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화개동에서 햇차를 맛보다

나뭇잎숨결 2007. 11. 18. 09:55

 

화개동에서 햇차를 맛보다/법정스님

 

 

 

走筆謝孟諫議新茶(주필사맹간의신차) -盧 仝- 
맹간의의 햇차에 감사하여 붓을 달리다 -노 동-
日高丈五睡正濃  일고장오수정농 
軍將扣門驚周公  군장구문경주공 
口云諫議送書信  구전간의송서신
白絹斜封三道印  백견사봉삼도인
* 諫議: 諫議大夫. 임금을 간하는 벼슬.
해는 장 오척이나 높이 솟았어도 잠은 마냥 깊은데,
군의 장교가 문을 두드리어 주공의 꿈에서 놀라게 한다.
입으로 이르기를 간의께서 편지를 보내왔다 하니,
흰 비단으로 비스듬히 봉하고 세 개의 도장이 찍히었다.
開緘宛見諫議面  개함완현간의면 
首閱月團三百片  수열월단삼백편 
聞設新年入山裏  문설신년입산리 
蟄蟲驚動春風起  칩충경동춘풍기 
봉함을 여니 간의의 얼굴이 완연히 보이는 듯하고,
달처럼 둥근 삼백 조각의 차를 먼저 보게 되었도다.
늘어 놓은 차에 대해 듣건데 새해에 산 속에 들어가니,
칩거하던 벌레들 놀라 움직이고 봄바람이 일 때라.
天子未嘗陽羨茶  천자수상양선다 
百草不敢先開花  백초불감선개화 
仁風暗結珠蓓蕾  인풍암결주배뢰 
先春抽出黃金芽  선춘추출황금아
* 陽羨: 地名. 현 강소성 의흥.
옛부터 이름난 차의 산지.
천자께서도 일찌기 맛보지 못한 양선차라,
온갖 풀조차 감히 먼저 꽃피우지 못하였어라.
어진 바람이 살며시 구슬 같은 꽃봉우리 맺게 하니,
이른 봄에 황금같은 싹을 뽑아 내었어라.
摘鮮焙芳旋封裹  적선배방선봉과 
至精至好且不奢  지정지호차불사 
至尊之餘合王公  지존지여합왕공 
何事便到山人家  하사변도산인가 
새싹을 따서 향기롭게 구워 곧 바로 봉하여 싸니,
지극한 정성 지극한 미쁨 또한 사치하지 않도다. 
황제께서 쓰신 나머지는 왕공에게나 합당할지니, 
어인 일로 문득 산 속 사람 집에 이르렀는가?
柴門反關無俗客  시문반관무속객 
紗帽籠頭自煎喫  사모농두자전끽 
碧雲引風吹不斷  벽운인풍취부단 
白花浮光凝碗面  백화부광응완면 
사립문 오히려 걸어 놓으니 속세 손님 없어,
깁모자 머리에 두르고 스스로 다려 먹는다네.
푸른 구름같은 차의 김 바람에 끌려 끊임없이 불어오고,
흰 꽃같은 차의 거품 빛을 내며 사발 위에 엉긴다.
一碗喉吻潤  일완후문윤 
二碗破孤悶  이완파고민 
三碗搜枯腸  삼완수고장
惟有文字五千卷  유유문자오천권
* 文字五千卷: 老子 道德經 五千字를 이름.
곧 쓸데없는 지식을 잊게한다는 말.
첫째 사발에 목과 입술이 부드러워지고,
둘째 사발에 외로움과 시름 스러진다.
셋째 사발은 마른 창자를 찾아주니,
오직 문자 오천권이 있을 뿐이로다.
四碗發輕汗  사완발경한 
平生不平事  평생불평사 
盡向毛孔散  진향모공산 
넷째 사발은 가벼운 땀을 나게 하여,
평생에 불평스러웠던 일들을 
모두 털구멍으로 흩어지게 하였노라.
五碗肌骨淸  오완기골청 
六碗通仙靈  육완통선령 
七碗喫不得  칠완끽부득 
也唯覺兩腋  야유각양액
習習淸風生  습습청풍생 
다섯째 사발로 살결과 뼈가 맑아지니,
여섯째 사발에서 신선의 신령스러움과 통하였노라.
일곱째 사발은 채 마시지도 않았건만,
오직 두 겨드랑이에서 느끼노니, 
맑은 바람이 솔솔 일어남을..
* 특히 一碗부터 七碗까지를 "七碗(椀)茶"라 함.
問蓬萊山在何處  문봉래산재하처 
玉川子  옥천자
乘此淸風欲歸去  승차청풍욕귀거 
山上群仙司下土  산상군선사하토 
地位淸高隔風雨  지위청고격풍우 
봉래산이 어느 곳에 있는가 물어,
나 옥천자는 
이 맑은 바람 타고 돌아가고 싶구나.
봉래산 위의 신선들 아래 땅을 다스린다지만,
자리가 맑고도 높아 비바람과 떨어져 있으니,
安得知百萬億蒼生  안득지백만억창생 
命墮顚崖受辛苦  명타전애수신고 
便從諫議問蒼生  변종간의문창생 
到頭合得蘇息否  도두합득소식부 
어찌 알 수 있으리오? 백만 억 창생들이..
운명이 벼랑에서 떨어져 고통받고 있는 줄을..
바로 간의에게 창생들에 대하여 물어본다면,
마침내 소생했는지 아닌지 바로 알 수 있는 것을..
* 到頭: 到底. 1. 마침내. 필경. 결국. 2. 끝까지. 徹底.
/盧 仝
唐나라 사람. 호 玉川子. 집이 가난하나 독서를 즐겼고,
처음부터 少室山에 은거하며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玉川은 一名 玉泉으로 하남성에 있는 우물 이름이다.
노동은 차를 즐겼는데 이 샘물을 길어 차를 다려 마시고 
스스로 호를 옥천자라 하였다. 
이 시는 一名 茶歌라고도 한다.

