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과 바람이 깊게 스민 그때
안도현 시인이 시를 사랑하는 독자를 위한 시 모음집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를 펴냈다(이가서 刊). 이번 시 모음집에는 김종삼 시인의 시부터 유홍준 시인의 시에 이르기까지 총 48편의 주옥 같은 시와 안도현 시인의 감성어린 산문이 어우러져 아련한 향수를 자아낸다.
뿐만 아니라 '골목안 풍경'으로 유명한 고 김기찬 사진작가의 흑백사진들이 시의 여운을 한층 더하고 있다.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시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눈높이를 한 단계 상승시켜 줄 것"이라고 저자가 서문에서 밝혔듯이『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이 시 모음집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10, 20대의 독자층만 겨냥한 연애시가 아니라 시에 대한 관심이 높고 자신의 삶을 성찰하려는 욕구가 강한 독자층을 겨냥했다는 점이다.
근대화, 도시화란 이름으로 부르는 근자의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잃어버린 우리의 근원 정서를 간결하고 담백한 시행에 담아 되살려낸 신경림 시인의 시를 비롯해 '날이미지'로 유명한 오규원, 한국 특유의 여성성을 노래한 김혜순, 강화도의 시인 함민복의 시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한다. 아울러 시인은 "작지만 강력한 시의 힘을 신뢰하는 분들이 조금씩 늘어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또한 이 시 모음집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그리고 문학 공부를 하면서 대학노트 네 권 분량의 시들을 필사했고, 한 달에 1,000여 편의 시를 읽는다는 안도현 시인이 고른 시 48편이란 점이 주목된다. 즉, 시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겸한 시를 게재한 것이다.
아울러 저자는 이번 시 모음집에 실린 시들은 "자신의 취향과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시'의 기준에 부합되는 시들"이란 점도 강조했다. 즉, 안도현의 시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번 시 모음집에 실린 시들을 통해 한국 시 세계의 원류도 엿볼 수 있다.
특히 이번 시 모음집에는 김기찬 사진작가의 흑백사진들이 시와 함께 어우러져 있어 아련한 향수를 배가시킨다. 즉, 흑백사진만 보더라도 한 편의 이야기를 떠올릴 수 있다.
더욱이 각 사진마다 시의 여운을 배가시키는 문장들이 삽입되어 있어 감동을 더한다. 예를 들어 오창렬 시인의 시 「부부」에서는 두 부부가 머리에 각각 장독대의 몸통과 뚜껑 부분을 나눠 이고 나란히 길가를 걸어가는 사진에 "안팎으로 침묵과 위로가 나란하다 / 이런저런 궁리를 따라 길이 구불거리고 / 묵묵한 동행은 멀리 언덕을 넘는다 / 소실점 가까이 한 점 된 부부 / 언덕도 힘들지 않다"라는 시의 문장이 삽입되어 있다.
또한 정양 시인의「물 끓이기」에서는 이 시대를 반영하듯 끊어오르는 감정을 표현 을 하는 두 노인의 사진에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다면 끓어올라 넘치더라도 부끄럽지도 쑥스럽지도 않은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은 얼마나 참 얼마나 아름다우랴"라는 구절을 삽입하여 시의 여운을 더했다.
대중적인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중견 시인 안도현 씨가 선택한 시들과 산문 그리고 '골목안 풍경' 사진작가 김기찬의 사진들이 어우러진 이번 시 모음집을 통해 7, 80년대의 아련한 추억과 더불어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만날 수 있다.
『그 풍경을 나는 이제 사랑하려 하네』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마다 12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
<1부_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에서는 삶의 밑바닥에서 발견한 웃음과 희망을 노래한다. 일제시대 비루했던 우리네 삶의 풍경을 노래하면서 아버지의 생일을 챙기려 드는 따스한 아이의 마음이 삶의 핍진함을 더욱 빛나게 하는 김종삼의 시 「掌篇2」, 정호승, 장석남 등의 시들이 게재되어 있다.
<2부_ 가까스로 저녁에서야>에서는 생의 말년 내지는 후반부의 시간들이 치열하면서도 깊이 있는 성찰로 다가온다. 이 세상에서 돌로 버려지면 어쩌나 두려워하면서도 꽃으로 피어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바람이 엿보이는 신경림의 「돌 하나, 꽃 한송이」, 이문재 문태준 시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
<3부_ 마음의 풍경>에서는 우리네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 향토성 짙은 풍경과 마음의 여유를 찾아 주는 아름다운 장면 묘사가 빛을 발하는 시들이 실려 있다. 시골의 넉넉함과 평화로움을 소의 등을 빗대어 표현한 정현종의 「그 굽은 곡선」, 오규원, 함민복, 이나명 시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
<4부_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는 우리가 쉽게 잊어버릴 수 있는 삶의 이면과 여성성에 대해 노래한다. 몸속의 가시처럼 항상 죽음을 내재하고 살아가지만 죽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깊은 경종을 울리는 남진우의 「가시」, 봄을 배가 불러오는 다산의 계절로 표현한 강미정의 「불룩한 봄」, 김언희, 송찬호 시인의 시가 게재되어 있다.
