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이체와 플라톤 -서구 형이상학의 비판
김희준(전북대 교수)
Ⅰ.머릿말
니이체와 플라톤이즘; 두명의 철인을 사이에 둔 간격, 2000년을 우리가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는지가 주요 문제이다. 플라톤과 니이체 사이에는 하이데거도 이에 동조한 점에서 형이상학의 전역사가 개입되고 있다. 플라톤에서 시작된 형이상학은 니이체 사상에 이르러 최후의 코스를 거치면서 서양철학 전체의 과정에 그의 그늘을 내리고 있다. 니이체는 마침내 음영 아닌 대지에 나오게 되었음을 공언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끈질기게 다시 본래의 그 그늘에 서는 것을 다시 묻게 된다. 플라톤 철학은 하나의 물음 부호와도 같아서 니이체의 말처럼 너무나 검고, 너무나 괴물 같아서 그것을 기술하려는 누구에게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어떤 경계의 근접까지도 궁극적으로 극복 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니이체에 의해서도 극복 될 수 있을까? 연구의 주제는 개시되었지만 이 물음에 궁극적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본 연구는 두 정상을 가르고 있는 계곡을 사이로 두 거인의 대화․ 토의에 대한 예비적 검색작업으로 진행된다.
만일 우리가 니이체의 플라톤 해석에 관한 합리적 논의를 추구하려면 가정과 결론이 무엇인지에 관하여 역사적 질문과 철학적 질문을 서로 분리해야 한다. 역사가는 전제와 결론을 단순한 인과적 고리로써 만으로 파악할 수가 없으며 철학자는 역사적 사실로서 전제와 결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않고서는 어떤 시대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그런데 언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의미가 변하기 때문에 니이체 문제를 풀려는 독자는 해석상 기술 몇 가지가 필요함을 알게 된다. 이 말은 논의의 전개시 방법상 의문이 생길 때 역사적 문맥에 대한 참조는 피할 수 없음을 뜻한다. 후대 사상가는 선대 사상가를 반박하려고 선택하는 방식에서 니이체는 플라톤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니이체 일생의 주요 쟁점을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설정한 지반은 독일 당대 사상계의 철학적 풍토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사상가에게 현세는 그가 비판하는 이데올로기적 세계이면서 그 자신의 사고를 형성하는 터전이다. 종교적 진리에 대한 철학적 정당화라는 당대에 제기된 주제의 타당성을 비판하거나 이데올로기 세계를 개혁하기 위하여 그의 일생(1844-1900)을 임의로 선택한 것은 아니다. 그는 자기시대 속에 살고 사색하면서 기존의 설명의 틀에서 스스로 해방된다. 루소식 역사적 비평에서는 젊은 작가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낸 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문맥에서 볼 때 20세기 연구가의 니이체에 대한 많은 지적은 쉽게 풀 수 없는 20세기의 지적과제를 그에게 강요함으로써 그에게 너무나 많은 지적명예를 부여하고 있다. 니이체 정상에 오를 수 있는 여러 길이 드러난 지 오래이다. 그러나 니이체 등반을 위해서는 필생의 연구작업으로 부족하다. 거대한 파도 같은 바람소리에 혹심한 추위 방탄복 착용은 필수이다. 단독 등반은 더욱 위험스럽다. 하이데거,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 마르크스, 프로이드 등 현지 셰르파의 안내가 필수적이다. 강풍이 몰아칠 때에는 이들의 음성도 들리지 않는다. 아직까지 아무도 니이체 정상의 측정에 성공하지 못 하였다. 칸트산, 헤겔산, 흄산, 키에르케고르에 이어 다섯 번째 높이는 백년전 빈 말이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서 있는 지반은 표류를 거듭하는 빙판으로 매일마다 융기와 하강을 거듭하는 불안정한 지각이다. 따라서 우리는 니이체 산맥의 정상까지 이미 개방된 통로대신 니이체라는 이름이 지니고 있는 물질 속에서 허무주의 원소를 추출하기 위하여 독자적인 개발방식으로 암흑의 갱도를 걷고자 한다. 왜냐하면 무의식․욕망․본능의 실재성에 관한 첫 논의는 니이체와 더불어 우리에게 알려진 복음이 아닌가?
Ⅱ. 철학자의 어린 시절
모성은 아들과의 관계에서 무한한 만족감을 얻는다; 이점은 모든 인간관계의 애증의 양면성에서 해방된 가장 완벽한 관계이다. 모성은 자기 안에 억압된 소원(야심)을 그녀의 자식에 전이하여 자식으로부터 모든 만족을 기대한다〈S. Freud 전집XXII P.133〉.
이상국가 8권, 9권에서 플라톤은 타락된 정부형태로 금권정치, 과두정치, 민주정치, 전제정치 등 네 종류를 들고 있다. 금권정치(545cff)는 국가성원이 조화 속에 살지 못하고 지배계급이 성적 혼잡으로 말미암아 갈등상태에 살기 때문에(546d) 이들의 자녀가 제대로 양육도, 가정의 축복도 받지 못한다. 그 결과 개인 성격으로 어떠한 유형이 나타날까? 청년시절에는 재산을 싫어하지만 나이 들면서 점차로 재력에 끌리는 엽관매직의 공명심으로, 출세에 연연하는 타락된 인물이 어떻게 양육되는 가는 부부 모자간의 가족심리를 묘사한 이상국가(549c-550b)에서 유추할 수 있다.
야망에 찬 청년의 성장에 가정과 부인의 역할을 논한 이 구절은 실제 묘사처럼 생생하다. 이 구절에 담긴 철학적 함축은 플라톤 자신의 사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이해가 한결 쉬어진다. ①지도자 교육에 가정의 폐지(457c-d)의 구절이 은연중 연상되지만 일견 금권적 국가는 어느 정도 당대의 강철같은 여인, 스파르타의 모성을 반영하고 있다(cf545a). ②그러나 한결 더 근접한 사례는 아테네시내 자체 내에 찾아 볼 수 있으니, 남편은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분명히 실패작이고 악처로 시달린 부부 소크라테스와 크산티페의 가정이 연상된다(Apol 23b-c). 다이몬의 봉사를 내세워 공직 대신에 가난을 택하고 가정사는 무관심한 체 젊은이와 벗한 소크라테스야말로 안성마춤의 적격이다. ③이보다 더 친숙한 사례는 Wilamowitz의 70년전의 말처럼 플라톤 자신의 가정성장배경과 거의 흡사하다. 플라톤은 아버지 아리스톤과 어머니 페리티오네 사이에 출생한 三男一女의 맏이로 10살 전후에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의 유아시절을 보내며, 그의 친모는 30년 연상의 정치적 거물 피림람페스(Pyrimlampes)와 재혼하였으나 사별한 채 50년 이상의 독신 생활을 보내게 된다. 친아버지 양아버지의 사망과 정신적 대부 소크라테스의 죽음으로 생긴 심리적 공백의 빈자리에 그의 어머니가 대신 등장하여 젊은 날의 머리와 가슴속에 강력한 상흔을 남긴다. 니이체(1844-1900)와 플라톤은 2300년을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으나 두 사람을 연결할 수 있는 심리적 연결고리는 중세 4세기 세인트 오거스틴의 출현이다. 독실한 기독교신자 모니카와 이교도 파트리시우스(Patricius) 사이에 신앙의 갈등 속에서 태어난 오거스틴의 고백록은 플라톤식 결핍가정의 수정판이 아닐까? 종교 속에서 그녀는 자기의 아들이 성인이 되지 않기를 염원하는 사실상 고상한 수단을 취할 수도 있다. 물론 기독교 교리는 거세를 뜻하지 않지만 오거스틴과 모니카의 기다란 갈등은 이 말에 근접한다고 볼 수 있다. 모니카는 아들
을 요람 속의 감금을 원할 수도 있고 이때 아들은 모자유대의 연속성을 찾으려 수사되길 바라고 모성이 싫어하는 사춘기를 폐기할 수 있다. 프로이드 심리학의 공헌 중 하나는 유아 성장기의 모자관계에 대한 기발한 포착이다. 철학자의 생애에 미친 모친의 영향력을 아무도 이전에 언급하지 않았다. 부친은 자녀 교육에 핵심인물로 등장하고 있지만 어린 철학자의 눈에 미친 모친의 태도․성격․죽음은 은연중 전혀 무관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이러한 종류의 연구방향은 남성 소비니즘과 본능이론에 대한 무지와 이에 대한 적개심의 합성물이다. 칸트와 헤겔은 13세에 모친을 잃고, 쇼펜하우어는 정신병으로 그의 아버지가 자살을 감행할 때 13세의 소년이었다. 소년 니이체의 아버지도 정신병(?)으로 쓰러져 투병생활 끝에 죽는다. 몇 달 후에 동생 요셉 역시 병으로 죽는다. 이들 죽음은 오랫동안 니이체의 정신 세계를 어둡게 그늘 지운 충격적 사건이었다. 니이체는 이후 할머니, 두 고모, 어머니, 여동생 등-다섯 명의 여자들 사이에서 유일한 남자로 성장한다. 예민한 감수성을 타고난 니이체는 이들 여자들의 과잉보호와 가장의 부재 속에서 심한 갈등을 느끼며 자란다. 두 명의 과부, 두 명의 올드미스, 거기에다 고부지간 시누이 올케지간, 이중삼중으로 얼킨 갈등 불화 알력상태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는 부인(니이체의 어머니)에게 방패막이가 되기를 기대하기는 곤란하였다. 