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장자의 소요유逍遙遊, 제물론齊物論 중에서

나뭇잎숨결 2013. 2. 1. 07:39

 

 

 莊子․內篇소요유逍遙遊

北冥有魚, 其名爲鯤。鯤之大, 不知其幾千里也。化而爲鳥, 其名爲鵬。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是鳥也, 海運則將徒於南冥。南冥者, 天池也。
북쪽 심원에 물고기 한 마리가 있었는데,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하였다. 곤의 크기가 몇 천리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곤이 새로 변하면 그 이름을 붕(鵬)이라 하였다. 붕의 등이 몇 천리에 달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힘껏 날아오를 때의 그 날개는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도 같았다. 이 새는 큰 물결이 일면 지체 없이 남쪽 심원으로 떠나갔으니, 남쪽 심원이라 함은 곧 하늘못(天池)을 말함이다.

齊諧者, 志怪者也。 諧之言曰..「鵬之徒於南冥也, 水擊三千里, 搏扶搖而上者九萬里。 去以六月息者也。」
제(齊)나라의 해은서(諧隱書)는 기이한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글이다. 해은서에서 말하기를, “붕이 남쪽 심원으로 떠나갈 때면 박차는 물결은 삼천리에 이르고, 대기를 쳐서 이는 바람에 떠받쳐져 구만리 높이에 이른다. 그렇게 가기를 여섯 달이 되어서야 비로소 멈춘다.”고 했다.

野馬也, 塵埃也, 生物之以息相吹也。 天之蒼蒼, 其正色邪? 其遠而無所至極邪? 其視下也, 亦若是則已矣。
아지랑이인지, 먼지인지, 숨쉬면서 서로에게 입김을 불어대는 살아 있는 것들인지. 하늘의 푸르름은 그 본래의 색인가. 아니면 그 머나멈이 끝이 없어서일까. 내려다본들 이와 무슨 다를 바 있겠는가.

且夫水之積也不厚, 則其負大舟也無力。覆杯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杯焉則膠, 水淺而舟大也。風之積也不厚, 則其負大翼也無力。故九萬里, 則風斯在下矣, 而後乃今培風., 背負靑天而莫之夭閼者, 而後乃今將圖南。
또한 물의 차오름이 두텁지 않으면, 큰 배를 떠받칠 힘도 없다. 움푹 패인 곳에 한 잔의 물을 부으면 지푸라기도 배처럼 뜬다. 그런데 그 곳에 잔을 띄우면 바닥에 닿게 되는데, 물은 얕으나 배는 크기 때문이다. 바람의 두께가 두텁지 않으면 큰 날개를 떠받칠 힘도 없다. 그러므로 구만리 높이가 되어야 바람은 모두 아래에 있게 됨에, 그때부터 비로소 바람에 힘입어, 아무런 막힘없이 푸른 하늘을 등지게 됨에 그때부터 비로소 남으로 향할 수 있게 된다.

蜩與學鳩笑之曰..「我決起而飛, 搶楡枋而止, 時則不至而控於地而已矣, 奚以之九萬里而南爲?」 適莽蒼者, 三飡而反, 腹猶果然., 適百里者, 宿舂糧., 適千里者, 三月聚糧. /之二蟲又何知!
매미와 (산)비둘기가 붕새를 비웃으며, “우리가 힘껏 일어나 날면 느릅나무나 박달나무에 부딪쳐 멈추고, 때로는 오히려 이르지도 못하고 땅으로 내동댕이치는데, 굳이 무엇 때문에 9만리나 날아서 남쪽 심원으로 가려 하는가?”라고 말했다. 근처 푸른 들판으로 가는 사람은 세 끼의 식량만 있어도 돌아올 때 배가 부를 것이고, 백 리를 가려는 사람은 하룻밤 묵기에 충분한 양식을 찧고, 천 리를 가려는 사람은 석 달 치 식량을 모은다. 이 두 짐승이 어찌 알겠는가!

