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ncent van Gogh. Harvest Landscape. June 1888
"......간소하고 질서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는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원초적으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1911년 스콧 니어링의 써 놓은 노트이다. 스스로 실천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생태주의자, 자연주의자, 아름다운 동행 등, 수많은 이름으로 블렸던 니어링 부부의 삶은 타고르, 위고, 슈바이처, 키케로, 톨스토이 등, 당대인들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아름다운 니어링 부부의 삶을 다룬 저서로는 <스콧니어링 자저선>(실천문학사, 2000), <소박한 밥상>(디자인하우스,2001), <조화로운 사람의 지속>(보리2002), <지혜의 말들>(씨앗을 뿌리는 사람, 2004), <인생의 황혼에서>(민음사, 2002),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보리, 1997) 등이 있다. 스콧니어링은 100세, 헨렌 니어링은 92세를 살다 귀천했다.

헬렌 니어링과 스코트 니어링의 책 가운데 가장 많이 읽은 책이《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Half a Century of homesteading》이다. 나는 시골출신이라 그들이 보낸 봄, 여름,가울 겨울, 집짓기, 농사짓기, 저장하기 등 그 모든 일에 대해 흠뻑 빠질 수 있다. 니어링 부부는 미국이 일차 대전을 치르고 대공황의 늪으로 빠져들면서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1930년대 뉴욕을 떠나 버몬트의 작은 시골로 들어간다. 자연 속에서 서로 돕고 기대며, 자유로운 시간을 실컷 누리면서 저마다 좋은 것을 생산하고 창조하는 삶을 꾸리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점점 밀려들어오는 개발의 물결은 버몬트에 눌러 살려던 니어링 부부에게 새로운 결단을 내리게 한다. 1952년, 니어링 부부는 스무 해 동안 살며 지은 돌집과 정성껏 일군 밭을 뒤로 하고 메인으로 떠날 짐을 꾸린다. 이 책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Half a Century of homesteading]은 니어링 부부가 메인 땅에서 스물여섯 해 동안 조화로운 삶을 이어갔던 이야기가 담겨있다. 버몬트에서 쌓은 경험으로 더욱 지혜로운 농사꾼이 된 헬렌과 스코트는 메인에서도 자신들이 세운 원칙을 지키며 삶을 꾸려간다. 《조화로운 삶》이 니어링 부부가 세운 삶의 원칙과 철학에 대한 이야기라면, 《 조화로운 삶의 지속 Continuing the Good Life-Half a Century of homesteading》은 이 원칙들이 농사와 집짓기, 공동체 생활을 통해 구체화된 이야기이다. 니어링 부부는 쉰 해가 넘게 몸놀려 일하고 그 사이에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기록한다. 스코트가 아흔일곱 살에 헨렌이 일흔다섯에 남긴 이 글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삶이야말로 진정 조화로운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씨를 뿌리고, 밭에 뿌릴 거름을 만들고, 연못을 만들어 밭에 물을 대고, 숲에서 나무를 하고, 돌집을 짓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농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니어링 부부의 진지한 삶에서 그윽한 감동을 느끼게 될 것이다. 1983년 스코트가 죽음을 준비하고 받아들이기까지, 반 세기 동안 서로 존경하는 동반자로 살았던 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의 마무리를 볼 수 있다.
사실 우리가 몇십 해에 걸쳐 더듬어 찾고 쌓아 올리는 동안 한 일들이란 그때 그때 서로 다른 무게로 다가오는 도전에 맞서는 일이었다. 모든 도전은 그것만이 갖고 있는 특성이 있었다. 기본 방침을 뿌리부터 뒤흔든 것이 있는가 하면, 사소하게 방법만 바꾸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어려움을 헤쳐 나갈 때마다 그 나름으로 재미가 있었다. 도전에 맞닥뜨려 문제를 해결하거나 매듭을 지을 때마다 그 나름으로 만족을 얻었다. 어려움을 이기고 나면 현실에 더 큰 의욕이 생기곤 했다. 어떠한 도전이든 가깝고 먼 앞날에 대한 전망을 열어 주었다.
