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적 수반과 인식적 원리의 정당화
임일환1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문대학 철학전공 교수.
【주제분류】 인식론, 인식적 정당성 이론, 인식적 수반, 메타 인식론
【주요어】 인식적 수반, 비판적 인지주의, 인식적 정당성의 원리, 토대론
【요약문】 현대 인식론의 핵심적인 주제는 인식적 정당성이론이다. 전통적 토대론적 입장이든, 정합론적 입장이든, 최신의 자연주의적 ‘신빙론’을 취하든, 모든 이론들은 인식에 적절한 믿음의 정당성의 조건을 제시한다. 본고는 첫째로, 이처럼 다양한 인식적 정당성이론들이 원리적으로 성립할 수 있는 형이상학적 근거가 인식적 수반(epistemic supervenience) 개념에 의해 성립할 수 있음을 논증한다. 두 번째로 논문은 인식적 원리의 정당성 자체라는 메타 인식론적 입장이 기본적으로 세 가지 상이한 입장을 소개하고 그 중 한 가지 입장인 ‘비판적 인지주의’입장을 옹호하는 논변을 제시한다.
I
전통적인 인식론의 핵심전제의 하나는 지식이 필연적으로 정당성이 있는 믿음을 내포한다. 즉 지식은 필연적으로 규범적(normative)인 차원을 내포한다는 전제이다. 데카르트가 그의 『명상』에서 간명히 제기하듯, 인식론의 주된 과제의 하나는 우리가 믿을만한 가치가 있는 그런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들을 준별하는 판단기준은 무엇인가 하는 문제이다. 현대의 정당성에 관한 다양한 이론들, 다시 말해 토대론, 정합론, 신빙주의(reliabilism)는 이 문제에 대한 상이한 답변들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제이론들은 제 각각 그 상이점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믿음과 그렇지 못한 믿음의 궁극적인 판단기준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다면 인식적 정당성에 궁극적 판단기준 혹은 규범이 존재한다는 우리의 믿음의 형이상학적 근거는 무엇인가? 나는 그 답이 인식적 속성들의 비인식적(non-epistemic) 속성들에 수반함, 또 보다 일반적으로 모든 규범적 속성들의 자연적 조건들에 수반한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인식적 수반 개념은 철학적으로 엄밀히 규명되어야 하지만, 그 기본 논제는 다음의 두 가지 명제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정당한 믿음에는 비인식적(즉 정당성 개념을 필연적으로 내포하지 않는) 근거가 있다. 이 근거를 ‘정당성을 부여하는’ 속성(justification-conferring)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둘째, 이 근거는 본질적으로 보편화가능하다. 다시 말해 그 근거는 원리 또는 규범들에 의해 포섭될 수 있다.
이 논문이 살펴보게 될 주요 문제는 이런 정당성을 부여하는 속성이 과연 인식적 토대론자들이 주장하듯 감각적 경험이나 기억 등인가 아니면 믿음들 간의 내적 정합성인가 하는 해묵은 전통적 인식론 문제보다는, 만일 인식적 수반에 의해 보장된 원리들이 있다면 이런 인식적 원리들 자체의 정당성은 이렇게 확보될 수 있는가하는 메타 인식론적 문제이다. 곧 살펴보겠지만 인식적 수반 개념은 흥미롭게도 인식적 원리의 존재 근거 라기 보다는, 인식적 원리들 자체가 어떤 방식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하는 문제의 해결로서 처음으로 인식론에 도입된 듯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기에 한 가지 중요한 철학적 오해가 개입되고 있으며 이 오해의 내용을 이글에서 밝히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이 핵심적으로 고찰하게 될 것은 인식적 원리의 정당화 그 자체이다. 즉 문제는 우리는 인식적 원리를 구체적 인식적 믿음들의 사례들에 의거해서 정당화할 수 있는가 혹은 거꾸로 개별적 인식적 믿음들은 원리로부터의 추론에 의거해 정당화되어야 하는가? 아니면 인식 원리는 자명한, 즉 토대적 정당성을 갖는 원리인가? (여기서 ‘인식적 믿음’은 믿음의 내용이 특정 믿음의 정당성에 관한 것을 내포한 메타 믿음을 의미한다. 예컨대 “S는 S의 믿음 P가 정당하다고 믿는다”는 형식의 평가적 믿음이다.) 이 글의 기본 목표는 치좀교수가 “비판적 인식주의” (critical cognitivism) 라고 부르는 견해, 즉 인식적 원리는 구체적인 정당한 인식적 믿음들에 기초해야한다는, 따라서 후자가 전자보다 인식적 우위성(priority)을 갖는다는 견해를 인식적 수반개념에 의거해 밝히는데 있다.
