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길 수 없는 노래 1
-이성복
어두운 물 속에서 밝은 불 속에서 서러움은 내 얼굴을 알아보았네 아무에게도 드릴 수 없는 꽃을 안고 그림자 밟히며 먼 길을 갈 때 어김없이 서러움은 알아보았네 감출 수 없는 얼굴 숨길 수 없는 비밀 서러움이 저를 알아보았을 때부터 나의 비밀은 빛이 되었네 빛나는 웃음이었네 하지만 나는 서러움의 얼굴을 알지 못하네 그것은 서러움의 비밀이기에 서러움은 제 얼굴을 지워버렸네
숨길 수 없는 노래 2
-이성복
아직 내가 서러운 것은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 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봄하늘 아득히 황사가 내려 길도 마을도 어두워지면 먼지처럼 두터운 세월을 뚫고 나는 그 대가 앉았던 자리로 간다 나의 사랑이 그대의 부재를 채우지 못하면 서러움이 나의 사랑을 채우리라
서러움 아닌 사랑이 어디 있는가 너무 빠르거나 늦은 그대여, 나보다 먼저 그대보다 먼저 우리 사랑은 서러움이다
숨길 수 없는 노래3
-이성복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그대에게 가는 먼길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길이 끝난 자리에 서 있는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그리고 그 사이엔 아무도 발 디딜 수 없는 고요한 사막이 있습니다 나의 일생은 두 개의 다른 죽음 사이에 말이음표처럼 놓여 있습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오랜 저녁빛에 눈먼 두 개의 고인돌 같은 것을 내 지금 그대를 떠남은 내게로 오는 그대의 먼 길을 찾아나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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