小知不及大知, 小年不及大年. 奚以知其然也? 朝菌不知晦朔, 蟪蛄不知春秋, 此小年也. 楚之南有冥靈者, 以五百歲爲春, 五百歲爲秋., 上古有大椿者, 以八千歲爲春, 八千歲爲秋, 此大年也. 而彭祖乃今以久特聞, 衆人匹之, 不亦悲乎!
작은 앎은 큰 앎에 미치지 못하고, 짧은 수명은 긴 수명에 미치지 못한다. 어떻게 그러함을 알 수 있는가? 아침 버섯은 아침과 저녁 사이를 알지 못하고, 한 철 사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이것이 짧은 수명(小年)이다. 초나라의 남쪽에 사는 거북이는, 봄이 500년이고 가을이 500년이며, 아주 먼 옛날에 대춘(大椿)이라는 나무는, 봄이 8000년이고 가을이 8000년이었다. 이것이 긴 수명(大年)이다. 그런데 팽조(彭祖)가 오늘날 오래 산 것으로 특히 알려져, 뭇사람들이 그에 준하려고 하니 어찌 슬프지 않은가!

湯之問棘也是已:
湯問棘曰:「上下四方有極乎?」
棘曰:「無極之外, 復無極也. 窮髮之北有冥海者, 天池也. 有魚焉, 其廣數千里, 未有知其修者, 其名爲鯤. 有鳥焉, 其名爲鵬, 背若太山, 翼若垂天之雲, 搏扶搖羊角而上者九萬里, 絶雲氣, 負靑天, 然後圖南, 且適南冥也. 斥鴳笑之曰:?彼且奚適也? 我騰躍而上, 不過數仞而下, 翶翔蓬蒿之間,此亦飛之至也. 而彼且奚適也??」 此小大之辯也.
탕(湯) 임금이 극(棘)에게 물어서 들은 내용도 이와 같다.
탕이 극에게 묻기를, “위아래 사방을 극이라 할 수 있는가?”
극이 말하길, “무극(無極) 밖은 다시 무극(無極)이다. 불모지의 북쪽에 깊고 어두운 바다가 있으니 그것은 하늘못이다. 거기에 물고기가 있었는데, 그 넓이가 수 천리이고 그 길이는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 이름은 곤(鯤)이라 하였다. 거기에 새가 있었으니 그 이름을 붕(鵬)이라고 했다. 등은 마치 태산 같았고, 날개는 마치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 같았다. 대기를 쳐서 이는 바람을 타고 양의 뿔처럼 나선형을 그리며 구만리 높이로 솟아오른다. 구름을 가르고 푸른 하늘을 등지게 됨에 비로소 남쪽에 뜻을 두고 바야흐로 남쪽 심원에 가려 했다. 메추라기가 이를 비웃으며 말했다. ‘저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하는가? 나는 힘껏 날아올라도 얼마 못가 도로 내려와 쑥대밭 사이를 날아다닐 뿐이고, 이 또한 날 수 있는 최상의 경지 아닌가. 그런데 저것은 도대체 어디로 가려하는 것인지?’” 이것이 바로 작은 것과 큰 것의 차이이다.

故夫知效一官, 行比一鄕, 德合一君而徵一國者, 其自視也亦若此矣. 而宋榮子猶然笑之. 且擧世而譽之而不加勸, 擧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 辯乎榮辱之境,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 雖然猶有未樹也.
어떤 사람은 그 지력이 한 관직을 맡을 만하고, 어떤 사람은 그 행동이 한 고장에 본보기가 되기도 하며, 어떤 사람은 군주의 자질을 가지고 있어 한 국가를 다스리지만, 스스로를 과시함이 메추라기와 같다. 송나라의 영자는 이를 비웃었다. 저 모든 세상이 칭송해도 그는 고무되지 않았었고, 모든세상이 비난해도 낙담하지 않았었다. 그는 안과 밖을 분리할 줄 알았었고, 영예와 오욕을 분별할 줄 알았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으니, 그는 비록 세상에 연연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아직 세우지 않은 것이 있었다.

