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noza의 형이상학 실체의 속성에 대한 연구
김익현 건국대
Spinoza's Metaphysics
(A Study on the Attributes of Substance)
Kim, Ik Hyun
2-289-0001-09
pp.179-193
<목차>
I . 들어가는 말
Ⅱ.속성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해석의 문제
Ⅲ , 속성과 성질
Ⅳ. 속성의 종류와 특성
V.속성의 동적 특성
Ⅵ. 속성과 관련된 난점
Ⅶ. 나오는 말
<Abstract>
This study gives a account of the Attributes of Substance which is one of the fundamental concepts in Spinoza's metaphysics.
My Purpose in this study is to examine what the attibute is.
In Spinoza, above all, a distinction is made between the properties and attributes of God. Properties are general characteristics, describing either thenecessary existence of substance, by way of extrinsic denomination. But attributes express what God or substance is in its own nature.
According to Spinoza, attributes are not only each infinite in its kind, but the yare also infinite in number. Only two of them, thought and extension are known to man
Spinoza defines attribute as what the intellect perceives of Substance as constituting its essence. But this does not mean that an attribute is mere product of intellect.
An attribute as God's essence is not thing but his Power Thought is the power of producing idea, extension is the power to produce motion and rest(physicalenergy). The power of God in act is what Spinoza calls natura naturans Theresult of it he calls natura naturata.
The attribute of thought should be more comprehensive than any of the others, It contains ideas of all modes in every other attribute.
I . 들어가는 말
스피노자철학의 최종목표가 '예속상태로부터의 인간의 구원' 혹은 '인간의 행복'이라는 데 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것은 그의 주저(主著)의 제목이 『에티카』(Ethica)라는 것만 보 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목과는 달리, 그 책에는 윤리학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등 사실상 그의 철학 전체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특히나 제1부의 제목이 '신에 대 하여'(de Deo)라는데서도 알 수 있듯이 『에티카』에서 제일 먼저 비중있게 다루어지는 것 은 형이상학이다 이 형이상학의 틀 안에서 그의 철학은 전체적인 모습을 갖춰 나간다 그러 므로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에 대해 올바른 이해를 갖는 것은 스피노자 철학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논자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을 다루어 보고자 한다. 스피노자의 형이상학 에 따르면, 존재하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 자신 안에 존재하거나 아니면 다른 것 안에 존재한다. "1) 즉 존재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용어로 말하면, 실체(신 또는 생산하는 자연)와 양태(생산된 자연) 뿐이다. 그러나 실체와 양태는 두 가지 전혀 다른 존재자가 아니다.
그것들은 동일한 평면 안에 존재한다. 양태는 실체의 변용된 모습이고, 실체는 양태의 모습 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체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은 어디에 존재하는 것일까?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실 체는 자기 원인(causa sui)이므로 그 힘은 외부로부터 실체에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실체 내에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스피노자가 실체의 본질이라고 칭하는 속성(attributum)이다. 바로 이속성의 작용을 통해 실체는 무한하건 유한하건 간에 양태들을 산출한다.
이렇게 볼 때, 실체로부터 양태가, '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으로부터 '생산된 자연 '(natura natvrata)이, 즉 일(-)에서 다(多)가 나을 수 있는 근거로서 스피노자가 설정하고있 는 것이 바로 '속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속성의 특성과 의미를 밝히는 것이 본 논문 의 목표가 될 것이다
Ⅱ.속성에 대한 정의를 둘러싼 해석의 문제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할 것은 스피노자의 '속성에 대한 정의'를 해석하는 시 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속성의 지위에 관한 문제이다. 속성의 지위에 대한 상반된 해석으 로는 두가지가 있는데, 주관주의적(관념론적) 해석과 객관주의적(실재론적) 해석이 그것이다 먼저 주관주의적 해석을 살펴보도록 하자.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은 "각각이 영원하면서도 무한한 속성으로 이루어진 실체"2)이다. 다 시 말해서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서로 다른 무한수의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속성을 지닌 하나의 실체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신의 단순 성과 속성의 다수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정 에서 등장하는 것이 속성에 대한 주관주의적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속성을 주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신의 속성들 사이에서 이끌어 내는 모든 구분은 실재적 구분이 아니라 이성적 구분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스피노자의 속성개념을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는 스피노자의 속성에 대한 정의의 애매함에 있다. 스피노자는 『에타카』 제1부 정의 4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속성이란 지성이 실체에 대하여 그 본질을 구성하고 있다고 지각하는 것이라고 이해된다 (Perattributum intellio id, quod intellectus de substantia percipit, tanquam ejusdemessentiam constituens) ."