나이가 꽤 든 지금도 우리는 삶에서 뒤로 물러설 뜻이 없다. 아니 오히려 살고자 하는 의욕에 불타오르고 있다. 지난날은 열정이 넘치는 경험들로 가득 차 있다. 지금은 앞날에 대한 흥미로운 전망이 열리고 있다. 삶은 우리에게 자질구레하고 시시콜콜한 것에 이르기까지 알뜰하게 베풀어 주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크게 만족하며 살겠지. 더 지혜로워져서 앞으로도 끊임없이 우리에게 다가올 문제들을 너끈히 해결해 나갈 테니 말이다.
- 머리말 가운데

<소박한 밥상>에는 니어링 부부의 장수비결이 들어 있다. 물론 니어링 부부처럼 생식을 잘 못하지만 음식을 만드는 헬렌의 철학은 깊이 공감할 수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건강법이 있고 각각 장단점을 지니고 있는데, 니어링 부부의 건강 장수 비결은 한마디로 지극히 자연적이고 조화로운 생활 그 자체인 셈이다. 즉 이들은 도정되고 제분되어 결국 '죽어버린' 곡물이 아닌, 생명력있는 통곡식(현미, 통밀)을 먹었고, 최근 들어 강력한 항암 물질과 각종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히 함유된 식품으로 각광받고 있는 싹을 튀운 씨앗(발아 현미, 발아 통밀, 발아 콩 등)을 통해 가장 간단하고 저렴하게 자연의 풍부한 생명력을 섭취하는 방법을 적용시켰다. 또 식사의 절반을 생야채와 과일 등 날것으로 먹고 스프와 견과류(잣, 호두, 해바라기씨, 아몬드, 깨 등) 를 적절히 섭취하였다.
이들의 섭생법은 한의학적으로 보아도 타장하다. 즉 상대적으로 냉한 성질의 음식(야채, 과일)과 따뜻한 성질의 음식(곡류, 견과류)이 적절히 조화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입맛을 자극하고 거짓 허기를 유발하는 양념'은 자제하는 식습관을 고수했다. 또한 그들은 '갈증이 나지 않을 때에도 물을 마시는 동물은 유일하게 인간뿐이며, 소금과 양념이 잔뜩 첨가된 음식을 먹고나서 물이나 음료로 그 맛을 씻어내린 다음, 다시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이 소금이나 앵념에 중독된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다.
특히, 기본적으로 '필요한 양을 먹는 한 음식은 덜 먹을수록 좋다'는 깨달음은, "진짜 허기를 최고의 반찬 삼아" 점심을 주식으로 하고 아침과 저녁은 야채, 과일 위주로 소식하는 생활로 이끌었는데, 이는 곧 멀리는 <주역>의 "위장을 6할만 채우면 무병장수한다"는 이론에서부터 현대의 노화 관련 의학자들의 임상 실험을 통해 밝혀낸 사실, 즉 칼로리의 40%를 줄여서 먹었을 때 수명이 두 배 가량 늘고 질병 저항력이 강해진다는 결과를, 자연스럽게 깨닫고 행동에 옮겼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혜의 말을 모으는 사람, 헬렌 니어링
헬렌은 소중한 말들을 열광적으로 수집했다. 그녀는 자기 소유의 책이나 도서관의 책을 앞에 놓고 연필을 든 채 몇 시간이고 앉아서, 그녀보다 앞서 살았던 '대가들'의 말을 옮겨 적었다.
앤 셰블, '굿 라이프 센터' 임원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계화, 산업화로 치달은 20세기. 전쟁과 파괴, 식민지화와 환경오염의 와중에서, 점점 조직화되고 비인간적으로 변모해 가는 현대 사회를 거부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살았던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 그녀는 소박한 삶, 자급자족하는 삶을 몸소 실천하면서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끊임없이 사색하며 바람직한 삶의 모형을 추구했다. 그 과정에서 헬렌은 과거 현인들이 남긴 소중한 말에서 삶의 지혜와 위안을 얻었는데, 자연 속의 소박한 삶을 예찬하는 이 말들은 수많은 책에서 헬렌이 손수 뽑아낸 것이다. 헬렌의 노고가 깃들어 있는 이 소중한 글귀들은 그녀의 삶을 풍요롭게 지탱해준 중요 지침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각을 더할 나위 없이 정확하고도 훌륭하게 읽을 수 있는 풍부한 자료들이다.