夫列子御風而行,冷然善也,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 未數數然也.
此雖免乎行,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而御六氣之辯,以遊无窮者,彼且惡乎待哉! 故曰,至人无己,神人无功,聖人无名.
열자(列子)는 바람을 타고 훌훌 날아다니다가 열다섯 날 후에 돌아온다. 그는 행복에 이르는 것에 대해서도 초연하다. 이는 비록 걸어 다님을 면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대는 것이 있다. 저 하늘과 땅의 올바름에 실려 육기의 순리를 탐으로써 무궁에서 노닐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 무엇에 의존하겠는가. 그러므로 이르길, 지인은 자기가 없고 신인은 공적이 없고 성인은 이름이 없다 하였다.


堯讓天下於許由,曰:「日月出矣,而爝不息,其於光也,不亦難乎! 時雨降矣,而猶浸灌,其於澤也,不亦勞乎! 夫子立,而天下治,而我猶尸之,吾自視缺然. 請致天下.」
許由曰:「子治天下,天下旣已治也. 而我猶代子,吾將爲名乎? 名者實之賓也. 吾將爲賓乎? 鷦鷯巢於深林,不過一枝.,偃鼠飮河,不過滿腹. 歸休乎君,予无所用天下爲! 庖人雖不治庖,尸祝不越樽俎而代之矣.」
요 임금이 하늘아래 세계를 허유에게 물려주며 말했다.
“해와 달이 떴는데도 횃불이 꺼지지 않고 있으면, 그 빛이 제 빛을 발하기에 어찌 어려움이 없겠습니까? 제때에 비가 내렸음에도 여전히 논에 물을 대고 있으면 그 적셔줌은 어찌 헛수고라 아니하겠습니까? 선생께서 제위에 오르시면 하늘아래세계가 잘 다스려질 터인데, 나는 신위 자리에 앉아있는 것에 불과하니, 나 스스로 돌이켜 보아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제가 하늘아래 세계를 바치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허유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대가 다스려 하늘아래 세계가 이미 잘 다스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가 그대를 대신한다면, 나는 이름뿐인 이름을 추구하라는 겁니까? 이름이라는 것은 실재의 손님입니다. 내가 장차 손님이 되라는 겁니까? 작은새가 우거진 숲에 둥지를 틀 때 필요로 하는 것은 나뭇가지 하나에 지나지 않고, 두더지가 강물을 마시려는 것은 오로지 배 채우기 위함입니다. 그냥 그 자리에 편히 계십시오. 군주여. 나는 하늘아래 세계를 가지고 할 일이 없습니다. 숙수가 음식을 잘 못 만든다고 해서 시축이 제사상을 제쳐두고 그 일을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肩吾問於連叔曰 : 「吾聞言於接輿, 大而無當, 往而不返. 吾驚怖其言, 猶河漢而無極也., 大有逕庭, 不近人情焉.」 連叔曰 : 「其言謂何哉?」 「曰 : ?藐姑射之山, 有神人居焉, 肌膚若氷雪, 綽約若處子., 不食五穀, 吸風飮露., 乘雲氣, 御飛龍, 而遊乎四海之外. 其神凝, 使物不疵癘而年穀熟.? 吾以是狂而不信也.」
견오가 연숙에게 말했다. “접여가 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聞言), 거창하지만 근거가 없고 멀리 가기만 했지 되돌아올 줄을 모르더군.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놀랐는데, 은하수처럼 무한정하지 않을까 싶은데다 허무맹랑한 것이어서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으로는 가늠해볼 수조차 없는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되더군.”
“무슨 말을 하던데?” 연숙이 말했다.
“그의 말은 이렇더군. 저 먼 고야산에 신인 둘이 살고 있는데 피부는 흡사 반짝이는 눈과 같고 처녀처럼 나긋나긋하다. 오곡은 먹지 않고 바람을 들이마시고 이슬을 먹는다. 구름을 타고 비룡을 부리며 사해 너머에서 노닌다. 그들이 정신을 집중하기만 하면 만물이 상하지도 병들지도 않고 곡식은 무르익는다. 그건 정말이지 터무니없는 말이어서 전혀 믿지 못하겠더군.”