Ⅱ
비판적 인식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반론인 동시에 또한 인식적 원리가 구체적 사례보다 우위성을 가져야만 한다는 취지의 일종의 자연주의적 견해를 옹호하기 위한 논증은 미국의 인식론자 올스톤 (W.Alston)의 다음과 같은 논증에서 유래한다.
S의 믿음 P가 직접적으로 정당성을 가질 경우에도, 고차적인 믿음은, 그것이 정당하다면, 간접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어떤 믿음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할 때. 우리는 그것을 특정 방식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모든 가치평가적 속성들과 마찬가지로, 인식적 정당성은 그것의 적용이 보다 근본적인 속성들에 의존하는 수반적인 (supervenient) 속성이다. 믿음은 그것이 로데릭 퍼어스 (Roderick Firth)가 ”신뢰도를 증가시키는“ 속성이라고 부른 것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P에 대한 S의 믿음이 정당한 것이라는 우리의 [인식적] 믿음이 정당성을 갖으려면 우리는 다른 믿음들, 즉 P에 대한 S의 믿음이 특정 속성 Q를 갖고 그리고 Q는 그것을 가진 모든 믿음을 정당화시킨다는 믿음들을 정당하게 믿어야 한다. (또 다른 방식으로 이 후자의 믿음을 표현하자면, 그것은 , Q라는 속성을 가진 모든 믿음은 정당하다는 내용을 가진 타당한 인식적 원리에 대한 믿음이다). 따라서 S의 P 에 대한 믿음이 정당하다는 그런 인식적 믿음은 결코 직접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다.
이 인용문에서 명백히 올스톤은 인식적 수반 개념에 의거해서 치좀 류의 개별주의(particularism), 즉 비판적 인지주의란 메타 인식론적 입장을 논박하고 있다. 문제는 이 반론의 타당성이다.
밴 클리브 (Van Cleve)에 따르면 흔히, 인용된 올스톤 논증의 기본 전제는 다음과 같이 분석된다고 주장되어 왔다.
(A) 믿음 P가 정당한 것이라는 S의 믿음 자체가 정당성을 가지려면, 특정 속성 Q가 있고 S의 믿음이 속성Q를 가지면 동시에 Q를 갖는 모든 믿음은 정당하다고 믿는 믿음을 S는 정당하게 믿어야 한다.
= JJP requires (∋Q)[JQp & J{(p)(Qp→Jp}]
그러나 전제(A)에 대해 밴 클리브는 예컨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Q라는 속성이 명백하고 판명하게 지각됨이라는 속성이라고 가정하자. 그렇다면 내가 2+3=5가 명백하다(eveident)는 사실을 또한 명백하고 판명하게 지각하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여기서 밴클리브 반박의 요점은 이것이다. 만일 특정 속성 Q가 S의 특정 믿음B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속성이고 또한 그 속성이 그것을 갖는 모든 다른 믿음들을 정당화시켜준다면, 올스톤의 주장과는 달리 자신의 믿음 B에 대한 S의 인식적 믿음B도 단순히 그 속성 Q를 가짐으로써 직접적 정당성을 가질 수 있다. 한마디로 어떤 믿음이 인식적 믿음이라고 해서 임의의 속성Q를 갖지 못하란 법은 없다. 이런 밴 클리브의 반론은 올스톤의 논증이 불충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나는 다음에서 더 나아가 올스톤의 논증이 명백히 오류라는 사실을 보여주고자 한다.
Ⅲ
나의 논증의 출발점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식하는데 있다. 밴클리브처럼, 우리가 위의 (A)를 올스톤 논증의 주요 전제로 해석하면, 그의 논증은 단순히 선결문제요구의 오류를 범한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A)자체는 논리적으로 인식적 믿음의 직접적 정당성, 즉 비판적 인식주의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논증은 보다 자비로운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올스톤 자신의 말을 다시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인식적 정당성은 그것의 적용이 보다 근본적인 속성들에 의존하는 수반적 속성이다. 믿음은 그것이 (…) “신뢰도를 증가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S의 믿음이 정당한 것이라는 우리의 믿음이 정당성을 가지려면 우리는 다른 믿음(…)[즉 인식적 원리에 대한 믿음]을 정당하게 믿어야 한다.