자연적인, 그리고 소박한 삶을 통해 좋은 삶을 고찰하고 준비한다.
헬렌 니어링이 소중하게 여겼던 자연과 순리에 따르는 삶, 확고한 신념을 바탕으로 하는 주체적인 삶, 탐욕을 버린 소박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찬미한 현인들의 글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에 대해 고찰하는 계기, 좋은 삶의 지침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은 조직 구성원으로서의 가치가 우선되고 그 존엄성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또, 물질만능주의, 편리성의 추구로 인해 삶의 고귀함은 점차 변질되고 인간의 가치, 더 나아가 생명까지 경시되고 있다. 좋은 삶의 지침을 나타내는 휴식 같은 글들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현재 자신의 삶의 주체는 누구인지, 삶의 확고한 목적이 있는지, 자신의 의지대로 사는 삶인지, 그리고 좋은 삶이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그동안 잊고 있었던 삶의 기본 지침들, 시대와 장소를 뛰어넘는 진리들을 다시 한 번 아로새겨 더 나은 삶, 만족스러운 삶을 준비하게 한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위안을 주는 명상, 치유의 글들
전원생활, 검소한 생활에 대한 소박한 글에는 여유와 만족이 있고, 지은이 자신이 만족스럽고 평화로운 가운데 쓰인 글들은 읽는 이에게 평온함을 준다. 글쓴이가 묘사하고 찬미한 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일상에 지친 많은 이들이 여유로운 삶을 그리고, 그 속에 동화되어 복잡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와 지위, 성별의 구분 없이 모은 다양한 사람들의 지혜의 글들, 헬렌 니어링이 모은 방대한 자료의 소중함
세네카, 키케로, 프랜시스 베이컨, 제프리 초서, 허먼 멜빌, 랄프 왈도 에머슨,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등의 사상가, 정치가, 작가, 자연주의자에서 무명의 부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에 대한 소중한 말들을 만날 수 있다.
헬렌은 또한 자료 출처에도 특정한 구분을 두지 않았다. 책, 잡지, 서간, 격언, 밀가루 광고, 공원에 서 있는 나무에 새겨진 낙서에서까지 그녀는 지혜의 말들을 골라냈고, 이는 그 성격에 따라 헬렌이 나타내고자 했던 바를 적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전원생활에 만족하고 그것을 찬미하는 조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의 서간은 정치가로서의 삶을 벗어나 평온한 삶의 혜택을 마음껏 누리는 여유로운 삶을 능히 짐작하게 하며, 삶의 궁극적인 목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다양한 자료가 나타내듯, 이 책은 헬렌 니어링의 평생에 걸친 노력의 보고인 셈이다.
삶의 지혜,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고찰 - 씨앗을뿌리는사람 <지혜의 책장>
인간이 직면하는 모든 삶의 문제들은 결국 삶에서 유발되어 삶으로 귀결된다. 이는 이미 삶의 일부분이며 삶의 이유인 셈이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 삶의 근간인 인간 존재와 세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이 모든 작업을 담은 씨앗을뿌리는사람의 <지혜의 책장>은 《헬렌 니어링의 지혜의 말들》에 이어 앞으로 출간될 《달라이 라마, 감정의 치유》등을 통해서 계속 채워질 것이다.
행복한 삶을 누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힘들게 고생해서 얻은 부가 아니라 풍요로운 땅과 고요한 마음, 원망도 갈등도 없고, 명령도 지배도 받지 않는 삶, 대등한 벗과 질병 없는 건강한 삶이다.
헨리 하워드,《행복한 삶》, 1540년
- p. 5
만족은 모든 것을 금으로 바꾸는 현자의 돌이다. 빈자도 그것이 있으면 부유하고, 부자도 그것이 없으면 빈곤하다.
부는 재산이 많음이 아니라 부족함이 없음에 존재한다.
