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에 감추어진 에피스테메 혹은 해체
- 푸코와 데리다에 있어서의 회화의 은유성
차례
들어가는 말
I. 푸코 — 1) <시녀들>, 2) 재현의 재현, 3) 에피스테메
II. 데리다 — 1) <부타데스 혹은 그림의 기원>, 2) 눈멂-드로잉의 기원,
3) 흔적, 차연, 해체
III. 가시성
나가는 말
들어가는 말
미셸 푸코의 난해한 철학서 <말과 사물>이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얻은 것은 벨라스케즈의 그림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를 분석한 제1장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문의 주제들을 예고하는 일종의 발문으로 쓰여진 이 화려한 문학적 글쓰기가 어려운 철학 텍스트를 가까이 느끼게 했고 뭔가 신비한 매력으로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철학적 주제에 대한 은유로서 회화를 이용한 예는 물론 그가 처음은 아니다. 헤겔도 <미학 강의>에서 주관성과 집단 정신과의 분리를 보여주기 위해 렘브란트의 <야경(夜警)>을 분석한 바 있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진실이 존재 폭로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방 고흐의 <구두> 그림을 예로 들었고, 메를로-퐁티는 <눈과 정신>, <가시적인것과 비가시적인것>에서 세잔느의 <생뜨 빅투아르 산>을 다루었다.
그러나 철학과 미술의 관계는 후기 구조주의에서 그 어느때보다도 활발하여 질 들뢰즈는 영국의 현대 화가 프란시스 베이콘의 그림을 분석한 <감각의 논리>를 썼고, 데리다는 <그림 안의 진실>에서 칸트의 미학과 함께 발레리오 아다미, 방 고흐의 그림들을 분석했다. 그는 또 1990-1991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맹인들을 그린 인물화만을 모아 ‘맹인들의 기억’이라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같은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푸코는 나중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서 르네 마그리뜨를 본격적으로 논했다.
철학자들이 마치 재판관처럼 높은 자리에 앉아 인간의 사유를 좌지우지하던 대문자 P의 철학의 시대는 가고 소문자 p의 philosophy가 문학 미술등과 나란히 인간의 문제를 논하고 있다는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1) 의 말처럼 문학에 이어 미술도 이제 철학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되었다.
수많은 철학과 미술의 만남 중에서 우리가 푸코와 벨라스케즈의 그림, 데리다와 쉬베의 그림만을 집중적으로 살펴 보는 것은 거기서 현대 철학의 중요한 화두중의 하나인 가시성의 문제를 보았기 때문이다.
I. 푸코
1) <시녀들>
벨라스케즈(Diego Rodriguez Velasquez, 1599-1660)의 그림 <시녀들>(Las Meninas)은 에스쿠리알 궁의 한 살롱에서 초상화 작업을 하는 화가와 옆에 서 있는 마르가리타 공주 및 시녀, 시종, 궁인, 난장이들을 그린 그림이다. 화가는 벨라스케즈 자신이다. 그러므로 화가의 자화상이라고 할수 있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화가, 모델, 관객이 회화의 3대 기능이라면 이 그림은 이 세 요소가 각기 두 겹으로 되어 있는 복잡한 구조이다.
화가와 공주를 포함해 전경에는 여덟명의 인물과 개 한 마리가 있고, 후경에는 문틀에 서 있는 한 남자의 실루엣이 있다. 좀 작게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문틀 안의 사람도 역시 같은 장면 속의 인물이므로 이 그림의 등장 인물은 모두 9명이다. 그런데 후면 벽의 액자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보이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있다. 이들까지 합치면 그림 속에는 총 11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9명의 인물이 실재의 사람인 반면 액자 속의 두 사람은 그저 이미지일뿐이다. 그림 자체가 2차원의 평면 위에 그려진 이미지인데, 액자 속 인물들은 이미지 속의 또 이미지인 셈이다. 이 희미한 두 사람의 이미지 안에 벨라스케즈 그림의 수수께끼가 있다. 푸코의 방대한 철학이 시작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액자가 그림인지 거울인지 얼핏 헷갈리지만, 같은 벽 위쪽에 걸린 커다란 두 개의 그림이 깊은 어둠에 잠겨 희미한 빛의 얼룩만 보이는 데 비해 작은 액자 속에서는 두 사람의 형체가 또렷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이것이 거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당시 네델란드 회화 기법에서 거울은 반복의 역할을 했다. 다시 말하면 그림 안에 그려진 것들이 해체되거나 재구성되어 거울 속에 다시 그려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그림에서 거울은 1차적 그림의 아무것도 반복하고 있지 않고, 장면에 전혀 보이지 않는 두 인물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거울 안의 실루엣은 그림 안의 모든 인물들이 바라보고 있는 대상이다. 그림 속의 장면이 앞으로 더 확대되었다면 아마도 뒷 모습이 보였을 터이지만, 화가가 그림의 장면을 거기서 정지시켰으므로 그림의 밖에 있게 된 인물이다. 이들은 다름 아닌, 그림 속의 화가가 화폭 속에 그리고 있는 모델이다. 즉 필립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이다.
그러므로 두 사람의 화가, 두 그룹의 모델이 있다. 만일 벨라스케즈가 필립 4세와 마리아나 왕비의 초상화를 그렸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화가는 벨라스케즈이고, 모델은 왕과 왕비이며, 관객은 그 초상화를 보는 우리들이다. 그런데 <시녀들>은 바로 그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과 현장에 구경 나온 공주 및 시녀들을 그리고 있다. 그러니까 그림 속의 화가와 그림 밖의 화가가 분리되어 있고, 그림 속 화가의 모델인 왕 부부와 그림 밖 화가의 모델인 9명의 인물들이 있다.
그럼 관객은 어디에 있는가? 거울 옆에 문이 하나 열려 있고, 그 문틀 안에 한 키 큰 남자의 옆모습이 보인다. 한 손으로 문 설주를 잡고, 두 발은 각기 다른 계단 위에 놓여졌으며, 한 쪽 무릎은 구부러져 있다. 거울처럼 이 문틀도 장면의 안쪽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거울이 그랬듯이 이 문틀도 사람들의 관심을 전혀 끌지 못한다. 거울 속 인물들이 한갓 이미지인데 비해 이 남자는 장면의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장면의 한 가운데에 위치하지 않고 원근법이 마주치는 후경에 작게 그려져 있다. 그는 장면의 참여자가 아니고 방관자이다. 다시 말해서 그는 현장의 관객이다. 그런데 그림 <시녀들>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들 또한 관객이다. 화가나 모델과 마찬가지로 관객도 그림의 안과 밖으로 각기 나뉘어 있는 것이다.
2) 재현의 재현
거울 속 인물들의 시선과 공주의 시선을 선으로 그어보면 아주 미세한 각도 차이로 한 지점에 수렴된다. 그것은 그림의 앞, 우리 관객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 중심은 필립 4세와 왕비가 차지하고 있다는 일화(逸話)적인 측면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회화의 3중의 기능을 떠맡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모델의 시선, 관객의 시선,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시선등 ‘바라보는’ 세 기능이 정확히 한데 모이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림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념적이지만, 그러나 여기서부터 재현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완벽하게 현실적인 지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엄연히 현실적이면서도 이 지점은 도저히 가시적일수가 없다. 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비가시성을 벨라스케즈는 화폭 속에 집어 넣었다. 성장한 차림새에 부동의 모습으로 참을성 있게 모델의 포즈를 취하고 있는, 거울 속의 왕과 왕비의 모습이 그것이다. 화면 속에서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한채 무심한 듯 슬쩍 뒤에 걸려있는 거울은 그림 안에 도저히 들어올수 없는 모델을 보여주기 위한 화가의 교묘한 장치였다. 그것은 화면의 모든 사람들이 바라보고 있는 장면을 무심히 비춰주면서 모든 시선의 대상을 복원해 준다. 즉 그림 속의 화가에게는 자신이 그리고 있는 모델의 모습을, 왕과 왕비에게는 화폭에 그려지고 있는 자기들 초상화를, 그리고 관객에게는 장면의 실제적인 중심을 보여주었다.
