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와 헤겔, 하이데거의 헤겔 논리학 해석
강 순전 명지대 철학 교수
I. 머리말
이 글은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을 그의 헤겔 논리학 해석을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한다. 하이데거는 전집 5권 『Holzwege』에 실려 있는 1942/43년의 「헤겔의 경험개념」(Hegels Begriff der Erfahrung), 전집 11권 『동일성과 차이』(Identitat und Differenz), 전집 32권으로 출간된 1930/31년의 『헤겔의 정신현상학』(Hegels Phanomenologie des Geistes), 그리고 전집 68권 『헤겔』에 실려 있는 1938/39년의 「부정성」(Negativitat) 및 1942년의 「헤겔 정신현상학 서론 해설」(Erlauterung der “Einleitung” zu Hegels “Phanomenologie des Geistes”)등 여러 차례 헤겔 철학에 관계했다. 그의 헤겔 『정신현상학』 해석이 비교적 상세한 주석(Kommentar)의 성격을 띤다면, 『논리학』 해석은 그것의 핵심적인 몇 가지 논점과 대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후자를 위해 「형이상학의 존재-신-논리학적 근본구조」(Die onto-theo-logische Verfassung der Metaphysik)라는 논문이 익히 알려져 있지만, 이 글은 그 외에도 특히 1993년에 출판된 전집 3부 미출간 논문집 속에 들어 있는 「부정성, 부정성 속에 들어 있는 단초로부터 헤겔과의 대결」(Die Negativitat. Eine Auseinandersetzung mit Hegel aus dem Ansatz in der Negativitat)이라는 글을 주텍스트로 삼는다. 하이데거는 이 글을 1938/39년에 어느 정도 헤겔 철학에 정통하고 『논리학』을 다룬 적이 있는 소그룹을 대상으로 강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글의 성격상 연설조의 리듬을 갖고 상세히 쓰여진 부분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여러 가지 단초를 포함하고 있는 질문들과 그에 대한 스쳐지나가는 듯한 대답, 개념들의 불충분한 전개 등 스케치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이 글을 주텍스트로 삼는 이유는 이 글이 헤겔 논리학의 중심원리를 부정성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헤겔 철학이 혹시 허무주의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 아닌가하고 의문을 품게 되는 일반인에게 흥미로운 사실일 뿐 아니라, 헤겔 연구가의 입장에서 볼 때 헤겔 철학의 핵심을 정확히 드러내주는 것 같아 주목을 끈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부정성개념을 자신을 감추면서 드러내 보이는 심연(Abgrund)으로서의 존재개념과 연결시키는데, 여기서 우리는 헤겔과 하이데거 철학의 내용상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하이데거는 헤겔과는 확연히 다른 존재이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두 철학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고찰하는 일은 그들의 차별성과 단절성을 염두에 두면서 행해져야 한다. 또한 독창적인 철학자들이 자신의 이전 철학자들을 해석할 때 단순히 주석식의 해설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그들과 대결하고, 이 대결(Auseinandersetzung)은 항상 의도적인 곡해(Umdeutung)를 수반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이 갖는 헤겔 철학 자신으로부터의 편차를 명시적으로 제시하면서 해석의 의미를 고찰하여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하이데거가 보는 헤겔, 즉 헤겔 철학의 현실성에 대한 그의 진단과 헤겔과의 대결에 부여하는 의미, 그리고 헤겔과는 달리 하이데거가 앞 선 철학자와 대결하는 방식의 특성을 살펴보면서 이 해석이 근본에 깔고 있는 일반적인 특성에 대한 고찰로부터 자연스런 시작을 마련할 수 있다.
II. 헤겔과의 대결이 갖는 의미
하이데거는 헤겔과의 대결이 선행하는 어떤 다른 관점들에서 유래하는 척도들을 가지고 부당함을 계량하는 “비판”이 아니라, 대결의 관점이 헤겔 철학 자신 속에 놓여 있어야 하며 그러면서도 그것의 본질상 도달하지 못한 근거로서 감추어져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한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부정성개념을 이러한 근거로서 파악하며 그것이 갖는 존재 해명의 본질과 한계를 밝히고자 한다. 물론 하이데거가 제시하는 한계는 그 자체 역시 ‘다른 관점으로부터 유래하는 척도에 의한 계량’으로부터 구별되기 힘들다. 하지만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은 헤겔의 부정성개념이 갖는 논리적 사태의 내재적 해석으로부터 출발한다는 점을 근본적인 특징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는 헤겔 철학과의 대결의 가치 여부를 결정할 헤겔 철학의 현실성을 통상적인 철학사적, 소위 “문제사적” 역사주의의 입장에서도, 일상적 “삶”의 현실성의 관점으로부터도 평가하지 않는다. 헤겔 철학을 이미 지나가버린 것으로서 현재화하는 전자의 입장은 아마도 “헤겔과 싸움하는 시대는 지나갔고, 헤겔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도래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고찰은 헤겔 속에 있는 지나가 버린 것을 남아 있는 것으로부터 가를 것이다”라고 말하는 딜타이(W. Dilthey)의 헤겔 해석의 관점을 말할 수 있겠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입장은 한 철학의 현실성이 그것의 효과와 영향에 있다고 본다. 하나의 철학이 학파를 형성하고 학파가 다시금 이 철학에 대한 “문헌학”과 교설(Gelehrsamkeit)을 촉진시킨다고 하는 사실은 실로 그 철학이 발휘하는 영향력이라 할 수 있지만,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영향은 무관심한(gleichgultig) 것이어서 그 철학이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 속에서 역사적으로 존재하는 (aus sich und in sich geschichtlich ist), 즉 존재의 역운(Geschick)에 따라 생기(Geschehen)하는 바의 것을 포함하고 있지 못하다.
