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베르그손 철학의 문헌학적 접근*

나뭇잎숨결 2024. 2. 11. 11:26

베르그손 철학의 문헌학적 접근*
― 새 문헌의 발간과 그 의의 ―



류 지 석**성대 철학



요약문
이 논문의 목적은 최근에 발간된 베르그손의 새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이 문헌들이 베르그손 철학의 연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이러한 문헌학적 접근 방식이 새삼스럽게 문제가 되는 것은 베르그손이 유언장에서 편지글, 논문이나 강연 원고, 강의록 등을 포함한 자신이 발표하지 않은 모든 글들의 출판을 엄격하게 금지 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베르그손의 유언이 완전히 지켜지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프랑스에서 발표된 미간행 텍스트들은 대부분 후손의 허락을 얻어서 출판됨으로서 그의 유지가 지켜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프랑스 이외의 지역에서는 사정이 달랐으며 10여 년 전부터는 많은 미간행 텍스트들과 네 권의 󰡔강의록(Cours)󰡕이 출판되면서 베르그손의 금지조항은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
먼저 편지글들과 인터뷰는 1972년에 발간된 󰡔글모음집(Mélanges)󰡕에 누락된 글들로서 베르그손이 프랑스와 외국의 지인, 철학자들과 교환한 서신들과 몇몇 신문이나 잡지에 발표된 인터뷰이다. 이 글들은 양도 엄청나지만 그 내용도 다양하여 모두 소개할 수 없으므로 베르그손의 삶과 철학을 조명하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글들 중 몇 가지만을 언급할 것이다.
베르그손 강의록의 출판은 1988년에 필립 술레가 고등사범학교에서의 피히테에 관한 강의 노트를 출판하면서 시작되었고 앙리 위드와 장 루이 뒤마에 의해 1990년부터 2000년까지 총 네 권이 발간된 강의록이 대표적이다. 이 강의록은 베르그손이 끌레르몽 페랑과 빠리의 고등학교와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 행했던 형이상학, 심리학, 철학사 등 다양한 내용의 강의들을 자세한 주석들과 함께 싣고 있다. 위드는 강의록을 바탕으로 베르그손 철학의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새 문헌의 발견이 바로 베르그손 사상에 대한 새로운 해석 가능성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닐지라도 이 텍스트들이 그의 삶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직접적 도움을 준다는 점은 분명하다. 따라서 새 문헌과 기존 텍스트들의 상호 보완적 이용이 베르그손 철학 이해의 첩경이며 바로 이점에서 문헌학적 접근 방법의 의미도 극대화 될 수 있을 것이다.

※ 주요어 : 베르그손, 문헌학적 접근, 새 텍스트, 편지글, 강의록


I. 들어가는 말

모든 철학자들에 관한 연구는 그들의 텍스트에 대한 문헌 작업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베르그손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후설의 경우 그가 남긴 방대한 양의 수고들이 아직까지도 계속 발간되고 있는데 비한다면 베르그손에 대한 일차적 문헌 작업은 큰 어려움 없이 이루어져 왔다. 그 이유는 베르그손의 주요 텍스트들은 두 권의 전집, 즉 1959년에 탄생 100주년 기념으로 출판된󰡔저작집(Oeuvres. Edition du centenaire)󰡕과 1972년에 발간된 󰡔글모음집(Mélanges)󰡕에 연대별로 정리되어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손은 유언장에서 자신이 대중에 발표하려 했던 글들은 모두 출판하였음을 밝히며 발표되지 않은 논문, 강의록, 편지글 등 자신의 모든 미간행 텍스트의 출판을 엄격히 금지시켰을 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제자들에게 이 금지 조항이 반드시 지켜지도록 감독할 것을 특별히 당부하고 있다. 그러나 베르그손의 사후에 유족의 허락을 받고 발표되지 않았던 글들이 조금씩 출판되기 시작하였다. 평소 베르그손의 가족과 가까이 지내던 제자들이 서간문을 발표하고자 요청했을 때 유족들은 그 내용이 고인의 사상이나 인격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요청을 뿌리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한 번 이런 선례가 생기자 그 다음부터는 제한적이었지만 비교적 수월하게 베르그손의 글들이 발표될 수 있었다. 그리고 프랑스 이외의 국가에서는 철학자의 후손과 아무런 상의도 없이 출판된 글들이 상당 수 있었으므로 프랑스의 국경 밖에서는 베르그손 유언장의 금지조항은 사실상 그 효력을 상실하였다고 봐야할 것이다.
강의록의 경우는 베르그손의 뜻이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었다. 그러나 필립 술레(Philippe Soulez)가 1988년에 후손의 허락을 얻어 피히테에 관한 강의록을 출판했을 때 베르그손의 금지 조항은 그 최후의 저지선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술레는 같은 해 출판된 베르그손의 정치 사상에 관한 국가박사 학위논문에서 유럽과 미국의 도서관과 문서 보관소에서 찾아낸 방대한 양의 미간행 문헌 자료들을 이용하고 있다. 그 후론 모든 형태의 미간행 텍스트의 출판을 막을 명분이 사실상 없어졌고 이에 따른 당연한 귀결로 베르그손 강의록의 본격적 출판이 추진되었다. 베르그손 후손의 허락을 얻고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철학사가이며 베르그손 철학의 탁월한 해석자인 앙리 구이에(Henri Gouhier)의 후원으로 앙리 위드(Henri Hude)에 의해 최근 완간된 󰡔강의록(Cours)󰡕은 베르그손 연구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다.
다양한 베르그손의 편지글들이 발표되면서 시작된 미간행 텍스트의 발굴과 출판은 90년대부터 다시 활발해진 베르그손 연구 성과와 더불어 “베르그손 르네상스”의 한 축을 이루고있다. 본 논문에서는 전집에 누락된 글들을 중심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베르그손의 텍스트를 소개하고 강의록의 출판으로 촉발된 새로운 텍스트에 대한 관심과 이 텍스트들에 근거한 문헌학적 접근 방식이 베르그손 철학의 해석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II. 베르그손의 새 문헌

