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별을 굽다/김혜순

나뭇잎숨결 2021. 10. 27. 09:20

별을 굽다/김혜순

 

 

사당역 4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고

에스컬레이터에 실려 올라가서

뒤돌아보다 마주친 저 수많은 얼굴들

모두 붉은 흙 가면 같다

얼마나 많은 불가마들이 저 얼굴들을 구워냈을까

 

무표정한 저 얼굴 속 어디에

아침마다 두 눈을 번쩍 뜨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밖에서는 기척도 들리지 않을 이 깊은 땅속을

밀물져 가게 하는 힘 숨어 있었을까

 

하늘 한구석 별자리마다 쪼그리고 앉아

별들을 가마에서 구워내는 분 계시겠지만

그분이 점지하는 운명의 별빛 지상에 내리겠지만

물이 쏟아진 듯 몰려가는

땅속은 너무나 깊어

그 별빛 여기까지 닿기나 할는지

 

수많은 저 사람들 몸속마다에는

밖에선 볼 수 없는 뜨거움이 일렁거리나 보다

저마다 진흙으로 돌아가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불가마 하나씩 깃들어 있나보다

 

저렇듯 십 년 이십 년 오십 년 얼굴을 구워내고 있었으니

모든 얼굴은 뜨거운 속이 굽는 붉은 흙 가면인가 보다

 

 

'시(詩)와 詩魂'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의 능력/김행숙  (0) 2021.11.08
어떤 영혼들은/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0) 2021.10.27
낙엽 성적표/박은주  (0) 2021.10.27
종(鐘) 속에서/김혜순  (0) 2021.10.27
물들어 간다는 것은/조동례  (0) 2021.1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