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思惟)

모세스 멘델스존과 미 현상의 자율성

나뭇잎숨결 2022. 2. 8. 18:43

모세스 멘델스존과 미 현상의 자율성

김 수 배*

[한글 요약]

멘델스존의 사상은 특히 그의 미학이론에서 진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 중반의 유럽 미학의 큰 흐름은 합리론적 전통의 주지주의의 미학과 경험론적 전통의 감정주의 미학, 그리고 이와 유사한 성격을 지녔던 프랑스의 감각주의 미학에 의해 결정되었다. 주지주의 미학은 미를 객체에서 인식되는 특정한 성질, 즉 대상의 “완전성”에서 성립하는 것으로 보며, 인식 주체가 그것을 파악할 때 미를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감정주의와 감각주의는 일반적으로 객체보다는 주관의 감각적 태도를 강조하여 모든 지성 작용에 앞서는 미적 지각을 미 체험의 결정적 요소로 간주하였다.

멘델스존은 일단 주지주의적인 전통의 미적 관점이 감정주의나 감각주의의 공격을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 것인가를 시험하면서 자신의 미 이론을 출발시켰다. 한편 바움가르텐의 미학은 그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특히 그의 미에 대한 정의는 멘델스존으로 하여금 주지주의 미학의 객관적 미 개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바움가르텐에게서 감성적 능력의 고유한 권리를 평가하는 법을 배운 멘델스존은 인간 심성 능력에 대한 연구를 통해, 미적 쾌의 본성을 인식능력이나 욕구능력과 대등하며 그것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주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다.

본 논문은 볼프로부터 칸트로 이어지는 독일 미학 사상의 발전과정에서 멘델스존의 미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미 현상의 자율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먼저 멘델스존의 미학적 사고에 큰 전환점을 준 바움가르텐의 미적 현상 이론을 살펴보고, 미적 감각 이론으로부터 자율적인 취미의 능력으로 나아가는 멘델스존의 미 이론의 전개과정을 재구성한다.





주제분야: 서양근세철학, 미학

주 제 어: 멘델스존, 바움가르텐, 미학, 취미, 감각



1. 들어가는 말



주지하다시피 ‘감성’이라는 어원에서 비롯된 미학이라는 철학의 한 분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이성의 시기라 불리는 계몽주의의 시기인 18세기에 확립되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현상을 다루는 미학은 바움가르텐에서 시작되어 칸트에 이르러 그 자율성을 보장받는 확고한 학문의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특히 인식이나 욕구의 세계로부터 독립된 고유의 영역에 종사하는 체계를 갖춘 학문으로서 그것은 독일 계몽기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학의 성립은 예컨대 라이프니쯔의 독특한 형이상학적 단상들과 볼프의 『경험심리학』에 크게 힘입고 있다. 물론 17, 18세기의 미 이론에 영양을 공급한 또 다른 흐름들도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샤프츠베리, 로크, 허치슨, 버크 등과 같은 영국의 경험론 철학자들과 뒤보스, 바뙤 등과 같은 프랑스 사상가들의 미나 예술에 관한 이론들도 미학적 논의에 적지 않은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다양한 흐름들을 소화하고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가미하여 미 현상 고유의 지위를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칸트의 『판단력비판』에 가장 의미 있는 출발점을 제공한 철학자는 바로 멘델스존이다.

멘델스존은 미학으로부터 철학을 시작하였고, 미학적 저작물들을 통해 당시 베를린 지성세계에 등단하였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미학의 주제와 직접 관련된 주제를 다룬 『감각에 관하여』(Über die Empfindungen)를 출간한 이래 그는 계속하여 자신의 미학적 관점을 보완하고 발전시켰는데 이러한 그의 줄기찬 자기비판 작업은 그의 말년의 작품 『아침시간 혹은 신의 존재에 대한 강의』(Morgenstunden oder Vorlesungen über das Daseyn Gottes)에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이 과정 속에서 그는 당대의 여러 미학 사상을 섭렵하면서 “미적 자율성”의 철학적인 기초에 도달하게 된다.