1. 편지글과 인터뷰

베르그손은 생전에 엄청난 양의 서간문을 남겼다. 주위의 가까운 친구나 지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도 서신을 교환하고 있다. 그가 철학자로서 명성을 얻게되자 프랑스 뿐 만 아니라 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편지와 책 또는 논문들이 배달되었다. 베르그손은 자신의 사정이 허락하는 한 이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하려했고 그 이유를 자신에게 편지를 쓰는 수고를 한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베르그손은 말년에 악성 류머티즘으로 인해 글쓰기에 극심한 불편을 느낄 때도 가능한 한 자필로 답장하려 했으며 이는 베르그손 성격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이러한 편지글들은 베르그손의 저서나 논문 등과 비교하면 이차적인 텍스트일 수 밖 에 없다. 그러나 편지글이 베르그손을 연구하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글들이라고 간단히 판단해버릴 수 는 없다. 예를 들어 수많은 연구서에 인용되고있는 회프딩(Harald Høffding)이나 칼렌(Horace M. Kallen)에게 보낸 편지가 베르그손 철학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함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편지글들은 우선 철학자의 삶과 행적에 관한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한다. 편지글을 통하여 베르그손이 프랑스나 외국의 누구와 교류했으며 그들이 어떤 관계를 유지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또한 많은 경우 베르그손은 지인들이 보낸 책을 읽고 답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있어서 어떤 책들이 베르그손의 저술에 도움을 주었는지도 알 수 있다. 이러한 편지글에서 체계적인 이론을 발견한다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의 저서나 사상에 대한 설명 또는 어떤 철학적 주제에 대한 입장 표명은 베르그손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며 어떤 글들은 기존의 어떤 텍스트보다도 더 명료하게 자신의 철학이나 저술의 배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므로 편지글들은 연구자들에게 철학자에 대한 기초적 사료로서의 가치 뿐 만 아니라 철학적으로도 유용한 텍스트임이 분명하다.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편지글들은 베르그손이 쓴 편지의 양과 비교하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본 논문의 참고문헌의 목록에서 보듯이 󰡔글모음집󰡕의 편집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하여 전집에 누락된 편지글들도 상당 수 있지만 80년대 중반부터 새로운 편지글들이 다양한 형태로 발표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편지글들은 발표된 시기를 기준으로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부류는 베르그손의 생시에 그의 허락을 얻어 발표되었으나 전집에 누락된 글들이다. 두 번째는 베르그손의 사후에 그리고 󰡔글모음집󰡕의 발간 이전까지 발표되었으나 편집자들이 미처 찾아 내지 못했던 글들이다. 마지막으로 1972년 󰡔글모음집󰡕의 발간 이후에 발표 된 글들로 당연히 전집에는 실리지 않은 글들이며 그 수로도 가장 많다.
󰡔글모음집󰡕에 누락된 편지글들 중 먼저 주목할 만한 것은 1922년 발표된 <철학자는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가?>라는 글이다. 이 글은 󰡔신세계(Monde nouveau)󰡕지가 연재하고 있던 기획물로서 철학자의 언어사용에 대한 일련의 질문에 베르그손이 장문의 편지 형식으로 답한 글이다. 베르그손은 철학자들이 세부적인 문제에 관해서는 많은 경우 전문 용어를 사용해왔지만 데까르뜨와 말브랑슈의 예에서 보듯이 프랑스의 철학적 전통이 일상 용어를 사용하여 철학을 해왔음을 강조한다. 또한 철학자들이 동일한 용어에 서로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서 일어나는 혼돈을 예로 들며 철학 용어의 통일 내지 정의 문제에 대하여 제기한 질문에는 “이성(raison)” 과 “∼주의(-isme)”와 같은 용어의 예를 들면서 모든 사상은 그 사상 나름의 배경이 있으므로 한 철학자가 쓰는 용어는 항상 그 철학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파악할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혼돈을 피한다는 목적으로 매번 새로운 전문 용어를 만들 수도 없으며 또한 그것이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국 한 사상의 명료성은 전문 용어들의 창조와 사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용어를 사용하는 철학자의 사유의 명료성에 달려있다. 베르그손은 프랑스 철학회가 20 여 년 전부터 준비해온 철학용어사전의 예를 들며 이 사전이 철학 용어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철학자의 작품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고 결론을 맺고있다.
또 다른 글은 1932년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의 출판 후 베르그손이 빠리 카톨릭대학의 교수를 지낸 에띠엔 마녱(Etienne Magnin) 신부와 가진 인터뷰이다. 이 글은 인터뷰이니 만큼 베르그손이 직접 쓴 텍스트가 아니다. 그러나 이 대화록이 󰡔카톨릭 생활(Vie catholique)󰡕지에 발표되기 전에 베르그손이 그 내용을 살펴본 만큼 사료로의 가치가 충분하다. 이 대화는 정적종교나 신비주의와 같은 󰡔두 원천󰡕과 직접 관련 있는 주제 뿐 아니라 자신의 철학의 형성 과정과 방법론에 대하여서도 설명한다.
