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짓기 위해 가시막골로 내려왔다. 밤이 되자 소쩍새가 울기 시작했다. 구름에 가린 달이 산 위로 올라왔다. 고향을 떠난 것은 언제였던가. 나는 왜 먼 시간을 돌아 다시 이곳에 돌아 왔을까.
- 전남진, <어느 시인의 흙집일기>, 중앙 M&B, 2003, p.24
어젯밤, 전남진 시인의 흙집이야기를 읽다 잠들었다.
두 달여 동안 자신의 고향인 경북 칠곡에 열평 남짓한 흙집을 지은 시인은 '딸의 정서교육'과 '고향에 대한 동경' 때문에 고향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막상 짓고 보니 건강까지 얻게 됐다며 기뻐하고 있다. 실제로 '병든 집'에 대한 대안은 환경친화적인 자연 소재로 집을 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시인이 지은 흙집은 대단히 환경친화적인 집이다. 흙과 돌, 나무로만 지은 집이기 때문에 집을 해체하더라도 환경에 해를 끼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시인은 바로 이 점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집을 지었다.
시인은 도시인들이 현실에 밀려 동경만 하고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도시를 과감히 떠나 고향으로 향했다. 12년간의 직장생활을 미련없이 떨치고 떠난 이유는 네 살 박이 딸의 정서교육과 스스로의 고향에 대한 동경 때문. 시인은 이리저리 알아본 결과 자그마한 흙집을 짓는 것이 가장 환경친화적인 집짓기이고 경제적으로도 적당할 것 같아 화순에 있는 흙집연구소에서 한 달 동안 흙집 짓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 흙집을 지었고 경비는 약 500만원이 들어갔다.
시인은 이 책을 통해 그리 큰 기술이 없어도, 한 번도 집을 지어본 경험이 없어도 자연 속에 혼자서 집을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집을 지은 사람이 '책상물림'인 시인인데다 집을 지어본 경험은 당연히 없다. 시인은 비록 자그마한 집이지만 누구나 지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고향과 자연에 대해 그저 동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만 용기를 내면 각박한 도시와 '병든 집'에서 훌쩍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은 이 책만 있다면 실제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공정과정을 사진과 더불어 상세히 수록해 직접 흙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도록 구성했다. 그렇다고 딱딱한 공정과정만 넣은 것이 아니라 집을 지으면서 느꼈던 여러 가지 감정을 시인 특유의 감성에 담아 유려하게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2002년에 '나는 궁금하다'(문학동네 간)라는 시집을 발간했으며 이 책을 포함해 앞으로도 책을 출간할 때마다 '아름다운 재단'에 인세의 1%를 기부하고 있다.
시인은 흙집에서 생활해본 결과 큰딸 다온이의 만성적인 코막힘이 사라졌고 달고 살다시피하던 감기 또한 잘 걸리지 않게 됐다고 한다. 흙집이 바깥 공기와 방안의 공기 순환을 원활히 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며 대단히 만족한 시골생활을 하고 있다.
흙집이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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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별빛을 담아 간 친구 / 익숙한 것들과의 이별 그리고 새로운 만남 / 집을 지으러 떠나다 / 모래를 걷어내고 바닥을 다지다 / 비 온 뒤 땅이 더 굳어진다 / 빗속에서 기초를 쌓다 / 뼈아픈 실수 / 가족의 방문 / 흙을 구하다 / 마음의 강 / 시냇물의 안부 / 문틀을 짜다 / 상상의 집 / 풍경의 재단 / 민속촌을 가다 / 노동의 가치
다온이의 목련
풍경을 옮기다 / 다온이의 목련 / 일요일의 힘 / 결혼기념일 / 우중 산책 / 석양을 보기 위해 낸 쪽창 / 또 다른 나와의 대화/ 마지막 이사 / 아궁이 / 지붕을 만들기 시작하다 / 첫 키스의 추억 / 별체를 모두 쌓다 / 되돌아가는 시간 / 병이 나다 / 가족 사진
바다보리밭
5.18에 관한 단상 / 아카시아 향기에 취하다 / 이별의 방법 / 햄스터와 아내 / 길에서 얻은 흙 / 거미줄 지붕 / 꿀벌의 비애 / 안개 내린 마을 / 공생 / 함석집 할아버지 / 바다보리밭 / 동판을 설치하다 / 모내기 / 구들 예찬 / 구들 놓기 / 고장난 카메라 / 외갓집의 추억 / 건배를 하다 / 마지막 집 / 굴뚝의 미학
집은 집의 무덤이다
밀짚모자와 2만 원 / 다른 이의 밤을 지켜주는 사람 / 벌의 침 / 호남의 아름다움 / 흙을 강하게 하는 방법 / 집이라는 이미지 / 남으로 창을 내다 / 낡아가는 것에 대한 즐거움 / 두 번 올린 지붕 / 흙을 밟는 마음 / 작은 금 메우기 / 중심은 곡요하다 / 과일 장수 원인호 / 지난 연애의 추억 / 돌 예찬 / 대문 없는 마을 / 사랑방의 추억 / 솟대를 찾아서 / 흙으로 빚은 차방 / 집은 집의 무덤이다 /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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