왜냐하면 니이체 아버지도 니이체와 비슷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마음이 여리고 센티멘탈한 성격으로 적극적으로 나서서 가정 불화 해소를 기대하기는 힘에 벅찬 일이었다. 니이체의 소년기에 가부장적 권위에 대한 그의 간절한 소망은 결코 성취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아버지의 동경은 역으로 정신적 실향감에 빠지게 하였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제 세속적인 가부장적 권위를 모든 권위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神的인 권위에까지 확대 추구하게 된다. 神은 모든 아버지의 아버지이다. 니이체는 기독교의 하나님이 자신의 육신의 아버지의 상실로 비어있는 자리를 대신 채워주기를 갈구한다. 그러나 그의 '십자가상'이라는 詩가 보여주고 있듯이 그에게는 너무 높은 곳에 神은 그 권좌를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응답을 하지 않는다. 이것은 니이체 연구가들 사이에 점차 중요한 화두로 진행되고 있다. 세 사람의 유년기는 가정적으로 평탄하지 못 하였다. 니이체는 네 살에, 플라톤은 10세 전후, 오거스틴은 17세에 아버지와 사별하며 대신 이들의 어머니는 강건한 기질, 독실한 신앙생활로 칠십 장수를 누린다. 어느 철인의 말이 기억된다. '이 세상에서 헤매는 남자 가운데서 99명은 여성에 의해서 구원을 받고 나머지 1명은 신에 의해서 직접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 이 말은 역설적인 진리가 될 수 있다. 즉 99명이 여자에 의하여 멸망의 화를 당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은 과장된 이야기일까? 융에 의하면 ①우리들 중 일부는 성모상을 통하여 ②일부는 현모상을 통하여 ③일부는 특출한 유아기의 체험을 통하여 종교적 관심을 얻는다. 무의식은 요람이라 기보다는 보완적인 성격을 갖는다. 그것은 의식의 일면성의 균형에 알맞는 일종의 심리적 렌스를 형성케 하며 유아 성장시 각자 자신의 다면성을 얻게 한다.
Ⅲ. 소크라테스와 니이체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와 풍자는 실존철학에서도 특히 키에르케고르 이래로 즐겨 원용되고 있는 수단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가 항상 그의 말이 직접의미 하는 것 이외의 다른 것을 암시하는 풍자의 철학자라고 하였다. 소크라테스는 풍자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됨이 바로 풍자로 서 있다. 그는 풍자를 이따금 이용하는 게 아니라 풍자를 그의 생활의 양식으로 받들고 있다. 이 독배를 마신 철인은 죽음에 직면하면서도 아무런 공포를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生에 미련이 없었던 것도 죽음에 황홀을 느꼈던 것도 아니다. 그의 말대로 본래 죽음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 다만 죽음에 관한 소크라테스의 무지는 역시 하나의 풍자로서 취해져야 하며 그는 분명히 지적인 저의에서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도대체 生이란 무슨 가치가 있는가? 지나친 현자적 체념도 명랑한 자신을 상실하는 것도 다 중용을 벗어난 일임을 자각케 하려는 것이 그의 풍자적 의도였다. 죽음이라는 인생의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에 대하여 그처럼 마음의 여유를 갖는 다는 것은 확실히 우월한 정신적 태도의 증거이다. 현실로 있는 그 무엇에 부정의 태도를 취하고 없는 그 무엇에 우스꽝스러울 만치 진지할 수 있는 풍자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모든 철학적 사색의 특징이다. 누구나 生이 현실이요 死는 비현실이라고 생각하나 철학자는 예로부터 이 상식의 입장을 도치하여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人生을 완성할 것을 설교하여왔다. 그가 "나의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라고 말할 때 이 말은 환기구멍이 있는 목관 속에서 잠을 잔다거나 죽는 척 해보는 수작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의 예행연습이란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죽음은 저급의 의식이 없는 완전 소멸임을 실감케 하는 것 외의 다른 것일 수 없다. 소크라테스가 만일 자신의 변론을 공손히 제시하고 민중의 권위에 순종하는 태도를 취하였더라면 그리고 생에 한 가닥 미련을 갖고 감옥에서 도망쳤다면 그는 처형을 면할 수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속해있는 사회의 불문율과의 타협을 거절하고 고의로 죽음을 택하였다. 그러므로 이것은 재판에 의한 살인이기보다는 재판에 의한 자살이다. 헤겔에 의하면 아테네의 실체를 수호하려한 시민도 옳았고 실체의 파괴를 전제로 한 소크라테스도 옳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재판과 죽음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서 우리는 모든 것이 역설인 인물을 발견한다. 많은 철학자들이 역설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역설은 바로 소크라테스 자신이다. 스칸디나비아 독일 고올인의 역설과는 달리 희랍인의 역설은 인간 이성을 패배시키는 대신 오히려 자극시키고 있다. 적어도 인간 이성의 일부분을 더욱 투명하게 만들 수 있었다. 단적으로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죽음 이후 각종 해설은 플라톤의 오해에 불과하다. 영혼 불멸에 관한 플라톤의 견해는 소크라테스의 변명(40-41)에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에서 고르기아스(끝부분)와 크리토(536-c)의 신비적인 내용으로 파이돈(앞부분)에서는 강력한 열망으로 점점 상승한다. 플라톤 대화편은 중기에서 장년으로 옮겨 질 때마다 연륜에 반비례하여 기억량은 줄어들고 있지만 역으로 천국에 대한 동경은 짙어간다. 플라톤의 증언을 순진하게 귀담아 들어야 하는가? 그는 소크라테스 임종시 참석치 못하였음을 파이돈(59b10)서두에서 고백하고 있다. 사건의 목격과 기록의 시점사이에는 30년 이상의 세월이 있다. 임종의 생생한 모습은 저자가 아니라 전달자의 선택(검열)을 반영한다. 임종시 소크라테스의 발끝에서부터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신체의 마비현상, 체내의 징후, 심리까지 속속들이 마치 기록영화의 장면처럼 생생하다. 꿈보다는 해몽이 좋다는 말이 있다. 플라톤은 도대체 어떤 기준으로 신체 징후와 심리묘사를 선택하였을까? 그는 독배의 효과를 중간중간 묘사하면서 실언, 중언, 부언, 횡설수설을 고의 적으로 누락시키고 스승의 신체적 강인성과 극기심을 내보이고 있다. 육체에서부터 영혼의 분리를 설명한 파이돈의 주테마와 소크라테스의 성품의 적극적이고 긍정적 측면-두 가지 동인이 상승작용하여 신비적 어휘가 소크라테스 묘비명으로 굳어지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이체는 소크라테스를 도덕적 인물로 평가하지만 비판하는 각도에서 미묘한 차이점- 사정에 따라서는 결정적 차이점에 주목해야 한다. 실존적인 태도나 성격적 기질에서 두 사람은 전혀 다르다. 물리학에서는 초기 조건에서의 큰 차이가 마지막 결과에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게되는 과정 즉 '안정운동'이라는 것이 있다. 두 개의 공을 깊은 계곡의 반대편에 놓고 경사를 따라 구르게 하면 그것들은 결국 같은 장소에 즉 계곡의 밑바닥에 멈추게 된다. 한편 미세한 차이 밖에 없는 초기 조건으로 시작되지만 마지막 상태에 이르러 크게 차이가 나는 과정 즉 '불안정운동'도 있다. 산꼭대기에서 쇠사슬을 놓고 굴린다면 처음 위치에서의 작은 차이가 마지막 위치에서 큰 차이로 귀결된다. 그 쇠사슬은 처음 위치가 1mm이쪽이냐 아니면 저쪽이냐에 따라 동해로 또는 황해로 빠지게 된다. 키에르케고르와 니이체는 소크라테스가 당시 아테네의 집단적 정치현상에 참여를 거부하고 내면적 도덕률의 수립에 헌신한 점에서 안정 운동을 하고 있지만 도덕률의 내용에 대한 기본입장에서는 상극적 불안정운동을 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경우 인간의 1차적 관심은 도덕적 현상에 대한 진지한 설명이다. 그러나 니이체의 경우 "도덕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현상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선악의 피안. 108〉." 초인의 출현 시까지 소크라테스 이후 모든 철학자는 반푼의 난쟁이로 이들은 역사 안에서 제거해야 할 귀에 익은 시민정신에 너무나 집착한다.
