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작품을 그 안에 녹여낸 시이고, 소설이며, 또한 시이면서 소설인 새로운 텍스트로 다가오는 허윤진의 비평집.『5시 57분』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해설과 단평류의 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문학에 관한 풍성한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전위적인 비평 양식과 비평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텍스트와의 긴장 관계가 좀더 팽팽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흔히 서두를 장식하는 「책머리에」도 이번 비평집에는 따로 싣지 않았다. 대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본문 안에 함께 배치되어 있다.
예를 들어,「Sonogram Archive Serial Number 6002」은 시와 소설의 방향 교차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과 그중에서도 음악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김애란과 한유주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 다음 이어지는 「대화의 퍼즐, 흩어진」는 흩어진 퍼즐처럼 구성된 한편의 소설과 같은 글로 조연호의 시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사전의 언어와 시의 언어를 통합적으로 전유하는 이준규의 시를 분석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전」과 자기재현적인 언어 네트워크를 이루는 한유주, 이준규, 김경주의 작품을 살펴본 「다시, 읽다」도 흥미롭다. 이 외에도 총 3부에 걸쳐, 최근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들을 각기 다른 색깔로 담아낸 15편의 평론들을 수록했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존재로서 언어의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반복해서 통과할 때, 나의 헛걸음은 개인적인 몽상과 반역의 차원의 지나 어느새 사회적인 소통의 차원으로 향해 간다. 흰색과 푸른색과 검은색이 아무렇게나 염색된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모든 언어의 체계를 뒤섞어 이해와 오해의 어디쯤엔가 위치한 말을 하면서, 당신의 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 무국적, 무시간 여행자와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부디 그녀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주시길. 그녀의 따스한 포옹이 당신을 치유하고, 그녀가 당신의 번역 불가능한 꿈을 조금쯤은 필사해줄지 모를 일이니. 부디 그녀의 문장을 조금쯤은 유심히 들어주시라.
새벽 5시 57분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꿈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바로 직전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나 타인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기나긴 복도로 걸어가는 나를 본다. 그 복도의 끝에서 마주치는 것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이라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타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내가 윤리적으로 실패했음
꿈과 현실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내국인도 외국인도 아닌 존재로서 언어의 출입국 관리사무소를 반복해서 통과할 때, 나의 헛걸음은 개인적인 몽상과 반역의 차원의 지나 어느새 사회적인 소통의 차원으로 향해 간다. 흰색과 푸른색과 검은색이 아무렇게나 염색된 얼룩덜룩한 옷을 입고, 모든 언어의 체계를 뒤섞어 이해와 오해의 어디쯤엔가 위치한 말을 하면서, 당신의 꿈을 향해 저벅저벅 걸어가고 있는 무국적, 무시간 여행자와 혹시 마주치게 된다면, 부디 그녀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주시길. 그녀의 따스한 포옹이 당신을 치유하고, 그녀가 당신의 번역 불가능한 꿈을 조금쯤은 필사해줄지 모를 일이니. 부디 그녀의 문장을 조금쯤은 유심히 들어주시라.
「에필로그」 중에서
새벽 5시 57분은 나에게, 고통스러운 꿈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바로 직전의 시간으로 기억된다.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나 타인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기나긴 복도로 걸어가는 나를 본다. 그 복도의 끝에서 마주치는 것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이라 할지라도, 나는 끝까지 걸어갈 것이다. 타인의 창백한 얼굴을 보며 내가 윤리적으로 실패했음을 스스로 목격하고, 스스로 그 사건을 증언할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벽한 착각이며 오만이다. 다만 나는 타인이 나에게 전한 말을 영원히 기억함으로써 늘 그녀의 말을 내 안에 품을 것이다. 내 안의 시간은 매일 새벽 5시 57분에 멈춰 설 것이고, 나의 몸은 정지한 채로 그녀의 말을 해산(解産)할 것이다. 그 말이 법을 넘어선 진실에 가 닿을 때, 비로소 나는 타인의 고통과 근심에 귀 기울이고 그녀와 교감할 수 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비평은 새벽 5시 57분의 언어로서 자라난다.
꿈이라는 비평적 사유를 타인의 텍스트 안에서 실천하는 풍성한 비평의 새벽, 『5시 57분』
새로운 감각의 지도를 자기만의 색깔을 담아 활발하게, 그리고 도전적으로 펼쳐 보이는 것은 젊은 비평가가 의당 갖춰야 할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감각과 담론에 도전하여 ‘차이’의 담론을 제시하고 자신의 새로운 감각을 도발적으로 꺼내 놓는 자. 아무에게서도 지적되지 않은 전적으로 새로운 문학 지형에 비평적 감각의 촉수를 들이대어, 전위적 문학의 푯대를 곧추세우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신인 비평가의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신인 비평가들의 표정과 도전으로 문학과 비평적 감각 또한 혁신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빠르게 변화해가는 문학의 흐름 속에 비평의 목소리도 이처럼 함께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젊은 비평가의 선두에 허윤진이 있다.
이원의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와 듀나의 소설집 『태평양 횡단 특급』에서 보이는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예리하게 포착했던 「무궁동(無窮動)의 욕망, 무궁동(無窮動)의 유목」으로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으로 등단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과사회』 동인들은 “우리 문학의 최전선의 상상력을 탐문하는 전위적 비평 감각이 돋보”이는 이 젊은 비평가에게서 “새로운 감각과 사유 내지 상상력 지대를 가로지르는 활발한 비평 정신”의 가능성을 읽어내었다. 또한 “안정된 대상으로부터 탈주했다는 것, 전통적 비평 담론에 기대지 않았다는 것, 유목민적 감각으로 동시대 노마드 상상력의 최전선을 탐문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 문학의 낯선 목소리들에 적절한 감각의 물음표를 설정해주었다는 것, 등 여러 면”을 들어, 그녀의 등장에 긴장했다.
