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이준규의 단어 사용법

나뭇잎숨결 2016. 7. 26.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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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서(小暑)다. 임원경제지 위선지에서 소서 부분을 찾아본다. 별 얘기 없다. 소서에 비가 오면 수해가 있고 연이어 가뭄이 온다는데, 수해 없고 가뭄 없는 해도 있나. 소서는 본래 장마가 시작하는 때가 아닌가. 매사에 조심하자는 말일 것이다. 주역의 전체 전언도 그렇게 보인다. 주를 보다가 큰 가뭄을 말하는 한발(旱魃)이 신화 속의 인물, 또는 귀신이라는 것을 안다. 신이경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한다. 이렇다. “남방에 어떤 사람이 키는 2,3척이고 웃통을 벗었고 눈이 머리 정부에 있고 달리기를 바람처럼 하는데 이름을 발魃이라고 한다. 이 발이 보이는 나라에는 대한(大旱)이 들어 붉은 땅이 천리인데, 일명 한모(旱母)라 한다.” 척은 30센티 정도다. 척은 시대마다 조금 다른데, 본래 한 뼘을 뜻한다고. 한나라 전에는 18센티 정도였고 고구려의 척은 35센티 정도였다고. 척은 곧 자다. 한발은 작다. 소서에는 칼국수 수제비 등을 즐겨 먹고 민어가 제철이라고. 김을 매고 피사리(피를 뽑는 일)를 한다고. 그런데 피도 식용이다. 피죽은 피로 끓인 죽이다. 피는 벼과의 식물로 벼와 유사하며 벼와 함께 저절로 자라는 것 같다.

 

  골마지라는 단어를 알았다. 최근에 장모님이 오이지를 담아 줬는데, 그 때 골마지라는 말이 나왔다. 장모님은 골마지가 아니라 골가지라고 하셨다. 골마지가 표준어로 되어 있고 방언이 많다. 골마지는 간장, 고추장, 술, 초, 김치 등 물기 많은 발효성 식품의 겉에 생기는 곰팡이 같은 흰색 막이다. 모종의 곰팡이다. 먹어서 좋을 것은 없다. 오이지가 많은데, 골마지가 끼기 시작해 신경이 쓰인다. 빨리 먹거나 나눠줘야 하는데, 너무 많다. 지금까지는 그냥 먹었는데, 잘 씻어 먹어야 한다. 한자어로는 발만, 옛말(훈몽자회)로는 골아지, 방언은 갈매지, 갓, 고루치, 고래기, 골가지, 곳다치, 골때기, 골마치, 꼬가지, 꼬까지, 꼴가지, 꼴매지, 꼴치기, 고라지, 곰지.

 

  책상 위의 책은 지금 네 권인데, 다섯 권이 될 수도 있다. 다섯 권이 된다면 일어 문법책이나 독어 문법책이 추가된다는 말이다. 언어 학습에는 늘 자신이 있었는데, 이제 좀 힘들다. 도대체 뭐가 외워지지 않는다. 운동을 더 꾸준히 해야 한다. 단전호흡을 시작할까 하지만 조깅이라도 꾸준히 하면 좋을 것이다. 화를 내려야 한다. 글을 더 많이 써야 하고 방만하고 난삽한 형식에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일시적이라도 그렇다. 문장은 어차피 모종의 선택이니까. 내 글의 형식을 정하고(쓰면서 변하는 것까지 형식으로 삼고)독자를 한정해야 한다. 어떤 자들을 독자로 설정하는가가 중요하다. 로트레아몽이 농조로 10대 소녀를 독자로 생각한다고 말하는 식으로 말하거나 그 말을 반은 진심으로 흐릿하게 생각한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리고 나도 10대 소년 소녀가 내 글을 읽고 좋아하기를 바라지만, 독자를 한정하는 것은 중요한 일로 여겨진다. 나는 모든 사람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전혀 쓰고 싶지 않다. 많이, 잘 쓰자. 시간(세월)이 흐르는 것을 여유롭게 관망할 만한 주제가 못 되는 나는, 진지한 자세로 부지런히 글을 써야 한다. 불안과 흔들림은 나의 식량으로 하자. 오늘 마신 커피는 에티오피아 이르가체프다. 항아리의 오이지 일부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 냉장고로 넣기 위함이다. 당분간 술을 멀리하고 독서와 쓰기와 운동을 하자. 산책도 하고. 놀기 좋은 계절이지만, 지금 내가 놀 기분이 아니다. 산문집의 주제도 빨리 정해 출판사에 주자. 일기를 출판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 내 일기는 그런데 너무 난삽하다. 톤은 일정한 것이 좋다. 인간의 독서 방식에는 한계가 있다. 피네간의 경야가 난해와 난삽으로 일관하지만, 그 톤은 일정하다. 나의 톤도 그러면 일정한가?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나의 톤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일기 톤 말이야. 시 말고. 나는 나의 시에 대해 거의 확신하고 있다. 흠이 없을 리 없지만 방향이 틀리지 않았고 하여, 나는 그 길을 계속 갈 것이다.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점심시간. 망원초 아이들이 시끄럽다. 밥이 다 되었다. 화내지 말자.