벨라스케즈는 2차원적 평면 위에 도저히 함께 그릴수 없는 회화의 세 기능을 야심차게 한 화면 속에 다 그려 넣었다. 재현의 생산자(화가), 재현된 대상(모델), 관객이라는 재현의 3대 요소가 고스란히 재현되었다. 그런 점에서 그의 그림은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시녀들>은 그림 그리는 장면을 또 그림으로 그린 그림이라는 뜻에서 “재현의 재현”2)이다. 이 그림에서 재현된 것은 재현의 기능이고, 이 그림의 진짜 주제는 ‘재현’이므로 그림의 제목은 ‘회화의 기원’쯤이 더 적합할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 재현의 주체는 누구인가? 재현의 현장을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자신들의 초상화를 화가에게 부탁한 왕일것이다. 이상한 것은 활기차고 선명한 화면 속 인물들에 비해 두 사람의 지엄한 존재는 거울 속에 아주 희미하게 작은 실루엣으로비춰져 있다는 사실이다. 화면 속의 모든 인물들 중에서 이들의 이미지는 가장 희미하고, 가장 비현실적이며, 가장 손상되어 있다. 한없이 불안정하고 유동적이어서 장면이 조금만 움직여도, 또는 빛이 조금만 더 들어와도 그 형체가 곧 사라져 버릴것만 같다. 가시적이기는 하나 실재성에서는 한없이 멀리 떨어져 허약하기 짝이 없는 가시성이다.
또 한편 생각하면 현실의 차원에서 왕과 왕비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는 화가 또는 관객의 자리이기도 하다. 거울 안에는 관객과 벨라스케즈의 얼굴도 비쳐져야 마땅하다. 벨라스케즈는 이 장면을 조직한 사람이고, 관객은 자기 눈 앞에서 장면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다. 이 장면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빼놓을수 없는 두 사람, 이들이 없었다면 아예 장면이 존재하지 않았을 가장 중요한 두 사람이 재현 안에서 보이지 않는다.
3) 에피스테메
푸코에 의하면 한 시대는 그 문화를 형성하는 심층적 윤곽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이 ‘역사적 선험성’3)을 그는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불렀다. 에피스테메는 한 시대의 인식과 이론이 가능하게 되는 출발점이고, 앎이 형성되는 공간적 질서이며, 그 안에서 사상들이 나타나고 과학이 형성되고 경험이 성찰되는 역사적 선험성이다. 이 심층적 윤곽은 한 시대의 모든 과학적 담론, 모든 언술의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인식의 격자눈금이며, 같은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험적 질서를 제공해주는 문화적인 기본 코드이다. 따라서 한 시대의 사람들이 생각할수 있는것과 생각할수 없는것, 즉 사유의 한계를 정의하고 확정짓는 깊은 토대이다. 모든 과학은 에피스테메의 테두리 안에서 발전했고, 상호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에피스테메는 유사성(ressemblance)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사람들은 유사성의 구조 안에서 사유했다. 하늘은 해와 달이라는 두 눈을 가졌으므로 사람의 얼굴과 닮았고, 만유인력 속에서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연결되므로 인간의 운명은 천체의 운행과 연관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신이 만들어 놓았고, 그 관련성은 사물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학자들은 비밀의 지식을 추구했고, 그들에게 있어서 학문이란 추정과 해석에 다름 아니었다. 말도 사물을 지시하는 도구가 아니라 사물 그 자체와 동일시 되었다.
이 말과 사물 사이의 유사성이 고전주의 시대(17세기 후반과 18세기 전체의 약 150년간)에 들어와 붕괴되었다. 사물 속에 감추어진 신의 표지나 사물과 사물 사이의 상사(相似)는 없고, 언어는 사물을 재현하는 투명한 도구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앎은 더 이상 추정이 아니고, 개별적인 동일성과 차이에 기반한 분류와 분석의 방식이었다. 말은 생각을 재현했고, 그림은 사물을 재현했다. 신이 창조한 세계 안에 모든 존재들이 있고, 인간은 그 존재들을 언어적 기호 혹은 그림으로 재현할수 있다고 믿었으며, 그것만이 유일하게 학문이라고 생각했다. 재현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재현의 에피스테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분류학(taxinomie)이다. 분류학은 복잡한 표상4)들을 하나의 기호 체계 안에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것, 다시 말하면 사물의 표상들을 동일성과 차이의 일람표(tableau) 안에 순서대로 위치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일반문법이건 박물학이건 또는 부(富)의 분석이건간에 그 시대의 학문은 언제나 철저하게 인식대상의 순서를 정하는 일이었다. 식물을 종(種)에 따라 분류한 린네나 뷔퐁의 박물학, 혹은 백과사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결국 고전주의 시대의 학문은 일람표 작성이었고, 앎의 중심은 일람표였다.5)
인간도 이 일람표 속의 한 자리를 차지했다. 비록 다른 동물과 달리 언어적 기호를 사용할 능력을 타고난 합리적 존재라고는 하지만 인간 역시 동물의 한 종류임에 틀림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일람표 안에 인간의 자리를 정확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인간은 자신의 성질을 정확히 연역해 낼수 있었다. 인간이라고 별다른 특권이 있을수 없었으며, 유한한 존재로서의 개인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종(種)으로 수렴될뿐 각기 고유의 인생 체험을 가진 유한한 실존으로서의 인간이 놓여질 자리가 없었다. 학문이 곧 일람표이고, 모든 의미가 일람표 안에 있으므로 그 일람표를 작성하는 사람, 일람표 안에 표상들을 설치하는 사람이 있을 자리는 인식의 장 안에 그 어디에도 없었다. 고전주의 시대의 인식론에서 인간은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시녀들>에서 화가는 모든 것을 다 재현했지만 그림을 그리고 있는 순간의 자신의 모습은 재현하지 못했다. 화폭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잠시 그리기를 중단한 화가가 만일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면 그는 화폭 뒤로 사라져야만 한다. 재현들을 실행하고 그것들을 자기 의도에 맞게 대상으로 전환시키는, 통합된 혹은 통합하는 주체는 도저히 그림 속에 나타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재현의 행위 그 자체, 재현의 기능이 행해지고 있는 순간의 통합된 전개는 그림 위에 재현될수 없다. 이 그림의 파라독스는 ‘재현의 행위를 재현하지 못하는 불가능성’이다.
그런데 일람표와 그림은 불어에서 똑같이 tableau이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 또는 그려진 그림이 재현이라면, 일람표 속 식물의 이름들은 모두 그 식물의 표상들이다. 재현이건 표상이건 역시 불어로는 똑같은 representation이다. 그러므로 ‘그림 안의 재현’은 ‘일람표 안의 표상’과 똑같은 말이 된다. <시녀들>을 그린 벨라스케즈가 그림 속의 화가라는 재현된 이미지로 그림 안에 나타나지만 실제의 벨라즈케즈는 그 안에 자리 잡을 수 없는 것처럼 인간은 동물의 일람표 안에서 ‘인간’이라는 표상으로 자리 잡을 수는 있어도 그 일람표를 작성한 재현의 동작주로서는 있을 자리가 없다.
