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엘료의 순례길 문화코드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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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가는 길(Camino de Santiago)'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가톨릭 성인 야고보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걸었던 순례자의 길이다. 매년 전 세계 600만명이 자기 자신을 찾기 위해 걷는 이 시골길이 한국 문화계에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것.
최근 6개월 동안 쏟아져 나온 카미노 데 산티아고 관련서만 해도 10종이 넘고 판매도 꾸준하다. 지난해 400명에 가까운 한국인들이 산티아고에 다녀왔고, 가수 박기영 씨는 이곳에 다녀온 경험을 담은 노래 '카미노'를 발표했다. 최근 SBS 다큐멘터리로도 소개되면서 여행객이 급증해 여행사들은 앞다투어 관련상품을 내놓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이 신드롬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소설가 파올로 코엘료 때문이다. '연금술사'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등을 펴내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파올로 코엘료는 40이 넘어 작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다. 브라질 출신으로 잘나가던 회사 중역이었던 그는 40대에 접어든 어느날 허무에 빠져 산티아고 가는 길을 걸었고, 순례가 끝난 다음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을 했다. 그가 처음 펴낸 책이 바로 '순례자'다.
소설 '순례자'는 부유하고 안락한 삶에 빠져 있던 주인공이 산티아고 순례에 나서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주인공은 쏟아지는 햇살과 단조로운 풍경을 걸으며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한 가치와 삶의 새로운 의미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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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평범한 주부 김효선 씨가 쓴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유럽을 만나다'(바람구두), 시나리오 작가인 신재원 씨가 쓴 '엘 카미노 별들의 들판까지 오늘도 걷는다'(지성사), '산티아고의 두여자'(김&정) 등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숨가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를 만들어준다. 그리 화려하지 않는 들길을 걸으며 성찰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 길에는 지켜야 할 시간도, 하루에 얼마를 걸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없다. 자기 생체시계와 체력에 맞춰 그저 걸으면 된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걷지 않아도 된다. 단지 그 길 위에 발을 올려 놓으면 된다. 가다가 지치면 순례자들을 위한 낯선 쉼터에서 지친 몸을 눕히면 되고, 각기 다른 삶의 무게를 지닌 채 이 길을 찾아온 전 세계 순례객들을 만나는 것도 산티아고 가는 길의 매력이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꿈꾸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산티아고 신드롬은 계속될 전망이다.
■ 카미노 데 산티아고란?
산티아고의 전설은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 명인 야고보부터 시작한다. 전설에 따르면 야고보는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스페인 북부 산티아고까지 걸어왔다고 한다. 그는 이후 천신만고 끝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헤롯왕에 의해 순교당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그의 시신을 돌로 만든 배에 옮긴 후 그 배를 바다에 띄웠는데, 그 배가 놀랍게도 산티아고 부근에 도착했던 것. 야고보를 추종하는 사람들은 그의 시신을 산티아고에 묻었고 800년 뒤에는 그 자리에 대성당이 세워졌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여러 경로가 있으나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길은 '카미노 데 프란세스'로 프랑스의 국경도시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의 길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카미노 데 산티아고는 이 길을 뜻하는 경우가 많다. 원래는 가톨릭 성지순례길이었으나 요즘은 연간 600만명 이상이 몰려드는 '인생의 순례길'이 되어버린 카미노 데 산티아고. 하루 수십 ㎞에 달하는 노정이 한 달 넘게 이어지며 작가 파울로 코엘료가 걸었던 길로도 유명하다.
- 매일경제 [허연 기자 / 손동우 기자]
제발 … 이 길 800km 다 걷고 나면 내 인생길도 바뀌게 하소서
여행 전문 작가 최미선 신석교 부부, 시어머니와 함께.... 800km의 순례자의 길 위에 서다.
? 피레네 산맥을 넘어 론세스바예스로 오는 막바지 길목에서 만난 부자지간. 키는 크지만 살집은 별로 없어 보이는 아저씨는 커다란 배낭을 앞뒤로 두 개나 둘러멨다. .... 유럽인들에게 이 길은 비행 청소년의 수행길로도 이름난 곳이라고 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부자도 그 일환이 아닌가 싶다. 아들의 배낭....,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숙명의 짐이다. _ p.27
? 할아버지의 이름은 레이몽. 프랑스에서부터 걸어와 오늘이 31일째란다. 열흘쯤 더 걸어 부르고스까지 갈 거란다. 환갑을 훌쩍 넘긴 듯 보이는 할아버지가 홀로 그렇게 다니는 모습을 보니 존경스럽다. 몇 번을 왔다갔다 했더니 아침부터 기운이 빠진다며 힘든 표시를 했더니 내 배낭을 당신 손수레에 실으라고 손짓을 한다. _ p.64
? 오늘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 길이다. 보이는 건 아득한 길뿐. 그 길목에 바닥이 다 떨어진 신발 한 켤레가 놓여 있다. 어느 순례자가 신던 걸 버리고 간 모양이다. 저 신발은 어느 길을 어떻게 거쳐 왔을까? _ p.86
?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아침 해가 떠오른다. 해를 둘러싸고 뽀얀 안개가 가득 덮여 있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 물안개가 피어나는 냇물도 상큼하기 그지없다. 돌아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아름다움이다. 앞만 보고 걷는 길은 절반의 카미노다. 인생도 여행도 뒤돌아볼 때 더 풍요로워진다. _ p.151
? "할머니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긴..... 내가 너무 천천히 걸으니,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없어 외롭긴 하지만 이렇게 걸을 수 있어 난 너무 행복하다우."