連叔曰 : 「然! 瞽者无以與文章之觀, 聾者无以與乎鐘鼓之聲. 豈唯形骸有聾盲哉? 夫知亦有之. 是其言也, 猶時女也. 之人也, 之德也, 將旁礴萬物以爲一, 世蘄乎亂, 孰弊弊焉以天下爲事! 之人也, 物莫之傷, 大浸稽天而不溺, 大旱金石流, 土山焦而不熱. 是其塵垢粃糠, 將猶陶鑄堯舜者也, 孰肯分分然以物爲事.」
연숙이 말한다. “바로 그런 것일세. 장님은 무늬의 아름다운 모습과 같이 하지 못하고, 귀머거리는 종과 북의 음악소리와 같이 하지 못한다. 어찌 육체만이 귀가 멀고 눈이 멀겠는가. 정신도 그러하다네. 이 말은 바로 자네 같은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일세. 이 사람들은 곧 덕으로서 만물과 한데 어울려 하나를 이룬다네. 만일 세상이 스스로 다스려지도록 되어 있다면, 누가 천하를 위해 허덕이며 일하겠는가? 이 사람들은, 아무 것도 그들을 범접할 수 없다네. 홍수가 나서 물이 하늘까지 차올라도 물에 빠지지 않을 것이며, 큰 가뭄에 쇠와 돌이 녹아내리고 흙과 산이 타 들어가도 뜨거움을 모른다네. 이렇듯 그들의 먼지와 때, 쭉정이와 겨만으로도 요(堯), 순(舜)과 같은 사람들이 빚어지고 벼려질 수 있는 마당에 누가 선뜻 세상일에 나서려고 하겠는가?”

宋人資章甫而適諸越, 越人斷髮文身, 无所用之. 堯治天下之民, 平海內之政, 往見四子邈姑射之山, 汾水之陽, 窅然喪其天下焉.
한 송(宋)나라 사람이 예식용 관을 팔려고 월(越)나라로 갔는데, 월나라 사람들은 머리를 밀고 문신을 하고 있어서 그것을 쓸데가 없었다. 요는 세상의 백성들을 바로 잡고 세상 속의 정사를 평안하게 하고서는, 머나 먼 고야 산의 네 명의 신인들을 만나러 갔다가 분수(汾水)가의 도읍으로 돌아와서는 그만 망연해져서 자신이 만든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게 되었다.