허윤진은 이러한 기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고, 아니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8월 3일, 그동안의 평론 중 15편을 묶어 첫 비평집을 출간하였다. 제목부터가 ‘전위적인 감각’이 물씬 배어나는 『5시 57분』이다.
『5시 57분』에서 우리는 허윤진의 지난 4년간의 비평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텍스트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그녀의 독특한 비평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번 비평집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해설과 단평류의 글을 찾아볼 수 없다...꿈이라는 비평적 사유를 타인의 텍스트 안에서 실천하는
풍성한 비평의 새벽, 『5시 57분』
새로운 감각의 지도를 자기만의 색깔을 담아 활발하게, 그리고 도전적으로 펼쳐 보이는 것은 젊은 비평가가 의당 갖춰야 할 자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의 감각과 담론에 도전하여 ‘차이’의 담론을 제시하고 자신의 새로운 감각을 도발적으로 꺼내 놓는 자. 아무에게서도 지적되지 않은 전적으로 새로운 문학 지형에 비평적 감각의 촉수를 들이대어, 전위적 문학의 푯대를 곧추세우는 것이 우리가 기대하는 신인 비평가의 모습이 아닐까.
이러한 신인 비평가들의 표정과 도전으로 문학과 비평적 감각 또한 혁신을 거듭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빠르게 변화해가는 문학의 흐름 속에 비평의 목소리도 이처럼 함께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젊은 비평가의 선두에 허윤진이 있다.
이원의 시집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와 듀나의 소설집 『태평양 횡단 특급』에서 보이는 새로운 감각과 상상력을 예리하게 포착했던 「무궁동(無窮動)의 욕망, 무궁동(無窮動)의 유목」으로 2003년 제3회 『문학과사회』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으로 등단할 당시, 그녀의 나이는 스물넷이었다. 심사를 맡았던 『문학과사회』 동인들은 “우리 문학의 최전선의 상상력을 탐문하는 전위적 비평 감각이 돋보”이는 이 젊은 비평가에게서 “새로운 감각과 사유 내지 상상력 지대를 가로지르는 활발한 비평 정신”의 가능성을 읽어내었다. 또한 “안정된 대상으로부터 탈주했다는 것, 전통적 비평 담론에 기대지 않았다는 것, 유목민적 감각으로 동시대 노마드 상상력의 최전선을 탐문했다는 것, 그래서 우리 문학의 낯선 목소리들에 적절한 감각의 물음표를 설정해주었다는 것, 등 여러 면”을 들어, 그녀의 등장에 긴장했다.
허윤진은 이러한 기대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고, 아니 그 이상의 성과를 보여주며 지금까지 활발한 비평 활동을 펼쳐왔다. 그리고 8월 3일, 그동안의 평론 중 15편을 묶어 첫 비평집을 출간하였다. 제목부터가 ‘전위적인 감각’이 물씬 배어나는 『5시 57분』이다.
『5시 57분』에서 우리는 허윤진의 지난 4년간의 비평 활동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텍스트에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는 그녀의 독특한 비평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번 비평집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특징은 해설과 단평류의 글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앞으로 문학에 관한 풍성한 담론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더 전위적인 비평 양식과 비평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텍스트와의 긴장 관계가 좀더 팽팽해져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흔히 서두를 장식하는 「책머리에」도 이번 비평집에는 따로 싣지 않았다. 대신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본문 안에 함께 배치되어 있다. 그것은 마치 허윤진 비평의 세계를 향해 들어가는 문과 나오는 문 같이 느껴진다. “꿈과 현실을 가로지르”는 저자는 꿈이라는 비평적 사유로 텍스트를 향해 저벅저벅 들어간다. 그 걸음을 가만 좇다 보면, 이미 알고 있는 문학 작품들이 낯설게 다가오는 색다른 경험을 독자들은 하게 될 것이다.
허윤진의 글은 문학 작품을 그 안에 녹여낸 시이고, 소설이며, 또한 시이면서 소설인 새로운 텍스트로 다가온다. 이를테면 「Sonogram Archive Serial Number 6002」에서 독자는 미래의 아카비스트로부터 하나의 소노그램을 전송받는다. 그것은 시와 소설의 방향 교차로 미학적 성취를 이루고 있는 작품들과 그중에서도 음악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김애란과 한유주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다. 그다음 이어지는 「대화의 퍼즐, 흩어진」는 흩어진 퍼즐처럼 구성된 한편의 소설과 같은 글로 조연호의 시를 분석하고 있다. 또한 사전의 언어와 시의 언어를 통합적으로 전유하는 이준규의 시를 분석한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전」과 자기재현적인 언어 네트워크를 이루는 한유주, 이준규, 김경주의 작품을 살펴본 「다시, 읽다」도 흥미롭다.
이 외에도 총 3부에 걸쳐, 최근 주목받는 작가와 작품들을 각기 다른 색깔로 담아낸 15편의 평론들은 새로운 비평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새벽 5시 57분은 “고통스러운 꿈보다 현실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기 바로 직전의 시간”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혼자만의 꿈에서 깨어나 타인들과 함께하는 현실의 기나긴 복도를 걸어가는” 그녀는, “그 복도의 끝에서 마주치는 것이 우리의 상처와 고통이라 할지라도, 끝까지 걸어갈 것”이라고 다짐한다.
새벽 5시 57분은 허윤진에게 있어 비평의 시간이다. 푸른 새벽의 복도 위에 그녀가 서 있다. 그 풍성한 비평의 새벽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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