작자 미상, 《매일의 삶을 위한 격언》, 연대 미상
- p. 165
가장 소박한 즐거움을 누리는 사람이 가장 부유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일기, 1886년
- p. 173
....모든 아름다운 것은 판매되는 것이 아니라 불멸의 신들에 의해 우리에게 선물로 주어진다. 우리는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을, 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숲과 들판, 위대한 바다를 돈 한 푼 내지 않고 볼 수 있다. 새들은 공짜로 우리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우리는 길을 걸으면서 들꽃을 꺾을 수도 있다. 별빛 찬란한 밤의 홀에는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들어갈 수 있다. 가난한 이가 부자보다 더 달게 잠을 자고, 오래 먹다 보면 소박한 음식이 고급 음식보다 맛있는 법이다.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도시의 웅장한 궁전보다 시골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더 잘 자란다. 몇 명의 친구들, 몇 권의 책, 그리고 개 한 마리.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다. ....
악셀 문테, 《산 메켈레 이야기》, 1948년
- p. 176
<땅으로 돌아가자>는 기치 아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추구했던 헬렌 니어링. 그녀가 엮은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명상집 [인생의 황혼에서(Light on Aging and Dying)]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점점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다룬 청장년층을 위한 처세서는 시중에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노년층의 비율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늙어가야 하는가를 다룬 책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 책은 남편 스콧 니어링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전기를 쓰면서 헬렌 니어링이 한데 엮은 것이다. 왕성한 독서가였던 그녀가 오십 년 이상 모아온 책들에서 인용한 구절들로 이루어진 이 책에는 타고르, 위고, 슈바이처, 키케로, 톨스토이 등 깊이 있는 시선으로 인생을 바라본 240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남긴 빛나는 성찰들이 담겨 있다. 서문에서 그녀는 <수많은 글에서 내가 깨달음과 영감을 얻었듯이 독자들도 그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바친다>라고 썼다. 여기에 담긴 단상들을 느린 걸음으로 조금씩 따라가다 보면 나이듦과 죽음 앞에서 움츠러드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거기에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책의 전반부에는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글들이 묶여 있다. 노인의 얼굴에 가득한 주름은 추한 것이 아니라 <충만하게 살아왔음을 말해 주는 아름다운 것>(헬렌 헤이스)이라는 생각이 단상들의 기조를 이룬다. 헬렌 니어링이 서문을 쓰며 <이 글을 쓰는 나는 지금 아흔한 살인데, 오래 살았지만 건강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지내왔다. 이제 머지않아,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 나에게 봉사해 온 몸에서 벗어나는 것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라고 말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에 담긴 글들에는 통상적으로 노년과 관련지어 떠올리게 마련인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를 찾아볼 수 없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그만 쉬라는 말에 디오게네스가 했던 <내가 경기장에서 달리기를 하고 있을 때, 결승점이 가까워졌다고 해서 발을 늦추어야 합니까? 오히려 좀더 속력을 내야 하지 않을까요?>라는 말처럼 여기 담긴 많은 글들은 노년의 삶을 독려하고 있다. 실제로 대표적인 그림 몇 점을 여든이 넘은 나이에 완성한 미켈란젤로, 여든이 넘어서도 글을 쓴 괴테, 아흔두 살에도 여전히 발명을 하고 있었던 에디슨을 보면 나이듦이 무능력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나아가 <노년, 특히 존경받는 노년은 아주 큰 권위를 갖고 있기에, 젊음이 누리는 온갖 즐거움보다도 한층 값지다>라는 키케로의 말에서처럼, 생의 무수한 굴곡을 거친, 값진 경험을 바탕에 둔 노년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놓칠 수 없는 깨달음이다.
