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가는 먼 길 1 -아포리즘
-이성복
1. 허무―기형적인 감정. 잎파랑치를 표백시킨 감정. 허무를 실체로 여기는 자들의 심약성. 허무가 허무 자신을 간통하고 부정할 때까지 한 시대를 지탱해 주는 것은 재능이 아니라 힘이다.
2. 내가 `최신약(最新藥)'이라는 시험관 속에 신과 여러 종류의 인간군―전통주의자, 히피, 예술가 등―을 한꺼번에 집어넣고 배양해 본 결과, 신은 결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인간들의 여러 주장은 서로 평행해서, 신의 살해에 공모할 만큼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다. 이들의 상이한 주장 때문에 신은 자살한 만한 궁지에 몰리지도 않는다. 신의 죽음 또한 일파(一派)의 주장이다. 인간은 신을 죽일 만한 플롯을 꾸밀 수도 없고, 그 플롯에 참여할 수도 없다.
3. 위증(僞證)의 시대를 살며 지성(知性)이 치러야 할 노역(勞役)은 이미 판치고 있는 거짓 명제들을 기소하는 일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살찌우는 맹랑한 질문들을 뿌리째 제거하는 일이다. 가령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달리 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질문들의 대다수가 자기방어의 최후수단으로 쓰여지고, 사이비 진실을 정당화하는 에너지가 된다. 비겁한 자들의 비속한 인격에 오염된 질문은 무구(無垢)한 생을 물어뜯는다. 히피와 그의 동거자들을 이러한 각도에서 공격할 것.
4. 아마추어인 우리들은 시를 갈구하지만, 시로서는 엄격하게 우리들의 간(肝)을 요구한다. 하여, 사춘기의 소년들이 시의 독가스를 쐬고 유태인처럼 죽어간다.
5. 정신의 괴로움을 자랑으로 아는 시대, 자랑까지는 아니더라도 기쁨을 느끼는 시대는 얼마나 유약한가. 갈등을 이겨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직업적 소재로 삼는 자들의 나약함이란!
6. 우리들은 성(性)에 대하여 진지하게 이야기하려 하지만 말초신경만이 바르르 떤다. 성은 중요하다. 그러나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하다가는 성에 할큄질을 당한다. 성은 어느 과일보다 달콤하다. 그러나 달콤하다고 발설함으로써, 우리는 그 과일을 썩여 버린다.
7. 시대의 어려움을 방종의 구실로 삼지 말고, 자기 탓으로 돌리지도 말 것. 양자 다 어둡고 진지한 표정으로 흥청거리는 꼴을 볼 때마다 혓바늘이 돋는다.
8. 고급문화가 서민들의 피를 빨아먹고 자라났다는 말은 지나친 표현이다. 민중에게서 우러나온 것만을 문화로 국한시키고 싶은 우리들의 의협심도 민주주의의 맹점 가운데 하나인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본능의 여과이다. 역사라는 투명한 비커에 가라앉는 앙금도 아름답지만……, 의식적이고 지적인 문화를 언제까지나 사치하다고 비방할 수는 없다.
9. 여지껏 우리 시대만큼 물질이 정신에게 치명타를 준 적은 없다. 물질과 정신을 서로 싸우게 만든 책임까지 우리 시대에 돌아올지 모른다. 물질의 근본 속성은 평등이다. 우리는 서로 동등해지려 하면서 물질화된다. 신에게서 버림받은 정신이 물질의 잠을 거부하고 상징의 숲으로 잠적하고 싶은 까닭도 여기에 있다.
10. 예술에 있어서 새로운 주제란 없다. 영원한 주제의 새로운 체험만이 문제된다. 예술가에 대한 새로운 체험의 지배형식이 곧 예술의 형식이다. 얼마나 진부한 이야기인가. 그러나 일단 형식쪽에 윙크를 해주므로써, 사유(思惟)의 난봉질에 일침을 가할 수 있다.
11. 날카롭게 보지 마라, 그대의 재주는 쉽게 부러져 버린다.
12.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특권이라 할 수 있는 자아의 귀족주의 때문에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언제부터 인간이 그렇게 고상해졌는가. 우리가 고상해진 뒤부터 우리의 고통은 감미로워졌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의 귀족주의를 자아에서 제거할 때, 우리의 불행도 기운을 잃을 것이다. 그러나 왕의 권좌에 오른 자아가 `누보 로망'처럼 아직 기세등등하지 않은가.
13. 나는 다른 작가들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좋아하지만 견해의 체계라면 질색이다. 오늘날 비평은 작가와 독자를 고루 죽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비평이 자본주의와 함께 득세하게 되었다는 것도 기억할 것.
14. 내 병을 신경성으로 추단한 의사는 정신과에 추천서를 내주었다. 나는 그것을 찢어 버렸다. 내 육체가 정신에게 병을 건네주었다면 용서할 수 있으나, 정신이 육체의 정상적인 움직임을 방해했다면 수치스러운 일이다. 나는 정신의 동정(童貞)을 믿는다.
15. 예술을 당대의 민중 편으로 끌어가려는 이들의 의기를 백번 박수하더라도, 의기는 생의 전부는 아니다. 생은 예술의 전부는 아니다. 예술은 생과 죽음의 아들이다.
16. 해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바다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바다는 전혀 다르다. 살아있는 내가 죽어있는 나에 대해서도 그렇게밖에 보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내 삶은 죽음을 억압하는 일―내 뚝심으로 죽음을 삶의 울타리 안으로 밀어넣는 노력 외에 다른 것이 아니므로. 어느날 죽음이 나비 날개보다 더 가벼운 내 등허리에 오래 녹슬지 않는 핀을 꽂으리라. 그래도 해변으로 나가는 어두운 날의 기쁨, 내 두 눈이 바닷게처럼 내 삶을 뜯어먹을지라도.
17. 낭만주의자들은 집에다 싸움판을 벌여 놓고 가출한다. 그들은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만한 힘이 없기 때문에, 이미 제기된 문제를 미루거나 포기하고 새로운 문제를 찾아 나선다. 그들이 신비에 정통한 듯이 행동하는 까닭도 그곳에서는 안심하고 나태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8. 우리가 감각만을 신성시할 때, 떠나가는 우리의 육체를 보아라. 끝없이 흘러가는 육체의 뗏목이 시간보다 더 빨리, 더 유쾌히 미친 공허의 가슴패기를 찌를 수 있을까. 그러나 육체가 멈추려고 하는 순간, 우리의 시선은 끊어지고 만다.
19. 세계와 인간에 관한 한, 인식의 불가능성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인식이다. 그 불가능성은 인식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기 통로를 여는 것이 된다. 불가능성, 혹은 유일한 인식의 출구를 통해 잡신(雜神)들은 신원보증서 없이 출입한다.
20. 나의 본업은 웅변가이지 시인이 아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변론해야 할 주제를 상실한 웅변가이다. 나는 그 사실을 실감하며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계여, 평안하시라!
21. `모든' `완전한' `진실한' 등 일련의 형용사들의 간계를 조심하지 않은 까닭에, 젊은이들의 정신이 정체하거나 부패하는 수가 있다. 힘겨운 문제를 대면하는 데 지구력을 보일 수 없는 사람들은 이와 같은 형용사들을 미끼로 문제를 농담으로 유인해 들이는 것이다.
22. 하나의 운명으로서 절망이 다가와 압도하기 전에, 스스로 임의의 절망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우리를 정화한다. 무수한 절망연습을 통해 우리는 과장된 자기전시와 기교의 소모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제작된 절망 속에 진실과 아름다움이 동거한다.
23. `주의(主義)'의 이름 아래 젊은이들은 허위를 감히 내다보는 의혹 없이 늙어간다. 오류라는 위험은 생의 요동기에서건, 잠언의 은둔 속에서건 어디에나 있다. 위험은 그것을 목도하기 위해 안달하는 사람들의 보상으로서, 우리를 삶과 꿈의 어느 영역에서나 알뜰하게 살도록 만든다.
24. 산문(散文)이 미드필드를 가로질러 속공을 노리는데 반해 시어(詩語)는 로빙볼과 같다. 소위 문명이 밀집방어하는 문전에서 예감과 기대에 가득차, 그러나 완연한 판가름을 염두에 두지 않은 채 바나나킥으로 쏘아 올리는 투기―그때 언어는 상징성을 얻고 혜성처럼 화염을 날리며 떨어진다.
25. 우리의 신은 우리의 고통에 달려 있는, 쓸모없는 올챙이 꼬리 같은 것이다.
26. 누구든지 자기 시대의 밑바닥에서 학대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간과하고서는 더 이상 정직할 수 없다. 그가 신이라 할지라도……
27. 만약 구원이 온다면 지금 이곳에 오지 않으면 안 되며, 또한 지금 이곳의 `변형'으로서일 뿐이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속아왔다.