여기서 '지성이 지각한다'는 귀절에 강조를 두느냐,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이라는 귀절에 강조를 두느냐에 따라, 즉 속성이 '지성 속에(in intellectu)'존재하느냐, '지성 밖에 (extraintellectum)'존재하느냐에 따라 속성에 대한 주관주의적 해석과 객관주의적 해석이 가능할 수있다 전자는 '지성이 지각한다'는 것을 '지성이 만들어낸다'는 의미로, 후자는 '지 성이 지각한다'는 것을 '지성이 발견해낸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3)
따라서 주관주의적 해석의 요지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즉 속성의 다수성은 비실재 적이다 오직 하나의 미분화된 본질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속성의 무한한 다수성은 어디 서 유래하는가? 그것은 지성의 산물에 불과하다. 다시 말하면 속성들 사이에는 어떠한 구분 도 없다. 그러한 구분은 단지 지성이 만들어 낸 것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속성을 실재론적이거나 객관주의적으로 해석하는 주석가들에 따르면, 속성은 신, 즉 실체의 실질적이고도 객관적인 본질을 구성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들에 따르면, 지성에 초점을 맞춰 속성에 대한 정의를 해석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왜냐하면 지성은, 그것이 설사 무한한 신의 지성이라 할지라도, 존재론적으로 속성의 뒤를 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상 속성들이 지성이 실체에 대해 갖는 관념으로부터 따라 나오는 것이라면, 지성은 속성들에 앞서는 것이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지성은 속성의 양태임에도, 지성이 그 속성에 앞서는 것이 되고 만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4)
또 파킨슨은 속성에 대해 주관주의적 해석을 하는 사람들은 스피노자가 사용하는 지성의 성 격을 올바르게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5) 속성에 대한 정의 속에 나 오는'tanquam'이라는 용어는 속성이 주관적이라는 의미에서, 실재적 상태를 나타내는 '로서 (as)'가 아니라, 사실에 대한 비유를 나타내는 '처럼(as if)'으로 해석될 수 있다. 6) 그러나 'tanquam'을 이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지성에 대한 견해를 잘못 이해하고 있 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물을 진실로 지각하는 것, 즉 사물을 그 자체에 있어서 있는 그대로 지각하는 것이 지성의 본성에 속하는 일이다. "7) 따라서 지 성이 실체를 상호 독립적인 무한히 많은 속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각하기에, 실 체는 실제로 지성이 지각하듯이 그렇게 속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속성은 신, 즉 실체의 실질적 본질을 구성한다는 속성에 대한 객관주의적 해석에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스피노자가 데카르트학파에 속하면서토 데카르트를 넘어서는 것은 속성들이 데카르트에게 있어서처럼 신을 통해 존재하고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각각이 자 기자신을통해 인식되며, 어떠한 외적 제한도 없다는 것이다. 각각의 속성이 다른 것의 도움 없이 존재가능하다면, 즉 실재적으로 구분된다면, 그것들은 어떻게 하나의 실체를 통일적으 로 구성하는 것일까?
이 문제에는 두 가지 해결방안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는 전통신학의 입장을 수용하 는것이다. 전통신학의 입장은 신을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로 인식하고 영원하고 무한한 본 질을 표현하는 어떠한 속성도 신에 대하여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8) 따 라서 속성의 다수성이 다수의 실체를 의미한다는 데카르트의 원리는 무한실체인 신의 경우 에는 적용될 수 없게된다. 그러나 전통신학과 스피노자의 차이는 명확하다. 마이모니데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중세 철학자들은 속성들 사이의 '이성적 구분'을 주장하나 스피노자는 '실 재적 구분'을 이야기한다. 9)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해결방식이 전통신학과 스피노자 사이의 외면적 일치만을 보여주는 부적절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둘째는 서로 실재적으로 구분되는 속성들 사이의 통일의 근거로서의 인과관계를 제시하는 것이다.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 '이 문장에서 우리는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속 성과 실체의 본질 자체와의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속성이 실체의 본질을 구성한다'함은 속성이 바로 실체의 본질 자체라는 것을 의미하지도, 또 실체가 속성들의 단순한 집합이라 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속성들의 통일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어떠한 속성 아래 에서 해석되든 실체는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통일의 근거는 무엇인가?
