직화라는 이념이 -그 형태가 왜곡되어 있을지라도-이미 근대산업사회의 민주적 제도들, 정당성 원리와 자기해석에 구현되어있고 인식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바로 이때문에 근대사회에 대한 비판적 분석은 그의 분석대상과 공통적인 규범적 토대를 가질 수 있고 <내재적> 비판의 형태를 가정할 수 있다."
하버마스에서 의사소통적 합리성 개념은 "이론적 목표와 실천적 목표를 갖는다. 이론적으로는 그것은 비판적 사회탐구를 위한 해석적 틀 안에서 근본개념으로서 기여한다. 즉 개인적,사회적 발전에 대한 그의 이론의 전체 건축은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세워져 있다. 실천적으로는 그것은 현대의 사회병리를 진단하는 열쇠를 제공하고 이러한 병에 대해 제시된 처방들을 분류하는 한 방법을 제공해 준다."
그는 근대 서구적 이성의 일면적, 억압적인 성격을 비판하면서 의사소통행위이론을 통해 포괄적인 이성의 기획을 발전시켜 문화적 전문화에 의해 '일상적 실천' 속에서 위축되고 잠재화된 이성의 통합적 기능을 활성화시키려 하므로 과학과 도덕,예술의 관계 그리고 도덕과 법의 관계, 토의윤리, '시민사회'와 '공론영역',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3.2.7. {의사소통행위이론}에서 생활세계의 식민지화를 통해 제시되었던 현대사회의 병리적 현상들은 생활세계 내에서의 저항에 기초한 민주적 의지형성의 사회적 제도화를 통해, 즉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영역이 활성화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사실성과 타당성}에서 하버마스는 의사소통행위이론에 기초하여 법과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 대한 토의이론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이론, 권력과 사회적 제도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여기서는 특히 법의 <양면성> 즉 "사실성과 타당성의 사회적 매개범주로서의 법"을 해명한다. 그는 규범적 차원을 배제하는 경험적 사회학적 법이론들과 사회적 현실과의 관계를 놓치기 쉬운 철학적 정의이론들과의 대립적 관계를 넘어서서 이 두요소들이 결합되는 지점을 토의윤리에 기초한 절차적 민주주의 이론에서 찾는다. 그리고 이와 연관해서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영역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시민사회의 행위자들, 여론, 의사소통적 권력이론의 관계를 해명한다. 그는 자신들의 이익에 충실한 다양한 '사회적 권력들'이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공론영역을 통해 '의사소통적 권력'으로 매개되어 법제화됨으로써 '행정적 권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즉 민주주의적 법치국가에서는 '토의정치'의 절차가 민주적 과정의 핵심을 이루며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의사소통적 권력으로 형성되는 공론이 '행정적 권력'의 사용을 일정한 방향으로 조정하면서 체계(경제와 행정체계)의 영역을 제한하고 생활세계의 영향력을 확산시켜 나간다. 이러한 영향력은 법치국가적으로 제도화된 의사형성과 문화적으로 동원된 시민사회의 연대에 기초를 갖는 공론영역 간의 상호작용에서 생겨난다. 의사소통적 주권 개념은 이러한 민주적 절차에 기초한다.
절차적 민주주의 이론과 토의적 법치국가론에서 중요시되는 것은 자연법적 기본권의 확대이며 이는 생활세계의 차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생활세계의 재생산은 문화적 전승, 사회적 통합, 사회화라는 의사소통적 과정을 포함하며 이러한 재생산은 전통의 보존과 혁신, 사회적 통합, 사회화를 과제로 하는 제도들을 요구한다. "하버마스의 논의에 기초해서 생활세계에 근거하는 "기본권의 3가지 복합체를 구분할 수 있다. 문화적 재생산에 대한 기본권들(사상, 출판, 언론, 의사소통의 자유), 사회적 통합을 촉진하는 기본권들(결사, 집회의 자유) 인성의 형성에 필요한 기본권(프라이버시의 보호, 친밀성, 인격의 불가침 등의 기본권 복합체)들은 시민사회와 자본주의적 경제를 매개하는 기본권들(재산권, 계약권, 노동권)이나 시민사회와 근대 관료주의국가를 매개하는 기본권들(시민의 투표권, 고객의 복지권)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기본권들을 확립하고 실현하는 기획은 시민사회의 정치에 참여한 집합적 행위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들 중의 하나다. 하버마스는 시민사회와 정치적 공론의 역할을 중시하는데 그에게 있어 시민사회는 "사회적인 문제상황들이 사적인 생활영역들에서 일으키는 반향을 수용하고 응축하며 소리를 키워서 정치적 공론으로 넘기는 다소간 자발적으로 생겨난 연합체나 조직, 운동 등"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시민사회 개념에 가장 적합하게 보이는 것은 생활세계의 상징적 -언어적 차원과 구분되는 제도적 영역이다."
4. 맺는 말
하버마스는 "인간 스스로에게 책임이 있는 미성숙과 비참한 삶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인간해방에 대한 희망은 아직 그 힘을 상실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하버마스는 서구의 다양한 사회운동 들의 분석을 통해 해방의 잠재력과 저항의 잠재력,퇴각의 잠재력을 구별하면서 여성운동 만이 가부장적 억압에 항거하는 투쟁과 도덕과 법률의 보편주의적 기본원리에 기반을 갖고 있는 부르조아적, 사회주의적 해방운동의 전통 속에 서 있는 공격적인 운동으로 파악한다. 저항운동과 퇴각운동은 의사소통의 구조를 갖는 행위영역을 지키기 위한 방어적 운동의 성격을 갖는다.
이론적으로 하버마스의 연구는 포스트모더니즘이나 신실용주의류의 상대주의(로티)와 전통 형이상학적 입장(헨리히)을 옹호하는 근본(절대)주의에 대해 반대한다. 또 정치적으로 그의 연구는 정통맑스주의,신보수주의 및 신급진주의 모두를 거부한다. 하버마스 연구의 이론적 강점은 여러 입장의 역량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서로 섞일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상대주의와 절대주의의 대안들을 접합하고자 시도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그의 이론적, 정치적 강점은 동시에 약점이기도 하므로 많은 비판가들에 의해 비판을 받는다. 그는 항상 자신에 대한 비판을 '논쟁을 진전시키는 협동적 노력'으로 수용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다양한 측면에서 관철시키고 있다.
하버마스는 스스로 "나는 하나의 관점으로부터 세계를 설명하는 전통적인 '철학자'의 모습에 맞지 않는다."고 말한다.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하버마스의 입장은 자신의 말처럼 하나의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는 측면이 많은 것 같다.
여러 복잡한 사상들을 쉽게 도식화해서 평가하는 우리의 지적풍토와 관련해서 하나의 인용으로 끝마치겠다.
"대사상가의 저작의 결점과 오류를 지적하기가 그것의 가치를 분명하고 충실하게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쉽다."(쇼펜하우어 {칸트철학의 비판},S.Korner, Kant,1955,서두에서 재인용)
박영신(1987) [하버마스와 의사소통행위의 사회학]{현상과 인식}제11권 2호,1987,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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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철학과 졸업,동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독일 콘스탄쯔 대 수학,1995.8
[하버마스에서 해방의 문제]로 서울대에서 박사학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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