28. 천국과 지옥 사이에는 우리의 언어가 답사해 보지 못한 수많은 반지옥(半地獄), 반천국(半天國)들이 있을 것이다. 신의 정의를 위해서도 그것이 필요한데, 하물며 죄인도 성자도 아닌 우리들로서야……
29. 현실을 배반하고, 배반하기 위해 도입되는 신비는 현실의 더욱 불순한 노페물일 따름이다. 우리가 `산다' 함은, 더우기 `역사적으로 산다' 함은 신비가 악덕으로 매도된 다음에도 어떻게 되살아날 수 있는지 관찰하고 시험하는 일이다.
30. 때로 사랑이 강조되므로써 자기합리화의 수단이 되고, 한 시대의 정신적 공해가 된다. 우리를 답답하게 하는 것은 사랑이 `헤픈 신음'이나 `발작적 분노'로 전화되어, 어이없게도 권력과 불평등을 정당화시키는 것이다.
31. 입으로 먹고 항문으로 배설하는 것은 생리이며, 결코 인간적이라 할 수 없다. 그에 반해 사랑은 항문으로 먹고 입으로 배설하는 방법을 숙달하는 것이다. 그것을 일방적인 구호나 쇼맨쉽으로 오해하는 짐승들!
32. 현장언어는 절대언어이다. 신은 그 소리를 듣고 어쩔 수 없이 도래할 것이다. 현장언어는 신에게 향하는 언어가 아니라, 신을 왕진시키는 언어이다. 그것은 언제나 솔직해야 하며, 그 대신 과장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저주하는 언어가 아니라, 개종하는 언어이다.
33. 대중사회가 시인을 더욱 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그가 아무리 무지하고 추악한 인간 집단이라도 쉽게 경멸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에 있다. 전시대의 시인들은 그를 괴롭히는 사회환경을 혐오하고 저주하므로써 그의 고통을 열락으로, 그의 불운을 사명으로 바꿀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특권이 용납되지 않는다. 사적(私的)인 불행까지도 특권으로 간주되는 모멸의 현장에서.
34. 신을 탐구하기 위해 우리는 먼 데로 떠날 수 없다. 지금, 이곳에서 신은 윙크한다. 신은 애욕이고 고통이며, 신성은 매연으로 떠돈다. 우리의 피로한 일상행위는 신 쪽에서 보면 기도일 따름이며, 우리를 억압하는 사람들도 알고 보면 신부(神父)들이리라. 왜냐하면 온갖 참혹한 놀이의 장황한 규칙들을 그들은 일찍부터 암기하고 터득했으니까.
35. 우리를 닮은 신들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는 음울한 공장지대에서 스스로 천사가 되어야 하리라. 분노할 때마다 날깨를 펴고, 매연 속에 피어오른 장미꽃 같은 판자집 위로 여러 번 추락하리라.
36. 고통이 쾌락으로 바뀌기 전에, 우리는 피로에 떨어진다. 고통을 음미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우둔하고, 너무 분주하다. 신도 우리처럼 우둔하고, 분주하다. 만약 우리에게 충분한 돈과 시간이 있다면 그것들을 신과 함께 나누어 쓰리라.
37. 신은 우리와 같은 공단(工團)에서 일하는데, 언제나 야근을 도맡아 한다. 그에게는 애인도, 누이도, 고향도 없다.
38. 산 것과 죽은 것, 곤충과 인간, 치욕과 뻔뻔스러움이 서로를 윤간하는 밤, 신은 알루미늄으로 만든 의족(義足)으로 오염된 강을 건너온다. 신이 갈라주어야 할 빵은 이미 잘게 찢겨 어두운 하늘에 뿌려졌다.
39.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늪으로, 사막으로 내보내 죽음의 거머리와 하이에나에게 물어뜯기게 하는 것이다.
40. 사유(思惟)―우리의 분비물을 정성껏 끌어모아 썩지 않도록 방부제를 뒤섞는 것.
시작(詩作)―때때로 그것을 손으로 찍어 맛보는 것. 그리고 허탈해 하는……
비평(批評)―원숭이처럼 상대방의 더러운 털 속에서 이를 잡아 먹는 것.
41. 자신의 비겁함이나 나약함 때문에 오는 고통을 가능한 한 피하고, 죽음으로부터 공포를 박탈해 육신이 정정당당하게 흙으로 돌아가게 할 것. 유기체로 살면서 화내고 기뻐하고 괴로워하고, 가치나 의미를 미리 따지려 하여 행동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할 것.
42. 나는 모든 선악 속에 나를 허용한다. 나는 생(生)의 물결 속에 흘러왔으니, 생을 거스르지는 않겠다. 생의 동물성을 최대한 긍정하고, 신화나 사상에 온몸을 내거는 투기는 하지 않겠다. 그것들은 이제 내 몸을 통해 생성되어야 할 것들이다.
43. 비관주의의 뿌리를 찾아라. 성과 자유정신의 부유함을 비난하며 그것들을 무능력의 울 안에 감금하는 그 잘난 비관주의의 정체를 밝혀라. 도라지 뿌리보다 더 얕게 땅에 박힌 비관주의의 부름켜를 찾아서, 난데없는 `죄'와 `죽음 연습'과 더불어 팽개칠 것!
44. 사상(思想)을 거부한 자의 후광을 보라! 그 비참함과 아울러……
45. 사상과 관념의 목을 비튼 자에게는 체계와 구성의 은폐가 없다. 오직 비유와 신랄함이 유약한 것들의 하체(下體)를 건드려서 떨게 한다.
46. 수족마비와 전신마비, 정신과 꿈의 야릇한 불구, 제 청춘의 생매장을 경험한 자는 성스러움의 근원이 우열, 광란, 난치병, 치욕, 창독, 추악에 있다는 것을 안다.
47. 진흙 속으로 다시 들어가 수척해 보지 않은 정신은 자기성장의 부름켜를 찾지 못한다. 추악한 것, 비극적인 것, 만취한 것들은 우리들의 행위를 빈틈없이 호송하여, 우리가 과열된 상상력 때문에 월경(越境)하는 것을 막아준다.
48. 질문의 순수성을 보존하되 압도당하지 않고, 동경과 불안으로 몸을 떠는 감정의 가축들을 잡아 선혈을 마시는 자는 전도서(傳道書)의 가시 울타리를 쉽게 빠져 나올 수 있다. 그는 고의적으로 허무를 의도하는 왜곡된 질문들을 낱낱이 적발한다. 그는 순간순간 자신을 파뭍고 다시 캐내며, 매순간 임종과 출생을 거듭한다.
49. 감정의 나약함, 혈통적인 정신쇠약으로 인해 세상을 더러운 장소로 낙인하는 자들의 정신만큼 더러운 것은 없다.
50. 더 흘러나오지 않는 피를 빨며 네 상처의 근원에 이르지 못하고 되돌아선 신(神), 신의 푸른 입술에 대해 기억할 것. 오래 그를 네 수치 속에 파묻어 우엉처럼 싹이 나게 할 것. 그에 대해 헤프게 이야기하지 말 것. 다만 그를 보살필 것. 그리하여 어느 날 슬퍼하지 말고, 그가 객사하도록 떠나보낼 것.
51. 인간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든든한 가치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척도 없이 진보는 없다. 인간 진화론, 역사 발전론은 게임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투기성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올바른 척도가 주어져야 한다. 인간의 겨드랑이에서……
52. 사물들의 의미는 그들의 결혼에 의해 형성된다. 즉 그들은 그들 사이의 인척관계 때문에 그들 자신이 된다. 인간은 그들의 혼례를 주선하고 주례한다. 인간은 사물들의 결합에서 생겨나는 황홀의 전부를 갈취하는 `펨프'이다.
53. 나무가 `되기 위해' 씨앗이 자라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된 것들은 또다른 무엇이 되기 위해, 영원히 무엇이 안 되기 위해, 끝내는 미쳐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목적 때문에 생을 망쳐서는 안 된다.
54. 가령 새떼의 날아오름이 별들의 움직임과 유사하고, 꽃의 빛깔이 음부의 색감과 흡사하고, 내장 속의 기생충들은 내가 연애할 때 자기네끼리 연애하고……그러므로 나는 지옥에서 천국까지 무상출입할 수 있고, 내 죄악은 선행이고, 내 추함은 미덕이다.
55. 실재(實在)와 무(無)를 인위적으로 가속하여 충돌시킬 때 일어나는 핵폭발 반응―이승이 한 순간 크게 밝았다가 저승 쪽으로 함몰한다.
56. 위대한 것을 생각할 때마다, 벅차오르는 공포! 죽음이 그 속에서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57. 계율―감정의 속임수를 근절하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인식의 정상에서 행위의 성좌를 펼칠 것.