우상의 여명〈소크라테스의 문제점〉의 마지막 문장에서 니이체는 하나의 변화, 매우 중요한 변화를 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죽음을 각오하였다고 주장하면서 니이체는 여기서 소크라테스의 두드러진 행위에 색다른 해석을 한다. 이런 생각은 〈즐거운 학문〉340절의 내용의 연장이다. 그는 수다스런 변설가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침묵에도 재주를 부리고 있다. 마지막 순간 덧붙이지 않았다면 그의 속뜻을 모르고 고상한 정신의 스승으로 오인할 수 있었다. 죽음, 독기, 신실, 악의에서 나온 말일지 몰라도 마지막 순간 긴장된 혀의 근육이 풀리면서 "오 그리토! 나는 아스클레피우스(질병의 신)에게 장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네, 갚아주게!" 마지막 순간 귓전을 스친 이 말은 귀가 있는 사람에겐 들린다. 그것은 곧 내 生은 병이야! 일생을 즐겁고 용사처럼 살아 온 사람이 염세주의자로 돌변하다니? 그는 지금까지 즐거운 척 외양만 부리고 막판에 본성을 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소크라테스가 生을 병으로 보다니? 이렇게 음폐된 소름 끼치는 얼빠진 말을 토해 내다니? 소크라테스는 자기 生에 앙심을 품는 단 말인가? 가련하게도 나의 동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나의 生은 골병이야? 인생 의미 전체를 되묻는 의문 부호를 남기고 있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마태 19:13) 어린아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때로는 경이롭다. 철인(성인)이 등장한 서양 철학사는 일종의 가면무도회이며 일단 연출을 끝내고 분장실에 돌아와서 화장을 지우고 화려한 의상을 벗기고 나면 모두가 초라한 속물들이다. 소크라테스 그는 본래 짱구, 납작코에 배불뚝이 아닌가? 그의 비상한 말재주에 배어있는 욕심․욕망은 머리통의 똥구멍(주둥아리)에서 흘러나온 배설물이 아닌가? 그 이후 소위 강단철학자들이 하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인식론․형이상학․순수철학은 소크라테스 배설물을 재탕삼탕 하고 표백, 증류시킨 것-이것은 허무주의의 도래가 아닌가? 사소한 말끝머리 한마디로 인격 전체를 논한다는 것은 의외의 일이다. 그러나 니이체에게 상투적인 정공법은 너무 진부하다. 때맞추어 출생한 니이체는 이 때를 기다리면서 36년(때에 따라서는 2000년)을 기다려왔다. 고대 그리스를 말하면서 미래를 말하고, 미래를 말하면서 과거를 말한다. 기존의 필법(Kant)이 올림피아 경마 경기처럼 앞을 향하여 쉬지 않고 달리는 마차경주이라면 니이체의 필법은 전후좌우를 살피며 쉴새없이 두리번거리는 폴로경주이다. 마차경주에 임하는 기수는 말에 채찍만 가하면 이길 수 있었으나 폴로경기에서는 끊임없이 방향전환을 하며 출발과 정지를 거듭하고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문체, 기호, 기호의 템포, 제스처; 축자적 언어와 상징적 언어 사이의 교차배열이 수시로 붕괴되는 니이체 문장법은 사상의 명료성에서 잉태되었지만 독일 학술계에 대한 반항의 흔적이 뚜렷하다. 루터 이후 6명의 작가 레싱, 괴테, 하이네, 니이체, 프로이드, 카프카는 反칸트적 反학술적 전통을 세운다. 이들 작가의 공통점은 탁월한 명료성과 위트로 점철된 인간고통에 대한 깊은 감정의 표현이다. 니이체 역공법 문장에 담긴 소크라테스 죽음에 대한 최고의 아이러니; 그는 죽기를 바랬다. 아테네 시민이 아니라 그 자신이 독배를 선택한 셈이다. 왜냐고 그는 아테네 시민이 사형판결을 내리도록 유혹하였기 때문에. 죽고 살기를 맹세하며 자기 주장을 관철한 소크라테스의 참뜻은 가면 위장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사념에 이미 허무주의적인 싹이 자라고 있다. 처음에는 미풍으로 시작된 조용한 말 한마디가 뒷날 일진광풍으로 돌변하여 지축을 뒤흔드는 대 사건이 될 줄을 감히 누가 상상이라도 할 수 있을까? 이처럼 니이체는 플라톤을 스승 소크라테스로부터 지속적으로 구별하고 있다. 전자는 귀족적이고 후자는 서민적이라는 점을 니이체는 플라톤과 대중에 전파된 기독교리를 정확하게 동일한 근거에서 구별하고 있다. 대중을 위한 플라톤이즘이 유럽에 거대한 정신적 지구전을 만들어 냈다〈선악의 피안. 서문〉. 거대한 것이 괴상하고 무서운 가면을 쓰고 지상에 나타나서 인간의 심성 속에 영원성의 요구를 주입하고 있다. 도그마철학은 그러한 가면이다. 가장 사악스럽고 가장 지속적이고 가장 위험한 오류는 도그마티스트 플라톤식의 순수한 선 자체이다. 인간을 넘어 선 불멸의 비육체적 무한한 선, 정신,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찾는 플라톤의 교리, 더 나가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도 본질적으로 허무주의적이다. 고대의 아름다운 영혼 플라톤이 어떻게 그러한 불치의 고질병에 걸릴 수 있을까? 우리는 의사로서 물어볼 수 있다. 이미 병든 소크라테스가 플라톤을 결국 타락시켰는가? 소크라테스는 잘못된 교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독배를 마신 그의 벌은 마땅한 일이 아닌가? 반신반의하면서 니이체는 부패의 성질을 소크라테스에게 돌리며 다음과 같이 스승과 제자의 차이점을 명시한다. 통치에 대한 갈망-고상한 것이 권력을 위하여 하향할 때 누가 그것을 욕심이라고 부르겠는가? 진실로 그러한 갈망, 가치비하, 독을 베푸는 덕처럼 병적인 것은 없다. 니이체는 마침내 허풍떠는 플라톤을 비판한다. 플라톤은 혼자서 철학적 활동을 엄청난 자기 긍정적 성격으로 이해한다. 〈우상의 여명〉에서 플라톤은 나는 곧 진리이요! 라고 외치고 있다. 그가 자신의 교리를 정말로 믿었느냐 여부를 떠나서 그의 후계자들은 그것을 믿었다. 〈선악의 피안〉서문에서 니이체는 플라톤을 도그마틱한 철학의 창시자로 공격한다. 플라톤이 서양철학의 근본 화두를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 계속 제공할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플라톤하면 소크라테스를 연상하고 소크라테스하면 플라톤을 우리는 연상하여 왔다. 소크라테스가 도덕혁명을 일으킨 이상으로 플라톤은 정치혁명을 시도하였다. 진행중인 혁명에 도취한 나머지 우리들 중 아무도 심지어는 칸트도 헤겔도 두 사람을 연결하는 하이픈이 새끼줄인지, 동아줄인지 전혀 알지 못하였다. 니이체 입장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히포크라테스 쌍둥이처럼 하나가 간염 되자 다른 하나는 병들어 왔다. 그러나 고질병의 재발을 피하려면 우리는 양자를 하나가 아니라 둘로 절단해야 한다. 두 사람을 묶는 고리를 끊기 위하여 사생결단 무거운 함마로 철학(사색)할 것을 우리에게 권한다. '시간은 앞을 향하여 움직인다'는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시간 안에 모든 것은 발전이라고? 발전과 더불어 인류의 개념을 말하면 인류는 진보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니이체는 〈에세 호모〉에서 여러 번이나 헤겔을 허풍선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말은 단순한 악감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다. 뒷시대의 관점에서 앞 시대를 정당화시키고 앞 시대의 절정으로 우상숭배를 매수하려고 할 때 니이체의 눈에 헤겔은 시대의 낙오자, 뻔뻔스런 거짓말쟁이로 보였다.
