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여, 라는 말/ 나희덕

나뭇잎숨결 2020. 9. 16. 12:44

여, 라는 말/ 나희덕

 

잊혀진 것들은 모두 여가 되었다 /망각의 물결 속으로 잠겼다가 /스르르 다시 드러나는 바위, 사람들은/그것을 섬이라도고 부를 수 없어 여라 불렀다 /울여, 새여, 대천어멈여, 시린여, 검은여.... /이 이름들에는 여를 오래 휘돌며 지나간/파도의 울음 같은 게 스며 있다 /영영 물에 잠겨 버렸을지도 모를 기억을/ 햇빛에 널어 말리는 동안/ 사람들은 그 얼굴에 이름을 붙여주려 하지만 /그러기 전에 사라져 버리는 여도 있다/ 썰물때가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그 바위를 향해서도 여, 라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 여가 드러난 것은/ 썰물때가 되어서만은 아니다 /며칠 전부터 물에 잠긴 여 주변을 낮게 맴돌며/ 끊임없이 날개를 퍼덕이던 새들 때문이다 /그 젖은 날게에서도 여, 라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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