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세상에 가득한 엄마 / 이해인

나뭇잎숨결 2008. 8. 21. 10:02

 

    엄마와 딸 / 이해인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엄마와 헤어질 땐 눈물이 난다 낙엽 타는 노모의 적막한 얼굴과 젖은 목소리를 뒤로 하고 기차를 타면 추수를 끝낸 가을 들판처럼 비어가는 내 마음 순례자인 어머니가 순례자인 딸을 낳은 아프지만 아름다운 세상 늘 함께 살고 싶어도 함께 살 수는 없는 엄마와 딸이 서로를 감싸주며 꿈에서도 하나 되는 미역빛 그리움이여

 

 

“세상 떠나셨어도… 엄마로 가득합니다”
암 투병 이해인 수녀, 사모곡 담은 새 시집 ‘엄마’ 펴내
문화일보 최현미기자 chm@munhwa.com

‘저에게 기쁜 일이 생기면/세상에는/온통 엄마의 미소로 가득합니다//저에게 슬픈 일이 생기면/ 세상에는 온통 엄마의 눈물로 가득합니다//이 세상을 떠나셨어도/ 이 세상은/ 온통 엄마로 가득합니다.’(‘세상에 가득한 엄마’중에서)

최근 암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시인 이해인(63) 수녀가 지난해 세상을 떠난 어머니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담은 시집 ‘엄마’(샘터)를 펴냈다.

시집에는 지난해 9월 눈을 감은 어머니를 향한 소박하면서도 애틋한 사랑을 담은 사모곡 60여 편과 이전에 어머니를 소재로 썼던 동시 20여 편이 묶여 있다.

시인은 당초 어머니 1주기를 맞아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 등을 비매품으로 엮어 가족끼리만 돌려볼 계획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추억할수록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모든 이의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마음을 나누기 위해 시집을 엮어내게 됐다고 한다.

이렇게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자, 세상의 모든 어머니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한 시집에서 시인은 어머니를 절절하게 추억한다. “이 세상에서/나와 가장 친한 한 사람//33년 연상의/언니 같고 친구 같던 엄마”를 기억하고 “길을 가다 엄마 닮은 이가 지나가면/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봅니다’”라며 엄마를 그리워한다.

또 시집 곳곳에는 많은 팬을 거느린 인기 시인도, 수녀도 아닌 그저 엄마의 ‘귀염둥이 작은 딸’인 그의 모습도 만날 수 있다. ‘화려한 선녀’의 꿈이 태몽이었던 둘째 딸, 한껏 멋을 낸 엄마에게 좀 수수하게 차려 입으라며 잔소리를 하던 딸, 엄마가 즐겨 해주던 카레라이스를 좋아하는 딸, 엄마 회갑 때 여덟장의 편지를 써 엄마를 감동하게 한 딸…. 엄마와 함께 살아가고, 이야기하고, 그렇게 삶을 나눈 평범한 딸로서의 시인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한편 그는 이 시집의 원고를 탈고하고, 시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던 지난 7월, 암 선고를 받고 대 수술을 받았다.

요즈음 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회에서 외부인과의 만남은 물론 전화 통화나 e메일 교환도 제한한 채 항암치료에 전념하고 있는 그는 출판사를 통해 “어머니를 보내드리고 아픈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며 “그동안 순탄하게 살아 왔는데 투병의 고통을 통해서 더 넓고 깊게, 모든 이들을 끌어안고 보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제까지 나를 돌볼 겨를 없이 바삐 살아왔으니 이젠 내 안으로 들어가 사막의 체험을 해야겠다. 재충전의 시간도 가질 수 있으니 선물이고 또 기도의 시간이다”며 “올해로 수도 생활 40년을 맞았고, 60대 초반이니 그동안 썼던 글과 했던 말들을 정리해보며 돌아보는 계기도 될 것 같다”고 전해왔다.

“독자들의 관심과 기도에서 힘을 얻어 열심히 투병의 길에 들어서겠다”는 그는 “앞으로 항암치료 등 더 험난한 길이 두렵기는 하지만, ‘엄마’의 주인공처럼 단순하고 지혜로운 원더우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번 시집에는 어머니와 그가 주고받은 편지, 어머니가 딸에게 손수 만들어준 도장집, 꽃골무, 괴불주머니 등 어머니의 유품 사진들도 함께 들어가 있다.

최현미기자ch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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