키에르케고르가 사도 바울을 믿음의 기사로 받들 듯이 니이체는 소크라테스를 흠모한다. 그러나 흠모에는 질투심이 혼합된 일종의 아이러니가 끼어있다. 지금까지 철인은 결혼이라도 하였단 말인가? 헤라클리토스, 플라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칸트, 쇼펜하우어 등은 결혼한 일이 없다. 결혼한 철학자는 조롱거리에 속하며 예외적으로 금욕적인 소크라테스는 이 명제를 증명하려는 듯 결혼을 하였지만 이는 더욱 아이러니한 일이다. 일생 순결, 독신으로 보낸 총각에게 늦장가를 권했더니 소리없이 웃으며 라인강물 대신에 갠지스 강물로 귀를 씻는다. 니이체가 소크라테스를 싫어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인간 소크라테스와 소크라테스 사상(Socratism)에 관한 니이체의 태도 사이에 뚜렷한 차이점이 있음을 우리는 이제 승인해야 한다. 이것을 하나의 일반적 도식으로 표현하면 ①니이체가 존경하는 인물 ②그러한 인물들이 내세우는 사상 ③그러한 인물들을 따르는 추종자(박수부대, 주석가)를 구별하고 있다. 이러한 분류방식은 다음에 서술 될 ①예수 ②기독교리(바울) ③기독교 왕국(Christiandom)에 대한 니이체의 세 가지 태도를 예시하고 있다. 예수와 기독교리, 플라톤과 플라토니즘을 서로 구별하듯이 각종 이데올로기 비판은 종교적 우상의 파괴로 최종 환원된다. 헤겔식 이성사관에 대립된 본능편을 분명히 취함으로써 니이체는 말없이 루소에 동의한다. 본능은 말할 나위 없이 자연에 유사하며 그것을 쇠스랑으로 내쫓지만 언제나 되돌아온다. 근본적 본능은 권력에의 의지이며 그것은 자기 보존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종교 역시 신을 만드는 본능에서 유래한다. 종교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위대한 신학자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무교양한 군중이 나타나야 한다.
니이체는 쇼펜하우어를 존경하고 찬양하면서도 그의 철학을 비판하고 그의 추종자들, 그의 무절제와 악덕을, 신념의 중대사로 떠받드는 사람들을 몹시 경멸한다. 니이체 자신은 바그너를 찬양하고 그의 음악에 도취하면서도 베이루스에 운집한 기독교 신봉의 민족주의자 反유태주의를 경멸하며, 심지어는 바그너 자신에 대하여 그가 광신주의자(Wagnerian)가 되고 있다고 힐난한다〈에세 호모. 3부〉. 니이체는 극적 드라마를 위하여 바그너를 숭배하는데 두 사람의 관계는 니이체 변증법의 두드러진 예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니이체에게 지극히 당연하게 보인다. 바그너의 음악에 심취하였고 바그너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미워하고 공격하는 것도 사랑의 표현이었는지 모른다. 공격은 자신의 본능이며 자신은 승리감에 넘치는 것만을 공격한다고 니이체는 고백한다. 자신은 결코 개인을 공격하지 않으며 공격하는 것은 자신의 경우 호의의 표시일 뿐만 아니라 사정에 따라서는 감사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바그너에 대한 사랑과 질투, 공격과 폭언은 하나가 되어 나타난다. 그러나 니이체의 소크라테스에 대한 이해는 단순한 찬성도 반대도 아닌 변증법적 심층심리의 표현이 적합하며 외디프스적 갈등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이때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의 말; 사람은 사랑하는 것을 죽이며 더욱이 죽여야만 한다라는 말이 적격이다. 영혼의 독립성 그것이 문제로다. 아무리 값진 희생을 치른다하여도 그것은 높을 수가 없다. 아무리 귀중한 친구, 고귀한 인간, 둘도 없는 천재라고 하여도 우리는 영혼을 위하여 그것을 받쳐야만 한다〈즐거운 학문. 98절〉. 지식(최대지식)을 찾는 사람은 자기의 적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동료를 동시에 미워해야 한다. 이때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스승 플라톤의 학설을 거부(Nichomachean Ethics 1096a)한 나름대로의 변명을 기억해야 한다;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가장 가까운 것까지도 파괴하는 일도 의무로 삼아야 한다. 왜냐하면 경건성은 동료이상으로 진리를 내세울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기 때문이다. 니이체는 아리스토텔레스를 넘어서 독자․우리에게 충고하길; 우리가 항상 제자로만 남
아 있다면 우리는 스승의 뜻에 제대로 보답한 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함께 니이체는 누구에게나 자기자신의 견해에 헌신할 고상한 지식에의 정열을 촉발시키고 있다. 따라서 니이체가 열 두 명이 아니라 단지 한 명의 충실한 제자를 찾지 못하고 속물근성 독일철학의 강단에서 결연히 뛰쳐나와 이들에게 도전장을 작성한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니이체주의자라는 말은 이제 온건한 의미이든 강한 의미이든 간에 여하간 모순적인 말이다. 니이체를 이해하려면 니이체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Ⅳ.바울과 니이체
성서적 관점에서 바울은 헬레니즘을 전파한 소크라테스에 견줄 수 있다. 기독교가 유대인의 신국과 열망을 이용하듯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사유방식을 외국인과 외국 종교에 개방시킨다. 산상수훈이 모세(B.C.14세기)나 데이비드(B.C.10세기) 치하에 가능할까? 반대로 소크라테스가 스파르타에 용인, 허락될 수 있을까?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바울이 유대인의 장래를 염려하듯이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시민이 올림픽 제전의 주재신의 실종을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역사는 되풀이한다. 그것이 역사의 잘못 중의 하나이다. 이는 신학자에게는 필연이고 법칙이나 다름없다. 니이체는 바울을 기독교 발생의 결정적인 인물의 하나로 간주한다. 예수의 제자들 중 요한은 4권, 베드로는 2권의 저술에 불과하지만 바울은 신약성서 총27권 중 14권을 작성한다. 니이체 소년시절 루터 번역판의 언어철자에 정통하였고 수시로 라틴어판, 그리스판을 대조하며 눈으로 읽고 때로는 루터에게 결여된 예민한 코로 사도의 숨결을 맡는다.
