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말하라, 기억이여

나뭇잎숨결 2013. 1. 17. 02:32

 

 

 

현재 《말하라, 기억이여》의 최종판은 최초의 영어판에 기초적인 수정 작업과 풍부한 보충 작업을 한 것일 뿐 아니라, 그것을 러시아어판으로 번역하는 동안에 수정한 내용을 다시 이용한 것이기도 하다. 최초에 러시아어로 되어 있던 기억을 영어로 말한 것을 다시 러시아어로 바꾸고, 이것을 다시 영어로 바꾸는 일은 악마적인 작업임이 판명되었다. 그러나 이처럼 친숙한 몇 겹의 변태 과정이 다른 어떤 인간들에 의해 시도된 적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 어떤 위안을 받게 된다. --- p.13, <서문> 중에서

인간의 의식, 즉 한 개인의 회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말들에 비하여 이 우주는 얼마나 작고도(캥거루 주머니 하나에 넣을 수 있을 정도이다) 하찮고 미약한가! 내가 어린 시절의 인상들을 과하게 평가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여전히 내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 시절의 인상들이란 시각과 촉각의 참된 에덴으로 통하는 길이다. --- p.25, 1장 <완전한 과거> 중에서

한 사람의 영혼을 전심을 다해 사랑하고 나머지 것들은 운명에 맡겨 두는 것, 이것이 내 어머니의 마음속에 있는 단순한 규칙이었다. “보트 자폼니[자, 기억해]” 그녀가 비라에 있는 이런저런 사랑스러운 것들에 내 주의를 돌리려 할 때면 음모가 있는 듯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그것들은 흐린 봄날 응고된 우윳빛 하늘로 날아오르는 종달새, 어둔 밤 먼 곳에 줄지어 선 나무들의 사진을 찍는 뜨거운 번개, 갈색 모래 위에 놓인 단풍잎 팔레트, 새 눈밭 위에 남겨진 작은 새의 쐐기 모양 발자국들이었다. 마치 몇 년 후면 그녀가 있는 세계의 실재하는 부분이 사라져 버릴 것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녀는 우리 시골 영지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시간의 지표를 의식해 내는 특별한 능력을 고양시켰다. --- pp. 44-45, 2장 <내 어머니의 초상> 중에서

소비에트 독재 정권과 나 사이의 오랜 싸움은 어떠한 종류의 재산 문제와도 완전히 무관한다. 나는 자신의 돈과 땅을 ‘훔쳐갔기에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이민자들을 절대적으로 경멸한다. 오늘날 내가 간직하고 있는 향수란 잃어버린 은행권에 대한 슬픔이 아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나의 비대해진 감각이다. --- p.91, 3장 <내 삼촌의 초상> 중에서

때때로 나의 과거로부터 온 보물 같은 이야깃거리를 소설 속 등장인물들에게 주고 난 뒤, 갑자기 들어앉게 된 인공적인 세계 속에서 그것이 파리해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 비록 이야기 자체는 내 마음을 좀처럼 떠나지 않는 것이라 해도, 거기에 존재하던 사적인 온기와 되돌아보게 하는 매력은 사라져버리고 없다. 또 이내 그것은 침입 불가능하며 너무나 안전해 보이는 예술가의 장소라 할 예전의 나 자신보다 내 소설과 더욱 꼭 같게 되어 버린다. 내 기억 속의 집들은 마치 옛날 옛적 무성 영화에서처럼 소리 없이 부서져 버리고, 한때 내가 나의 책들 중 하나에 등장하는 소년에게 빌려 주었던 늙은 프랑스 여가정교사의 초상은 빠르게 희미해지더니 곧 나 자신의 것과는 완전히 무관한 어린 시절의 묘사에 삼켜져 버린다. --- p.117, 5장 <마드무아젤 오> 중에서

