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시니 참 좋았다."
1, A라는 사건이 터졌을 때, AA 파일을 공개해 원래의 메머드급 사건을 분산시키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비인격적 파일을 공개하는 당사자는 그 파일을 욕하면서 열게될(보게될) 익명의 절시증 대중의 심리학을 아는 것이고, 본 사람은 동시에 두 개의 장면으로 인해 분산된 반응의 심리학을 드러내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절시증 혹은 관음증이 낳은 '희석화'라 부른다. 이때 동원된 육체는 육체 그 자체가 아니라 하나의 정치성을 띤 기호에 해당한다. 또한 호기심으로 촉발된 시선은 그 육체가 충분히 절시증을 충족시킬만 하다거나, 아니라던가 하는 에로스의 경제학으로 넘어가게 된다. 본 사람은 말하게 되어 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와 경제는 언제나 맞물려 굴러가는 자웅동체다.
2. 세계는 서사의 공간이다. 소설가도 소설을 쓰고, 정치인도 소설을 쓰고. 익명의 대중도 소설을 쓴다. 왜? 소설의 시작은 <본다>는 데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육체라는 현실로부터 시작된다. 몸보다 더 큰 현실이 있을까? 육체란 (前)문화적, 전(前)언어적 현상이다. 동시에 그것은 사회적 언어적 구성물이다. 육체는 정신적 갈등이 각인되는 장소이자 인간상징의 원천이다. 어쩌면 육체란 전언어적 현상으로서의 몸이라는 근원에서 퍼올린 것을 담론에 의해 끊임없이 언어화되어 사회적 현상으로 제시하는 메카니즘인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에 루소에게 매질을 했던 가정교사는 그의 엉덩이에 그의 생애를 좌우할 성적 코드를 기입한다. 카프카의 소설 속에서 사형수의 몸에는 자동기계의 바늘로 "상관에 복종하라"는 글자가 새겨진다. 여섯 시간에 걸친 처형의 고통 속에서 그는 이 말의 의미를 배우게 된다. 굳이 문신을 새기지 않아도 육체는 그 자체가 텍스트다. 이 텍스트를 읽는 오래된 작업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육체를 이야기의 주체로 만들려는 새로운 시도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육체는 반복적 글쓰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피터 부룩스의 <육체와 예술>이 책 역시 그 시도 중의 하나이며, 그 주제로 쓰여진 책 중에서 역작으로 꼽을 만하다
3, 피터 브룩스, 시각은 언제나 중심적 기능이었다. 그리스 철학의 시대로부터 시각은 언제나 1차적 감각으로 여겨져왔다. 시각은 모든 인식론적 탐구를 대표하는 감각이다. 시각은 감각 중에서 가장 객관적이고 진리로 이끄는 매개체이며 현실을 조사 파악하는 데 가장 알맞은 감각이다. 그러므로 일상적인 의미에서 본다는 말은 안다는 말과 동일시된다. 그러나 진실에의 접근은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그것은 자주 베일 속에 감춰지고 잠재적이며 또한 숨어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진리의 발견은 베일을 들추고 드러내고 벌거벗기는 과정이다. 장-폴-사르트르의 인식론에는 ‘악타에온 콤플렉스’라는것이있다.(악타에온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냥꾼. 목욕을 하고있는 달의여신 아르테미스의 나체를 보았기 때문에 여신의분노를 사게 되어 여신에 의해 사슴으로 변했다가 사냥개에 의해 물려죽는다) 그에 의하면 악타에온 콤플렉스는 “자연의 베일을 벗기고 드러내려는것“이다 모든 탐구에는 나체-진리라는 관념이 포함되어있다. 악타에온이 목욕하는 아르테미스여신을 보다 잘 보기위해 나뭇가지를 옆으로 치우듯이 우리는 진리탐구를 가리는 장애물을 치움으로써 나체를 드러낸다“ 사르트르의 비유에서 보듯 인식론적 원칙은 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전체 서구 전통을 통틀어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반면에 시선의 대상, 즉 벌거벗겨지고 드러내어지는 것은 항상 여성으로 비유되었다. 다시 말하자면 진리는 여신, 스핑크스, 혹은 그냥 단순히 여자로 비유되었다.
