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에 관한 헤어의 논증
이 대 희(고려대)
[한글 요약]
가치판단의 학적 인식근거를 부정하는 20세기의 새로운 윤리학적 회의론 또는 비인지론을 극복하는 것이 메타윤리학자로서의 헤어의 일차적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그는 비인지론자들이 가치판단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가치판단도 사실판단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논리규칙에 지배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는 도덕판단의 결정과정에서 작용하는 이성적 요소를 분석하여 도덕판단의 타당성에 대한 학적인 해명을 시도하였다. 즉『도덕의 언어』에서 헤어는 도덕적 원리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결단이 합리적 숙고를 통한 선택으로서 이성적 근거를 가진 것임을 보여주고자 시도하였다. 말하자면 헤어는 윤리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성질의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이성적 활동으로서의 윤리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자유와 이성』에서는 도덕판단의 특징으로서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을 강조함으로써 윤리학에 있어서 이성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였다.
도덕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도덕판단이 내려졌을 때 그 판단은 그 판단 속에 사용된 표현들을 지배하는 논리규칙(의미규칙)에 의하여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도덕판단의 규정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도덕판단 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도덕판단이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에 바탕을 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숙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하고 실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판단의 논리적 특징인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이야말로 도덕적 사고의 이성적 측면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덕판단은 어째서 그리고 어떻게 보편화 가능한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의미라는 개념자체에 근거하고 있다. 언어가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는 규칙에 따라서 사용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언어가 이해 가능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그 언어의 사용이 일관된 것이어야만 한다. 서술적 의미를 가진 단어는 만약 그 단어가 하나의 사물을 가리킨다면 그 단어는 그것의 서술적 의미규칙에 의하여 규정된 측면에서 그 사물과 유사한 다른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의미에서 보편화 가능하다. 그러나 헤어가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에 의하여 의미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보편화가능성에 관하여 평가적 언어와 서술적 언어를 비교 설명한다. 그는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은 서술판단의 보편화가능성보다 더 복잡한 것이라고 한다. 그것은 가치의 문제란 단순히 사용된 언어의 의미를 참고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가치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가치판단이란 언제나 하나의 의미규칙이상의 그 무엇, 즉 종합적 기준 내지 원리를 사용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런 것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헤어에 따르면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은 도덕판단이 갖는 논리적 제약이 된다. 말하자면 어떤 도덕판단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판단 속에 포함된 규정적 명령을 보편적 원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채무자는 감옥에 넣어야 한다"라는 판단이 도덕판단으로서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판단 속에 포함된 "채무자를 감옥에 넣게 하라"라는 명령을 보편적 행위의 준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은 도덕판단이 충족시켜야 할 형식적 제약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만을 전제로 하여 어떤 도덕판단을 도출할 수는 없다. 단지 이러한 두 가지 논리적 제약을 무시하고서는 도덕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을 강조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논리적 제약이 도덕적 사고에 이성적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덕판단이란 이성적 합리성에 기초한 판단으로서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한 보편적 판단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이러한 보편성의 확보야말로 윤리학의 학으로서의 성립가능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주제분야 : 윤리학
주 제 어 : 헤어, 가치판단, 보편화가능성, 규정성, U-type 판단.
Ⅰ. 머리말
전통적인 규범윤리학에서는 인간행위의 원리 또는 도덕법칙에 대한 연구를 윤리학의 주된 임무로 삼고 그러한 원리와 법칙의 보편적 근거를 제시하는 일에 몰두해 왔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윤리학의 관심사가 바뀌게 되었고 그리하여 이제까지 규범윤리학에서 문제삼았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문제 즉 "윤리학은 과연 하나의 학으로서 성립가능한가?"라는 윤리학자체의 성립가능성에 관한 논의를 제기하게 되었다.
사실 규범윤리학이 가능하려면 우선 도덕판단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객관적 기준의 타당성여부가 먼저 물어져야만 한다. 그리하여 메타윤리학에서는 도덕판단의 의미와 성격에 관한 물음과 그 입증방법에 관한 논의를 과제로 삼고서 구체적으로 옳음과 좋음 및 당위에 관련된 도덕판단에 대한 언어분석에 전념해 왔다. 그런데 메타윤리학의 초기 성과는 도덕적 언명의 진위를 가릴 수 있느냐의 문제에 대하여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제시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도덕적 의무 및 책임의 객관적 기준에 관한 기존의 규범윤리학자들의 주장이 더 이상 설득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행위의 당위적 계기는 반드시 합리적 기반 위에 설정되어야만 한다. 그리하여 윤리학적 회의론 또는 비인지론(non-cognitivism)을 극복하려는 시도가 메타윤리학자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다. 이러한 시도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영국의 분석철학자인 헤어(R. M. Hare)의 언어분석 활동이다.
윤리학을 "도덕의 언어에 관한 논리적 연구"로 규정하고 있는 헤어는 그의 『도덕의 언어』(The Language of Morals, 1952)에서 도덕적 원리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단은 주관적인 감정에 근거한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합리적 숙고를 통한 선택으로서 이성적 근거를 가진 것임을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헤어의 바램이었다. 즉 그는 윤리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엄밀한 논증적 학문이 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지만 이성적 활동으로서의 윤리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자유와 이성』(Freedom and Reason, 1963)에서 비인지론자들(non-cognitivists)이 가치판단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가치판단도 사실판단(서술판단)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논리적 규칙이 지배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그리하여 그는 도덕판단의 결정과정에서 작용하는 이성적 요소를 분석하여 도덕판단의 타당성에 관한 학적인 해명을 제시하고자 한다.
헤어는 도덕판단의 특징으로서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과 규정성(prescriptivity)을 들고 있다. 도덕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도덕판단이 내려졌을 때 그 판단은 그 판단 속에 사용된 표현들을 지배하는 논리규칙(의미규칙)에 의하여 보편화될 수 있다는 것을 뜻하며, 도덕판단의 규정성이란 그 판단의 내용을 행동으로 옮길 것을 촉구하는 의미가 도덕판단속에 들어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바로 도덕판단이 개인의 주관적인 감정에 바탕을 둔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숙고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적용이 가능하고 실천적인 성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특징을 가지는 도덕판단의 당사자의 사고를 분석해보면, 그 사고가 지성적인 것인 한 그 도덕판단의 내용이 갖는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덕판단의 논리적 특징인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이야말로 도덕적 사고의 이성적 측면에 대한 윤리학적 접근을 가능하게 해주는 단서가 된다는 것이다.
본 논문의 과제는 이처럼 윤리학의 학으로서의 성립가능성과 더불어 윤리적 규범의 창출을 위한 합리적 근거 마련을 위해 헤어가 제시하는 논증 가운데 하나인 도덕판단(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에 관한 논증의 타당성에 대하여 비판적 고찰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Ⅱ.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
헤어의 보편 규정주의(universal prescriptivism)가 표방하고 있는 대전제는 도덕판단이 규정적 판단이며, "보편화가능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다른 판단들과 구분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도덕판단의 이론적 근거는 그 판단의 명령적 특성이 아니라 보편화가능성이며, 이것이 곧 도덕판단의 근거 내지 이유가 된다. 그리고 헤어에 따르면 도덕판단은 보편화가능하고 규정적인 동시에 합리적인 판단이기도하다.