그 근거는 속성들이 실재적으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서로 일치한다는 데서 찾아져야 할 것 이다. 10) 게루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적 실체 자체를 고찰해 보자. 각각의 속성은 그들의 본질에 관해서는 절대적으로 다르지만, 각각이 모든 자신의 양태를 산출하는 인과관 계에 관해서는 일치한다 따라서 각각에 있어서의 자기원인의 동일성 때문에 속성들은 동일 한 자족적 실체11)를 구성한다. "12) 모든 속성을 포함하는 오직 하나의 본질적인 공통된 질 서만이 있다면, 그러한 질서는 각각의 모든 속성이 표현하는 것일 것이다. 따라서 신은 모든 실재적으로 구분되는 속성들이 동일한 질서를 표현한다는 사실에 의해서 통일된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논자는 속성을 성질이라는 개념과 대비시킴으로써 스피노자의 속성이라는 용 어사용의 독창성을 살펴 보고자 한다.
Ⅲ , 속성과 성질
스피노자3 032; 속성에 대한 정의로부터 우리는 그가 사용하는 속성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단순히 특정한 사물에 속하는 성질이라는 개념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스피노자의 속성이라는 개념은 신에게만 적용 가능한 개념이다 전통적으로 속성이 란 언제나 무엇인가(실체)의 속성이다. 스피노자도 이 전통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실체를"자기 자신 속에 있고, 자기 자신에 의해 생각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개념을 형성하 는 데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하자마자, 그가 사용하는 속성이라 는 개념도 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이를테면, 속성이 실체의 속성임에는 변함이 없지만, 실체가 개별사물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족적인 존재자, 즉 신인 한, 속성도 신의 속성이 된 다.
둘째로 속성은 신의 단순한 성질이 아니라 본질이라는 것이다. 스피노자는 속성과 성질 (proprietas)을 구분한다.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성질은 우연적이라거나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것이 아니다. 성질이란 본질이 정해지면 그로부터 따라 나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그의 정의관 속에서 잘 나타난다. 그가 말하는 좋은 정의란 "사물의 내적 본질을 나 타내는"13) 정의이다. 이러한 정의를 우리는 사물의 원인, 혹은 발생적 요소를 드러낸다는 의미에서 발생적 정의 혹은 생성적 정의14)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정의로부터 정의 된 사물의 성질들이 따라 나온다. 이를테면, 생성적 정의에 따르면, '원은 한 쪽 끝이 고정 되고 다른 끝이 움직이는 임의의 선에 의해 그려지는 도형'으로 정의된다. 그리고 이러한 정의로부터 '원의 중점으로부터 원주를 향해 그은 모든 선이 같다'는 원의 성질이 귀결된다. 15)
이것은 창조되지 않은 사물, 즉 신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발생적 혹은 생성적 정의에 따르면 신은 무한한 속성들로 구성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로부터 신은 무한하다던가 신은 자신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활동한다든가 하는 성질들이 따라 나온다. 이러한 구분 의 예는 『에티카』 제 1부 부록 첫머리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상으로써 나는 신의 본성을 제시하고 그 성질들을 설명하였다. 즉 신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 유일하다는 것, 오직 자기의 필연성에 의해서만 존재하고 활동한다는 것 .그러한 여러가지 성질들을 설명하였다. " 여기서 물론 신의 본성은 신의 속성을 의미한다 또한 『지성개선론』에서도 그는 신에게 적용되는 '하나'라든가 '무한'은신의 본질이 아니라 신의 본질로부터 따라 나오는 신의 성 질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16)
여기서 스피노자가 신의 성질들로 제시하고 있는 것들은 일반적으로 중세철학자들이 신의 속성이라고 불렀던 것들이다. 17) 이러한 속성의 수는 무한히 많다. 알려지는 것은 그것의 일부일 뿐이다. 그러나 알려져 있다고 이야기되는 몇 가지 속성도 중세철학자들에 따르면 신의 진정한 본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원칙적으로 신은 인간에 의해 파악될 수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중세철학자들은 신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원칙적으로 불가능한 것 으로 간주한다. 신과 인간, 신과 우주를 명확하게 분리시키고 있는 중세철학자들에게는 사실 상 인간이나 우주를 통해서 신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이 봉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신의 본질에 접근하는 길을 모색해 나간다. 