惠子謂莊子曰 : 「魏王貽我大瓠之種, 我樹之成而實五石, 以盛水漿, 其堅不能自擧也., 剖之以爲瓢, 則瓠落無所容. 非不呺然大也, 吾爲其無用而掊之.」
莊子曰 : 「夫子固拙於用大矣. 宋人有善爲不龜手之藥者, 世世以洴澼絖爲事. 客聞之, 請買其方以百金. 聚族而謀曰 : ?我世世爲洴澼絖, 不過數金., 今一朝而鬻技百金, 請與之.? 客得之, 以說吳王. 越有難, 吳王使之將, 冬與越人水戰, 大敗越人, 裂地而封之. 能不龜手, 一也., 或以封, 或不免於洴澼絖, 則所用之異也. 今子有五石之瓠, 何不慮以爲大樽而浮乎江湖, 而憂其瓠落無所用? 則夫子猶有蓬之心也夫!」
혜자가 莊子에게 말하였다. “위왕(魏王)이 나에게 큰 박이 열리는 씨를 준 적이 있소. 나는 그 씨를 심었는데 그 씨는 자라서 다섯 섬 들이의 열매를 맺었소. 그것에 물과 장을 담아 두자니 그 견고함은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없을 정도였고, 쪼개어 바가지로 만들자니 그것은 얕고 편편해서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었소. 그것은 속이 비어있고 아주 크기는 했지만 나는 그것을 쓸모 없다 여기고 부숴 버렸소.”
莊子가 말하였다. “그대는 쓰임새를 크게 하는 데 참으로 서툴렀소. 송나라 사람 중에 손이 트지 않게 하는 약을 잘 만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집은 대대로 솜을 씻는 일을 업으로 삼아왔소. 어떤 객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와 그 비법을 백 금을 주고 사겠다고 나섰다오. 가족을 모아 의논하기를, ‘우리가 대대로 솜을 씻는 일을 했어도 겨우 몇 금밖에 벌지 못했는데, 이제 하루아침이면 기술을 팔아 백금을 벌 수 있다고 하니 그 기술을 내주도록 합시다.’라고 하였소. 객이 그것을 구하여 오(吳)왕을 찾아가 유세하였다오. 월(越)나라에 난이 일어나자, 오왕은 그를 장수로 보내 겨울에 월나라와 수전을 치루게 하였소. 그가 월나라를 대패시키니 오왕은 땅을 떼어 그에게 봉토로 주었소. 손을 트지 않게 하는 것은 똑같지만, 어떤 이는 봉토를 얻고 어떤 이는 솜을 씻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그것은 사용한 바가 달랐기 때문이오. 지금 그대는 다섯 섬 들이의 바가지를 가지고서 어찌 그것으로 큰 배를 만들어 강호를 떠다니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그것이 얕고 편편해서 사용할 수 없다고 우려만 하고 있는 거요. 이것은 실로 그대가 트여있지 않은 마음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소!”

惠子謂莊子曰 : 「吾有大樹, 人謂之樗. 其大本擁腫而不中繩墨, 其小枝卷曲而不中規矩, 立之塗, 匠者不顧. 今子之言, 大而無用, 衆所同去也.」
莊子曰 : 「子獨不見狸猩乎? 卑身而伏, 以候敖者., 東西跳梁, 不避高下., 中於機辟, 死於罔罟. 今夫**[未+文+厂+來]牛, 其大若垂天之雲. 此能爲大矣, 而不能執鼠. 今子有大樹, 患其无用, 何不樹之於无何有之鄕, 廣莫之野, 彷徨乎无爲其側, 逍遙乎寢臥其下. 不夭斤斧, 物无害者, 无所可用, 安所困苦哉!」
혜자가 莊子에게 말했다.
“사람들이 가죽나무(樗)라 부르는 큰 나무 한 그루가 있소. 그 굵은 줄기는 혹 투성이여서 먹줄을 칠 수가 없고, 그 작은 가지들은 뒤틀려 있어 그림쇠를 델 수가 없소. 그 나무는 길가에 서 있지만 목수들은 거들떠보려 하지를 않소(그 나무는 서 있기는 하지만, 목수들은 거들떠보려 하지를 않소). 지금 당신의 말(言)도 거창했기만 했지 적용될 곳이 없으니, 모든 사람들로부터 한결같이 버림을 받고 있소.”
莊子가 말했다.
“그대는 살쾡이와 족제비를 본적이 없소? 몸을 낮추고 웅크린 채 먹이 감을 노리고 있다가, 높은 곳 낮은 곳 개의치 않고 동서(東西)로 날뛰는 바람에, 제대로 덫에 걸려들거나 그물에 걸려 죽고 마오. 그런데 태우(斄牛)라는 소가 있는데, 그 크기는 하늘에 드리워진 구름에 버금가오. 이 놈은 큰 일은 할 수 있지만 쥐는 잡지 못하오. 지금 그대는 큰 나무를 가지고 쓸데를 찾지 못해 안타까워하는데, 어찌 그 나무를 아무 것도 없는 곳, 끝없이 드넓은 들판에 심으려 하지 않소. 그러면 그 주변에서 거닐면서 한가로이 있을 수도 있을 테고, 그 아래에서 노닐면서 드러누울 수도 있지 않겠소? 그러면 도끼에 일찍 절단날 일도 없을 것이고, 해를 끼치는 어떠한 것도 없게 될 테니, 쓸데가 아무 데도 없다고 해서 걱정거리가 될 게 무엇이오?