새로운 성서해석이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 일만 년 전 중동지역에 처음 정착한 유대인은 이집트 지배(B.C.1550-1200), 아시리아 지배(B.C.8세기), 바빌로니아 유수(B.C.587), 알렉산더대왕, 로마제국 지배, 마호멧 원정(7세기) 십자군전쟁(10세기) 최근에는 오스만 터키의 침략전에 이르기까지 서양에 적대하고 있는 유태인은 두 개의 강력한 적이 수시로 출몰하였다. 첫째는 서양이고 둘째는 역사이다. 시오니즘의 존재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세력이 항상 이스라엘 지방에 맴돌았다. 이들은 사방이 적으로 포위된 상태 속에서 지구전을 벌여 왔고 이들의 유일한 동지는 성서였고 성서를 새롭게 고쳐 썼다. 유대인과 마찬가지로 예수 자신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헤브류 성경의 야호베만 알고 있었다(마태 5:17-18). 성경으로부터 이들은 지구전, 혈전 속에 죽어간 영혼의 재생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성경에 따르면 모세도 죽었다(신명기 34:5). 다른 두 선지자 엘리아와 이노그는 하늘로 올라갔지만 그들은 주검에서 재생한 것은 아니다. 헤브류 성경은 사후영생에 관하여 언급을 극열 피하고 있다. 그러나 B.C.167년 마카비 모반시 육체부활사상이 이들 사이에 유포되기 시작한다. 로마 점령군에 대한 민족적 반란으로 청년 다수가 순교자로 죽어간다. 정의의 하나님은 이들의 영혼을 부활케 하리라. 고난의 메시지를 신의 뜻으로 여기고 이런 목적을 위하여 계시가 요구된다. 평범한 말로 하면 거대한 문헌 변조작업이 요구되었고 이를 주관한 장본인은 사도 바울의 덕이다. 예수는 신과 인간과의 간격을 제거하고 합일의 내면적 生을 자기의 복음으로 최후까지 실천하였는데 바울은 십자가 위의 희생을 17번이나 강조함으로써 신과 인간과의 간격을 넓히고 그 먼 공간에 신에 대한 인간의 원죄, 심판, 부활, 구제 등의 여러 환상을 대입시켰다. 현실에서 산다는 것은 벌써 아무런 의미가 없도록 그렇게 사는 것이 生의 의미이다. 그것은 벌써 예수가 시범한 새로운 실행과는 동떨어진 하나의 새로운 신앙이다. 〈적그리스도〉29절에서 니이체는 예수와 바울을 구별하면서 바보(Idiot)를 사용한다. 그는 르낭식의 영웅과 천재라는 말을 예수이해에 돌리기를 거부한다. 이 말은 본질적으로 국가적 업무에 참여가 배제된 私人, 낭인, 백정으로 이해한다. 예수는 천치이다. 왜냐하면 그에겐 가족도 없고(마태 12:46-50) 재산도 없고(누가 12:33) 싸워야 할 적도 원수도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반항하지 않는다. 예수는 죽음 이후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바보(괴물)와 언쟁하지 말라! 어느 쪽이 바보(괴물)인지 정말 구별할 수 없다〈선악의 피안. 146〉. 예수가 설명한 천국은 사후에 등장하는 어떤 천상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지리적 영역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복음서에는 죽음 이후를 설명해주는 어떤 실마리도 등장하지 않고 그런 시도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처럼 심리묘사와 분석에 니이체의 관심은 지속적이다. 그러나 자연현상의 묘사와 관찰에 그의 관심은 피상적임을 지적하고 싶다. 예수 출생시 별이 길을 안내하며(마태 2:9) 처형 당일 오후 3시경 해가 빛을 잃고(누가 23:45) 석양시 달이 피 빛으로 변하며(사도행전 2:20) 경천동지 하는(마태 27:5) 숨막히는 정황묘사는 자연과 인간의 황홀한 일치의 막장으로 보였지만 현대 지구과학자의 입장에서는 1)음력 이월 보름날(유월절)의 절기와 2)석양시 태양의 굴절을 무시한 아마추어식 발언이다. 천문현상의 무지에 관하여 바울은 면책될 수 있다. 그러나 니이체의 경우 1800년이나 되는 격세지감을 고려할 때 박식한 대가로서 궁색한 변명이 필요하다; 그는 근시안과 두통으로 체계구상에 충분한 배려를 기울이지 못하였다. 이점과 관련하여 A.D.1세기에 출판된 알레산드리아 학파 톨레미의 알마게스트 6권을 일독하였다면 니이체의 논의 는 압축되고 긴장된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다. 자연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사건; 기적(Miracle)은 자연의 질서와 법칙에 기식(parasitism)하고 있다는 자연주의 신학(D. Hume)과는 달리 니이체의 본능적인 권력의지설은 신화․종교의 근거로 이중적 내지 변증론적 신학이론을 세우고 있다. 기독교의 낡은 술을 현대 우주론의 새병에 따르기는 어려운 일이다. 새천년을 맞는 오늘날 창세기 문장의 내용을 과학․신학․계시의 어느 것으로 보아야 하는가? 과학과 지식내용을 체계적으로 배열하고 지식을 형식적 공식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다면 창조의 기사에서 과학적이란 주장을 기함은 맞지 않는다. 이것은 여러모로 편의를 도모하기 위하여 그렇게 한 것이다. 만일 이 기록이 20세기의 과학용어로 기록되었다고 하면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아무에게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이요, 20세기에 이르러서 과학적 훈련을 받은 자들에게만 경험함에 그쳤을 것이다. 다시 현대과학의 사고 방법에 의하여 쓰여졌다고 하면 이 진술이 1세기 후면 시대에 뒤떨어져 부정확하게 됨도 무엇보다도 명확한 일 일 것이다. 창조에 관한 창세기의 설명도 과학적 형식으로 쓴 것이 아니라 계시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증거의 하나인 것이다. 물론 니이체가 이렇게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있음이 틀림이 없다〈반시대적 고찰. 7장〉. 과학에 대한 니이체의 관심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세계와 만나는 것처럼 보이는 의미와의 관련성보다는 무의미와의 관련성 속에서 더욱 더 인용되며 딜타이 해석학의 보완 메시지로 표현된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회의를 위한 회의, 즉 확신에 찬 회의를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회의론과 확신론은 모두 진리의 적이다. 철학이 깨뜨려야 할 일도 계시이든, 과학이든 그것의 확실성이다.
