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천한해情天恨海
-한용운
가을 하늘이 높다기로
정(情) 하늘을 따를 쏘냐.
봄 바다가 깊다기로
한(限) 바다만 못하리라.
높고 높은 정(情)하늘이
싫은 것은 아니지만
손이 낮아서
오르지 못하고
깊고 깊은 한(限) 바다가
병 될 것은 없지마는
다리가 짧아서
건너지 못한다.
손이 자라서 오를 수만 있으면
정(情)하늘은 높을수록 아름답고
다리가 길어서 건널 수만 있으면
한(限) 바다는 깊을수록 묘하니라.
만일 정(情) 하늘이 무너지고 한(恨) 바다가 마른다면
차라리 정천(情天)에 떨어지고 한해(限海)에 빠지리라.
아아 정(情)하늘이 높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이마보다는 낮다.
아아 한(限) 바다가 깊은 줄만 알았더니
님의 무릎보다는 얕다.
손이야 낮든지 다리야 짧든지
정(情) 하늘에 오르고 한(限) 바다를 건너려면
님에게만 안기리라.
심(心)
- 한용운
심(心)은 심(心)이니라.
심(心)만 심이 아니라 비심(非心)도 심이니, 심외(心外)에는 하물(何物)도 무(無)하니라.
생도 심이요, 사도 심이니라.
무궁화도 심이요, 장미화도 심이니라.
호한(好漢)도 심이요, 천장부(賤丈夫)도 심이니라.
신루(蜃樓)도 심이요, 공화(空華)도 심이니라.
물질계도 심이요, 무형계도 심이니라.
공간도 심이요, 시간도 심이니라.
심이 생(生)하면 만유가 기하고 심이 식(息)하면 일공(一空)도 무하니라.
심은 무의 실재요, 유의 진공(眞空)이니라.
심은 인(人)에게 누(淚)도 여(輿)하고 소(笑)도 여하느니라.
심의 허(墟)에는 천당의 동량도 유하고, 지옥의 기초도 유하니라.
심의 야(野)에는 성공의 송덕비도 입(立)하고 , 퇴패(退敗)의 기념품도 진열하느니라.
심은 자연전쟁의 총사령관이며 강화사니라.
금강산의 산봉에는 어하(魚蝦)의 화석이 유하고, 대서양의 해저에는 분화구가 유하니라.
심은 하시(何時)라도 하사 하물(何事何物)에라도 심 자체뿐이니라.
심은 절대며 자유며 만능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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