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왼손에 대한 데생/강인한

나뭇잎숨결 2020. 9. 18. 21:15

왼손에 대한 데생/강인한


 

초승달이 떠있다.

달은 내가 끄는 카트 속에서 출렁거린다.

누구는 스푼으로 커피를 저으며 인생을,

 

나는 월요일 밤 쓰레기를 분류하며 세월을 느낀다.

 

해묵은 개인적 감정을 버린다.

중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연필로 그린 내 왼손을

버린다. 오래 망설이다가

가라, 돌아오지 마라.

더러운 애착처럼 멀리 내던진다.

 

오래된 스크랩과

대학 시절 습작노트,

백과사전보다 두터운 총동창회 명부,

유치한 일기장, 눈 시린 추억들은

손잡이 헐거운 부재의 서랍으로 옮긴다.

 

초승달을 버리고 다음 주엔

보름으로 가는 달을 박스째 출렁출렁

기억의 서랍에서 망각의 서랍으로 옮겨야 한다.

 

한때는 기쁨으로 빛나던 나를

망각의 강에 내다버린 젊은 연인이여,

놀라지 마라.

두근대는 당신 가슴을 점자처럼 더듬는 건

스케치북을 찢고 뛰쳐나온 내 소년의 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