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33개의 철학적 논제들!

나뭇잎숨결 2009. 10. 13. 10:01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33개의 철학적 논제들!”

 

생각이 많으면 공주를 얻지 못한다 | 2. 곰 앞에서 만인이 평등한 이유―윤리 | 3. 욕망과 자유를 강요하는 만병통치약 | 4. 시간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 5. 헤엄을 치는 것인가? 가라앉고 있는 것인가? | 6. 안녕하시오, 난 아이작 뉴턴 경이오. 잠깐, 사과 얘긴 꺼내지 마시오 | 7. 우리는 긴귀날쥐를 구해야 하는가? | 8. 하나가 둘이 될 때 | 9. 예술, 강도 그리고 관객 | 10. 거부할 수밖에 없는 제안 | 11. 일어날 일은 어차피 일어난다 | 12. 여자와 남자는 과연 평등할까? | 13. 험프티덤프티가 칠면조 부인에게 던지는 충고 | 14. 인간인가 양인가? | 15.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 16.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것이다 | 17. 새로운 박스를 선택하라 | 18. 뇌는 경험을 할 수 있는가? | 19.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20.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방법 | 21. 새니티 클로스는 없다 | 22. 생활 방식의 충돌 | 23. 색을 칠한 그림과 색을 칠하지 않은 그림 | 24. ‘예스’가 ‘노’를 의미할 때 | 25. 흉악범에게 자비를? | 26. 잠에서 깨어난 잠자는 공주 | 27. 가장 위대한 기적은? | 28. 강은 똑같지만 강물은 다르다? | 29. 끔찍한 연애 | 30. 그것은 판단의 문제다 | 31. 별은 우리가 만드는 것인가? | 32. 끝없는 추론? | 33. 인간이라는 나약한 동물 


우리 인간에게는 과연 다른 생물들―소, 양, 돼지―을 죽이고, 먹을 권리가 있는 것일까? 우리가 배고픔과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들을 잡아먹는다면, 사람을 먹는 것은 왜 안 되는 것일까? 코앞에 닥친 아사를 피하기 위해 어린아이를 먹는 것은 어떤가? 식용으로 인간을 사육하는 것은 또 어떨까? 이와 같은 질문의 기저에는 인간 본연의 이기적이고 독단적이며 자기본위의 고정관념에 대한 역설과 도발이 숨어 있다.


전 영국에 성별과 연령을 초월한 철학 바람을 일으킨 피터 케이브의 저서,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에는 이처럼 황당한 역설, 논리적 탈출구, 전통적인 재치 문답이 가득하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삶의 가장 중요한 방정식들을 명쾌하고 재기 발랄하고 유머러스하게 정리해낸다. 이 책에 담긴 퍼즐 역설 난제들은 인간의 삶 전체를 다루고 있으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우리는 신의 존재를 과연 입증할 수 있는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은 과연 추구할 가치가 있는가?”, “우리는 왜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을 구해야 하는가?” 등 정치와 사랑에서부터 윤리와 예술에 이르는 다양한 메뉴를 늘어놓는다. 이처럼 해학과 유머로 무장한 삶을 관통하는 33개의 논제를 우리에게 던짐으로써 일상 속에 자리한 철학에 대해 새롭게 눈을 뜨게 한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유쾌한 공상과 기발한 역설로 오늘을 도발하라?”

저자는 역설로 가득한 질문을 통해 그동안 당연시 해왔던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일상을 도발하는 한편, 인간의 해악과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고발한다.
내가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방패’로 삼는 행위는 과연 용인될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게 한다면, 또 그와 같은 행위를 의도적으로 행한다면 과연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국가와 법에 복종해야 하는가? 정부는 어떤 권의에 의해 우리를 지배하는 것일까? 왜 법을 지키는 것을 우리는 올바른 행동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베짱이처럼 사는 것은 과연 나쁜 것일까? 노동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삶을 어째서 우리는 손가락질 하는 것일까? 그런 삶을 비난하는 것 자체가 흑백의 답에 빠진 것은 아닐까?
어째서 연인들은 세상 사람들이 전혀 보지 못하는 것을 서로에게서 발견하는 것일까?


기적을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인가, 불합리한 일인가?
그 밖에도 우리가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뇌의 경험인지 육체의 경험인지, 흉악범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하는지 등 우리의 고정관념을 도발하는 질문들이 이 책 속에 가득하다. 그 질문에 대해 대답을 하고 고민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상식과 일상이 얼마나 편협한지를 발견할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된 각각의 논제들은 ‘인생’, ‘가치관’, ‘신’, ‘존재’, ‘윤리’, ‘욕망’, ‘자아’ 등의 상위 키워드로 분류된다. 따라서 이 책은 띄엄띄엄 읽어도 되고, 또한 똑바로 읽어나가면서 여러 주제들을 건너뛰면서 읽을 수도 있다. 똑바로 읽지 않고 각 장의 끝에 표시된 화살표를 따라 가면, 한동안 일정한 주제에 머문 후에 다른 주제로 넘어갈 것이다. 직소퍼즐처럼 짜여진 33개의 철학 퍼즐을 잘 짜맞추다보면 하나의 퍼즐이 다른 퍼즐로 이어지는 철학의 묘미를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넘나드는 철학의 논제들을 통해 분석과 성찰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철학이 우리를 위로할 것이다?”

