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연탄- 이정록

나뭇잎숨결 2015. 2. 18. 06:54

 

연탄

 

이 정록

 

 

아비란 연탄 같은 거지.
숨구멍이 불구멍이지.
달동네든 지하 단칸방이든
그 집, 가장 낮고 어두운 곳에서
한숨을 불길로 뿜어 올리지.
헉헉대던 불구멍 탓에
아비는 쉬이 부서지지.
갈 때 되면 그제야
낮달처럼 창백해지지.


 

 

 

 

 

 

 

아버지는 그 집의 문패여야 하고 구들장을 따뜻이 덥히는 아궁이여야 하고 한 여자와 자식을 거느린 남자의 무거운 등짐은 식솔을 책임지는 맹수가 되어야만 합니다. 공장에서 갓 뽑아낸 탄의 단단하고 매끄러운 몸이 갖는 무게, 아비가 예민한 감각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맹금류일 때 식솔에게는 따뜻하고 안전한 공간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가금류 신세인 불쌍한 아버지들, 연탄불구덩이 속에서 헉헉대며 삭아버린 누렇게 뜬 달. 가족의 버거운 짐을 벗어났을 때는 아비가 됩니다.

권구를 목줄에 걸고 옆도 뒤도 돌아볼 새 없이 쳇바퀴 속에서 한숨을 뿜어 올렸던 아비. 살짝 건드려도 파삭 부서지는 아비.

그래도 자식들 가슴에 불씨 하나씩 당겨서 대를 잇는 아비는 쉬이 꺼지는 것은 아닙니다. (박정옥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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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곳이나 자신을 태워 다른 사람의 삶을 덥히는 연탄 같은 존재가 있습니다.

연탄처럼 자신의 생을 다른 사람의 삶을 덥히기 위해 조금씩 사그라드는 생명줄을 놓고 계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적인 삶을 사셨던 , 사시는. 사실 분들에게 이 시를 올립니다.

 

온 가족이 소외됨 없는 행복한 명절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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