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무렵 소리들 /오은

나뭇잎숨결 2022. 1. 21. 16:12

 무렵 소리들

 

-오은

 

 

정수리가 토마토 꼭지처럼 힘없이 떨어져나갈 무렵,

팬파이프 소리, 피아노의 스물네 번째 건반 소리, 병든 아이의 숨소리, 마지막이 가까스로 유예되는 소리, 돌들이 튀어오르는 소리, 해바라기씨가 옹기종기 모여 한꺼번에 마르는 소리, 당신의 입술이 벌어질 때 나는 최초의 소리, 모래알들이 법석이는 소리, 조개들이 통째로 기어가는 소리, 눈물이 볼을 타고 견디듯 흘러내리는 소리, 티슈 한 장이 먼지 부연 선반 위로 떨어지는 소리, 수억 광년 묵은 별똥별이 전쟁터에 불시착하는 소리, 틀어막은 여자의 입에서,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겨우 새어나오는 비명 소리,

말들이 징검다리고 밥이고 우주고 엄마고 바로 당신이었던 그 무렵, 낙오된 귀를 열어젖히는 한없이 낯선 소리, 에르호 에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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