한편 하이데거는 헤겔 철학과 독일관념론 일반이 몇몇 환상적인 두뇌들의 허황된 사변에 머물 뿐 소위 “삶”의 “밖”에 서 있다고 하는 널리 퍼진 견해도 헤겔 철학의 현실성을 잘못 진단하고 있다고 본다. 오히려 우리는 헤겔 철학이 존재의 역운에 따른 역사적(geschichtlich)인 영향력을 전개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철학의 “영향”은 그것이 자신의 시대에 작용하면서 자신의 반대를 야기시키고 이 반대로 하여금 자신에 대해 봉기할 것을 강요한다는 신비스러운 면을 가지고 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오늘날도 헤겔은 여전히 작용을 미치고 있지만, 항상 전도된 모습으로, 변장한 모습으로 혹은 자신에 대한 반대의 운동 속에서 작용을 미치고 있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헤겔 철학의 현실성을 그에 고유한 존재의 역운에 따른 역사적(geschichtlich) 효과로서 이해한다. 이 때 그는 헤겔 철학 속에서 많은 부정확한 오류들 속에 섞여 있는 몇 개의 “정확한” 명제들의 초시간적 타당성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러한 철학이 있다는 사실, 여기서 철학이 사유해야 할 것이 탁월한 방식으로 사유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여기서 “시간”의 바깥에서는 경과하지 않지만 (초시간적 타당성을 지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고유한 시간을 그때그때 근거지우면서 갖는 어떤 것이 생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본다.
하이데거의 결론적 주장에 따르면 소위 삶에의 영향과 작용은 한 철학을 평가하는 가능한 관점이 결코 아니며, 그 철학과의 대결의 가치를 평가할 어떤 근거도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든 “삶”은 철학에 대한 오해와 외면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한 철학의 역사적(geschichtlich) 존재는 결코 한갖 경험적인 역사(Historie)의 척도를 가지고 재어져선 안된다. 서양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존재의 역운에 따라 생기하는 지는 한갖 우연사적인 고려와 숙고에 의해 결정될 수 없고 철학적 사유 자체 속에서만 그때그때 경험될 수 있다.
하이데거가 헤겔 철학과 대결하는 데서 지니는 태도는 헤겔이 이전 철학에 대해 가졌던 태도와 비교, 구별함으로써 명백히 드러난다. 하이데거는 세 가지 점에서 자신과 헤겔의 철학사와 대결하는 태도의 차이점을 보여준다. 첫 째, 헤겔 철학과 하이데거 철학에서 사유의 사태는 어떤 것인가? 둘 째, 전자와 후자에서 사유의 역사와 대화하는 척도는 어떤 것인가? 세 째, 전자와 후자에서 대화의 성격은 어떤 것인가? 첫 째 질문에 대하여, 헤겔에게서 사유의 사태는 절대적 사유 속에서 존재자가 사유되어 있다는 점에서 절대적 사유로서의 존재이다. 하이데거에게서 그것은 존재자와 구별되는 존재이다. 둘 째 질문에 대하여, 헤겔은 이전에 사유된 것을 더 높은, 그것을 능가하는 발전과 체계 속으로 집어 넣지만, 하이데거는 전승된 사유가 자신의 아직 사유되지 않은 기재(Gewesenes) 속으로 방면될 것을 요구한다. 말하자면 헤겔은 이전의 사유를 자신의 것 속에 연속적으로 지양해 넣지만, 존재자와 존재의 구분을 사유의 중요한 척도로 삼고 있는 하이데거는 기존의 사유 속에 본래적으로 들어 있지만 자각되지 못한 숨겨진 것을 보여주면서 존재론적인 측면에서 양자의 차이, 단절성을 보여준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 헤겔에게서 선행하는 철학사와의 대화가 지양이라는 성격을 지닌다면 하이데거의 대화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섬(der Schritt zuruck)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뒤로 물러섬은 이제까지 다루지 않고 건너 뛴 영역을 지시한다. 사유는 사태, 존재로부터 한 걸음 물러서서, 지금까지 사유되지 않은 것, 즉 존재와 존재자의 차이를 사유하고 거기로부터 사유될 것으로 나아간다. 따라서 뒷걸음은 형이상학으로부터 형이상학의 본질로 소급해가는 것이다.
이러한 비교로부터 예견되는 하이데거의 헤겔과의 대결의 결론은 그의 여느 철학자와의 대결에서도 반복되는 존재론적 차이의 망각에 대한 지적이다. 하이데거는 - 헤겔이 자신에 선행하는 철학에 대해 했듯이 - 헤겔보다 더 높은 관점, 즉 정신 자체의 관점, 근세 형이상학의 관점을 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른 관점, 즉 정신이 아닌 현존재의 관점을 서술한다. 하이데거가 ‘형이상학’이라는 말로 지칭하는 기존의 형이상학적 관점, 즉 존재자의 존재성(Seiendheit des Seienden)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존재자의 심연으로서의 존재(Seyn)의 관점 속에서 그는 가장 넓고 동시에 본래적인 “형이상학”을 보고 있는 것이다. 헤겔 철학을 포함한 기존 형이상학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우리는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의 존재-신-논리학적 근본구조」라는 글 속에서 개괄적이지만 가장 명료한 형태로 발견할 수 있다.