우리가 도덕적 사고를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가장 근본적으로는, 도덕판단이 보편화가능하기 때문이다(보편화한다는 것은 그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 ; 그리고 도덕판단의 규정성은 우리들 자신의 도덕적 견해를 형성할 수 있는 우리의 자유와 매우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사유와 행동에 있어서 자유로운 자들만이 규정적 언어를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도덕판단(가치판단)은 보편화 가능한 것일까? 헤어가 의미하는 보편화가능성은 근본적으로 의미(meaning)라는 바로 그 개념자체에 근거하고 있다. 언어가 유의미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언어는 규칙에 따라서 사용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언어의 사용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즉 말하자면, 언어가 그것의 의미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그 언어의 사용이 일관된 것이어야만 한다. 물론 이것은 의미가 변화할 수 있다는 것, 혹은 동일한 언어가 다수의 상이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 혹은 언어의 사용을 위한 규칙이 매우 복잡할 수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제한을 허용한다고 할지라도, 만약 어떤 의미규칙(meaning-rules)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과 그리고 만약 어떤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어떤 언어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서술적 의미를 가진 단어는, 만약 그 단어가 하나의 사물을 가리킨다면, 그 단어는 그것의 서술적 의미규칙에 의하여 규정된 측면에서 그 사물과 유사한 다른 모든 것을 가리킨다고 하는 의미에서 보편화 가능하다.
그러나 헤어가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에 의해서 의미하는 것은 그 이상의 것이다. 그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그는 보편화가능성에 관하여 평가적 용어( eval uative terms)와 서술적 용어(descriptive terms)를 비교·대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내가 보편화가능성이라고 부르는 가치판단의 특성은 단순히 가치판단이 서술판단과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다 ; 즉 가치판단과 서술판단 모두가 서술적 의미를 전달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곧 이어서 그는 보편화가능성에 관하여 이들 두 종류의 판단 사이에는 유사점뿐만 아니라 차이점도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먼저 유사점에 대한 설명으로서 그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만약 내가 한 사물을 붉다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것과 유사한 다른 어떤 것도 붉다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한 사물을 좋은 X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것과 유사한 어떤 X도 좋다라고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우리는 서술적 표현을 명시적으로 혹은 언어적으로 규정할 수가 있다. 예컨대 만약 내가 "X는 붉다"라고 말하고 그리고 "붉다"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내가 한 조각의 색깔 (C)를 가리킴으로써 그것을 정의하였다면, 나는 X만큼 밀접하게 C와 유사한 다른 어떤 것도 또한 붉다라고 불러야만 한다. 그리고 만약 내가 "X는 우체통이다"라고 말한다면, "우체통"에 대한 언어적 정의 (V)가 어떤 것이 되었던 간에, 나는 V와 일치하는 다른 어떤 것도 또한 우체통이라 부르기로 약속한 것이다. 평가적 언어도 이점에 있어서는 비슷하다. 즉 예컨대 만약 내가 어떤 사물을 좋은 것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그것 때문에 그 사물을 좋은 것이라고 부르게 되는 그러한 측면에서 그 사물과 일치하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해야만 한다. 따라서 보편화가능성은 평가적 언어와 서술적 언어에 공통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것을 붉다라고 부를 때나 혹은 우체통이라고 부를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일과는 대조되는 것으로서, 우리가 어떤 것을 좋다라고 부를 때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무엇인가를 물을 때 비로소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방금 위에서 인용한 진술에 바로 뒤이어서 헤어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덧붙이고 있다.
그런데 전자의 경우에 있어서의 이유는 내가 "붉다"라는 단어를 어떤 의미규칙에 따라서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인 반면에, 후자의 경우에 있어서의 이유는 훨씬 더 복잡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리고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 이들 두 가지 물음에 대한 헤어의 답변은 간결하다. 즉 평가적 언어의 경우에 있어서는 "서술적 의미규칙이 단순한 의미규칙이상의 것으로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은 서술판단의 보편화가능성보다 더 복잡한 것일까? 그것은 가치의 문제란 단순히 사용된 단어의 의미를 참고해서는 해결될 수 없다고 하는 사실에 의해서 이다. 그렇다면 왜 가치의 문제는 그런 식으로 해결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가치판단이란 언제나 하나의 의미규칙 이상의 그 무엇, 즉 종합적 기준(synthetic standard) 내지 원리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그런 것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다음의 두 경우를 비교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ⅰ) A가 "이것은 샛별이다"라고 말하고, B는 "아니다, 그것은 금성이다"라고 말하는 경우.
(ⅱ) A가 "우리는 이민자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고무시켜야만 한다"라고 말하고, B는 "아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대답하는 경우.
첫 번째 경우에 있어서의 불일치는 전적으로 어휘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불일치는 "샛별"과 "금성"이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는 사실을 지적해줌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도 "누가 옳은 것이냐?"라고 묻지 않을 것이다. A와 B 둘 다 옳은 것이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에 있어서는 A와 B 둘 다가 옳다는 것을 누가 주장할 것인가? 첫 번째 경우에 있어서는 분석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고 한다면, 두 번째 경우에 있어서는 종합적인 문제가 걸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샛별이다"라는 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의 근거(ground)가 의미규칙이라면, "우리는 이민자들이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고무시켜야만 한다"라는 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의 근거는 행동의 원리인 것이다. 두 번째 경우의 불일치는 의미규칙에 대한 불일치가 아니라 행동의 기준 혹은 원리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의미규칙에 대한 일치만으로는 해결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과 가치판단의 수반성(supervenience)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헤어에 따르면 가치판단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수반적 성격을 가진다고 한다. 즉 예컨대 "X는 좋은 것이다"라는 판단이 주어졌을 때, ⒜ 왜 X가 좋은 것이냐고 묻는 것은 언제나 논리적으로 적법하고, 그리고 ⒝ 그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이 주어졌을 때, 관련된 측면에서 X와 유사한 다른 어떤 것도 또한 좋은 것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코 논리적으로 적법하지 않다는 의미에서 가치판단은 수반적이라는 것이다. 환언하면 우리는 언제나 가치판단에 대해서 이유를 물을 수 있고 따라서 언제나 그 이유를 보편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의가 제기될 수 있다. 즉 이성적 존재는 가치판단이외에도 그가 말하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이유를 제시할 수 있고 그리고 그 이유들은, 가치판단에 대해서 주어진 것이건 아니면 그 밖의 다른 어떤 것에 대하여 주어진 것이건 간에, 바로 그것의 본성에 의하여 보편화 가능하다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나에게 "역으로 가라"라고 말하고 내가 "왜?"