󰡔글모음집󰡕의 출판 이전에 발표되었으나 전집에 누락 된 글들 중 살펴 볼 문헌은 베르그손이 카이절링(Keyserling) 백작과 프레졸리니(Prezzolini)에 보낸 편지이다. 카이절링은 잘 알려진 철학자는 아니지만 쇼펜하우어, 니체, 베르그손 그리고 인도 사상 등의 영향을 받았고 이성과 과학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생의 개념과 직관을 강조하였다. 두 사람의 관계는 카이절링이 1906년 자신의 책을 베르그손에게 보내면서 시작되었고 베르그손은 감사의 말과 더불어 카이절링의 사상에 호의적인 답장을 한다. 카이절링은 계속해서 자신의 저서나 논문을 베르그손에 보내고 베르그손은 카이절링의 관점에 공감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카이절링은 1907년 뮌헨의 “알게마이네 자이퉁(Allge- meine Zeitung)”지에 베르그손에 관해 매우 호의적인 글을 쓰기도 했다. 두 철학자는 1910년 빠리에서 처음 대면하여 다양한 철학적 문제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고 카이절링이 베르그손에게 철학사 연구를 위한 조언을 구할 만큼 두 사람의 관계는 가까워진다. 베르그손도 자신의 편지에서 여러 번 카이절링의 사상에 공감을 표시하고 있다. 1911년 볼로뉴에서 열린 국제철학대회에 두 사람은 함께 참석하였고 카이절링은 베르그손과 독일의 생기론 철학자인 한스 드리쉬(Hans Driesch)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베르그손은 카이절링의 발표 논문이 󰡔도덕과 형이상학지(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에 실릴 수 있도록 주선한다. 1913년 베르그손이 런던에서 심리연구회(Society for psychological research)의 회장으로 취임하고 이를 기념하여 <살아있는 것의 환영(Fantômes de vivants)>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했을 때도 축하하기 위하여 직접 참석하였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당시의 많은 프랑스와 독일의 지식인들 사이에 볼 수 있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전쟁 이데올로기의 선전이 난무하는 가운데 급속히 냉각되었고 두 사람의 접촉은 끊어지고 만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카이절링이 1932년 다시 베르그손에게 자신의 저서를 보내면서 두 사람간의 서신 교환이 다시 이루어지지만 예전의 관계로 돌아가지는 못했다. 베르그손의 편지글은 두 철학자의 인간적 관계를 잘 드러내 주지만 그들 사이의 직접적인 사상적 영향을 알아내기엔 한계가 있다. 일반적으로 카이절링의 철학은 베르그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되고 베르그손, 딜타이, 셸러, 카이절링을 함께 묶어 생철학의 범주로 분류하기도 한다. 반면에 베르그손에 대한 카이절링의 직접적 영향은 미미한 것처럼 보인다. 만일 있다고 한다면 인도 사상에 심취했던 카이절링의 글이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준비하던 베르그손에게 약간의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었을 것이다.
베르그손의 또 다른 편지글은 20세기 전반기에 이탈리아 전위 문학의 중심이 되었던 문예지를 발간하며 당시의 문화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지오반니 빠삐니(Giovanni Papini)의 친구이며 󰡔레오나르도(Leonardo)󰡕지와 󰡔라 보체(La Voce)󰡕지를 함께 이끌어 갔던 프레졸리니에게 보낸 것이다. 빠삐니와 프레졸리니는 1902년 빠리에 함께 머물 때 베르그손의 철학을 발견하게되고 그들은 이탈리아에서 베르그손 사상 전파의 교두보 역할을 한다. 사실 베르그손은 프레졸리니보다는 빠삐니와 더 친밀한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와 주고받았던 서신은 아주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프레졸리니에게 보낸 두 편의 편지는 프레졸리니가 1960년에 출판한 󰡔라 보체의 시대(Il tempo della Voce)󰡕라는 에세이집에 수록되어 있다. 1909년 7월 12일자의 편지는 프레졸리니가 발표한 베르그손에 관한 논문을 읽고 필자의 해석에 대한 반론을 펴는 글이다. 베르그손은 프레졸리니가 언어의 역할과 직관 개념등 자신의 철학에 대한 해석의 잘못을 지적한다. 베르그손에 따르면 자신의 저서에 나타나는 여러 주제들을 서로 분리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의 발전 과정이 갖는 유기체적 성격에 주목할 것을 당부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도달한 결론은 미리 예측 할 수 있는 정해진 길을 따라서 발전한 것이 아니며 실증적 사실에 끊임없이 조회하며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하는 과정은 바로 창조적 진화의 과정과도 같다고 이야기한다. 또한 언어의 역할에 관해서는 근본적으로 사회적이고 실용적인 언어의 역할을 단지 그 고유한 기능인 어떤 생각을 표현하는(exprimer) 것에만 머무르게 할 것이 아니라 어떤 생각을 암시 내지 불러일으키는(suggérer)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런 방식은 우리가 역동적 인식 능력인 직관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베르그손은 자기 철학의 실증적 방법의 중요성과 특징에 대하여서도 언급하고 있다.
이제 󰡔글모음집󰡕의 출판 후에 발표된 편지글을 살펴보자. 가장 주목할 만 한 것은 렌조 라지안띠(Renzo Ragghianti)에 의해 1993년 나폴리에서 단행본의 형태로 출간된 󰡔크사비에 레옹과 다른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Lettere a Xavier Léon e ad altri󰡕일 것이다. 이 책에는 레옹, 들라크루아(Henri Dela- croix), 메이에르송(Emile Meyerson) 루스탕(Désiré Roustan) 등에게 보낸 120편이 넘는 베르그손의 편지글들이 편집자의 분석과 함께 수록되어 있다. 특히 피히테(Fichte)의 뛰어난 연구자이자 󰡔도덕과 형이상학지(Revue de Métaphysique et de Morale)󰡕의 창간 주역이자 초대 편집장이었던 레옹에게 보낸 90 여 편의 편지글은 30년도 넘는 기간 동안의 두 사람 사이의 인간 관계 뿐만 아니라 베르그손이 당시의 철학계에서 가졌던 위상과 역할 그리고 자신의 철학적 작업에 대한 흥미로운 정보들을 알려주고 있다,
