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 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流星)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微小)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네루다 시선>(정현종 옮김, 민음사, 2007)
시를 말하다
문태준 l 시인
바다와 자전거와 섬이 있고, 사랑과 신념과 열정이 있고, 음악과 시와 시인의 삶이 있어서 좋았던 영화 <일 포스티노>. 가진 것의 전부였던 자전거 한 대 덕분에, 정치적 탄압을 피해 외딴 섬에 살게 된 파블로 네루다 시인의 전속 우편배달부가 된 가난한 청년 마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저도 시인이 되고 싶어요!” 섬의 모든 여자들이, 무엇보다 자기가 짝사랑하는 베아트리체까지 네루다 '시인'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시란 쓴 사람의 것이 아니라, 그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것이야.”, “시는 말로 설명할 수 없어, 가슴을 활짝 열고 시의 고동 소리를 들어야 해.”, “해변을 거닐며 주변을 둘러보게.” 그러면 메타포(은유)가 나타난다며 네루다는 마리오에게 시의 길을 열어준다. 마리오는 바다를 보며, 짝사랑하는 베아트리체를 보며, 메타포를 생각한다. 메타포는 매직과도 같이 네루다에게서 마리오에게로, 마리오에게서 베아트리체에게로 스며들고 또 분출한다. 시처럼! 사랑처럼! 시대처럼! 삶처럼!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라는 긴 본명을 가졌으나 체코의 시인 ‘얀 네루다’에서 필명을 빌려 왔던 시인, 가난한 철도원의 아들로 태어나 공산당 대표 대통령 후보가 되었던 시인, 대부분의 남미 사람들이 그러하듯 칠레의 몸과 마음을 스페인어로 표출했던 시인, 외교관으로 망명객으로 여행자로 세계 도처를 떠돌며 자연과 사랑과 민중으로 시를 빚고 시로 세상을 바꾸고자 했던 시인, 자신의 삶을 “모든 삶으로 이루어진 삶”으로 살아냈던 시인, 국제스탈린평화상(1950)과 노벨문학상(1971)을 둘 다 수상한 시인, 공산주의자였고 시인이었지만 공산주의 시인은 아니었던 시인, 시인이자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시인… 그러니까, 그렇게 네루다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시인이 되었다.
네루다적인 시법(詩法)을 일컫는 ‘네루디스모(nerudismo)’라는 말은 네루다의 시적 위상을 대변한다. 참신한 이미지가 범람하는 발견으로서의 메타포, 분출하는 정치적 선동성과 관능적 서정성, 초현실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자유로운 상상력, 격정적이고 거침없는 시 형식 등이 그 특징들이다. 열정과 연대, 사랑과 혁명의 에너지가 소용돌이치는 이런 다양성과 상극성의 혼연일치야말로 네루다의 삶과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나는 앞으로도 내 수중에 있는 소재, 나라는 존재를 형성하고 있는 소재로 작업할 것이다. 나는 잡식성이어서 감정, 존재, 책, 사건, 전투 등 무엇이나 삼킨다. 온 땅을 먹고 싶고, 온 바다를 마시고 싶다.”라고 했던 그의 산문 한 구절은 그 자체로 네루디시모에 대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칠레의 민중시인이자 저항시인 파블로 네루다. 그는 69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정치가이자 시인으로서 ‘잉크보다 피에 가까운 시인’, ‘모든 언어를 통틀어 20세기 가장 위대한 시인’이란 찬사를 들었다. 1971년 노벨 문학상 수상.
