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 산책/안희연
두 발은 서랍에 넣어두고 멀고 먼 담장 위를 걷고 있어
손을 뻗으면 구름이 만져지고 운이 좋으면
날아가던 새의 목을 쥐어볼 수도 있지
귀퉁이가 찢긴 아침
죽은 척하던 아이들은 깨워도 일어나지 않고
이따금씩 커다란 나무를 생각해
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불이 되어 일제히 날아오르고
절벽 위에서 동전 같은 아이들이 쏟아져나올 때
불현 듯 돌아보면
흩어지는 것이 있다
거의 사라진 사람이 있다
땅속에 박힌 기차들
시간의 벽 너머로 달려가는
귀는 흘러내릴 때 얼마나 투명한 소리를 내는 것일까
나는 물고기들로 가득한
어항을 뒤집어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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