III. 존재론, 신학으로서의 헤겔 논리학
하이데거는 서양 형이상학은 희랍철학이래로 존재론이면서 신학이었다고 한다. 그는 이러한 형이상학의 존재-신학적 전통 속에 헤겔의 논리학을 귀속시킨다. 헤겔 논리학에서 사유의 사태는 “사고”(Gedanke)이며 사고는 전통적으로 논리학의 주제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전통에 따라 헤겔은 사유의 사태를 존재자 자체, 전체로서의 존재자에서, 자신의 공허함에서 발전된 충만으로의 존재의 운동에서 발견한다. 사유는 해명하고 근거짓는 방식으로 근거인 존재로 모여든다(sich sammelt in der Weise des Ergrundens und Begrundens). 사유가 존재를 해명하고 근거짓는다는 것은 거꾸로 존재가 사고로서 현현한다는(manifestiert sich) 것이다. 이것은 존재자의 존재가 스스로를 해명하면서 근거짓는 근거로서 드러난다는 것을 말한다. 근거는 본질상 모으면서 놓여있게 한다는 의미의 Logos를 의미한다. 그래서 헤겔이 자신의 학, 형이상학을 논리학(Logik)이라고 할 때, 그것은 그 학이 사유를 주제로 삼기 때문이 아니라, 사유의 사태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존재는 Logos의 특성상 근거짓는 행위로서의 사유를 요구한다. 따라서 존재의 학으로서의 헤겔 논리학은 존재론이다. 존재의 Logos를 밝히는 존재론(Ontologie)의 어미 -logie는 학의 대상을 그 근거와 관련하여 표상하고 개념파악하는 근거지움의 연관 전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존재론으로서의 헤겔 “논리학”은 전체로서의 존재자 자체를 근거인 존재로부터 해명하고 근거짓는 사유를 지칭하는 것이다.
존재자의 존재는 근거로서 제 1원인(causa sui)이라고 표상되는데, 이는 신의 형이상학적 이름이다. 하이데거는 헤겔 논리학의 시원(Anfang)에 관계하면서, 시작이 곧 결과라고 하는 시원의 사변적 성격으로부터, 시원인 존재를 충만으로부터 극단의 외화로, 다시 여기로부터 자신을 완성시키는 충만으로(von der Fulle in die außerste Entaußerung und von dieser in die sich vollendende Fulle) 자기 내 원환운동을 하는 ‘스스로를 사유하는 사유’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신의 개념과 일치시키면서 과감히 헤겔 논리학의 시원을 신으로 해석하고 있다. 신으로부터 출발하는 학은 신학(Theologie)이다. 신학이 의미하는 것은 우선 신앙이론이나 교회의 교의와 관계없이 신들에 대한 신화적 문학적 이야기를 하는 것을 말한다. 철학에서 신은 존재자의 근거로서 제 1원인으로 표상된다. 하이데거식 표현으로 이 존재자의 존재, 근거는 Logos, 기체(hypokeimenon), 실체 또는 주체 등으로 파악되었다. 헤겔 논리학이 존재자의 근거로서의 신에 대한 서술인 한, 그것은 신학이다.
하이데거는 헤겔 논리학(Logik)을 포함한 형이상학 일반을 근거관계라는 구조 속에서 파악하면서, 그것이 가진 존재론적, 신학적 측면으로부터 그것을 존재논리학(Onto-Logik)이면서 동시에 신논리학(Theo-Logik)이라고 명명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전통 형이상학은 자신이 포함하고 있는 이 두 가지 요소의 통일을 근원적으로 사유하고 있지 못하다. 존재논리학과 신논리학에서 물어지는 것은 일반자, 최초의 것으로서의 존재자 자체와 최고의 것, 최후의 것으로서의 존재자 자체가 하나라는 것이다. 이 하나가 형성하는 통일은 최후의 것이 자신의 방식으로 최초의 것을 논증하고(begrunden) 최초의 것이 자신의 방식으로 최후의 것을 논증한다. 하이데거는 이 두 가지 논증의 방식의 차이가 전통 형이상학에서는 사유되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하이데거는 그것을 존재와 존재자의 관계를 통해 서술한다. 존재는 존재자로 이행한다. 그러나 이 이행은 존재자 자신의 위치를 떠나서, 이 존재 없이도 이미 선행해서 존재하고 있는 존재자에게로 다가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양자의 공속관계를 ‘존재자의 존재’(Sein des Seienden)와 ‘존재의 존재자’(Seiendes des Seins)라는 표현 속에서 전자의 2격을 목적격의 2격으로, 후자의 2격을 주격의 2격으로 특징짓는다. 말하자면 존재자는 존재의 행위에 의해 산출되는 것이고, 존재는 존재자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존재는 자기 자신을 넘어서, 자신을 드러내면서 존재자로 넘어 오는데, 이러한 넘어 옴을 통해서 존재는 비로소 자기 자신으로부터 드러난 것으로서 존재자 속에 도착하는 것이다. 이 도착은 비은폐성 속으로 자신을 감추는 것이다. 이렇게 감추어진 채로 현전하며 지속하는 것이 존재자이다. 존재가 드러내는 넘어옴(die entbergende Uberkommis)이라면, 존재자는 자신을 감추는 도착이다(sich bergende Ankunft). 존재는 존재자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지만, 이러한 존재자에 자신을 드러내고 비은폐하면서 존재자의 현전에 의해 한편으로 존재 자신이 은폐된다.
