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칸트의 '사이성'의 철학과 주체

나뭇잎숨결 2024. 12. 31. 23:22

칸트의 '사이성'의 철학과 주체

 

김 석 수(경북대)


1. 들어가는 말

오늘의 시대는 주체의 수난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주체의 권력 구조에 대해 전면적인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이렇게 주체가 비판을 받는다는 것은 주체와 힘의 결탁이 빚어내는 부당한 지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당한 지배를 벗어나기 위해서 주체의 탄생 역사를 되돌아보지도 않고 서둘러 주체를 사형 선고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부당한 주체를 탄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선고를 내리는 판결자는 피고의 운명에 대해서 좀 더 거리를 두고 신중하게 임하는 태도가 요구된다.


힘을 가진 주체가 등장하였을 때는 그만한 사연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사연을 주체라는 개념의 어원적 고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원래 주체라는 개념은 그리스어 히포케이메논( )에서 연유한 것으로, 이것은 '아래에 놓여 있는 것', 즉 속성의 담지자, 논리적 주어, 학문적 탐구의 주제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래서 이 말은 우연자에 반대되는 우시아( )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즉 이 말은 객관적 속성들의 근저에 놓인 것이나 술어들의 토대가 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와 같은 경향은 중세를 거쳐 근대의 데카르트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고대의 히포케이메논을 이어받은 중세의 수브옉툼(subjectum)에는 실체(substantia)라는 의미가 들어 있지만, 절대적인 존재이며 자존적 존재인 신과 같은 실체로서의 의미는 들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중세에는 자신의 존재와 본질에서 다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다는 '실체'와 다른 어떤 것에 의존하는 '수브옉툼'이 구별되었다. 후자는 의존자라면, 전자는 자존자이다.


그러나 근대로 넘어 오면서 점차적으로 주체로서의 이 '수브옉툼'은 생각과 지각의 근저에 놓인 것, 즉 의식의 사유활동의 근저에 놓여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데카르트와 버클리의 'cogito ergo sum'과 'esse est percipi'는 이와 같은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존재는 이미 사유와 지각의 주체로부터 규정받아야 한다. 주체 그 자체가 존재를 규정하는 주인의 자리를 확립하게 된다. 이제 근대 주체성의 철학은 존재를 앞에 세워놓고 닦달하고 문초하는 '표상'(Vorstellung)의 철학을 전개한다.


그러면 왜 이와 같은 주체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그것은 주체의 자기 자유의 확립 과정과 직결되어 있다. 인간은 홀로 외딴섬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항시 타자와 일정한 관계 속에 살아간다. 그러나 주체로서의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는 자신을 타자 속에 맡겨 살아가는 방식과 타자를 자신 속으로 가져와서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자신과 타자가 서로 주체적으로 드나들며 살아가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근대 이전의 신화적 시대에서부터 종교적 시대에까지 확립된 인간의 삶의 방식은 타자로서의 존재에 자신을 안기게 함으로써, 즉 거기에 예속되게 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 시대의 인간의 이성은 존재에서 본질을 찾아내고 거기에로 나아가는 발견적, 지향적 기능이 중시되었다. 플라톤의 상기설, 아리스토텔레스의 추상설, 중세의 조명설 등 이 모든 것이 이런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인간 주체는 절대적 주체이자 실체인 존재에 의존되어 있었다. 나는 나를 통해서가 아니라 타자를 통해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삶의 형태는 주체 자신의 자기 자유가 타자 속에 예속되는 아픔을 감당해야만 했다. 이미 근대인은 주체가 다가가 안기려고 하는 타자가 주체의 자기 자유를 확보해주는 터전이 아니라 오히려 구속의 자리임을 목격하였다. 그래서 근대인은 주체 자신의 사유 활동과 지각 활동을 통하여 신화의 늪을 빠져 나와, 계몽의 모토 아래 해방의 탈출구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제 이성은 존재를 닮고 신뢰하는 관점에서 벗어나서 그를 의심하고 문초하여 자신에게 확실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근대인은 '회의적 방법'을 통하여 주체의 자기 자리를 명확히 마련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수브옉툼'은 의존성에서 자존성으로 자리를 바꾸어 안게 되었다.