라고 물었다면 나는 "바로 가라"라는 대답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설령 그것이 당신의 대답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신이, 어떤 다른 이유 때문에 나에게 숨기고 있는, 그 명령에 대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야만 한다. 당신의 대답이 "그러면 당신은 나의 수하물을 가져올 수 있다"라는 것이었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현재의 경우에 있어서 당신이 나를 역으로 보낸 이유였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정이 같다면, 어떤 다른 경우에도, 만약 당신이 역으로부터 수하물을 가져오기를 원하고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가져올 수 있다면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할 것이라고 가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모든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 즉 ⒜ 수반적인 것은 가치판단만이 아니라고 하는 주장과 그리고 ⒝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은 그것의 수반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는 주장이 도출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결론 ⒜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하자. 헤어에 따르면 가치판단만이 수반적인 것이 된다. 예컨대 "X는 좋다"라는 판단에 대해서 헤어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단순히 우리가 "왜?"라는 이유를 물을 수 있고 그 대답을 보편화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가 언제나 "그것에 있어서 무엇이 좋은가?"라고 물을 수 있고 그리고 그 대답은 결코 "바로 그것의 좋음(goodness)"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X는 좋다"라는 판단이 "X는 붉다"라는 판단과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즉 "그것에 있어서 무엇이 붉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비록 대답할 필요가 없다할지라도, "바로 그것의 붉음(redness)"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붉음 (혹은 다른 어떤 비평가적 특성)은 그렇지 않지만, 좋음 (그리고 마찬가지로, 옳음과 해야함)은 언제나 필연적으로 다른 특성에 수반적인 것임이 분명하다는 것이 헤어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면 이제 두 번째 결론 ⒝에 대하여 검토해 보기로 하자. 헤어에 따르면 보편화가능성은 수반과는 구별되는 특성이다. 헤어는 도덕판단과 모든 당위판단에 대한 타당한 이유로서 오직 특정한 유형의 이유만을 인정하고 있다. 이것은 특정한 개별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포함하지 않는 이유로서 헤어는 이것을 U-type의 이유라고 명명한다. 누군가가 "재무상의 결정은 옳았다. 왜냐하면 그 결정은 영국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면, 여기에서의 옳음은 수반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이 판단은, 현 상태로는, 도덕판단이 아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제시된 이유가, 요구된 의미에 있어서, 보편화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판단은 특정한 개별국가, 즉 "영국"을 지칭하고 있다. 여기에서 화자는 하나의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이성적 존재라면 그는 다른 사정이 같다면 영국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어떤 조치든 다른 상황에서도 옳은 것이라고 일관되게 추천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옳음에 관한 판단이라기 보다는 편의(expediency)에 관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수반과 보편화가능성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서는 수반의 필요·충분조건은 충족되어 있지만 보편화가능성의 필요·충분조건은 충족되어 있지 않는 것이다. 보편화가능성의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기 위해서는 그 화자가 다음과 같은 점에 동의해야만 한다. 즉 다른 나라의 재무상이나 혹은 그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누구라도 그 나라가 영국이 처한 상황과 같은 상황에 처했을 때는 그 나라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유사한 방식의 조치를 취하는 것은 또한 옳은 일이 될 것이라는 점에 동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그 화자가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 경우에 있어서 화자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도덕적 옳음에 관한 것일 수 없다는 것이 헤어의 설명이다. 따라서 비록 헤어가 이점을 명백히 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편화가능성은 수반이상의 것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한편 헤어는 "∼해야 한다"와 "옳다"라는 말로 표현된 가치판단과 "좋다"라는 말로 표현된 가치판단 사이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좋다"라는 말은 "보다 좋다"(better than)라는 비교급을 가지고 있지만 "∼해야 한다"와 "옳다"라는 말에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이들 판단이 보편화 가능한 방식에 있어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헤어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단어들의 이러한 속성과 그리고 모든 가치판단들의 보편화가능성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사실이 도출된다. 즉 나는 특정한 상황에서 특정한 일을 행해야만 한다는 판단은 정확히 유사한 상황에서는 유사한 어떤 사람도 같은 일을 행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견해에로 나를 인도하는 반면에, "좋다"라는 말로 구성된 판단의 경우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예컨대 우리는 이민자들이 그들의 조국으로 돌아가도록 고무시켜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우리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이민자들이 그렇게 하게끔 고무시키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A는 좋은 정치인이다라고 말하는 것은 단지 만약 누군가가 정치무대에서 A가 행동하는 것과 같이 행동한다면 그 사람도 또한 좋은 정치인이 될 것이라는 것만을 함축할 뿐이다. 그 말은 정치무대에서 A가 행하는 것처럼 행하지 않는 어느 누구도 나쁜 정치인임이 틀림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정치적 견해를 서로 달리하는 A와 B 두 사람 모두가 좋은 정치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한편에 있는 "∼해야 한다"와 "옳다"라는 말과 그리고 다른 한편에 있는 "좋다"라는 말 사이의 구별―에 비추어서 헤어는 도덕은 두 분야―실천(행해져야만 하는 것)의 획일성(uniformity) 산출을 목표로 하는 한 분야와 그리고 삶(좋은 것)의 종류의 다양성(diversity) 산출을 목표로 하는 다른 한 분야―로 나누어져야만 한다는 스트로슨(P. F. Strawson)의 견해의 설득력을 인정하고 있다.
Ⅲ. 가치판단과 도덕판단
헤어에게 있어서 도덕적 가치판단은 다른 종류의 가치판단과 어떻게 다른 것일까? 헤어는 그 차이점을 전적으로 도덕적 판단에 대해서 주어진 이유와 그리고 다른 종류의 가치판단에 대해서 주어진 이유에 있어서의 각각의 보편성(universality)의 정도상의 차이의 문제로 설명한다. 아래의 두 가지 경우를 비교해 보자.
⒜ "그 재무상의 긴축정책은 옳았다."
"왜?"
"그 정책은 영국의 국제수지에 있어서 개선을 낳았기 때문이다."
⒝ "당신은 그에게 편지를 써야만 한다."
"왜?"
"당신이 그렇게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헤어는 ⒜를 E-type 평가라 부르고 ⒝를 U-type 평가라 부른다. 위의 두 경우에 있어서 각각 제시되고 있는 이유들 속에는 어떤 기준 내지 원리가 함축되어 있다. 즉 "영국의 국제수지의 개선을 낳는 것이면 무엇이든 옳다"라는 것과 "우리는 언제나 약속을 지켜야만 한다"라는 원리가 각각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헤어는 ⒜에서 제시된 이유가 영국의 국제수지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단지 영국의 재무상의 긴축정책의 옳음에 대한 이유로 간주하는 사람들이 제시할 수도 있는 것이지만, 다른 나라의 재무상이 만약 그렇게 함으로써 그 나라의 국제수지의 개선을 낳는다면 긴축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옳다고 그들이 반드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에서 제시된 이유는 특정한 개인에 대한 어떤 언급도 포함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와 유사한 관점에서 고려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E-type 평가와 U-type 평가의 차이점이다. 즉 그 차이는 이 두 가지 종류의 평가에서 주어지는 이유들이 가지는 보편성의 정도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헤어가 주장하고 자 하는 테제는 바로 도덕판단이 U-type 평가이라는 것이다.