4. 시각, 지식, 진리, 육체 이런것들은 서로 어울려 우리문화의 중심적인, 그리고 매우 의미심장한 태도와 몸짓을 구성한다. 지식의 주체인 남자라는 개념은 지식의 대상인 여자의 육체라는 개념에 대응된다. 이러한 지식은 흔히 진리를 드러내는 방법이라 간주되는 시각적 탐구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것이 불가능할 때 남자들은 그 대상을 수수께끼로 치부 한다. 프로이트는 세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중에서도 육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성적으로 투사된 시각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에서 절시증, 즉 시각에 의해 성적 쾌감을 얻는 것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인간의 성을 형성하는 ‘기본 본능’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성기와 성기의 작용을 대상으로 삼는다고하였다. 프로이트의 시나리오는 항상 남자아이가 여자의 성기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5. 보고자하는 본능은 지식에 대한 본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개인의 발달 단계 그리고 서양철학 및 문학의 전통에 있어 시각이 성적이라는 사실은 애초부터 지식이 성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과 본원적인 연관 관계를 갖는다. 사실주의적 전통에 있어서의 시각 중시 태도는 세상을 알고자하는 욕망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이에 의해 응시는 현실에 대한 탐구와 동일시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알고자하는 본능은 남녀간의 해부학적 차이를 인지하는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어린아이의 호기심의 대상은 육체, 그중에서도 성기에 집중된다. 남자 아이에 있어서 남근은(먼저 자신의 남근, 그다음에 다른 사람에게 남근이 있고없고의 문제)“조사하고자하는 강한충동”과 “성적탐구”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이 바로 "지식애(epistemophilia)" 라고 부르는 것인데 지적 탐구는 이러한 지식애적 성격, 성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실주의적 시각 역시 성적 성격을 띠지 않을 수 없다. 시야에 포착된 육체는 지식과 욕망, 즉 욕망으로서의 지식, 지식으로서의 욕망 양자의 결합의 대표적 예라 하겠다.
6. 지식애적 탐구의 가장 중요한 형태인 시각적 탐구는 상상적이고 불가한 것- 존재하지않는 것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기에 절대로 탐구의 실재 대상을 파악하지 못한다. 지식애적 시도는 항상 그리고 본원적으로 좌절 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육체는 결코 완전히 이해되고 표현 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전면적으로 파악될 수도 없다. 육체를 보는것은 본래적으로 만족스러울 수 없다. 왜냐하면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진실을 보여줘야하는데 시각은 결코 지실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에 좀 더 접근하기위해서는 다른 감각 , 즉 촉각이나 후각의 힘을 빌려야할 지 모른다. 그러나 이 감각들은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억압되어 공적인 부분에서는 잘 쓰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인식론에서는 배제되곤 한다. 시각은 남자와 관련된 성적 행위로, 시각의 대상을 여자로 보는 태도는 남성적 지배적 시선으로하여금 자신의 환상을 여자의 모습위에 투영한다. 이때 여자의 모습은 이러한 환상에 맞는 형태로 제시된다. 즉 여자들은 보여지는 동시에 전시된다. 여자들의 모습은 강렬한 시각적 성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조정되며 따라서 그들은 보여지기위한 것의 대명사가 된다. 사실주의적 서사물과 사실주의적 시각의 요체는 사실 나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과정, 즉 나체로 만드는 행위 에 있을 뿐이다. 어쩌면 그 나체의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고 다만 우리의 상상 적 투사로 가득찬 텅빈공간만이 있을 지도모른다.
