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이제 알게 될 겁니다. 결코 위안 같은 건 찾을 수 없으리라는 걸, 날이 갈수록 더 많이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이 사실을 깨닫는 일이 다름 아닌 위안이라는 걸."(롤랑 바르트)
『애도 일기』는 '현대 비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히는 롤랑바르트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가 사망한 1977년 10월 25일의 다음 날부터 시작된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작품 중 하나인 『애도 일기』는 '죽음'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일부라고 여겼던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깊은 슬픔이 있다. 바르트는 이 아름답고 슬픈 텍스트에서 상실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파헤치고, 내지른다.
스무세 살의 젊은 나이에 전쟁미망인이 된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와 바르트는 특벼한 관계였다. 그가 62세 떄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어머니를 맨 앞자리에 앉혀 놓고 취임강연을 한 일화도 유명하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질책한 적이 없었다.”는 바르트가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 어머니를 “관대함”, “선함”의 상징으로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다. 이 『애도 일기』는 그런 어머니와의 끊어진 사랑을 격렬하게 슬퍼하고, 글쓰기를 통해 재생된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순수한 슬픔, 외롭다거나 삶을 새롭게 꾸미겠다거나 하는 따위와는 상관이 없는 슬픔. 사랑의 관계가 끊어져 벌어지고 패인 고랑.”
― 1977년 11월 9일 일기에서
“바르트에게 사랑의 대상은 경제학의 대상이 아니다. 사랑의 대상은 바르트에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다. 대체할 수 없는 사랑이 상실되었으므로 그 상실이 남긴 부재의 공간 또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패인 고랑’으로만 남는다.” ―김진영, 「해설」에서
1. 롤랑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발견
이 책은 ‘현대 비평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으로 꼽히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가 어머니의 죽음을 애도하며 쓴 일기다.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Henriette Binger, 1893~1977)는 1977년 10월 25일 사망했다. 그 다음 날부터 바르트는 애도 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이 일기는 2년 뒤인 1979년 9월 15일에 끝난다. 노트를 사등분해서 만든 쪽지 위에 바르트는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일기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책상 위 조그만 상자에 이 쪽지들을 모아두었다. 현대저작물 기록보존소(IMEC)에 간직되어 있던 『애도 일기』의 원고는 분리된 쪽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략되는 내용 없이 다시 편집되어 2009년 쇠유(Seuil)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애도 일기』는 『밝은 방』과 더불어 롤랑 바르트의 후기 스타일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텍스트이다. 지적인 여정에서든 글쓰기의 여정에서든 이 후기 스타일을 결정짓는 근간은 바로 ‘죽음’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일부라고 여겼던 사람을 잃어버렸을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깊은 슬픔이 있다. 바르트는 이 아름답고 슬픈 텍스트에서 상실의 슬픔을 집요하게 추적하고, 파헤치고, 내지른다.
2. 격렬한 슬픔의 습격해올 때마다 써내려간 육체의 비명
바르트의 어머니 앙리에트 벵제는 1893년에 태어나서 스무 살 때 루이 바르트(Louis Barthes)와 결혼했고, 스물세 살 때 전쟁미망인이 되었다. 롤랑 바르트가 한 살 때 루이 바르트가 해군장교로 전사를 했기 때문이다. 어머니와의 특별한 관계는 바르트가 1976년 62세 때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어머니를 불러와 맨 앞자리에 앉혀 놓고 취임강연을 한 일화로도 유명하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나를 질책한 적이 없었다.”는 바르트가 어머니를 그리워할 때, 어머니를 “관대함”, “선함”의 상징으로 이야기할 때 하는 말이다. “자궁 밖으로” 나오지 않은, 어른이 되지 못한 “늙은 아이”였던 바르트는 어머니와의 사랑이 끊어지자 거의 2년에 걸쳐 그의 외로움, 격렬한 슬픔,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재생된 삶에 대해 써내려갔다. 슬픔이 습격해올 때마다 짧게 써온 이 일기들은 텍스트를 넘어서는 절편적 글쓰기 형태를 취하고 있다. 어떤 구상도 없고, 체계화나 언어화가 되기 전에 멈추어버린, 바르트의 육체의 언어이자 비명이었던 셈이다.
3. ‘사랑을 잃어버린 슬픔’에 대한 집요한 추적
기호학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현대 세계에서 가장 활력적인 사유를 펼쳤던 바르트의 지적 커리어는 크게 어머니의 죽음 전과 죽음 후로 나눌 수 있다. 『애도 일기』를 써나가던 2년 사이에 바르트는 『밝은 방』을 집필했다. 또 「오래전부터 나는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라는 프루스트에 관한 강연을 했고,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구상했던 소설 “비타 노바(Vita Nova)"의 스케치를 했고, 「소설을 준비하면서」의 강의를 계획하기도 했다. 사실 이 모든 작업들은 또 다른 애도 일기들이었다.