그 하나는 부정의 길이요, 다른 하나가 유추의 길이다 전자는 신과 세계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는 까 닭에 신은 부정적으로만 정의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정신학의 입장이고, 후자는 신과 세 계가 다르긴 하지만 유추를 통해 신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갈 수 있다는 긍정신학의 입장이 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있어서는 신의 본질에의 접근이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왜냐하면 스피 노자의 신, 즉 실체는 내재적 원인으로서 속성들을 통해 양태들 속에서 스스로를 감춤없이 완전하게 표현하기 때문이다. 속성은 실체와 양태를 이어주는 것으로, 그것은 실체와 양태에 공통적이다. 그러므로 스피노자는 신의 본질을 개별사물의 본질에 대해 우리가 얻을 수 있 는 인식만큼이나 긍정적인 것으로서 자연을 통해 인식될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의 본질을 구성하는 속성들은 신의 형식들 이며, 또한 그것들을 본질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양태들, 즉 창조물들에 공통되는 형식들이다 "18)
여기서 우리는 초자연적 실재를 내세워 자연적인 것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것에 저항하는 스 피노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Ⅳ. 속성의 종류와 특성
그러면 다음으로 스피노자가 실체의 본질을 구성하는 속성이라고 하는 것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으며 또한 속성은 어떠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보도록 하자. 이것은 그 성격상 실체와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할 문제이다. 먼저 데카르트의 실체관을 중심 으로 스피노자가 어떻게 데카르트의 영향하에 있으면서도 그를 넘어서고 있는가를 살펴 보 도록 하자
실체란 "존재하기 위해 다른 어떤 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 것"19)이라는 데카르트의 정의에 따르면 실체란 정의상 인과적으로 자존적인 것이다. 이러한 정의를 따를 경우, 신만이 실체 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실체의 의미를 완화시켜 "존재하기 위해서는 단지 신의 도움만을 필요로 하는것들", 즉 창조된 실체에까지 확대시키고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데카르트는 신 뿐만이 아니라 피조물, 즉 정신과 육체를 실체에 포함시키고 있으며, 그들 각각에 사유와 연장이라는 속성이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신에게 물체의 성질, 즉 연장을 포함시키 지 않고 있다. 데카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물체의 본성상, 가분성은 장소의 연장 속에 포함되며, 또 그 가분성은 불완전성을 가리키기에, 우리는 신이 물체가 아님을 확신한 다"20)
따라서 전통철학에서의 실체와 신의 관계 속에서 나타났던 모순이 데카르트에게도 그대로 남아 있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비물질적인 신으로부터 물질적 인 세계가 따라 나을 수 있는가를 스피노자는 이해할 수 없었다. 창조와 같은 신의 기적적 활동으로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일관성 있는 합리적 설명체계를 포기하는 것 아닐까? 합리 적이고 일관성있는 체계를 존중한다면 신에게 연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 경우 그렇다면 불완전성을 의미하는 연장의 가분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될 수 있을까? 신과 연장의 가분성이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형이상학적 문제를 스피노자는 자신의 인식론 을 통해서 해결한다. 그는 1종의 인식인 표상으로 파악된 연장과 2종의 인식인 지성으로 파 악된 연장을 구분한다. 1종의 인식인 표상지는 연장을 유한하고 부분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으로 파악하는 반면에, 2종의 인식인지성지는 연장을 무한하고 부분이 없으며 본질적으로 나누어질 수 없는 것으로 파악한다. 후자가 바로 신의 본질인 속성을 구성하는 연장이다. 유 한성, 가분성은 연장을 신체의 눈으로 보거나 표상할때 나타나는 것으로, 그것을 정신의 눈 으로 보거나 영원의 방식으로 파악하면 사라진다. 스피노자의 연장은 가분적이지도 부분들 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있다. "물체적 실체는 그것이 실체 인 한, 분할될 수 없다(substantiam corpoream, quatenussubstantia esc, non Posse dividi)."21) 그러나 이 경우 물론 스피노자가 유한한 양태로서의 세계의 실재성을 부정하지 는 않았지만, 영원의 관점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세계는 비실재적인 것이 되 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는 환상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은 스피노자의 본래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겠지만, 스피노자가 연장을 신의 속성으로 도입한 대 가로 지불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볼 때, 그는 두 가지 목적에서, 즉 전통철학에서의 실체와 신의 관계 속에 있던 난점 해결을 위해 또 실체에 대한 정의에 충실하기 위해 사유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는 거부되었 던 연장까지도 신의 속성에 포함시킨다.