책의 후반부에 수록된 글들은 죽음을 향해 보다 편안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다가가려는 노력의 산물들이다. <맥박이 멈추는 순간, 우리는 기쁨으로 가득 찰까 아니면 수심에 젖을까? 끝없는 어둠이 시작될까 아니면 영원한 빛이 시작될까?>라는 메테를링크의 물음처럼, 죽고 난 뒤의 삶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인다. 물론 거기에 대해 누구도 명확한 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죽음 그 자체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훌륭하게 죽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죽음은 어찌하지 못하지만, 죽어가는 모습은 선택할 수 있다>(사이러스 설즈버거)는 말처럼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 앞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평상시에도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며 살아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헬렌 니어링은 미국 뉴저지의 중산층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음악적 재능을 타고난 헬렌은 바이올린을 전공하기 위해 유럽으로 갔다가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와 교제하기도 했다. 스물넷에 뒷날 인생의 반려자가 될 스콧 니어링을 만나면서부터 그녀의 인생은 전환점을 맞이했다. 신념 있는 사회 운동가였던 스콧은 당시 반자본주의, 반전 운동으로 대학에서 거듭 해직되는 등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1932년 헬렌과 스콧은 도시를 떠나 낡은 농가로 이주하여 직접 농작물을 기르고 돌집을 짓는 등 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을 스스로 해결하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이렇게 그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을 실천하며 소박하면서도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줌으로 해서 사람들의 의식을 각성시켰다. 스콧은 100세 되던 해에 서서히 음식을 끊음으로써 평온하게, 그리고 의식을 지닌 채 죽음 속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에게 죽음이란 다만, 성장의 마지막 단계, 자연스러운 생명의 법칙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평온하고 의미 있게 살아왔듯이 죽음을 앞두고도 그렇게 살고 싶어했으며 미리 죽음을 계획했다. 그의 목표는 약과 의사 그리고 병원이나 요양소에서 강제로 먹이는 음식들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백번째 생일이 되기 한 주 전부터는 채소와 과일 주스만으로 연명했으며 나중에는 물만 마심으로 해서 자발적으로 죽음에 다가갔다.
이후 13년 동안 헬렌은 가치 있는 삶뿐만 아니라 가치 있는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가르침을 전파했으며 자신 또한 남편과 같은 방식으로 죽음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던 중 91세가 되던 해 교통사고로 갑작스럽게 생을 마쳤다. 헬렌과 스콧이 살던 집과 정원은 전세계 사람들의 순례 여행지로 남아 있으며, 그들이 함께 쓴 『조화로운 삶』을 비롯하여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 소박한 밥상』 등은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독자들의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1904년 미국에서 태어난 헬렌은 세계적인 연주자의 꿈을 안고 열여섯에 유럽으로 건너간다.그곳에서 만난 크리슈나무르티와 헬렌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는데.

유럽과 인도, 호주를 오가면서 6년 동안 이어진 그 사랑은 크리슈나의 동생이 죽은 뒤 서서히 빛을 잃은다. 크리슈나는 '세계의 교사'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헬렌은 스물 네살에 스코트 니어링을 만나 삶의 길을 바꾼다.
헬렌보다 스물한 살이 위였던 스코트 니어링은 부유한 광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서 미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그 문화의 야만성에 줄기차게 도전한다.대학강단에서 두 번씩이나 쫓겨난다.사회에서 고립된 스코트는 헬렌을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두 사람은 가난한 뉴욕 생활을 청산한 뒤 버몬트 숲에 터를 잡고 사탕단풍농장을 일군다.헬렌과 스코트가 그렇게 반 세기 동안 서로의 빈 곳을 채우며 함께한 '땅에 뿌리박은 삶'은 수많은 이들에게 참으로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었다.스코트가 100세 생일을 맞던 날 이웃사람들이 깃발을 들고서 왔는데 그 깃발 하나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고 한다.
"스코트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이 세상이 더 좋은 곳이 되었다."