칸트가 영국의 사상을 번역에 의존하여 습득할 수밖에 없었던데 비하여 언어의 귀재였던 멘델스존은 레싱, 줄쩌, 압트, 니꼴라이 등과 같은 당대의 저명한 문인, 학자, 출판인 등과 교류하면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 진행되고 있던 철학적 논의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일찍이 그의 천재성을 간파한 레싱은 보잘것없는 유대인이던 그를 게토에서 발굴하여, 문예비평 내지 서평을 전문으로 싣던 잡지 『문예총서』(Bibliothek der schönen Wissenschaften und der freyen Künste)와 『최신문학서간』(Briefe die Neueste Litteratur betreffend)(이하 “LB”로 표기)의 공동 주필을 맡게 한다. 이렇게 멘델스존은 그의 본격적인 미학적 사유활동을 현장으로부터, 즉 창작 비평 현장의 구체적인 문제들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점에서 그의 미학적 탐구의 방법이나 성격이 바움가르텐이나 칸트의 그것과는 확연히 다르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멘델스존이 미의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이론을 정립해 나아갔다고 한다면, 칸트는 멘델스존이 도달한 이론적 결과물들을 토대로 출발하여 취미판단의 선험철학적 원리를 탐구해 들어갔던 것이다. 멘델스존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자유분방한 스타일과, 사고의 유연성, 다양한 실험정신, 꾸준한 자기비판과 보완에 대한 열의,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취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체계성의 부족 등은 바로 이러한 그의 사상형성의 과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다.

그러나 멘델스존의 미학사상이 전적으로 그 자신의 현장 경험에만 의존해 발전한 것은 물론 아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그의 철학은 유대즘 이외에는 합리론적인 전통, 특히 라이프니쯔와 볼프 철학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볼프는 인식에 있어서 감성보다 오성을 강조하고, 행위에 있어서도 역시 의지보다는 선에 대한 지성적인 파악을 우위에 두는 이른바 “주지주의”의 입장을 견지하였다. 이렇게 지성의 역할, 즉 진리의 파악에 관심을 두었던 볼프는 미학에 직접 관련된 글을 남기지는 않았으나 『경험심리학』(Psychologia empirica)를 통해 18세기 중반의 독일 미학사상 성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볼프의 철학을 출발점으로 삼은 바움가르텐과 마이어의 미 이론도 역시 주지주의적인 성격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이들의 미에 대한 관심의 발단이 미 자체에 대한 관심에 있었다기보다 오히려 인식의 완성을 위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이미 그러한 한계를 잘 말해 준다. 미는 이들에게 일단 인식의 일부로서 의미를 가졌으며 따라서 진리나 선으로부터 근본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었다. 주지주의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미란 기본적으로 객체 안에 존립하는 것이고, 인식 주체가 그 객체가 보유하고 있는 미적 성질을 파악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때 객체의 미적 성질은 대상의 “완전성”(Vollkommenheit)으로 이해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지주의의 미학을 객관적 미학 내지 “완전성의 미학” (Vollkommenheitsästhetik)이라 부를 수 있다. 이와 같은 입장의 대척점에 놓여있던 미 이론으로는 영국의 경험론 전통의 감정주의와 그와 유사한 성격을 지녔던 프랑스의 감각주의를 들 수 있다. 허치슨, 휴움, 버크, 뒤보스 등이 그들인데 이들은 미가 객체 안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 속에 그리고 그 주관에 의해 존재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들에 의하면 미의 현상을 가능하게 하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감각이다. 미에 대한 지각은 판단하는 것이라기보다 직접 느끼는 것이고 모든 반성 작용에 앞서는 것이라 함으로써 이들은 주관적 미학 내지 취미의 미학을 표방한다.

이제 멘델스존은 이 같이 대립의 양상을 보이는 두 흐름을 칸트보다 앞서 주목하고 자신의 미학을 다듬어 나아갔다. 그는 자주 자신이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며, 선배 철학자들이 이미 다져놓은 길을 따라간 것일 뿐이라고 겸손해 하였으나 미학에 있어서 만큼은 분명 새로운 행보를 내디딘 인물이다. 여기서 우리는 볼프로부터 칸트로 이어지는 독일 미학의 전개과정에서 멘델스존이 차지하는 비중을 미 현상의 자율성의 문제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먼저 멘델스존의 미학적 사유에 큰 전환점을 제공한 것으로 보이는 바움가르텐의 미적 현상 이론을 정리해 보고(2), 다음으로 멘델스존 미학의 발전과정을, 그가 초기에 종사했던 미적 감각 내지 감수성의 문제(3)와 바움가르텐의 Aesthetica와의 접촉 이후에 모색했던 취미능력의 자율성(4)이라는 관점에서 재구성해 보고자 한다.





2. 바움가르텐의 미적 현상 이론



이미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칸트 이전의 독일 미학은 볼프의 『경험심리학』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볼프가 체계화한 능력심리학은 인식의 능력(facultas cognoscendi)과 욕구의 능력(facultas appetendi)의 두 능력만을 알고 있었고 그나마 전자를 후자보다 더 기초가 되는 능력으로 보았기 때문에 미 고유의 영역에 대한 배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볼프는 인간 정신의 여러 능력들을 서로 구분하고 그것들의 실제 활동을 내면적인 관찰을 통해 기술하고 이론화하는 가운데 실천철학의 원리들이 발견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그것들에 따른 행위를 수행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미 이론에 대한 고려는 전혀 하고 있지 않았다.