 

 

내가 기대고 있는 이 산골은 일년 사계절 중에서 봄철이 가장 메마르고 삭막하다. 2월에서 5월에 이르기까지 산골짝에 내려 꽂히면서 회오리를 일으키는 영동 산간지방 특유의 바람 때문에 부드러운 봄기운을 느낄 수가 없다. 이 고장 사람들의 무표정하고 건조한 때로는 무지막지한 인심이 이런 바람에 연유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로 남녘에서 살아온 나는, 해안선을 따라 올라오는 바닷바람에 섞인 봄기운과 산자락을 굽이굽이 휘감고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익숙하다. 그러기 때문에 산골짝을 훑으며 휘젓는 거친 회오리는 낯설기만 하다. 3,4월은 오두막을 자주 비우고 남쪽으로 떠도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엊그제는 지리산 자락에 있는 다원(茶園)을 여기저기 어슬렁거렸다. 곡우절을 전후한 요즘이 한창 첫물 차를 딸 때다. 우리 나라에서 맨 처음으로 차나무를 심고 가꾸어 온 연고지답게, 쌍계사가 있는 화개동 일대에는 근래 많은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40여 년 전 내가 이 골짝에서 살 때는 야생 차나무 외에 다원은 따로 없었다. 그 무렵에는 절에서 차를 마시는 스님들도 아주 드물었다.

요즘에 견주어보면 말 그대로 금석지감(今昔之感)이 든다. 경사진 차밭에서 삼삼 오오 아주머니들이 흰수건을 쓰고 차를 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 어떤 일보다도 보기 좋은 풍경이다. 차를 따는 그 모습이 결코 노동으로 보이지 않는다. 저만치서 바라보면 다른 세상 사람들이 차밭에 내려와 진양조 가락에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 같다.

야생차라고 해서 다 좋을 수는 없다. 차나무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생육에 따른 알맞은 토양과 기상이 받쳐주어야 제대로 된 맛과 향기와 빛을 지닐 수 있다. 세계적으로 이름난 차의 산지에 가서 보면 기온차가 심한 고지에서 생산된 차를 으뜸으로 친다.