“고전주의적 사유 안에서 그를 위해 재현이 존재하는 그 사람, 재현 안에서 이미지 혹은 거울 속의 영상으로만 자신을 재현하는 그 사람, 그림 안의 복잡하게 얽힌 끈들을 얽어매 정리하는 그 사람은 그림 안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6)라고 푸코가 말했을때 이것은 절묘하게 일람표를 작성하는 주체적 인간의 부재, 더 나아가 고전주의 에피스테메에서의 인간의 부재를 말하는 것이다.
II. 데리다
1) <부타데스 혹은 그림의 기원>
데리다는 맹인들의 그림만을 모아 전시회를 기획함으로써 가시성의 문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그림 잘 그리는 형에게 심한 질투를 느끼며, “그림 그리기를 하나의 불구, 아니 그 보다 더한 죄스러운 불구 혹은 은밀한 처벌로서 경험했던”7) 어린 시절의 상실감과 박탈감이 데리다에게 정신적 외상이 되었던 것일까? 그는 1990년에 루브르 박물관에서 ‘맹인의 기억들, 자화상과 폐허’라는 이름의 특별전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미술이라는 것이 화가자신이 눈으로 본 것을 형상화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일진대 맹인의 그림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역설적이다. 하지만 보고 보여주는 가시성의 예술인 미술조차 비가시성 혹은 눈멂을 피해갈수 없다는 것, 아니 피해갈수 없을뿐만 아니라 오히려 눈멂이 그래픽 재현의 기원이며 조건이라는 것을 이 전시회는 보여주고 있다.
전시회를 결산하는 같은 제목의 책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전시 작품의 도록을 곁들인 일종의 안내서이지만 그러나 저자 자신의 말마따나 단순한 전시 안내서로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미술작품에 대한 해설서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학 에세이도 아니다. 구약 성서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맹인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호머에서 밀튼, 조이스를 거쳐 보르헤스에 이르기까지 눈멂이 선민(選民)과 동일시되는 맹인 문학가들의 고귀한 계보를 작성하는가 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에드가 알란 포우의 <타원형의 초상화> 등 죽음을 가져오는 재현의 이야기, 미술과 관련된 자신의 은밀한 사적 이야기, 드로잉에 있어서의 지각(知覺)과 선묘(線描)의 불일치성, 모든 가시적인것의 근원이 비가시성이라는 메를로-퐁티의 이론등 실로 현란하게 경계선을 넘나드는 내용이다.
그리고 다시 눈멂의 주제로 돌아와 호프만의 <모래 사나이>를 거세공포로, 자기 눈을 멀게 한 외디프스를 거세 응징의 완화된 형태로 해석한 프로이트를 소개한 후, 같은 맥락으로 눈을 죄악의 근원으로 파악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을 상기시키고. 마지막으로 니체의 <에크 호모>를 맹인의 디오니소스적 반-고백록으로 규정하며 책을 마치고 있다.
이 책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조세프-브누아 쉬베8)가 1791년 살롱전에 출품했던 <부타데스 혹은 그림의 기원>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우선 맹인의 그림이 아니면서 맹인들의 그림 전시 목록에 들어 있다는 것부터가 뭔가 예사롭지 않다.
이것은 벨라스케즈의 그림과는 달리 비교적 단순한 구도로 되어 있다. 램프 하나가 어둠을 밝히고 있는 방 안에서 옆모습의 여인이 남자 쪽으로 몸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고, 반쯤 앉은 자세로 여인을 부둥켜 안은 남자의 얼굴은 위로 젖혀져 있다. 오른 쪽에 있는 램프 불빛으로 여인의 옷과 목덜미가 환하게 빛나고 있고, 여인의 옆 얼굴과 남자의 몸은 절반 가량 어둠에 잠겨 있다. 왼편 벽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는데, 여인은 연인의 등 너머로 벽에 비친 그림자의 윤곽선을 따라 남자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다. 이별을 앞두고 자기 애인을 그림으로나마 간직하기 위해 벽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그대로 따라 그리고 있는 이 그림은 고대 희랍의 코린트 여인 부타데스의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9)
2) 눈멂 - 드로잉의 기원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라는, 다시 말해서 재현의 재현이라는 점에서 이 주제는 벨라스케즈의 <시녀들>과 닮았다. 루소의 글에서도 볼 수 있듯이 17-18세기의 화가 문필가들에게 있어서 이 그림의 주제는 사랑이 그림의 기원이라는 의미였다.10) 데리다는 이것을, 드로잉이 지각(知覺)보다는 기억에 더 의존한다11)는 것, 그러니까 그림의 기원은 눈멂이라는 가설의 설득력 있는 은유로 전환시켰다.
그림자의 선을 따라 연인의 그림을 그릴 때 부타데스는 자기 연인을 볼수 없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녀는 자기 연인에 대해 눈 먼 소경이다. 이러한 눈멂이 어쩌면 모든 그림의 기원이며 조건이 아닐까. 종이 위에 선을 긋는 바로 그 순간에 화가의 눈은 모델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모델에 대해 눈이 멀어 있다. 또 모델을 바라 보다가 얼굴을 숙여 그림을 그리려는 순간 화가는 더 이상 모델을 보지 않는다. 이번에는 종이 위의 선(線)에 대해 눈멀어 있다.
데리다가 어린 시절의 미술에 대한 열등감을 고백하는 구절은 그림의 기원으로서의 눈멂을 가장 쉬운 말로 극명하게 압축해 보여준다.
“사실을 말하자면 손으로 모델의 명령을 따를 능력이 내겐 없었다.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나는 더 이상 사물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사물은 즉각 도망쳐, 시야에서 사라지고, 거의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내 눈 앞에서 그것은 사라진다. 내 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지각하지 못하고, 오직 이 사라지는 환영의 조롱섞인 오만함만을 느낄뿐이다. 내 눈 앞에 남아 있는 사물은 내게 도전하고, 마치 발산하듯 비가시성을 산출한다. [...]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모델과 선(線)을 동시에 본다고 주장할수 있는가? [...] 어느 하나에는 장님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다른 한 쪽의 기억에 만족해야 하지 않는가?”12)
그림이라는 것이 원래 대상을 모방하고 재생하고 재현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모델이 화가의 바로 앞에 앉아 있다 해도 드로잉의 선은 어둠 속에서 그려지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시각의 장에서 도망친다. 그래서 데리다는 그려진 사물과 그것을 표현하는 선들 사이의 이질성이 가히 심연과도 같다고 말한다. 재현된 사물과 재현 사이의 관계이든, 아니면 모델과 이미지 사이의 관계이든 간에 그것은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이질성이다. 가시적인 것의 가시성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빛의 투명성에 대해 말했듯이 결코 보여질 수 없기 때문이다.13)
3) 흔적, 차연, 해체
부타데스는 자기 연인의 그림자를 그린다. 그림자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전과 부재를 외시(外示)와 내포(內包)로 담고 있는 이중의 기호이다. 우선 그것은 그림자를 만들어낸 물체와 인접해 있으므로 하나의 환유(換喩)로서 현전을 표시한다. 그러나 동시에 거기에는 그 물체가 실재하지 않으므로 그것은 부재를 내포한다. 대상을 보고 만질수 있는 우리의 현재적 지각으로부터 유리되었고, 피와 살을 가진 대상의 실재로부터도 떨어져 나왔으나 그 실재와 똑같은,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똑같은 것은 아니고 다만 그것을 상기시킬뿐인 어떤 것, 그것은 바로 기억이 아닌가? 기억이란 시간적 공간적 간격에 의해 현전의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실재가 우리 머리 속에 남겨 놓은 흔적이다. 그림자와 기억은 서로 닮은 꼴이다.
