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씨 뿌리는 사람- 이진우

나뭇잎숨결 2015. 2. 21. 08:15

씨 뿌리는 사람

 

이 진우


주머니 가득 씨 넣고 다니며
세상에 씨 뿌리는 사람
온갖 꽃씨, 마음씨, 생각씨를
손에 쥐고
화장한 재 뿌리듯
마음 닿는 자리마다
씨 뿌리는 사람
슬프다 기쁘다 얽매이지 않고
옳다 그르다 따지지 않고
보일 듯 말 듯 뒹구는
작은 씨앗 같은 그 사람이
씨 뿌리는 오늘,
메마른 세상의 틈이
씨앗만큼 벌어진다 

 


# 씨앗을 가진 사람은 귀가 열려 있다. 세상의 날씨가 아무리 변덕스러워도 자연의 운행을 거스르지는 못한다. 우수(雨水)가 오고 있다. 물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씨앗을 가진 사람은 얼음장 밑에서 기지개 켜는 물의 몸짓을 듣는다. 때 아니게 퍼붓는 폭설 속에서도, 매서운 북풍이 눈알을 부라리며 기세등등하게 골목을 휩쓸고 다녀도 "씨 뿌리는 사람"은 알고 있다. 언 땅 속에서 보리 씨앗들이 연두의 희망을 품고 흙을 깨우고 있다는 것을.

 

“씨 뿌리는 사람”은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피노키오 이야기에 솔깃해 하지도 않는다. 가짜 선지자처럼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허황된 말씀 따라 줄을 서지도 않는다. “씨 뿌리는 사람”들이 믿고 신뢰하는 것은 자연과 우주의 운행이다, “슬프다 기쁘다 얽매이지 않고/옳다 그르다 따지지 않고”, 씨를 품어주는 흙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 “작은 씨앗 같은 그 사람이” 뿌리는 것은 희망이며 믿음이다. 씨앗 속에 들어 있는 꽃과 열매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당신은 어떤 씨앗을 가지고 있는가? 당신이 가진 씨앗은 어디에 뿌릴 것인가? 뿌릴 씨앗이 있기는 한가?     


문화저널21 편집위원 서대선 시인 seodaese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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