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1723년 Pier Leone Ghezzi가 그린 비발디의 케리커처 |
|
|
“외부의 반응에 기대어 자존심을 찾는 것은 자신이 약한 사람이라는 증거다. 스스로를 인정하고 자동사적 욕망을 충족하고 산다면 타인이 인정해 주지 않아도 그 자체로 자존심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결국 내가 지배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진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은 남에게 그 힘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 행사하는 사람이다. 자신을 인정하는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자신의 삶 자체를 완성하려 노력하는 사람이 진정한 행복을 아는 사람인 것이다.”
미학자 진중권은 ‘자존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니체의 ‘주인의 도덕’과도 일맥상통한다. 자신의 덕에 대한 주인이 되는 것, 이것은 바로 자동사적 욕망에 충실한 삶을 수행하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욕망은 다양한 방식으로 충족될 수 있으며, 음악(音樂)이라는 도구로도 물론 가능하다. 좋은 음악을 들으며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여 삶을 지탱해 나갈 힘을 얻는 것, 그것이 바로 자동사적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실제로 미학에서 아름다움이란 긴장을 풀고 휴식하게 하는 것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오늘은 삶에 대한 위로와 의지를 얻을 수 있는 음악으로서 지난 시간에 이어 비발디의 작품 하나를 더 다루고자 한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곡은 1996년에 제작된 영화 「샤인」에 삽입되어 우리 귀에도 꽤 익숙한 작품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 역할의 제프리 러쉬가 트럼블린 위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자유롭게 뛰어오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때 흐르는 배경 음악이 비발디의 모테트인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이다.
모테트(Motet)는 본래 카톨릭 교회 음악으로, 중세부터 대두되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클래식 음악의 한 장르이다. 이렇듯 종교 음악인 모테트를 클래식으로 구분하는 이유는, 서양 음악의 본격적인 출발이 카톨릭 교회 음악인 그레고리안 찬트에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즉, 서양 음악은 종교 음악에서 출발하여 변형․진보되는 과정에 나타난 다양한 음악 형식이다.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Nulla In Mundo Pax Sincera」는 라틴어 가사로 이루어졌는데, 가사에는 “고난 없이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고뇌와 고문 가운데에도 평온한 마음, 오직 소망과 순결한 사랑으로 살았도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비록 카톨릭적 색채가 짙게 느껴지는 가사이지만,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실려오는 음형(音形)들의 집합은 우리를 종교를 초월한 세계로 이끈다.
엘리엇이 그의 시 「황무지」에서 말한 것처럼 4월은 잔인한 달이다. 계절의 순환 속에서 다시 봄이 되어 버거운 삶의 세계로 돌아와야 하는 모든 생명체의 고뇌를 그는 잔인하다고 한 것이다. 죽음의 눈에 쌓인 겨울은 차라리 평화로웠지만 다시 움을 틔우고 삶을 꾸려야 하는 4월은 잔인하다면 잔인하달 수 있다. 그러나 삶 자체가 잔인한 것을 어쩌랴! 이 시리도록 잔인한 달에 삶에서 상처받은 당신, 음악을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동사적 욕망을 채워볼 것을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