헤어가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A가 X를 행해야만 하는 이유로서 제시하는 어떤 이유라도,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화 가능하다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그것이 A가 X를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면, 그것은 관련된 측면에서 A와 유사한 어느 누구라도 비슷한 상황에서는 X와 유사한 어떤 일을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예컨대, 만약 X가 영국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영국의 재무상이 X를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면, Y는 어떤 다른 나라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그 나라의 재무상이 Y를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단순히, 만약 X가 영국의 이해관계에 있어서 영국의 재무상이 그것을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면, 그의 입장에 처한 어느 누구라도 X를 행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이유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영국의 재무상이 누가 되었던 상관없는 것이다. 주어진 이유 속에 있어서 개별자에 대한 언급은 아무리 특수한 것이라도 좋으며 그리고 그 이유는 여전히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보편화 가능한 것이다. 어떤 특수하게 관련된 특성―예컨대 자신의 나라의 이해관계에 얽혀있음―을 토대로 해서 두 가지 경우를 구별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 아니다. 즉 말하자면 그러한 구별은 사고와 실천에 있어서 우리가 일관되게 고집할 수 있는 구별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편파적인 것일 수 있고, 특정한 방향으로 치우친 것일 수 있다. 일관되지 못함(inconsistency)이 논리적 결함이라면 편파성(partiality)은 도덕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헤어는 보편화가능성에 관한 그의 설명에 있어서 이 두 가지를 혼동하고 있다고 비판받아 왔다. 즉 도덕판단에 대해서는 U-type 의 이유가 요구된다는 것이 도덕판단의 논리적 특성이라고 주장함에 있어서, 헤어는 공평의 원리(the principle of impartiality)에 대한 그 자신의 도덕적 공약(moral commitment)을 몰래 들여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헤어의 논지를 잘 못 이해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 있어서 헤어의 주장은 "도덕적"이라는 말의 통상적 용법에 따라서 우리가 도덕적 판단이라고 불러야만 하는 어떤 판단 속에도 공평의 원리에 대한 인식이 들어있다고 하는 주장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순전히 그리고 단순히 논리적 주장인 것이다. 즉 그것은 도덕의 명시적 특성(the defining characteristics of morality)에 관한 주장인 것이다.
그런데 헤어는 『자유와 이성』(1963)에서 단순히 도덕적 판단만이 아니라 모든 당위판단이 U-type 판단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도덕적"이라는 말은 내가 한때 그 말에다 부여하고 싶어했던 것보다 훨씬 더 적은 역할을 한다. 보편화가능성을 요구하는 것은 "도덕적"이라는 말의 논리가 아니라 그것의 전형적인 용법에 있어서 "∼해야 한다"라는 말의 논리이다 ; "도덕적"이라는 말은 단지 한 부류의 그 전형적인 용법을 확인시키기 위해서 도입될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도덕철학자로서의 우리가 가장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헤어의 견해의 일관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된다. 위의 인용문에서 헤어는 모든 당위판단에 대하여 보편화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본고의 제Ⅱ장의 말미에서 지적한 헤어의 견해는 도덕판단 그리고 사실상 모든 당위판단을 특징 지우는 것은, 다른 모든 가치판단과 구별되는 것으로서, 도덕판단은 필연적으로 보편화 가능하다는 것(도덕판단에 대해서는 U-type 의 이유가 요구된다는 것)과 그리고 도덕판단은 단순히 수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도덕판단은 예컨대 "재무상의 조치는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국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와 같은 그러한 가치판단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옳다"와 "좋다"라는 말로 표현된 판단은 "∼해야 한다"라는 말로 표현된 판단으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규정주의가 모든 가치판단에 대해서 적용된다고 하는 헤어의 기본 입장에서 미루어본다면, 우리는 아마도 위의 판단―"재무상의 조치는 옳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국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는 판단―을 "재무상은 그가 해야하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조치는 영국의 국제수지에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고쳐 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경우를 예상할 수 있다 : 즉 ⒜ 만약 헤어가 이들 두 문장을 의미상 동치(equivalent)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요구된 의미에 있어서 보편화 가능하지 않은 (즉 U-type이 아닌) 당위판단을 떠맡게 된다. 그리고 ⒝ 만약 헤어가 이들 두 문장을 의미상 동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해야 한다"라는 표현으로 번역될 수 없는, 따라서 그가 당위판단에 관한 자신의 분석으로부터 도출한 규정주의 가치판단설(prescriptivist theory of value judgements)을 벗어날 수도 있는, 그러한 "옳다"라는 말의 평가적 사용을 떠맡게 된다. 따라서 헤어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가운데 하나를 버려야만 할 것이다 : 즉 ⒜ 단지 도덕판단만이 아니라 모든 당위판단이 보편화 가능하다는 견해와 그리고 ⒝ "옳다"라는 말로 표현된 모든 평가는 의미의 변화나 상실 없이 "∼해야 한다"라는 말로 표현된 평가로 번역될 수 있다는 견해 가운데 하나를 버려야만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전형적으로(typically) 도덕적인 사유를 구성하는 것은 무엇일까? 헤어는 도덕적 논증을 구성하는 네 가지 필수요소, 즉 "그것의 결합(combination)이 주어진 문제에 대한 어떤 사람의 도덕적 견해를 결정하는 … 네 가지 요소(factors)"가 있다고 말한다. 그 네 가지 요소란 (ⅰ) 사실(fact)에 대한 호소, (ⅱ) 규정성과 보편화가능성에 의하여 제공되는 논리적 틀(logical framework), (ⅲ) 경향성(inclination) 혹은 이해관계(interest)에 대한 호소, (ⅳ) 상상(imagination)에 대한 호소를 말한다.
먼저 헤어에 따르면 도덕적 추리에는 반드시 문제의 사실에 대한 호소가 들어있다고 한다. 다음의 추리를 예로 들어보자 :
외설 출판물의 판매는 금지되어야 한다.
왜?
외설 출판물의 판매는 성범죄의 증가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이 추리에서 제시된 이유는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는 사실에 관한 진술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첫 번째 점은 이러한 추정된 사실이 진술되고 있는 것은 오직 그것이 하나의 보편적 원리를 예시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위의 도덕적 추리를 삼단논법의 형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이 된다 :
A : 성범죄의 증가를 가져오는 어떤 출판물도 판매되어서는 안 된다.
B : 외설 출판물은 성범죄의 증가를 가져온다.
C : 그러므로 외설 출판물은 판매되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대전제 A는 보편적 당위원리이고, 소전제 B는 사실에 관한 진술이며, 특수한 당위판단 C는 결론이다. 그런데 소전제 B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추정된 사실을 진술하고 있다. 외설 출판물이 실제로 성범죄의 증가를 가져오는 것일까? 이것은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다. 1967년 6월에 덴마크 의회는 외설 출판물의 공급자를 소추할 수 있는 법률을 폐지하였다. 그리고 그 다음 해(1968년)에 코펜하겐에서의 성범죄 사건이 25퍼센트가 감소하였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사실은 외설 출판물의 판매는 금지되어야 한다는 판단에 대하여 제시된 이유를 명백히 논박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호소가 도덕적 추리의 한 특성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러한 종류의 논증에 본질적 특성(differentia)인 것은 물론 아니다. 다음과 같은 추리를 예로 들어보자 :
이 포도주는 좋은 포도주이다.
