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과잉에 관하여- 포화된 현상에 관한 연구

나뭇잎숨결 2020. 3. 1. 13:30

“현상들은 언제나 의미를 지닌 직관의 현상들에서의, 심지어 더 흔하게는, 직관의 한 결여를 지닌 그 현상들에서의 고요한 충전을따라 나타나는가? 혹은 어떤 것-포화된 현상-은 우리가 현상들에 부과하고 싶어 하는 모든 개념이나 의미작용에서의 직관의 억제할 수 없는 과잉surcro?t 덕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이 물음은 “환원만큼, 바로 그만큼의 주어짐”이라는 원리에서 야기되었고, 주어진 것과 보여지는 것을 펼쳐냄으로써 주어짐을 해방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

 

과잉에 관하여- 포화된 현상에 관한 연구 , 장 뤽 마리옹 | 역자 김동규 , 그린비 | 2020.2.20.

 

그린비에서 『과잉에 관하여』를 통해 국내 최초로 장 뤽 마리옹의 저술을 선보인다. 마리옹은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앙리의 뒤를 잇는 우리 시대 가장 탁월한 현상학자로, 현재도 시카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의 현상학 3부작을 총망라한 이 책에서 마리옹은 과도한 현상의 주어짐을 ‘포화된 현상’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내며, 우리의 인식 능력마저도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현상의 힘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장 뤽 마리옹1946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마리옹은 낭테르대학교, 소르본대학교, 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한다. 고등사범학교에서 당시 조교였던 루이 알튀세르, 그리고 특별히 자크 데리다 등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고, 소르본대학교에서 데카르트 연구의 대가인 페르디낭 알키에의 지도 아래 1980년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푸아티에대학교, 낭테르대학교 등에서 가르치다가 1996년 소르본대학교에 철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학계의 거장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다. 2008년에는 프랑스 학술원의 종신회원으로 선출되었고, 카를 야스퍼스 상을 받았다. 현재는 시카고대학교 신학대학원의 앤드루 토머스 그릴리&그레이스 맥니컬스 그릴리(Andrew Thomas Greeley and Grace McNichols Greeley) 석좌교수로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저서로 『환원과 주어짐』,『주어진 것』, 『과잉에 관하여』의 현상학 3부작이 있으며, 이외에도 『우상과 거리』, 『존재 없는 신』 등이 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과잉surcro?t-개념에 대한 직관의 초과l’exc?s, 포화된 현상의 초과와 규범을 넘어선 포화된 현상의 주어짐의 초과-에 관한, 곧 재차 거듭되는 과잉에 관한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과잉을 다룬다. 현상은 언제나 하나 또는 여러 의미를 갖는 직관의 고요한 충전을 따라 나타나는가 아니면 직관에 대한 충전으로부터 측정되는 하나의 결여에 의거해서 나타나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현상들 가운데 어떤 것들-역설들-은 우리가 그 역설들에 할당하고자 하는 모든 개념과 의미에 대한 직관의 환원 불가능한 과잉 덕분에(도 불구하고) 나타나는 것이지 않은가? (9쪽)

이 상황은 우리에게 두 가지 물음을 던지게 한다. 첫 번째 물음은 현상학이 신학자에게 던지는 것이다. 왜 신학자들은 항상 특권화된 존재적, 역사적, 또는 기호론적 해석학을 대신해서, 성서에, 특별히 신약에 기록된 계시를 현상학적으로 읽는 일을 완수하지 못하거나 미미하게만 완수하는가? 두 번째 물음은 신학이 현상학에 던지는 것이다. 만일 나타남이 언제나 “환원만큼, 바로 그만큼의 주어짐”이라는 원리를 따라 주어짐에 질서를 부여하게 된다면, 또 만일 주어지지 않은 것은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주어지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자신을 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62쪽)

일상의 삶은 나-자신에게로의 접근을 나에게 제대로 주지 못한다. 그것은 실제로 욕망과 욕구 자체를 가지지 못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내가 나와 한 가지 암묵적 협의를 맺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나-자신에게 접근하기를 요구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의 세계의 일들과 더불어 자유로운 정신을 다룰 수 있을 만큼 너무나도 흔하게 내 자신에게로의 접근을 입증하는 일로부터 나 자신을 제외시킬 것이다. 내가 여기 (또는 거기) 있는데, 왜 나는 나를 확증하는 일에서 당혹감을 느끼는가? 나는 나-자신에 대한 나-자신의 신실함을 충분히 보증할 것을 나에게 가정하는데, 이를 매 순간 계속해서 증명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이 사태의 과정은 다음과 같이 경과한다. 내가 거기 있는지를 보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확실해서, 나는 나머지 존재자들과 나 자신을 연관시킬 뿐이다. (149~150쪽)

신의 이름들에 관한 물음과 관련해서, 그것은 결코 신에게 하나의 이름을 고정시키거나 신에게 ‘아니오’를 대립시키는 일과 연관되는 것이 아니다. ‘이름 Nom’과 ‘아니오 non’는, 그것이 들려지는 경우, 같은 소리를 내는데, 후자만이 아니라 전자 역시 어떤 답도 주지 못한다. ‘부정신학’에서 주장하는 ‘아니오’는 긍정의 길에서 비롯된 ‘이름들’ 그 이상의 것을 말하지 못한다. 만일 아무도 그 이름을 말하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단적으로 모든 이름을 능가하고, 모든 본질과 현전을 넘어서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로, 그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경우도 이름을 영예롭게 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277~278쪽)

 

직관을 초과하는 사유의 모험
주어짐의 현상학과 포화된 현상의 발견을 논하다

후설, 하이데거를 잇는 뛰어난 현상학자 장 뤽 마리옹의 저서 『과잉에 관하여』가 그린비에서 국내 최초로 소개된다. 오랫동안 소르본대학교 철학과의 교수였고, 현재도 시카고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마리옹은 후설, 하이데거, 사르트르,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앙리의 뒤를 잇는 현상학자로 자리매김한 철학자로, 2008년 프랑스 학술원의 종신회원으로 선정되고, 하이델베르그대학교와 하이델베르그시에서 수여하는 칼 야스퍼스 상을 수여받는 등 철학적 업적의 탁월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왔다.