헬렌은 이 책을 87세에 썼다.헬렌 자신보다도 스코트 니어링의 삶과 반 세기에 걸친 두사람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탁월한 경제학자이자 사회주의자이며,교육자이자 생태주의자인 스코트는 스스로 말한 것을 자신의 삶에서 그대로 실천한 보기드문 사람이었다. 이 책 속에서 헬렌은 스코트와 함께 보낸 충만한 삶과 100세 생일을 앞두고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평화롭고도 위엄을 간지한채 맞이한 스코트의 죽음을 통해 사랑과 삶, 죽음이 하나임을 보여준다. 조화로운 삶, 참으로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삶이 어떤 삶인지 온몸으로 보여준 두 사람의 사랑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삶의 진정성을 찾아가는 용기있는 영혼―스콧 니어링의 생애
스콧 니어링은 1883년 미국 한 탄광도시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983년 생을 마감했다. 1백 세가 되던 1983년, 그는 지상에서 더 이상의 할일은 없다고 판단하고 스스로 곡기를 끊고 지극히 평화로운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격변기와 맞물려 있는 1백 년의 짧지 않은 생애 동안 가장 완전하고 조화로운 삶을 추구했던 그의 삶이 결코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
젊은 시절 그는 열정적인 사회개혁가였고, 자유주의자이자 진정한 의미에서의 공산주의자였다. 혁명과 전쟁의 시대였던 그 시기는 근본적으로 평화주의자였던 그를 전쟁의 광기에 대한 강한 비판으로 이끌었다. 그 때문에 그는 재판정에 서야 했지만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분명하게 자기 의견을 피력하곤 했다.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을 때 그는 강경한 어투로 대통령 트루만에게 이렇게 편지를 썼다.
"당신의 정부는 더 이상 나의 정부가 아닙니다."
그는 미국에서 가장 위대한 개인적 자유의 수호자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될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로 상징되는 문명 전반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가한 사회철학자이자 자연주의자, 실천적인 생태론자로 손꼽힌다. 이러한 선구자적 생각과 단호한 태도 때문에 그는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대학강단에서 쫓겨나고 차츰 강연 요청도 끊겼으며 신문에 기고하는 글조차 거절당했다. 그러던 중 니어링은 스무 살 연하인 매력적인 여성 헬렌 노드(지금은 헬렌 니어링으로 더 잘 알려진)를 만나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다. 헬렌은 스콧에게 최고의 반려자이자 동지였다. 그들은 함께, 처음에는 버몬트에서 그리고 후에는 메인에서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적인 생활을 했고 겨울에는 여행을 떠나고 강의를 하고 저술을 하며 지냈다.
1970, 80년대가 되자 그의 이름은 차차 사람들 속에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호숫가 니어링 부부가 손수 지은 돌집과 그들의 삶을 보러 찾아오곤 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스콧 니어링은 가난하지만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는 사람으로, 명석한 몽상가로, 개인적 희생을 개의치 않고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당시 그를 향한 존경은 젊은 시절의 화려한 활동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스콧과 그의 아내 헬렌의 자연주의적인 삶의 방식 때문이었다. 이들의 삶에 감명을 받은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갔다. 함께 농장을 일구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많은 젊은이들에게도 유기농장에서 감자밭을 가꾸는 이 주름지고 구부정한, 팔꿈치를 누덕누덕 기운 옷을 입은 괴팍한 노인이 금세기 초 뛰어난 연설과 강연으로 수천 명을 흥분시켰던 명연설가이자 1917년 반전논문 발표로 스파이 법에 기소되어 연방법정에 섰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저 조그맣고 깐깐한 노인일 뿐이었다.
1983년 8월 24일, 스콧 니어링은 부인 헬렌 니어링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 그는 자신이 살아온 1백 년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진정으로 의미있고 충만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실천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는 자본주의적 소비문화가 극대화되면 될수록, 우리의 삶이 더욱 바빠지고 황폐해질수록, 더욱 강력하게 되살아날 것이다. 자유를 찾아가는 인간의 몸짓―스콧 니어링의 사상
일찍부터 그가 가진 관심의 영역과 통찰력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것들이 많다. 아동노동문제에 대해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때에 『아동노동문제의 해결책』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여성들에게 선거권이 부여되지 않았던 1912년에 『여성과 사회진보』를 출간하여 여성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밝힌 바 있다. 또한 흑인을 니그로 등의 경멸적인 호칭으로 부르던 당시에, 미국 내에서 흑인들이 당하는 폭력을 생생히 묘사한 글을 발표하기도 했고, 1933년 저술한 『파시즘』 이라는 책에서는 파시즘을 제약없는 자본주의의 한 형태라고 단언했다.
1917년 미국이 1차세계대전에 참전하려 할 때 니어링은 『거대한 광기』라는 제목의 논문을 출간했는데 여기에서 그는 전쟁 기계를 움직이는 역학관계를 상세히 묘사했으며 징집법안을 "비미국적"이며 " 헌법정신과 미국의 전통에 명백히 위반되는 법안"이라고 비난했다. 1923년 니어링이 『석유, 전쟁의 씨앗』이라는 논문을 발간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지만 그후 60년 지나 발발한 걸프전은 그의 통찰력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었다.