<이슬라 네그라의 추억>(1964)에 수록되었던 이 ‘시’는 우리에게 친숙하다. 영화 <일 포스티노>의 라스트 신을 장식한 시이자 네루다의 삶과 시를 언급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시다. 시가 어떻게 우리에게 들고나는지를 시로 쓴 시이고, 우주의 삼라만상과 내 안의 뜨거운 가슴이 언어적 스파크를 일으키는 네루디스모를 메타포한 시이다. 우리가 시를 읽고 쓰는 까닭은 우리가 사람이라서고, 그 시가 사람을 사람이게 해서다. 그러니까, 시가, 상상과 꿈과 공감과 감동과 이해와 연대를 위한 한 알의 밀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네루다 또한 “시는 어둠 속을 걸으며 인간의 심장을, 여인의 눈길을, 거리의 낯선 사람들, 해가 지는 석양 무렵이나 별이 빛나는 한밤중에 최소한 한 줄의 시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대면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 ‘시’는 우리가 매일매일 보는 ‘하늘’과 ‘유성(流星)’이, ‘논밭’과 ‘어둠’이, ‘밤’과 ‘우주’가, 그리고 우리가 매일매일 쓰는 언어가 생생한 시가 되는 순간들을 보여준다. 네루다에게 시는 큰 ‘별’들이 총총한 ‘허공’에 취한 내 ‘심장’이 하나 되는 때다. 3연에서처럼 ‘취하고’ ‘느끼고’, 더불어 ‘구르고’ ‘풀리’면서 말이다. 그 별과 허공과 심장을 자유롭게 들고나는, 그러니까, 생명이 가득 찬 ‘바람’과 같은 존재다. 그런 ‘바람’은 1연의 ‘모르겠어’, ‘아니었어’, ‘불렀어’, ‘건드렸어’라는 술어의 속성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 대체로 ‘모르겠는’ 게 시이고, 늘 ‘아닌’ 게 시이고, 문득 ‘부르는’ 게 시이고, 툭 ‘건드리는’ 게 시이기 때문이다. 시란 때로 애매하고 모호해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나 늘 존재론적 호명을 통해 존재의 살갗에 닿는 것이다. 쉽사리 이름 할 수 없으나 눈멀게 하는 “열(熱)이나 잃어버린 날개”와도 같은 것이기에 불에 데고 잘려 나간 그 상처들을 쉼 없이 해독하면서 쓴 첫 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전한” 헛소리 혹은 무의미와도 같은 것이자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지혜와도 같은 것이다. 시는 그렇게 우리를 시인으로 만든다.
그러니까, 그런 시가, 그렇게 네루다에게 찾아왔으니, 또 그렇게 내게도 찾아왔으면 하고, 당신에게도 찾아갔으면 한다. 그리하여, 티끌만 한 우리의 심장이 허공에 취한 큰 별들과 더불어 떠돌며 바람 속에 풀려났으면 한다. 그 바람 속에서, 우리의 영혼이 살아 숨 쉬었으면 한다. 그렇게 시가 우리에게 스며들고 분출하였으면 한다. 상상만으로도 벅차고 아름다운 인간적 연대이자 우주적 합일이 아닌가!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7.12-1973.9.23) 1904년 남칠레 국경 지방에서 철도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열아홉 살 때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출간하여 남미 전역에서 사랑을 받았고, 스물세 살 때 극동 주재 영사를 맡은 이후 스페인, 아르헨티나, 멕시코 등지의 영사를 지냈다.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이 일어나자 파리에서 스페인 사람들의 망명을 적극적으로 돕는 등 정치 활동을 했으며 칠레 공산당 상원의원으로도 활동했다. 곤살레스 비델라 독재 정권의 탄압을 받자 망명길에 올랐다가 귀국 후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면서 프랑스 주재 칠레 대사에 임명되었다. 1973년 피노체트 군사 쿠데타가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시집으로 위의 첫 시집 외에 <지상의 거처 Ⅰ,Ⅱ,Ⅲ>,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에스트라바라기오>, <충만한 힘> 등이 있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탄- 이정록 (0) | 2015.02.18 |
---|---|
낙화落花 /이형기 (0) | 2015.02.17 |
정지용, 춘설(春雪) (0) | 2015.02.04 |
정지상, 신설(新雪) (0) | 2015.02.03 |
이해인, 백합의 말 (0) | 2015.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