그러면 신의 속성은 사유와 연장 두 가지 뿐일까? 그렇지 않다. 스피노자는 인간존재에 대 한경험을 근거로 하는 데카르트와는 달리, 신의 필연적 존재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속성의 수가 무한함을 주장하고 있다. 비록 우리에게는 두 개만이 알려져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 지성의 유한성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신의 속성이 무한히 많다는 것이 추론될 수 있는 가? 속성이 수적으로 무한하다는 것은 스피노자에 의해 연역적으로 논증된다. 『에티카』, 제 1부 명제 9는 '그 어떤것에 속성이 많이 속하면 속할수록 그것이 보다 실재적임'을 보여 준다. 그런데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 가장 완벽한 존재는 또한 가장 실재적이다. 왜냐하면 실재와 완벽함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22) 그러므로 절대적으로 무한한 존재인 신은 수적으 로 무한한 속성을 갖는다.
이렇듯 무한히 많은 속성들은 어떠한 특성을 갖는가? 속성이란 실체에 대하여 그 본질을 구 성하고 있는 것이다(정의 4). 따라서 그 개념을 형성하는 데 다른 것의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실체에 대한 정의(정의 3)에 따라 "실체의 각 속성은 그 자체에 의해서 생각되지 않으면 안된다23)는 것이 추론된다. 이로부터 우리는 속성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특성을 간취할 수 있다.
i) 실체에 있어서 본질적이라는 것.
ii)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
전자는 『에티카』 제 2부 정의 2에 따라 속성이 실체에 필연적이며, 그것과 동연적임을, 후 자는 각각의 속성이 다른 속성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생각된다는 의미에서 논리적 실재적 독립성을 나타낸다.
스피노자의 의도는 속성의 이 두 가지 특성을 모두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실체가 단순함을, 즉 신의 내적 다수성을 인정하면서도 내적으로 통일되어 있음을 보여주려는 데 있었던 것 같다.
V.속성의 동적 특성
스피노자가 말하는 실체의 본질로서의 속성을 면밀히 검토하면 우리는 그것이 정적인 개념 이 아니라 철저하게 동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스피노자는 본질, 실재성, 힘 및 활동성을 동일한 개념으로 간주한다. 이에 대한 그의 논증은 다음과 같다. '더 많은 완전성 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만큼 더 많은 실재성을 가지게 되고, 또 더 많은 실재성을 가지면 가질수록 그 ; 만큼 많은 속성(본질)을 가지게 되어 작용하는 것이 그 만큼 더 많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신이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만큼이나 불합리하다 필 연적으로 존재하는 절대로 무한한 신은 스스로 무한한 방식으로 활동하는 절대적인 힘이다. 그 힘에 의해 자기 자신과 모든 사물이 존재하고 활동한다.