존재론적 차이는 이러한 드러내는 넘어 옴과 감추어지는 도착의 화합(Austrag)으로 설명된다. 하이데거는 이제 이것을 전통 형이상학의 논증 구조에 적용한다. 이 때 그는 존재론적 차이(Differenz)로부터 이것을 고찰하는 자신의 방법과, 차별되어진 것(das Differente)의 차원에서 고찰하는 전통 형이상학을 구별한다. 존재론적 차이는 “존재가 존재자를 기초짓고(grunden), 가장 존재적인 것으로서의 존재자(das Seiende als das Seiendste)가 존재를 논증한다”는 양자의 화합을 통해 서술된다. 존재는 끄집어내는 근거(her-vor-bringender Grund)이다. 이 근거 자체는 그것에 의해 근거지워진 것으로부터 그것에 적합한 논증, 즉 가장 근원적인 사태, causa sui라고 하는 원인에 의해 근거를 드러냄(Verursachung)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일자는 타자로 넘어오고, 타자 속에 도착한다. 넘어옴과 도착은 서로를 반영하면서 현상한다. 이러한 화합은 존재와 존재자가 원환을, 서로를 감아 안고 원환을 그리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드러내면서 감추는 양자의 화합(der entbergend-bergende Austrag)을 지배하는 것을 자신을 은폐하면서 폐쇄하는 존재의 비춤(Lichtung des sich verhullend Verschließenden)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가능케하는 존재론적 차이가 전통 형이상학의 본질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한편 하이데거에 따르면 전통 형이상학은 Logos로서의 존재에 상응하며, 존재론적 차이에 의해 차별화된 것(Differente der Differenz)으로부터 규정된 논리학, 즉 존재-신학-논리학(Onto-Theo-Logik)이다. Logos는 모든 것을 기초지우면서 일반자로 모으고, 모든 것을 유일자로부터 논증하면서 모은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따르면 이러한 화합을 가능케 하는 존재의 역운(Geschick)은 그때그때 고유한 일회적인 사태(ein einzigartiger Sachverhalt)이지, 일반적인 것이 아니다. 형이상학이 전체로서의 존재자 자체를 사유하는 한, 그것은 차이 자체가 아닌 차이에 의해 차별화된 것에만 주목한다. 차별화된 것이란 일반자로서의 존재자의 존재와 최고의 것으로서의 존재자의 존재를 말한다. 전자는 존재-논리학(Onto-Logik)의 측면을, 후자는 신-논리학(Theo-Logik)의 측면을 대변한다. 여기서 존재는 모든 존재자에 공통적인 근거로서 현상하기 때문에, “존재자는 기초지워진 것(das Gegrundete)이지만 최고의 존재자는 제 1원인이라는 의미에서 논증하는 것(das Begrundende)이다”. 우리는 여기서 일반자로서의 존재자와 최고의 존재자인 제 1원인 사이에서 존재론적 차이에서와 동일한 원환적 논증구조를 본다. 그러나 여기서 제 1원인, 철학적 신은 존재자일 뿐 초월적 존재가 아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존재론적 차이는 드러냄과 숨김(Entbergen und Bergen) 이행 혹은 넘어옴과 도착(Ubergang und Ankunft)을 초월과 현전(Transzendenz und Anwesen)으로 사유한다. 반면 전통 형이상학은 존재를 그것의 현전성(Anwesenheit)으로만 표상한다.
하이데거는 자신의 존재론적 차이로부터의 사유와 전통 형이상학적 사유의 차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한다: 형이상학이 갖는 존재-신학적 근본구조는 근거로서의 존재와 기초지워지면서 증명하는 것(gegrundet-begrundendes)으로서의 존재자를 분리시키고 관계시키는 차이의 지배행위로부터 유래하지만, 그 유래는 형이상학의 시계(Gesichtskreis) 안에서는 사유될 수 없다. 왜냐하면 형이상학은 Logos가 보여주는 근거관계를 표상하지만, 근거인 존재를 사유하지 못하고 존재자 차원에서만 근거를 사유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헤겔 논리학과의 대결에서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신학적 근본특징을 주제화하는 것은 전자가 후자를 특징짓는 대표적 사례라고 하는 그의 생각을 시사해 준다. 헤겔의 논리학은 실로 하이데거가 서술하는 전통 형이상학의 논증구조를 근거관계 속에서 명시적으로 논리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 근거관계가 하이데거 말대로 존재자의 동일 차원에만 머물고 있는 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헤겔은 근거관계를 다양한 단계로 차별화하면서 존재를 서술한다. 가령 사물이 갖는 부정성은 그것의 직접성 속에서 소실된다(erloschen). 여기서 직접성만을 추상해서 고찰하는 것이 헤겔의 존재논리(Seinslogik)라고 하고, 그것의 근거인 부정성과 그것에 의해 매개된 직접성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는 것이 본질논리(Wesenslogik)라고 한다면, 양자의 관계는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존재자의 관계와의 유비관계를 형성한다. 존재는 자신을 본질로 형성하고 본질은 자신을 존재로 충족, 실현시킨다. 이 때 존재와 본질은 명백히 다른 존재론적 차원에서 이야기된다. 이 차이가 여전히 미흡한 것이라면, 우리는 객관논리학의 실체와 주관논리학의 주체 사이의 근거관계에서 존재론적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헤겔은 이미 예나 중기에 스피노자적인 범신론적 세계해석으로부터 벗어나서 절대정신의 형이상학을 구축하기 시작하는데, 정신현상학이 갖는 실체와 주체의 복층구조는 절대정신인 주체가 스피노자적 실체와 존재론적으로 다른 차원에 있음을 논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객관논리학과 주관논리학의 차이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해석되어야지, 헤겔 자신의 경고대로 주관과 객관의 구별로부터 해석되어선 안된다.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의 존재-신학-논리학적 근본구조」에서의 개괄적인 헤겔과의 대결은 「부정성」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따라서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의 헤겔 철학 자체와의 편차도 명확히 드러난다.