레옹은 1894년 친구인 엘리 알레비(Elie Halévy)와 함께 새 철학지를 창간했다. 새 철학지라 함은 당시의 철학계에는 떼오뒬 리보(Théodule Ribot)에 의해 1879년에 창간된 󰡔프랑스와 외국의 철학지(Revue philosophique de la France et de l'étranger)󰡕가 이미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철학관련 학술지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이 두 철학지는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리보 측과 자신의 입지를 확장하려는 레옹 측의 공세로 인하여 피할 수 없이 경쟁 상태로 돌입한다. 따라서 양측은 뛰어난 필자를 구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그 경쟁의 중심부에 베르그손이 놓여있었다. 따라서 레옹과 베르그손의 관계는 우선 원고 청탁으로부터 시작이 된다. 새 철학지에 대해 베르그손은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지만 베르그손의 원고는 좀처럼 나오지 않고 1896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베르그손의 글이 레옹의 철학지에 실리게 된다. 그러나 베르그손은 경쟁 상태에 있는 󰡔도덕과 형이상학지󰡕에만 원고를 주어서 자신과 오랜 친분을 맺어온 리보를 실망시킬 수 없었기에 그의 철학지에도 󰡔물질과 기억󰡕의 일부를 논문의 형태로 발표한다. 이처럼 초기에는 두 사람의 관계는 비교적 사무적이었으며 레옹은 오랫동안 베르그손이 리보의 학술지를 편애한다고 생각했다. 레옹은 계속 베르그손의 글을 자신의 학술지에 실으려 애썼으며 그는 베르그손에 관한 연구 논문에 대해서도 리보의 잡지 보다 더욱 많은 자리를 할애했다. 그러나 결과는 많은 경우 리보에게 판정패 당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레옹은 특유의 친화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학술지를 이끌어 나가며 철학계에서 자리를 잡았고 자신의 활동영역을 넓혀나갔다. 그는 학술지 발간 뿐 만 아니라 최초로 국제 철학대회(Congrès international de philosophie)를 주관하고 첫 대회를 1900년 빠리에서 열었다. 베르그손은 준비위원회의 고문으로서 레옹에게 협조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고 “철학 일반과 형이상학” 분과의 좌장을 맡았으며 자신도 <인과율에 대한 믿음의 심리학적 기원에 관한 소고(Note sur les origines psychologiques de notre croyance à la loi de causalité)>를 발표하였다. 이 대회에는 짐멜, 후설, 화이트헤드, 로이스, 회프딩 등과 같은 철학자들뿐만 아니라 칸토르, 데데킨트와 같은 수학자들도 참석하여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국제 철학대회의 제2회 대회는 쥬네브에서 제3회 대회는 하이델베르그에서 그리고 제4회 대회는 볼로냐에서 개최되었고 베르그손은 매번 협조를 아끼지 않았다. 런던에서 열리기로 했던 제5회 대회는 전쟁으로 인하여 취소되었고 1920년 옥스퍼드에서는 베르그손의 절친한 친구였던 카(Herbert Wildon Carr)의 주도로 프랑스, 영국, 미국의 철학자들만 모여서 작은 규모의 학술대회를 연다. 베르그손은 후에 <가능적인 것과 실재적인 것>의 바탕이 되는 <예측과 새로움>이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했다. 다음해에 빠리에서는 레옹의 주도로 프랑스, 영국, 미국, 벨기에, 이탈리아 철학자들이 모여 다시 학술 대회를 연다. 이 두 번의 학술 대회는 일차세계대전이 남긴 상처 때문에 독일 철학자들을 배제한 채 이루어졌고 영국과 미국에 폭넓은 인맥을 가지고 있던 베르그손의 역할이 돋보였다.
베르그손과 레옹 사이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들어준 또 다른 계기는 국제철학대회에 이은 프랑스 철학회(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의 결성이다. 국제철학대회의 성공에 고무된 레옹은 프랑스 내에서도 철학자들의 구심점이 필요함을 느끼고 철학회의 결성을 준비하여 1901년 2월 소르본대학교에서 프랑스 철학회의 창립 총회를 개최한다. 철학회는 수시로 발표회를 개최하여 회원들의 연구의 발표와 토론의 장을 마련하였고 그 내용은 󰡔프랑스 철학회지(Bulletin de la Société française de philosophie)󰡕를 통하여 출판되었다. 베르그손은 1901년 5월에 이 학회에서 <정신물리학적 병행론과 실증적 형이상학(Le parallélisme psychophysique et la métaphysique posi- tive)>이란 제목으로 발표를 한다. 이 발표는 1903년에 발표된 <형이상학 입문(Introduction à la métaphysique)>과 함께 󰡔물질과 기억(1896)󰡕과 󰡔창조적 진화(1907)󰡕를 연결시켜 주는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베르그손이 공개된 장소에서 자신의 철학에 대하여 토론하고 더구나 그 토론 내용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남겨진 경우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이 발표문의 중요성은 배가된다. 첫 2-3년 동안 베르그손은 발표회와 1902년부터 시작된 철학용어사전의 편찬을 위한 모임에 자주 참석하여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였다. 그 후론 조금씩 베르그손의 참석 횟수가 줄었으나 철학회와 관련된 주요 사항이 있을 때마다 레옹은 베르그손에게 상의를 하거나 그의 자문을 구하고 있다. 사무적인 목적에서 시작되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상호 신뢰와 우정의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가족간에도 서로 친밀한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의 프랑스 철학계의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의 역할을 하는 두 중요한 철학지의 편집을 담당했던 레옹으로서는 베르그손의 후원과 조언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대중적 인기와 국제적 명성을 얻긴 했으나 꼴레쥬 드 프랑스의 교수로서 항상 소르본을 중심으로 한 주류 철학자들의 견제를 받았던 베르그손으로서는 당시의 철학계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했던 레옹과의 관계를 통하여 철학계 내에서의 자신의 영향력을 증가시킬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지금까지 간단히 살펴본 편지글 외에도 꼴레쥬 드 프랑스의 종교사 교수였던 알프레드 루아지(Alfred Loisy)에게 보낸 편지글은 󰡔도덕과 종교의 두 원천󰡕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며 조르쥬 소렐(George Sorel)에게 보낸 편지들도󰡔창조적 진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2. 강의록