바울에 관한 니이체 진술은 부정적 색채 일색이다. 그는 바울을 전형적인 열등한 타입의 인간으로 기술하며 마뉴 법전의 말을 빌어 허풍선이라고 부른다. 만일 우리가 바울을 지나는 말투나 주도면밀하게 다루고 있는 구절을 음미하면, 바울을 논쟁적 어투로 다루고 있는 면이 있지만 이점은 항상 사실은 아니다. 바울에 대한 니이체의 극언의 배후에는 소위 인척관계라는 특징을 공식화할 수 잇다. 자기가 대중과는 고양되어 있다는 의미에서 위대성과 관련된 인척관계이며 니이체가 바울에게 부여하는 위대성을 파괴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도 그가 이 말에 적대하면 할수록 이 말을 정의적인 것(definitive)으로 내심 간주하고 있음이 더욱 더 분명하여 진다. 미워할수록 닮아 간다는 말이 참이라면 닮아 갈수록 더욱 미워한다는 말도 참이다. 고부지간의 갈등은 물론 모든 논쟁, 정쟁의 대립시 적용되고 있는 역설적인 진술이다. 이 말은 바울과 니이체의 견해에도 적용된다. 그들의 이상에는 종교적 정열이 팽팽하게 배어있다.
바울(코린도 11:2-16)은 여성 억압적인 언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머리는 남편이오(3절)라고 말 하는가하면 남자가 여자를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위해서 창조되었다(9절)고 말한다. 이런 노골적인 반여성적 발언들은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성을 입증해주는 성서적인 증거들로 즐겨 인용되어 왔다. 존경받는 사도가 이렇게 말하고 있으니 이런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바울은 그 시대의 가부장적 사고의 한계 안에 머물러 있으며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우리는 이점에서 바울의 인간적 한계를 지적할 수 있으며 그 시대의 가부장적 사고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1800년이 지난 후 니이체도 남존여비의 구습을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즐거운 학문. 68, 70, 71, 72〉. 니이체는 동시대 영국 사상가의 여권에 대한 문헌 해독에는 무관심한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니이체 출생 150년 전 로크, 특히 같은 시대 밀에 의하여 여성기질(womanhood)은 환경의 산물이라고 주장하면서 여성이 받고 있는 교육과 훈련을 감안할 때 지금의 여성성격이 어떤 의미에서나 자연적이라고는 가정할 수 없다. 양성간의 도덕적 지적 차이가 지울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하여도 여성이 갖는 자연적 차이의 증거는 부정적이며 인위적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으로 언급되는 성차에서, 교육적 외적 환경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는 양성간의 모든 특성을 제거하고 남은 부산물을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줄어들며 그것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볼테르, 디드로 등 불란서 계몽사상가가 제기한 근대 여권신장 안이 잠시 반짝하였지만 나폴레옹 법전 속에 사장, 폐기된 것을 독일 사상가 괴테, 헤겔, 쇼펜하우어, 니이체도 제대로 주목하지 않았다. 니이체는 여러 곳에서 붓다의 분신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붓다의 파격적인 여성관의 내용에는 수미일관, 무관심을 표방하고 있다. 예수의 12제자 모두가 남성이고, 붓다의 10제자 모두 남성을 내세워 시대적 편견의 동일성을 내세울지 몰라도 불교의 설법자로서 비구니의 공인은 2500년 전 당시 사회적 사정으로는 파격적 혁신적인 내용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니이체는 근대와 현대의 전환기 속에 살면서 21세기 현대인이 풀기 어려운 난관에 결정적 힌트를 주고 있지만 이점(여권)에서는 결국 19세기의 인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스승의 약점을 아는 것은 제자의 강점이 될 수 있다.
양자간 중요한 차이점이 있으며 이점은 때때로 주목되지 않고 있다. 바울이 상승하는 종교의 문턱에 서 있다면 니이체는 하강하는 도덕의 일점에 서 있다. 전자는 종교 일원론을 후자는 종교다원론을 표방하고 있다. 이방인 바울은 개종 후 최초의 그리스도 교회를 세우고(사도행전 2:37-47) 지중해 연안 곳곳, 안티옥, 고린도, 예루살렘, 로마의 입성, 지구의 끝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아덴 선교(사도행전 17:16-34)시 재래식 공동신조로 개체영혼의 불멸에 기독교 핵심신조 육체의 부활을 주입한다. 이것은 물과 불의 결합이 아닌가? 서로 짜 맞춘 것은 조만간 조각이 나기 마련이다. 불바다 속에 심신단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그대의 확신은 이미 감옥이다. 결정적으로 바울 기록의 신빙성을 약화시키는 것은 그가 예수 부활 현장의 증인이 될 수 없다는 데 있다. 모멘트적인 것만큼 영구적인 것은 없다. 현장에 있었던 마태, 마가, 누가의 기록의 내용은 서로 같지가 않다. a)이들이 본 것이 무엇이냐? b)이들이 들은 것이 무엇이냐 도대체 c)부활의 성격이 무엇이냐? 십인 십색 이다. a)와 b)와 c)의 결합인가? a)도 b)도 c)도 아닌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한 가지 일치되는 것은 부활은 시체의 소생을 뜻하지 않는다. 예수의 영혼이 그의 신체를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 온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가 저녁에 집밖으로 외출하고 아침에 제집에 돌아오듯이 그런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신의 힘으로 바뀌어진 영광에 싸인 몸이지만 우리들 중 아무도 보지 못한 무엇, 환상․환각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기본적 관점에서 헤겔, 마르크스와 니이체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유개념(Genus)의 비중이 증대하면 증대할수록 상대적으로 개체의 비중이 축소되어진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종의 적극적 지지자이라면 니이체는 이를 심각하게 두려워하고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은 물리적 힘의 상징일 뿐 종교적 힘의 상징이 되기가 어렵다. 물론 같은 19세기 후반기를 성장의 모태로 한 점에서 양 진영 모두 진화론의 기본 지식을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도덕 계보학. 2절〉에서 이루어진 가치의 근본적 국면은 다윈식 가치에 대한 재평가이며 여기서 재평가는 동일한 지평에서 가치 작업이 아니라 가치 상황에서 극복이요, 수직적 초월을 말한다. 종의 개념은 다양성의 고리에서부터 단순한 추상이다. 1881년의 노트에서 그는 주장하길 여하간 종개념(Species)이 존재하지 않고 다만 개별자의 다양한 종류만이 있을 뿐이다. 자연은 종의 보존을 바라지 않는다. 니이체에게 종의 미래는 더 큰 레벨의 복합성을 구성하는 개별자에 있으며 이는 질서정연한 요소의 더 큰 총계를 뜻한다. 고상한 타입(초인)은 영속적인 것을 선호하는 진화의 알갱이 이기를 반대한다. 고상한 타입은 이와는 달리 저절로 시들며 오래가지 않으며 적시안타(a lucky stroke)에 불과하다. 