 

 

 

 

莊子․內篇 제물론齊物論

南郭子綦隱机而坐,仰天而噓,荅焉似喪其耦. 顔成子游立侍乎前,曰:「何居乎? 形固可使如槁木,而心固可使如死灰乎? 今之隱机者,非昔之隱机者也.」
子綦曰:「偃,不亦善乎? 而問之也! 今者吾喪我,汝知之乎? 汝聞人籟而未聞地籟.,汝聞地籟而未聞天籟夫!」
子游曰:「敢問其方.」

남곽자기가 의자에 기대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길게 숨을 내쉬었다. 우두커니 있는 모습이 마치 짝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꿋꿋이 그의 뒤를 따르는 안성자유가 앞에 있다가 물었다. “어쩐 일이십니까? 형태가 굳으면 메마른 나무가 되는 것이지만 마음이 굳으면 죽은 재가 되는 것입니까? 지금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은 전에 의자에 앉아있던 모습과는 다릅니다.”
남곽자기가 대답했다. “네가 의문시 하는 것이 참으로 옳구나. 나는 내 자신을 잃어버렸는데 이를 이해하겠는가? 네가 인간의 퉁소소리를 듣는다 해도 땅의 퉁소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며, 네가 땅의 퉁소소리를 듣는다 해도 하늘의 퉁소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야.”
자유가 말했다. “그 방도를 여쭐 수 있을런지요?”


子綦曰:「夫大塊噫氣,其名爲風. 是唯無作,作則萬竅窺怒呺. 而獨不聞之翏翏乎? 山陵之畏佳,大木百圍之竅穴,似鼻,似口,似耳,似栟,似圈,似臼,似洼者,似汚者,激者,謞者,叱者,吸者,叫者,譹者,宎者,咬者. 前者唱于而隨者唱喁. 冷風則小和,飄風則大和,厲風濟則衆竅爲虛. 而獨不見之調調之刁刁乎?」
子游曰:「地籟則衆竅是已,人籟則比竹是已. 敢問天籟.」
子綦曰:「夫天籟者,吹萬不同,而使其自己也,咸其自取,怒者其誰邪!」

자기가 말했다. "땅덩어리 속에서 뿜어 나오는 숨결이 있어 이를 이름하여 바람이라 한다. 바람이 일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일어나면 이내 온갖 구멍에서 거침없이 터져나온다. 너는 그 울림과 울림을 들어본 적이 없느냐? 산허리가 휘감아도는 험준한 산 중에 둘레가 백아름이 넘는 나무들의 구멍은 어떤 것은 콧구멍 같고, 어떤 것은 입구멍 같고, 어떤 것은 귓구멍 같고, 어떤 것은 병구멍 같고, 어떤 것은 사발 같고, 어떤 것은 절구통 같고, 깊은 웅덩이가 있는 것처럼, 얕은 웅덩이가 있는 것처럼 거센 물살 소리도 있고, 살 가르는 소리도 있고, 꾸짖는 소리도 있고, 숨쉬는 소리도 있고, 외치는 소리도 있고, 신음하는 소리도 있고, 깊은 계곡 소리도 있고, 지저귀는 소리도 있지 않는가. 앞에서 '오'하면 뒤따르며 '우우'한다. 바람이 약하면 반향도 적고, 바람이 거세면 반향도 크다. 바람이 세차게 불다 그치면 모든 구멍들은 텅빈듯 고요하다. 너는 나뭇가지의 흔들림이 나뭇잎의 떨림으로 되어가는 것을 본 적이 없느냐?”
자유가 말했다. “땅의 퉁소소리가 모든 구멍에서 나오는 것에 해당되며 인간의 퉁소소리가 대나무 퉁소에서 나오는 것에 해당된다면, 하늘의 퉁소소리는 어떠한 것인지요?”
자기가 대답했다. “무릇 숨결은 만가지라 해도 같지않아, 그 숨결을 자기것으로 되게하여 모든 숨결은 스스로를 취함에, 그처럼 거침없는 것은 누구이겠는가?”