내가 그녀를 진정 소설로부터 구해 냈는가? 내게 들려오는 리듬이 머뭇거리다 사라져 버리기 전에, 나는 그녀를 알고 지내던 시절 동안의 내가 혹시 그녀의 턱이나 태도나 심지어는 프랑스어보다도 훨씬 더 그녀 자체인 무엇을 완전히 놓쳐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마지막으로 본 그녀의 모습 같은 무엇, 그러니까 친절을 베푼 내가 즐거워하며 떠날 수 있게 하려고 그녀가 썼던 그 빛나는 책략과 같은 무엇, 혹은 축 늘어진 무용수의 창백한 팔보다 훨씬 더 예술의 진실에 가까웠던 백조의 고통과 같은 무엇, 간단히 말하자면 내가 내 안락했던 어린 시절 가장 사랑했던 것들과 존재들이 한줌 재로 사라져 버리거나 가슴 정중앙에 일격을 맞고 죽어 버린 뒤에야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던 무엇을 놓쳐 버린 것은 아니었는지. --- p.145, 5장 <마드무아젤 오> 중에서

훗날 나의 철학적 친구가 되어 준 비비언 블러드마크가 종종 말하길, 과학자들은 공간의 한 지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살피는 반면 시인들은 시간의 한 지점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생각에 잠긴 채 마술지팡이처럼 생긴 제 연필을 무릎에 대고 두드릴 때, 동시에 차 한 대(뉴욕 면허판을 단)는 길을 따라 달리고, 한 아이는 이웃집 현관의 방충망 처진 문을 두드리고, 어느 노인은 안개 낀 투르키스탄의 과수원에서 하품을 하고, 잿빛의 모래 알갱이는 금성의 바람에 쓸려 굴러가고, 그르노블의 자크 히르슈 박사는 독서 안경을 끼는 등 이처럼 사소한 일들이 수조 개만큼 일어나는 것인데, 이 모든 일들은 즉각적이면서도 투명한 사건의 유기체를 형성하는 것이며, 이 유기체의 핵이 바로 시인이다(그는 뉴욕 이타카의 잔디밭에 놓인 의자 위에 앉아 있다).
--- pp.265-266, 11장 <첫 시> 중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개인적인 기억들의 아상블라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20세기를 목전에 둔 1899년 4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영국식 문화에 젖은 교양 있는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어려서부터 함께 지내던 영국인과 프랑스인, 러시아인 가정교사들에게 다양한 교육을 받았으며, 러시아어를 읽기 전부터 영어 읽는 법을 배웠다. 소년 나보코프는 러시아의 도시와 시골 및 유럽 휴양지를 오가는 윤택한 생활 속에서 나비와 나방 채집을 즐겨 했으며, 사랑에 빠져 시를 짓는 행복한 청년으로 자라났다.

그러나 그가 첫 시집을 출간할 즈음 인생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길을 틀었다. 볼셰비키 혁명의 여파로 1919년 가족과 함께 크리미아로 도주한 나보코프는 이어 베를린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그가 영국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러시아 문학과 프랑스 문학 공부를 끝마칠 무렵, 그의 아버지는 베를린에서 러시아 극우파에게 암살을 당하였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져 살았다. 1925년부터 이후 약 15년의 세월 동안 나보코프는 시린이라는 필명의 작가로 활동하며 망명 문단의 주목을 받았고 여섯 편의 소설을 출간하였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만으로는 생활할 수 없었기에, 외국어나 테니스, 복싱을 가르치며 생계를 꾸려가야 했다. 1938년 나보코프 가족은 나치가 점령한 독일에서 파리로 이주해야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인 1940년에는 다시 미국으로 망명했다. 나보코프의 어머니는 세계 대전 발발 전날 프라하에서 이미 죽은 뒤였고, 파리에 남겨 두고 온 남동생 세르게이는 1945년에 나치의 강제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죽게 된다. 나머지 세 명의 동생들과는 약 20년 후에 재회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1940년 뉴욕에 다다랐을 당시 그는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었다.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았다. 러시아 곳곳의 넓은 영토와 저택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루아침에 조국을 잃고 갈 곳이 없어진 가족들은 낯선 땅에서 하나 둘씩 죽어갔다. 방랑의 20년 세월을 버텨 가며 탄생시킨 러시아어 소설들마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더 이상 그의 러시아어를 읽어 줄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나보코프가 첫 영어 소설인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을 출간한 것은 미국으로 건너가고 바로 이듬해인 1941년의 일이었다. 이로부터 칠팔 년의 세월 동안 나보코프는 한 편의 영어 장편소설과 수편의 영어 단편소설들을 썼으나, 소수의 독자층을 거느리게 된 것 외에는 별다른 시선을 끌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바야흐로 새로운 문학 인생을 꾸려가야 한다는 거대한 숙제가 있었으나, 이에 전념할 시간조차 없었다. 나보코프는 대학에서 문학 강의를 하거나 박물관에서 나비 연구를 하며 지냈고, 동료 교수들이 잠시 비워 둔 집들로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러던 중인 1947년 4월, 나보코프는 친구 에드먼드 윌슨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썼다.