그것은 유전으로 계승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정확하게 이러한 이유로 니이체는 강자를 약자의 축군으로 부터 보호할 것을 주장한다. 〈자연은 눈도 귀도 없다.〉 적시안타의 지성은 진화의 변이․기행이다. 만일 인간이 자연도태의 산물이라면 초인은 전혀 상이한 종류이다. 니이체와 다윈과의 대결의 문맥 안에서 영원회귀가 강자에 봉사할 선택의 대안임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들의 19세기를 특징지우는 것은 과학의 승리가 아니라 과학에 대한 과학적 방법의 승리〈권력에의 의지. 466〉라고 말할 수 있다. 실증주의 시대의 개막과 더불어 시대정신을 반영하고 오히려 이를 선도하려는 듯 각종 첨단장비를 동원하여 우주의 경계를 측정하려 한 천체 물리학자의 연구성과를 우리는 유의해 볼 필요가 있다. 복제인간이 환경문제와 더불어 21세기 화두에 오르고 있다. 인간게놈에 의한 신인류는 불원간 양산되어 우리와 대화가 가능하며 생사고락을 같이 할 처지에 있다. 일부는 그 결과를 우려하고 일부는 인간 승리의 개가로 득의만만 하다. 토착인종이 유개념이라면 신생아 게놈은 개별자라는 논의가 분분하다. 〈유전자 지도는 도로 안내판(road-map)이다. 우리는 그 위에서 보행을 할 수도 있고, 로울러 스케이팅을 즐길 수도 있고, 강력 모터로 고속 질주를 즐길 수도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사용될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인간게놈은 철학적 화두의 종결이 아니라 서막에 불과하다. 생명공학의 장래와 병행하여 니이체 우려가 집중적으로 논의될 수 있다. 그러나 니이체 서거 100주기(2000년 8월 15일)를 맞이하는 오늘의 시점에서 비극적인 일은 철학교수의 통찰도, 니이체 연구가도 새 천년 전후에 일어난 아주 분명한 불길한 사건의 함축을 제대로 밝히지 못하였다. 소낙비같이 떨어지는 그의 질문은 이러한 독기를 꿰뚫고 공기를 정화시키고 그간 누적된 지적오염을 청소할 수 있었는데도 아직 불발탄으로 매장되어 있다. 적절한 니이체의 말을 빌리면 짜라투스트라의 원숭이들은 문맥 속의 문장의 뜻을 찾아 볼 심성은 실종된 채, 니이체 초기, 중기 저작과의 연관성을 숙고할 도량도 기대할 수 없었다. 입에 맞는 대로 니이체 구절을 남용하였다. 쥬라기공원을 활보하는 파충류, 새로운 우상의 출현에 니이체의 분노․조롱․야유는 아직도 우리에게 고무적인 메시지나 다름없다〈권력에의 의지. 689〉. 달리 말한다면 세계라는 현상은 내적 경험의 단순한 심볼이 되고 있으며 사고하는 자아와 현상계의 간격을 메우려고 본래 의도된 메타포어는 상하좌우로 전면적 붕괴현상이 일고 있다. 붕괴가 나타난 것은 인간의 삶에 직면한 객체에 주어진 위압적 중압 때문이 아니라 절대적 우위를 가진 인간 영혼의 파트너쉽 때문이다. 이러한 근본적 인간중심주의를 지시하는 수많은 구절이 나온다. 하나의 예를 인용하면 기계적 이론(니이체의 경우 과학적 가정과 동일한)의 모든 전제-물질․원자․중력․압력․긴장(이제는 유전자지도도)들은 사실 자체가 아니라 심리적 허구의 힘을 가진 해석에 불과하다. 근대과학은 그 자신의 결과에 대한 사변적 반성에 유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오늘날의 과학자는 그들의 외적 세계는 내부 세계를 밖으로 들어낸 것에 불과하다(Lewis Mumford)는 점을 숙지․각성하여야 한다. 이 말은 현대어로 각색되었지만 플라톤의 지론이다. 플라톤에 의하면 하늘과 자연(땅)은 곧 인류의 고향이다. 하늘은 마음의 고향이고 자연은 우리 육체의 고향이다. 도시국가와 세계국가는 동일한 형상으로 이루어진 신들의 고향이며 전자는 소우주요, 후자는 대우주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Ⅴ.병상의 니이체
철학이 내놓을 수 있는 최후의 논증은 나 자신이다. 다른 어떤 대안도, 자연도, 신도 최후의 논증이 될 수 없음은 근대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우리에게 들려준 귀중한 교훈이다. 칸트, 헤겔 철학도 결국 최후의 논증 최후의 문제는 나 자신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주체가 객체를 완전히 파악하여 객체가 주체 안에 완전히 파악하여 객체가 주체 안에 완전히 반영되자 데카르트 철학에서 시작된 회의와 불확실성은 최종적으로 지양된다. 그렇지만 주체에 관한 근대철학의 어두운 면이 나타난다. "헤겔이 죽은 지 한 세대를 넘기기도 전에 우리 시대의 예언가 니이체는 광인의 말을 되 뇌이고 있다. 신은 어디에 있느냐고? 내가 말하지! 우리가 그를 죽였단 말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그의 살해자다. 지구가 태양의 결박을 끊는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앞으로 옆으로 뒤로 사방으로? 아직도 위와 밑이 있는가? 우리는 무한한 허무로 발산하는가? 빈 공간의 숨소리를 느끼지 않는가? 차가워지는 것이 아닌가? 신의 죽음과 더불어 몇 백년동안의 사고, 판단, 경험의 중심은 상실되었다."
에서 호모(요한 19:5)의 타이틀부터 비상한 제목이다. 십자가 형장의 예수를 내려다보면서 내 던진 빌라도의 말이 아닌가? 이 말은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는가? 빌라도가 자기에게 하는 말인가? 아니면 로마인 빌라도가 예수의 영혼을 보면서 하는 말일까?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나자, 이 사람을 보라! 고 외칠 때 이 말은 단순한 독일인을 기대한 말은 아니다. 에세 호모는 이보다 더 큰 문맥을 암시한다; 괴테, 예수, 디오니소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 등. 지금까지 추측으로도 부족하다. 니이체가 〈즐거운 학문. 340절〉에서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면서 감추어진 감성의 천재-피리 부는 나팔수의 음성이 모든 영혼의 저변에 하강한다. 감성의 천재가 우리의 영혼을 잠재우고 새로운 동경을 맛보게 한다. 그를 만날 때마다 우리의 영혼은 풍요롭고 무한한 희망으로 채우게 한다. 에세 호모의 부제; 나는 어떻게 하면 내가 될까? 제목부터 신과 자연을 세차게 자극시킨다. 우리는 자신을 창조하면서도 천성을 갖는다는 말은 대체 무엇인가? 자기창조란 무에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原木에서 시작하여 그것을 도려내어 제 얼굴에 이른다.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각가는 자기 얼굴을 만들기 위하여 돌을 도려내듯이 우리는 자기 얼굴에 대하여 엄격해야 한다. 마치 바위에서 얼굴을 깎아내듯이 우리는 실제의 자기를 도려내야 한다. 무에서 창조하는 神的인 예지, 정교, 정력, 이 모든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허무(nichts)가 아니라 있는 것(etwas)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자기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파괴해야 한다. 단아, 정숙, 순진무구한 시작은 누구나 가능한 일이 아니다. 노아의 홍수로 신이 시작하듯이 우리는 자기의 선함을 들어내기 위해서는 자기에게 값진 것을 부수어야 한다. 이점에서 에세 호모는 <플라톤의 변명>, <아퀴나스의 고백록>, <루소의 고독한 산보자의 꿈>, <괴테의 에케르만과의 대화>, 램브란트의 1600년대의 자화상, 반 고호의 1888년대 1-2월의 자화상과 비슷하다. 그런데도 작곡의 방식은 그림이라기보다는 음악적인 톤이 강하고 다른 작곡가 아무도 시도하지 못한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즐거운 찬미곡이다.