IV. 헤겔 철학의 근본규정으로서의 부정성
하이데거의 헤겔 논리학 해석에서 두드러지는 점 중의 하나는 그가 헤겔 논리학의 시원(Anfang)을 존재가 아닌 생성(Werden)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그는 “헤겔의 본래적인 철학, 『논리학』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Womit fangt Hegels eigentliche Philosophie, die Logik an?)라고 묻고는 “생성으로부터 시작하고 생성이 근거이다”라고 대답한다. 헤겔 자신은 『논리학』의 서두에서 “학은 어디로부터 시작하는가”(Womit muß der Anfang der Wissenschaft gemacht werden?)라는 제목 하에 학의 시원이 순수한 존재일 수 밖에 없음을 다각도로 논증하고 있다. 하이데거가 이와 유사한 질문의 형식을 빌어 다른 대답을 내리는 것에서 우리는 하이데거의 의도적인 곡해(Umdeutung)의 시도를 발견한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시원인 존재는 “출발”(Ausgang) 혹은 “시작”(Beginn)일 뿐이라고 한다. 그는 시원(Anfang)과 시작(Beginn)을 구별하면서, 전자는 어떤 것이 그것으로부터 출발하면서 그 안에 머물러 있고, 그로부터 출발하면서도 그 안으로 자신을 구축해가는 것인 반면, 후자는 출발이 그와 함께 일어나지만 그 자체 소멸하는 것으로서 진행하고 이행하면서 지양되어버리는 것이라고 한다.
헤겔 자신에게 시원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주제로 진지하게 언급되었다. 헤겔의 시원의 문제는 시원의 두 가지 문제, 즉 형식과 내용의 통일 및 직접성과 매개성의 통일의 문제 사이에서 움직인다. 헤겔에 따르면 이전의 철학은 내용상의 시원만을 제시할 뿐, 형식상의 시원, 즉 서술의 순서에서의 출발점은 내용상의 원리와는 무관하게 우연적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헤겔에 따르면 철학의 원리는 내용으로서 뿐만 아니라 형식으로서도 사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원리는 시원이어야 하며, 사유에 있어서 으뜸인 것은 동시에 사유의 도정(Gang)에 있어서도 첫 번째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서술의 순서상 시작을 이루는 것은 우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원리 자체이어야 한다. 한편 시작은 직접적인 것으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시작한 셈이 될 테니까. 말하자면 관계 속에 있는 것, 매개된 것은 이미 하나의 관계항으로부터 다른 관계항으로 나아간 것이고, 따라서 이미 시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직접자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헤겔의 파악에 따르면 모든 것은 또한 직접성이기도 하고 매개이기도 하다. 이상으로부터 시원이 갖추어야 할 조건은 한편으로 원리이지만 내용이 없어야 하며, 다른 한편 직접자이지만 동시에 매개되어 있어야 한다. 헤겔은 이 문제를 논리학을 “그 안에서 첫 번째 것이 또한 최후의 것이 되고, 최후의 것이 또한 첫 번째 것이 되는 원환”으로서 서술함으로써 해결한다. 이것은 시작과 끝이 만나는 원환의 특성을 묘사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행의 논리적 성격을 표현하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이 최후의 것이 된다함은 시작자가 이후의 모든 것의 근저에 놓여 있고 사라져버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진행을 통해 시원은 자신의 직접성과 추상성을 잃고 매개된다. 최후의 것이 첫 번째 것이 된다함은 진행의 최후에 가서야 첫 번째 것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난다는 것이며, 이 때 첫 번째 것 및 이후의 규정들은 온전한 최후의 것이 그러한 것들로 나타났던 것이라고 파악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자들은 후자에 의존하고, 후자가 전자들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앞으로 나아감은 뒤로 돌아감이며 근거를 대는 것, 근거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다 자세히 말해서, 앞으로 나아감은 시원의 규정들을 덧붙여 규정해 나아가는 것인데, 그것은 동시에 앞으로 나아갈수록 첫 번째 것의 근거를 대는 것이므로 뒤로 나아가는 근거지움이다(das vorwartsgehende Weiterbestimmen … das ruckwartsgehende Begrunden). 따라서 최후의 것은 최초의 것에 대해 온전히 밝혀진 근거이며 최초의 것은 최후의 것의 가장 빈약한 규정이다. 이 같이 최초와 최후가 하나일 때, 시원은 최초의 위치를 점하고 그 이후의 것과 질적으로 차별지어지는 통상적인 원리가 아니라, 직접성과 매개의 통일로서의 과정 자체가 원리이다. 원리는 시작점에서 무규정적 직접자로부터 시작할 수 밖에 없다. 논리적 진행은 거듭하여 다시 이 시작에로 소급하여 그것을 수정해간다. 각각의 수정은 시원의 지속적 규정이며, 시원이 사실상 매개된 것임은 이 추후의 소급으로부터만 설명되어질 수 있다.
헤겔의 이러한 시원의 문제의식에 하이데거는 주목하지 않으면서, 의도적으로 시원을 생성(Werden)이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존재나 무에서는 부정성이 나올 수 없다. 무조차도 부정성은 아닌데, 왜냐하면 헤겔에게서 순수한 무는 순수한 존재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양자는 구별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부정성이 나올 수 없고, 거꾸로 부정성으로부터 존재와 무가 나와야 한다. 하이데거가 보는 헤겔의 무는 존재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양자는 구별된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아직 구별이 없고, 어떤 부정성도 찾아볼 수 없다. 하이데거는 최초의 구별이 일어나는 논리학의 범주 생성에서 부정성을 찾는다. 그런데 그에게서 생성이라는 범주 자체가 원리로서의 의미를 지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어떤 것과 타자 사이의 관계가 갖는 부정성, 즉 자기관계하는 타자성에서도 부정성을 발견한다. 말하자면 생성, 어떤 것과 타자의 관계는 부정성의 모델들이지 하이데거의 생각에 원리는 그것들을 관통하는 부정성이다.