한편 『경험심리학』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경험은 지성의 작용이 개입된 인식 차원의 경험이라기보다는 인간 전 존재에게 가능한 구체적이고 풍요로운 내용을 가진 경험이었다. 이것은 『경험심리학』의 주요 방법인 “관찰”이 엄밀한 이론적 경험이 아니라는 데에서 이미 분명히 드러난다. 볼프는 자신의 작업이 일상적인 경험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주 강조하였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근대이래 주로 개별 과학적인 인식의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던 경험개념의 다차원적인 성격을 철학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경험심리학』은 인간 경험의 풍요로움을 그 전체성에 있어서 들어내어 주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바움가르텐도 볼프가 『경험심리학』에서 상세하게 취급한 인식능력들 가운데 소위 “하급의 인식능력”(facultas cognoscitiva inferior)인 감각, 구상력, 분별력, 기억력, 시작(詩作)능력, 선견지명, 판단력, 기대 혹은 예감의 능력, 기호능력 등에 주목하여 인간에게 가능한 모든 경험의 영역을 학문으로 다루고자 했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의 Aesthetica는 그 본래의 취지로 볼 때 미나 예술의 근본 물음에 대한 학문이라기보다 형이상학적 인식의 완결을 위한 것이었고 따라서 논리학에 대립된 것이 아니라 그것의 한계를 보충하려는 의도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의 목표는 말하자면 기존의 논리적 사유와 개별 과학적인 세계상이 포착해 낼 수 없는 실재세계의 풍요로움을 주제화함으로써 “가능한 한 가장 큰 인식의 총체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바움가르텐은 미와 미학을 그때그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정의한다. 먼저 미에 관한 정의를 보면 Metaphysica에서는 “현상으로서의 완전성, 혹은 취미에 의하여 넓은 의미에서 주목받을 수 있는 완전성”(Perfectio phaenomenon, s. gustui latius dicto obsevabilis)(§662, XV 45)이라 하고, Aesthetica에서는 이미 주(6)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이라 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벌써 해석상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는데, 도대체 “완전성”과 “현상으로서의 완전성” 그리고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보이믈러는 바움가르텐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 즉 그가 미를 “완전성의 감성적 현상”(die sinnliche Erscheinung der Vollkommenheit)으로 정의했다는 통설이 잘못이라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오해는 특히 그의 제자 마이어가 Aesthetica가 출판되기 이전에 Metaphysica에 의거하여 자신의 작품인 Anfangsgründe aller schönen Wissenschaften(Halle 1748-1750)을 통해 퍼뜨린 미에 대한 부정확한 정의에 기인한다고 한다. 마이어는 이 책 §23에서 “미 일반은 모호하거나 감성적으로 인식되는 한에서의 완전성”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정의는 미를 대상의 완전성이라는 객관적인 사태에 의존하게 함으로써 볼프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의와 Aesthetica에서의 정의의 차이를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결국 볼프-마이어적인 정의가 곧 바움가르텐의 그것으로 간주되어 왔다는 것이다.

미학에 관한 정의에서도 바움가르텐의 표현은 적지 않은 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앞의 주(6)에서 언급한 Aesthetica의 동일한 곳 (§14)에서 “미학의 목표는 감성적 인식 그 자체의 완전성이며, 이것이 곧 미이다”라고 하고 있다. 그런데 §1에서는 미학을 “(예술에 대한 이론, 하위의 인식능력의 논리학, 아름답게 사유하는 기술, 유사이성의 기술로서) 감성적 인식에 관한 학문” (scientia cognitionis sensitivae)으로 정의한다. 또 Metaphysica에서는 미학이란 “감성적으로 인식함과 현시함에 관한 학문”(scientia sensitive cognoscendi et proponendi)이라 함으로써(§533, XV 13) 각각 뉘앙스를 달리하고 있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그가 미학을 분명 단순히 미에 관한 학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위의 정의들에서 보듯이 그는 미학을 인식론적인 관점과 미의 표현 내지는 예술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정의들을 일관된 관점으로 이해하는 일은 어쩌면 아예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단 Aesthetica §14에서의 정의를 고려해 볼 때 “감성적 인식”이라는 표현이 “그 자체”(qua talis)라는 부가어에 의해 강조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앞에서 지적했듯이 바움가르텐은 기존의 학문 체계에서 소외되었다고 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감각적인 경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다. 또 이 정의는 어떤 대상에 존재하는 완전함에 대한 인식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적 인식의 완전함을 말하고 있다. 즉 성질이 되었든 질서가 되었든 객체나 대상은 거의 고려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 정의에서 미의 객관적인 몫과 주관적인 몫의 구분이나 대립을 문제삼는 것은 적절한 태도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바움가르텐은 최소한 Aesthetica에서 만큼은 보다 분명한 방식으로 자신이 미를 현상을 통해 인식되는 객체의 완전성으로 고려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그 현상 자체가 주관과 객관의 대립 너머에 놓여 있는 것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다. 예컨대 그는 §203에서 “미학적인 크기와 존엄”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자신은 “크기와 존엄이 객체들 자체에 내재하는 한에서” 그 크기와 존엄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은 오히려 “객체들에 내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바, “그것이 그 객체들에 관한 크고 존엄한 표상들이 형성될 수 있게 하기 위한 더 적절한 근거를 포함하고 있는 한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바움가르텐의 미 이론에서 미에 대한 객관적 이해로부터 주관적 이해에로의 이행을 확인할 수 있다. Aesthetica §18의 끝 부분에 슬쩍 삽입되어 있는 다음 구절 역시 그러한 바움가르텐의 의도를 잘 노출시키고 있다: “추한 사물들도 그 자체로 아름답게 생각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사물들도 추하게 생각될 수 있다”.

