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 박정대

나뭇잎숨결 2022. 1. 9. 11:58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 박정대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낡은 태양의 오후를 지나, 또 무수한 상점들을 지나 거기에 갔으므로 너무나 지쳐 있었는지도 모른다/ 내 등 뒤로는 음악 같은 나뭇잎들이 뚝뚝 떨어지고, 서러운 풍경의 저녁이 짐승처럼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성냥을 꺼내어 한 점의 불꽃을 피워 올렸다, 영원은 그렇게 본질적인 불꽃 속에 숨어 있다가 어느 한순간 타오르기도 한다/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그날 내가 불멸을 찾아 나섰는지도 모른다, 뿌연 공기들을 헤치며 이 지상에는 없는 시간을 나는 찾아 나섰다/ 내가 한 마리의 식물처럼 고요했던 시간, 내가 한 그루의 짐승처럼 그렇게 타올랐던 시간, 바람과 불의 시간을 지나 공기의 정원에서 내가 얼음꽃을 피워 올렸던 그 단단한 침묵의 시간을 찾아 나는 나섰다/ 그런데 그날 불멸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늘 불멸을 꿈꾸었지만, 그렇게 불멸을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나는 오히려 불멸이 너무나 낯설었는데, 어쨌던 불멸은 내가 갔던 거기에, 그렇게 당도해 있었다/ 네가 불멸이니, 그때 너무나 당황했으므로 나는 속으로 그렇게 물어보았는지도 모른다/ 불멸이 이제 나에게 당도했으므로 나는 어찌할 줄을 모른다, 오랬동안 불멸을 꿈꾸어왔지만 불멸이 나에게 당도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불멸 앞에서 이 세계의 본질적인 사랑을 생각한다/ 불멸도, 사랑도, 내 생각으로는 그저 저 스스로 존재하는 그무엇일 뿐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나에게 또 불멸의 아름다운 시를 쓰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쓰지 않는다, 불멸의 아름다움이란, 느끼는 자의 내면 속에서 수시로 쉬고 존재하며,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시가 아니다/ 시가 아니므로 불멸이 아니고 불멸이 아니므로, 이것은 불멸의 시가 된다/ 그렇다, 당신이 이 글에서 시를 읽어내려고 했다면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그러나 시 아닌 그 무엇을 읽어냈다면 이미 당신은 또 하나의 불멸인 것이다/ 나도 언젠가는 저 별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므로, 나도 언젠가는 불멸인 것이다/ 그리고 어느 먼 훗날, 태양이 식어가는 낡고 오래된 천막 같은 밤하늘의 모퉁이에서 서러운 별똥별로 다시 만난다 하더라도, 나는 아직 살아있으므로, 나는 불멸이 아니라 오래도록 너의 음악이다/ 그때까지 사랑이여, 내가 불멸이 아니어서 미안하다/ 그때까지 불멸이여, 내가 사랑이 아니더라도 나를 꿈꾸어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