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하얀 당신 / 허연

나뭇잎숨결 2023. 9. 24. 09:03

하얀 당신/ 허연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

 

죄는 검은데

네 슬픔은 왜 그렇게 하얗지

 

드물다는 남녘 강설强雪의 밤. 천천히 지나치는 창밖

에 네가 서 있다 모든 게 흘러가는데 너는 이탈한 별처

럼 서 있다 선명해지는 너를 지우지 못하고 교차로에

섰다 비상등은 부정맥처럼 깜빡이고 시간은 우리가 살

아낸 모든 것들을 도적처럼 빼앗아 갔는데 너는 왜 자

꾸만 폭설 내리는 창밖에 하얗게 서 있는지 너는 왜 하

얗기만 한지

 

살아서 말해달라고?

이미 늦었지

어떻게 검은 내가 하얀 너를 만나서 함께 울 수 있겠니

 

재림한 자에게 바쳐졌다는 종탑에 불이 켜졌다

 

피할 수 없는 날들이여

아무 일 없는 새들이여

 

이곳에 다시 눈이 내리려면 20년이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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