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신경림의 벽화

나뭇잎숨결 2017. 10. 18. 06:05

벽화

 

 

 

-신경림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다

우리와 함께 분노하고

발구르며 노래하고

저들을 향해 함께 돌팔매질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가는 곳은

우리네의 산동네가 아니다

산비탈에 위태롭게 붙은 누게집이 아니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찌그러진 알루미늄 밥상 위의

퉁퉁 불은 라면과 노랑 물든 단무지가 아니다

병든 아내와 집 나간 딸애의 편지가 아니다

온갖 안락과 행복이 김처럼 서린 식탁에서

그들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들의 불행과 가난을 탄식하지만

포도주 향기 그윽한 벽난로 위에

우리의 찌든 삶은

한 폭 벽화가 되어 걸린다

그들의 아들딸이 박힌 외국의 풍경 옆에

초라한 한 폭 벽화가 되어 걸린다

그들은 우리 쪽에 서 있지만

함께 분노하고 발 구르며 노래하지만

함께 노래하며 돌팔매질 하지만

                                                                  - 신경림, <가난한 사랑의 노래>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