58. 계율―비극의 감정을 쉬이 너의 쾌락으로 바꾸지 말 것. 신의 제단에 올라야 할 기도를 네 음식으로 취하지 말 것.
59. 계율―세상을 꿰뚫는 공정한 사명이 부재하는 한, 너의 몸을 사명의 근거지로 삼아, 움직이는 몸이 시(詩)로 포착되도록 할 것.
60. 계율―전도서 탈출, 탈 허무, 탈 비관주의!
61. 계율―허무라는 길손을 맞기 위해서는 여분의 방과 깨끗이 풀먹인 침구를 언제라도 준비해 둘 것.
62. 계율―형이상(形而上)의 세계를 시인하게 하기 위한 질문들을 경계할 것! 가령 `인간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우리는 어디로부터, 어디로 가는가' 등등.
63. 신(神)은 생(生)의 살갗에 흘러나온 굳기름 같은 것이다. 목욕하고 다시 태어나라!
64. 우리의 고뇌는 신의 출현방식이다.
65. 신(神)은 신(神)을 갈망하는 우리들의 변신(變身)이다.
66. 삶은 아무것도 속이지 않는다. 정직하게 시간의 칼을 휘두르며, 자기의 변화를 완성할 뿐.
67. 기쁨과 슬픔 사이 그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여백을 위해 우리는 몸짓을 다해 땀 흘린다.
68. 낙관(樂觀)하라, 역사(轢死)한 어린아이 앞에서, 쓰레기장의 사과껍질 앞에서!
69. 나의 행동원칙―선행위(先行爲) 후가치(後價値).
70. 아름다운 죄, 타락의 종양. 내가 괴로워할 때마다 이브는 출산의 몸부림을 친다. 내 몸 가까이에 흐르는 오염된 강물. 이제는 내가 하나님을 유혹할 차례다.
71. 우리의 사고(思考)는 척추처럼 유연하고, 늑골처럼 자기보호의 울을 치고, 다리뼈처럼 이동에 봉사한다. 즉 사고(思考)는 몸 이상의 것이 아니다.
72. 어떤 논리든 증명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증명된다 해서 다 믿을 수는 없다. 증명은 가장 조악한 비유에 지나지 않는다.
73. 진리는 진리를 말하는 자의 입의 순수성을 전제로 한다. 괄호 속에 묶인 중립 불변의 진리란 존재하지 않는다. 진리는 궁지에 몰린 인간의 최후 자백이어야 한다.
74. 사실을 사실대로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밝힘의 과정이 사실을 왜곡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75. 살아 있는 우리의 숙제―죽음에서 의미를 박탈하는 것.
76. 나―체계 없는 가난과 고초. 가시덩굴처럼 삶과 뒤엉켜 떨어질 줄 모름.
77. 나는 멸망하면서, 내 멸망의 시간과 맥박을 잰다. 그때 사물이 내 살가죽을 생생하게 부벼댄다.
78. 어느 날 나는 `해방되었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나는 연로(年老)하기 시작했다.
79. 관능과 허무는 동전의 안팎과 같다.
80. 죽음은 생의 연속성을 파괴하므로써, 영원에의 기도를 가능케 한다.
81. 세계는 죽음의 눈길이 닿을 때마다 천국으로 변한다.
82. 성스러움의 본질을 정면으로 묻는 것은 교양 없는 인간들의 모략이다.
83. 우리가 뼈저리게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성스러움의 선산(先山)이라는 믿음을 한없이 긍정하는 사람들은 성가족(聖家族)에 속한다.
84. 우리는 진흙덩이를 날개에 붙이고 요단을 건너는 나비들이다. 신이여, 파국을 넘어서 후광을 보내소서, 우리가 채색유리처럼 빛나겠나이다.
85. 재주가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무질서와 무체계를 자유라고 생각한다.
86. `본다'는 것은 이미 편견을 가지기를 택했다는 말이다.
87. 이 삶이 `옳지 않다'는 말은 삶에 대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옳음'이다.
88. 죽음이 있으므로 삶이 있다. 삶과 죽음은 남매간이며, 아름다움과 불결함은 부부간이다. 시―불결함의 결정(結晶)으로서의 아름다움, 혹은 무중력권으로의 진입.
89. 영원한 삶이란 근원으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나는 내 생일에 죽음을 생각한다. 잠시 영원이 내 곁에 머문다.
90. 내용에 의해 위협받고, 그 때문에 항상 긴장해 있는 형식이 아니라면, 죽어버린 형식이다.
91. 여기서 더 긴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너는 집에 못 돌아가리라!
92. 때로 우리는 구체적인 것들이 훨씬 더 추상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가령 `아버지'라는 존재는 나의 아버지면서 동시에 남의 아버지이며, 하나님 아버지이기도 하다. 이 기쁨, 견자(見者)의 기쁨, 아버지 자신도 믿지 않는 기쁨!
93. 언어가 존재의 집이라면, 언어의 집은 우리 자신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 자신의 육체이다.
94. 잔치에 흠뻑 빠져 들어가지 않는 사람만이 잔치를 기록할 수 있다. 기록―영원화.
95. 자유의 극단은 형식의 창조에 있다.
96. 모든 시 작품은 `시'에 대한 추억, 혹은 그 추억의 흔적일 뿐이다.
97. 시작(詩作)―존재의 파악일 뿐만 아니라, 존재이고자 하는 노력.
98. 상징은 은유적 관계의 소멸 위에 구축된다.
99. 나는 사물 내부의 동심원이고, 사물은 나의 내부의 동심원이다.
100.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은 자유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때 자유라는 것은 억압의 부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억압은 자유다.
101. 시인의 어리석음―`나는 바다야!'라고 물고기는 말하지 않는다.
102. 병마개를 병 속에 집어넣기는 쉬워도, 다시 빼내기는 어렵다. 이 당연한 일은 모든 것을 이야기해 준다.
103. 절망하는 순간만 우리는 살아 있다. 절망은 우리를 소유한다. 우리가 절망하는 순간, 개개의 사물은 변용한다.
104. 자명한 문학―너는 부끄러워하기만 하면 된다.
105. 창조하는 사람은 아무것도 동정할 수 없고, 동정해서도 안 된다. 공감과 연민은 독자의 것이다.
106. 삶은 끊임없는 죽음으로부터의 도피이다.
107. 아름다움은 언제나 윤리를 초월하지만, 아름다움을 만드는 행위는 어떤 행위보다 윤리적이다.
108. 죽음 혹은 부재는 우리의 존재를 완성한다.
109. 삶의 근원에 접근한다는 것은 끊임없이 삶으로부터 `성실히' 도피하는 것이다.
110.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기를 비정상으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111. 쓴다는 것이 자기 내부의 석탄을 캐는 일이라면 `지성'은 광부들의 모자에 달린 전조등과 같다.
112. 쓴다는 것은 불행히도 `잠깐' 동안만 어린이나 미치광이가 되는 것이다.
113. 모든 내기를 시에 걸자. 들려오는 기차 소리와 늙어가는 엄마까지도……사랑은 죽음으로 이루어지리라.
114. 사람이 시 없이 살 수 있는가? 그런데도 사람들은 시 없이 살 수 있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살고 있는 것은 현실에 대한 그들의 관념일 뿐이다.
115. 현실과 상상력은 원래 하나이다. 그것이 곧 근원이며, 고향이며, 변형의 원동력이며, 삶의 흐름을 흐름이게 하는 것이다. 현실은 상상력 자체이며, 서로 비교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비교한다는 것은 원래 하나인 것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116. 죽더라도 죽음에 봉사할 것. 거기서 신이 태어나고 천사가 날개를 가진다. 그러므로 죽음은 불행인 동시에 요행이다.
117. 사랑과 증오, 추악과 신성은 둘이 아니다.
118. 지금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부풀어 오르는 입술, 토실토실 살찌는 절망, 텅빈 사창가―너는 이것들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네가 될 것이다.
119. 시는 죽음의 여행일지이며, 삶의 변형의 기록이다. 거기에 네 영혼은 인장(印章)처럼 찍힌다.
120. 음(音)의 유사성에 매달리면 시가 나타난다. 그처럼 어리석음은 성스러움의 태반(胎盤)이 된다.
121. 불행은 존재의 핵심이다.
122. 괴로움 속에서 이빨은 흔들리고 시는 터를 잡는다.
123. 시는 다른 데서 올 것이다.
124. 내가 불행하고 싶은 것은 내가 원해서가 아니다. 무언가 아름답고 절실한 것이 내 머리채를 꼬나잡고 물 속에 처박아 황홀경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25. 너는 너를 슬프게 만드는 것들만큼 비정하고 잔인해야 한다. 너는 우는 사람의 발모가지를 걷어차 버려야 한다. 너의 슬픔을 그의 발모가지로 만들기 위해……
126. 불을 쬐듯이 불행을 쬘 것, 다만 너 자신의 살갗으로! 목적과 방법의 의도적 혼동. 사물의 집인 네 마음이 악기가 아니라(그보다 더 가난해야 한다), 사물 자신이 너의 악기이도록 할 것.