두 개의 이야기를 쓰고 있습니다. 1. 어린 소녀들을 좋아하는 한 남자에 관한 단편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제목은 ‘바닷가 왕국’이 될 겁니다. 2. 새로운 유형의 자서전입니다. 한 사람의 인격을 얼키설키 얽고 있는 실타래를 모두 풀어 가는 과학적 시도가 될 겁니다. 가제는 ‘의문의 사람’입니다.

첫 번째 작품은 점점 분량이 늘고 깊어졌으니, 결국엔 나보코프를 경제적 곤궁함에서 구출하는 동시에 그의 이름을 미국 문학사에 새로이 새기게 될 문제작 《롤리타》가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작품은 자그마치 십여 년 동안 세 번에 걸쳐 출간된 그의 자서전이 되었다.

저 찾아보기의 창 너머로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온다. 미국에서의 첫 작품《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에서부터 자서전《말하라, 기억이여》까지 나보코프의 문학적 행로는 한결 같았다. 그는 한 사람의 삶을 수기 또는 자서전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예술의 진정성이라는 문제를 깊이 숙고하고자 했다.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진한 향수를 드러내는《말하라, 기억이여》또한 이러한 예술의 진정성에 관한 고민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말하자면 나보코프는 자신을 주인공 삼아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을 써 내린 것이다.


롤리타를 영영 잃은 험버트는 그녀와 영원 속에 남게 될 최후의 방법으로 자서전 집필을 택하였다. 그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죽지 않는 유일한 길이야, 나의 롤리타.’ 되돌릴 수 없는 시간 안에 갇힌 비극적 존재라는 면에서 나보코프는 험버트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자, 여기 소설가 나보코프가 있다. 그는 책상에 앉아 ‘바닷가 왕국’을 집필 중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얼마나 거대해질지를 아직은 알지 못하는 그의 주인공 험버트가 그곳에 있다. 그는 잃어버린 과거에 신음하며,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움켜쥐려고 발버둥친다. 나보코프는 짧게 신음한다. 그의 주인공을 결코 구원할 수 없으리라는 강렬한 예감이 잠시 마음을 어지럽힌다. 그는 종이에서 시선을 돌려 눈을 감는다. 감은 눈 속에서 잊혀진 잔상들이 떠오른다. 푸른 파도, 젖은 모래, 그 더운 모래를 더듬는 고사리 같은 손……, 그것은 어느새 자신의 손이다. 그리고 거기 잃어버린 자신의 소녀가 있다. 소녀가 그를 본다. 그는 안도한다. 그녀가 있다. 그녀는 아직 험버트의 것이 아닌 그의 것이다……. 잠시 후 침묵 속에 눈을 뜬 소설가는 다른 종이 위에 연필을 미끄러뜨린다. 이제 그는 자신의 자서전을 적는 중이다. 그는 자신이 보았던 모든 것을 적고, 적은 진실을 확인하며, 그 의미를 상상한다. 자신의 이야기지만 그는 상상해야 한다. 이것은 그가 내일의 험버트를 예견하듯이 자신을 예견해 온 다른 누군가의 시선을 상상해야 함을 뜻한다. 그의 가족과 집, 러시아 숲 속의 빛나는 햇살과 그 속에서 그가 쫓아다니던 온갖 나비들, 먼 곳에 남겨두고 온 옛사랑, 20년의 젊은 날을 바쳐 적어 내린 러시아어 소설들과 같은 그 모든 것들.