실천문학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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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인 한 사람/ 장석주
오늘의 한국은 가히 유토피아다. 서유럽에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복지가 실현되는 나라다. 그 하나의 예가 서민들에게 무이자로 돈을 주겠다고 선전하는 개과천선한 사채업자들이다. 전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다. 얼굴이 널리 알려진 배우들이 날마다 텔레비전에 나와 “무이자, 무이자”라고 외친다. 차기 대통령이 될 사람들에 따르면 대한민국 경제성장률은 7%에, 그리고 국민소득은 곧 3만 달러에 이를 것이다. 대한민국의 현재는 물론이고, 미래 전망도 장밋빛이다. 일부 서민 사이에서 “힘들다”는 얘기가 없지 않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돈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친다. 넘치는 사회적 부는 부동산으로, 주식으로, 펀드로, 그림으로, 투자대상을 찾아 거침없이 흘러간다.
한 지역 주민들이 어린 돼지를 찢어 죽이는 일을 퍼포먼스라고 태연자약하게 저지를 정도로 사람들은 거침없이 담대하다. 산 생명의 사지를 찢는 이 후안무치한 용맹성은 어디에서 왔는가. 넘치는 돈이 지금 대한민국의 자신감과 용맹성의 근원이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체결로 빚은 피해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이런 태평성대가 언제 있었던가. 어디를 가나 풍악이 울리고, 어디를 가나 먹고 마시는 일이 넘쳐난다. 놀다 병나고 먹다 탈 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넘치는 돈이 불러온 이 풍요를 감당하는 데서 사람들의 피로가 생겨난다.
이 태평성대는 뭔가 수상하다. 사람들은 이 태평성대가 쭉 이어지려면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쯤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대한민국의 태평성대는 작은 것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대한민국은 속도와 효용성을 최고의 도덕적 가치로 섬기는 시장경제주의라는 광풍에 휩싸였다. 소수자들의 목소리는 미풍과 같아서 이 광풍에 가려진다. 노숙자,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자, 채식주의자, 성적 소수자, 근본적 생태주의자, 녹색평론, 작은것이 아름답다, 독립영화…. 이들은 질풍노도로 달려가는 대한민국이라는 수레 앞을 감히 막아서는 사마귀들이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한국사회는 이 사마귀들을 바퀴로 무자비하게 짓이긴다. 내가 이 태평성대를 흔쾌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 있다. 모든 이를 위한 성장과 잔치가 아니다. 오직 그들만을 위한 성장, 그들만의 잔치라는 의심이 간다. 여기저기 도덕적 해이와 부패에서 나오는 악취가 난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의인 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미국의 소수 권력층에 속하는 집안에서 인생을 시작했으나 모든 기득권을 포기한다. 그는 반전 논문을 쓰고 스파이 혐의로 연방법정에 피고로 섰으나 무죄판결을 받았으며 강연을 통해 평화를 얘기한 평화주의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동시대인들에게 위험분자로 낙인찍히고, 교수와 공직을 박탈당한다. 강연은 취소되고, 감옥에 갇혔으며, 그가 쓴 책은 재판에 부쳐지고, 신문사들은 그의 저서에 대한 유료광고 게재조차 거절했다.
그가 무기를 들고 폭력을 선동했을까? 그는 무기를 손에 쥔 적이 없으며 다만 책을 읽고 사유한 학자며 정직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광기에 사로잡힌 국가와 기득권 세력은 그를 사회와 체재를 파괴할 수 있는 과격인물로 배척하고 철저하게 고립시켰다. 그가 모두 미친 사회에서 오직 저 혼자 제 정신을 갖고 “이성의 목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사람은 대중의 생활습관, 도덕기준을 따라야 하는가, 아니면 자신의 규범을 만들어가야 하는가? 자신의 규범에 따라 살고 그것을 지키면서 그에 반대되는 사회에 대항하여 거슬러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무저항의 길을 따를 것인가?” 누구나 세상을 변화시키며 살 것인지, 아니면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고 살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물론 그는 자신의 규범에 따라 세상을 변화하는 데 저를 바치고 그에 반대하는 사회에 맞서 거슬러 나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의 이름은 스콧 니어링(1883~ 1983)이다.