大知閑閑,小知閒閒.,大言炎炎,小言詹詹. 其寐也魂交,其覺也形開,與接爲搆,日以心鬪. 縵者,窖者,密者. 小恐惴惴,大恐縵縵. 其發若機栝,其司是非之謂也.,其留如詛盟,其守勝之謂也.,其殺若秋冬,以言其日消也.,其溺之所爲之,不可使復之也.,其厭也緘,以言其老洫也.,近死之心,莫使復陽也. 喜怒哀樂,慮嘆變慹,姚佚啓態.,樂出虛,蒸成菌. 日夜相代乎前,而莫知其所萌. 已乎,已乎! 旦暮得此,其所由以生乎!

큰 앎은 아우름이요, 작은 앎은 구별함이다. 대언(大言)은 확연함의 말이요, 소언(小言)은 더듬어 감의 말이다. 잠자리에 누우면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깨어나면 몸이 열림에 함께 맞닿음으로써 끌어당김이 있어, 매일처럼 마음은 갈등한다. 무늬없는 견직물처럼 드러나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움처럼 드러날 듯 말 듯 한 마음이 있기도 하고 드러나지 않는 깊은 마음이 있다. 두려움이 작으면 조마조마하고, 두려움이 크면 담담해한다. 갈등의 마음이 활시위를 당기듯 발현하는 것은 옳고 그름을 가리려는 것과 같음을 말함이요, 갈등의 마음이 맹세하듯 가만히 있는 것은 승리를 지키기 위함과 같음을 말함이요, 갈등의 마음이 가을 겨울처럼 기울어짐은 날로 사그라져 감을 말함이요, 갈등의 마음이 하는 일에 빠져있음은 복구 불가능함을 말함이요, 갈등의 마음이 닫힌 듯 억눌려 있음은 늙어서 흐르지 않음을 말함이니, 곧 마음이 죽음에 가까우면 빛을 되찾지 못한다.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은 그것대로, 근심, 탄식, 변심, 집착은 그것대로, 경망스러움, 방종함, 경박함, 거만함은 그것대로, 음악이 비어있음으로부터 비롯하고, 습기가 버섯을 키우듯, 밤낮으로 앞에서 번갈아 나타나는데 그것이 싹트는 곳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아침저녁으로 이 싹트는 곳을 깨달으면 그것이 생겨나는 곳으로써 生이 있으리라!


非彼無我, 非我無所取. 是亦近矣而不知所爲使. 若有眞宰,而特不得其眹, 可行己信,而不見其形. 有情而無形.
百骸․九竅․六藏, 賅而存焉. 吾誰與爲親? 汝皆說之乎? 其有私焉. 如是皆有爲臣妾乎? 其臣妾不足以相治乎? 其遞相爲君臣乎? 其有眞君存焉. 如求得其情與不得, 無益損乎其眞.

저 너머의 것이 아니면 나가 있지 아니하고 나가 아니면 취할 것이 있지 아니하다. 이 말은 대단히 근접한 말이긴 해도 무엇이 그리 되도록 하는지는 모른다. 참다운 주재자가 있다한들 다만 그 눈동자를 얻을 수 없어, 행함은 스스로 믿게 하지만, 그 형체는 보이지 않는다. 情은 있으되 형체는 없다.
백개의 뼈 마디, 아홉 개의 구멍, 여섯 개의 장기가 빠짐없이 갖춰져 있다. 나 아닌 나는 누구와 더불어 가까이 하려는가? 그대는 기꺼이 모두와 그리하려는가? 사사로움이 있을터. 그러하니 모두는 신하가 되는 것인가? 그 신하들 끼리는 서로를 다스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가? 이들은 서로 번갈아가며 군주나 신하가 되는 건가? 참다운 다스리는 자가 실로 있도다. 그 정(情)을 찾아 얻든 얻지 못하든 그 참으로 있음은 더함도 덜함도 없다.