 

2016년 7월 3일 오후 11시 3분에 저장한 글입니다. TEXT

2016.07.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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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밖에 나갔다. 그것은 확실하다. 순서가 없다. 나는 지금 일기를 쓰려고 하는데, 기억이 잘 안 나니까, 시를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하지만 그래도 일기를 써 보자. 일어났다. 일어나서 낮잠 같은 것은 하지 않았다. 낮잠은 하지 않았고 계속 깨어 있었다. 커피를 마셨고(지금은 백차를 마시고 있고)밥을 먹었는데 늦게 먹었다. 밥이 아니라 빵이었다. 빵을 먹건 뭐를 먹건 한국인이 밥을 먹었다고 하면 끼니를 해결했다는 뜻이거나 식사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밥을 먹었다. 식빵을 토스트기에 구워 먹었다. 삶은 계란도 먹고 아무튼 뭘 먹었다. 아까 사진을 찍어놓았으니 사진을 보면 내가 무얼 먹었는지 알 수 있다. 책을 읽었다. 이것저것 읽었다. 아까 뭘 읽었는지 썼으니 그것을 확인하면 내가 무엇을 읽었는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생각해 보면, 아니 책상 위의 책은 한 권이 교체되었을 뿐이니 고개를 들어 책상 위의 책의 제목을 쓰면 된다. 그것이 오늘 내가 읽은 것이니까. 쥘 베른, 로마노 과르디니, 리처드 브라우티건, 논어, 크리스토프 타르코스, 셔우드 앤더슨. 나는 지금 백차를 마시며 이것을 쓰고 있는데, 소설이나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나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옷을 벗었다. 더워서. 다 벗지는 않았다.

 