모델을 바라보기만 한다고 해서 그림이 되지 않고, 무작정 선을 그린다고 해서 그림이 되는것도 아니다. 화가가 모델을 바라볼때 그 모델은 현전(現前)(presence)이다. 그러나 종이 위에 선을 긋기 위해 얼굴을 아래로 숙이는 순간 모델은 사라져 그것은 부재(不在)(absence)가 된다. 엄밀히 말해서 부재라기 보다는 현전의 흔적이다. 그 사이에는 미세한 간격이 있다. 바라보고 그리는 작업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그림은 결국 거기 있는것과 없는것, 현전과 부재 사이의 끊임없는 직조(織造)에 다름 아니다.
‘간격’, ‘흔적’ 혹은 ‘현전과 부재 사이의 직조’라는 말들이 벌써 우리를 데리다의 중심 개념으로 성큼 인도한다. 부타데스 이미지는 데리다 철학의 중심 개념인 흔적, 차연의 서사적 은유였던 것이다.
데리다에게 있어서 가시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은 둘 다 선(線)(trait)14)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형의 그림 솜씨를 따라가지 못해 심한 열등감을 느꼈던 동생은 드로잉 대신 또 다른 선, 즉 비가시적인 단어들의 그래픽, 시간과 목소리가 일치되는 선으로서의 글쓰기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 마치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성경구절처럼 “하나의 선 대신 또 다른 선”이라고 말할때15) 그에게서 그림과 글쓰기는 완전히 동일한 것이 된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그림도 흔적의 작용, 즉 현전과 부재의 교직(交織)이 없이는 기능 할 수 없다. 드로잉의 기원에 있는 이중의 눈멂이란 현전과 부재의 놀이에 다름 아니었다.
현전과 부재의 직조란 결국 끊임없는 차이의 운동이다. 음성언어이건 문자언어이건 간에 언어의 그 어떤 요소도 다른 요소와의 관련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 언어에서의 의미는 차이로부터 발생한다. 예컨대 pig, big, bag, rag, rat...라는 단어들의 나열에서 ‘돼지’, ‘큰’, ‘자루’, ‘누더기’, ‘생쥐’라는 의미는 pig과 big의 p와 b의 차이, big과 bag에서 i와 a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우리 말에서도 ‘달변’, ‘다변’, ‘웅변’, ‘궤변’, ‘강변’, ‘눌변’에서 의미는 달, 다, 웅, 궤, 강, 눌등의 차이에서 발생한다. 따라서 우리가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이것이 pig이 아니고 big이지” 혹은 “이것이 달변이 아니고 다변이지”라는 차이 확인의 과정을 거치면서이다. pig이 아니고 big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우리의 의식에는 pig이라는 단어가 잠시 남아 있다가 그것이 big으로 대체된다.
다시 말하면 같은 체계의 다른 요소가 흔적으로 남아 있다가 새 요소와 중첩되고, 이 새 요소는 또 다른 요소의 흔적이 된다. “그 어떤 요소도 그 역시 자체적으로 현전하지 못하는 다른 요소를 지시함이 없이는 기호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16) 그 어떤 것도 온전하게 있고, 온전하게 없는 것이 아니라 마치 하나의 글자 위에 X 표시를 하여 그 글자를 삭제한 것처럼 하나의 흔적 위에 다른 흔적이 덧씌워지는 형국이다. 그것은 있으면서 없고, 취소되었으면서 삭제되지 않았고, 현전이면서 부재이다. 따라서 언어는 있음과 없음 사이의 끊임없는 교직(交織)이다. 있음이라는 씨줄과 없음이라는 날줄의 무한히 들고 나는 직조(織造), 하나의 텍스타일(textile), 이것이 바로 텍스트이다.17)
그런데 의미를 발생시키는 차이는 끊임없이 흔적에서 흔적으로 움직이는 불안정한 유동성이다. 확고부동하게 고정되어 있는 정적인 차이(difference)가 아니다. 여기서 지연, 연기라는 시간성과 차이라는 공간성을 한데 합친 신조어 차연(差延)(differance)18)이 생겨났다.
그러므로 의미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차연이다. 현전의 장에 나타나는 모든 요소들은 선행하는 다른 요소들의 흔적을 간직하고 또 미래의 요소와 벌써 관계를 맺으면서 자신을 자기 아닌 다른 요소들과 관련짓는다. 끊임없이 지연되고 뒤틀리고 미끄러지는 이와같은 차연의 성질 때문에 모든 언어는 비확정성이다. 언어가 가진 피할 수 없는 내재적 불안정성은 여기서 유래한다.
흔적이 현전과 부재 사이의 끊임없는 미끄러짐이라면 모든 언어와 사유와 의미에서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던 확고부동성은 깨질 수 밖에 없다. 철학적 단어들 역시 완벽한 현전을 이룰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데리다의 해체적 전략이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형이상학적 사유 안에 불안정성을 도입하기 위해, 그리고 글이라는 것이 비확정성이고, 현전과 부재의 게임이며, 요소들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텍스트의 해체를 시도하는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는 건물의 파괴나 구조물의 해체를 연상시키는 부정적, 아방가르드적 인상으로 철학을 모르는 일반 대중들에게까지 해체라는 말을 널리 유행시켰다. 그러나 해체란 텍스트를 면밀히 해독하여 저자가 텍스트 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일관성이 있는지등을 밝혀내는 방법일 뿐이다. 그는 후설, 소쉬르, 프로이트등의 저서들을 비판하기 위해 이 방법을 사용했다. 텍스트의 권위는 일시적이고, 그 기원을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 보면 기원이라는 것도 역시 다른 것의 흔적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는 해체적 글읽기를 통해 밝혀내고 있다.
III. 가시성
모든 철학적 단어들이 결국은 은유이고 그 시원(始原)에는 감각적인 기원이 있듯이 ‘가시성’(visibilite)이라는 단어도 ‘눈에 보임’이라는 감각적 의미가 그 기원이다. 따라서 메를로-퐁티, 푸코, 들뢰즈등에 의해 거의 신비할 정도의 새로운 의미가 추가 되었다 해도 이들의 저작 안에서 모든 ‘가시성’의 단어에 긴장할 필요는 없다. ‘가시적(visible)’, ‘비가시적(invisible)’이라는 말이 무수하게 나오는 <말과 사물>의 첫 번째 장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완강하게 비가시적인 큰 화폭은...”이라는 문장에서 ‘비가시적’은 그저 캔버스가 뒤로 돌려져 우리 눈에 그 앞면이 보이지 않는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러나 “오른 쪽 보이지 않는 창문으로부터 모든 재현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투명한 볼륨의 빛이 들어와...”19)라는 문장에서 ‘보이지 않는 창문’이라는 지극히 경험적이며 감각적인 표현은 ‘모든 재현을 가시적으로 만든다’는 구절과 함께 ‘가시성’의 철학적 은유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예이다. 그것은 가시성의 근원이 비가시적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가시성이란 무엇인가?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가시적인 것’은 글자 그대로 모든 ‘보이는 것들’이다. 외관(apparence) 혹은 현상과 동의어이다. 이 외관의 배후에 있으면서 그 외관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본질을 그는 ‘사물의 살’ 혹은 ‘비가시성’(l'invisible)이라고 불렀다. 그러니까 메를로-퐁티에게 있어서 ‘가시적인 것’(le visible)과 ‘비가시적인 것’(l'invisible)은 하이데거의 ‘존재자’와 ‘존재’에 그대로 대응한다. 그는 우리가 주관적 범주인 과학적 개념에 따라 자연을 재단하는 동안 세계의 원초적 본질인 이 ‘보이지 않는것’을 망각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원초적인 본질, 즉 ‘비가시적인것’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이 화가의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세잔느의 <생뜨 빅투아르 산>을 예로 든 것은 바로 이 대목에서였다.