127. 시―부정(否定), 혹은 부정의 부정.
128. 내가 한때 시에서 말했던 것들이 이제는 뾰족한 송곳이 되어 나를 찌른다.
129. 시는 목적도, 방법도 아니다. 괴로움의 현재 진행형일 뿐……
130. 나무야, 네 눈은 어디에 있니?
131. 삶―기차역과 사창가의 인접성 혹은 인척성.
132. 창살은 네 눈 속에 있다.
133. 나는 모든 사람들이 폐품과과 폐수임을 알았다. 지금 그들 때문에 내 기억이 몹시 더러워졌으므로.
134. 시―육체에 관한 학문이면서 동시에 육체가 하는 학문. 나는 안다, 사물들은 무언가를 감추고 있고, 공교롭게도 내 몸 속에 감추고 있음을.
135. 일체가 상형문자다. 정신병자나 아이들만이 그것을 안다.
136. 시는 너의 생활을 철저히 교살(絞殺)하기를 원한다.
137. 괴로움은 신비의 다른 이름이다.
138. 시대의 문제를 껴안고 시대의 밑바닥으로 추락하기. 그리하여 어둠나라의 지도를 그려주기.
139. 사랑―전천후(全天候)의 자유.
140. 음악―몸이 진흙에 빠져 우는 소리. 음악은 천국에는 없다. 음악은 죄인의 마음 속에서만 울리는 것, 다만 완전히 울리지는 않는 것.
141. 사랑은 언제나 구체적이다. 그러므로 사랑은 `좁은 문'이다.
142. 한 여자를 위하여 내가 미리 사정(射精)하지 않으려 애쓰듯이, 세상이 만족할 때까지 내 쪽에서 임의로 세상을 신비화시키지 말 것. 현실 자신이 신비로 변할 때까지 현실을 따라가기만 할 것―마치 연 날리는 아이가 남은 실을 끝까지 풀어주듯이.
143. 시간―죽음에 연결된 도화선.
144. 목적을 버릴 것, 목적을 괄호로 묶을 것―그리하여 구체적 삶이 `삶다운 삶'을 향해 열려질 수 있도록 할 것.
145. 사랑은 대상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사랑은 언제나 대상과 합치하지 못한다. 사랑은 `결합된 사랑'조차도 대상화한다.
146. 우리가 신이나, 초월이나, 내세를 믿지 않을 때 일어나는 생의 불꽃놀이!
147. 첼란(Celan)이나 파베세(Pavese)나……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의 불행은 아름답다. 나도 그들처럼 살다가, 그들이 간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148. 색(色)과 공(空). 색을 버림이 공이 아니다. 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색을 버리지도, 간직하지도 말아야 한다. 또한 공에 이르는 모든 노력까지 버리고, 그 버림까지 버리는 것―즉 만상(萬象)과 함께 갈 것.
149. 관념은 도피 혹은 도피처다. 예술은 `구체적'이 아니다. 예술은 `구체'다.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그것!
150. 이별―예리한 칼날. 난자당한 기대. 꿈결같은 패주(敗走). 출렁거리는 말의 바다.
151. 있음이 있음으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니. 다만 무너지고 썩고 더럽혀질 뿐. 아찔한 높이. 깊은 강. 네 둘레를 또 한 차례 지나가는 부재(不在)의 바람. 그 지나감이 있음이듯이, 네가 알지 못함이 또한 있음이니, 빨리 지나가는 것 앞에선 너 또한 빨리 지나가는 것이다.
152. 예술―추억의 힘. 시간이 만들어내는 변형. 망각과 추억의 부딪침. 공기와 같은 살, 살과 같은 물. 딱딱한 이름들의 소멸.
153. 예술―양파 껍데기같이 얇은 반투명의 막.
154. 본다는 것은 버리는 것이다. 무엇이 무심결에 나가 자빠진다.
155. 시―불꽃을 튀기며 타들어가는 도화선. 재가 되는 시간. 지금 무엇이 파괴될 준비를 않고 있는가.
156. 시의 근원은 잡담이다. 혹은 잡담을 포함하는 본능과 꿈과 어리석음과 철면피함. 그러나 잡담이 곧 시는 아니다.
157. 시는 불행의 토지 위에서만 싹을 내민다.
158. 사람의 어리석음을 사랑하되, 용서하지는 말 것!
159. 두려워하라, 죽음은 네가 두려워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네가 죽으면, 죽음은 더 이상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으리라.
160. 아름다움은 죽음과 분리될 수 없다. 죽음이 있으므로 아름다움이 있다. 아름다움은 사물의 역단층(逆斷層)이며, 그것의 나이테를 보여주는 것이 죽음이다.
161. 시는 그리움의 소멸이다. 비정하라!
162. 나의 가난함은 내가 추상적이라는 데 있다. 나는 언제나 시의 그림자일 뿐……
163. 그대는 문학을 하겠는가. 그대는 이 땅의 신비를 아내로 삼겠는가. 그대는 팔려가기 전날 소의 눈망울을 간직하겠는가. 그대는 비오는 날 공중변소에 적힌 낙서들을 가슴 속에 새겨 두겠는가. 그대는 관념의 사물화를 위해 이 깊은 밤의 침묵이 되겠는가.
164. 신비는 더 구체적이다. 내가 괴로움을 맞아들여 옷을 벗을 때, 괴로움이 신비인 줄 처음 알았다.
165. 고통은 애초에 기쁨이었다. 신비가 괴로움이듯이……
166. 관념에서 사물로!―이것이 사랑이며, 괴로움이며, 괴로움 다음에 오는 행동이며, 초월을 정당화하는 길이다.
167. 말에게 내 권리를 완전히 내맡길 때 나는 자유를 얻는다.
168. 우리가 무언가를 할 때, 그것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미지의 것이 우리를 구멍 속으로 몰아넣기 때문이다.
169. 무엇을 버려도 그것은 버려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버리려는 마음이 사라질 때 그것도 함께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돌이킬 수 없음이여!
170. 내가 혼자일 때도, `관계'라는 것은 여전히 불안의 요인으로 남는다.
171. 상형문자를 해독하는 길은 `소리'를 따라 `의미'의 단층을 뛰어넘는 데 있다. 시인은 언어의 가능성을 현실성으로 바꾸어 주므로써, 절대 자유와 죽음의 무화(無化)를 성취한다.
172. 소설은 시에 이르는 길이다. 시는 신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언제나 실패하기 마련인 신이다.
173. 지성―착암기.
174. 고통―극한치의 사랑.
175. 내 마음은 꽃들이 잃어버린 집이다. 지금 보이는 꽃들은 내 마음의 그림자다. 꽃들에게 집이 없다는 것은 내 마음의 집이 없다는 것이다.
176. 나는 통로다. 해결이 아니다.
177. 시작(詩作)―지금, 이 자리에서 하찮은 것들의 정체를 밝혀, 그들의 성스러움을 되찾아 주는 것.
178. 의문, 의문, 의문…… 끝없는 질문만이 `고향'으로 너를 조금씩 밀어가 줄 것이다.
179. 모든 것은 육체가 조종한다. 그러나 정신에 의해 단련될수록 육체에서는 더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180. 구원은 결과의 문제이지, 목표가 아니다. 성스러운 것에 대한 감수성을 지나치게 주장하지 말 것.
181. 시―선물. 선물 받음에 의해 뚫리는 또 하나의 공허. 선물 안 받음에 의해 생겨나는 우울과 그리움.
182. 우리는 시를 통해 연속적으로 산다. 혹은 우리는 시를 통해 온전한 시간의 흐름을 회복한다. 이것은 허구가 아닌 `현실'이다. 배설이나 식사, 잠 이상으로 현실적이다.
183. 내가 현실로 내려가 즉물적인 소재를 취할 때마다, 패러디와 풍자가 생겨난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184. 사랑이 없는 곳에 지옥도 없다.
185. 가장 순수하게 아는 것이란 문제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즉 문제를 끊임없이 보살피고 키우는 것을 말한다.
186. 삶에 관한 근본적인 문제의 해답은 우리 몸에서 이루어진다. 그 때 몸은 버려진 악기처럼 저절로 울린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것이 정신인 줄 알고 있다. 그들의 해답은 경직되어 있으며, 자기 것도 아닌 가치체계에 종속되어 있다.
187. 나의 불안은 신의 요람이며, 나의 안정은 신의 무덤이다. 나의 신은 고뇌의 거울에 비치는 나의 모습일 것이다.
188. 나의 기쁨은 부정(否定)과 함께 온다.
189. 문명(文明)의 어머니는 죽음이다.