이제 '자료에서 얻은 인식'(cogito ex datis)이나 '원리에서 얻은 인식'(cogito ex principis)을 통하여 주체는 자신의 존재를 보증하고자 한다. 이렇게 근대인들이 계몽의 모토 아래 전개시킨 주체의 활동은 헤겔에 이르러서 그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주체가 함부로 할 수 없는 타자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헤겔에 이르러 실체가 주체가 되고 주체가 실체가 되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 것이 되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존재의 논리와 주체 자신의 논리가, 즉 형이상학과 논리학이 하나를 이루게 된다.
그러나 주체의 이러한 절대화 과정은 또 다시 하나의 신화를 잉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아도르노의 주장처럼 계몽은 이미 신화를 기약하고 있었다. 주체의 자기 절대화는 자기 속에 자기를 구속시키는 자기 역설이 자리하고 있다. 타자의 실체화든, 주체의 실체화든 실체화의 작업 속에는 이미 지배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실체성의 철학에 도전하는 반실체성, 반주체성의 철학이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칸트의 철학도 이런 비판을 함께 받아야 하는지는 재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철학은 실체를 주체화하고 주체를 실체화하는 데 경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철학 안에는 전통성과 근대성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즉 주체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 타자의 영역과 주체가 당당히 권리를 가지고 임할 수 있는 자신의 영역이 양립하고 있다. 그의 비판 정신과 계몽 정신 안에는 이와 같은 두 측면이 중요한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다.
그는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이성과 관련하여 "이성은 자신이 거부할 수도 없고, 대답할 수도 없는 문제로 괴로워하는 운명에 처해 있다"라고 주장하면서 지금이야말로 비판의 시대이며, 모든 것은 비판에 붙여져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비판은 "이성의 제한(Schranken)이 아니라 이성의 명확한 한계(Grenzen)"를 정하는 것이며, 이성의 오만함과 무력감, 독단주의와 회의주의를 넘어서 이성의 정당한 자격을 확립하는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태도는 그의 계몽 정신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너희들이 하고자 하는 일에 관해서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따져 보라. 그러나 복종하라"라고 적고 있다. 이 말은 주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할 수 없는 것은 해서는 안 됨을 의미한다. 칸트의 주체는 현상계와 예지계, 행복과 의무, 쾌와 미, 자연과 자유, 앎과 믿음 사이에 위치하는 주체로서 '사이성'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이성'으로서의 그의 철학은 우리의 문화에 주요 토대를 이루고 있는 과학, 도덕, 예술, 종교 사이에 서로 경계를 넘어설 수 없는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조화를 모색하고 있다. 그의 '사이성'으로서의 주체는 과학적 주체, 도덕적 주체, 예술적 주체, 종교적 주체 중 그 어느 하나가 전체주의적 테러를 자행하는 것을 허용치 않는다.


이 글은 칸트의 이와 같은 면을 그의 원전을 따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그의 철학이 오늘의 상황에서 지니는 의의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2. 이론 이성과 주체

칸트는 인간을 주어진(gegeben) 세계와 부과된(aufgegeben) 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자로 보았다. 그러므로 칸트는 존재를 당위에, 당위를 존재에 일방적으로 통합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그리고 그는 사실로서 주어진 존재의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과 당위로서 부과된 가치의 세계에 접근하는 방식을 구별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전자의 세계에 관여하는 주체로서의 이론 이성과 후자의 세계에 관여하는 주체로서의 실천 이성을 구별하였다. 물론 칸트는 이런 구별을 실천이성의 우위 차원에서 하나의 이성으로 고양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우선 여기서는 주어진 세계와 관계하는 이론 이성으로서의 주체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칸트는 이론적 인식 활동에 참여하는 주체를 감성, 지성, 이성과 관련하여 분석하고 있다. 그는 기존의 인식 방식에 대하여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을 시도하였다. 그는 근대 정신을 계승하여 인식 주체가 대상에 따르는 방식이 아니라 대상이 인식 주체에 따르게 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쪽에는 원리를, 다른 한쪽에는 실험을 가지고서 자연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을 그냥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법관처럼 자연을 문책하는' 방식을 취하였다. 따라서 그에 의하면 "우리 자신이 사물 안에 집어넣은 것만을 우리는 그 사물에 관해서 선험적으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지성 자신은 자연에 대한 입법자로서 지성이 없으면 어디에도 자연은 없다.


이처럼 칸트는 존재에서 본질을 발견해내는 추상설의 방식을 거부하고, 존재에 질서를 규정하는 구성설의 관점을 취하였다. 바로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칸트는 주체를 통해서 존재를 규정하는 근대적 주체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는 지성의 '자발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주체의 자립성과 자율성의 영역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칸트는 이 '자발성'에 기존의 독단론자들처럼 지적 직관을 인정하는 정도의 '자발성'을 부여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즉 그는 지성의 '자발성'이 반드시 감성의 '수용성'을 통해서 제 기능을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지성과 감성 사이에 우열이 있을 수 없음을 강조하면서, "감성이 없으면 대상이 주어지지 않을 것이고, 지성이 없으면 대상이 전혀 생각될 수 없다"라고 주장하였다. 칸트의 이와 같은 주장에는 지성을 감성에 통합시키거나 감성을 지성에 통합시킴으로써, 주체가 타자에 귀속되거나 타자가 주체에 귀속되는 독단화를 막고자 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 감성과 지성의 대등한 협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그의 주체는 감성 자체가 지니고 있는 타자 의존성을 수용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유 주체인 지성의 자기 활동은 감성이 가져다주는 현상 영역 내에 머물러 있게 되며, 주체가 잡아 쥐는(greifen) 개념(Begriff)의 그물망에 모두 가둘 수 없는 타자의 영역으로서 물 자체를 인정하게 된다. 물 자체는 주체가 잡아 쥘 수 없는 한계개념(Grenzbegriff)으로 자리하고 있다.


칸트의 이와 같은 태도는 이성이 추리를 통하여 나아가는 이념과 관련해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 감성이 직관하는 능력이고, 지성이 판단하는 능력이라면, 이성은 추리하는 능력이다. 즉 감성이 바깥으로부터 내용을 수용하고 지성이 그것을 분류 정리하면, 이성은 그것들로 성립된 판단들 사이를 추리하여 통일을 마련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성은 생각하는 주체의 절대적 통일로서의 자아라는 이념과 현상 제약들의 계열의 절대적 통일로서의 세계라는 이념 및 사고 일반의 모든 대상들의 제약들의 절대적 통일로서의 신이라는 이념을 추구한다. 이 이념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우리의 인식을 확장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칸트에 의하면 이 이념은 규제적 기능을 담당하지 구성적 기능을 할 수 없다. 그는 지성이 내재적 원칙을 넘어 초재적 원칙으로 나아가는 것을 금하듯이, 이념이 현실화 될 수 있는 이성의 기능을 허용하지 않았다. 지성이 감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듯이, 이성은 지성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즉 이성이 바로 감성과 결합할 수 없다. 칸트의 이와 같은 태도에도 이성의 독재를 막기 위한 주체의 겸손이 반영되어 있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인식이 직관에서 출발하여 개념으로 나아가 이념에서 끝맺지만, 감성과 지성 그리고 이성이 제각기 홀로 인식을 수태할 수는 없다.