『밝은 방』은 “사진에 대한 노트”라는 부제를 달고 있지만, 적어도 『애도 일기』와의 관계에서는 사진론 텍스트가 아니라 슬픔에 관한 텍스트이다. 『밝은 방』도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슬픔에 젖어 있지만, 제목에서처럼 빛이 있다. 그 빛이 작렬하면서 사랑이 죽음에 대해 승리하는 엑스터시의 체험, 사진 체험이 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어머니를 다시 만났다!”라고 바르트가 경이에 차서 외치듯, 『밝은 방』의 근본적인 사건은 사진을 통해서 어머니를 만난 것이다. 즉 푼크툼(punctum)의 순간에 죽은 어머니가 바르트에게 ‘온전한 현존’으로 귀환한 것이다.
그러나 바르트는 『애도 일기』에서는 끝내 어머니를 잃은 상처를 해소하지 못한다. 어머니에 대한 추억행위가 가능했던 『밝은 방』에서와 달리 『애도 일기』의 시기에 오면 바르트는 자신의 죽음과 만난다. 어머니의 죽음 후 끊임없이 죽음충동에 시달렸던 바르트는 『애도 일기』가 끝난 이듬해(1980년) 2월, 길을 건너다가 작은 트럭에 치인다. 사고는 경미했지만 심리적으로 치료를 거부했고 그는 한 달 뒤 사망한다. 1979년 5월 1일 일기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나는 마망과 하나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와 함께 (동시에) 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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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랑 바르트(프랑스어: Roland Barthes, 1915년 11월 12일 ~ 1980년 3월 25일)는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이다.
소르본 대학에서 고전문학을 공부한 다음에, 파리에서 고등학교 선생을 했다. 이후 부카레스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대학강사를 하며 보냈고, 1952년 파리의 국립과학센터(프랑스어: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의 연구원이 되었다. 1953년 근대문학의 형성을 다룬 《글쓰기의 영도Le Degré zéro de l'écriture》가 출판됐고, 1957년 일상생활의 이데올로기를 비판한 기고문을 모아 엮은《신화론Mythologies》이 뒤따랐다. 1962년 프랑스고등연구실천원(프랑스어: École pratique des hautes études)의 연구책임자로 임명됐다.
1960년대 기호학과 구조주의에 전념했지만(《기호학원론Éléments de sémiologie》(1964), 《유행의 체계Système de la mode》(1967)), 곧이어 구조주의를 폐기했다(《S/Z》(1970), 《텍스트의 쾌락Le Plasir du texte》(1973)).
다재다능하여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렸던 바르트는 《오브비와 옵투스L'Obvie et l'obtus》(1982)에서 슈만과 톰블리(C.Y. Twombly)를,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1982) 에서 사진을 다루었다. 1976년 콜레주 드 프랑스(프랑스어: Collège de France)의 문학기호학 교수로 초빙됐다. 바르트의 다방면의 작품들은 고유한 발전과 현실적 위치를 끊임없이 성찰한 결과들이다 (자서전인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par Roland Barthes》(1975)와 대담집 《목소리의 결정Le Grain de la voix. Entretiens 1962~1980》(1981) 참고).특히 그가 쓴 '작가의 죽음'은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80년 교통사고로 죽었다.
- 《글쓰기의 영도Le Degré zéro de l'ériture》 Paris 1953
- 《신화론Mythologies》 Paris 1957
- 《기호학 원론Éléments de sémiology》 Communications 4 1964
- 《유행의 체계Systéme de la mode》 Paris 1967
-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 Genf 1970
- 《텍스트의 쾌락Le Plasir du texte》 Paris 1973 ISBN 89-8038-422-X
-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R. B. par. R. B. Paris》 Paris 1975
-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Paris 1977
- 《강의Leçon》 Paris 1978
- 《밝은 방: 사진에 대한 노트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 Paris 1980
- 《목소리의 결정Le Grain le la voix. Entretiens 1962~1980》 Paris 1981
- 《Essais critiques III. L'Obvie et l'obtus》 Paris 1982
- 《Essais critiques IV. Le Bruissement de la langue》 Paris 1984
- 《기호학의 모험L'Adventure sémilogique》 Paris 1985
- 《작은 사건들Incidents》 Paris 1987
- 《전집Œuvres complétes》 Paris 1993~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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