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메이트
- 이근화
우리는 이 세계가 좋아서
골목에 서서 비를 맞는다
젖을 줄 알면서
옷을 다 챙겨 입고
지상으로 떨어지면서 잃어버렸던
비의 기억을 되돌려주기 위해
흠뻑 젖을 때까지
흰 장르가 될 때까지
비의 감정을 배운다
단지 이 세계가 좋아서
비의 기억으로 골목이 넘치고
비의 나쁜 기억으로
발이 퉁퉁 붇는다
외투를 입고 구두끈을 고쳐 맨다
우리는 우리가 좋을 세계에서
흠뻑 젖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골목에 서서 비의 냄새를 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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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그렇고, 미학은 최대한 생략의 깔끔을 떨며 생과 동의어인 비극 운명에 대해 앙증맞게, 거의 요염하게 시치미 떼고 새침 떠는 것이, 악몽인 육체가 악몽의 육체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듯이, 영혼은 비에 젖는 드러남에 불과하다는 듯이. 나이를 더 먹으면 결국 영혼이 스스로 누추를, 혹은 누추임을 드러내겠으나. <김정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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