장 자끄 아노 감독의 <연인>
7. 프로이트는 “성욕에 관한 세편의 에세이”에서 절시증에 대해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문명의 발달과 함께 진행된 점진적인 육체의 감춤이 성적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현대의 사가들은 여성의 육체가 점점 옷으로 감싸짐에 따라( 19세기가 특히 심했다) 옷을 벗기는데 대한 관심도 커졌고 또한 필수적으로 벗겨야할 부수적인 물건들의 성적 성격도 더 커졌다고 했다. 조르쥬 바타이유의 에로티즘 에나오는 대담한 주장, 즉 에로틱 이라는 것은 금지에 대한 매우 위험한 위반이며 이 에로틱의 결정적 행위는 벌거벗기는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8. 프로이트는 지식에 대한 충동, 즉 지식애가 육체 및 성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다고 단정한다. 그러나 지식애적 충동은 그 본질상 좌절 될수밖에 없다.(존재하지않는것을 보고자하는욕구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따라서 그것의 대상인 육체는 결코 완전하게 파악될 수 없다. 시각은 기본적으로 성적이며 따라서 이를 통하여서는 육체를 부분적으로 즉 환유적으로밖에는 알 수없다. 서사물의 역학에 있어서도 우리는 육체에 항상 접근하고 그 주위를 맴돌기는하지만 결코 그것을 포착 할 수는 없다. 이러한 기도의 한 쪽 극단에는 육체를 재현하기위해서는 죽여야한다는 논리가 있다. 실제로 프로이트는 지식본능이 가학본능과 관련된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지식본능이란 밑바닥을 파헤쳐보면 결국 “지적으로 고양된 지배본능의 승화된 파생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보려는, 알려는 기도는 지배하려는 기도에 다름이 아니며 묘사적 산문을 포함한 우리의 모든 재현 기도는 조사의 대상을 고정 시키고자하는 의도를 드러낸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재현의 동기인지도 모른다. 반대쪽 극단에는 알려는 기도가 좌절 됨에 따라 지식애적 기도 자체를 회의하는 태도가 있다. 이러한 경향은 사실주의가 모더니즘적 양상을 띠면서 점점 더 전면에 떠오른다. 이제는 관찰의 대상 뿐만 아니라 관찰자/이식자자체가 의문시되고 다른 사람의 육체를 안다, 혹은 소유한다는 원칙 자체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9. 응시하는 <연인> 읽기: 뒤라스의 <연인>은 수동적 입장에서 벗어나 자신을 남성의 욕망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에로스의 경제학의 관점에서 이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여성의 상을 제시한다. 이로써 응시하는 남성과 응시당하는 여성이라는 전통적 틀과는 달이 능동성/수동성의 구별을 복잡하게 만드는 새로운 모델이 등장한다. 뒤라스는 베트남에서의 가난했던 생활과 중국인 남자와의 첫사랑에 대한 기억을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탄생시켰다. 그녀에게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발표된 그해 공쿠르 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35개의 국가에서 번역되는 등 뒤라스를 전 세계적인 작가로 부상시켰다. 언제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해 오던 뒤라스는 <연인>을 통해 자신의 인생사에서 뿐만 아니라 작품 경력에 있어서도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였다.
10. <연인>의 표지화로 사용된 소녀의 얼굴은 작품보다 더 유명하다. 무심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이 사진은 1992년 장자크 아노 감독이 <연인>을 동명의 영화로 영화화하면서 사용한 포스터이다. 프랑스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거침없이 표현한 이 영화는 원작자인 뒤라스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키며 그녀에게 '관능의 작가'라는 수식어를 붙게 했다. 하지만 '관능'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 뒤라스'라는 작가를 설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11. 소설은 영화와 달리 여러 시공간을 넘나드는 짤막한 문단들로 가득 차 있다. 영화가 프랑스인 소녀와 중국인 남자와의 관계에 초점이 맞추어 순차적으로 사건을 진행시키고 있다면, 소설은 베트남에서의 어린 시절이, 프랑스로 귀국해 문단과 학계의 저명인사들과 교류하던 시절이, 늙어 쭈글쭈글해진 현재의 시간이 뒤섞여 있다. 뒤라스는 『연인』에서 여러 시공간을 넘나드는 짤막한 문단들로 흩어진 기억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추어 내면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을 완성하기를 바랐다. 그녀에게 인생은 '사랑에 대한 갈망' 그 자체였으며, 과거와 현재,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글쓰기를 통해 그 갈망을 실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독특한 글쓰기로 뒤라스에게는 '관능의 작가'뿐만 아니라 '누보로망의 작가'라는,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수식어가 또 하나 붙게 되었다.