190. 만약 시차(時差)가 없다면 이 세상은 천국이 되었을지 모른다. 시차의 인식현상으로서의 이성. 목적과 결과가 같고, 사랑함이 사랑받음과 다른 것이 아니라면, 천국은 잃어버린 천국이 아닐 것이다. 예술의 역할은 시차의 소멸 혹은 초월에 있다.
191. 육체와 정신을 분할 대립시키는 것은 시간이다.
192. 아름다움은 시간과의 싸움이며, 우리의 육체가 시간이 부재하는 장소에 등장할 때의 놀라움과 두려움이다.
193. 사물이 자유롭지 못할 때 우리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사물에게 자유를 되찾아 주는 것은 우리의 자유를 되찾는 일이 된다. 그러나 선후 관계를 잘못 생각해서, 우리만의 자유를 되찾으려 할 때 과장된 몸짓과 억지 울음이 쏟아져 나온다.
194. 나를 살려줄 자는 나를 죽이는 내 몸이다. 어서 못 박혔으면!
195. 사랑을 알기 위해서는 증오 속으로 더 깊이 내려갈 것.
196. 베짱이처럼 열심히 노래하라. 길쌈은 염두에 두지 말고.
197. 진실은 직관 뒤에 얻어지지만, 진실은 직관 앞에 있다. 직관을 사랑하는 길은 진실을 위해 직관을 부정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의 영혼을 철저히 교살하고, 우리의 몸을 악기로 삼아야 한다.
198. 사랑, 자유, 구원을 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이승에서나, 저승에서나 죽음을 우리의 적으로 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199. 말이 우리를 끌고 가다 쇠진하면 우리가 말을 이끌며, 우리의 시(詩)로 말이 우리를 이끌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어야 한다.
200. 나는 살고 싶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살아 있는 것들, 혹은 죽은 체하는 것들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맛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무서움일 뿐만 아니라, 지겨움이며 답답함이기도 하다.
201. 신은 새로운 체험 속에 머문다.
202. 너는 네 몸이 최후의 풍자가 되어야 한다. 즉 네가 풍자 속에 갇혀서는 안 된다.
203. 죽음―변치 않는 아득함, 한없이 떨어져 내려도 발디딜 데 없음. 내게는 언제나 과장만 남고, 이윽고 나는 소모된다.
204. 사랑의 부재―그것은 적이 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의 부재에 대해 묵인하는 것, 그것이 적이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적은 너의 내부에 있다. 너는 적이다.
205. 고향 찾기―죽음을 다시 기억하는 것. 우리들의 소멸을 다만 응시하는 것. 혹은 심연에서 오래 잠수(潛水)하기.
206. 사랑―자기학대(自己虐待). 혹은 자기를 시(詩)로 변화시키는 일.
207. 사랑의 방법을 찾는 것은 이미 사랑에 대한 배반일 것이다.
208. 절망에서 멀어질수록 풍자는 더 커진다.
209. 사랑 없이는 잔인할 수도 없다.
210. 초현실주의는 다리[脚]의 미학이다. 동사(動詞)들의 난무와 난장판. 그러므로 명사(名詞)로!―샤갈이 말하는 `근원적 리얼리즘'으로.
211. 음담패설과 시―그 양극(兩極)에서만 나는 자유롭다.
212. 낭만주의자들의 오류는 꿈이 꿈되게 하는 조건들을 고려하지 않은 데 있다.
213. 지극히 윤리적일 것!―지금, 이 자리에서 너의 허리를 돌려 끝내줄 것!
214. 내가 일회적이기에, 나 아닌 다른 것들도 일회적이다. 그러므로 살아 있음은 죄(罪)다.
215. 내가 행동했다는 것을 아는 것은 행동한 다음의 일이다. 너무 오래 생각하고 주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쫓겨나지도, 달아나지도 못한다. 생각은 나의 감옥이다.
216. 나는 어둠을 보았고, 그로 인해 시를 알게 되었다. 내가 어둠을 떠나는 날―그것이 어둠 스스로의 모순에 의해서든(구원), 내 스스로 어둠을 망각하든(허위)―나는 시를 잃게 될 것이다. 어둠이 만든 자명한 이분법과 이원론. 등대지기 카프카(Kafka)!
217. 말이 나를 괴롭히도록, 나는 말을 한다.
218. 내 몸은 악기다. 뜯어다오, 신(神)이여!
219. 내가 부정하면 신(神)은 긍정하고, 내가 긍정하면 신(神)은 부정한다.
220. 실락원(失樂園)―우리는 우리 자신의 `꾀'에 빠져 있다.
221. 육체는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지만, 우리가 완전히 절망하는 것을 금한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시(詩)이므로.
222. 소멸해 가는 것들만이 사랑할 수 있다.
223. 사랑은 변형의 힘이다.
224. 문학은 언제나 `……했으면'으로 남는다. 승복하라!
225. 살펴 보아라, 울지 않는 것들 가운데 살아 있는 것도 있다.
226. 나는 공중에 떠있다. 어느 나뭇가지에든 생피붙고 싶다!
227. `근원'은 늘 가깝게 느껴진다. 아니다. `근원'은 늘 가까이 있다. 다만 도달할 수 없을 뿐……
228. 시작(詩作)―대립의 허위를 알면서도 더욱 성실히 대립의 계략에 빠져 들어가는 어리석음.
229. 변용은 사랑 속에서 이루어진다. 변용은 사랑에 뒤따라 온다. 그러나 변용을 위해 사랑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사랑을 위해 변용을 감수한다고 거짓말해야 한다.
230. 피카소―청색시대에서 큐비즘으로. 사랑의 진로 수정. 사랑 자체의 변용.
231. 사랑―육체의 소모성에 대한 보상.
232. `무(無)'는 또 다른 환상에 불과하며, `시대'는 변형의 위대한 고향이 된다.
233. 아픔, 사랑, 본능―죽음으로 가는 모든 길은 꿈꾸는 독사(毒蛇), 넘실거리며 퍼져 나가는 두려움. 멀고 깊은 어둠!
234. 삶은 죽음을 비추는 거울이다.
235. 지당한 것은 자기가 지당함을 언표(言表)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족의 상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자기집중과 엄격한 윤리와 몰아(沒我)가 필수적이다.
236. 좋은 노래는 언제나 `절정'의 노래이다.
237. 우리가 사물에 의미를 준다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부여한 의미―투명한 영혼의 빛다발―를 어렵게 되찾아내는 것을 말한다.
238. 문학은 껍데기다. 그럴 듯한 포즈다. 오, 문학이 신부(新婦)가 되는 날이 왔으면!
239. 형이상학은 인문과학의 핵심이다.
240. 생음악(生音樂), 생방송(生放送), 생화(生花)―모든 것은 죽어 있다. 살아 있는 척할 뿐이다. 우리들의 문명―자벌레들의 연애.
241. 죽음은 생을 완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242. 죽음에 대한 조바심이 우리의 생을 옻칠한다. 언젠가 그 위에 나타날 화조월석(花鳥月石)의 자개무늬!
243. 사랑은 껍데기다. 가장 민감한 껍데기. 낭심의 피부처럼 유별나게 부드러운 껍데기.
244. 절망과 싸우기 위해서는 임의의 절망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마치 산불을 끄기 위해 맞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즉 스스로의 몸에 불을 질러, 세계의 `사리(舍利)'를 얻어내는 일.
245. 신이 우리 시선에 불을 붙여 주기에, 우리는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불태운다.
246. 자유는 강자(强者)의 호교론(護敎論)에 불과하다.
247. 고통―가령 소철나무를 키우기 위해 이따금 쇠못으로 찌르기도 한다.
248. 인간―잘 익은 복숭아에 파고드는 벌레.
249. 보이는 것들은 안 보이는 것들에 대한 모반(謀叛) 혹은 시역(弑逆)이다.
250. 예술가는 손으로 말한다.
251. 재능이란 `관심'의 다른 표현이다. 단 집요한, 목숨을 내건 관심이다.
252. 대상은 내가 죽는 것을 보고, 그 순간에야 입을 연다. 대상의 말을 듣기 위해 나는 순간 순간 죽어야 한다.
253. 변형은 시의 본질이다. 나는 시각(視覺)을 시각(視角)으로 이해한다.
254. 시는 음영(陰影)이다. 그러나 실물 없는 음영(陰影)이 따로 있겠는가.
255. 생명은 생략에서 온다. 생략은 과장의 일종이다. 여기서도 한 마리의 양을 구하기 위해, 한 무리의 양을 도살해야 한다.
256. 생명은 눈에서 대상으로 옮아간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상이 눈에게 눈웃음친다고 생각한다.
257. 성(性)과 죽음은 생의 이정표 혹은 풍향계이다.
258. 생―가시관(冠) 예수의 축축한 눈으로 음화(淫畵)를 뒤적이다.