동인도 다질링에서는 표고 9백에서 2천4백미터의 고지에서 차를 수확한다. 해발 8천6백 미터의 칸첸중가 히말라야, 장엄한 설산을 배경으로 차를 따고 있는 모습은 이 세상 풍경 같지 않다. 나는 몇 해 전 그곳을 여행하면서 차 따는 풍경을 하루 종일 바라보았다. 설산 앞에서 안복(眼福)을 누리던 그때의 기억이 지금도 풋풋하게 간직되어 있다.

그곳에서는 주로 홍차를 만드는데, 차의 수확기간이 1년 중 약 2백일이다. 이 가운데서 가장 뛰어난 고급차는 봄 여름 가을 중에서도 각기 10일 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에 채취된 어린 잎으로 만든다.

뉴델리의 네타지 수바쉬 거리에 있는 '압 키 파산드(Aap Ki Pasand)'는 세계적으로 이름난 고급 홍차 판매점이다. 이 가게에 있는 차 감정인은 와인의 세계에서 말하는 와인 테이스터와 비교할 만하다. 이 가게에서는 고급 홍차만을 선별해 놓았는데 그 종류와 브랜드가 아주 다양해서 20여 종이나 된다.

가게 주인이 가장 향기로운 차로 권한 '스프링 버드(Spring Bird)'는 그 맛과 향기에 눈이 번쩍 띄었다. 아하, 이게 바로 히말라야의 맛이요, 향기로구나 싶었다. 내 생애 중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좋은 홍차였다.

이런 차는 아무 것도 가미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마셔야 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마시는 향기로운 녹차에 가까운 맛이다. 뉴델리에 가면 이 가게만은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그런 찻집이다.

10년 전 처음으로 인도 대륙에 발을 딛고 두어달 남짓 나그네 길에서 지칠대로 지친 끝에 인도양의 진주라고 하는, 혹은 눈물방울이라고도 하는 스리랑카에 갔었다. 실론티의 산지로 유명한 '누아라 에리아'는 해발 1천5백 고지에 있다. 경사진 차밭은 잘 가꾸어진 정원처럼 아름답다. 산중턱은 거의 차밭으로 가꾸어졌는데 정상으로 올라가니 구비구비마다 검은 피부색을 한 여인들이 무리 지어 차바구니를 메고 차를 따고 있었다. 그때 처음 본 풍경이라 두고두고 인상적이었다.

그때 한 제다공장에 들렀는데, 때마침 차잎을 말리는 그 구수한 차향기가 어찌나 좋던지, 인도 평원에서 지칠대로 지친 심신에 생기가 돌았다. 긴 항해로 멀미를 하다가 육지에 닿아 흙향기를 맡았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화개동에는 차밭만이 아니라 차와 다기를 파는 가게가 줄줄이 이어져 있다. 차 고장다운 풍물이 아닐 수 없다. 몇 군데 기웃거리면서 햇차 맛도 보고 다기 구경도 했는데, 대부분 차를 건성으로 마시는 것 같았다. 아무리 좋은 차일지라도 다루는 그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차가 그 맛을 제대로 낼 수 없다. 모처럼 마시는 귀한 햇차인데 그 맛은 한결같이 맹탕이었다.

차의 덕이 맑고 고요함(淸寂)에 있다면 차를 다루는 사람 또한 그런 기품을 지녀야 차맛을 제대로 낼 수 있을 것이다.

차를 마시려면 거기에 소용되는 그릇이 필요하다. 가게마다 다기들로 가득가득 쌓여 있지만 눈에 띄는 그릇을 만나지 못했다. 대부분 차를 모르는 사람들의 손으로 빚어진 그릇들이기 때문이다.

차를 마시기 위해 그릇이 있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 그릇의 아름다움이 차를 마시도록 이끌기도 한다. 그릇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마음에 맑음과 고요를 구하는 것과 같다.

차를 건성으로 마시지 말라. 차밭에서 한 잎 한 잎 따서 정성을 다해 만든 그 공을 생각하면서 마셔야 한다. 그래야 한 잔의 차를 통해 우리 산천이 지닌 그 맛과 향기와 빛깔도 함께 음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