독일에서 오셨다는 할머니는 힘겨워 보이는 걸음과는 달리 표정은 아주 맑고 환한 모습이셨다. 할머니와 몇 마디를 나눈 후 다시 걷다가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저만치 뒤에서 홀로 천천히 걸어오는 할머니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_ p.173
? 가도 가도 끝없는 지평선만 보이는 길이 지루하기도 하지만 가슴은 시원하다. 길 위에서 지치기도 하다 길 위에서 즐거움과 행복감도 만끽한다. 길 위에서 순박하고 따듯한 사람들도 많이 만나게 된다. 간혹 지나가는 차들도 클랙슨을 울리며 손을 흔들어 격려해 주면 힘도 난다. 길에서 쓴맛 단맛 짠맛 매운맛 다 느끼게 된다 ._ p.189
? 이 길에서의 행복은 별 게 아니었다. 일상생활 중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먹고 자고 씻는 등의 기본 행위들이 편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에 대해 감사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이 길을 걷다 보니 내 마음대로 누울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먹고 싶을 때 마음대로 먹고, 씻고 싶을 때 마음대로 씻고, 화장실 걱정 안 하며 살 수 있는 내 보금자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일인가 새삼 깨닫게 된다. _ p.299
나를 찾아 떠나는 걷기 여행 순례자의 길 위에 서다
프랑스와 스페인 국경 지역인 생 장 피드포르에서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북서부 산티아고까지 이어지는 800km의 순례길.
배낭을 짊어지고 먼지 풀풀 나는 흙길에서 낯선 이의 배낭 무게를 걱정해 주고, 소지한 구급약을 나누고 음식을 나누고 서로의 인생 이야기를 듣는 길. 가다가 지치면 쉬어 가고, 휴식 끝에 기운이 솟아나면 또 다시 걷고..... 문득 혼자이고 싶을 때면 기약 없이 헤어지고, 그러다 사람이 그리워지면 다시 만나 눈물겹게 반가운 포옹을 하고.
인생이든 여정이든 모두 우리 앞에 놓인 길이다. 우리는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지겹다고 되돌아갈 수 없고 즐겁다고 마냥 느리게 갈 수만은 없는 게 우리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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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 이 길 800km 다 걷고 나면 내 인생길도 바뀌게 하소서 / 서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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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생활 20여 년. 몸은 불고 마음은 메말라 갔다. 그러다 알게 된 산티아고 순례길. 급하고, 무섭고, 요란한 속도의 도시를 떠나 그곳에 가기로 했다. 여자 나이 마흔아홉. 걸으며 발견한 인생의 단맛 진맛.
마침내 출발점이다
"… 생 장피드포르(St. jean-pied-de-port) …"
비음이 잔뜩 섞인 프랑스어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못 알아듣는 프랑스어지만 역 이름만큼은 화살처럼 귓전에 날아와 꽂혔다. 꿈속에서 수없이 걸었던 그 길이 시작되는 곳, 등이 휠 것 같은 삶의 무게에 짓눌릴 때마다 마법의 주문처럼 외던 곳! 그곳에 마침내 당도한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 키 큰 배낭과 등산복으로 완전무장한 이들은 역을 빠져나오자 도마뱀처럼 긴 행렬을 이루었다. 뒤만 따라가면 순례자에게 도보여행 증명서(Credencial del Peregrino)를 발급해 준다는 '산티아고협회'를 찾을 수 있겠지 안도하면서도, 이 많은 사람들과 여행 내내 줄지어서 행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기도 했다(이게 얼마나 기우였는지는 다음날 즉각 입증되었지만).
이끼 낀 성문을 지나 돌로 포장된 언덕길을 올라가면서 본 마을 정경은 천국 입구가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싶었다. 성문 주변의 작고 예쁜 카페와 레스토랑에 앉아 담소하는 순례자들, 바스크족 특산물로 가득한 기념품 가게를 기웃거리는 관광객들의 표정은 생기에 넘쳤고 여유로웠다. 이곳에선 혹 시계조차 느릿느릿 가는 건 아닐까.
담배 … 회사 … 다 끊었다
산티아고 길을 가슴에 품게 된 건 '청춘을 바친' 직장을 그만둔 2003년 봄. 스무해 넘게 해온 기자 일을 접은 때이기도 했다. 긴 세월 언론사 특유의 살인적인 취재 경쟁과 '악마의 빚 독촉'보다 무서운 원고 마감에 시달리면서 술과 담배에 의존했던 탓에 나는 망가진 기계 같았다.