강의록의 발간은 필립 술레가 1989년 데지레 루스땅(Désiré Roustan)의 노트를 바탕으로 베르그손이 피히테의 󰡔인간의 사명(Die Bestimmung des Menschen)󰡕을 텍스트로 했던 1898년 고등사범학교에서의 강의를 출판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프랑스의 철학계에서 지배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던 독일 철학보다는 영미의 철학적 전통에 훨씬 많은 관심을 보였던 베르그손이 피히테의 책을 강의 교재로 삼았다는 사실은 이례적이다. 레옹에 보낸 편지에서 “고등사범학교의 제자들을 위하여 피히테를 연구했다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봐서 베르그손은 학교의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피히테를 강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본격적인 강의록의 발간은 앙리 위드(Henri Hude)와 장 루이 뒤마(Jean-Louis Dumas)에 의해 1990년에 그 첫째 권이 발간된 󰡔강의록󰡕으로 시작되었다. 올해 10월에 그 넷째 권이 간행됨으로서 󰡔강의록󰡕의 출판은 일단락이 되었다. 1권과 2권은 베르그손이 끌레르몽 페랑의 블레즈 빠스깔 고등학교와 빠리의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했던 형이상학, 심리학, 미학 등 철학의 여러 분야에 관한 강의가 수록되어 있다. 제 3권은 끌레르몽과 빠리의 고등학교에서 행해졌던 근대 철학사 강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분석에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라이프니츠까지 철학사에서 영혼의 문제에 어떻게 전개되었는지에 관한 강의를 그리고 4권은 1884년과 1899년 사이에 행해진 고대 철학에 대한 강의들을 모아놓았다.
강의록의 출판은 철학자 본인의 뜻과는 배치되지만 프랑스의 가장 뛰어난 철학사가이며 이미 두 권의 베르그손 전집의 서문을 작성했던 앙리 구이에가 󰡔강의록󰡕의 서문에서 밝혔듯이 이 작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당연한 귀결이다. 베르그손은 이제 철학사의 일부분이 되었고 헤겔이나 후설의 경우에서 보듯이 베르그손의 모든 텍스트는 철학적 또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한 출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강의록󰡕의 출판은 기존의 미간행 텍스트들과는 또 다른 문제를 제기한다. 우선 이 󰡔강의록󰡕은 베르그손 자신의 노트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의 강의를 들었던 제자들 또는 청중에 의한 필기본을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이다. 따라서 일부 내용의 왜곡이나 잘못 이해된 구절에 의한 오류들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베르그손은 강의를 할 때 마치 책을 읽듯이 정확한 문장으로 천천히 이야기했으므로 필기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오류의 위험은 비교적 적은 편이다. 지금까지 발간된 󰡔강의록󰡕을 보면 노트에서 발견된 오류들은 두 편집자의 노력으로 대부분 바로잡혀졌다. 또한 두 편집자는 아주 자세하고도 유용한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하지만 위드가 󰡔강의록󰡕을 구성하는 방식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위드가 발간하고 있는 강의들은 1884년 끌레르몽 페랑 대학교에서의 고대철학사 강의로부터 블레즈 빠스깔 고등학교의 바깔로레아 준비반 학생들을 위한 강의, 빠리의 앙리4세 고등학교와 고등사범학교에서의 강의 그리고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1900-1914) 등이다. 이 강의들을 어떤 기준으로 정리하여 출판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위드에 따르면 1-2권은 철학의 다양한 분과들을 3권은 철학사를 그리고 4권은 고대 철학에 관련된 강의들을 수록한다고 했다. 그러나 3권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에 관한 강의를 싣는 등 강의들이 상당히 모호한 방식으로 정리 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강의록󰡕도 앞서 발간된 전집들처럼 연대순으로 정리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일 것이다. 그외에도 위드는 한 강의를 임의로 분리하여 출판한 경우를 지적 할 수 있겠다. 󰡔강의록󰡕의 1권에는 1887- 1888년도의 <심리학과 형이상학> 강의가 실려있다. 그런데 이 강의의 도입부에 해당하는 1강에서 4강까지는 따로 떨어져 󰡔강의록󰡕의 2권에 실려있다. 위드는 왜 이런 이해하기 힘든 방식으로 강의록을 발간하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은 󰡔강의록󰡕 2권의 편집자 서문에서 발견된다. 위드는 강의록의 출간에 앞서 발표한 베르그손 연구서에서 강의록을 참조하지 않은 기존의 베르그손 철학에 관한 연구는 불완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 주장의 상당 부분이 바로 󰡔강의록󰡕의 제1권에 수록된 끌레르몽 페랑 시절의 강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그 강의의 도입부가 너무 평범하고 기초적이어서 위드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위드에 따르면 만일 이 부분을 1권의 첫 부분에 놓을 경우 독자들은 첫 페이지부터 베르그손의 󰡔강의록󰡕에 실망하게 될 것이기에 부득이 2권의 머리 부분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베르그손 해석에서 강조한 󰡔강의록󰡕의 중요성이 반감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이다. 위드의 베르그손 해석이 옳은가 아닌가의 문제를 떠나서 위드는 지나치게 자신의 해석에 집착함으로서 󰡔강의록󰡕의 편집자로서의 중립성을 잃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베르그손의 전집과 마찬가지로 󰡔강의록󰡕의 경우도 편집자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문헌들을 정리하고 필요하면 주석을 달아서 독자들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강의록󰡕과 베르그손 철학의 새로운 해석 가능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결국 교수로서의 베르그손과 철학자로서의 베르그손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 위드의 기본적 시각은 베르그손 철학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의식에 직접적으로 주어진 내적 지속의 문제에서 출발하여 󰡔창조적 진화󰡕에서의 우주적 지속을 거쳐 종국에는 도덕과 종교의 문제에까지 이르는 일련의 전개 과정을 통하여 그 자체가 하나의 진화 과정과도 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베르그손 사상의 근본적 구조는 그 형성기에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다는 입장이다. 그의 사상의 핵심은 바로 “신의 문제”이며 베르그손의 모든 저작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입증하기 위하여 위드는 베르그손의 󰡔강의록󰡕에서 발견한 내용들을 베르그손 자신의 철학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고 또한 베르그손의 유소년기의 종교 교육이나 학창 시절의 스승들의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면 위드는 고등사범학교 시절 철학 교수이었던 올레 라프륀(Ollé-Laprune)이 베르그손에 끼친 영향을 강조하고 있다. 󰡔강의록󰡕 그 자체가 베르그손의 삶과 사상의 이해를 위한 중요한 자료이며 특히 초기 베르그손 철학의 형성이나 그의 사상의 몇몇 측면들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이러한 위드의 주장은 수용할 부분들이 있다. 그러나 위드의 해석은 좀더 엄밀한 분석을 통하여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베르그손 강의록의 사본을 읽고 그 역시 베르그손에 관한 책을 출판했던 앙리 구이에는 강의를 참조하여 자신의 기존 해석을 더욱 풍부하게 발전시킬 뿐 무리한 해석을 시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 베르그손의 강의록이 추가로 발견되었음을 밝힌다. 1885- 86년 끌레르몽 페랑의 블레즈 빠스깔 고등학교에서의 베르그손의 강의가 그의 제자였던 외젠 에스띠발(Eugène Estival)의 노트를 통해 남아있었으며 그 일부가 장 바르디(Jean Bardy)에 의해 출판되었다. 또 다른 강의는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로 샤를 뻬귀가 전문 속기사를 동원하여 완벽하게 받아 적었던 강의록이 발견되었고 이 강의는 위드에 의한 발간된 강의록에 뒤이어 출판될 예정이다.