이상에서 보듯이 칸트는 이미 주체 안에 삼권분립을 마련하고 있다. 이미 그는 주체의 독재 가능성에 대한 제동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의 이와 같은 작업은 과학론과 도덕론이 각기 그 고유한 자율성을 지니고 유지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거기에는 과학적 주체가 도덕적 주체를 지배하거나 도덕적 주체가 과학적 주체를 지배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그는 주체를 과학적 주체로 실체화시키지도 않고, 도덕적 주체로 실체화시키지도 않는다. 존재에 대한 모든 인식의 가능성의 근거로서 요청되는 '초월적 통각'(transzendentale Apperzeption)은 내용을 담지 하고 있는 실체로서보다는 '순수통각', '근원적 통각'으로서 형식적이고 논리적인 주체가 된다. 그 주체는 결국 알 수 없는 X로서 '초월적 주체'이며 실체화되지 않는다. 주체의 실체화에 대한 거부는 곧 주체의 절대화에 대한 경계를 의미한다. 칸트에게서 주체는 질료 자체를 만들어내는 '세계 창조자'가 아니라 형식을 부여하는 '세계 건축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칸트의 지성적 주체는 현상적 존재의 차원에서 타자의 존재의 근거가 된다. 따라서 주체가 실체가 되고 실체가 주체가 되는 것도, 존재가 사유가 되고 사유가 존재가 되는 것도 현상 영역 내에서만 성립된다. 적어도 이 영역 안에서는 과학적 주체가 자신의 자율권을 탄탄하게 마련하게 된다.


한편 칸트가 이론적 이성으로서의 주체에 이와 같이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결국 과학적 주체가 도덕적 주체를 지배하는 상황을 차단하고자 하는 목적도 담고 있다. 그는 벤담처럼 수학의 양화 논리가 윤리학의 영역을 지배하는 상태가 발생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즉 그는 이성이 도구화되거나 일차원화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는 우리 주체의 인식 능력에 한계를 설정함으로써 우리의 도덕적 믿음의 활로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칸트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이론 이성의 물음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결국 '나는 무엇을 행해야 하는가'라는 실천 이성의 물음으로 나아갔다.


3. 실천 이성과 주체

칸트는 자기보존(conatus essendi)을 기본으로 하는 근대적 주체로부터 비롯되는 자연의 무질서와 도덕의 무질서를 바로 잡기 위하여 자연형이상학과 도덕형이상학을 새롭게 정초하고자 하였다. 그는 이와 같은 작업을 위하여 자연의 질서와 마음의 질서를 인간 주체 쪽으로 귀환시켰다. 그래서 그는 자연의 형식적 입법자이자 마음의 형식적 입법자를 인간 주체 안에서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근대 주체성의 철학자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이 질서의 주체가 자기 완성을 하기 위해서는, 즉 주체 자신의 공허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도움을 받아야 하는 타자로서의 물 자체가 존재해야 함을 주장하였다. 그는 이론 이성의 주체와 관련하여 그 주체가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는 형식이 공허함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내용을 제공해주는 타자를 필요로 하였듯이, 마찬가지로 실천 이성의 주체와 관련해서도 주체의 순수 의무의 형식이 자신의 생명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행복을 제공해주는 타자를 필요로 하였다. 이처럼 칸트에게서 인식의 완성과 의무의 완성은 요청되는 타자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는 이론 이성적 주체에 대해서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한 것이 아니라 실천 이성적 주체에 대해서도 비판적 태도를 견지하였다. 그는 계약론적인 근대적 주체의 과도함에 대하여 비판적이었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주체를 완전히 폐기시키고 전근대적 주체로 회귀하는 것만도 아니었다. 그는 인간을 도덕적 주체로만 자리 매김 하지 않고 법적 주체로도 자리 매김 하고자 하였다. 그는 실천적 주체에 있어서도 이론적 주체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간자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나아가야 할 '사이성'으로서의 주체를 모색하고 있었다. 그의 '사이성'은 그저 평탄한 길이 아니라 늘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하는, 즉 명령을 인지해야 하는 가시밭길이었다. 주체는 법칙을 입법하면서도 법칙에 종속된다. 주체는 자연법칙을 입법하지만 자연법칙에 따르게 되며, 도덕법칙을 입법하지만 도덕법칙에 따르게 된다.


칸트는 이론 이성의 영역에서 소극적으로 남겨놓았던 이념으로서의 영혼, 자유, 신과 관련하여 실천 이성의 영역에서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한다. 그는 주체가 추구하는 자유라는 이념으로부터 영혼과 신이라는 이념으로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미 앞서 언급되었듯이 우리는 지적 직관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자유를 직접적으로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성의 사실(Faktum der Vernunft)로서 주어져 있는 도덕법칙으로부터 자유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유는 도덕법칙의 존재 근거(ratio essendi)요 도덕법칙은 자유의 인식 근거(ratio cognoscendi)이다."