영영 사라져버린 그것들을 그는 온전히 담아낼 수 있을까……? 그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서툰 기억과, 그 기억의 말을 담을 얇은 종이와 연필뿐이다. 험버트와 나보코프가 본질적으로 같다면 오직 이러한 점에서다. 그러나 이 문제를 헤쳐 나가는 방식에 있어서 그는 험버트와 완전히 달랐다. 불완전한 기억이 완전한 것인 양 모든 것이 진실인 척하는 험버트와 달리, 나보코프는 제 기억의 틈새를 드러내고 또 드러내는 새로운 유형의 자서전 주인공이었다. 오늘날 비평은 그의 작품을 ‘기억의 예술’이라고 부른다(이 책의 <찾아보기>에는 본문에 나온 밀류코프, 제르진스키, 야고다 같은 러시아 정치가들의 이름이 없다. 대신 나보코프는 제 집에 살던 요리사, 가정부, 집사, 운전수 등의 이름을 집어넣고 있다. 나보코프가 <서문> 말미에 쓴 대로 ‘저 찾아보기의 창 너머로/ 한 송이 장미가 오르고 / 흑해로부터 이따금 /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 오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달려 들어가고 있는 순간적인 진공
고백하건대, 나는 시간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내 마법의 융단을 사용한 뒤에, 한 부분과 다른 부분의 무늬가 겹쳐지도록 접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방문객들로 하여금 여행하도록 하라. 이때에 아무렇게나 골라진 풍경처럼 시간이 없는 상태로부터 누릴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이란, 마치 내가 드문 종의 나비들이나 그들의 먹이 동산 한가운데 서 있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그것은 무아경이다. 그리고 그 무아경의 뒤엔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이는 마치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달려 들어가고 있는 순간적인 진공과도 같다. (6장 <나비들>, pp. 171-173.)

순간적인 진공, 그것은 곧 죽음을 향해 가는 자연의 상태를 거부하는 나보코프만의 시공이다. 그만이 가진 기억, 그만이 할 수 있는 상상과 이해만이 이 시공을 존재케 할 수 있다. 그곳에 있는 느낌을 나보코프는 ‘무아경’이라고 부른다. 더 나아가 그는 ‘설명하기 어려운’ ‘최상의 즐거움’ 속으로 오라며 독자를 유혹한다.


생존을 위해 의태를 하는 애벌레처럼, 무의미하게 잊히고 싶지 않았던 작가 나보코프는 제 새로운 언어 뒤에 숨어야 했다. 겉보기에 그것은 러시아어가 아닌 영어였고, 수수께끼를 품은 정교한 무늬의 그림이기도 했다. 궁극적으로 그것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영원을 꿈꾸던 그의 기억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사랑하는 모든 것들이 달려 들어가는 진공’ 속에서 제 과거와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보려 했다. 결국 그의 기억은 살아남았다. 그것은 그가 죽은 뒤에도 다른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살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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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5.28 미국으로 망명한 나보코프가 뉴욕에 도착하다


1940년 5월 28일. 나보코프 일가는 뉴욕에 입항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만난 친구 로버트 드 칼리 백작은 약속과는 달리 항구에 나타나지 않았다. 1919년 나보코프와 남동생 세르게이는 각각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하였고, 나보코프는 1923년까지 러시아 문학과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였다. 미국에 정착한 이후 그가 교수직을 얻고 영어로 소설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어린시절부터 받은 영어 교육과 이 시절의 경험이 크다.