하이데거가 헤겔의 부정성이라는 논리적 용어 아래에서 이해하고 있는 내용은 의식이다. 의식은 자아가 대상에 대해 자신을 구별하는 행위이다. 이 구별행위의 가름(das Scheiden)이 아님(das Nicht)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 부정적인 것(das Negative)은 한갖된 떼어냄(das bloße Weg)이나 결핍이 아니라 절대적 의식의 운동이 갖는 에너지(Energie)이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절대지가 갖는 ‘찢겨짐 속에서도 절대적으로 자신을 유지함’(absolutes Sicherhalten in der Zerrissenheit)을 생(Leben)이라고 명명한다. 이는 부정성이 추상적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자기관계적 부정성임을 의미한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부정성을 의식 뿐만 아니라 사유, 자기의식 혹은 주체라는 용어와 결합시킨다.
하이데거의 생각에 부정성의 근원은 물어질 수 없는 것(fraglos)이다. 부정성은 사유이며 사유의 자명성은 존재(Seyn)와 존재이해를 갖는 인간 사이의 자명성과 같은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부정성과 사유는 형이상학적 존재해명의 단서(Leitfaden)이다. 헤겔과 전통 형이상학의 존재이해는 존재자를 현전성(Anwesenheit)으로만 표상한다. 그들에게서 존재는 존재자성(Seiendheit)이며 앞에 놓여진 것이란 의미에서 표상된 것(Vor-gestelltheit)이다. 존재자성이란 언표되어져 있음(Ausgesagtsein), 즉 범주적인 것(das Kategoriale)을 말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형이상학은 존재자 우위의 사유이다. 그러나 존재는 존재자와 다른 것이고, 존재자가 아님(das Nicht des Seienden)으로서 근원적인 무(das ursprungliche Nichts)이다. 이 근원적인 무란 다름 아닌 존재가 포함하는 스스로를 부정하는 힘이다. 존재의 기투(Entwurf)는 바로 사유라고 하는 부정성을 통해 일어난다. 사유를 통해 아님(das Nicht)이 존재 속에 들어온다. 따라서 사유는 존재의 “기투의 근거”이다. 사유가 표상으로서만 작용하고 표상된 현전성에만 주목하는 한, 헤겔과 형이상학은 여기서 존재를 사유하지 못한다는 것이 하이데거의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이데거는 헤겔 논리학의 최초의 두 범주의 해석에로 접근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헤겔은 존재와 무의 구별이 어떠한 구별도 아니라고 하는데 이는 존재론적 차이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존재에서 존재자를, 무에서 존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존재자의 심연(Abgrund)으로서의 무가 바로 존재(Seyn) 자체이다. 무는 존재의 본질로서 자신의 유일성(Einzigkeit) 속에 있는 존재 자체, 즉 존재의 “유한성”이다. 우리는 여기서 헤겔과 하이데거 두 철학자가 자신의 철학적 관점의 상이함에 따라 동일한 사태에서 역방향의 논증을 진행하고 있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부정성 아래서 거절, 거부, 아님, 무실성 등을 이해하고 있다. 그는 무의 부정성을 유한한 현존재의 존재이해와 결합시킨다. 존재(Seyn)의 부정성은 『존재와 시간』의 서술방식으로는 죽음이라고 하는 현존재의 존재가능(Seinkonnen)으로, 현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으로 나타난다. 헤겔은 하이데거가 표상하는 부정성의 내용들(거절, 거부, 아님, 무, 무실성 등)의 유한성과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해 부정의 자기관계, 자기관계적 부정성이라는 논리적 장치를 고안한다. 부정이 자기 내로 복귀할 때 뻗어나감은 직선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한계, 종말을 갖지 않는다. 하이데거가 거의 주목하고 있지 않은 부정의 자기관계성을 통해 헤겔은 유한자의 무한자로의 고양의 개념적 장치를 마련한다. 이러한 두 철학자의 관점의 차이로부터 하이데거의 헤겔 논리학의 첫 두 범주에 대한 해석의 정당성 여부를 되물을 수 있다. 하이데거는 헤겔의 존재와 무의 구별을 “구별아닌 구별”(Unterschied, der keiner ist)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헤겔 『정신현상학』의 오성장에서 나오는 “내적인 구별” 내지 “절대적 구별”의 부정성에 대한 표현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헤겔은 이 표현을 통해 구별, 부정의 자기관계성을 서술하고자 한 것이다. 『정신현상학』에서는 이 내적 구별의 담지자인 무한성이 자기의식으로 밝혀지면서 오성의 법칙의 세계에서 생을 근본범주로 하는 자기의식으로 이행한다. 생의 역동성을 근거짓는 자기관계적 부정성이 『논리학』에서는 논리적 규정들의 이행과 발전을 규정짓는 근본구조가 된다. 『논리학』의 첫 두 범주에서는 이 부정관계가 가장 추상적이고 약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존재와 무의 대립도 이미 그러한 부정관계이고 이것은 어떤 것과 타자, 유한자와 무한자 등 더 나아간 범주들에게서 보다 구체적이고 명백한 형태로 발전한다. 자기관계적 부정성이 논리학의 근본원리라 할 때, 그것은 시원의 나아가는 규정이 이미 최후의 것에 의한 그것의 근거지움이라고 하는 원환적 논리구조 속에서 이미 시작점부터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구별아닌 구별’이란 무구별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관계하는 구별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성’에서 시원을 마련하고자 하는 하이데거의 시도를 결코 허락하지 않는다.