그 힘(potentia)을 이루고 있는 것이 바로 신의 본질인 속성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두 속성 은 하나의 실체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두 종류의 힘이다. 스피노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의 사유하는 힘은 신의 활동의 현실적 힘과 동일하다. "24) 속성으로서의 사유의 동적인 측면은 스피노자가 직접적 무한양태라 칭하는 신의 지성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를테면 신의 지성은 단순한 수동적 능력이 아니라 사유하는 활동을 의미한 다. "신의 지성은 항상 모든 사물을 명석-판명하게 이해하는 것을 하나의 기능으로 삼는다. "25)
또한 사유의 동적인 측면은 그것의 양태인 관념 속에서도 드러난다. 그에게 있어서 관념은 '캔버스 위의 말없는 그림과 같은 것'이 아니라 능동적 사유이다. 일관성 있게 실재를 동적 인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스피노자 형이상학의 주목할 만한 특징들 중의 하나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가 사물을 정의하는 데서도 잘 나타난다.
스피노자가 선호하는 정의 방식은 생성적 정의이다. 생성적 정의는 정의되는 사물의 작용인 을 표현하는 것으로 사물이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기술하는 것이고 따라서 본질적으로 동 적이다. 이를테면 원에 대한 생성적 정의는 다음과 같다 즉 "원은 한 끝이 고정되고 다른 끝이 움직이는 임의의 선에 의해 그려지는 도형"26)이다
또한 스피노자는 실체의 또 하나의 알려진 속성인 연장에도 역동성을 부여한다. 스피노자의 연장에 대한 생각은 데카르트의 그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신은 물질 적 일수 없다. 왜냐하면 물질은 분리가능하고 가분성은 불완전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 서 데카르트는 신이 물질을 창조하고 그것에 일정량의 운동과 정지를 부여했다고 생각한다. 27) 이는 중세철학자들의 창조적 우주론과 유사하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연장은 신의 피조물이 아니다. 그것은 신의 본질이다. 그것은 그자체로 가분적이지 않다. "물체적 실체는 그것이 실체인 한 분할될 수 없다. "28) 또 그것 은 신이 운동과 정지를 부여한 무기력한 물질이지도 않다. 울프는 연장의 역동성의 증거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연장에 대한 역동적 해석은 논리-수학적 해석이 설명 할 수 없는 운동정지와 연장 사이의 관계 - 어떻게 운동이 논리적으로 연장으로부터 도출 될 수 있는가? - 를 이해하기 쉽게 해준다. 운동은 연장을 수반하지만 연장이 운동을 수반 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스피노자가 논리-수학적 관계만을 받아들였다면, 운동이 속성이고 연장이 그것의 양태였을 것이다"29)
또한 연장이라는 속성의 동적 측면은 스피노자가 직접적 무한양태라 칭하는 운동과 정지에 서도 잘 나타난다. 여기서 운동은 운동에너지'를 정지는 단순한 운동의 결핍이 아니라 '위치 에너지'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스피노자의 연장은 직접적 무한양태인 운동과 정지 속에서 스 스로를 드러내는 물리적 에너지임을 알 수 있다. 스피노자가 전우주의 얼굴이라고 칭하는 간접적 무한양태 역시 창백하고 정적인 얼굴이 아니다. 무한양태로서 전우주의 얼굴은 불변 하고 영원한 것 이지만, 그 곳에서는 운동과 정지의 끊임없는 비율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아마도 전우주의 얼굴의 상태를 동적 평형상태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Ⅵ. 속성과 관련된 난점
마지막으로 논자가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사유라는 속성의 우월성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 제는 스피노자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라지는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 중의 하 나이다. 주로 벡과 같은 관념론적 성향을 가진 연구자들은 사유가 우월한 속성이라는데 무 게를 두고, 들뢰즈와 같은 유물론적 성향을 가진 연구자들은 사유의 우월성을 부정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논자는 먼저 '신의 지성이 사물의 원인일 수 있는가?'를 다음으로 '어떤 의미에서 사유의 우월성이 인정될 수 있는가?' 를 살펴 보고자 한다.
논쟁을 야기시키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다음파 같은 언명이다. ◎띨 지성은, 그것이 신의 본질을 구성한다고 생각되는 한,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원인이다. "30) 이 문장 은 마치 스피노자가 신의 지성이 사물의 본질과 존재의 발생에 있어서 인과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신의 지성이 신의 본질을 구 성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한에서 그럴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신의 지성은 '능산적 자연(생산하는 자연)'에가 아니라 '소산적 자연(생산된 자연)'에 속한다. 다 시 말해서 신의 지성은 무한양태이긴 하지만 양태로서 신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 따라서 신의 지성은 신의 활동원리가 아니다. 신은 본성의 필연성에 의해 활동할 뿐, 지성에 의해 활동하지 않는다.