 

 

배에는 나치를 피해 프랑스에서부터 탈출해 온 독일계 혹은 프랑스계 유태인들이 많았다. 대부분 영어가 서툴렀지만 나보코프는 유창한 영어 덕분에 쉽게 입국 수속을 마치고 톨스토이 재단에 전화를 걸었다. 당시 재단은 톨스토이의 딸인 알렉산드라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이 재단을 통해 나보코프가 얻고자 했던 첫 직업은 서점에서 책을 배달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박물관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나비에 관한 짧은 논문 두 편 발표

뉴욕의 아파트를 빌려 지내면서 나보코프는 러시아어 강사 자리를 알아보지만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미국의 대표적인 문학비평가 중 한 사람인 에드먼드 윌슨을 만나게 된다. 당시 그는 <뉴 리퍼블릭>의 편집자였다. 윌슨을 통해 나보코프는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인 알렌 테이트, 시인 로버트 로웰 등과 교류를 하게 된다. 미국 문학사에 나보코프가 편입 하는데 윌슨의 영향력을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보코프는 <뉴 리퍼블릭>에 서평을 쓰게 되면서 <뉴욕타임스>와 <뉴욕 선>의 서평자로 활동을 시작한다. 1941년에는 최초의 영어소설 <세바스찬 나이트의 진짜 인생>을 윌슨의 도움으로 출간하게 되었다. 두 사람의 문학적 교류는 서간집이 출간될 정도로 깊은 것이었지만 문학적 논쟁을 계기로 서로 등을 돌리게 되는가 하면, 훗날에는 감동적인 화해의 편지를 교환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원하던 교편을 잡게 된 것은 사촌이자 작곡가인 니콜라스 나보코프가 음악을 가르치고 있는 웰즐리 대학에서 비교문학 강의를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1940년의 뉴욕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탐구하던 나비에 대한 연구도 본격적인 길을 찾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을 무렵에 뉴욕의 자연사박물관을 다니며 많은 과학자들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이 분야의 스승인 컴스톡, 캐나다인 맥더노 그리고 준연구원인 시릴 도스 파소스 등을 통해 1940년 가을과 1941년 겨울 기간 동안 박물관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면서, 나비에 관한 짧은 논문 두 편을 발표한다. 덕분에 1942년에 하버드 대학 비교동물학 박물관에서 연봉 1천 달러의 곤충학 특별연구원으로 임명될 수 있었다. 그의 연구원 지위는 1948년 코넬 대학의 유럽과 러시아 문학 교수로 채용될 때까지 조금씩 갱신되면서 계속되었다.

 

여러 전기와 자료가 보여주고 있듯이, 나보코프는 소설가이자 문학비평가로서 잘 알려져 있지만 문학과 함께 계속된 것은 인시류 학자로서의 열정이었다. 실제로 나보코프는 비교동물학 박물관 직위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탓에, 자신의 강의직을 영구직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고, 코넬의 교수직 제안을 웰즐리 대학에 알렸다. 당시 그의 일상적인 생활은 박물관과 웰즐리 대학을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웰즐리는 나보코프의 은근한 제안을 거절하였고, 그는 연봉 5천 달러에 코넬로 옮겨간다. 이것은 나비에 대한 연구가 다소 소홀해지고, 작가로서의 활동이 더욱 활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나비 표본을 관찰하고 있는 나보코프(1947).
나보코프는 나비에 대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곤충학에도 해박했다.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러시아 귀족출신의 소설가를 세간에 주목하도록 만든 것은 <롤리타>라 불리는 한 권의 소설 덕분이다. 이 작품은 영어로 쓰여졌지만 미국 내에서 출간을 거절당하자 1955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출간 된다. 이후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인 그레엄 그린의 서평으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자 프랑스에서는 곧 발매금지가 시작되었고, 영국 의회에서는 책의 출판 여부를 놓고 논의를 벌이는 사태가 벌어졌다. 소위 ‘금서’의 역사적 목록에 <롤리타>가 기입되는 순간이었다. 곡절 끝에 미국에서도 출간된 <롤리타>는 출간된 후 3주 만에 10만부가 팔려나갈 정도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모았다.