왜?
이 포도주는 독특한 뒷맛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 추리에서 제시된 이유에 대해서는 앞의 외설 출판물에 관한 추리의 예에서 이유로서 말해지는 어떤 것도 필요한 변경을 가하여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 두 경우에 있어서 사실에 대한 호소는 정확히 동일한 종류의 것인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추리에 있어서 두 번째 요소는 "∼해야 한다"라는 말의 의미(규정성과 보편화 가능성)가 제공하는 논리적 틀이다. 말하자면 도덕 판단은 보편화가능성을 가지기 때문에 만약 채권자 B가 그의 채무자 A를 투옥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되면, 채권자 C가 그의 채무자 B를 투옥시켜도 무방한 것이 된다. 그리고 또한 도덕판단은 규정성을 가지기 때문에 채권자 B가 그의 채무자 A를 투옥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채무자 B가 그의 채권자 C에게 자기를 투옥시키라고 지시하는 것이 된다.
도덕적 추리의 세 번째 요소는 경향성 또는 이해관계(관심)이다. 말하자면 도덕 판단에는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필연적으로 개재된다는 이야기이다. 채권과 채무의 관계에서 말하자면 채권자는 채무를 이행하지 않는 자를 투옥하고 싶은 경향성을 가지며 반대로 채무자는 이를 피하려는 경향성을 가진다. 헤어에 의하면 이러한 상반된 경향성이 보편화가능성과 결합할 때 두 가지의 상이한 도덕체계를 낳게 된다고 한다. 그 중 하나는 관련자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하여 보편적 도덕원리를 가지게 되는 경우이다. 이런 도덕체계는 채권자와 채무자의 경우처럼 이해 당사자가 둘인 경우에 성립한다. 즉 채권자가 채무자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투옥 당하기 싫어하는 채무자의 경향성을 이해하게 되고 동정하게 된다. 당사자들이 자기를 상대방의 처지에 옮겨 놓고 생각하면 상반된 경향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해 당사자가 다수인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예컨대 판사와 법정에 선 절도범의 관계에 있어서는 판사와 피고간에 경향성의 일치를 바랄 수 없다. 즉 판사가 처벌을 받기 싫어하는 피고인의 입장에 서서 이것을 동정하게 되면 처벌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되면 법질서가 서지 않게 되고 따라서 사회 성원 전체의 이익이 침해받게 된다. 판사가 피고의 경향성을 무시하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것은 판사와 피고 외에도 관련 당사자들로서 다수의 사회 성원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추리의 네 번째 요소는 상상이다. 이것에 관하여 헤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만약 나의 행동이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리고 바로 이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보편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행동방식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상상으로 내 자신을 다른 사람의 위치에 … 옮겨 놓고서 그리고는 채권자가 자기 자신을 그의 채무자의 위치에 놓여 있다고 상상할 때 제기하는 물음과 동일한 종류의 물음을 묻는 것이다.
B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경우, 그는 상상으로 모든 관련자들 (A와 C)의 상황과 역할에 자신을 옮겨 놓고 그의 경향성이나 관심을 자기의 것처럼 비중을 두어 배려해야 한다. 즉 B는 A의 입장에 서서 그의 경향성과 관심을 상상해야 할 뿐 아니라 C의 입장에 서서 그의 경향성과 관심을 상상해야 한다. 상상은 이와 같이 주관적 관심을 보편화시켜주는 작용을 한다. 어떤 행위를 결정하기 위하여 행위자가 자기의 관심 영역을 넓혀 모든 관련자들의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매개하는 사고 운동은 상상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내가 나의 행동을 통하여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에 관여한다면,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마땅히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어떤 특수하게 실천적인 사유의 수행―이것을 통해서 나는 다른 상대방의 위치와 역할에 나 자신을 옮겨 놓는다―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보편화가 성립되는 것이고 이것은 바로 상상력의 역할인 것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자신을 공감적으로 옮겨 놓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당위의 보편화의 명령이 완수될 수 있는 것이다.
전체적인 개관을 위하여 네 가지 요소를 다시 한번 일별해 보면 우선 어떤 상황의 서술적 요소를 이루고 있는 사실이 문제가 된다. 그 다음에는 준칙형성의 논리이며, 그리고 거기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경향성 또는 관심(이해관계)이 뒤따라 나오고 마지막으로 상상력이 논의된다.
Ⅳ. 보편화가능성 테제에 대한 비판
보편화가능성은 당위판단 일반 및 특히 도덕판단의 명시적 특성이라고 하는 헤어의 주장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보편화가능성"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헤어는 U-type 평가, 즉 "어떠한 인칭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고 단지 빈사들(서술들)과 논리적 명사들만을 포함하고 있는 어떤 규칙"의 적용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이 논문에 있어서의 그의 주된 테제(thesis)는 "모든 도덕적 평가는 U-type의 평가라는 것―혹은, 결국 같은 말이 되지만, 행동에 대한 도덕적 이유가 주어질 때는 언제나, 포함된 준칙(maxims)은 U-type의 준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유와 이성』에서는, "∼해야 한다"(ought)라는 말의 도덕적 사용만이 아니라, 그 말의 모든 사용이 U-type의 준칙을 포함한다고 헤어는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사실에 관한 확증을, 법률적 판단에 대한 "∼해야 한다"라는 말의 사용불가능성에서 발견하였다. 법률판단은 언제나 특정한 사법권이 미치는 범위에 대한 함축적 언급을 포함하고 있다 : 즉 "자신의 누이와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라는 판단은 "(예컨대) 영국에서는 자신의 누이와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라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영국"이라는 단칭명사는 그 준칙이 U-type의 준칙이 되는 것을 방해한다. "자신의 누이와 결혼하는 것은 위법이다"라는 판단은 "우리는 자신의 누이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을 행하는 것이 위법인 것을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가?"라는 물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당위판단의 보편화가능성에 관하여 헤어가 주장하고 있는 것은 도덕판단과 도덕외적인 판단에 대하여 똑같이 적용될 것을 의도하고 있다. 따라서 "도덕적 당위판단은 보편화 가능하다"는 보다 좁은 주장이 지지될 수 없다고 한다면 "모든 당위판단은 보편화 가능하다"는 보다 넓은 주장도 마찬가지로 논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 상황윤리
먼저 우리는 도덕판단이 보편화 가능하다 할지라도 거기에서 도덕판단은 도덕적 쟁점이 발생하는 대부분의 상황이 갖는 매우 복잡한 성격을 고려하지 않는 포괄적 일반화(sweeping generalization)이라는 것이 도출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덕원리의 개념에 대한 최근의 한 가지 공격은 도덕판단이란 "상황적"(situational) 판단이라고 주장하는 윤리설로부터 나온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적 형태와 세속적 형태 두 가지가 있다. 조셉 플레처(Joseph Fletcher)는 그의 『상황 윤리』(Situation Ethics)의 모두에서 이러한 입장에 관한 재미있는 예시를 보여 주고 있다 :
나의 한 친구가 대통령 선거운동이 막 끝나갈 무렵에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 택시기사는, 설전을 넘어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음과 같은 그의 증언을 자청하였다. "나와 그리고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의 할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들은 언제나 연기명 투표에서 공화당 후보를 모두 지지해왔답니다." 그 자신 공화당원인 내 친구가 "아아, 그 말은 당신이 상원의원 아무개에게 투표할 것이라는 뜻이군요"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기사는 "아니오, 사람에겐 자신의 원리를 제처두고 옳은 일을 해야할 때가 있는 법이라오"라고 대답하였다. 세인트루이스의 그 택시 기사는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종교도덕가인 플레처에게는 만약 원리들이 규칙이나 법칙에로 확립되지 않는다면 원리들에 대항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진다. 그런데 플레처는 ⒜ 엄격한 원리와 그리고 ⒝ 도덕적 사유가 합리적인 것일 경우에 반드시 제시되어야만 하는 이유사이의 구별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원리를 버린다는 것은 경험적으로 가능한 일이지만, 그러나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그 것 없이 지낸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전위파 종교도덕가들(avant-garde religious moralists)도 도덕원리의 엄격한 적용에 대하여 격렬하고 지속적인 공격을 전개하였다. 캠브리지의 신학자인 윌리엄즈(H. A. Williams)는 1962년에 영국 영화 The Mark 에 관해서 다음과 같은 글을 쓰고 있다 :