메를로-퐁티에게서 가시성과 비가시성이 반대항이라면 푸코와 들뢰즈에게 있어서 가시성의 반대는 비가시성이 아니라 언표(言表)(enonce)이다. 쉽게 말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것’과 ‘말로 할 수 있는것’(英, sayable, 彿 l'articulable), 그러니까 시각적인 것과 언어적인 것의 대립이다.
그러나 무엇이 가시적인가? 내가 서재 안의 모든 집기들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그 물건들이 ‘가시적이다’라고 말할수 있을까? 어두운 밤 동안에 그것들은 가시적이 아니었다. 어두운 방에 들어와 전등을 켰을때 비로소 집기들은 내 눈에 가시적이 된다. 그러므로 가시성의 원천은 빛이다. 가시성은 단순히 빛 아래서 드러나는 대상의 형식도 아니고, 보는 주체의 행동과 시각적 의미의 자료만도 아니다.20) 차라리 그것은 섬광이나 불꽃처럼 대상을 번쩍 비추어 그것들을 존재하게 만들어주는 빛의 형식이다.21) 존재 개시(開始) 속에서 존재자의 드러남을 말할때 하이데거가 썼던 Lichtung(彿, clairiere, 英, clearing)과도 비슷하다.22)
그러나 빛 자체가 가시성은 아니다. 여기서 가시성의 반대가 언표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언표(言表)(佛 enonce, 英 statement)란 논리학에서 말하는 명제(proposition)와 같지 않고, 문법에서 말하는 문장(佛 phrase, 英 sentence)과도 다르며, 영미권 학자들이 말하는 담화행위(佛, acte illocutoire, acte de formulation, 英, speech act, act of formulation)와도 같지 않다.23)
우선 언표는 명제와 다르다. 하나의 명제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완전히 서로 다른 두 개의 언표를 가질수 있다. 예컨대 “아무도 듣지 않았다”와 “아무도 듣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라는 두 표현은 논리적인 관점에서는 구분을 할수 없고, 따라서 두 개의 다른 명제로 간주할수 없다. 그러나 담화의 측면에서 이 두 표현은 전혀 같은 언표가 아니다. 만일 “아무도 듣지 않았다”라는 문장을 소설의 첫 머리에서 읽었다면 우리는 이것이 저자 혹은 한 주인공의 발언이라는 것을 알수 있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라는 문장에서 우리는 내적 독백, 자신과의 말없는 논쟁, 대화의 단편, 일단의 질의 응답등을 상정해 볼수 있다. 이 두 문장의 경우 명제의 구조는 동일하나 언표적 성격은 전혀 다르다.
두 번째로 문장도 언표와 같은 것이 아니다. 문법에서 문장이란 주어, 동사, 보어등을 갖춘 완결된 형식을 말하지만, 이런 정식의 문장만이 아니라 “당신!”같은 인칭 대명사, “그 사람”같은 명사적 연사(連辭)(syntagme), “절대로!”같은 부사의 외마디도 훌륭한 하나의 언표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언표는 담화행위도 아니다. 각각의 담화행위는 언표 안에 현실화되어 있고, 반대로 언표는 담화행위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언표를 담화행위와 같은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가끔 하나의 담화행위를 작동시키 위해 하나 이상의 언표가 요구되는 수가 있으므로 언표는 담화행위와 같은 것이 아니다.
그럼 언표란 무엇일까? 언표는 물론 언어적 기호를 가지고 만들어낸다. 단순한 알파벳에서부터 복잡하고 긴 문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어, 모든 문장, 모든 명제들이 언표가 될 수 있다. 단 시간적 공간적 선후의 맥락 속에 있을때만 이것들은 언표가 된다. 예컨대 컴퓨터 키보드의 문자 배열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알파벳의 나열일 뿐이다. 그러나 컴퓨터 매뉴얼에 타자 연습용으로 인쇄된 문자판의 알파벳들은 언표이다. 그것은 매뉴얼 편집자가 초보자의 학습을 위해 제시한 도판이므로.
그러니까 언표적 기능은 고립적인 문장, 고립적인 명제로서는 작동될수 없다. 공간적으로는 앞 뒤, 시간적으로는 과거와 미래의 영역이 나란히 함께 하지 않고는 하나의 문장, 하나의 명제는 결코 언표로 전환되지 않는다. 언표의 네트워크 속에 있을때만 언표는 언표가 될 수 있다. 다른 언표를 전제로 하지 않는 언표, 다른 언표들과 공존하지 않는 언표, 후속의 효과가 없는 언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단어, 문장, 명제들의 외관을 띈 언표는 그것들 속에 숨겨져 있다고 까지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겉에 분명히 드러나 쉽게 읽히는것도 아니다. 단어와 문장과 명제들을 절개하여 각 층위에 걸맞는 언표를 꺼집어 내야만 한다. 그것이 푸코의 고고학적 방법이다. 가시성도 마찬가지이다. ‘눈에 보인다’라는 상식적인 차원에서 사물과 대상 안에 그것이 그냥 들어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언어에서 언표를 꺼집어내듯 사물과 시각으로부터 역시 가시성을 추출해 내어야 한다.24) 언어가 단어, 문장, 명제들을 포함하고 있으나 언표는 포함하고 있지 않듯이 빛도 역시 대상을 포함하고 있으나 가시성은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25)
푸코에 의하면 앎은 가시적인것과 언표적인것의 조합이며 교직(交織)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 언표가 가시성 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다.26) Seeing is believing이라거나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격언이 말해주듯 동서고금을 통해 지식은 보는 행위에서 얻어진다고 믿어졌다. 그러나 해외여행을 떠나기 전에 열심히 목적지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리는 시각에 대한 언어의 우위성을 실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시각을 통해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미리 획득한 지식을 확인하기 위해 가서 보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우리의 시선은 근본 체험이 아니라 일종의 지식일뿐이다.
화가나 영화감독은 또 자기 그림이나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것’을 열심히 관객들에게 설명한다. ‘말하고자 하는것’이라는 표현이 이미 말의 우위성, 언어의 우위성을 증명해 주지 않는가. 그것은 모든 예술적 생산품을 담론의 권위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마치 칸트에게서 지성이 감성을 규정하듯 푸코에게서는 언어가 가시성을 규정한다. 오성의 자발성과 직관의 수용성이라는 칸트의 개념처럼 푸코에게서도 시각에 대한 언어의 우위성은 언어의 자발성과 빛의 수용성에 기인한다.27)
그러나 언표가 가시성에 우선한다고 해서 가시성이 언표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언표의 대상인 말은 시각적 대상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블랑쇼가 말했듯이 “말하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다”. 이것을 가장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예가 마그리트의 그림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이다. 파이프 그림 밑에 써있는 이 역설적 제목이 말해주듯 그림 속의 파이프와 그것을 명명한 텍스트는 서로 만날 공간이 없다. 그 둘 사이의 관계는 ‘비-관계’이다.28) 그러나 비-관계도 역시 관계이다.