 

 

 

런던의 한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른 문제작 <롤리타>를 읽고 있는 독자들(1959)

 

 

당대에도 논란을 일으켰지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롤리타’ 혹은 ‘롤리타 콤플렉스’라는 용어를 유명하게 한만큼 <롤리타>의 내용은 파격적이다. 1910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주인공 험버트는 194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하숙을 시작한다. 하숙집에는 여주인 샬롯과 12살 난 딸 롤리타가 있다. 샬롯은 험버트에게 반해 청혼을 하고, 험버트는 롤리타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청혼을 수락한다. 그런데, 험버트의 일기를 훔쳐 본 샬롯이 진실을 알게 되자 사태가 복잡해진다. 공교롭게도 샬롯은 차 사고로 죽음을 당하게 되고, 험버트는 캠프장에 가 있는 롤리타를 데려와 호텔을 돌아다니며 연인 사이가 된다. 이 가운데 험버트와 롤리타 사이를 눈치채는 인물이 극작가인 클레어 퀼티이다. 퀼티는 두 사람의 관계를 의심하고, 롤리타를 꾀어내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그는 험버트의 총에 의해 최후를 맞이하는데, 비평가들은 클레어 퀼티를 종종 작가 나보코프의 자기반영적 인물로 설명하기도 한다. 퀼티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번개를 사랑한 여인>의 공동창작자로 ‘비비안 다크블룸(Vivian Darkbloom)’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철자를 뒤섞어 놓은 ‘애너그램’이다. <롤리타>는 20세기의 가장 선정적인 소설로 알려져 있지만 작품의 첫 문단은 ‘롤리타’가 세 번이나 거명되면서 전체적으로 리듬이 부드럽게 흘러 넘친다. 나보코프가 시인이었다는 사실이 참조가 될지도 모르겠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롤리타, 내 삶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세 단계로 치고 내려오면서, 세 번째는 이에 다다르는 여정. 롤. 리. 타.”

 

국내에서도 <롤리타>의 번역본을 비롯하여 그의 소설들이 몇 작품 번역이 되어있지만 이처럼 언어적 유희가 넘치는 작가의 소설을 번역하는 것은 쉽지 않은 듯 보인다. 영어와 러시아어를 오가며 썼던 나보코프의 작품 세계는 제임스 조이스와 같은 작가들처럼 다층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20세기 작가의 상징이자 중요한 문학적 관심의 대상이었다. 나보코프의 세계는 선정성, 유희성, 구조적인 치밀함 등이 뒤섞여 문학비평가들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을 낳게했고, 두 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진 <롤리타>를 비롯하여 그의 여러 작품들이 스크린으로 옮겨졌다.

 

 

귀족집안에서 태어난 볼세비키 혁명으로 망명했고 아버지가 암살당했다

소설 <롤리타>는 나보코프의 작가적 명성을 유명하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스탠리 큐브릭 감독에 의해 영화로 옮겨지면서 명성의 절정에 다다른다. 이 무렵 나보코프는 20년간의 미국 생활을 정리하고 유럽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운다. 1959년 1월에 코넬 대학에서 마지막 고별 강연을 하고 유럽으로 여행을 떠난다. 유럽에서 그가 거주지로 선택한 곳은 스위스의 몽뜨뢰 호텔이었다. 이곳에서 영어 소설의 집필과 이전에 쓴 러시아 소설의 영어 번역에 전념하면서 <어둠 속의 웃음소리>의 영어판(1961), <창백한 불꽃>(1962), 자신의 주석을 곁들인 푸슈킨의 작품 <예브게니 오네긴>(1964)의 4권짜리 번역판, 자신의 자선적인 <말하라, 기억이여>(1966)를 출판하였다. 1967년에는 러시아어로 번역한 <롤리타>를 뉴욕에서 출간하였다. 이 작품의 판본은 영어판과는 다른 요소를 곳곳에서 제시함으로써 번역의 문제와 해석의 문제를 새롭게 안겨주기도 했다. 유럽에서의 말년은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재확인시켜주는 날들이었지만 미국으로 건너오기 전 그의 유럽 생활은 전쟁과 함께 한 어둠의 시절이었다.