이 영화는 어린 소녀에게 강한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한 남자가 정상상태로 회복하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의 비정상 상태는, 모든 사람에게 이루다 말할 수 없는 해를 가할 수 있는 것으로서, 성인 여자에게 속박 당하는 것에 대한 그의 공포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만간, 그와 같은 나이의 한 여인이 그에게 충분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어 그들이 함께 주말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들은 호텔에 도착해서 따로 방을 잡는다. 그런데 그가 그 여자와 함께 잠을 잘 때까지는 그가 무한한 횟수의 여아착취를 할 경향이 있는 그러한 그의 전적으로 파괴적인 비정상 상태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신감이 그에게 있다는 것을 충분히 입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과연 그는 필요한 용기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가 용기를 불러일으켰을 때, 그리하여 그들이 함께 잠을 잤을 때, 그는 완전해진 것이다. 그리고 교회에서 간음에 대하여 무슨 말을 하든 간에, 치유가 있는 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적절한 반응은 이것이 된다―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에게 영광이 있을 지어다.
여기에서 우리의 관심사는 이러한 견해의 가치라든가 아니면 기독교 윤리와 이러한 견해사이의 양립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전통적 기독교 도덕의 이러한 완화에 찬성한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규칙을 구현하고 있는 이유라는 의미에서의, 원리를 한쪽으로 치우고 있다는 것이 도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한편 세속적인 윤리학에서도 소위 급진적 기독교도의 "새로운 윤리학"에 다소 상응하는 발전이 있어 왔다. 그것은 바로 공리주의는 규칙공리주의(rule-utilitarianism)가 아니라 행위공리주의(act-utilitarianism)가 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이다. 즉 공리의 원리란 개별적 행위의 도덕성을 직접적으로 결정하기 위하여 호소되어야 하지, 특수한 행위 속에 예시된 것일 수 있는,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와 같은 그러한 보편적인 규칙을 정당화하는 데 호소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헤어는 도덕판단의 보편화 가능성이 주어진다면, 행위공리주의와 규칙공리주의는 "상호 붕괴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는 "행위공리주의와는 조화되지만 규칙공리주의와는 조화되지 않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반론을 상황윤리학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다 :
어떠한 하부원리의 중재도 없이 공리의 원리를 직접적으로 행동에 적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는 그러한 경우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이 입증될 수 있다. 어떤 행동이 그러한 종류의 행동이었기 때문에 만족을 극대화시켰다는 것이 인식됨이 없이 어떤 행동이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그러한 것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참일 수 있겠는가?
개별적 행동은 그러한 종류의 행동이 만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의 규칙을 예시(instantiate)하기 때문에 옳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거꾸로 말해서, 헤어는 "규칙공리주의와는 조화되지만 행위공리주의와는 조화되지 않는 그러한 경우"도 또한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도 비록 우리가 수행한 개별적 행위가 그 결과로 옳지 않은 것으로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준수하는 것이 옳다고 우리가 믿는 어떤 규칙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비록 우리의 약속이 지금은 죽어버린 사람에게 한 약속이었고 그리고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지키지 않는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준다 할지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가져오기 때문에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규칙공리주의자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명석하게 생각할 능력이 있는 규칙공리주의자라면 그 누가 어떤 규칙을 고수하면서 하나의 개별적 행위를 그 규칙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입장에 서 있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이 행위는 그 규칙을 예시하고 있고 그 점에 있어서 옳은 행위이지만 그러나 그 자체로는 그른 행위이다"라고 규칙공리주의자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실제로 그가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있는 것일까? 저 특정한 행위가 그 규칙 하에서 옳은 것으로 분류된다 할지라도 그의 규칙은 언제나 그러한 종류의 모든 행위의 옳음을 진술하고 있는 그러한 것―예컨대 "약속을 지키는 것이 현존하는 정도의 행복의 박탈을 야기하는 경우라도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언제나 옳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약속을 지키는 것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산출하기 때문이다"와 같은 규칙―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그는 전혀 공리주의자가 아닐 것이다.
2. 보편화가능성 테제는 참이지만 하찮은 것인가?
헤어의 가치판단의 보편화가능성 테제는 또 다른 이유에서 종종 비판받고 있다. 즉 그의 테제는 참이기는 하지만 하찮은 주장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을 알아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가상적 대화를 고찰해보기로하자.
A : 사형은 중단되어야 한다.
B : 왜?
A : 그것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B : 그렇다면 당신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 엇이든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 그렇다.
B : 그렇다면 당신은 만약 의사들이 아기의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출산시 산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의사들이 아기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가?
A : 아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는 의사들이 아기의 생명을 희생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B : 왜? 이것은 사형과 마찬가지로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도록 요구하고 있는 경우이다.
A : 경우가 다르다. 의사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가 그것에 의하여 한 생명을 구하고 있다.
B : 그렇다면 당신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 엇이든, 만약 그것에 의하여 그가 또 다른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면, 중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A : 그렇다.
B : 그럼 이제, 서구가 이를테면 러시아나 중국과의 전쟁과 항복사이에서 선택할 운명에 처해 있다고 가정해보자. 만약 서구가 전쟁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대규모의 살상에로 인도하는 과정을 선택하는 것이 될 것이다. 서구가 단순히 항복할 경우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파멸의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서구가 전쟁을 선택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 : 아니다. 그러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서구는 싸워야 한다고 나는 말하겠다.
B : 그렇다면 당신은 한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도록 요구하는 것은 무 엇이든, 만약 그것에 의하여 그가 또 다른 생명을 구하지 않는다면, 잘못된 것 이라고 진정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말인가?
A : 맞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B : 그렇다면 당신은 사형이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할 어떤 이유도 가지고 있지 않 다.