하이데거는 의도적인 곡해를 통해 헤겔의 존재와 무 속에서 존재론적 차이의 망각을 언급하고 있다. 헤겔의 무는 존재와 같은 것, 즉 헤겔적 존재인 존재자성과 현전성의 차원에서 표상될 뿐, 무가 심연(Abgrund)으로서의 존재(Seyn)의 본질을 형성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심연으로서의 무를 사유한다는 것은 허무주의가 아니라 존재의 진리를 물어내면서, 존재자의 빈곤(Not)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허무주의의 본질은 오히려 존재자에 매몰되어 무를 망각하는 데 있다. 존재(Seyn)는 사물을 어떤 것으로 표상하는 지평으로서 비춤(Lichtung)이다. 하지만 인간은 표상하는 자로서 그 속에 단순히 서 있는 것만이 아니라, 현존재로서 비춤 속에서 절박함(Instandigkeit)으로 있고 하이데거는 이를 기분(Stimmung)이라고 명명한다. 비춤은 근거이면서도 심연이다(Abgrund als Grund).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존재자를 부정하는 것(das Nichtende zu allem Seienden)으로서 존재자의 근거이면서도 존재자를 거부하는 근거(Versagung des Grundes), 즉 무화(Nichtung)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비추면서 무화하는 가운데 스스로를 거부하는 근거이다. 따라서 존재(Seyn)는 부정하는 근거, 심연(Ab-grund)이며, 하이데거는 이를 무로서 표상한다.
하이데거가 생각하는 무는 내용상 헤겔 『논리학』에서의 자기관계적 부정성보다는 그의 초기 저작 속에서 그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헤겔은 『피히테와 쉘링 철학체계의 차이』(Differenz des Fichteschen und Schellingschen Systems der Philosophie)라는 1801년의 저작에서 “무가 첫 번째 것(das Erste)이고, 거기로부터 모든 존재, 즉 유한자의 모든 다양성이 나온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문장은 다음과 같은 문장의 뒤에 이어지고 있다: 헤겔이 비판하는 “분리의 관점에서는 절대적 종합은 피안, 즉 분리의 규정성들에 대립해 있는 무규정적인 것과 무형상적인 것이다; 절대자는 밤이고, 빛은 밤보다 젊다. 양자의 구별 및 밤으로부터 빛의 출현은 절대적 차이이다”. 크로너(R. Kroner)는 이 문장들을 쉘링의 동일성 체계에 대한 헤겔의 비판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뒤징(K. Dusing)은 이것을 칸트의 비판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본다. 이것을 보다 긍정적 적극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그 의미는 제한될 수 밖에 없다. 헤겔은 전시기에 기독교, 특히 유대교의 율법성을 “Positivitat”라는 용어로 비판하였기 때문에, 낭만주의의 영향 하에 밤 혹은 부정성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와 비숫한 예를 우리는 1802년의 저작 『자연법의 학적 취급방식에 관하여』(Wissenschaftliche Behandlungsarten des Naturrechts)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헤겔은 그 곳에서 “관계일반은 무 자체이다”라고 말함으로써 관계 속에서 성립하는 모든 존재의 규정성이 무로 귀결되어서(zu Grunde gehen) 무에 근거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인상을 일깨운다. 그러나 이 명제로 헤겔이 지시하는 것은 변증법의 내용인데, 당시의 헤겔은 아직 변증법을 자신의 적극적인 방법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아직 변증법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전통 아래 서 있었다. 헤겔은 당시에 변증법을 유한자의 논리학으로서 무한자의 인식인 형이상학에 대비시켰다. 변증법은 유한자가 자신의 모순 때문에 무로 몰락하고, 이렇게 자신의 자립성을 상실함으로써 무한자로의 고양을 예비하는 작업을 제시한다. 물론 무한한 인식은 형이상학의 영역에서야 가능하지만, 유한자의 예비작업 속에 절대자가 이미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정신현상학』은 이 부정성을 절대자의 계기로서 서술한다. 말하자면 헤겔에게 신적인 인식은 단적인 직관이 아니라 끊임없는 부정적 활동, 즉 노동에 의해 매개되어야 하는데, 이 매개는 매 단계에서 자신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고통을 수반한다. 헤겔은 이 부정성을 『논리학』에서 논리규정들의 이행의 동력으로 논리화함으로써 초기 철학에서 나타나는 부정성을 그것없이는 공허한 것에 불과한 긍정적인 것의 내용으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헤겔에게서 ‘모든 실재성의 총괄’(Inbegriff aller Realitat)로서 표상되어 온 신, 절대자는 ‘모든 부정들 혹은 모순들의 총괄’(Inbegriff aller Negationen oder aller Widerspruche)이다.
헤겔은 부정성을 존재의 근거로 논리화한다. 자기관계하는 부정성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본질의 활동성으로 서술된다. 존재논리는 존재를 직접적인 것(das Unmittelbare), 목전에 발견된 것(das Vorgefundene)으로 나열한 뒤, 본질논리는 이러한 존재의 존재성을 부정하고 본질의 부정성을 서술한다. 본질이란 스스로를 부정하여 부정된 자기와 관계하는 순수한 매개, 활동성 자체이다. 하지만 본질의 부정은 자기관계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부정으로부터 타자로 이행한 본질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복귀하고 이 복귀로부터 자기와의 합일, 즉 자기동등성이 정립된다. 이 자기동등성을 추상화한 것이 바로 존재논리에서 서술된 존재이다. 존재논리에서 목전에 발견된 것(das Vorgefundene)으로 서술된 것이 이제 본질에 의해 매개된 것, 즉 사실상 본질에 의해 전제된 것(das Vorausgesetzte)이었음이 밝혀진다. 헤겔의 서술이 이 같이 근거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근거로 나아가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이미 시원에 대한 고찰에서 살펴 보았듯이 『논리학』이 무전제적 시원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헤겔의 전략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지적대로 헤겔 『논리학』은 하나의 주체로서의 절대자의 자신의 가장 추상적인 규정으로부터 완성에 까지 이르는 연속적 운동이지만, 하이데거가 보지 못한 각 단계들 간의 근거지움의 관계는 충분한 존재론적 차이를 논증하고 있다.