책머리에
1부 그릇의 밑바닥이 가장 맛있다
掌篇·2―김종삼
백석 시집에 관한 추억―서정춘
밥그릇―정호승
부뚜막에 쪼그려 수제비 뜨는
나어린 처녀의 외간 남자가 되어―김사인
파안―고재종
못자리에 들어가는 못물처럼―장석남
수문 양반 왕자지―이대흠
봄날 오후―김선우
墨竹―손택수
찜통―박성우
파행―이진수
살구꽃―문신
2부 가까스로 저녁에서야
돌 하나, 꽃 한 송이―신경림
새떼를 베끼다―위선환
감꽃―김준태
태백산행―정희성
별빛들을 쓰다―오태환
손님―백무산
도장골 이야기-부레옥잠―김신용
밀물―정끝별
부검뿐인 생―이정록
불혹不惑, 혹은 부록附錄―강윤후
가재미―문태준
부부―오창렬
3부 마음의 풍경
그 굽은 곡선―정현종
들찔레와 향기―오규원
이런 詩―최승자
고니 발을 보다―고형렬
고래의 항진―박남철
바람 부는 날이면―황인숙
흰뺨검둥오리―송재학
호랑나비돛배―고진하
뻘에 말뚝 박는 법―함민복
11월―최정례
아, 오월―김영무
왜가리는 왜 몸이 가벼운가―이나명
4부 그대 언제나 내 뒤에서
물 끓이기―정양
환한 걸레―김혜순
가시―남진우
뻐꾸기는 울어야 한다―이문재
만년필―송찬호
트렁크―김언희
빗방울, 빗방울―나희덕
진흙탕에 찍힌 바퀴 자국―이윤학
월식―강연호
불룩한, 봄―강미정
아직 얼마나 오래 그리고 언제―이병률
절편―유홍준
물고기는 제 몸속의 자디잔 가시를 다소곳이 숨기고 오늘도 물 속을 우아하게 유영한다 제 살 속에서 한시도 쉬지 않고 저를 찌르는 날카로운 가시를 짐짓 무시하고 물고기는 오늘도 물 속에서 평안하다 이윽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가 사납게 퍼덕이며 곤곤한 불과 바람의 길을 거쳐 식탁 위에 버려질 때 가시는 비로소 물고기의 온몸을 산산이 찢어 헤치고 눈부신 빛 아래 선연히 자신을 드러낸다
- 남진우, <가시> 중에서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별하고, 그에 대한 감성적이고 섬세한 해설을 덧붙였다. 안도현 시인의 해설은 시의 감동을 느끼는 법과 시에 다가가는 법을 알려준다. 또한 허정은의 일러스트는 환상적이고 절제된 이미지들을 통해 시를 더욱 돋보이게 한 문학집배원 안도현 시인이 들려주는 시 52편을 담은 시집『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나눔사무국의 '문학집배원 시배달'은 1년에 시인 한 명을 문학집배원으로 위촉하고, 매주 시 한 편을 선정해 온라인으로 배달하는 사업이다. 도종환 시인이 발송했던 시들을 묶은 <꽃잎의 말로 편지를 쓴다>에 이어, 이번 두 번째 시집에는 2007년 5월부터 2008년 4월까지 안도현 시인이 발송했던 시들을 묶었다.
안도현 시인은 대가들의 작품과 젊은 시인들의 대표작, 그리고 당대 북한시인의 작품까지 현대 한국시의 지형을 다.
특히, 이번 시집에서는 부록으로 러닝타임 100여 분의 '육성낭송시집 CD'를 함께 제공한다. 시를 쓴 시인들이 35편의 시들을 직접 낭송하여 시의 분위기를 살렸으며, 배경음악에는 14명의 작곡가들이 참여하였다. MP3 형식으로 담아 오디오와 컴퓨터, MP3 플레이어 등으로 감상할 수 있다.
시를 배달하며
일러두기
제1부│사랑말고는 다 고백했으니
참회/김남조
사랑한 일만 빼곤
나머지 모든 일이 내 잘못이라고
진작에 고백했으니
이대로 판결해다오
그 사랑 나를 떠났으니
사랑에게도 분명 잘못하였음이라고
준열히 판결해다오
겨우내 돌 위에서
울음 울 것
세번째 이와 같이 판결해다오
눈물 먹고 잿빛 이끼
청청히 자라거든
내 피도 젊어져
새봄에 다시 참회하리라
김남조·참회
강미정·참 긴 말
송승환·지퍼
박남준·겨울 풍경
홍신선·사람이 사람에게
이문재·도보순례
오탁번·폭설
이병률·별의 각질
유안진·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장석남·목돈
유홍준·백년 정거장
박규리·그 변소간의 비밀
이대흠·동그라미
제2부│ 눈물은 왜 짠가
송종찬·손끝으로 달을 만지다
정끝별·가지가 담을 넘을 때
김경주·눈 내리는 내재율
렴형미·아이를 키우며
함민복·눈물은 왜 짠가
송찬호·찔레꽃
김남극·첫사랑은 곤드레 같은 것이어서
길상호·향기로운 배꼽
김경미·야채사(野菜史)
이면우·소쩍새 울다
백무산·호미
유재영·와온(臥溫)의 저녁
제3부│짝사랑의 흔적들
김규동·산
박성우·물의 베개
김태형·유묵
정양·보리방귀
남진우·모자 이야기
문인수·쉬
박형준·저곳
김기택·자전거 타는 사람
김종길·여울
박제영·늙은 거미
고형렬·달려라, 호랑아
정윤천·어디 숨었냐, 사십마넌
이윤학·꼭지들
제4부│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서정춘·기러기
황동규·훼방동이!
복효근·목련꽃 브라자
황지우·저물면서 빛나는 바다
이정록·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유강희·억새꽃
조정권·같이 살고 싶은 길
신현정·달빛 소나타
장철문·흰 국숫발
허수경·혼자 가는 먼 집
고은·별똥
송수권·겨울 강구항
손세실리아·얼음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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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시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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