III.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 본 것처럼 베르그손의 새로운 텍스트들의 등장은 그 양적인 측면뿐 만 아니라 그 질적인 측면에서도 베르그손 연구사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베르그손의 편지글은 매우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 활용도에도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편지들이 단순한 안부 편지의 수준을 넘어서서 베르그손 철학의 이해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본 논문에서 일일이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프라딘, 레비 브륄, 듀이 등에 보낸 편지도 철학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을 담고 있다. 앞으로도 많은 편지글들이 발굴될 것이기 때문에 편지글들만을 모은 전집의 발간도 고려할 만하다.
강의록은 일단 고등학교 수준의 강의와 꼴레쥬 드 프랑스의 강의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끌레르몽 페랑이나 빠리의 고등학교에서의 강의는 바깔로레아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정해진 교과 과정을 준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베르그손이 자신의 철학을 강조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이 강의들이 베르그손 사상의 형성기에 이루어졌으므로 베르그손의 저서와 관련된 구체적인 철학적 과학적 문제나 개념에 관하여는 두 종류의 텍스트들을 비교하면서 유사점이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는 베르그손의 철학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반면에 꼴레쥬 드 프랑스의 강의는 베르그손이 훨씬 자유롭게 자신의 사상을 이야기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강의의 개략적인 내용들은 󰡔글모음집󰡕에 실려있는 베르그손 자신이 남긴 강의 계획서나 당시의 철학지 등에 발표된 강의에 대한 보고서로서 이미 그 개략적 내용이 알려져 있으므로 이 강의에서 무슨 혁명적인 내용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결국 베르그손의 여러 종류의 텍스트들을 ― 주요 저서, 강연이나 편지글, 강의록 ― 어떻게 상호 보완적으로 잘 이용하느냐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참 고 문 헌