一受其成形, 不忘以待盡. 與物 相刃相靡, 其行盡如馳, 而莫之能止, 不亦悲乎! 終身役役 而不見其成功, 苶然疲役 而不知其所歸, 可不哀邪! 人謂之不死, 奚益! 其形化, 其心與之然, 可不謂大哀乎? 人之生也, 固若是芒乎? 其我獨芒, 而人亦有不芒者乎?

한번 타고난 이루어진 형체는 망각함이 없이 다할 때 까지를 기다린다. 함께하는 것들은 서로 베고 서로 마모시킴으로써 그 앞으로 길을 감이 치닫듯 하여 이를 막을 도리가 없으니 어찌 마음이 찢겨지지 않으리오! 몸이 다하도록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도 이루어짐을 보지 못하고 아무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쳐 버려도 돌아갈 곳을 모르니 어찌 슬프다 하지 아니하리오! 죽음이 아닌 것이라고 사람들이 일컫고 있는 것이 무슨 이로울 게 있겠소! 형태가 변화하면 마음도 따라 절로 변하려니 크나큰 슬픔이 아니리오?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굳어지니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란 말인가? 나만 홀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인가, 명맥을 유지하지 않는 자도 사람들 가운데는 있는 것인가?


夫隨其成心而師之,誰獨且无師乎? 奚必知代而心自取者有之? 愚者與有焉. 未成乎心而有是非,是今日適越而昔至也. 是以無有爲有. 無有爲有,雖有神禹,且不能知,吾獨且奈何哉!

마음의 이루어짐을 뒤따르며 스승으로 삼는다면 누구인들 스승이 없겠는가? 번갈음을 알아 스스로 마음을 취하는 자만이 어찌 스승이 있겠는가? 어리석은 자 역시 스승이 있기 마련이다. 마음에 아직은 이루어짐이 없어 시비(是非)가 있는 것은 곧 오늘 월나라에 가면서 어제 그곳에 도착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고,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 있지 않은 것을 있다고 하면 신(神)같은 우(禹)가 있다한들 알 수 없을 터이니, 생각하는 나라고 어찌 하겠는가!


夫言非吹也,言者有言,其所言者特未定也. 果有言邪? 其未嘗有言邪? 其以爲異於鷇音,亦有辯乎,其無辯乎?

무릇 말은 숨결이 아니다. 말 속에 말이 있다. 말 속에 있는 것은 특별히 정해져 있지 않다. 과연 말이란 있는 것인가? 말이 일찍이 있은 적은 없는 것인가? 그것이 새끼 새들의 소리와 다르다고 한다면 또한 시비의 가림이 있는 것인가, 시비의 가림이 없는 것인가?


道惡乎隱而有眞僞? 言惡乎隱而有是非? 道惡乎往而不存? 言惡乎存而不可? 道隱於小成, 言隱於榮華. 故有儒墨之是非, 以是其所非而非其所是. 欲是其所非而非其所是, 則莫若以明.

道가 가려져 있다 한들 참됨과 거짓이 있겠는가? 말이 가려져 있다 한들 옳고 그름이 있겠는가? 도는 떠나가는 것이라 한들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말이 존재하는 것이라 한들 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겠는가? 도의 가려짐 따라 작은 이루어짐이 있고, 말의 가려짐 따라 찬연함이 있다. 그러므로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에는 옳고 그름이 있으니, 옳음에 그름의 여지가 있고, 그름에 옳음의 여지가 있다. 옳음에 그름의 여지가 있고 그름에 옳음의 여지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해도 밝음만 못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