우리가 사물과 말들에만 집착해 있을때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을 말하고, 말하는 것을 본다고 생각하며, 그 둘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일상적 경험의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것은 결코 우리가 말하는 것 안에 들어있지 않으며, 반대로 우리가 말하는 것도 우리가 보는 것 안에 들어 있지 않다.
극단으로 밀고 가면 그것들은 각기 서로 구분되는 고유의 한계에 도달하여 가시적 요소는 오로지 보이기만 하고, 언표적 요소는 오로지 말해지기만 한다. 소위 ‘장님 언어, 벙어리 시각’(blind word and a mute vision)이다.29) 그래서 그림은 파이프를 그렸는데 제목은 완강하게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각자를 분리시키는 고유한 한계가 바로 그들을 연결시켜주는 공통의 한계이다. 서로 속성이 확연히 분리되어 있으면서 각각의 속성이 중립적인 일자(一者)와 관계를 맺고 있는 스피노자의 사유와 연장(延長)과의 관계처럼 푸코의 언표와 가시성도 한계라는 중립적 일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말하기와 보기 사이, 또는 가시적인것과 언표적인 것 사이의 비-관계는 이접(離接)(disjonction)의 관계였던 것이다.30)
나가는 말
말하기와 보기는 인간의 인식 형태에서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이다. 이 둘을 합쳤다는 점에서 철학자의 그림 이야기는 흥미롭다. 푸코는 재현의 주체는 재현할 수 없다고 말했고, 데리다는 드로잉의 기원을 눈멂으로 규정했다. 얼핏 보기에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명제는 그러나 가시성이라는 하나의 문제로 수렴된다. 우리가 벨라스케즈의 <시녀들>과 쉬베의 <부타데스 혹은 그림의 기원>을 살펴 본 후 가시성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이유가 거기에 있다.
벨라스케즈의 그림은 ‘인간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용어로 20세기 후반의 철학계를 뒤흔들어 놓았던 푸코의 에피스테메 개념을 담고 있다. 재현의 에피스테메에서 부재했던 인간은 거울 속 왕의 이미지로 희미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은 벌써 인간의 도래와 한 시대의 붕괴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화가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고전주의의 몰락과 근대의 시작을 예감하고 있었다. <시녀들> 그림의 뭔가 알 수 없는 불안정성이 거기에서 유래한다고 푸코는 말한다.
근대의 문턱을 넘어 인간은 당당히 인식론의 장에 들어와 인식의 주체인 동시에 객체가 되었다. 그러니까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듯 인간이 인식의 장 속에 있던 것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 소크라테스 이후 수천년간이 아니라, 19세기 이래 불과 2백년밖에 안 된다. 이 신생의 개념인 인간이 지금 사라지려 하고 있다. 푸코는 그 징후를 더 이상 인간을 말하고 있지 않는 정신분석학, 민족학, 언어학에서 감지한다.31)
<말과 사물>에서 각기 르네상스와 근대의 에피스테메를 문제삼기 위해 예로 든 세르반테스의 <동키호테>나 사드의 <쥐스틴느>같은 문학작품은 벨라스케즈의 그림만큼 중요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재현의 에피스테메를 발견하기 위해 푸코가 왜 문학작품이 아니라 회화를 굳이 선택했는지도 의문점이다. 데리다는 미술을 집중적으로 다룬 책(<그림 속의 진실>)을 쓰고, 미술전시회의 기획까지 했다. 이 모두가 현대에 이르러 시각 이미지의 중요성이 그만큼 커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미술작품을 다루고 있지만 그들의 관심은 미술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분석 대상인 그림들은 단지 자신들의 철학적 사유를 보여주는 참조체계일 뿐이어서, 그 자체가 시각에 대한 언표의 우위성을 증명하고 있는 듯 하다. 작품(ergon)을 보완하는 작품외적인 것(hors-d'oeuvre)이라는 점에서 미술은 그들 철학을 보완하는 일종의 파레르곤(parergon)32)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데리다의 그림 이야기가 별다른 후속 이론으로 계승되지 못한 반면 푸코의 <시녀들> 이야기는 60년대 이후 많은 논자들의 논문 주제가 되었으며33), 재현의 재현이라는 개념은 하나의 예술 장르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반성한다는 자기반영성의 미학으로 영화와 문학 등에 널리 퍼지고 있다.34)
예컨대 <말과 사물>에서 푸코가 문학과 언어에 던진 다음과 같은 질문은 그대로 미술이나 영화에 적용되어 각 장르의 자기반영성이 될 수 있다.
언어와 존재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언어, 최소한 말하는 사람의 언어는 항상 존재에 말을 걸고 있는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침묵도 하지 않는 ‘문학’이라는 이름의 이 언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35)
여기서 ‘존재를 말하지 않는 언어’란 대상의 실체와 분리된 언어, 시니피에 없는 껍데기만의 시니피앙을 의미하고, 그것은 그대로 자신의 기능과 보증을 오로지 자기 장르에서만 찾는 예술의 자기반영성 이론이 되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Michel Foucault, L'Arche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Ceci n'est pas une pipe, fata morgana, 1973.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Raymond Roussel, Gallimard, folio essai, 1992.
Jacque Derrida, De la grammatologie, Les Editions de Minuit, 1967.
Positions, Les Editions de Minuit, 1972.
La Verite en peinture, Champs Flammarion, 1978.
Memoirs of the Blind,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Gilles Deleuze, Foucault, University of Minesota Press, 1988.
John Rajchman, Michel Foucault The Freedom of philosoph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
Martin Heidegger, The Origin of the Work of Art, in Basic Writings, Harper San Francisco, 1992.
Richard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9.
Charles Baudelaire, "Mnemonic Art" in 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 Da Capo Press, 1986.
L'Episteme ou la deconstruction cachees en tableau
- Les metaphores picturales chez Foucault et Derrida
Park, Chung Ja
(Universite de Sangmyung)
Parler et voir sont les deux elements les plus importantes de la connaissance. A cet egard la description et l'analyse des tableaux que font les philosophes sont tres interessantes.
Foucault a dit que le sujet de la representation ne peut pas etre representee. Derrida a dit que l'origine du dessin est la cecite. En apparence les deux propositions n'ont rien a voir l'une avec l'autre. Mais ces deux sujets convergent a une probleme de la visibilite. C'est pourquoi nous avons procede a une etude sur la visibilite apres avoir suivi les descriptions de Les Mennines de Foucault et Butades ou l'origine du dessin de Derrida.
Foucault a trouve la notion de l'episteme dans le tableau de Velasquez. L'homme qui etait absent dans l'episteme de la representation apparaissait vaguement dans le miroir du tableau. C'est deja annoncer l'avenment de l'homme et l'effondrement d'une epoque. Le peintre a pressenti, malgre lui, l'effondrement du classicisme et l'ouverture de la modernite.