259. 어떤 시점(視點)에서 우리는 이 가변적인 질서를 몰락시켜야 한다. 그때 그 폐허 위에서 우리들의 발이 떨리며 말을 할 것이다.
260. 신은 보잘것 없는 내 육체에 집중한다.
261. 강조하는 것은 이미 진실을 배반하는 것이다.
(1977년)
262. 사람이 사람답게 죽지 못했을 때, 그것을 개죽음이라 한다. 그러나 개는 왜 개같이 죽어야 하는지…… 개가 개같이 죽는 한, 사람이 사람답게 죽을 가능성은 없다. 개죽음으로서의 구원.
263. 시(詩)―정신의 수음행위(手淫行爲). 그 옅은 피로감과 허탈감과 죄의식.
264. 거리(距離)가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은 `이미지'이며, 가장 너저분한 것은 `동정(同情)'이다.
265. 물에 빠져 지푸라기 하나 잡을 수 없을 때, 너는 물에 매달리는 것이다. 또는 삶―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 얼마간 헤엄쳐 나가기. 꿈과 현실의, 대사(臺詞)와 지문(地文)의 의식적인 혼동. 곧 물을 먹을 시간이 온다.
266. 삶을 삶답게 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삶의 환부(患部)를 찾아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이 마음에도 없는, 무작정의 `오디세이' ―괴로움은 죽음이 가져갈 것이다.
267. 설사 그것이 너의 삶이라 할지라도 너의 것은 아니다. 너는 삶을 사랑한다. 너는 그것을 껴안을 수 없다……
268. 인식(認識)은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어놓을 수 없다. 인식의 즐거움은 노는 즐거움이 아니다. 놀리는 즐거움이다.
269.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대상의 윤곽을 지우는 길이다. 아니,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때, 그는 이미 우리 주위를 흐르면서 지워져 가는 부분적인 표정들을 보여주는 것이다.
270. 가능성을 하나하나 포기하면서 나는 마침내 나를 포기한다. 왜냐하면 나는 가능성 외의 다른 것이 아니므로.
271. 사랑은 처음에 온다. 지혜가 끝에 오는 것과 같이. 처음이든 끝이든 모든 공식은 감옥이다.
272. 사는 것,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사느냐, 역시 문제가 아니다. 삶 근원적인 병.
273. 집은 집이 없는 마음이다.
274. 사랑, 시간, 우연, 허무는 각기 다른 것이 아니다.
275. 천국은 지옥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276. 죽음을 다시 한번 죽을 때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물질이 될 것이다.
277. 사랑은 이름을 싫어한다. 사랑은 무언가이다. 그러나 사랑은 이름을 이름되게 할 것이다.
278. 열거는 사랑의 방법이 아니다.
279. 정말 무서운 것은 자기 자신이다. 밀려가는 물처럼 자신의 옹벽을 갉아먹는 삶. 눈을 뜨라, 눈을 뜨라! 어려운 시절이 닥쳐올 것이다.
280. 고통은 앞서 간다. 고통해 보고 싶다는 생각의 사치. 고통이라는 말 또한 허위의 껍데기일 것이다. 비참하고 싶은 사람의 비참함!
281. 안정은 불안 속에서 온다. 폭풍의 눈 속의 새의 고요한 눈, 철들면 잘 안 보인다.
282. 시―원래 온 길을 다시 침범해 들어가는 즐거움.
283. 시―종이에 붙인 불. 기대보다 짧은 시간, 암호들의 탈출.
284. 반성할 수 있는 것만이 살아 있다. 시도, 혁명도……
285. 내가 무언가를 열심히 관찰하려 하면 벌써 자세가 생긴다. 순수하지 않다.
286. 나는 잠자는 여자라면 건드리지 않겠다. 간혹 건드리기도 한다. 깊은 밤, 손들이 제멋대로 놀기 때문이다.
287. `그대'라는 출구를 막는다. 나 자신이 사라진다. 그대는 나의 가능성이다.
288. 눈 쌓인 들판을 걷듯, 너는 최초의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간다. 불 곁으로 다가드는 날벌레처럼, 너는 언제나 싸움의 곁에 있을 것이다. 투명한 눈으로 세계에게,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며.
289. 정신의 싸움은 육체를 쑥밭으로 만들지만, 육체의 싸움은 정신을 투명하게 만든다.
290. 얼음으로 집을 짓는 에스키모. 나는 `위험'으로 나의 집을 짓는다.
291. 문학적 고통은 정당화될 수 없는 고통이다. 혹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철저한 확신 아래서만, 고통 축에 낄 수 있을 것이다.
292. 본다는 것은 `몸을 깨운다'는 말이다.
293. 이별, 그 필사(必死)의 접목(接木).
294. 시―완성된 이별의 체험. 이별―이른 아침의 원족(遠足) 준비.
295. 시―축제 준비, 혹은 축제 뒤치닥거리.
296.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고통의 응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마치 전압이 극도에 오르면 퓨즈가 끊어지듯이.
297. 단순한 사람들에 대해 느끼는 양가감정(兩價感情). 나쁜 질문을 받았을 때에는 나쁜 질문을 한 사람의 비위를 맞춰 주는 수밖에 없다.
298. 질문을 할 때 나는 열린다. 질문받는 사람에게 나의 자유와 불안을 함께 나누어 줄 것.
299. 나무는 초록에서 빨강으로 건너간다. 혹은, 나무는 빨강에서 초록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
300. 사랑이란 울고 싶을 때 미친 척하고 한번 웃어 보는 것. 나머지는 배설이고 물리(物理)이다.
301. 현실과 초월, 형이상과 형이하의 이분법은 종주국의 것이다. 식민지 문화, 예속국의 사고(思考)에는 그런 것이 없다. 즉 신비는 현실이고 형식은 내용이다.
302. 돌의 내부는 안개. 안개의 목소리는 개의 방울소리. 모든 것이 갇혀 있다. 갇힌 가운데 모래밭에는 땅콩이, 진흙 속에서는 고구마가 자란다. 꽃피는 것들은 구속을 자유로 안다.
303. 식물의 이식, 병균의 전염―이 모든 것들이 사회변동과 관계 있다. 고추와 담배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임진왜란 때이다. 사물과 인간의 만남. 그 만남의 현장인 세계.
304. 시의 묘미는 그것이 자족적인 유기체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비자족적인 모험이나 `눈물짜기'도 일단 던져지면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흙이 입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305. 언어는 세계의 창. 단절조차 연속의 한 부분이다.
306. 사회는 육체의 표현이다. 죽음은 독재의 합리화 속에 숨쉰다.
307. 시―위험한 놀이. 달착지근하고, 토할 것만 같은……
308. 시인이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가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유사(類似) 진실을 형상화하므로써, 진실을 은폐시키기 때문이다. 진실을 고통이라는 말로 바꾸어 보아도 동일한 결과가 된다.
309. 고향, 행복, 시―이런 말들의 허위성. 그러나 그것 없이는 우리가 살 수 없는 거짓말. 그러므로 거짓말의 진정성!
310. 지금, 여기―그것 없이는 행복해질 수 없다. 지금, 여기―시간과 공간의 연속성의 부정. 행복은 부정을 `통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행복은 `부정으로서' 존재한다.
311. 시를 위해서라도 시에 어떤 특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 시는 시를 제외한 세상 모든 것들의 들리지 않는 숨소리이다. 너와 나와 우리의 숨소리이다.
312. 나는 언저리를 사랑한다. 언저리에는 피멍이 맺혀 있다.
313. 내게는 중간이 없다. 조루(早漏) 아니면 지루(遲漏)다.
314. 들판 위에 불씨를 붙인다. 잘 하면 산불이 되고, 산불이 되더라도 적당한 선에서 불은 꺼진다. 혹 불이 전혀 안 붙을 수도 있다. 시가 산문을 태우고 괴롭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시가 아무리 산문을 잡아 먹어도 언제나 산문 품속에 있다. 그러므로 시는 얼마든지 난장판을 벌여도 괜찮으리라. 공인된 재롱, 혹은 불장난―그것이 시의 약점이고, 모든 예술의 핵심이게 하는 요소, 혹은 원동력이다.
315. 사실 어떤 대상에 대한 불만은 어떤 대상에 내가 준 관념, 즉 나 자신의 일부에 대한 불만이다. 적은 언제든지 내편이다.
316. 내게 천국이 가능하다면, 내가 먹는 푸성귀나 소, 돼지에게 우선 천국이 있고 난 다음일 것이다. 삶은 근원적인 죄다. 인간이 개보다 낫다고 하는 것은, 그리하여 인간과 개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는 것은 사랑과 성욕을 분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천국은 내가 살아있으므로 해서 불타 사그라진다!
317. 나는 사람들이 왜 그런 걸 시라고 쓰는지 모르겠다. 내가 잘못되었든지, 아니면 그들이 잘못되었든지……
318. 형이상학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 현실 속에 초월을 맞아들이기. 애초에 이 시도가 그릇된 것은 아닐는지?