12.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들처럼,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다고 착각할 뻔했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다른 것, 그렇다,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펠트 모자를 쓴 소녀가 강물의 레몬 빛을 온몸으로 받은 채, 난간에 팔꿈치를 괴고 나룻배의 갑판 위에 홀로 서 있다. 남성용 모자가 그 장면을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그것이 유일한 색깔이다. 안개가 뿌옇게 서린 강 위의 태양, 그 태양의 열기 속에 강기슭은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강은 수평선과 맞닿아 버린 것처럼 보인다. 강은 유유히 흐른다. 어떤 소리도 내지 않는다. 몸속에서 흐르는 피처럼. 수면에는 바람 기운조차 없다. 나는 항상 얼마나 슬펐던가.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찍은 사진에서도 나는 그런 슬픔을 알아볼 수 있다. 오늘의 이 슬픔도 내가 항상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것임을 느꼈기 때문에, 너무나도 나와 닮아 있기 때문에 나는 슬픔이 바로 내 이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그녀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그는 그녀의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그는 어린 소녀의 향기를 들이마신다. 두 눈을 감고 그녀의 숨, 그녀가 내쉬는 따뜻한 숨결을 들이마신다. 그녀의 육체는 점점 경계가 희미해지고, 그는 이제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게 된다. 이 육체는, 다른 몸들과 달리, 무한하다. 침실 안에서 그녀의 육체는 점점 확대된다. 정해진 형태도 없다. 육체는 매 순간 생성되어, 그가 보고 있는 곳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존재한다. 시야 너머로 퍼져 나가 유희와 죽음을 향해 확장된다. 소녀는 일어섰다. 마치 이번에는 자기가 달려가 자살하려는 것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13. <연인>에 나오는 욕망은 욕망의 경제와 욕망의 담론에서 특히 육체가 차지한 우치에 관한 얘기다. 열다섯살의 소녀는 타자의 시선에 의해 욕망의 위치가 결정된다.
Two Tahitian Women ( 망고를 든 타히티의 두 여인 ), 1899
1899 캔버스에 유채 94*73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14. 이 작품은 고갱의 타히티 작품 중 가장 자연스러운 것 중의 하나이다. 고갱의 대부분 작품이 의식적인 그의 원시주의적(原始主義的) 조형 의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은 그런 의식을 떠나서 간결한 구도로 인공적(人工的)인 단순화(單純化)나 양식화(樣式化)의 흔적도 없이, 두 여인의 포즈에도 고갱이 가끔 쓰는 자바나 이집트의 그 양식도 볼 수가 없다. 젊고, 그래서 아름다운 매력을 몸 속에 가득히 지니고 자연스럽게 서 있다. 그것은 유럽인이 꿈꾸어 오던 이브(Eve)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 반대적 이브도 아니다. 그런 대립을 뛰어넘은, 싱싱한 한 현실로서의 여체(女體)인 것이다. 빨간꽃과 젖꼭지, 입술 등의 색에서, 오렌지빛,노랑, 그리고 청록의 밝은 치마에서 차츰 어두운 암록색 검정의 머리칼과 치마색까지 차분한 하모니를 이루고, 화면은 풍부하고 투명한 아름 다움으로 가득 찼다
15. 이러한 나체화에 대한 반역적인 시도가 19세기 말 고갱에게서도 나온다. 낡고 퇴폐적이고 억압적인 유럽을 벗어나 타히티에서 안식을 찾은 고갱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시각으로는 또 하나의 식민주의자일지 모르지만, 예술적으로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인의 나체는 당시 프랑스의 화가들이 그린 나체와는 전혀 다르다. 고갱의 그림 속에서 여인들은 남성의 시선을 정면으로 응시하거나 아무렇지도 않게, 자연스럽게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다. 고갱은 19세기 예술과 문화에서 끊임없이 나타나는 육체 재현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은 사람이라는 것이 브룩스의 평가다.(368) 그는 절시증(voyeurism)에서 해방된 최초의 19세기 예술가가 된 것이다. 역시 고갱에게서도 여성의 육체는 의미가 새겨지는 장소, “하나의 알레고리”(368)로 보는 서양의 전통이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그가 육체를 다룬 방식은 그 전과 매우 다르다. 육체는 미와 쾌락과 가치가 깃들인 자연스런 장소가 된 것이다.