한편 “미학”에 대한 정의들에서 우리는 이미 바움가르텐이 미학을 객체에 관한 인식뿐 아니라 미 현상의 산출 내지는 예술에 관한 것으로도 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학이 주제로 삼는 “현상으로서의 완전성”이나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이란 여기서도 이중적인 의미에서, 즉 한편으로는 객관적-인식적인 관점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주관적-시작(詩作)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그에게 있어서 미학은 현상이나 감성적 인식 속에서 드러나는 객관적 질서와 주관적 질서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문제삼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바로 이런 점에서 그는 볼프보다 라이프니쯔에게 한 걸음 더 다가서 있다.

이상에서 우리는 바움가르텐이 비록 주지주의적인 완전성의 미학의 전통에 뿌리를 둔 사상가이면서도 미의 영역을 대상에 대한 객관적인 인식의 지평으로부터 분리하여 그 미 고유의 논리로 설명하려는 시도를 하였음을 보았다. 그는 일단 미라는 현상이 지성적 인식 작용과 관계없이 이해될 수 있으며, 따라서 감성적 인식이 불완전한 인식이 아닐뿐더러 자신의 고유한 방식에 의해 완전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볼프와는 달리 완전성의 지각이나 미를 설명하면서 만족감이나 쾌의 감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는 특이함을 보였다. 이것은 그가 미와 욕구능력의 관계를 도외시하였음을 의미하고 나아가 미의 영역을 선이나 실천의 영역과 구분하는 데에 무관심했음을 뜻한다.





