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그림은 다 그리셨어요?"
제일로 궁금하던 것을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디 있어요? 좀 봐도 될까요?"
무릎에 앉았던 막내가 벌떡 일어나더니 웃방으로 난 장지를 열었다. 나는 그제야 오늘 부인이 애들을 웃방으로 보내지 않은 이유를 알았다. 전등이 없는지, 있는데도 안 켰는지 웃방은 어둑한데 80호 정도의 캔버스가 벽에 기대어 놓여 있고 넓지 않은 방바닥은 온통 빈틈없이 어지러져 있었다. 테레빈유의 냄새가 확 끼쳤다.
나는 캔버스 위에서 하나의 나무를 보았다. 선뜻한 느낌이었다.
거의 무채색의 불투명한 부우연 화면에 꽃도 잎도 열매도 없는 참단한 모습의 고목(枯木)이 서 있었다. 그뿐이었다.
화면 전체가 흑백의 농담으로 마치 모자이크처럼 오톨도톨한 질감을 주는 게 이채로울 뿐 하늘도 땅도 없는 부우연 혼돈 속에 고목이 괴물처럼 부유(浮遊)하고 있었다.
한발(旱魃)에 고사한 나무―그렇다면 잔인한 태양의 광선이라도 있어야 할 게 아닌가? 태양이 없는 한발―만일 그런 게 있다면, 짙은 안개 속의 한 발……무채색의 오톨도톨한 화면이 마치 짙은 안개 같았다.
왜 그런 잔인한 한발이 고사시킨 고목을 나는 그의 캔버스에서 보았을까?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꼬마는 잽싸게 장지문을 닫아 버렸다.
향긋한 생강차가 식어가는데 나는 마실 구미를 잃었다.
나는 그림에 대한 전문적인 감상안이 전연 없는 채 그림을 단순하게 사랑하고 즐겨 왔었다. 국민 학교 교실 벽에 장식한 그림에서부터 화랑에 전시된 유명 무명 화가의 그림들, 또 인쇄 잘된 화첩의 대가의 그림들을 사랑했다.
나는 그런 그림들에서 어떤 언어를 시각했다기보다는 그냥 그 빛과 빛깔을 즐겼었다. 삶의 기쁨이 여러 형태의 풍성한 빛으로 나타난 그림들을 사랑했다. 이렇게 나의 그림에 대한 눈은 오색 풍선을 동경하는 아이들처럼, 포목점 앞에서 아름다운 천을 선망하는 여인처럼 소박하고 단순했다.
내 이런 소박한 감상안은 그의 그림에 적지아니 당혹하고 있었다.
(중략)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裸木)을 보았다.
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 놓고 빨려들 듯이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달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毅然)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 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또한 내가 그 나목 곁을 잠깐 스쳐간 여인이었을 뿐임을, 부질없이 피곤한 심신을 달랠 녹음을 기대하며 그 옆을 서성댄 철없는 여인이었을 뿐임을 깨닫는다.
'나무와 두 여인'……그 그림은 벌써 한 외국인의 소장으로 돼 있었다.
나는 S회관을 나와 잠깐 망연했다. 오랜 여행 끝에 낯선 역에 내린 듯한 피곤인지 절망인지 모를 망연함, 그런 망연함에서 남편이 나를 구했다.
"어디서 차라도 한 잔 하고 쉬었다 갈까?"
"저기가 어때요?"
나는 턱으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덕수궁을 가리켰다.
덕수궁 속의 은행의 낙엽은 한층 더 찬란했다.
우리는 은행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황금빛 세례에 몸을 맡겼다.
아이들이 뛰고, 연인들이 거닐고, 퇴색한 잔디에 쏟아지는 가을의 양광은 차라리 봄보다 따습다.
"아이들을 데려올걸."
남편이 다시 나를 상식적인 세계로 끌어들인다.
빨간 풍선을 놓친 계집아이가 자지러지게 운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로 빠져들 듯이 풍선이 멀어져 간다.
드디어 빨간 점을 놓치고 만 나는 눈물이 솟도록 하늘의 푸르름이 눈부시다.
옆에 앉은 남편도 풍선을 좇았던가 고개를 젖힌 채 눈이 함빡 하늘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뿐, 이미 그의 눈엔 십 년 전의 앳된 갈망은 없다. 그뿐이랴. 여자를 소유하고 가정을 갖고 싶다는 세속적인 소망 외에는 한번도 야망이나 고뇌가 깃들어 보지 않은 눈. 부수수한 머리가 늘어진 이마에 어느새 굵은 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한 중년의 그가 나는 또다시 낯설다.
저만치서 고등 학생들이 배드민턴을 친다. 콕이 나비처럼 경쾌하게 날아와 라켓에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젊은 연인들의 찰나적인 키스의 파열음처럼 감각적으로 들린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이마의 주름진 곳에 그런 키스를 퍼부었다.
그가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가 아주 타인처럼 낯선 게 견딜 수 없어서였다.
나무들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우수수 바람이 온다.
이미 낙엽을 끝낸 분수가의 어린 나무들이 벌거숭이 몸을 애처롭게 떨며 서로의 가지를 비빈다.
그러나 그뿐, 어린 나무들은 서로의 거리를 조금도 좁히지 못한 채 바람이 간 후에도 마냥 떨고 있었다.
- 박완서, <나목>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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