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고형렬, 유리체를 통과하다

나뭇잎숨결 2020. 9. 16. 12:46

 

 

유리체를 통과하다

 

 

 

- 고형렬


 

눈 밖에 나 있는 존재들

직접 들어올 수 없지만 직립의 낯선 빛은

무한의 깊이로 창을 통과한다

선 채 밑바닥 없이 붙어 염파를 뒤흔든다

빛의 얼굴 밑으로 나는 나를 집어넣으려 한다

조용히 착상하는 피안의 그림자 정원

상공을 건너와, 평면이 되는 빛 바닥

먼지처럼 한번 슥, 얼굴을 쓰다듬지만 손바닥으로

너는 즉시 나의 손등을 비춘다

어떤 간절한 마음도, 앞서 가는 광속의 예언도

너의 빛 위에 놓을 수가 없다

너는 이렇게, 직접 들어오지 않는다

다시 유리체를 통과하고 내 의식체를 비춘 뒤

되돌아 나오는 빛 다발이 수없이 거쳐 가도

우리는 서로 다치지 않는다

나는 이미 너의 오랜 영혼에 매료되었고

창밖에 와 혼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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