3. 멘델스존과 미적 감각의 문제성



멘델스존의 미학 관련 첫 주저는 이미 밝힌 것처럼 『감각에 관하여』(Über die Empfindungen)이다. 이 작품의 내용을 검토하기 전에 먼저 우리는 “Empfindung”이라는 독일어가 적어도 18세기 중반까지는 현대 독일어 “Gefühl”에 더 가까운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메이에의 주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메이에는 자신의 주장을 아델룽(Johann Christoph Adelung)의 Grammatisch-kritisches Wörterbuch와 그림 형제(Jacob u. Wilhelm Grimm)의 Deutsches Wörterbuch의 각 해당 항목들을 근거로 주장하고 있다. 예컨대 그림 형제의 “Empfindung” 항목에는 다음과 같은 뜻풀이가 발견된다: “…Empfindung에는 어떤 정신적인 것이 들어 있는데 이것은 sinnliches Gefühl에는 부족한 것이다. Empfindung은 더 주관적이고 Gefühl은 더 객관적이다”. 그림은 나중에 “Gefühl” 항목에서는 “Empfindung” 항목에서의 동일한 뜻풀이를 상기시키면서 “ … 그런데 정확한 의미에서는 둘 다 그렇지 않다”라고 함으로써 다시 그와 같은 구분을 상대화시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멘델스존의 용어 사용에 관한 한 메이에의 주장은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멘델스존은 그의 절친한 친구 압트(Thomas Abbt)에게 보낸 1762년 7월 4일자 서신에서 자신의 작품이 프랑스어로 번역된 것과 관련하여 불만족을 표시하고 있다. 그의 작품의 제목은 “Traité des sensations”로 번역되었거나“Lettres sur les sensations”으로 번역되고 있었다. 한편 멘델스존의 의중을 잘 읽고 있던 압트는 나중에 멘델스존이 이 작품의 보충을 위해 쓴 Rhapsodie, oder Zusätze zu den Briefen über die Empfindungen(이하 “Rhapsodie”)을 번역하면서 “Empfindungen”을 “sentiments moraux”로 표현하였다. “sentiments”이라는 어휘도 어휘려니와 “moraux” 역시 “Empfindungen”으로 멘델스존이 말하고자 한 것이 감각주의자들이 “sensation”으로 의도하는 것과 다름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멘델스존 자신도 1764년 8월 말에 압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Gefühl”을 “Sensation”으로 “Empfindung”을 “Sentiment”으로 옮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위의 저서의 이름만 보고 멘델스존이 거기에서 감각주의의 미 이론을 전개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멘델스존은 이 작품에서 주지주의 미학의 입장에 서서 완전성의 미학이 및 감각주의 미 이론의 공격을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를 시험하고자 한다. 그는 Palemon (나중에는 Theokles)와 Euphranor라는 두 인물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전자는 완전성의 미학, 후자는 감각주의 미학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멘델스존은 서두에서 팔레몬이 독일의 형이상학적 전통에 매료된 영국인 백작 샤프츠베리라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는 아마도 자신의 미학 사상에 가장 가까운 입장을, 신적 질서를 따르는 세계의 조화로움과 그것을 지향하는 인간의 자연적인 감정에 기초한 철학을 피력한 샤프츠베리에게서 찾았던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에게 샤프츠베리는 영국적 전통의 라이프니쯔 같은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요즘식으로 말하면 오이프라노는 신세대 취향의 튀는 감각을 가진 인물이다 그는 “사물의 완전성이 만족의 근거이다”라는 팔레몬의 생각을 비웃으면서 오히려 그 반대가 참이라고 한다. 즉 만족이 우리로 하여금 어떤 대상을 완전하다고 부르는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이프라노는 미에 대한 감각을 지성적으로 사유하거나 분석하지 말 것을 팔레몬에게 주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외친다: “‘이 대상은 아름답다’와 ‘이 대상은 참이다’라는 이 두 표현은 서로 얼마나 다른가!”(JubA I, 49쪽). 모든 만족의 근거를 완전성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잘못이며, 오히려 “젊음” 내지 “혈관을 타고 흐르는 젊은 피”, 즉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팔레몬에게 있어 미를 경험하기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모든 천체의 경탄스러운 조직”, “세계구조의 속성”, “무수한 항성들”과 지구의 움직임, 모든 자연사물들의 “조화”이다. 그는 “감정이 모든 유쾌한 감각의 어머니인가?” 하고 묻고 스스로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또한 “프랑스의 경박한 지식인들”이 모든 문화민족들을 오염시키면서 주장하듯이 “이성은 … 만족의 방해꾼”이 아니다 라고 하면서 자신이 어떻게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만족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들어 보아라, 고귀한 젊은이여! (……) 나는 만족의 대상을 고찰한다. 나는 그것의 모든 부분들을 숙고하고 그것들을 판명하게 파악하고자 애쓴다. 그런 다음 나는 그것들의 일반적인 관계에 주목한다. 즉 나는 부분들로부터 전체로 움직여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면 낱낱의 판명한 개념들은 애매한 거리(dunkle Ferne)로 물러난다. 그것들 모두가 나에게 작용하지만 자신들 서로에게도 [일정한] 균형과 관계를 통해 작용하므로 그것들은 오직 전체로서만 [아름다움의] 빛을 발하게 된다(JubA I, 51쪽, [ ] 안은 필자 보충).