En passant le seuil de la modernite l'homme est devenu en meme temps le sujet et l'objet de la connaissance. Donc ce n'est pas depuis Socrate que l'homme est dans le champ epistemologique. Il y a seulement deux siecle que l'homme est invente. Cet invention recente est en danger de la mort prochaine. Foucault en voit le symptome dans le linguistique comme dans la psychanalyse ou l'ethnologie.
Foucault ne mettait pas autant d'accent sur Don Quichotte ou Justine que sur le tableau de Velasquez. On se demande pourquoi il a choisi le tableau, et pas la litterature, pour montrer l'episteme classique. Derrida a publie un livre sur la peinture(La verite en peinture), et organisait meme une exposition a Louvre. Ce sont tous les preuves que les images visuels deviennent de plus en plus importantes aujourd'hui.
Bien qu'ils traitent des oeuvres d'art, ils ne s'interessent pas a la peinture. Les objets de leur analyse sont les systemes de references. Cela meme prouve la priorite de l'enoncable sur le visible. Les oeuvres d'art qu'ils ont analysees sont plutot parergon qui suppleerait leur philosophie.
Si le discours de la peinture de Derrida, semble-t-il, n'a pas connu ni grand succes ni grands suivants, celui de Foucault qui parle de la representation de la representation est devenu une notion esthetique tres repandue de nos jours. C'est l'auto-reference des oeuvres d'art qui ne trouve leurs fonctions et garanties que dans leur genre meme.
1) Richard Rorty, Philosophy and the Mirror of Nature,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79.
2) Michel Foucault, Les Mots et les choses, Gallimard, 1966. p.31.
3) Ibid, p.13. Une telle analyse, on le voit, ne releve pas de l'histoire des idees ou des sciences : c'est plutot une etude qui s'efforce de retrouver a partir de quoi connaissances et theories ont ete possibles; selon quel espace d'ordre s'est constitue le savoir; sur fond de quel a priori historique et dans l'element de quelle positivite des idees ont pu apparaitre, des sciences se constituer, des experiences se reflechir dans des philosophies, des rationalites se former, pour, peut-etre, se denouer et s'evanouir bientot.
4) 불어의 representation을 동사적 의미에서는 ‘재현’으로 번역하고, 재현된 기호라는 명사적 의미에서는 ‘표상’으로 번역했다. 이것은 미술과 철학 분야에서 지배적인 용어로 거의 굳어져 있기 때문에 그 관례를 따른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튤립을 그린 그림은 ‘재현’, ‘튤립’이라는 말은 ‘표상’이 되는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혼동해서 사용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재현이나 표상이 동일한 원어의 번역어라는 것을 밝혀두는 바이다.
5) Les Mots et les choses, p.89. Les sciences portent toujours avec elles le projet meme lointain d'une mise en ordre exhaustive: elles pointent toujours aussi vers la decouverte des elements simples et de leur composition progressive; et en leur milieu, elles sont tableau, etalement des connaissances dans un systeme contemporain de lui-meme. Le centre du savoir, au XVIIe et au XVIIIe, c'est le tableau.
6) Ibid, p.319. Dans la pensee classique, celui pour qui la representation existe, et qui se represente lui-meme, s'y reconnaissant pour image ou reflet, celui qui noue tous les fils entrecroises de la "representaion en tableau", - celui-la ne s'y trouve jamais present lui-meme.
7) Jacques Derrida, Memoirs of the Blind The Self-Portrait and Other Ruin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3. pp.36-37. (프랑스 원서는 Memoires d'aveugle: L'autoportrait et autres ruines, Editions de la Reunion des musees nationaux, 1990)
For I have always experienced drawing as an infirmity, even worse, as a culpable infirmity, dare I say, an obscure punishment. A double infirmity: to this day I still think that I will never know either how to draw or how to look at a drawing. [...] The experience of this shameful infirmity comes right out of a family romance, [...] wounded jealousy before an older brother whom I admired, as did everyone around him, for his talent as a draftsman - and for his eye, in short, which has no doubt never ceased to bring out and accuse in me, deep down in me, apart from me, a fratricidal desire.
8) Joseph-Benoit Suvee. Butades or the Origin of Drawing, Bruges, Groeningemuseum. 연인의 그림자를 그리는 코린트 여인의 이미지는 당시 유행하던 주제였다. 쉬베의 그림 외에도 Jean-Baptist Regnault의 Butades Tracing the Portrait of her Shepherd or the Origin of Painting이 베르사이유궁에 소장되어 있다. Charles-Nicolas Cochin Jr.(1769년)도 이 주제를 그렸고, 독일인 Friedrich Bolt는 The Origin of Painting이라는 제목의 석판화를 남겼다. 그보다 1세기 앞서서 Charles Le Brun(1676년)도 이 주제를 그렸다. 코솅과 르 브뤙의 그림은 원화가 아닌 동판화로만 남아 있다.
9) BC 6세기경 고대 그리스의 시키온에 살던 도공 부타데스의 딸은 전쟁터에 나가는 연인과 헤어지기 전에 램프 불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벽에 그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것을 진흙으로 빚어 가마에 구워내 막새기와 장식으로 썼다. 이것이 사람의 얼굴을 기와장식에 쓰기 시작한 첫 번 기록이다. 이 기와는 BC 146년 무미오스가 코린트를 파괴할 때 까지 이 도시에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조각의 기원, 드로잉의 기원이라는 미술사적 측면만이 아니라, 초상화와 기억 보존의 관계, 현전과 부재를 동시에 함축하는 그림자의 문제등 미학적 차원에서도 비평가들에 의해 자주 인용되고 있다. 이제 데리다에 의해 이것은 흔적, 차연등의 후기 구조주의적 의미를 하나 더 추가하게 되었다.
10) Jean-Jacques Rousseau, L'Essai sur l'origine des langues.
L'amour, dit-on, fut l'inventeur du dessin ; (...) Que celle qui tracait avec tant de plaisir l'ombre de son amant lui disait de choses!
Jacques Derrida, De la grammatologie, Les Editions de Minuit, 1967, p.333에서 재인용.
11) 드로잉의 기원이 기억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보들레르였다.
Charles Baudelaire, "Mnemonic Art" in The Painter of Modern Life and Other Essays, New York: Da Capo Press; Reprint of Phaidon Press Ltd., 1986, p.16-17.
I refer to Monsieur G's method of draftsmanship. He draws from memory and not from the model (...). All good and true draftsmen draw from the image imprinted on their brains, and not from nature.
12) Memoirs of the Blind, p.36-37. In truth, I feel myself incapable of following with my hand the prescription of a model: it is as if, just as I was about to draw, I no longer saw the thing. For it immediately flees, drops out of sight, and almost nothing of it remains; it disappears before my eyes, which, in truth, no longer perceive anything but the mocking arrogance of this disappearing apparition. As long as it remains in front of me, the thing defies me, producing, as if by emanation, an invisibility[...] The child within me wonders: how can one claim to look at both a model and the lines(traits) [...]? Doesn't one have to be blind to one or the other? Doesn't one always have to be content with the memory of the other?
13) Ibid, p.45. Whether one underscores this with the words of Plato or Merleau-Ponty, the visibility of the visible cannot, by definition, be seen, no more than what Aristotle speaks of as the diaphanousness of light can be.
14) 불어의 trait는 선, 줄, 그림의 윤곽선, 묘선(描線), 표현, 말이라는 정적인 의미와 함께 (활을)쏘기, (창을)던지기등의 운동성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선을 긋는 행위인 그림과 글쓰기에 두루 쓰일 수 있다. 이 역시 데리다에 의해 특권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단어이다.