제목에 등장하는 ‘과잉’은 일련의 개념이나 일의적 의미부여 작용, 인식의 규범에 포섭되지 않는 것을 지시하는 말로 사용되는데 마리옹은 과도한 현상의 주어짐을 ‘포화된 현상’이라는 개념으로 풀어내며, 우리의 인식 능력마저도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현상의 힘을 첨예하게 드러낸다. 특히 이 책 『과잉에 관하여』는 장 뤽 마리옹의 ‘현상학 3부작’의 다른 두 저서, 『환원과 주어짐』 및 『주어진 것』에서 개진된 주어짐의 현상학을 완결 짓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일상을 압도하는 계시의 방식

일상적 삶에서 갑작스레 나타나는 사건들은, 삶의 일상성을 넘어 우리를 낯설게 하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시간을 때우기 위해 미술관에 할 일 없이 거닐면서도, 작품에 대한 특별한 지식이 없으면서도, 우리는 어떤 작품 앞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 작품의 색, 면, 묘사가 뿜어내는 강도 앞에 사로잡혀 한동안 멍하니 머물기도 한다.

그때 우리를 사로잡은 작품은 단순히 그 작품을 만들어낸 예술가의 이름과 그 작품을 지칭하는 제목으로만 우리의 기억에 남는 것이 아니다. 일의적 의미 규정을 넘어서 나에게 주어지고 나타나며 자신을 내보여준 작품의 현상이 나를 시선을 사로잡아 당혹감을 불러일으키고, 경탄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어떤 현상에 대해 규범을 제시하지 못한 채로 그 현상의 주어짐이 너무 과도해서 빚어진 사건 속에서의 나의 한 모습인 것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이러한 현상의 주어짐을 포화된 현상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마리옹에 의하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삶의 사건으로, 우상처럼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으로, 다른 어떤 유비적 의미로도 풀어낼 수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촉발시키는 고통과 쾌락의 살의 경험으로, 나의 시선에 도덕적이고 실존적인 명령을 부화하는 타인의 얼굴이라는 아이콘으로, 그리고 가장 강력한 방식으로 나를 압도하는 계시의 방식으로 주어진다.

직관을 초과하는 현상의 과잉

마리옹이 제안한 포화된 현상의 이론은 다른 그 무엇보다도 현상의 주어짐 그 자체를 특권화하는 현상학의 논리를 가장 급진적으로 밀어붙여 우리의 인식 능력마저도 무능하게 만들어버리는 압도적인 현상의 힘을 첨예하게 드러낸 사유의 모험이...라고 할 수 있다. 현상학자답게 저자는 이 이론을 단지 역사적-개념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을 넘어 그 현상이 실제적으로 주어지는 사례에 대한 기술(description)을 시도한다. 철학의 역할 중 하나가 새로운 개념의 창조임을 감안하다면, 그의 사유의 과단성은 과히 주목할 만하다. 물론 이러한 기술이 얼마나 설득력 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독자의 몫일 테지만.

저자는 현상 자체의 권위를 온전히 인정하기 위해서 대상성이나 현존재의 이해 지평 내지 존재사건으로의 환원이 아닌, 순수한 주어짐 그 자체로 돌아가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전 작업을 기반으로 마리옹은 본격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현상학으로서의 주어짐의 현상학을 개진한다. 여기서 그는 현상학적 원리에 대한 규정을 반복하고, 자신이 내세운 규정을 따라 ‘환원된 주어짐’에 대한 더 새로운 이해를 제안하는데, 그것이 바로 ‘순수한 주어짐/주어진 것으로의 환원’이다.

이 환원을 설명하기 위해 그는 선물의 모형을 제시한다. 그는 선물이 가진 특성, 곧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줌/받음이라는 특성을 고려할 때, 경제적 교환체계로 소급되지 않는 순수한 줌으로서의 선물이 가능하다면, 순수한 현상의 환원 역시 가능할 것이라는 논지를 편다. 즉, 마리옹은 이른바 삼중의 환원, 곧 주는 자의 괄호침, 받는 자의 괄호침, 선물의 대상성에 대한 괄호침을 통해 순수한 선물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비록 일차적으로 순전한 사고실험에 불과하다고 하더라도, 선물과 관련해서, 데리다가 사유한 선물의 불가능성을 넘어 가능성으로의 길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 유의미함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현상들은 언제나 의미를 지닌 직관의 현상들에서의, 심지어 더 흔하게는, 직관의 한 결여를 지닌 그 현상들에서의 고요한 충전을따라 나타나는가? 혹은 어떤 것-포화된 현상-은 우리가 현상들에 부과하고 싶어 하는 모든 개념이나 의미작용에서의 직관의 억제할 수 없는 과잉surcro?t 덕분에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이 물음은 “환원만큼, 바로 그만큼의 주어짐”이라는 원리에서 야기되었고, 주어진 것과 보여지는 것을 펼쳐냄으로써 주어짐을 해방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