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나절
-
- 박형준
반지하 창문 앞에는
늘 나무가 서 있었지
그런 집만 골라 이사를 다녔지
그 집들은
깜빡 불 켜놓고 나온 줄 몰랐던
저녁나절을 얼마나 많이 갖고 있었던가
산들바람이 부는 저녁에
집 앞에서
나는 얼마나 많이 서성대며 들어가지 못했던가
능금나무나 살구나무가 반지하 창문을
가리던 집,
능금나무는
살구나무는
산들바람에
얼마나 많은 나뭇잎과 꽃잎을 가졌는지
반지하 창문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떨어지기만 했지
슬픔도 환할 수 있다는 걸
아무도 없는데 환한
저녁나절의 반지하집은 말해주었지
불 켜진 저녁나절의 창문을 보면
아직도 나는 불빛에 손끝이 가만히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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