  지혜가 나가자고 해서 나갔다. 나는 요즘 아내 말을 잘 듣는다. 가끔 아내 말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지만 그래도 아내 말을 잘 듣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항상 웃는 얼굴로 즐거운 마음으로 아내 말을 잘 듣는 것은 아니다. 아내 말이 늘 재밌을 리는 없고 또 늘 합당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아내 말을 잘 듣고 있다. 지혜가 나가자고 해서 나갔다. 그래도 행선지는 물었다. 우선 신촌의 현대백화점에 갔다가 연희동의 사러가쇼핑에 갔다가 망원시장에 들렀다가 귀가했다가 다시 망원시장으로 가는 것이 계획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러면 서점에 가서 내 책도 사줄 수 있냐고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 유수지의 9번 마을버스 종점으로 향하다가 며칠 전에 만난 아이들을 또 만났다. 아이들은 전에 지혜가 사탕을 준 일이 있는데 아이들은 오늘은 사탕 안 줘요, 라고 말했다. 모두 그 말을 한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애가 그 말을 했고 그 아이보다 어린 아이는 수줍게 웃기만 했고 아직 말을 하지 못하는 가장 어린 아이는 자꾸 내게 다가왔다. 나는 아이를 사진 찍었다. 가장 큰 아이의 이름은 지혜였다. 지혜가 지혜에게 나도 지혜야, 라고 했다. 우리는 아이들과 헤어져 9번 버스를 타러가서 탔다. 내가 전에 지혜에게 늘 사탕을 가지고 다니라고 했는데 지혜는 사탕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아마 사탕이 가방에서 녹을까 해서일 것이다. 아내는 버버리 치마(조금 긴 듯한)를 입었는데 잘 어울렸다. 아내는 A라인, H라인 등에 대해 설명해주기도 했다. 나는 A라는 말을 듣는 순간 히브리어의 첫 문자인 알레프 생각을 했다. 알레프는 소대가리를 뜻한다고 했다. 그렇다고 A라인 치마를 입은 여자가 소대가리 위에서 걸어간다는 상상을 한 것은 아니다. 버스를 타고 백화점으로 갔다. 버스가 백화점까지 들어간다는 말은 아니다. 이런 것까지 설명하는 나도 참 한심하다. 우리는 지하의 식품 코너로 갔다. 요즘은 그런데 코너라는 단어를 안 쓰는 것 같다. 아무튼 야채와 고기와 뭐 그런 먹을 것을 파는 곳 말이다. 지혜는 어떤 버터와 어떤 간장과 어떤 고추를 사려고 했다. 메세나의 홈플러스에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요즘 내가 무거운 것을 드는 것을 몹시 싫어하니까 아내는 버터 하나만 산다. 우리는 백화점의 화장실로 가서 오줌을 누고 밖으로 나왔다. 현대백화점은 망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내가 말했다. 지혜가 왜? 라고 물었고 나는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다. 식품관 얘기다. 명동 신세계에 가본지 오래되었다는 말이 나왔다. 아내는 젊은 사람들은 갤러리아나 신세계를 더 좋아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러냐고 했다. 우리는 백화점을 나와 길을 건너 ‘숨어 있는 책’으로 갔다. 주인과 오랜만에 인사했다. ‘숨어 있는 책’에는 전보다 책이 더 많았다. 나는 불어책과 영어책을 샀다. 로브그리예, 레몽 장, 뚜생(이건 왜 투생이라고 안 할까), 라신(플레이아드 판이었는데 8천원이다. 엄청 싸게 산 것이다.), 이오네스코, 포크너, 스위프트. 주인과 인사하고 서점을 떠났다. “너무 오랜만이네요.” “제가 책을 잘 안 사요.” “책 많이 사야 할 분이 책을 안 사시면 어떡해요.” “안녕히 계세요.” 여기서 말할 게 아닌데, 나는 책방 주인에게 미안한 일이 있었다. 앞으로 자주 가는 것으로 미안함을 없애기로 한다. 책방을 나와 걷다가 아내가 꽃집 앞에서 작은 선인장을 하나 샀다. 우리는 계속 걸어 연희동의 사러가쇼핑까지 간다. 승원이네를 지나며 승원이 생각을 했고(곧 승원이를 만나야겠다.) 현진이와 마신 곳(‘순자네’인데 내부 수리 중이거나 문을 닫은 듯) 앞을 지나며 현진이 생각을 했다. 사러가에 가면 늘 외제 상품을 파는 가게 앞에서 즐거워지는데, 재밌는 게 많기 때문이다. 가령 일제 파리채. 일본 물건은 무엇이든 귀여운 구석이 있다. 아내에게 일제 파리채를 사주고 싶기도 하다. 아내는 다시 버터와 뭐와 뭐 등을 산다. 우리는 뤼엘 드 파리에 갔으나 휴가 중. 우리는 606번 버스를 타고 망원동으로 온다. 바로 집에 들어온 것 같다. 내 기억엔 그렇다. 우리는 밥을 먹었다. 이번엔 정말로 밥을 먹었다. 사러가에서 산 풀만 먹인 호주 소고기(나는 그럼 소에게 풀만 먹이지 뭘 먹여, 라고 물었고 지혜는 옥수수, 라고 답했다. 맞는 말 같지는 않다. 나는 옥수수...라고 말하며 기형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과 김치와 장모님이 담근 오이지와 뭐와 뭐를 먹었다. 잘 먹었고 다시 나갔다. 시장에 가서 작은 수박을 샀고 월드컵마트로 가 뭐와 뭐를 샀다. 양파 따위.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목포집 앞을 지나며 홍어가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집에 와서 아내는 누웠다. 나는 혼자 강으로 나갔다. 강으로 가기 전에 교회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셨다. 종이컵에 쓰인 성경 구절을 읽고 생각했다. 기억나지 않는다. 강에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는 경찰정 앞에 서서 담배를 하나 피우고 천천히 걸어 유수지 스탠드 앞에서 다시 담배 하나 피우고 집으로 왔다. 무언가 슬펐고 우울했다. 집에 와서 오늘 산 책을 서가에 꽂고 쥘 베른을 로브그리예로 바꾸고 설거지하고 재활용 버렸다. 그러고 나서 앉아 시를 쓰려다 나도 모르게 이런 걸 썼는데 시라고 발표할까 생각 중인데 그러지 않을 것 같다. 더 시를 쓰는 느낌으로 무언가를 써서 발표하는 것이 내게 편하다. 담배 하나 피워야겠다. 술 한 잔 마시고 싶다. 두 잔. 세 잔.

 

  이제 밥을 먹어야겠다. 뭐 이런 거 말고 보다 시적인 글을 쓰도록 하자. 밥을 먹고 로브그리예를 조금 읽고(La Jalousie다. 불어로 읽고 싶었는데 잘 되었다.)시를 쓰고 섀도복싱을 하고 씻고 잘 수 있으면 자고 잠이 안 오면 유로 축구 보고 다시 시 쓰고 자야겠다. 요즘 잠이 잘 안 든다. 산에 가고 싶다. 뭐가 빠진 게 많은 것 같은데, 나의 심리가 잘 표현되지 않았다. 수강생들의 글을 아직 하나도 읽지 않았다. 내일부터 읽어야겠다. 수강생들도 나처럼 쉽게 쓰고 시인도 되고 소설가도 되고 그랬으면 좋겠다. 하지만 난 어렵게 살지. 김수영보다 더 어렵게 산다. 농담이 지나쳤나. 주관적으로 그러면 그런 거다. 이제 어른이 되고 싶다. 나이가 너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