16. 근대적 시각과는 다른 관점에서 육체를 바라보는 시도들을 소개한다. 가령 타이티의 여인들을 즐겨 그렸던 고갱은 남성의 시각의 응시 대상인 살롱식 '비너스' 대신에 아직 선악의 구별이 기입되지 않은 '이브'라는 이름의 원시적 육체를 그리려 했다. 메리 쎌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괴물의 몸을 통하여 언어화를 거부 혹은 초월하는 육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엘리어트와 프로이트는 여성의 '히스테리' 현상에 주목함으로써 육체를 단순한 '응시의 대상'이 아닌 '말을 하는 주체'로 바라보는 관점을 도입하였다. 말하자면 단순히 육체를 관찰하기보다는 거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17. 브룩스는 고갱 외에도 19세기에 남성작가들과는 다른 육체적 기호화 작업을 한 메리 셸리와 조지 엘리어트의 작품을 분석하고, 오늘날 재현되는 육체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한다. 19세기의 물신적 시선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에는 육체에 대한 너무나도 적극적인 재현이 광고를 필두로 한 자본주의적 욕망과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 브룩스의 설명이다.
18. 기독교의 신화에서, 여호와는 세상을 다 창조하고 맨 마지막에 인간을 만들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의 형상대로 인간의 ‘육체’를 만들었다. 그 인간(아담)이 맨 처음 한 일은 다른 인간(이브)의 육체를 보는 일이었고, 그들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자신들의 육체를 가리는 일이었다. 신약성서의 중심 사건은 말씀이 육체가 되는 예수 탄생, 그리고 그의 수난, 십자가 못 박힘, 마지막으로는 육체의 부활과 재림예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도 육체는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놓인다. 오비디우스가 붙인 이름처럼 그것의 핵심은 육체의 ‘변신’ 이야기다. 고조선의 건국 신화 역시 파와 마늘만을 먹으며 천 일을 견딘 곰의 인간으로의 변신에서 시작한다. 육체는 언제나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육체는 호기심의 대상이며, 영원히 그치지 않는 탐구대상이다.
