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사곶 해안 / 박정대

나뭇잎숨결 2022. 1. 9. 10:23

사곶 해안 / 박정대

 

 


고독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곳은 마치 바다의 문지방 같다/ 주름진 치마를 펄럭이며 떠나간 여자를/ 기다리던 내 고독의 문턱/ 아무리 걸어도 닿을 수 없었던 生의 밑바닥/ 그곳에서 橫行하던 밀물과 썰물의 시간들/ 내가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던 울음을/ 끝내 갈매기들이 얻어가곤 했지/ 모든 걸 떠나보낸 마음이 이렇게 부드럽고 견고할 수 있다니/ 이렇게 넓은 황량함이 내 고독의 터전이었다니/ 이곳은 마치 한 생애를 다해 걸어가야 할/ 광대한 고독 같다. 누군가 바람 속에서/ 촛불을 들고 걸어가던 막막한 생애 같다/ 그대여, 사는 일이 자갈돌 같아서 자글거릴 땐/ 백령도 사곶 해안에 가볼 일이다/ 그곳엔 그대 무거운 한 생애도 절대 빠져들지 않는/ 견고한 고독의 해안이 펼쳐져 있나니/ 아름다운 것들은 차라리 견고한 것/ 사랑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뒤에도/ 그 뒤에 남는 건 오히려 부드럽고 견고한 生/ 백령도, 백년 동안의 고독도/ 규조토 해안 이곳에선/ 흰 날개를 달고 초저녁별들 속으로 이륙하리니/ 이곳에서 그대는 그대 마음의 문지방을 넘어 서는/ 또 다른, 生의 긴 활주로 하나를 갖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