에세 호모는 철학작품 중 광적 징후가 농후한 작품으로 다가올 미친 시대의 징후가 넘쳐흐르는 작품으로 알려져 왔다. 이런 이유로 배척도 받고 똑같은 이유로 재평가의 대상이 되어왔다. 구약, 신약, 예수, 바울 등 성서에 관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마구 토해내는 니이체의 위장은 19세기보다 20세기에 와서 더 큰 중요성이 재발견된다. 지금까지 이러한 이름으로 지칭하여 온 모든 것을 설명하며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을 말하려는 저의가 역력하다. 니이체는 이점을 너무나 잘 알고 짜라투스트라처럼 자기에게 말하고 있으며 자기를 자기에게 설명하고 있다. 동시에 루소의 참회록처럼 자서전적 장르의 형식을 전복시키며 앞에서 본, 옆에서, 뒤에서, 심지어는 거꾸로 본 자기 모습이다. 문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닌 이 작품을 통독하려면 낙심천만이다. 결코 대작이 될 수 없다는 가정을 먼저 세우고 장시간 읽다보면 이 책이 보통의 책이 아님을 알게 된다. 4부로 된 이 책은 1)무지를 자랑한 소크라테스와는 달리 니이체는 왜 나는 그렇게도 현명한가? 2)아테네 법정에서 소크라테스의 겸손과는 달리 왜 나는 그렇게도 영리한가? 3)플라톤이 자기를 찾기 위하여 소크라테스를 빌리듯이 니이체는 쇼펜하우어의 이름을 거론하며 자기 입장을 개진한다. 4)마태(24:4)와 요한 계시록을 인용하며 예수가 역사를 두 조각 내듯이 자기의 임무는 1) 2) 3)을 합성하는 일이 자기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 작품 저술 후 몇 달만에 그는 미치게 되었고 11년 동안 코카사스 계곡에 포박된 프로메테우스의 후예임을 자처한다. 이러한 오만․과대망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살아가면서 철학을 하는 일이나 철학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전혀 성취할 수 없는 속물들의 망상(쇼펜하우어)이 아님을 현시하기 위하여 플라톤의 이상국가(496a), 파이돈(244d)을 통독하고 가장 대담스러운 해설가로 나타난다. 1)진정한 철학자는 소수에 불과하다. 고상한 성격에 소양을 갖춘 자도 유배지(추방)에 억류되어 로빈슨 쿠루소처럼 홀로 지낼 때에 오염된 외부 영향력은 배제된 상태에서 자기 생각에만 헌신하는 사람 2)경멸하고 비천한 도시에서 태어나 그들이 경멸하는 기예(재주)를 버리고 철학 하는 사람 3)운 좋게도 테아게스(Theages)처럼 자질을 갖추고 있지만 건강이 나빠서 공적인 일에 참여를 못하는 사람 4)소크라테스의 경우 더 이상 언급이 불필요한 희귀한 사례로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生의 새로운 창조자 대중의 광적 상태를 충분히 알고 세속적 정치에 합류를 거부하며 철학(고독)이 얼마나 값진 보물인지 음미하는 안분지족의 자세이다. 이 단계에서는 고통(병)이 중요하다. 미친 시대 속에 살면서 미친 병(발작)을 두려워한다면 시대의 선각자 되기를 두려워하는 겁쟁이다. 먼저 병들지 않았다면 근본적인 치유도 주장할 수 없다. 니이체의 경우 병이란 데카당스이며 동시에 휴식(안정)을 뜻한다. 그가 자기 병을 먼저 치유할 수 없다면 타인의 병도 말할 수 없다. 나는 그림을 그리며 연주하고, 연주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잠을 잔다. 셰익스피어, 괴테, 베이컨경의 작품을 읽고 시를 지을 수 있어도 광기 없이는 대시인이 될 수 없다〈파이돈244d〉. 나의 광기와 시는 별개가 아니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동시에 미친 것이 아니라 작품구상 이전에 이미 미쳤고 그러한 광기, 독기가 나의 페이지 곳곳에 퍼져있다. 데카당스가 되기 위해서는 나처럼 거짓말이 필요하다. 이제 나의 뜻을 알겠느냐? 미치지 않고 철학을 한다고? 그것은 장님들에게 저녁노을의 찬가를 들려주는 격이다. 나를 (그저) 사람으로 보는 것은 편견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 사이에 살아왔고 그들이 경험한 저속하고 고상한 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인도인들 사이에는 나는 석가모니였고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였고 알렉산더, 시저는 나의 분신이며 마찬가지로 나는 셰익스피어, 베이컨경의 후신이다. 최근에는 나는 볼테르, 나폴레옹, 바그너이기도 하였다. …… 그러나 이번에는 나는 지상에 축제를 올리는 디오니소스로 태어났다. 나의 시간이 많지 않다. 하늘도 내가 여기에 있음을 반긴다. 나는 지금 십자가에도 매달려 있다〈비판총서(편지)Ⅲ15 572f〉. 그렇다면 이 편지는 정신이상의 징후가 아닌가? 사람이 신으로 태어나기 전에 물고기로 태어났다고 외친 그의 조상 엠페도클레스의 말을 반복하고 있음이 아닌가? 발작 직전 그리고 발병이후 니이체가 종종 내세우고 있는 덕은 고독이다. 〈선악의 피안〉에서 그는 고독을 플라톤식 덕의 4중주 가운데 중용과 대치하고 있다. 고독이라는 이름으로 파스칼의 찬양도 출몰한다. 니이체는 순수한 덕, 바로 이 덕에 매료된다. 도대체 미친 병처럼 고독한 병이 있을까? 이점에서 니이체는 병을 가장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고
독은 정말로 위험스럽다. 니이체 말처럼 당신을 고독에 이끄는 일은 희귀한 분위기, 사막의 선인장의 이슬을 먹고 자란다. 인종의 서식지, 성곽 밖에 사는 사람은 짐승이거나 신이다. 왜냐하면 정치적 인간과 이성적 인간은 서로 같은 말이기 때문에 후자 없이 전자만 되기 어렵다〈이리스토텔레스, 정치학 1권〉. 니이체는 1888년 가을 〈우상의 여명〉에서 이도 저도 아닌 제3자의 경우가 있으니 동물과 신을 한 몸에 겸비한 철학자가 되는 길이다. 이러한 내용의 포스트 카드를 수신인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명할 때쯤 니이체는 정말로 벙어리․동물이 되고 만다. 매우 이성적이어서 대화를 건넬 사람이 없다는 말이나 반대로 너무 비이성적이어서 알 수 없다는 말 사이에는 차이점이 있지만 알맹이는 동일하다. 예수의 심장에 시저의 투구를 쓰고 대대적인 선전포고를 낭독한 것도 잠시 1889년 1월 이후 동면전․휴전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은 그의 의도를 의심할는지 모른다. 사실 에세 호모를 밤새 외치면서 그는 죽을 각오로 임하였다. 죽으려고 하지 않는 한 내가 이일을 다시 원할까? 이 물음은 이때 아니고 어느 때 의미가 있겠는가? 그가 X-mas, 성탄절 직후 쓰러졌다는 점, 채직에 놀란 말의 뒷발에 채였다는 점, 그리고 난 뒤에도 몇 시간동안 바그너 곡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염라대왕이 그를 포박하여 십 년 동안 서서히 그의 육신을 마모시키려한 점을 시사한다. 대쪽처럼 부수어 질지언정 휠 수 없다는 초인의 지침도, 적시에 때맞추어 죽어야 한다는 그의 사생관도 병상에 매인 육신을 회생시킬 수 없었다. 니이체는 정말로 미친 병을 앓았는가? 그것은 신체마비일까? 정신마비일까? 아니 그 외 다른 것일까? 그가 졸도 직후 찾아온 동료, 피터 가스트(Peter Gast)와 프란츠 오버베크(Franz Overbeck)는 니이체가 꾀병을 앓는다고 생각하였다. 이는 옳은 말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말하였고 〈우상의 여명(14)〉에서는 심지어 찬양하지 않았던가? 더욱이 그는 神의 죽음이라는 부고장을 미친 사람에게 들려주지 않았던가〈즐거운 학문. 125〉. 왜 니이체는 꾀병을 앓았을까? 만일 그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를 악취, 인분, 폐수가 흐르는 시궁창․하수구로 단정하였다면 그러한 거친 말에 함구령은 당해 싸다. 적그리스도에 대한 보복전을 액땜하기 위하여 꾀병을 부린 것일까? 마지막 일침을 가하고 파드득거리는 벌처럼 니이체는 한 줄의 일기를 휘갈길 손마디의 여력도 마비된 채 말 한마디도 제대로 내지 못하였다. 중년의 니이체 저작과 사고, 병상의 신음과 탄성소리의 차이점은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가장 생생한 사례가 아닐까? 얼병과 속병의 차이는 평상시 니이체 자신에게 물어 보아도 시원한 답을 얻기가 어렵다. 이때를 알고 미리 토해놓은 말이 걸작이다; 착란은 개인의 경우에는 예외이며 단체, 민족, 시대에는 通例이다고〈선악의 피안.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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