위의 인용문은 그 내용상 볼프가 『경험심리학』에서 “반성”(또는 “숙고”, “reflexio”) 개념을 설명한 것과 아주 유사하다. 그만큼 그는 이 시기에 아직 볼프의 주지주의적 전통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이때부터 미를 볼프철학의 형이상학적 개념인 완전성으로부터 구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는 팔레몬의 입을 빌어 미와 완전성의 경계를 분명히 긋고 그 양자에게 각각 합당한 지위를 부여해야 할 시기가 도래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는 두 개념을 적당히 뒤섞어 사용한 줄쩌(Johann Georg Sulzer)와의 대결을 통하여 지성적인 질서로서의 완전성과 감성적인 질서로서의 미를 구분한다. 미 개념과 완전성 개념이 결합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는 “감관을 가벼운 관계를 통하여 자극”함으로써 만족을 주는 것임에 비해, 완전성에 대한 만족은 말하자면 전 우주의 신적인 질서를 파악하려는 “이성적인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잘 훈련된 수준 높은 지성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의 모든 피조물들은 그것이 “아무리 추한 것”이거나 우리 인간의 눈이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작고 은폐되어 있는 부분들”일지라도 “완전하기를 그만둘 수 없으며, 서로 간의 일치를 통하여 그것들의 능력만큼 [창조의] 궁극 목적에 기여하기를 멈출 수 없다”는 것이다. 멘델스존은 이처럼 미를 완전성과 구분하되, 볼프적 전통에 서서 전자를 열등한 능력인 감관에, 후자를 우월한 능력인 지성에 귀속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일단 미를 형이상학적 개념인 완전성으로부터 분리하는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더 나아가 모든 만족의 원천을 세 가지로 분류하면서, “다양 가운데의 일치”는 “감성적 미”, “다양의 통일”은 “완전성”, 그리고 “신체 속성의 개선된 상태”는 “감성적 쾌”의 근원에 각각 해당한다고 한다. 아직 많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미와 완전성, 그리고 감관에 관한 쾌적한 만족을 각각 구분한 칸트에게 제법 근접한 도식을 제시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감각주의자와의 대결에서 완전성의 미학을 포기하지 않고 미적 대상에 의해 주어지는 만족의 독자적인 위치를 규정해 보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는 누구보다도 멘델스존 자신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멘델스존이 자신의 미 이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는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다름 아닌 바움가르텐의 Aesthetica이었다. 멘델스존은 바움가르텐을 1757년 출판된 Betrachtungen über die Quellen und die Verbindungen der schönen Künste und Wissenschaften에서 처음 인용하고 있는데 그나마 부정확한 방식이었다. 아무튼 대략 이때부터 “미는 감성적 인식의 완전성”이라는 바움가르텐의 정의가 그의 관심을 이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멘델스존은 바움가르텐이 감성적 인식을 불완전한 인식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한 완전성을 지닌 인식으로 간주한 것에 주목한다. 그는 바움가르텐이 미의 고유성을 감각의 방식에서, 즉 주관의 특정한 태도에서 찾으려 한 것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이제 자연이나 우주의 객관적이고 신적인 질서보다는 “우리의 영혼의 비밀” 속에서 미와 예술의 해법을 찾으려 하며, 자연적 질서의 모방에서 미적 만족의 수단을 찾으려는 태도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이제 멘델스존은 “인간의 영혼”을 “자연만큼이나 무궁한 것”으로 보고 미의 근원을 주관 속에서 발견하려는 소위 “주관적인 전회”를 시작한다. 미는 더 이상 대상의 완전성에 대한 인식의 효과와 결부되지 않으며, 감성에 의해서 비로소 만들어지는 무엇이고 특히 완전한 감성적 표상 속에서 산출되는 무엇으로 고려되기 시작한다. 예컨대 회화의 미는 아름다운 대상들을 재현함에서 존립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대상들을 아름답게 표상하는” 데에서 성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 예술을 “미의 쾌적한 표현”으로 간주함으로써 “혐오”나 “아주 큰 경악”의 대상들을 그것의 소재로부터 배제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한다. 멘델스존이 바움가르텐의 도움으로 인간 영혼의 감성적인 부분을 결함 있는 부분이 아니라 풍요롭고 완전한 부분으로 간주하게 됨으로써, 미를 대상의 객관적 성질의 구속으로부터 해방시킨다. 그렇게 하여 미는 이제 신성함이나 형이상학의 영역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미학 고유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갈림길에 서게 된 것이다.

또 하나 특기할만한 사실은 이때부터 멘델스존은 미가 인간의 영혼에 야기하는 심리적인 “효과”(Wirkung)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학적 성향은 “Über das Erhabene und Naive(1758)”이나 “Rhapsodie(1761)” 등에서 완전성 미학의 두드러진 퇴조를 낳고, 더 나아가서는 미 현상을 대상뿐 아니라 윤리적인 판단으로부터도 구분하는데 기여하게 된다.

한편 미 현상의 주관에 대한 효과를 심리학적으로 탐구하는 과정에서 멘델스존은 인간 영혼의 여러 능력들의 활동을 다시 검토할 기회를 갖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그가 볼프의 경험심리학 이래 주관의 능력을 인식능력과 욕구능력으로 구분해 오던 능력심리학의 이분법을 근본부터 다시 문제삼게 된 것을 의미한다.