칸트가 이렇게 도덕법칙을 순수실천이성의 사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이 인간답고자 하는 자기 매질로서의 인간의 숭고성과 존엄성에 대한 절규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인간을 자연적 경향성에 예속되는 노예의 상태로부터 탈출시키기 위해 인간에게 힘든 법칙의 멍에를 짊어지게 하였다. 이와 같은 면에서 볼 때 칸트의 실천 이성으로서의 주체는 경향성과 법칙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즉 경향성을 추구하는 자의(Willk r)와 법칙을 추구하는 의지(Wille)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체이다. 그러나 이 주체가 인간다운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자연성에 대한 애착보다는 법칙에 대한 존경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즉 의지는 가언적 명령에 입각하여 욕구를 추구하는 계산적 의지로부터 정언적 명령에 입각하여 옳음을 추구하는 선한 의지가 되어야 한다. 칸트의 이와 같은 태도는 당시의 부르주아의 계산적 의지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칸트의 선의지로서의 주체는 주관적 목적을 추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객관적 목적을 추구하는 주체이다. 따라서 칸트의 실천적 주체는 타율성에 바탕을 둔 주체가 아니라 자율성에 바탕을 둔 주체이다. 이와 같은 주체는 법칙 속에 자유를 자유 속에 법칙을 지니고 있는 주체이다. '해야함'이라는 법칙을 통해서 '할 수 있음'이라는 자유가 마련된다. 자유를 잃은 주체가 진정한 주체가 못된다면, 그런 주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도덕법칙을 자신의 삶의 원칙으로 자발적으로 확립해야 한다. 그렇다고 칸트가 경향성에 따라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그는 도덕적으로 무가치한 삶을 사는 사람은 행복할만한 가치도 없다는 의미에서 그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칸트의 주체는 흔히 메마른 형식주의의 형식적 주체가 아니다. 그의 형식은 형식을 위한 형식, 메마른 형식주의가 아니라 인간의 가치를 사물의 가치와 구별하여 인간의 인격이 지닌 가치는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음을 강조하는 형식주의다. 그 속에는 인간의 인격성에 대한 존경이 있고, 교환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인간의 존재 가치에 대한 변호가 스며들어 있다.


그러므로 그의 이런 인간관은 필히 모든 인간을 값 매기는 차원을 벗어나 있는 목적의 왕국으로 향해 있다. 이 목적의 왕국은 예지인의 총체로서 자율적 주체들이 살아가는 영역이다. 그래서 칸트의 주체는 '홀로 주체성'이 아니라 '서로 주체성'으로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념의 영역은 지금 존재하는 현실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부단히 추구해 가야 할 과제로서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 세계는 우리의 실천 이성이 인간이고 싶어 요청하는 세계이다.


그러나 현실의 세계에서는 가언적 명령에 따라 주관적 목적을 추구하는 결과주의자들이 주도하고 있으며, 따라서 정언적 명령에 따르는 의무론자들은 자신의 의무 속에 행복의 내용을 담을 수 없는 부조화를 겪어야 한다. 칸트는 바로 이 점과 관련하여 최고선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에 의하면 최고선은 덕과 행복이 최고로 조화된 상태이다. 이 '최고선'이라는 개념에 속해 있는 '최고'는 '최상'(supremum)이라는 의미와 '완전함'(consummatum)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덕은 전자의 의미에서의 최고선이지 행복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후자의 의미에서의 최고선이 아니다.


이처럼 인간의 실천적 주체는 자신의 덕스러운 행위가 행복을 만나지 못하는 분열의 아픔을 겪어가야 하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다. 그러나 칸트는 이 주체가 자신의 고달픔을 빨리 벗어나기 위하여 덕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행복으로 질주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최고선이 순수 의지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법칙이 순수 의지를 움직이게 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주체가 타율적 주체로 전락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덕은 최상선이지 완전선이 아니기 때문에 행복을 안겨다 줄 수 없다. 덕과 행복의 일치는 전지(全知)·전능(全能)한 창조자 아래에 있는 예지적 세계 안에서만 가능하다. 결국 주체는 주체 자신의 완성을 위하여 절대 타자를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이 요청은 절대 타자에 대한 수동적 임함이 아니라 능동적 임함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즉 인간 의지의 적극적 참여를 통하여 이 최고선이 실현되어야 한다. 따라서 칸트는 이 최고선의 가능 조건으로서 주체(영혼)의 불멸을 요청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경향성과 싸워서 끊임없이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힘과 용기로서의 덕이 제 목적을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서는 주체의 무한한 진보, 즉 불멸이 요청된다. 결국 최고선은 도덕적 진보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인격의 불사성을 전제로 할 때에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이처럼 칸트의 이론적 주체는 이념을 현실화할 수 있는 실천적 주체에 맞닿아 있다. 즉 그의 초월적 자아로서의 주체는 실천적 자아로서의 주체로 향해 있다.