물론 하이데거의 지적대로 이 근거지움의 관계가 모두 소위 존재자의 현전성의 차원에 머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근거관계가 초월적 피안과 차안의 관계로 설정되어서는 안된다는 헤겔의 견해로부터 하이데거의 비판에 대한 헤겔측으로부터의 답변을 끌어낼 수 있다. 근거가 존재자에 초월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의 존재자에 대한 어떤 관계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떤 방식으로라도 양자 간에 관계가 형성된다면 근거는 존재자에 대해 초월할 수 없고, 전적으로 무일 수 없다. 헤겔은 근거가 존재자와 같은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 스피노자적 실체관계를 부정한다. 그러나 헤겔의 주체로서의 근거는 존재자의 피안으로서 그것을 단적으로 초월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존재자이면서 또한 아닌 방식으로 있다. 하이데거의 심연(Abgrund)으로서의 존재(Seyn)가 존재자에 대한 무이지만 그것이 근거인 한 존재자와 어떤 근거관계에 놓여 있어야 한다. 존재가 존재자에 대한 무로서 초월적이라면 이 초월성은 근거관계 내에서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는가. 물론 하이데거는 심연으로서의 존재(Seyn)가 존재자 배후에서 표상되는 형이상학적 실체는 아니라고 한다. 존재자 차원에서 존재하는 것은 존재자와 현존재 뿐이고 존재란 이들의 관계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라고 한다면, 존재가 관계를 초월한 어떤 것인지 아니면 관계 자체인지가 물어져야 한다. 존재가 관계 초월적인 것이라면 그것이 관계로서 단적으로 계시되는 것이든 표상적으로 관계를 가능케 하는 것이든 간에 하나의 또 다른 형이상학적 실체가 전제된다. 만일 존재가 관계 자체라면 존재자와 현존재라는 관계항들의 내재적 특성으로부터 관계의 성격이 규정지어지거나, 헤겔식으로 관계가 관계항들을 가능케 해야 한다. 초월적 존재에 대한 이론은 형이상학적 실체를 전제하고, 또 초월성 가운데 근거관계를 제시해야 하는 어려움을 안게 된다. 그러나 만일 존재를 관계 자체로 보면, 하이데거가 헤겔 및 전통 형이상학을 비판하는 준거틀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헤겔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존재론적 차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전자는 존재자만을 표상하지만 후자는 존재자의 진정한 근거인 존재(Seyn)를 사유한다거나 전자는 형이상학적 사유에 빠져있고 그 본질을 사유하는 것은 후자 뿐이라고 판정하는 것은 폭력적 곡해(Umdeutung)이다. 두 철학은 존재자와 그 근거로서의 존재라는 존재론적 차이 속에서가 아니라, 현존재의 형이상학과 절대자의 형이상학이라는 존재론적 상이성으로서 비교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실존범주와 존재범주라는 사유대상의 상이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보여지듯이, 헤겔도 안전존재자(Vorhandensein)만이 아니라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같은 절박한 실존적 상황, 사랑과 도덕 및 종교적 의식 등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정신현상학』은 의식과 대상의 관계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제시하는데 이것은 정신으로서의 절대자 속에서 사유되는 대상의 폭이 본질형이상학을 넘어서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헤겔은 이들 대상들을 절대자의 논리속에 포섭시키는데, 이는 존재를 무한자의 패러다임으로 사유하는 헤겔적 사유의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 이 때 헤겔의 논리, 변증법은 하이데거가 생각하고 있는 “법칙”(Gesetz)이 아니다. 『정신현상학』의 서론(Einleitung)에서의 칸트 및 경험론자들에 대한 비판이 보여주듯이 인식된 것과 유리된 인식은 절대자의 인식일 수 없으며, 오성장에서 자기의식장으로의 이행이 보여주듯이 헤겔 사유의 핵심은 법칙보다는 생명이 더 높은 존재의 진리라는 점에서 우리는 헤겔의 변증법에 “법칙”이라는 용어를 귀속시킬 수는 없다. - 헤겔이 사유했던 시대적 사상적 배경은 분열로부터 통일에로의 고양이라는 과제로 헤겔의 사유를 이끌었다. 그래서 그는 이 과제를 극단에 까지 밀고 나가 절대적 통일이라는 경지에 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독일의 암울한 상황에서 사유하였다. 그에게 진정한 존재사유는 개별 현존재에게 고유한 절실한 불안에 기반하기 때문에, 그는 부정성을 통일된 힘으로 수렴하는 계기로서가 아니라 일회적인 것으로서 경험한다. 하이데거는 헤겔이 부정성의 이러한 일회성을 보지 못했다고 하지만 헤겔의 입장에서 하이데거의 부정성은 모든 이에게 다른 부정성을 허락하기 때문에 다원론 내지 상대주의에 빠지게 된다. 결국 양자의 차이는 서로가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은 근본경험의 상이함으로부터 출발하여 각기 상이한 패러다임 속에서 존재를 사유한 것이다.
V. 맺는 말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은 헤겔에 대한 정확한 주석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척도에 따라 의도적으로 곡해함으로써 그것을 자신의 철학과 차별지우고 또 관계지우고자 하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헤겔 철학의 정확하고도 객관적인 이해를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에, 헤겔 철학을 특징짓는 결정적인 요소를 간과하거나 무시하고 헤겔 철학 속에서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을 주제화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분석에서 우리는 주목할 만한 사실을 발견하는데, 그것은 하이데거가 많은 추상, 오해와 곡해 속에서도 정당하게 자신의 철학과 헤겔 철학의 핵심적 유사성을 드러내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서두에서 하이데거가 밝힌대로 두 철학자가 다른 사상적 배경과 사유 모델을 가지고도 사유할 것을 탁월한 방식으로 사유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가 하이데거의 헤겔 해석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소득은 철학사 속에서 각기 고유한 맥락 속에서 여러 가지 변양된 형태로 제기되는 철학적 물음과 대답에의 시도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며, 마찬가지로 한 철학자에 의한 철학사의 해체 작업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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