4. 멘델스존의 능력심리학과 취미의 자율성



1760년대 중반 이후 주로 형이상학과 종교의 문제에 치중했던 멘델스존은 말년의 역작인 『아침시간』(1783)에 삽입된 “Vorerkenntniß von Wahrheit, Schein und Irrthum”에서 자신의 미 이론을 다시 검토, 보충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그 동안 자신이 단편적으로 시도해 본 능력심리학에 대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미의 경험이 인간 주관에 야기하는 “효과”, 즉 쾌의 감정의 고유한 지위를 규정하고자 한다. 그의 착안점은 취미판단에서 쾌나 불쾌를 유발하는 계기는 대상이 제공하지만, 주관이 자신의 능력의 활동을 통해 나오는, 즉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쾌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미 1761년의 한 단편에서 멘델스존은 자신의 과거의 생각을 비판하면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만족은 말하자면 영혼이 자신의 현실적인 상태에 대해서 내리는 호의적인 판단이다. (……) 나는 [과거에] 단지 영혼이 ... 지각하는 객관적인 완전성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당시에] 다음과 같이 덧붙였어야 했다. 즉 조화롭고 내적인 이러한 감각을 통하여 영혼의 능력들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활동하게 되며, 그렇게 함으로써 영혼 내부의 주관적인 현실성도 참여하게 된다라고(“Bemerkungen zu den ‘Philosophischen Schriften’”, in: JubA I, 225쪽. [ ]안은 필자 보충).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자칫 다시 감각주의적인 미 해석과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그러한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서 멘델스존은 감관의 쾌적한 자극과 미의 경험에서 느끼는 쾌의 성질이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설명해 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제 멘델스존은 마치 칸트가 『판단력비판』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미적 쾌의 본성을 인식능력이나 욕구능력 등과 대등하며 그것들과 분명한 차이를 갖는 주관의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의 결과로 설명하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세 능력 이론”(Dreivermögenstheorie)이다.

일반적으로 세 능력 이론은 줄쩌에서 시작하여 멘델스존, 테텐스를 거쳐 칸트에 이르러 완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취미 고유의 능력을 확정하는 일이 미적 쾌의 본질을 규명하고, 더 나아가 미 현상의 자율성 확립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멘델스존은 지속적으로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된다.

그는 이미 1756년 12월에 레싱에게 보낸 편지에서, 미가 우리의 하위의 인식능력에 미치는 효과에 의하여 판단하는 “취미”와, 진리를 판단하는 역시 하위의 인식능력으로서 “분별력”Einsicht(Bonsens)을 자신의 방식대로 구분하면서 레싱의 의견을 묻고 있다. 또 1760년의 “Verwandschaft des Schönen und Guten”에서도 그와 같은 인간 심성의 능력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이성에 의해 참을 거짓으로부터, 선을 악으로부터, 미를 추로부터 구분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분별력과 감각과 취미를 소유하고 있는데 이것들에 의해 판명한 추론이 없이도 참, 선, 그리고 미를 … 느끼는 것이다 (……) 이성이 항상 분별력과 도덕감을 지배해야 하는 반면, 취미는 이성을 거부해야한다(JubA II, 182-183쪽. 강조 멘델스존).



칸트와의 대결을 승리로 장식했던 논문 “Abhandlung über die Evidenz in metaphysischen Wissenschaften(1764)”에서는 분별력을 “진리감”(Wahrheitssinn)으로, 감각을 “양심”(Gewissen)으로 표현하면서도 미와 추의 구분 능력에 대해서만큼은 “취미”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멘델스존은 이제 인식능력 및 욕구능력과 대등한 미적 감각의 능력, 즉 취미의 고유 영역을 확신한 듯 평소의 소심한 태도를 버리고 “모든 인식 종류는 그 자신의 가치를 가진다”라고 과감하게 주장한다. 그리고 1776년의 “Über das Erkentnis”에서는 거의 완전한 세 능력 이론이 등장하게 된다: “인식능력과 욕구능력 사이에 감각능력이 있는데 우리는 이것에 의하여 어떤 사물에게서 쾌와 불쾌를 감각하고 시인하거나 … 또는 시인하지 않는다 (……) 미의 표상에서 너무 자주 참을 보는 자는 … 단지 감각능력만이 작용해야 하는 곳에서 자신의 인식능력을 작용하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멘델스존은 계속해서 볼프 심리학의 이분법을 삼분법으로 대체하는 실험을 거듭하면서 취미에 해당하는 능력을 때로는 “감각능력”(Empfindungsvermögen)으로 또 때로는 “시인능력”(Billigungsvermögen)으로 부른다. 물론 그가 “감각능력의 목표는 선이다”라고 하는 등 아직까지 어느 정도 일관적이지 못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삼분법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대세로 자리잡는다. 그래서 그의 미학에 관한 궁극적인 입장을 보여주는 『아침시간』에 오면 미적인 능력인 시인의 능력은 대상을 단순히 관조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의도에 따라 변형시킨다는 점에서, 대상의 본성에 의존하는 인식능력과 또 그 대상을 “소유”하거나 실현하려는 욕구능력으로부터도 좀더 확실히 구분된다.