 

 

 

스텐리 큐브릭의 영화 <롤리타>의 한 장면. 영화 역시 가톨릭계의반발, 상영금지처분, 가위질 등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1899년 4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그의 젊은 날은 순탄하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의 부유함 아래 어린시절부터 영어 읽는 법을 배웠던 윤택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의 여파로 1919년에 가족과 함께 크리미아로 도주를 하고, 베를린으로 망명을 떠나야 했다. 그에게 일찌감치 망명 작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이십대를 망명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가 영국의 캠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할 무렵에는 베를린에 있던 아버지가 러시아 극우파에 의해 암살 당했고, 이후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만다. 1925년에 유대계 러시아인인 베라 슬로님과 결혼을 하면서 미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나보코프는 ‘시린’이라는 필명으로 여섯 편의 소설을 유럽에서 출간한다. 당시 그의 소설은 일부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정도였다. 나보코프는 생계를 위해 그의 언어 재능을 외국인에게 가르치며 살아갔고, 테니스나 복싱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가 뉴욕으로 입국할 당시 짐 꾸러미에는 복싱 글러브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그의 자서전인 <말하라, 기억이여>의 ‘14장 망명’에는 나보코프가 러시아의 망명 작가들을 평하면서 스스로를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작가는 당연히 시린이었다. 그는 나의 세대에 속해 있었다. 망명 중에 생겨난 젊은 작가들 중에서도 그는 가장 외롭고 거만한 자였다. (……) 완강한 직설적인 러시아 리얼리즘의 기반에 길러졌으며 허풍쟁이들을 데카당의 속임수라 불러 온 러시아의 독자들은, 거울처럼 분명하면서도 불가사의한 곳으로 이끌어 가는 그의 문장들에, 그리고 그의 책 속의 실제 삶이 그의 화법 속에 흘러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 어느 비평가는 이 화법을 ‘인접한 세계로 난 창…… 되돌아오는 추론, 연결된 생각의 그림자’라 비유했다. 망명의 어둔 하늘 위로 시린이 지나갔다. 더욱 보수적인 비유를 들어 말하자면, 마치 별똥별처럼, 또한 희미한 불안감 같은 것만을 남긴 채로 사라져갔다.”

 

‘시린’은 나보코프의 필명이다. 그는 유럽 망명의 초기를 떠올리면서 어둔 하늘 위로 시린이 지나갔다고 표현했지만, 나보코프라는 이름은 미국을 거치면서 20세기 문학의 영원한 성좌가 되었다. 나비와 체스와 언어를 사랑했던 영원한 망명객은 20세기의 유희이자 대중적인 질타와 사랑을 동시에 받은 기묘한 떠돌이었다. 많은 이들의 비유처럼 그는 자신이 탐구해 온 나비처럼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하는 존재이기를 희망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필자가 추천하는 덧붙여 읽으면 좋은 책

나보코프에 관한 가장 유명한 전기는 브라이언 보이드가 러시아 시절과 미국 시절로 나눠 쓴 두 권의 영어판 전기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미출간된 서적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자서전인 <말하라, 기억이여>(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오정미 옮김, 플래닛)이 출간되어 있다. 뛰어난 문학적 자서전의 사례를 보여주는 <말하라, 기억이여>는 다층적인 서술을 보여주고 있어서 일종의 자신에 대한 주제적 접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는 자서전이다. 6장의 경우에는 나보코프의 관심사인 ‘나비’에 관한 상세한 기억들을 읽어볼 수 있다.

 

 

말하라, 기억이여나보코프 블루스블라지미르 나보꼬프

 

<나보코프 블루스>(커트 존슨, 스티브 코츠 지음, 홍연미 옮김, 해나무)는 블루라는 나비종에 특별한 애착을 보였던 나보코프의 인시류학 연구서인 동시에 독특한 전기적 구성물이다. 나보코프의 나비 연구의 성과와 전모를 상세하게 밝혀주고 있다. <블라지미르 나보꼬프>(최건영 지음, 건국대학교 출판부)는 나보코프에 관한 기본적인 안내서인 동시에 소개서이다. 나보코프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소개를 제공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내 저작물이다.

 

 

 

이상용 / 영화평론가
글쓴이 이상용은 영화평론가로 활동 중이며, 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이다. 여러 신문과 매체에 영화와 문화에 관한 글을 써 왔으며, 지은 책으로는 <영화가 허락한 모든 것> 이 있다. 이외에도 여러 권의 공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