나아가 칸트는 덕의 실현의 필수 조건으로서 영혼의 불멸을 요청하듯이, 덕과 행복의 일치의 필수 조건으로서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 칸트는 '보상하는 도덕성'(lohnende Moralit t)이라는 개념 아래서, 선한 사람은 그 선함에 비례하는 행복이 주어질 수 있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함에 비례하는 처벌이 주어질 수 있는 도덕적 질서가 가능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것의 가능성을 위하여 신의 존재를 요청한다. 신은 '최고선의 이상'이고 그 자신 최고선으로서 우리의 최고선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다. 결국 자율적 주체는 그 스스로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하여 타자를 부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부름은 무주체적 부름이 아니라 주체적 부름이다. 칸트는 이 주체적 부름으로서의 요청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주체적인, 그러면서도 참되고 무조건적인 이성의 필연성을 표현하는 말로서 '요청'이라는 말보다 더 나은 표현을 나는 알지 못한다.

이러한 요청으로서의 주체는 믿음 속에 연약한 주체로 전락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의 자립성 속에서 타자로 향해 있다. 그래서 칸트에게 파악된 주체는 '은총을 입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덕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덕으로부터 출발하여 은총으로 나아간다.' 그러면서도 또한 칸트는 "도덕적 신의 백성을 창조하는 것은 인간에 의해서가 아니라 신 자신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될 수 있는 작업이다"라고 주장한다. 결국 칸트의 실천 이성으로서의 주체도 자신의 자유로운 의무와 저편에서 그 내용을 담아주어야 할 행복 '사이'에 서있는 주체로 나타난다. 도덕적 주체와 종교적 주체는 결코 그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절대권을 행사할 수 없다.


4. 판단력과 주체

이미 앞에서 보았듯이, 이론 이성으로서의 주체는 자기 외부의 이 자연 안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면, 실천 이성으로서의 주체는 자기 내부의 마음의 세계, 그리고 저 피안의 세계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주체는 바깥의 세계와 안의 세계,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 찢어진 채로 존재할 수 없다. 분열된 주체가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연결 고리가 요구된다. 그것이 바로 판단력으로서의 주체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 심성의 능력은 지성의 인지 능력, 판단력의 감정 능력, 이성의 욕구 능력이 존재하며, 중간의 능력은 첫째와 셋째의 능력을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한다. 그는 지성의 선험적 형식으로부터 인식 일반의 성립 조건을 해명하고, 실천 이성의 선험적 원칙으로부터 도덕 일반의 성립 조건을 해명하듯이, 판단력의 선험적 원칙을 통하여 미(美) 일반의 성립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


그는 판단력을 "특수자를 보편자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판단력은 특수적인 것들을 보편적 법칙 아래 포섭하는 '규정적 판단력'과 특수적인 것들이 주어지고 그것들을 위하여 보편적인 법칙을 발견하고자 하는 '반성적 판단력'으로 구별된다. 전자는 자연이 지니고 있는 합법칙성(Gesetzm igkeit)에 관계하며, 후자는 자연이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합목적성(Zweckm igkeit)에 관계한다. 이 후자의 반성적 판단력이 관여하는 합목적성은 자연과 자유를 연결하는, 이론적 주체와 실천적 주체를 연결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이러한 합목적성에 관여하는 반성적 판단력이 대상에 관계하는 방식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주어진 경험 대상의 목적성이 대상의 형식과 인식 능력과의 일치로서 느껴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주어진 경험 대상의 목적성이 "대상의 형식과 이것에 앞서서 이것의 근거를 내포하는 물 자체의 가능성과의 일치"로서 느껴지는 것이다. 전자는 미적 판단력이 관여하며, 후자는 목적론적 판단력이 관여한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는 주관적 합목적성이 자리하고 있고, 후자의 경우는 객관적 합목적성이 자리하고 있다.


전자와 관련된 미적 주체는 이해나 손해, 경향성과 의무에 대한 이론적, 실천적 관심을 벗어나 있는 무관심적 주체이며, 논리적·도덕적 보편성과 필연성을 추구하는 주체가 아니라 느낌의 보편성과 필연성을 추구하는 주체이다. 그러므로 이 미적 주체는 자신의 주관성과 상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이미 '확장된 사유 양식'(erweiterte Denkungsart)에 근거하고 있는 공통감(sensus communis)에 관여하고 있다. 칸트는 공통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스스로 사유할 것, 2. 다른 모든 사람의 입장에 서서 사유할 것, 3. 언제나 자기 자신과 일치하도록 사유할 것. 첫 번째는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유방식의 준칙이고, 두 번째는 넓혀 가는 사유방식의 준칙이며, 세 번째는 일관성 있는 사유방식의 준칙이다.

아렌트가 주장하듯이 칸트의 이 공통감에 참여하는 주체는 사회 속에서 현실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별자로서의 인간들이다. 여기서는 이성적인 자기 입법적 존재로서의 인지적 주체나 예지적 주체가 다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들 주체들은 홀로 버려진 황량한 사막에 존재하는 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하여 스스로를 단념하는 주체로 자리하고 있다. 료타르의 주장처럼 여기에는 '요구에 대한 주저'가 담겨 있고, '원리를 요구 뒤에 위치 짓고' 있다. 그래서 사실 칸트도 『판단력비판』을 원래 『도덕적 취미에 대한 비판』으로 제목을 달고자 하였다. 여기에서는 상상력의 승인과 부인의 작용을 통하여 (법칙적인 합목적성이 아닌) 자유로운 합목적성이 추구될 수 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강요적 보편성이 아니라 설득적이고 무관심적인 보편성이 자리하고 있다. 즉 여기에는 개념(Begriff)을 통하여 서로 잡아 쥐는(greifen) 보편성이 아니라 느낌을 통하여 서로 함께 옆에(bei) 걸어가는(treten) 참여(Beitritt)가 중시된다. 나아가 이 공통감에는 데리다가 예리하게 간파했듯이 파레르곤과 에르곤 사이의 일방적 지배를 허용하지 않으며, '목적 없는 합목적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미적 판단력이 자리하고 있는 공통감은 이미 사회적인 도덕적 관심으로 향해 있다. 그러므로 미적 판단력은 현상의 미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아리아드네의 실'인 셈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숭고미에 대한 분석에서도 등장한다. 미적인 것에는 상상력과 조화가 중시되지만, 숭고한 것에는 상상력과의 부조화가 중시된다. 숭고한 것은 양과 힘에 있어서 무한함을 내포하기 때문에 우리의 상상력이 버거움을 느끼며 공포 같은 전율을 느낀다. 료타르에 의하면 이 숭고한 것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타자로서 예지적 존재이다. 또한 이것은 데리다의 주장처럼 어떠한 파레르곤도 넘어서 있는 절대적 크기이다. 이 숭고한 것은 감성적 형식에 포함될 수 없고 이성의 이념들에 관계한다.