전자[=인식능력]는 사물로부터 나와서 우리의 안에서 끝난다. 반면에 후자[=시인능력]는 정반대의 길을 간다. 즉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와서 외부 사물들을 그 목표로 삼는다. [이것은 마치] 내가 나 자신을 설명하는 것이다[=것과 같다]. (……) 전자는 인간을 사물들의 본성에 따라서, 그리고 후자는 사물들을 인간의 본성에 따라서 변형시킨다.(JubA III.2, 64쪽. [ ]안은 필자 보충)



우리는 자연과 예술의 미를 욕구에 의한 최소한의 흥분도 없이 만족과 기쁨으로 고찰한다. 미의 특별한 점은 그것이 평온한 기쁨과 더불어 고찰된다는 사실, 그리고 우리가 비록 그것을 소유하고 있지 않고 또 소유하려는 욕망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도 만족을 준다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JubA III.2, 61쪽)



이와 같이 멘델스존은 칸트에게서 발견되는 “미적인”(ästhetisch)의 의미, 즉 “주관적인 규정근거에만 의거한”(『판단력비판』 B 4)이라는 이해에 도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대상에 대한 “무관심적”이고 “순수한” 관조의 이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러한 미적 관조가 단순히 수동적이고 수용적인 주관의 상태가 아니라, “시작(詩作)을 사랑하는 인간”의 적극적인 능력인 “시인능력”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본다. 그것은 우리의 “주의력이 동일한 대상을 지속해서 고찰하려는 만족을 통해 유지하는 방향성”이며, 인간은 이때 사물들의 질서를 나름대로 변형하여 “자신의 만족과 불만족을 쾌적한 유희 상태로 들어가게” 한다는 것이다. 내용상으로 보면 칸트의 『판단력비판』과 상당히 유사한 미 이론이라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칸트와의 유사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멘델스존은 시인능력에서 인식의 영역으로부터 욕구의 영역으로의 이행 가능성까지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그는 예술, 즉의 영역과 도덕의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전자가 후자에 대해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커다란 효용성을 지적하기를 잊지 않았다.







5. 맺는 말



멘델스존의 미 이론은 볼프로부터 칸트로 이어지는 독일 미학사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 그는 바움가르텐이 그의 미 현상 이론으로 터 놓은 길, 즉 객관적 미학에서 주관적 미학에로의 전회의 길을 계속 걸어 나아갔다. 그리고 그 과정은 아직 주지주의적인 형이상학의 멍에에 사로잡혀 있던 완전성의 미학을 그 식민 상태로부터 해방시켜 미학 본래의 영토를 되돌려 주는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것이 곧 감각주의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멘델스존이 발견한 미적 주관은 외부의 감관적 자극에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단순한 “관망자”아니라, 대상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대상에 다가가며 그것을 변형시키기까지 하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힘을 가진 주관이다.

그는 결코 급진적이거나 혁명적인 사상가는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직접 예술 현장에서 발견한 문제들 중에서 기존의 이론으로는 설명하기 곤란한 새로운 문제들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그 이론을 개선해 가는 방식을 택한 “신중한 도전자”였다. 그러나 미학의 영역에서 멘델스존이 도달한 결론들은 미학사의 한 획을 그을 만큼 특별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제 그가 열어 놓은 길을 확고한 체계에 의하여 다지는 몫은 칸트에게 주어졌다.

취미판단의 독자적인 원리를 발견하기 위해 고심하던 칸트는 멘델스존에게서 그 실마리를 얻고 미 현상 고유의 영역에 선험철학적인 기초를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칸트가 주지주의적인 완전성의 미학에 전혀 미련을 두지 않을 수 있었고, 또 영국의 경험론 미학의 매력으로부터도 어렵지 않게 벗어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분명 그의 영원한 경쟁자였던 멘델스존이 미 현상의 자율성과 관련하여 도달한 이론적 논의의 수준이 놓여 있다. 우리가 『판단력비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인식과 욕구로부터의 취미의 해방, 감각적인 쾌적함과 미적 쾌의 구분, 무관심적인 만족, 심의 능력들의 자유롭고 지속적인 유희, 취미능력의 매개적 기능, 미적 관조 등에 대한 칸트의 설명은 멘델스존의 미 이론과 매우 근접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18세기 미학의 그러한 중심 논의들의 본질적인 부분과 그것들에 대한 여러 이론적 관점들이 이미 멘델스존의 사고 실험을 거쳐 칸트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