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애인
-신달자
나에겐 백치 애인이 있다
그 바보의 됨됨이가 얼마나
나를 슬프게 하는지 모른다
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하는 지를
그리워 하는 지를 그는 모른다
별 볼일 없이 우연히
정말이지 우연히 저를 만나게 될까 봐서
길거리의 한 모퉁이를
지켜서 있는 지를 그는 모른다
제 단골 다방에서 다방문이 열릴 때마다
불길 같은 애수의 눈을
쏟고 있는 지를 그는 모른다
길거리에서 백화점에서
또는 버스 속에서 시장에서
행여 어떤 곳에도
네가 나타 날 수 있으리 라는 착각에
긴장된 얼굴을 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이 안타까움을 그는 모른다
밤이면 밤마다
네게 줄 편지를 쓰고 또 쓰면서
결코 부치지 못하는
이 어리석음을 그는 모른다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그는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장님이며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귀머거리 이며
내게 한 마디 말도 해 오지 않으니
그는 벙어리이다
바보 애인아
너는 나를 떠난
그 어디서나 총명하고 과감 하면서
내게 와서 너는백치가 되고 바보가 되는가
그러나 나는 백치인
너를 사랑하며 바보인 너를 좋아한다
우리가 불로 만나 타 오를 수 없고
물로 만나 합쳐 흐를 수 없을 때
너는 차라리 백치임이 다행 이었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알 것이다
바보 애인아
너는 그 허허로은 결과를 알고
먼저 네 마음을 돌처럼 굳혔는가
그 돌같은 침묵 속으로
네 감정을 가두어 두면서
스스로 너는 백치가 되어서
사랑을 영원하게 하는가
바보 애인아
세상은 날로 적막하여
제 얼굴을 드러 내는 것이
큰 과업처럼 야단스럽고
또한 그 처럼도 못하는 자는
절로 바보가 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그래 바보가 되자
바보인 너를 내가 사랑하고
백치인 네 영혼에 나를 묻으리라
바보 애인아 거듭 부르는 나의 백치 애인아
잠에 빠지고 그 마지막 순간에
너를 부르며 잠에서 깬
그 첫 여명의 밝음을 비벼집고
너의 환상을 쫓는 것을 너는 모른다
너는 너무 모른다
정말이지 너는 바보 백치인가
그대 백치이다 우리는 바보가 되자
이 세상에 아주 제일 가는
바보가 되어서 모르는 척하며 살자
기억속의 사람은 되지 말며
잊혀진 사람도 되지 말며
이렇게 모르는 척 살아 가자
우리가 언제 악수를 나누었으며
우리가 언제 마주앉아 차를 마셨던가
길을 걷다가 어깨를 부딪고
지나가는 아무 상관 없는 그런 관계에선
우리에게 결코 이별은 오지 않을 것이다
너는 나의 애인이다 백치 애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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