또한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속성은 존재하는 힘이고 존재하는 힘이라는 측면에서는 연장과 사유 중 어느 것에 우선성을 줄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사유는 단지 자신도 존재하는 것으 로서 존재하는 것을 상념적이고 인지적인 술어로서 재생산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존재는 사유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유 또한 존재원리 속에 포함되고 있다. 들뢰즈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신의 절대적 본질은 그것의 본성을 이루는 속성들 안에서는 형식 적이고, 그것의 본성을 필연적으로 재현하는 관념 안에서는 상념적이다. "31)
그러나 논자는 다른 관점에서는 사유의 우월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사유의 우월성은 '관념'의 특성에서 드러난다 관념은 사유활동으로서 관념되어진 것의 형상적 본질 32)을 표현한다. 즉 모든 관념은 본성상 관념되어진 것'에 대한 '관념'이다. '관념'(idea)과 ' 관념되어진 것'(ideatum)은 모두 동일한 신의 양태이기에 신의 관념, 즉 신의 지성은 모든 대상을 반영하고 이해한다. 신의 관념이 사유작용 뿐만 아니라 사유되어지는 것을 나타내기 에 사유는 신의 다른 속성보다 우월하다. 다시 말하면 사유는 다른 모든 속성들은 물론이요 실체까지도 관념의 대상으로 삼는다.
또한 우리는 사유의 우월성을 다른 속성이 일차원적이라면, 사유는 이차원적이라는 데서 엿 볼수 있다. 즉 사유는 신의 지성을 통해서 무한히 많은 속성을 확인한다. 신의 지성이 확인 하는 속성들 중에는 사유도 있다. 다시 말해서 사유는 자기의 양태를 통해 다른 모든 속성 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도 인식한다. 여기에 사유의 우월성이 있다.
이렇게 볼때, 모든 다른 속성은 물론이요, 자기 자신까지도 관념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의미 에서는 사유의 우월성이 인정되지만, 사유가 모든 다른 속성과 양태의 주도적 원리라는 것 은 인정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Ⅶ. 나오는 말
위에서 논자는 실체와 양태를 이어주는 형이상학적 에너지로서의 속성이라는 스피노자 형이 상학의 핵심개념에 대해 살펴 보았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방식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자신 안에 존재하는 것'과 '다른 것 안에 존재하는 것'이 그것이다 전자가 실체요, 후자가 양태이 다. 실체는 양태들을 산출한다. 그러나 실체는 양태 밖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원인으로서 양태가 존재하는 그곳에 존재한다. 이를테면 실체와 양태는 같은 평면에 존재한 다. 이러한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는 용어가 '자연'이라는 말이다. 실체와 양태 는 모두 자연이라는 평면에 존재한다 실체는 양태를 산출한다는 의미에서 생산하는 자연이 고, 양태는 실체에 의해 변용되어 만들어졌다는 의미에서 생산된 자연이라고 칭하여진다.
또한 스피노자의 실체는 유일하고 무한하다는 의미에서 전통에 따라 신이라고 불리워진다 스피노자의 신은 스스로를 감추는 신이 아니다. 그는 양태 속에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표현 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신, 즉 실체는 자기원인이기에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을 자기 자신 안 에 가지고있다. 실체가 스스로를 표현하는 힘, 이것이 바로 속성이다. 실체는 속성을 통해서 스스로를 표현한다. 속성은 신의 본질로서 사물이나 그 사물의 성질이 아니라 신의 힘이자 활동성이다. 사유는 관념을 산출하는 힘이며, 연장은 광대한 공간, 활력 없는 물질의 덩어리 가 아니라 생산하는 힘이다. 이 힘에 의해 양태들이. 산출된다. 속성은 실체(신)와 양태(세 계)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속성은 하나인 실체로부터 다인 양태가 나을 수 있는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은 속성에 관한 논의로부터 우리는 일원론과 다원론, 형이상학과 물리학을 통합하 려는 스피노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으며 그 통합을 위한 장치가 바로 속성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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