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개 무덤 - 허연
여자애는 솔새만큼이나 작았지만 바다만큼 눈물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를 처음 봤던 날 방파제 보안등 아래서
우리는 솜털을 어루만지며 울었다
그날 여자애의 동공 속에서 두려운 세월을 보았고,
얼마 안 가 그 세월이 파도에 쓸려가는 걸 봤다
살고 싶을 때 바다에 갔고, 죽고 싶을 때도 바다에 갔다.
사라질세라 바다를 가방에 담아 왔지만 돌아와 가방을 열면
언제나 바다는 없었다
상처를 훑고 간 바닷물이 절벽에 밀회를 그려 넣었고
몇 해가 흘렀다. 그 옆엔 은밀한 새들이 둥지를 틀었고
파도는 뼛속에도 결을 남겼다. 잊어버릴 재주는 없었다.
바다는 우리들의 패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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