오후만 되면 눈알이 빠질 것 같은 편두통에 시달렸고, 물을 잔뜩 먹은 솜처럼 푹 퍼지곤 했다. 해마다 정기 이자 붙듯 불어난 몸무게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날 몰라보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몸무게와 반비례해 마음은 날로 메말라 갔다. 이렇게 살다간 책상 앞에서 쓰러지거나 회복 못 할 병에 걸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밀려들었다.
일단 담배부터 끊었고, 그것만으로는 안 되겠기에 회사까지 '끊었다'. 죽는 건 면했지만 대신 허무감과 적막감이 찾아들었다. 몸 바쳐 일해온 직장, 가족보다 더 아꼈던 직장 후배들이 나 없이도 잘만 굴러가고 즐겁게 지내자 상실감마저 느꼈다. 난 다 파먹은 김장독처럼 텅 비어 군내만 풍기는데….
침대를 벗삼아 지내다가 함께 사는 친정어머니의 구박을 견디다 못 해 집을 나섰다. 걷고 또 걸었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버스 한 정거장 거리도 걷기 귀찮아 택시를 타고, 직원 등반대회 때 산 중턱에서 헬리콥터를 불러달라고 소리쳤던 내가 걷기와 사랑에 빠진 것이다. 일중독자의 우울증은 서서히 걷혀갔다. 걷는 데 익숙해진 뒤에는 가시지 않는 갈증에 시달렸다. 종류를 불문하고 차들은 걷는 이에게 턱없이 적대적이었고, 길들은 걷다 보면 맥없이 끝나곤 했다. 길과 길은 서로 이어지지 않은 채 끊어져 나를 오도가도 못하게 만들곤 했다.
그럴 즈음 그녀의 책-아쉽게도 이름도 책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이 우연히 내 손에 들어왔다. 여고 졸업 뒤 일찍 결혼해 남편을 따라 브라질로 이민 간 50대 여성이 쓴 책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긴 길'이 있음을 일러주었다.
차량의 위협적인 경적음 없이, 도로의 절망적인 끊김 없이 한 달 내내 걸을 수 있는 길! 홀로 길 떠난 이들이 끝까지 혼자일 수 있지만, 맘만 먹으면 글로벌 패밀리를 순식간에 만들 수 있는 길! 예전엔 신심 깊은 가톨릭 신자들의 순례길이었지만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다리가 질질 끌릴 즈음 순례자 증명서만 내밀면 값싼 '알베르게(순례자 전용 집단 숙소)'에서 하룻밤 쉬어갈 수 있는 길!
책장을 덮는 순간 난 혼잣말로 외쳤다. "꼭 이 길을 걷고 말 거야."
'산티아고 가는 길'이 파올로 코엘류('순례자''연금술사'의 저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의 인생길을 바꾸어 놓은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내 열망은 더 깊고 간절해졌다. 막막하기만 한 내 삶의 후반전에 어떤 암시를 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믿음 같은 것!
광속의 세상 … 질렸 다
강화도 들길을 걷고 북한산을 오르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중 세상에서 가장 느린 길을 걷는 대신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신문에서 일하게 되었다.
우연일까 필연일까.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여행작가 김남희가 올리는 '산티아고 일기'라는 연재물(이 기행문은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여행 2'라는 책으로 엮였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부러워 배가 다 아팠지만 그녀의 여행기를 맨 먼저 읽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한동안은 남들보다 한발 빠르게, 종이매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지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갈 데 없는 '낀세대'임을 절감하게 되었다. 한때 나를 매료시켰던 속도감은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젊고 열정적인 후배들은 새로운 도전 앞에서도 언제나 의욕적이고 발랄했지만 난 알아듣기 힘든 신기술 용어와 작동하지 않는 첨단기기 앞에서 점점 주눅 들었다. 50, 60대처럼 아날로그적인 삶을 끝내 고집할 수도, 30, 40대 초반처럼 디지털적인 삶에 쉽게 편승할 수도 없는 참으로 어정쩡한 나이….
가파른 속도는 도처에서 날 위협했다. 요란한 굉음을 동반한 일년여의 공사 끝에 동네 사람들이 무.상추나 심던 아파트 앞 공터에 10층짜리 오피스텔 두 동이 세워지더니 상가에 들어선 가게들은 한밤중까지 네온사인 간판을 켜놓고 노래반주기를 틀어놔 나만의 시간인 밤마저 빼앗아갔다. 더 늦기 전에 산티아고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영어도 못 하는 아줌마가 혼자서…'. 가족과 친구들의 걱정을 뒤로한 채 일본을 경유해 파리를 거쳐 고속철 타고 비욘으로 가 다시 지방선으로 갈아탄 끝에 산티아고 여정의 출발점에 다다른 때는 햇빛이 너무도 눈부신 9월 10일 오후였다.
증명서를 발급받고 자원봉사자가 일러준 알베르게에 여장을 푼 뒤 미리 점찍어 둔 전망 좋은 레스토랑에서 피레네 발치에 조붓이 엎드린 마을이 노을에 붉게 물드는 광경을 느긋이 지켜보았다. 다음날 산 위에서 닥칠 일을 까맣게 모른 채.(서명숙 전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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