319. 마음 속에 동트는 말들, 떠오르는 풀잎들.
320. 비에 젖은 나뭇잎을이 죽은 붕어처럼 길 위에 떠 있다. 버들붕어. 네 입 속에서 아직 나오지 못한 말들을 뱉아라, 네 하늘이 더욱 어두워지도록.
321. `수입 고추'는 얼마나 검고 어둡고 추운가.
322. 내가 죽음을 잊고 난 다음부터 삶은 슬프고 괴로운 것이 되었다. 죽음은 삶의 눈이다. 슬픔과 괴로움은 일종의 안질(眼疾) 같은 것이다.
323. 하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더 자세하게 적자. 나는 내가 살아온 하늘을 있는 그대로 기록할 것이다.
324. 이선생의 말―아무리 논픽션이라 하더라도 고생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이 일등이 될 수는 없잖아요? 그러므로, 문학―근원적인 현실 배반.
325. 죽음과 현실. 이 짝이 안 맞는 배필(配匹)의 난장판―문학.
326. 서정시인은 비정해야 한다.
327. 금수강산(禽獸江山).
328. 곽선생의 말―시는 경험을 그리 필요로 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체험은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체험이 우리를 필요로 한다. 언제나 생이 문제되기 때문에.
329. 아픈 것들, 탈구된 것들, 제 정신이 아닌 것들 속에는 삶이 숨쉬고 있다.
330. 시는 아픈 사실들을 이야기하므로써 그 사실들이 `시 속에서' 더 이상 아프지 않게 한다. 씌어진 것들은 내던져진 것들이다. 그것들은 욕망과 욕망의 대상, 깨끗한 것과 추한 것의 구분 저 너머에 있다.
331. 누군가 이것을 불행 혹은 상처라고 얘기했을 때, 이미 그것은 그것이 아니다. 상처는 얘기될 수 없는 것이고, 상처가 파악되었을 때는 망각이 전신을 감싼다.
332. 부정의 예술―천국을 얘기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현실만을 그대로 드러낼 것. `죽음'을 추적하기 위해서는 `생'의 무의미와 부조리를 그대로 드러낼 것. 질문만이 `열린' 해답일 수 있다.
333. 네가 앉았던 자리는 너!
334. 1978년 10월. 내가 생각하기로 이제 개인은 없다. 있다면 연약한 핏덩이가, 짓밟힌 땅이…… 어느 시대에나 곤봉과 수갑이 있었지만, 지금처럼 아름답게 만들어진 적은 없다.
335. 누군가 빈정거린다. `동정하고 있어?' 그래, 동정한다, 어쩔래? 아직 시(詩)가 남아 았다면, 집 없이 떠도는 누이이기에.
336. 삶은 죽음의 미끼다. 속아서는 안 된다.
337. 일상생활은 현실이면서 동시에 현실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의 근원을 은폐하므로써 현실이 아니며, 그러나 은폐 그 자체로서 현실이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갖는 양가감정(兩價感情) 또한 이에 기인한다.
338. 현실 자신이 `내가 상징이다!'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현실을 신비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러나 누가 현실이 말하는 것을 보았는가?
339. 꿈이 더 이상 현실이 될 수밖에 없는 막다은 골목으로 너의 삶을 몰아갈 것. 그러나 끝내 꿈의 모습을 보여주지 말 것.
340. 문학―현실의 음화(淫畵).
341. 모든 것은 상처다. 조금만 파헤쳐도 고름이 나온다.
342. 눈가리개로서의 문명―악몽은 감추어진 현실이다.
343. 아름다움은 자유와 안일과 불성실과……그 모든 것에 대한 성실이다.
344. 시는 세상과 우리 사이의 `관계 맺음'이다.
345. 시론(詩論)은 시의 문이다. 우리는 문을 통과하지만, 문을 등에 업고 들어가지 않는다.
346. 형태는 정신의 흔적이다.
347. 예술은 잡으면서 동시에 놓치는 기술이다. 그것은 예술가를 무덤까지 몰고 가는 양심가책이다.
348. 삶은 죽음의 고향이다.
349. 위험부담이 없는 해답은 올바른 답이 아니다.
350. 시란 `시'와 산문의 싸움이며, 그 싸움의 현장이며 파장이다.
351. 언어의 절대적 자유는 언어 자신의 죽음이다.
352. 허무의 시는 극단적인 희망의 시이다.
353. 소리는 의미의 두꺼운 얼음장을 깬다. 자유의 이행! 그러나 소리가 깨어질 수도 있다. 기교주의자들은 그것을 모른다.
354. 풍자―적이 던져주는 미끼. 사랑이라고 오인하지 말 것.
355. 질문―칼끝. 의미와 우연을 도려내고 영원히 푸른 깃발을 꽂는 것. 너는 더 깊이 찔리기 위해 질문을 향해 달려든다.
356. 여자―목이 없고 얼굴은 동체(胴體)보다 더 엷게, 뒤에 처진다. 브래지어를 걸친 다리. 그처럼 변형하라, 해꿎이하라, 병들어라! 너의 재산은 명령법으로 남는다.
357. 몰아경에 대한 의식은 몰아경이 아니다.
358. `근원'은 우리가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운명이 우리로 하여금 만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것이다.
359. 시작(詩作)―고향으로 가는 첫 걸음, 혹은 고향에서 떠나는 길의 첫 걸음.
360. 시작(詩作)―의미를 형식으로 전화시키는 일의 불가능성. 모든 불가능성의 온상은 죽음이다.
361. 시작(詩作)―존재를 이해할 뿐만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이고자 하는 노력. 혹은 존재 이해의 몸부림으로서, 존재 그 자체이고자 함.
362. 형식의 완성―신성(神性)의 부활. 형식은 의미를 동결시키면서, 의미를 극대화한다. 혹은 우연을 제거하기 위한 우연의 활용.
363. 언어의 파괴―존재와의 일치.
364. 시는 충격이며 허망이다―우리를 여기 있게 하는 시!
(1978년)
365. 시―주위의 모습들을 한번, 돌이킬 수 없음의 지경으로 끌어올리는 것. 혹은 순간적인 포옹―그때 사물이 가만히 내쉬는 숨소리……
366. 사랑은 상처와 함께 온다. 상처, 혹은 충만한 사랑.
367. 상처의 상처다움은 `돌이킬 수 없음'에 있다.
368. 회복은 재발(再發)의 완곡어법이다.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의 단애(斷崖)에서 씌어지지 않은 것들은 무효다.
369. `문학'을 통해서만 용서할 수 있고, 용서받을 수 있다.
370. 좋지 않은 시인의 사랑을 받는 여자는 얼마나 안 행복할까?
371. 사랑―어떤 도립(倒立). 오목렌즈를 통해 보는 뒤집힌 세상. 사랑한다, 네 구두창 뒤축에 진득이는 햇빛까지도……
372. 글쓰기―낮은 포복. `그'는 우리가 지쳐 숨넘어 갈 때야 비로소 `얘들아, 일어나 밥먹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다, `그'는 우리가 숨넘어 가기 직전에 잠깐 보는 환영(幻影)이다.
373. 카프카(Kafka) 극복의 두 가지 길―브레히트(Brecht)와 부버(Buber).
374. 진실을 행하는 방법이란 있을 수 없다. 진실이 곧 방법이기 때문이다.
375. 진실 혹은 사랑을 위해 그것에 접근하는 방법을 구한다면, 그것은 이미 부분적인 진실 혹은 부분적인 사랑이 되고 만다. 속죄나 시작(詩作)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말해질 수 있다.
376. 나는 아무것도 썩게 하지 않았는데 내가 집는 것들은 모두 썩어 있다. 썩은 것들을 썩었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썩은 것들은 적어도, 썩을 수 있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썩을 수 없는 것들만이 썩힐 수 있다.
377. 사랑의 방법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는가. 방법을 가진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부버(Buber)의 말대로, 우리는 이미 사랑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378. 어떤 누구도 범례(凡例)로 사용될 수 없다. 내가 `그'를 사용하면 또한 `그'가 나를 사용하는 것이 된다.
379. 이 불안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다른 불안과 손잡고……
380. 지금 괴로워하는 것들은, 그러나 아직 괴로워할 수 있는 것들이다. 괴로움이 깊으면 사랑도 깊으리라.
381. 더럽혀진 것에 대한 사랑은 그러나 순결할 수 있다. 사랑은 `무엇'에 대한 관계이지, `무엇'은 아니기 때문이다.
382. 행복의 시초는 무엇이든 다해 주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다해 줄 수 없음에서 오는 괴로움이다. 그때 사람은 영원히 산다.