15) Memoirs of the Blind, p.37.
As if, in place of drawing, which the blind man in me had renounced for life, I was called by another trait, this graphics of invisible words, this accord of time and voice that is called (the) word - or writing, scripture. A substitution, then, a clandestine exchange: one trait for the other, a trait for a trait.
16) Jacques Derrida, Positions, Les Editions de Minuit, 1972. P.37-38. Que ce soit dans l'ordre du discours parle ou du discours ecrit, aucun element ne peut fonctionner comme signe sans renvoyer a un autre element qui lui-meme n'est pas simplement present.
17) Ibid, p.38. Cet enchainement fait que chaque 'element' - phoneme ou grapheme - se constitue a partir de la trace en lui des autres elements de la chaine ou du systeme. Cet enchainement, ce tissu, est le texte qui ne se produit que dans la transformation d'un autre texte. Rien, ni dans les elements ni dans le systeme, n'est nulle part ni jamais simplement present ou absent. Il n'y a, de part en part, que des differences et des traces de traces.
18) 불어에서 differer는 지연, 양도, 유예, 우회, 유보등에 의해 무엇을 연기시킨다는 뜻의 동사이다. 물론 ‘차이가 난다’는 뜻의 동사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간과 공간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다. 그러나 불어에는 이 동사의 명사형이 없다. differer의 명사형인 difference는 ‘차이’라는 뜻만 갖고 있을 뿐이다. 여기서 데리다는 differer 동사의 현재분사형인 differant을 다시 명사화하여 differance라는 용어를 만들어 냈다. difference와 발음은 똑같이 ‘디페랑스’이지만 스펠링은 e가 a로 바뀌었으며, ‘차이’와 ‘연기하다’라는 공간적 사물과 시간적 운동을 다 포함하게 되었다. 우리 말에서는 차이와 연기를 합쳐 차연(差延)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다.
19) Les Mots et les choses, p.22.
De la droite, s'epanche par une fenetre invisible le pur volume d'une lumiere qui rend visible toute representation...
20) Gilles Deleuze, Foucault, Translated and edited by Sean Hand, University of Minnesota press, Minneapolis, 1988.
...visibilities are neither the acts of a seeing subject nor the data of a visual meaning.
21) Michel Foucault, Raymond Roussel, Gallimard, folio essais, 1992. p.140.
: il y a la lumiere blanche, souveraine, dont la profonde poussee livre l'etre des choses; et puis en surface de brusques eclats, des jeux fugitifs, des eclairs qui viennent se poser sur la surface des objets,..
22) Martin Heidegger, The Origin of the Work of Art, in Basic Writings, Harper San Francisco, 1992. p.178.
In the midst of beings as a whole an open place occurs. There is a clearing. (...) Beings can be as beings only if they stand within and stand out within what is cleared in this clearing. Only this clearing grants and guarantees to us humans a passage to those beings that we ourselves are not, and access to the being that we ourselves are. Thanks to this clearing, beings are unconcealed in certain changing degrees.
23) Michel Foucault, L'Archeologie du savoir, Gallimard, 1969. p.105-138.
24) Deleuze, Foucault, p.53.
Like Roussel's enterprise, the task of archaeology is double: it must open up words, phrases and propositions, open up qualities, things and objects. It must extract from words and language the statements corresponding to each stratum and its thresholds, but equally extract from things and sight the visibilities and 'self-evidences' unique to each stratum.
25) Ibid, p.60.
Language 'contains' words, phrases and propositions, but does not contain statements which are disseminated in accordance with certain irreducible distances. (...) This applies equally to light, which contains objects, but not visiblilities.
26) Ibid, p.49. p.61
This book, however, seems to grant the statement a radical primacy. (...) the statement has primacy.
Henceforth it is easy to understand why the statement has a prmacy over the visible.
27) Ibid, p.60-61.
In Foucault, the spontaneity of understanding, the Cogito, gives way to the spontanity of language, while the receptivity of intuition gives way to that of light.
28) Michel Foucault, Ceci n'est pas une pipe, fata morgana, 1973, p.47
L'exteriorite, si visible chez Magritte, du graphisme et de la plastique, est symbolisee par le non-rapport, - ou en tout cas par le rapport tres complexe et tres aleatoire entre le tableau et son titre.
29) Deleuze, Foucault, p.65.
30) Ibid, p.64.
There is a disjunction between speaking and seeing, between the visible and the articulable: 'what we see never lies in what we say', and vice versa.
31) Les mots et les choses, p.393.
Ainsi se file a l'envers; sur ces etranges fuseaux, il est reconduit aux formes de sa naissance, a la patrie qui l'a rendu possible. Mais n'est-ce pas une maniere de l'amener a sa fin? car la linguistique ne parle pas plus de l'homme lui-meme, que la psychanalyse ou l'ethnologie.
32) 데리다가 <그림 속의 진실>에서 집중적으로 부각시킨 칸트의 미학 개념. 칸트는 현학적 그리스어에 의지함으로써 hors-d'oeuvre라는 의미의 단어에 개념적인 위엄을 부여했다. 이것은 단순히 작품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한 옆에서 작품(ergon)에 완전히 반대하여 작용하는 어떤것이다. 즉 예술작품 안에서 부수적이고, 이질적이고, 이차적인 물건 또는 보완등 스스로 분리되면서 중심적 주제가 되지 않는 부분을 말한다. 하나의 parergon은 행해진 작업, 사실, 작품에 반해서, 그 옆에, 그 너머로 온다. 그것은 단순히 밖도 아니고 안도 아니다. 예를 들면 조각상의 옷들은 parergon이다. 그것들은 내부도 아니고 내재적인 것도 아니면서, 오로지 덧붙임, 추가, 첨가, 보완이라는 외재적 방식으로 거기에 속해 있다. 그림의 가두리 장식 혹은 액자도 역시 parergon이다.
Jacques Derrida, La Verite en peinture, Flammarion, 1978. p.69-72.
33) John R. Searle, 'Las Meninas and The paradoxes of pictorial representation', Critical Inquiry, vol.6(1980, spring),
Joel Snyder, Ted Cohen, 'Reflection on Las Meninas : Paradox Lost', Critical Inquiry, vol.7(1981),
Sveltana Alpers, 'Interpretation without representation, or The viewing of Las Meninas', Representation, no.1(1983, February).
Richard Wolin, 'Modernism vs. Postmodernism', Telos, vol.62. (1984-1985, winter).
34) John Rajchman, Michel Foucault The Freedom of philosoph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5, p.12-13.
Self-reflexivity or self-reference usually figures in what has become, even in ordinary journalism, the genre or canon of modernist work. (...) Narrative structures, realist or figurative illusions, didactic purposes are eliminated or are subordinated to this issue. Art turns to its own basic means and materials; the artist's act or gesture is adressed to no one and has no other warrant or function than itself. In some such sense, modernist works are said to be self-questionining.
35) Les Mots et les choses, p.317.
Quel rapport y a-t-il entre le langage et l'etre, et est-ce bien a l'etre que toujours s'adresse le langage, celui, du moins, qui parle vraiment? Qu'est-ce donc que ce langage, qui ne dit rien, ne se tait jamais et s'appelle 'litterature'?
[위의 글은 불어불문학연구 제52집(2002년 겨울)에 실린 논문입니다. 박정자]
http://deer.sangmyung.ac.kr/~cjpark/frame.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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