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저녁나절/박형준

나뭇잎숨결 2023. 6. 28. 15:55

저녁나절

 

                      -

- 박형준

 

 

반지하 창문 앞에는

늘 나무가 서 있었지

그런 집만 골라 이사를 다녔지

그 집들은

깜빡 불 켜놓고 나온 줄 몰랐던

저녁나절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던가

산들바람이 부는 저녁에

집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이 서성대며 들어가지 못했던가

능금나무나 살구나무가 반지하 창문을

가리던 집,

능금나무는

살구나무는

산들바람에

얼마나 많은 나뭇잎과 꽃잎을 가졌는지

반지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떨어지기만 했지

슬픔도 환할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없는데 환한

저녁나절의 반지하집은 말해주었지

불 켜진 저녁나절의 창문을 보면

아직도 나는 불빛에 손끝이 가만히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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