즉 나는 올스톤 반박 논증의 올바른 논리적 형식은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논증(B)
(1) 인식적 정당성은 수반적 속성이다. 따라서 그것은 특정 신뢰도 부여 속성Q에 수반한다.(전제)
(2) 만일 G가 수반적 속성이고 G가 Q에 수반하면, 특정 속성 Q가 있어 S의 믿음이 Q를 가지면 동시에 Q를 갖는 모든 믿음은 정당하다는 S의 믿음 자체가 정당성을 갖는 그런 경우에 한해서만 S의 믿음에 대한 속성 Q의 귀속은 정당하다.(전제)
(3) 그러므로, (A). [= 전제(2)의 후건] (by 1.2. 긍정논법)
주목해야 할 것은 새롭게 해석된 논증에서, 밴 클리브가 해석한 원래 (A)는 전제가 아니라 논증의 결론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이해석하에서 올스톤은 선결문제요구의 오류를 회피할 수 있다고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논증의 형식이 이처럼 밝혀지면 나는 논증 (B)의 전제(2)는 명백히 거짓이고 전제(1)은 올스톤의 의미에서 문제점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논증(B)의 첫 번째 전제(1)에 대해 주목할 점은 올스톤이 말하는 ‘수반’이 강수반인지 약수반인지 불명확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인식적 원리를 “□(x)(Qx→Gx)"형식이 아니라 ”(x)(Qx→Gx)"형식으로 파악하는 것으로 미루어, 그의 ‘수반’은 기껏해야 약수반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처럼 약한 의미의 수반적 속성으로서의 인식적 정당성으로부터는 그가 말하는 ‘신뢰도 부여’ 속성 Q의 존재가 함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김재권 교수가 명백히 보여주었듯 “x-부여적‘ 속성은 약한 수반에 의해 보장되지 않는다.
둘째, 논증(B)의 전제(2)는 어떠한가? 전제(2)에 의해 올스톤은 인식적 수반 테제 자체가 대상에 규범적 속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또 다른 규범 원리에 대한 정당한 믿음에 의거함으로써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사실을 함축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 문제는 수반의 테제를 주장하는 모든 사람은 올스톤의 이런 주장, 즉 전제(2)를 부인해야 한다는 점이다.
나의 논점을 이해하려면, 먼저 수반 테제의 요점은 수반적 속성 일반의 구현 또는 예화(exemplication)에 관한 것이지 수반적 속성의 부여/귀속(ascription)에 관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수반이 인식론적인 개념인 부여에 관한 것이라면, 테제 자체는 극도로 불합리한 것이 된다. 예컨대 다음과 같이 친숙한 수반의 사례들을 검토해보자, 흔히 우리는 나의 이마의 두통이 복잡한 두뇌 상태 B에 수반한다고 말한다. 또 유리(glass)의 투명성이란 물리적 속성은 유리를 이루고 있는 무수히 많은 분자들의 복잡한 시공적 구조에 수반한다고 말한다. 문제는 내가 (정당하게) 두통이라는 속성을 나 자신에게 귀속시키기 위해 나는 내가 특정 복잡한 두뇌 상태 B를 갖고 있고, 모든 B를 갖는 것은 두통을 느낀다는 사실을 정당하게 믿어야만 하는가? 명백히 답은 부정적이다. 더구나 김재권의 수반적 기초들은 필요에 따라 무한연접이나 무한선접을 내포하는 속성들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올스톤은 이런 성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당한 믿음을 가질 경우에만 우리가 정당하게 어떤 대상에 수반적 속성을 귀속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위에서 사례로 보았던 예들은 명백히 특정 속성 Q가 있어 S의 믿음이 Q를 갖는 동시에 타당한 인식적 원리를 S가 정당하게 믿는 그런 경우에만 수반적 속성 G가 대상 x에 정당하게 귀속시킬 수 있다는 올스톤의 주장이 거짓임을 보여준다. 즉 전제(2)의 후건은 거짓이다.
상황을 정리해보자. ‘S'를 강한 수반의 테제로서 자비롭게 인정해준다면, 올스톤의 논증은 다음이었다.
<논증 1>
(1) S
(2) S→A
(3) ∴ A (by 1.2 긍정논법)
그러나 우리가 보았던 위의 사례들은 A가 거짓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not-A와 올스톤의 전제(2)를 받아들이면, 우리는 다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논증 2>
(1)′ S
(2)′ S→A
(3)′ ∴ A (by 1′.2′)
다시 말해 우리는 수반의 테제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 나는 수반의 테제 일반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내가 예시한 구체적 사례들을 대표적인 사례로 간주하리라 생각한다. 실상 내 생각으로 우리가 살펴본 사례들의 설득력으로부터 우리가 수반 개념을 구성하게 됐다는 것이 사태의 보다 올바른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위의 두 번째 논증(2)은 타당하므로, 우리가 수반의 테제를 옹호하려면 우리는 올스톤의 원래 논증(B)의 전제(2)를 부정해야만 하는 것이다.
요약하면, 올스톤과 같이 수반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은 다음의 논증을 위의 두 번째 논증에 단순히 덧붙임으로 (S→A)에 대한 귀류법으로 사용할 수 있다.