어쩌면 그동안 철학이라는 학문은 우리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진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피터 케이브는 우리의 읽기 능력과 대화 능력만으로도 이미 철학적 사고의 재료를 소유한 것이라고 말한다. 수학적 능력이 특별히 뛰어나거나, 박식한 역사적 지식 또는 과학적 연구 능력을 갖출 필요도 없고, 단지 우리의 일상적 경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는 철학의 의의와 묘미는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기초적인 이해와 오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한다. 그것이 바로 그동안 우리를 철학에서 멀어지게 한 원인인 동시에 다시 철학을 우리의 일상으로 가져올 원동력이 될 것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철학은 경계가 없다. 철학은 우리의 눈을 연다. 철학은 또한 나를 연다’고 말하고 있다. 일상의 삶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칭찬하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어떤 선택이 합리적인지를 생각할 때, 그 속에는 인간의 자유 의지, 욕망, 선택, 합리성에 대한 철학적 입장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접하게 되는 모든 토론과 논쟁, 성찰과 철학적 사고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향해 우리의 눈을 열어준다.


피터 케이브는 철학이 곧 취미가 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말한다. 철학이 사회적 취미로 간주되고, 사람들은 철학의 검을 뽑아 베기도 하고 찌르기도 하면서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철학적 문제들을 제기하고 그런 철학적 성찰과 난해함이 발전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아마 해가 지도록 얘기할 것이고, 어쩌면 해가 뜨도록 얘기할 것이다.

“가입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는 번득이는 흰 이를 드러내고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노려보면서 두 팔로 내 목을 감았다. 이 순간 내가 어떻게 우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방금 나를 회원으로 받아준 클럽에서 그렇게 따뜻한 환영과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으니 말이다.


“누가 저녁거리지?” 몇몇 사람이 물었다. 나는 배가 고팠고, 사람들은 밝고 친절했으며, 게다가 너그럽게도 회비를 받지 않았다. 나는 명예회원이라고 그들이 말했다. 순진하고 한심한 나. 나는

저녁식사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인 결과가 이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손님이나 요리사로 초대된 것이 아니라, ‘요리를 해먹을’ 한입 거리로 초대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대단히 관대했지만, 나는 곧 그 관대함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클럽의 좌우명인 ‘서브 맨Serve Man, ‘인간에게 봉사하라’와 ‘인간을 음식으로 차려내라’라는 뜻이 중복되어 있다.―옮긴이’이 무슨 뜻인지를 나는 서서히 이해했다. 그렇다, 런던의 펠멜 가에는 이렇게 식인풍습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곧 죽겠지만 땅속에 묻히는 대신 스튜 요리가 될 신세였다. 적어도 좋은 그릇에 멋진 장식을 곁들여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일단 배경에 깔린 문제를 확인하면 우리는 위의 간략한 시나리오를 즉시 이해할 수 있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다.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어쨌든 나는 그 미식가들의 의도에 동의한 적이 없었고 요리 재료가 되는 것을 조금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나를 먹는 것은 잘못이었다.


조나단 스위프트는 풍자적인 목소리로 코앞에 닥친 아사를 피하기 위해 아기와 어린이를 먹으라고 권유했다. 그의 생각은 별로 인기가 없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비행기 추락사고의 생존자들이 굶어죽을 지경에 이른 극단적인 경우에 사람들은 대개 먼저 죽은 사람들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납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에서 묘사한 우리 클럽의 식도락 습관이 사실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고, 행여 그 회원들이 최근에 자연사나 사고로 죽은 사람들만 먹는다 해도 놀라움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놀라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살아생전에 기꺼이 헌혈을 하고, 사후에 장기를 기증한다.


초점을 유지하기 위해 우리는 코앞에 닥친 아사를 피하려고 사고나 자연사로 죽은 사람을 먹을 수밖에 없는 극단적인 경우를 살펴보았다. 그밖의 경우라면 사람들이 식인풍습에 자발적으로 동의했다고 해도 인간이 인간의 유체를 먹는 것은 여전히 잘못일까?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다른 동물―물고기, 가금류, 네 발 짐승―의 고기를 맛있게 먹고, 때로는 부지불식간에 뱀, 고래, 악어, 심지어 고양이, 개, 침팬지의 고기 맛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을 먹는 것을 옹호하는 것은 지독한 변태들뿐이다. 우리의 농업이 없었다면 많은 생물들―소, 양, 돼지―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죽이고 먹을 권리가 우리에게 있을까?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아기들을 사육하자는 스위프트의 제안에 동의할 수도 있다. 물론 그것은 틀린 주장이다. 우리가 개인을 창조한다고 해도 그 때문에 우리는 그 개인을 파괴할 권리를 갖진 못한다. 우리의 창조물이 동물들과 아기들처럼 자신의 권익을 소유하고 있다면 우리에겐 분명 그럴 권리가 없다. 심지어 위대한 그림을 창조한 피카소라 할지라도 수백만의 사람들이 감상하는 그 창조물을 파괴하는 것은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