19. 피터 브룩스(Peter Brooks)는 『육체와 예술(Body Work)』에서, 서양 서사물의 중심에는 육체가 있다고 보고, 특히 근대의 서사물(주로 소설)과 시각예술(주로 미술) 속에서 육체가 어떻게 재현되는지를 다룬다. 서구적 전통에서 육체와 정신은 언제나 이분법적으로 나뉜다.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은 모두 정신의 소산이지만, 그 정신은 언제나 육체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가 글쓰기, 다시 말해 의미화의 과정 속에 편입되는 것은 그 육체에 자국이 새겨짐으로써 가능해진다. 육체에 자국, 즉 기호가 새겨짐으로써 육체는 의미가 되고, 문학 서사물의 주제가 된다. 이처럼 육체를 의미화하려는 시도는 육체를 알려고 하는 욕망 때문이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인간에게 알려고 하는 욕망이 맨 처음 생길 때는 어린 남자아이(프로이트에게는 언제나 ‘남자아이’가 주체다)가 자신의 성기와 여자아이의 성기와 다르다는 것을 보지만, 더 깊게 탐구하는 시도를 부모에 의해 저지당하면서부터 시작한다. 지식욕망은 이처럼 육체에 대한 시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아이가 ‘보는 것’에서부터 ‘알려고 하는 것’이 시작한다. 시각이 지식욕, 성욕과 관계를 맺는 순간이다. 서구 문학의 역사에서 글쓰기, 육체, 성, 시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고, 브룩스는 주로 18세기 이후의 근대에 생산된 서사물을 중심으로 이들의 관계를 탐구한다.
20. 이언 와트(Ian Watt)는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소설의 출현(The Rise of the Novel)』에서 소설의 출현이 곧 개인과 사적생활의 출현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영국에서 17세기, 프랑스에서 18세기 경부터 사적생활(privacy)이 출현하기 시작하고, 소설은 그 사적생활을 중심주제로 다루는 개인적 글쓰기/독서행위가 되었다. 하지만, 사적생활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사적생활을 침범할 수밖에 없다. 사적생활의 핵심은 성생활이다. 따라서 근대소설의 탄생과 발전은 사생활의 침범, 성, 육체의 드러냄과 함께 간다. 브룩스는 18세기에 육체를 의미생성의 장소로 인식하고 글을 쓴 최초의 인물로 장-자크 루소를 꼽는다. “루소에 이르러 육체는 육체 이외의 장소에서는 생성되지 못하는 의미 생성의 장소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정서적인 면과 육체적 충동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의미 창조의 주체가 되었다. 즉 육체는 기호의 영역으로 들어가 그 자체가 기호가 되었고 또한 여러 기호가 각인되는 장소가 되었다.”(87-8) 어린시절 가정교사에게 엉덩이를 맞았던 경험에서 최초의 성욕을 느꼈다고 고백하는 루소의 『고백록』은 육체에 새겨진 기호(엉덩이 체벌과 그 자국)가 이야기(고백록)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보여주는 증거가 된다. 루소 이후로 18세기 전반에 걸쳐 육체는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왔고, 육체는 의미를 생성하는 기표가 되기 시작한다. 18세기의 서사는 육체를 다룸에 있어 (전시대인 르네상스 시대보다는 못해도) 비교적 자유로웠지만, 여성의 육체에 대한 갈망과 공포가 동시에 존재했다. 글 쓰는 자들은 모조리 남자였기 때문이다. 남자 아이가 여성의 성기를 보려고 하는 데서 지식욕=글쓰기는 시작하지만, 성기가 눈앞에 선명히 드러나는 순간 욕망은 종말을 맞게 된다. 따라서 작가들은 육체를 묘사하고 육체를 덮는 옷을 하나씩 벗기려고 하지만, 최종적인 나체까지 가지는 못하는 역설적 상황에 처한다.