I. 베르그손의 저술

(A) 전집
C= Oeuvres, édition du centenaire, PUF, 1959
[DI= E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1889); MM= Matière et mémoire (1896); RI= Le Rire(1900); EC= L'Evolution créa- trice(1907); ES= L'Energie spirituelle(1919); MR=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32); PM= La Pensée et le mouvant(1934)]
M= Mélanges, PUF, 1972 [L'Idée de lieu chez Aristote(1889); DS= Durée et simultanéité(1922)].

(B) 강의록
CR I= Cours I, Leçon de psychologie et de métaphysique, Clermont-Ferrand, 1887-1888, edition par Henri Hude avec la collaboration de jean-Louis Dumas, PUF, 1990.
CR II= Cours II, Leçon d'esthétique, Leçon de morale, psychologie et métaphysique, PUF, 1992.
CR III= Cours III, Leçon d'histoire de la philosophie moderne, Théorie de l'âme, PUF, 1995.
CR IV= Cours IV, Cours sur la philosophie grecque, PUF, 2000.
«Fichte, Die Bestimmung des Menschen. Cours d‘Henri Bergson, ENS 1898» in O. Hamelin & H. Bergson, Fichte, deux cours inédits publiés par Fernand Turlot et Philippe Soulez, Presses universitaires de Strasbourg, 1988, pp. 147-203.
«Cours de Clermont-Ferrand (1885-1886)» (manuscrit d'Eugène Estival) in Jean Bardy, Bergson professeur au lycée Blaise Pascal de Clermont- Ferrand (1883-1888), L'Harmattan, 1998, pp. 101-212.
«Durée et espace. un cours inédit de Henri Bergson» Magazine littéraire, n° 386, avril 2000, pp.50-51.

(C) 전집에 포함되지않은 편지글과 인터뷰
a) 베르그손의 생존시 발표되었으나 전집에 누락된 글
1. in H. Wildon Carr, The Philosophy of Change, London, Macmillan, 1914, pp. vii-viii.
2. in The Living Age, 315, n° 4085, 21 oct. 1922, pp. 222-224.
3. <철학자는 어떻게 글을 써야하는가? Comment doivent écrire les philosophes?> Monde nouveau, 4° série, 6, n° 25, 15 déc. 1922, pp. 228- 233 ; C. Bourquin, Comment doivent écrire les philosophes? Editions du Monde nouveau, 1923 ; Philosophie, n 54, 1997, pp. 3-8.
4. in The American Review of Review, 70, n° 5, nov. 1924, p. 506.
5. in Vie catholique, 7 janvier 1933, pp. 1-2 ; Rivista di filosofia neoscolastica, XXV, 1933, pp. 109-114 ; Emile Poulat, Critique et mystique, Le Centurion, 1984, pp. 315-321.
6. in Ralph B. Perry, The Thought and character of William James, vol. 2, Boston, Little, Brown & Co., 1935, p. 629.
b) 베르그손의 사후에서 󰡔글모음집󰡕의 발간전 까지 발표된 글
1. in The Philosophy of Alfred North Whitehead, édited by Paul A. Schilpp, Evanston & Chicago, Northwestern University Press, 1941, p. xii.
2. in Revue de Métaphy- sique et de Morale, 53, n° 4, 1941, p. 266.
3. in Félicien Challaye, Bergson, nouvelle édition revue et augmentée, Editions Mellottée, 1947, p.18.
4. in Sacha Guitry, Quatre Ans d'occupations, L'élan, 1947, pp.121-122.
5. in B. Romeyer, “Caractéristiques religieuses du spiritualisme de Bergson”, Archives de Philosophie, XVII, n° 1, 1947 pp. 26-27, 29, 31-32.
6. in Hjalmar Sunden, La Théorie bergsonienne de la religion, PUF, 1947, p.33-34.
7. in H. Massis, D'André Gide à Marcel Proust, Lyon, Lardanchet, 1948, p. 381.
8. in Lydie Adolphe, La Dialectique des images chez Bergson, PUF, 1951, pp. 3-5.
9. in Jacques Ch eval ier, Entretiens avec Bergson, Plon, 1959.
10. in La Vocation de Bergson, Gallimard, 1960, pp. 79-80.
11. in Hugo Dyserinck, “Die Briefe Henri Bergsons an Graf Hermann Keyserling”, Deutsche Vierteljahrsschrift für Literatur-wissenschaft und Geistesgeschichte, 34, n° 2, 1960, pp. 169-188.
12. in Giuseppe Prezzolini, Il tempo della Voce, Milano & Firenze, Coeditione Longanese e Vallecchi, 1960, pp. 239-242.
13.   in Arthur O. Lovejoy, The reason, the understanding and time, Baltimore, The Johns Hopkins Press, 1961, pp. 185-189.
14. in “Henri Bergson on moral values and other subjects”, Personalist, 62, n° 2, 1961, pp. 178-180.
15. in M. Capek, Bergson and the modern physics, Dordrecht, D. Reidel Publishing Company, 1971, pp. 186-187.