위의 대화에 있어서의 B가 취하고 있는 조치의 목적은 사형이 중단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하여 A가 제시하고 있는 이유를 A가 일관되게 고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A에게 확신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이유를 A로부터 이끌어 낸 다음 반례들(counter-examples)―의사, 전쟁―을 제시함으로써 A가 그 이유를 단념하게끔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A는 이러한 반례들에 대응하기 위하여 자신의 원래의 이유를 수정하는 것이 허용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덕적 논증에 있어서는 이의에 직면하여 그것의 의미를 보다 더 정확하게 혹은 보다 더 신중하게 고쳐 말하는 것은 전적으로 적법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서의 B의 목적은 A가 대처할 수 없는 반례를 제출하려는 것이다. 사형을 비난하는 A의 이유는, 앞의 반례들에 대항하여 수정된 형태로서, 가정된 상황에서의 전쟁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지만 그러나 A는 그러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사형에는 찬성하지 않으면서 전쟁에는 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관되지 못한 것이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합리적 존재로서 그는 그의 이유를 포기해야 하고 그리고 그것과 더불어서 원래의 판단을 포기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도덕적 논증에 관한 이러한 패러다임을 염두에 두고서 우리는 헤어의 보편화가능성 테제가 참이기는 하지만 하찮은 것이라고 하는 비판에 대하여 검토해보기로하자.
우선 이러한 비판에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첫 번째 형태는 순전히 논리적인 점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즉 만약 어떤 기준이 어떠한 X라도 통과시킨다고 한다면 그것을 진짜 X와 가짜 X의 차이의 기준이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고 그리고 보편화가능성 기준이 바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아마도 A는 B의 반례에 직면하여 자신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의 원리가 단지 사형만을 언급할 때까지, 자신의 원래의 원리에 대한 수정을 계속해서 용인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은 것이 될 수 있다 :
a, b, c, 등등인 것은 무엇이나 중단되어야 한다.
사형은 a, b, c, 등등이다.
∴ 사형은 중단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a, b, c, 등등"은 도덕외적인 속성에 관한 완전한 기술이고,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사형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언급할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사형은 중단되어야 한다"라는 그의 판단은―이 판단은 논리적으로는 오직 사형에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전적으로 특수한 판단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화가능성 기준을 통과한다. 보편화가능성 기준이 이와 같은 사태의 발생을 허용한다는 것은 그것이 어떤 기준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 형태의 비판은 실천적인(practical) 점에 호소하는 것이다. 즉 그것의 논리적 지위가 어떤 것이 되었던 간에, 보편화가능성 기준은 도덕적 논의를 위한 유용한 틀(useful frame)을 우리에게 제공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A의 입장에 놓여있는 어떤 사람은 사실상 언제나 그 자신의 예와 그리고 그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는 반례 사이에서 원리상의 어떤 차이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편화가능성 기준에 맞추어서 수행된 도덕적 논쟁은 영원히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두 가지 형태의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시할 수 있다. 먼저 첫 번째 형태의 비판에 대하여 보편화 가능성 테제를 옹호함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도덕판단이 내려지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그 판단은 오직 그 상황에만 적용된다고 하는 그러한 기술(description)을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 것인 지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한다면 보편화가능성 테제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재공식화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한 판단은 그 판단을 내리고 있는 사람이, 원래 판단 내려진 그 상황의 모든 도덕외적인 특성이 아니라 약간의 도덕외적인 특성에 관한 어떤 참된 진술과 함께 원래의 판단을 수반하는, 어떤 보편적인 도덕원리를 받아들일 때 그리고 오직 그때에만 도덕판단이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한다면 보편화가능성 테제에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적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상황이 가지는 도덕외적인 특성에 관한 기술은 그 상황에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러한 기술이 도덕판단에 대한 이유로서 제시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주장이 타당하다면 보편화가능성 테제는 도덕판단의 기준으로 쓸 수 있고 따라서 하찮은 것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보편화가능성 테제는 실제적인 쓸모가 없다고 하는 두 번째 비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당한 정도의 끈기와 고집을 가진 도덕가―말하자면, 끝까지 패배를 시인하기를 거부하면서 모든 반례들에 대응하여 자신의 대전제를 계속해서 수정하는 사람―에 의한 도덕적 논쟁은 결코 패배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할지라도, 그러나 이러한 극단적인 종류의 옹고집은 생각하는 만큼 일반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보편화가능성의 틀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논쟁의 상대방에 대하여 그들의 일관성에 대한 요구를 제출할 수 있고 그리고 그들이 자신의 원리를 특정한 지점이하로 축소시킬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예컨대 사형에 관한 앞의 논의에서 A가 그런 것처럼―일반적으로 사실이다. 따라서 실제적 효용성에 관한 비판은 근거가 충분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도덕적 논쟁은 때때로 견해의 변화를 가져오며 그리고 도덕적 논쟁에 있어서 편견이 적지 않은 역할을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특수한 도덕판단이라도 "요구가 있으면 합리화 가능한" 것이어야만 한다는 것은 도덕적 관습(convention)인 것이다. 즉 말하자면 도덕판단을 내리는 사람은,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는, 제시된 반례들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합리성에 대한 자신의 평판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누구라도 자신이 제시하는 이유 속에 함축된 원리를 일관되게 존중해야 할 것이다. 도덕적 논증의 목적은 이러한 일관성을 시험해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헤어에게 있어서 도덕적 논증은 일종의 탐구(exploration)―경험적 사실의 문제로서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에 대한 탐구―가 되는 것이다.
3. 보편화가능성 테제와 공리주의
헤어는 그의 보편 규정주의와 공리주의 사이의 "접합점"(a point of contact)을 입증하고 싶어한다. 그는 보편 규정주의가 공리주의를 위한 "하나의 형식적 토대"(a formal foundation)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도덕판단은 보편화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도덕판단을 내리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자신이 그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였을 때는 그 판단이 그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리고 도덕판단은 규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떤 도덕판단에 동의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판단 속에 함축된 명령에 동의해야만 한다. 예컨대 만약 내가 누군가에게 "당신은 유태인이기 때문에 당신은 제거되어야 한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만약 내가 유태인이라면 동일한 판단이 나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하고 그리고 "만약 내가 유태인이라면 나를 제거하라"라는 명령에 동의해야만 하는 것이다. 도덕판단의 보편화가능성은, 도덕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모든 사람의 이해관계에다 동일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을 …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에게 알릴 것"을 나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도덕판단의 규정성은, 도덕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내 자신이 차례로 각각의 사람의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상상할 때) 내가 얼마만큼 이것을 가지기를 원하고, 혹은 저것을 피하기를 원하는지"를 물어볼 것을 나에게 요구한다. 여기에서 이것과 저것이 가리키는 것은 도덕판단에 의하여 수반되는 명령의 내용이다. 왜냐하면 누군가가 어떤 것을 가지기를 (혹은 행하기를) 원한다는 것은 그가 "나에게 그것을 행하게끔 (혹은 가지게끔) 하라"라는 명령에 기꺼이 동의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이 결합할 때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하게 된다 : "우리가 모든 당사자들의 욕구에 동일한 비중을 두어야만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주어진 상황에서 보편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행동방침을 발견하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이며 … 그리고 이것이, 이번에는, 우리는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해야만 한다와 같은 그러한 견해에로 인도한다."여기에서 헤어는 보편 규정주의가 다음과 같은 의미에서 공리주의에로 인도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보편화가능성은, 우리의 도덕판단에 있어서,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을 고려에 넣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규정성은, 우리의 도덕판단에 있어서, 관련된 모든 당사자들의 욕구(wants)를 고려에 넣을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따라서 보편 규정주의자가 됨은 공리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 즉 그것은 만족을 극대화하는 행동을 도덕적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 물음을 제기할 수 있다 : (ⅰ) 이러한 보편 규정주의적 공리주의는 헤어가 말하는 "광신자들"(fanatics)을 어디에 배치하는가? (ⅱ) 이러한 보편 규정주의적 공리주의는 소수자들(minorities)을 어디에 배치하는가?