383.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최선을 다하여 더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것이 육체의 죽음이든 마음의 죽음이든, 죽음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384. 지금까지 내가 조금이라도 `관찰'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어리석음의 결과이다.
385. 글이 씌어지는 것은 사랑이나 증오의 한복판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뒤집힘, 혹은 돌이킴에 의해서이다. 뒤집힌 것들은 뒤집힐 수 있는 것들이고, 그러므로 끊임없이 뒤집혀져야 한다.
386. 사랑의 전제(前提)는 떨어져 있음이다. 시―간신히 맞붙은 상처를 다시 한번 찢어 발기기.
387. 사과가 썩은 것은 사과 잘못이 아니다.
388. 한 사람의 상처는 모든 사람의 상처다.
389. 우리들의 약혼―서로 비켜 지나가며 웃는 두 개의 돌, 공중에서……
390. 잊혀져야 할 것은 정당한 방법으로만 잊혀질 수 있다.
391. 상처는 이미 거기 있다. 우리는 뒤늦게 알아차리거나, 끝내 알아채지 못할 따름이다.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상처―고갈되지 않는 샘, 영원한 집!
392. 상처의 깊이는 사랑의 깊이다. 한줌의 독(毒)이 세상 온 우물을 더럽히듯이, 한치 깊이의 사랑은 세상 온 마음을 적실 수 있다. 사랑―상처의 반전(反轉.)
393. 기도는 언제나 반전을 위한 기도이다.
394. 상처가 처음으로 왔을 때의 그 아픔을 순간 순간 되살려 놓으며 견디기, 못 견디기…… 이꼴 저꼴 다 보고 늙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따로 있을까.
395. 사람은 죽어도 삶은 죽지 않는다. 그의 치욕이 그의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듯이……
396. 망설임―글쓰는 순간을 제외한 모든 순간의, 글에 대한 망설임.
397. 우리는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만을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삶은 앎이다. 항상 열려 있기를! 인식은 행위의 처음이요 끝이다.
398. 상처받지 않는 것들은 치유될 수도 없다. `이 세상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하는 감탄은 `상처받지 않는 자들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었을까?' 하는 탄식과 다른 것이 아니다.
399. 상처받을 수 있는 것만이 상처받는다.
400. 사랑은 언제나 죽음을 낳는다. 죽음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우리는 셋이서 산다―너와 나, 그리고 파산(破産) 혹은 끝장.
401. 서투른 말들, 벌레 먹은 말들로 너를 해방시킨다. 족쇄와 더불어 있는 해방.
402. 상처받은 것들의 입은 아름다워라! 그 속으로 날벌레들이 기어 들어간다.
403. 족쇄를 해방시키지 않는 한, 사람을 해방시킬 수는 없다. 그런데 족쇄는 해방이라는 것을 모르고, 알 필요도 없다.
404. 그는 의사다. 그는 아프지 않은 사람들에게 아파야 할 곳을 가르쳐 준다. 그들이 아프기 시작하면 그는 약을 주지 않는다. 그의 유일한 처방은 그 아픔 아닌 다른 아픔이 그 아픔을 낫게 하리라는 것이다.
405. 그는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말(馬)이다. 그의 갈기는 사랑을 향해 나부낀다.
406. 사랑은 환상의 반대편에 있다. 사랑―환상이라는 얼어붙은 호수를 가르는, 카프카의 도끼날.
407. 무서운 것은 아픔을 무력하게 만드는, 아픔 바깥의 습관이 아니라, 아픔 속에서 낮잠 자는 아픔 자신의 습관이다. 적은 자기 자신이다.
408. 사랑은 환상을 깬다는 점에서 하나의 인식이다. 사랑의 인식은 세상을 환상과 맞바꾼다.
409. `사이'라는 것. 나를 버리고 `사이'가 되는 것. 너 또한 `사이'가 된다면 나를 만나리라.
410. 상처는 죽음의 삶이고, 망각은 삶의 죽음이다.
411. 가장 안전한 집은 무덤이다. 그곳에서 사람은 해바라기처럼 웃으리라.
412. 그는 평생 동안 괭이로 땅을 판다. 그가 죽으면 사람들이 그곳에 그를 묻으리라.
413. 그는 병(病)이다. 그는 말한다―아프다는 것은 건강함의 징조이다.
414. 괴로움의 끝에 늙음이 온다. 네가 청춘이라 부르던 것은 늙음의 껍질이었다.
415. 산다는 것은 이곳에 죽음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희망―혹은 마른 번개.
416. 기적(奇蹟)은 나무에서 떨어지다 공중에서 멎어 있는 사진속의 친구처럼 유예되어 있다. 기적은 `예감할 수 없음' 속에서만 존재한다.
417. 모든 위대한 것들은 위독하다.
418. 나는 상처 속에서 아이들을 낳는다. 상처는 남자들의 자궁이다.
419. 상처를 건드릴 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치면 아무렇지도 않지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스치면 무두질하는 아픔. 그때의 환영(幻影)―유리창을 유리창인지 모르고 전속력으로 날아와 부딪치는 새.
420. 불안을 내 몸 바깥에서 떠돌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불안의 집이요 옷이다.
421. `꽉 막혀 있다'는 말은 불안이 찾아들 틈새가 없다는 말이다. 불안은 피안의 꽃이요 피안의 밥이다.
422. 정신의 영역에서는 `앞으로 나아감'이 있을 수 없다. 탐구는 도로에 그친다. 예지라는 것은 더 나아갈 수도, 물러설 수도 없음에서 오는 탄식이다.
423. `죽음에 대한 연구'는 죽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속한다.
424. 사랑은 자기 자신만으로 세상을 감쌀 수 없기 때문에 아파하고, 아픔은 자기 자신만으로 세상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랑을 부른다. 이것은 아픔으로 가는 길인가, 사랑으로 가는 길인가?
425. 고통의 긍정적인 측면―고통은 살아 있음의 징조이며, 타락과 질병과 무지에 대한 경보이며, 살고 싶음과 살아야겠음의 선언이다.
426. 손에 들어오는 행복은 불행이다.
427. 이곳에 변혁이 오는 순간부터 다른 곳에서 무언가 곪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보이지 않는 상처와 싸워야 한다.
428. 나의 위치는 지금까지 알려진 상처들로부터 표정된다.
429. 나의 적인 공허감은 또 얼마나 다정스럽고 부드러운가.
430. 용서는 저버림, 혹은 내팽개침의 미화적(美化的) 표현일 뿐이다.
431. 나는 쇄빙선(碎氷船)이다. 내가 조금 더 늦게 오면 그대의 바다는 얼어 붙으리라.
432. 혼신(渾身)―그것은 벌써 정신이다. 정신이 아니라, 육신이다.
433. 그대, 불안의 방―이제는 책들과 쌀자루와 옷가지로 가득차 불안이 들어와 누울 틈이 없는 그대, 그러나 한때는 불안의 방이었던 그대!
434. 암담함에 관하여. 푸른 담배연기, 푸른 암담함에 관하여―우리가 한때 여기 있었음에 관하여. 그러나 언제 우리가 여기 있었던가?
435. 결혼하게 되면, 하나 남은 길마저 끊어져 버린다.
436. 시는 순간적인 몸짓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437. 절망함으로써만 존재하는 비결. 한쪽 발을 땅에 내리므로써, 비로소 다른 쪽 발이 공중에 선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438. 형식은 생에 대한 배반이다. 모든 이해나 설명이 사실의 왜곡이듯이. 왜곡이 있음에 진실은 항상 저편에 `있도다'. 모든 것은 왜곡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므로 형식이 또 다른 삶이 되는 순간까지……
439. 시는 나의 운명이다. 시가 지속하는 짧은 순간만큼 밝혀지는 운명―나는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다. 다만 마주설 뿐이다(막막함. 고요한 통곡. 연이은 기절. 까마득한 나뭇가지. 생매장. 남의 바다를 떠도는 몇 점의 불빛. 캄캄함. 캄캄함. 캄캄……).
440. 그는 위대하다, 상처받지 않을 만큼 위독하다.
441. 삶―감시(監視) 외의 그 무엇도 아닌(적을 경계하다 보면 종이 울린다. 일렬로 퇴장!).
442. 절망하지 않음은 절망되지 않은 것에 대한 무관심이므로 진실한 삶이 아니며, 절망함은 절망되어진 것에서 떠나 있으므로 진실한 삶이 아니다. 오, 몸 둘 바 없음!
443. 행복, 그것은 진실 `옆에' 있음을 말한다. 진실 속에 있거나, 진실 너머에 있으면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444. 진실에서 멀리 떠남조차 가까이 있는 것이다. 오히려 멀리 있음이 가까이 있음이다. 우리의 행복은 진실과 하나될 수 없음에서 오는 불안이다.
445. 너는 십일월의 이곳의 삶에 대해서 노래하지 않았다. I sentence you to death by drowning! (Kaf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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