c) 󰡔글모음집󰡕의 발간후에 발표된 글(1974-2000)
1. 
in Jean Milet, Bergson et le calcul infinitésimal, PUF, 1974, p. 29, note 1.
2. in Daniel S. Robinson, “The Bergson-Flewelling Correspondance 1914-1940”, Coranto, 10, n° 2, 1977, pp. 21-37.
3. in Raymond Aron, Mémoires, Julliard, 1983, pp. 129-130.
4. in Shlomo Sand, “Quelques remarques sur Sorel critique de L'Evolution créatrice. Quatre lettres inédites de Bergson à Sorel”, Cahiers Georges Sorel, I, 1983, pp. 109-110.
5. in Philippe Soulez, “Présentation d'un article inédit en français de Max Horkheimer sur Henri Bergson”, L'Homme et la Société, n° 67-70, 1983, p. 8.
6. in Shlomo Sand, “Quelques remarques sur Sorel critique de L'Evolution créatrice. Quatre lettres inédites de Bergson à Sorel”, Cahiers Georges Sorel, I, 1983, pp. 117-123.
7. 
in A. Suarès, L'Art et la vie, Rougerie, 1984, pp. 156-158, 219-229.
8. in Gilbert Vincent, “Lettres de Bergson à F. Abauzit”, Revue d'Histoire et de Philosophie religieuses, 65, n° 4, 1985, pp. 391-394.
9. in Philippe Soulez, Bergson politique, PUF, 1988, p. 57.
10. 
in Philippe Soulez, Bergson politique, PUF, 1988, p. 307.
11. <유태인 세계대회에 보낸 메시지(message au Congrès mondial juif) [부분 인용]> in Philippe Soulez, Bergson politique, PUF, 1988, pp. 308-309.
12. in Philippe Soulez, “La Correspondance Bergson / Lévy-Bruhl”, Revue philosophique de la France et de l'Etranger, n° 4, 1989, pp. 481-492.
13. 
in Normand Provencher, “Les Lettres de Henri Bergson à Alfred Loisy”, Eglise et Théologie, 20, n° 3, 1989, pp. 425-438.
14. in Philippe Soulez, Bergson politique, PUF, 1989, p.56.
15. in Philippe Soulez, Bergson politique, PUF, 1989, p.186-187.
16. <(레비 브륄에게 알려준) 신원 미상의 독자에게 보낸 편지(1932)> in Philippe Soulez, “La Correspondance Bergson / Lévy-Bruhl”, Revue philosophi- que de la France et de l'Etranger, n° 4, 1989, pp. 486-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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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p. 157.
2) , p. 181.
3) , pp. 157-165.
4) , pp. 165-168.
5) , pp. 168-170.
6) , pp. 170-171.
7) , pp. 171-173.
8) , pp. 57-153.
9) , pp. 173-174.
10) , pp. 174-175.
11) , pp. 175-181.
20. in Edmund Husserl, Briefwechel, Band VI, Philosophenbriefe, Den Haag, Kluwer Academic Publishers, 1993, p. 11.
21. in “Bergson et Pradines : Correspondance présentée par André Grappe”, Les Etudes philosophiques, n° 4, 1993, p. 437-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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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in Sumiyo Tsukada, L'Immédiat chez H. Bergson et G. Marcel, Peeters, 1995, pp. 11-12.
24. in David F. Allen & Jacques Postel, “Eugeniusz Minkowski ou une vision de la schizophrénie (suivi de sept lettres de H. Bergson à E. Minkowski)”>, L'Evolution psychiatrique, 60, n° 4, 1995, pp. 976-978.
25. in Elie Halévy, La Formation du radicalisme philosophique, t. 3, Le Radicalisme philoso- phique, PUF, 1996, pp. 434-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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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de (Henri), Bergson I - II, Editions Universitaires, 1989-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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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ssé-Bastide (Rose-Marie), Bergson éducateur, PUF, 1955
, Bergson et Plotin, PUF,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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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ms (Frédéric) et al., “Bergson, philosophe de notre temps”, Magazine littéraire, n° 386, avril 2000.


Résumé

Etude de la philosophie bergsonienne par le biais philologique
― Publication des nouveaux documents et son apport ―

- RYU Ji-Seok -

Cette étude a pour but de présenter les nouveaux documents de Bergson et de démontrer leur importance pour la recherche de la pensée bergsonienne. Le texte majeur du philosophe publié dans son vivant est intégré dans l’Oeuvre et le texte divers dans le recueil des Mélanges. La publication des autres textes inédits est formellement interdite par le testament du philosophe. Mais on trouve beaucoup de textes publiés hors les Mélanges avec ou sans autorisation de l'exécuteur testamentaire. Il s'agit des nouveaux documents contenant la correspondance, l'interview et les cours.
Ayant été un grand épistolier Bergson a laissé énormément de lettres inédites. Elles nous fournissent non seulement les informations sur sa vie mais surtout les indications et les remarques intéréssants qui éclairciront certains aspects de la pensée bergsonienne. Les documents dits secondaires tels que la correspondance méritent donc plus d'attention des chercheurs. D'autre part la publication du cours inédit marque une histoire des études du bergsonisme. Henri Hude et Jean-Louis Dumas viennent d'achever la publication des quatre volumes du Cours rassemblant les cours professés aux lycées et au Collège de France. Hude a même essayé de faire une nouvelle interprétation de la philosophie bergsonienne en prétendant que toutes les interprétations sans référence aux Cours ne sont plus valables. Il est donc intéréssant de s'interroger s'il y a le clivage entre Bergson philosophe et Bergon professeur.
Les nouveaux documents complémentaires du texte majeur sont une nouvelle source à laquelle on puisera les résultats fructueux et accéléreront ainsi le renouveau de la recherche bergsonienne.

※ Mots-clés : Bergson (Henri), étude philologique, nouveaux documents, lettres, cou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