칸트에 의하면 우리가 이와 같은 자연의 위대함에 대하여 숭고함을 느낄 때 사람들은 도덕적 의식을 지니게 된다. 사람들은 자연에 대한 위대함을 전제로 하여 자신들에 대한 존엄성을 느끼게 되며, 도덕률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게 된다. 따라서 숭고는 미보다 더 많이 인격성을 요구하며 자연의 위대함 느끼도록 만든다. 이 숭고감은 사람들로 하여금 도덕법칙을 실현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이 숭고감은 결국 예지적 존재들, 이른바 영혼과 신을 만나도록 만든다. "숭고한 것은 감관의 관심에 저항함으로써 직접적으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며, 자연의 어떤 대상이 마음에 영향을 주어 자연에 미칠 수 없음을 이념의 현시로 파악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는 감정은 곧 도덕적인 것에 대한 마음 상태와 유사한 감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상에서 보듯이 칸트의 미적 판단력, 즉 취미는 예지계로 향해 있다. 즉 미적 판단력은 이미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향하고 있다. 이 목적론적 판단력은 주관적인 합목적성에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합목적성에 관계한다. 그는 여기에서도 반성적 판단력에 입각하여 자연 그 자체의 합목적성을 하나의 규제적 이념으로 바라본다. 즉 그는 이러한 합목적성의 원리를 자연의 산물들이 발생하는 방식에 관한 설명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자연의 특수한 법칙들을 탐구하기 위한 발견적 원리로 삼는다. 따라서 그는 '자연의 합목적성의 실재론'을 주장하는 물활론이나 '자연의 합목적성의 이상론'을 주장하는 유신론 모두 자연과학과 신학의 경계를 무시한 독단적 주장이라고 본다. 그는 물리학의 극단적인 기계론적인 접근이나 신학의 극단적인 목적론적 접근 모두를 비판한다.


그러나 칸트는 기계론적 설명 방식과 목적론적 판정 방식을 단순히 양립시키는 차원을 넘어 전자를 후자로 접근시키려고 한다. 그는 이와 같은 작업을 목적에 긍정적인 이성과 그것에 부정적인 지성 사이를 매개시켜주는 반성적 판단력이 추구하는 '초감성적인 것'( bersinnlichen)에서 찾고 있다. 이것은 서로 항쟁하는 자연의 판정 원리들을 일치시켜 주는 공통의 원리로서, 자연의 필연성의 원리로부터 자유의 도덕성의 원리로 나아가도록 해준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도 실천적으로도 인식되지 않는 모든 현상의 기체(基體, subtratum)로서 자연의 통일을 가능하게 해주는 주관적 능력의 궁극적 근거로서 자유로운 자이다. 칸트의 이와 같은 태도는 결국 자연을 기계론적 설명만으로는 부족하고, 따라서 목적론적 설명이 요청될 수밖에 없음을 제시하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전자가 후자에 예속되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동시에 인간을 이 지상에 최종 목적으로 보려고 하는 칸트의 이해와 맞물려 있다. 그는 외적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무기물보다 내적 합목적성을 지니고 있는 유기물이 더 우월하다고 보았으며, 유기물 중에서 인간의 정신이 가장 우월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이 우월성을 제대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자신의 자연에 있어서의 최종적 목적을 최고의 궁극적 목적인 신의 단계에까지 이르게 하기 위해서는 자연으로부터 분리를 시도하는 문화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러나 숙련성을 바탕으로 하는 행복의 영역인 문화가 인간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가능적 조건으로서 다른 어떤 것도 필요치 않는 목적"인데, 그것은 칸트가 볼 때 도덕성 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문화적 존재보다 도덕적 존재를 우위에 둔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도덕성은 자연의 모든 조건을 벗어나서 자연을 포섭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인간의 예지적 요소, 즉 도덕적 요소가 곧 창조의 목적이 된다. 인간은 자신의 이와 같은 요소를 발전시켜 초감성적 체로서의 신의 자발성에 참여하게 될 때 진정으로 자신을 실현하게 된다. 여기서도 칸트는 행복보다는 도덕을 더 우선적으로 취급한다. 그러므로 칸트에게는 자연신학은 도덕신학을 통해서 보충되지 않으면 안 된다. 그에 의하면 자연신학은 "하나의 잘못 이해된 물리적 목적론이며, 따라서 신학에 대한 예비로서만 의미를 지닌다." 적어도 칸트의 관점에서는 자연신학은 도덕신학의 도움을 받을 때에만 신학으로 불려질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자연신학은 초인간적인 힘이라는 애매한 개념을 주제로 삼는 '귀신론'(D monologie)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칸트는 미적인 판단으로부터 목적론적 판단으로 나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실천이성이 추구하는 영역으로 나아간다. 결국 칸트의 미적 주체는 도덕적 주체로 향해 있으며, 이 주체의 자기 완성은 '초감성적 기체'라는 타자를 통해서 확립된다.