스콧 니어링은 타고난 비순응주의자로,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어간 반전운동가, 평화주의자, 저술가, 채식주의자다. 헬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라는 감동적인 책에서 그를 처음 알았다. 헬렌 니어링은 그의 아내다. 저의 기득권과 행복이 아니라 다수의 행복, 다수의 사회복지, 공동의 가치, 공동 선을 드높이는 일에 관심을 가졌던 스콧 니어링은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을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 그날 자연과 사람 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자료를 모으고 체계를 세울 것. 연구에 온 힘을 쏟고 방향성을 지킬 것. 쓰고 강연하며 가르칠 것. 계급투쟁 운동과 긴밀한 접촉을 유지할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해서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을 인생 목표로 삼고 자기 길을 걸어간다.
그는 한 시대의 도덕적·윤리적 지표가 될 만한 삶의 궤적을 남겼다. 그를 만든 것은 어머니, 친할아버지, 대학교 은사인 사이먼 넬슨 패튼 교수다. 부유한 가정의 한 남자아이를 20세기 초 산업사회로 이동한 미국사회에서 하층민의 분배와 평등, 자유에 관심을 가진 진보적 사상의 인물로 자라도록 만든 것은 그들만이 아니다. 톨스토이와 자기 희생, 소크라테스와 이성의 법칙, 부처와 살생하지 말라는 가르침, 소로와 간소한 생활, 마르크스·엥겔스와 착취에 대한 저항, 간디와 노자의 비폭력, 빅토르 위고와 인도주의, 예수와 사회봉사, 공자가 취한 중용의 도, 리처드 바크의 우주의식, 월트 휘트먼과 자연주의, 벨라미와 공상적 이상주의자들, 올리브 슈라이너와 우화 작가들, 버크의 질서의식, 로맹 롤랑의 장 크리스토프 등이 크든 작든 영향을 미쳤다. 스콧은 그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기꺼이 그들이 앞서 간 길을 따라 걸은 것이다.
진정으로 충만하고 보람 있는 삶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에게 ‘스콧 니어링의 자서전’을 꼭 읽어보도록 권한다. 그의 삶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향한 열정과 실천력이 있었다. 그는 우리 하나하나가 “인류 전체의 일부이자 당대 사회적·자연적 환경의 일부”임을 자각한다. 우리가 변한다면 세계 역시 변할 수밖에 없다. 헬렌 니어링과 결혼한 뒤 버몬트주의 숲속으로 들어가 기꺼이 단순하고, 검약하고, 가난한 시골생활을 자발적으로 선택한 스콧은 시골생활이 “미친 세상에서 제 정신을 갖고 사는 삶의 한 예이자 본보기”라고 말한다. 아울러 시골생활은 “비정상적인 정치”와 “문명의 유혹과 천박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대안이자 피난처이고, 이 “험난한 세상에서 자존심과 품위를 지키며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갈 길”이다. 스콧 니어링은 시골생활이 현자나 성숙한 인간이 제 이상과 취향을 추구하며 살 수 있는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는 돈을 버는 데 쓰는 시간을 최소화한다. 모든 계획과 목표를 고려해서 필요한 현금액수를 정한 뒤 그 액수를 벌 만큼만 환금작물을 생산했다. 그리고 목표을 채우면 다음 해 예산을 세울 때까지 일을 그친다. 그렇게 얻은 귀한 시간은 명상과 휴식, 책읽기와 여행 등을 하며 삶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보탠다.
그는 100세를 살고, 품위와 존엄이 있는 방식의 죽음을 맞았다. 그는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 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고,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죽음을 평화롭게 맞았다. 가히 마음의 푯대로 삼을 만한 성자(聖者)다. 스콧은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숙고로 우리를 이끈다. 지금 대한민국에 필요한 딱 한 사람은 스콧 니어링과 같은 의인이다.〈장석주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