(4)′ S(전제)
(5)′ S & -S (by 3′.4′)
(6) ∴ -(S→A)
따라서 나는 이것이 인식적 원리가 개별적 정당성의 사례들 보다 논리적 우위성을 가져야 한다는 올스톤의 견해에 대한 치명적 논증이라고 생각한다. 줄여서 말하자면, 올스톤논증의 문제점은 수반 테제 일반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인식론적 성격으로 혼동한 것에 근본 문제가 있었다고 보여 진다. 이런 사실은 인식적 수반의 테제를 일차적 (비인식적) 믿음들 일반의 정당성의 문제가 아니라 고차적인 메타믿음인 인식적 믿음의 정당성에 적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미 보았듯 인식적 수반의 요점은 정당성의 ‘발생’의 문제이지 그에 대한 인식론적 ‘판단’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Ⅳ
비판적 인식주의에 대한 나머지 비판 중 널리 알려진 것 중의 하나는 인식적 원리들의 양상성(modality)에 관한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치좀교수는 인식원리가 일종의 종합적 필연성(synthetic necessity)을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주장이 어떻게 정당화될 수 있는가하는 것이 반론의 요점이다.
이제 이 비판의 답은 간결히 주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인식적 수반은 규범적 수반 일반의 특수사례로써, 그 규범적 원리, 즉 인식적 원리들이 형이상학적 필연성을 갖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치좀이 주장하는 ‘종합적 필연성’을 부인하는 인식론자는 인식 원리들의 분석적 참을 주장하거나 아니면 법칙적/인과적 필연성을 주장해야 할 것이다. 내가 보기로 전자의 견해가 죤 폴록(J.Pollock)의 이론이 논리적 귀결인듯하다. 폴록처럼 정당성의 조건에 근거한 의미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아마도 폴록은 적어도 우리의 인식적 원리들이 분석적 참임을 보여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의미규칙의 무한한 가능성(예컨대 다른 가능세계의 외계인들의 원리들)을 전제할 때 나는 왜 동일한 의미의 제한이 그처럼 인식적 접근이 가정 상 불가능한 원리들에 적용되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하겠다. 더구나 폴록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이라 하더라도 그는 왜 수반의 테제 자체가 분석적 진리가 아니라 종합적 필연성을 갖는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내 생각으로 폴록의 주장은 과도한 이론이다. 왜냐하면 그의 이론이 옳다면, 수반 테제를 부인하는 회의론자들의 주장은 P&-P형식의 논리적 모순을 범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정당성’의 개념을 이해 못한다는 주장을 함축해야 할 것 같이 때문이다.
형이상학적 필연성보다 약한 의미의 법칙적 필연성(nomic necessary)을 주장하는 입장은 그것이 아주 약한 형태의 양상적 필연성을 받아들인다는 그 이유 때문에, 데카르트 이래의 모든 논리적 혹은 형이상학적 가능성에 근거한 회의론 논증들에 그대로 노출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이런 입장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정당성의 문제에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데카르트의 전능한 악마의 세계에서 물론 우리는 지식을 가질 수 (외부 세계에 대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논의되고 있는 입장은 우리는 그런 가능세계에서 인식적 정당성조차도 가질 수 없다는 귀결을 함축한다. 나는 이것이 반직관적이라고 생각한다.
끝으로 언급되어야 할 이론은 인식적 원리 자체들이 직접적으로 정당성을 갖는다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예를 들면 밴 클리브에 의해 용인되는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의 문제점은, 밴 클리브자신이 인정하듯, 직접적 직관에 의해 정당성을 갖는 원리는 많은 원리 중의 일부에 한정될 때만 그럴 듯 해 보인다는 점이다. 그러나 일단 올스톤의 견해가 부인되면 비판적 상식주의와 밴 클리브 식의 직접적 정당성의 이론 간에는 절충이 가능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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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a, Ernest. "The Foundations of Foundationalism", Nous 14(1980), pp. 547-64.
Van Cleve, James. "Foundationalism, Epistemic Principles, and the Cartesian Circle", Philosophical Review 88(1979), pp. 55-91.
【Abstract】
Epistemic Supervenience and the Problem of Justification of Epistemic Principles
Ill-Hwan Rim
In contemporary epistemology, the theories of epistemic justification are believed to be the most important questions in epistemology. I argue in this paper, however, all forms of modern theories of epistemic justification share a basic assumption to the effect we can provide conditions of epistemic justification purely in terms of non-normative concepts. And I call this assumption a form of 'formal foundationism'.
I tried to show that this basic assumption of modern justification theories can only be metaphysically supported by the thesis of epistemic supervenience. To show this, first, I argue that W. Alston's application of superveience thesis to this problem involves serious mistakes. Secondly, once we get clear about the implication of epistemic superveience thesis, I argue, that the age old problem of criterion can be solved by what Professor Chisholm called, "critical cognitivist line. Finally I draw some epistemogical lessons from these important meta-epistemological issues.
【Key Words】Epistemic supervenience, Critical cognitivism, Epistemic principles, Foundation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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