5. 역사와 주체

이상의 논의를 반성해볼 때 칸트의 주체는 이미 이론 이성으로서의 주체가 판단력으로서의 주체를 매개로 하여 실천 이성의 주체로 나아감에 있어서 역사성을 담보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자연의 합목적성으로서의 규제적 원리는 경험적인 주체가 초월적 주체를 거쳐 실천적 주체로 나아가는 무대가 된다. 이러한 초월적 합목적성으로서의 규제적 원리가 부정된다면 인간의 역사는 이성 자신의 역사가 아니라 이미 결정되어 있는 섭리사나 운명사가 되고 말 것이다. 반성적 판단력이 지향하는 자연의 합목적성은 자연의 왕국으로부터 자유의 왕국으로 나아가는 건널목 역할을 한다.


자연의 합목적성의 궁극적 토대로서 요청되는 '초감성적 기체'는 이제 그의 역사철학에서 '자연의 의도'(Absicht der Natur)나 '자연의 계획'(Plan der Natur)이라는 용어로 나타난다. '초감성적 기체'로서의 자연은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자연'이며, 이것은 역사의 진보라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조하기 위해 인간의 유한성에 바탕을 두고 있는 갈등과 불화를 재료로 사용한다. 그렇다고 이러한 자연에 인간이 일방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으로 칸트는 보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의식적이고 자율적인 실천이 역사의 진보에 중요한 추진력임을 천명하고 있다. 물론 이 때의 주체는 개체로서의 주체가 아니고 유(Gattung)로서의 주체가 된다. 한 개인은 자신의 주체성 속에서 자유를 실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유로서의 주체는 결국 자유의 왕국을 확립할 수 있다. 여기에서 '홀로 주체'로 '서로 주체'로 나아가고 있다. 인간 발전의 역사적 과정에는 '홀로 주체'이고 싶은 비사교성과 '서로 주체'이고 싶은 사교성이 자연을 통하여 전개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전자의 주체로부터 후자의 주체로 나아가야 함을 칸트는 역설하고 있다.


이처럼 인간은 '자연의 의도'를 통하여 자연의 보호 상태로부터 자유의 상태로 이행하게 된다. 처음에 인간은 자신이 부여받는 이성으로 인하여 자신의 동물성과 갈등을 겪으면서 악을 창출하게 되지만, 점차적으로 이성이 주체성을 회복함으로써 '자연적 유로서의 인류'를 넘어서 '도덕적 유로서의 인류'로 고양된다. 인간은 바로 이 과정에서 법적 강제를 통하여 주체들간의 외적 자유를 마련하는 훈련을 겪어야 한다. 즉 인간은 합법성(Legalit t)의 훈련을 통하여 도덕성(Moralit t)의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이행의 과정이 인간의 힘만으로 제대로 실현될 수 없다. 칸트는 이것이 완전히 실현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교회'(die unsichtbare Kirche)가 요청되어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은 주장 속에서 인간 주체가 감당할 수 없는 절대 타자에 대한 믿음을 주목하고 있다.

... 선을 향한 근원적 소질을 더 선한 인간이 되기 위하여 사용했을 때만 인간은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될 수 없는 것을 보다 더 높은 도움에 의하여 보충되도록 바랄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이 도움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에 대하여 인간이 꼭 알 필요는 없다.

그러므로 도덕적인 신의 백성을 창조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해서가 아니라 신 자신에 의해서 수행될 수 있는 것으로 기대될 수 있는 작업이다.

결국 칸트의 주체는 '홀로 주체'에서 '서로 주체'를 거쳐 절대 타자로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칸트의 주체에는 형이상학적 주체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현대 철학에서 일반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언어적 주체, 의사 소통적 주체, 몸적 주체 이상의 주체가 자리하고 있다. 칸트는 분명 오늘날의 탈형이상학적 주체와 같은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그러므로 칸트의 주체는 생성하는 현실의 역사적 지평 안에만 거주하는 싸르트르나 니체의 주체, 그리고 이런 계통을 이어받고 있는 현실적 주체에 머무를 수 없었다.




6. 나가는 말

칸트의 주체는 수평적 사이에만 서 있는 주체가 아니라 수직적 사이에도 서 있는 주체이다. 오늘날 '수평적 사이 주체'를 모색하는 일반적 경향에서 볼 때 '수직적 사이 주체'는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거대 주체의 등장을 초래하는 불행의 씨앗으로 이해될 것이다. 특히 주체 자체를 근원적으로 해체하려는 경향에서 볼 때 '수평적 사이 주체' 조차도 그것이 '우리'라는 보편적 주체를 모색하려고 하는 이상 주체의 테러를 유발하는 것으로 해석될 것이다.