21. 19세기에 오면 육체의 기호화에 있어 큰 변화가 나타난다. 프랑스 혁명 이후 드디어 ‘근대적 육체’가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새롭게 의미를 창출하는 ‘혁명’이 지배하던 시기에는 육체의 미학 역시 능동적으로 의미를 산출하는 소위 ‘체현의 미학’(119)이 따른다. 귀족이나 왕당파면 단두대로 가야만 했던 시대는 곧 의미가 있다면 반드시 체현되어야만 하는 시대였던 것이다. 멜로드라마는 혁명의 분위기에서 등장한다. “왜냐하면 멜로드라마는 도덕적 메시지를 명백한 말과 기호로 천명하고, 그것을 수행하고,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하기 때문이다.”(131) 체현의 미학의 핵심인 멜로드라마에서 육체는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직접적인 장소로 나타나는데, 이는 대체로 육체에 새겨진 기호(자국, 반점, 상처 등)다. 이렇게 중요시되었던 메시지의 육체적 각인은 혁명을 넘어 근대 서사 문학의 미학에 있어서도 핵심적 요소가 된다. 이 때의 대표적인 소설가가 발자크다. 루소의 작품을 통해 육체가 기호가 되는 시작이 되었다면, 발자크의 작품을 통해 육체는 분명한 근대적 육체로서의 서술적 기표 역할을 하게 된다. 주로 고급창녀와의 치정극이 다루어지는 발자크의 소설들에서 육체는 사건이 일어나고 해결되는 핵심장소이다. 육체는 자본주의적 경제원리가 작동되는 무대가 된다. 또한, 발자크에게서 육체, 다시 말해 여자의 육체는 응시의 대상이 되고, 읽기의 대상이 되며, 의미 부여의 대상이 된다(171).
22. 19세기의 지배적 전통인 사실주의는 ‘시각’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사실주의에 있어 아는 것이란 곧 보는 것이며, 재현이란 곧 묘사인 것이다.”(179) 이때의 ‘시각’은 완전히 남성적인 특권이었고, 이리가레(Irigaray)가 말하는 ‘남성적 응시’의 시대였다. 시선은 성적이었고, 시대의 분위기에 맞춰 억압적이었다. 브룩스는 그 대표적인 예로 플로베르가 묘사한 엠마 보바리의 육체를 든다. 앞에서 설명했듯, 서양의 전통에서 시각은 진리탐구의 중심적 기능이었다. 진리의 발견이란 진실을 가린 베일을 들치고, 드러내고, 벗기는 과정인데, 이것을 수행하는 시선은 남성의 것이고, 베일 속의 진실은 항상 여성이었다. 세상을 남김없이 재현하고자 하는 근대적 욕망은 곧 시각적 욕망이었고, 남성적 욕망이었다. 베일에 가려진 여체/진실을 벗기려는 시도는, 하지만, 쉽지 않다. 여성의 육체가 주는 열망-공포는 남성적 시선을 물신화시켰고, 그래서 결국 베일을 완전히 벗겨 전체를 조망하는 시도는 좌절될 수밖에 없었다. 어린아이가 결국 성기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포기하듯이 남성 작가들은 진실을 완전히 보지 못한다. 이 과정의 산물이 곧 19세기 사실주의의 서사물이다. “서사물은 이러한 접근과 회피의 산물이다. 또한 결코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도 없고 또한 대상에 도달할 수도 없는 욕망의 이야기이다.”(210) 진실을 알고 눈이 먼 오이디푸스처럼, “완전한 지식은 탐구자를 눈멀게”(244) 하기 때문이다.
23. 19세기 말의 자연주의는 인간의 삶을 제시하기 위해 과학적 틀, 특히 생리학적 모델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려는 시도다. 따라서 자연주의 소설은 무엇보다 인간의 성적인 육체에 주안점을 둔다. 자연주의의 시대에 여체를 보는 시선은 더욱더 강렬해졌고 적나라해졌다. 브룩스는 대표적으로 에밀 졸라의 『나나』와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제롬, 쿠르베, 부그로, 카바넬 등의 나체화들을 예로 든다. 이 시기의 화가들은 신화 속의 이야기를 통해 여인의 나체를 끊임없이 재현했고, 쿠르베에 오면 상식적으로 나체가 등장하지 않아야 할 배경에도 버젓이 나체(그것도 여성만)를 등장시키게 되는 정도까지 오게 된다. 나체화 속의 여성들은 자신의 육체를 보여주면서 부끄러워했고, 때로는 잠자고 있을 때 때로는 몰래 그들의 육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육체를 응시하는 시선이 정확히 남성의 욕망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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