먼저 첫 번째 문제의 검토를 위하여, 모든 유태인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예를 살펴보기로 하자. 만약 이 사람이 보편 규정주의자라면 두 가지 일을 행해야만 한다. 즉 그는 "모든 유태인을 제거 당하게 하라"라는 명령에 동의해야하고, 그리고 그는 상상력을 통하여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태인 각각의 입장에로 자신을 옮겨 놓는 일을 해야 하고, 그렇게 했을 때 그는 "나를 제거 당하지 않게 하라"라는 명령에 동의하는 쪽으로 기울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두 가지 일 모두를 행하는 것이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험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주장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이 광신자는 상상력을 통하여 그 자신을 유태인 각각의 입장에로 옮겨놓은 후에도 세상에 있는 모든 유태인의 생존에 대한 생각에서 그가 발견하게 되는 만족보다 더 큰 만족을 모든 유태인의 멸종에 대한 생각에서 발견해야 할 것이지만 그러나 실제로 그 어떤 사람도 이 광신자가 유태인의 멸종에 대한 생각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과 같은 정도의 만족을 경험할 수 없다고 주장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헤어는 자신이 의미하는 광신은 논리적으로는 가능하지만 경험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실제로 존재할 수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의 광신자가 그의 광신에 있어서 혼자만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그의 사회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모든 유태인이 제거되기를 바란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에는 한 사람의 보편 규정주의자로서, 우리의 광신자는 유태인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함에 있어서, 그 자신을 이들 동료 광신자의 입장에로 옮겨놓고서 그들이 유태인의 멸종에서 이끌어 낼 만족을 고려에 넣을 것이다. 그리고 한 집단의 사람들이 다른 집단의 멸종으로부터 이끌어낸 만족이 그 다른 집단이 멸종을 회피함으로써 얻게 될 만족을 능가할 수 있다는 것은 경험적 가능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두 번째 문제―보편 규정주의적 공리주의와 소수자의 문제―에로 인도한다. 헤어가 보편화가능성 테제를 거기에다 견주는 공리주의적 공평의 원리(utilitarian principle of equity)는 행복계산(felicific calculation)에 있어서 모든 사람은 하나로 간주되어야 하지 아무도 하나이상으로 간주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 원리는 그 계산이 일단 이루어지고 나면 다수의 이해관계 속에서 소수가 전적으로 무시되는 것에 대하여 어떤 보호장치도 제공하지 않는다. 예컨대 헤어는 살인자는 처벌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리고 그의 이유는 공리주의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만약 우리가 모든 사람을 하나로 계산하고 어느 누구도 하나이상으로 계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살인자를 처벌하지 않을 때 보다 처벌할 때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동일한 근거에서 헤어가 인종차별을 기꺼이 지지할 것인가? 분명히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러한 [공리주의적인] 종류의 이유는 종족주의자에게는 소용이 없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왜 소용이 없는 것일까? 아마도 헤어는 "살인자는 처벌되지 않아야 한다"라는 판단에 있어서의 "∼해야 한다"와 "검둥이에게는 시민권이 주어지지 않아야 한다"라는 판단에 있어서의 "∼해야 한다" 사이에는 논리적인 차이가 없다고 주장해야만 할 것이다. 그 차이는 단순히, 사실의 문제로서, 살인자가 처벌되면 다수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지만 검둥이에게 시민권이 거부되면 그렇지 않다고 하는 사실이 된다. 그리하여 검둥이에게 시민권을 거부하는 것이 잘못임은 이러한 우연적 사실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로부터 다음과 같은 것이 도출된다. 즉 만약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면―만약 흑인을 지배하에 둠으로써 다수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면―그 경우에는 검둥이에게 시민권을 거부하는 것이 마땅히 행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제한된 사회에서는 인종차별이 있을 때 다수가 그들이 원하는 것을 실제로 얻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것이 전체적으로 남성만으로 이루어진 사회에 대해서 참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러면 인종차별은 도덕적으로 옳은 것이 될까? 우리는 헤어가 긍정적인 대답을 하리라고는 거의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그의 보편 규정주의적 공리주의는 그가 긍정적인 대답을 할 수밖에 없도록 구속할 것이다.
Ⅴ. 맺음말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치판단의 학적 인식근거를 부정하는 20세기의 새로운 윤리학적 회의론 또는 비인지론을 극복하는 것이 메타윤리학자로서의 헤어의 일차적 관심사였다. 그리하여 그는 비인지론자들이 가치판단을 피상적으로 이해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가치판단도 사실판단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논리규칙에 지배되고 있음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또한 그는 도덕판단의 결정과정에서 작용하는 이성적 요소를 분석하여 도덕판단의 타당성에 대한 학적인 해명을 시도하였다. 즉『도덕의 언어』에서 헤어는 도덕적 원리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이러한 결단이 합리적 숙고를 통한 선택으로서 이성적 근거를 가진 것임을 보여주고자 시도하였다. 말하자면 헤어는 윤리학이 자연과학과 같은 성질의 학문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지만 이성적 활동으로서의 윤리학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그리하여『자유와 이성』에서는 도덕판단의 특징으로서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을 강조함으로써 윤리학에 있어서 이성적 요소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였다.
헤어에 따르면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은 도덕판단이 갖는 논리적 제약이 된다. 말하자면 어떤 도덕판단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그 판단 속에 포함된 규정적 명령을 보편적 원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예컨대 "채무자는 감옥에 넣어야 한다"라는 판단이 도덕판단으로서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판단 속에 포함된 "채무자를 감옥에 넣게 하라"라는 명령을 보편적 행위의 준칙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은 도덕판단이 충족시켜야 할 형식적 제약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것만을 전제로 하여 어떤 도덕판단을 도출할 수는 없다. 단지 이러한 두 가지 논리적 제약을 무시하고서는 도덕판단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편화가능성과 규정성을 강조하는 의의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이러한 논리적 제약이 도덕적 사고에 이성적 기초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말하자면 도덕판단이란 이성적 합리성에 기초한 판단으로서 인간이 이성적 존재인 한 보편적 판단임에 틀림없고 따라서 이러한 보편성의 확보야말로 윤리학의 학으로서의 성립가능성을 담보해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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