그러나 칸트의 주체는 이런 테러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나 있다. 그는 이론 이성으로서의 주체에서는 형식적 주체의 공허함을 벗어나기 위해 물 자체로서의 타자를, 실천 이성으로서의 주체에서는 자율로서의 주체의 허무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최고선의 가능 근거로서 신이라는 타자를, 판단력으로서의 주체에서는 반성적 판단력으로서의 주체의 주관성을 벗어나기 위해서 '초감성적 기체'로서의 타자를 요청하였다. 이처럼 "칸트는 주체의 자기 의식을 모든 것의 '최고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것을 통해 전체를 하나로 묶지 않았다."
그러므로 칸트의 주체를 서구 근대적 주체 일반과 동일시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이다. 사실 칸트의 주체는 서구 근대성의 주체를 반성하고 비판하는 과정 속에서 정립된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근대적 주체에 대해서 비판하듯이 칸트의 주체를 비판할 수는 없다.


주체를 실체화하는 것을 거부하는 칸트의 '사이성'으로서의 주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의미 있는 고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실 20세기 100년 동안의 한국의 철학은 서구적인 칸트적 주체를 고민하고 반성하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긴 숙고와 훈련의 기간이 미비하였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에 식민지가 되어 주체를 타의적으로 상실해야 했으며, 해방 이후에는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여전히 주체를 확립하지 못하고 종속되는 상황에 있었다. 한 마디로 한국의 현대사는 주체의 핍박시대였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의 우리의 철학은 '울분의 철학', '힘의 철학'이지 않으면 안 되었으며, 역설적이게도 핍박의 주체는 힘의 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와 같은 측면은 당시 철학자들의 칸트 해석에서도 명백히 드러나고 있다. 신남철은 칸트가 지성의 자발성과 감성의 수용성을 통하여 인식을 이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천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하지만, 칸트가 물 자체를 변증법적으로 더 밀고 들어가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즉 신남철은 칸트가 주체를 대상에 마주해있는 차원으로만 파악하였지, 실천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비판하고 있다. 또한 박종홍도 자신의 논리학에 관한 연구에서 칸트의 논리학을 인식논리학으로 규정하고, 그의 논리학이 형식논리학과 달리 내용을 다루기는 하였지만 내용의 모순이나 문제점에 대해서 다루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의 논리학은 인식 주체에 머물러 있는 사변적 실험에 불과하며, '신체적 노작을 통해 구체적인 실재적 형태를 만드는 데까지 나오지 못했다'라고 비판하였다.


이들의 칸트에 대한 이와 같은 비판은 울분과 분노로 점철된 민족적 주체가 저항(해방 이전)과 건설(해방 이후)의 주체가 되어야 했던 당시의 현실에서는 불가피한 귀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와 같은 주체에는 칸트적인 '비판적 주체'나 '사이성'으로서의 주체가 끼어 들 여지가 없다. 극단적 주체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칸트적 주체는 중용적 주체가 아니라 무력한 주체 내지는 기회주의적 주체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칸트의 주체는 절대적 힘을 허용하는 주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민족의 억압의 시대는 혁명하는 주체가 요구되었고, 민족의 건설의 시대는 만들고 개조하는 주체가 요구되었다. 그 어느 쪽이든 힘의 극대화가 요구되는 주체였다.


따라서 칸트적인 비판을 통해서 '요청'하는 주체보다는 변증법적 과정을 통하여 '지양'하는 주체가 중시되었다. 특히 1960년 이후의 남한 상황은 실용주의와 헤겔의 국가절대주의의 결합을 통한 건설적 주체나 그것에 저항하는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주체가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칸트적인 비판적 읽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니 현실을 떠나거나 현실에 몰입되지 않고 현실과 함께 하는 철학 본래의 반성적 작업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 철학은 더 이상 거대주체를 허용하지 않는다. 서구 철학은 자신들의 주체 철학이 안고 있는 테러에 대한 강한 도전이 제기되면서 한편에서는 신합리주의 계열의 철학이, 다른 한편에서는 반합리주의 계열의 철학이 개진되고 있다. 이들은 서로간에 많은 견해 차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거대 주체를 허용하지 않으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은 각기 다소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칸트적인 비판적 주체를 새롭게 계승하고 있다. 우리 역시 서구와는 많은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특히 근대화의 과정이 위로부터 이루어진 우리는 아래로부터 이루어진 서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면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 역시 서구와 마찬가지로 근대화 속에서 탄생된 힘의 주체를 극복하기 위해서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우리 사회 역시 칸트적인 비판적 주체가 요구되는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여전히 권위주의와 의리주의 아래서 비판이 비난으로 읽히는 우리 상황에서는 칸트적인 '합일 없는 매개'를 모색하는 주체가 더 더욱 요구된다. 더군다나 차이가 차별로 전환되는 허위의 공식이 오래도록 지속되어 온 우리의 상황은 칸트적인 공통감에 바탕을 둔 반성적 판단력의 주체가 요구된다. 또한 여전히 기복성(祈福性)이 깊이 자리하고 있는 한국 종교 문화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칸트적인 도덕적 신앙의 주체가 요구된다. 공간의 고밀도화와 시간의 초고속화로 '사이성'이 박멸되어 가는 오늘의 문화 속에서 '사이'좋게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칸트적인 '사이성'으로서의 주체가 어느 시대보다 절실하게 요구된다. 그의 '사이성'으로서의 주체는 주체와 타자 사이에 서둘러 거리를 없애거나 고착화시키는 주체가 아니라 희망적 거리 속에 자리하고 있는 주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