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의 힘
-정용하
안면도에 가면
바람아래라는 해수욕장이 있다
그곳에 가면 바다도 편안한 잠을 잔다
바람은 소리로 와서 빛으로 머물고
오후가 되어도 깨어날 것 같지 않은 낡은 어선,
잔잔한 무료 위에 정박해 있다
눈 감고 있는 바위 틈 속에는
오래된 침묵이 묻어 있다
바람이 꺼내놓은 겨울이 파도 위에서 펄럭인다
아무리 불러내어도 바다에서 나올 것 같지 않은 등대
언어와 마음 사이에서 파도는 자꾸만 바다를 일으켜 세운다
잊혀지지 않으려는 저 바깥의 힘
그 앞에서 나는 잠시 아득해져도 좋다
섬은 닿기 전까지만 섬이다
나를 떠났던 계절을 찾아 바람아래 가면
금방이라도 손에 닿을 듯한 이름 하나가 있다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입김/박용하 (0) | 2020.10.23 |
---|---|
우리가 아직 물방울 속에서 살던 때/박형준 (0) | 2020.10.23 |
바다의 미풍 / 말라르메 (0) | 2020.10.13 |
그리고 미소를/폴 엘뤼아르 (0) | 2020.10.13 |
생의 감각/김광섭 (0) | 2020.10.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