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帛書)

마리아, 위대한 탄생을 위한 아름다운 탄생!

나뭇잎숨결 2021. 9. 8. 10:05

 

 

『성모님의 생애』 2023년 9월 8일

 

성경에는 성모님의 생애에 관한 기록이 없는데, 그래도 성모님의

생애를 연상하게 하는, 또는 복음서 저자들이 성모님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것 같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6-37).”

한나가 남편과 같이 살았던 기간이 짧았다는 것,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는 것,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이 없었다는 것 등이 모두

성모님의 생애와 비슷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성모님은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하느님과 함께 사신 분입니다.

그리고 성모님은 ‘살아 있는 성전이신 예수님’을 떠나는 일 없이

끝까지 모든 것을 예수님과 함께 하셨고,

예수님 승천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함께 하신 분입니다.

“그들은 모두, 여러 여자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그분의

형제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기도에 전념하였다(사도 1,14).”

 

‘렙톤 두 닢’을 봉헌한 어떤 과부의 이야기에서도

성모님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 헌금함 맞은쪽에 앉으시어, 사람들이 헌금함에 돈을

넣는 모습을 보고 계셨다. 많은 부자들이 큰돈을 넣었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와서 렙톤 두 닢을 넣었다.

그것은 콰드란스 한 닢인 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헌금함에 돈을 넣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진 것을,

곧 생활비를 모두 다 넣었기 때문이다.’(마르 12,41-44)”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혹시 그 가난한 과부가

성모님이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생활을 하셨기

때문에(루카 9,58), 성모님도 물질적으로는 늘

궁핍한 생활을 하셨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가진 것을 모두 다 봉헌하셨습니다.

<당신의 생애 전체를 하느님께 바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모든 것을 다 바치는

그 마음을 보셨기 때문인데, 아마도 그 과부의 모습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게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봉헌한다는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전부 다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하느님께서 잠시 나에게 맡겨 주신 ‘하느님의 것’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봉헌을 자랑할 것도 없고, 생색낼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서 마주치신 과부의 모습에서도

성모님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이라는 고을에 가셨다. 제자들과 많은 군중도

그분과 함께 갔다. 예수님께서 그 고을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마침 사람들이 죽은 이를 메고 나오는데, 그는 외아들이고

그 어머니는 과부였다. 고을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그 과부와

함께 가고 있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루카 7,11-15).”

이 이야기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예수님도 외아들이셨고

성모님도 과부셨습니다.

울고 있는 과부를 보시고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셨을 때,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 때에 성모님이

겪게 되실 ‘비통한 심정’을 미리 보셨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울지 마라.” 라는 말씀은, 성모님께도 하신

말씀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젊은이를 살리신 일은, 당신이

‘생명의 주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드러내신 일이기도 하고,

당신의 부활을 예고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라는 말은,

“죽은 젊은이를 살리심으로써 그 어머니에게

‘기쁨’을 돌려주셨다.”로 해석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온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사건이지만, 그래도 성모님께 가장 큰 기쁨이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어머니를 제자에게

부탁하신 것은(요한 19,26-27), 어쩌면 ‘나인’ 고을의

과부의 모습을 기억하셨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지내는 것은, 창조 이전부터

성모님을 협력자로 뽑으시고, 성모님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구원사업을 시작하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서 찬미 받으시기를

빕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우리에게 내리셨습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3-5).”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과 ‘탄생’과 ‘승천’은 모두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의 선택과 부르심을 받은

귀한 존재라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성모님을 본받아서, 성모님처럼, 그 선택과

부르심에 온전히 응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출처]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9월 8일 금요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오늘 교회는 마리아의 탄생을 경축하며, 성경이 말하지 않는 마리아 탄생 일화 대신 예수님 잉태에 얽힌 후일담을 전합니다. 미사의 말씀은 기나긴 다윗 가문 족보 안에서 이어진 구원 역사가 예수님의 주변 인물들을 통해 어떻게 열매를 맺었는지 들려 주지요.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먼저 제1독서에서는 이스라엘 가문에서 탄생하실 구세주에 대해 미카 예언서의 한 구절을 들려 줍니다. 이 구절이야말로 예수님 족보의 요약인 셈입니다. "보잘것없는" 가문에서, "보잘것없는" 신분의 여인들을 통해 맥이 이어져 온 역사임이 오늘 마태복음 첫머리의 족보에서 드러나니까요.

"타마르,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
다윗 가문의 족보에 등장하는 다섯 여인은 하나같이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낸 이들입니다. 소위 말하는 양갓집 규수들의 조건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요. 하지만 성경은 예수님 조상인 그녀들의 근본과 이력, 신원에 대해 포장하거나 덧칠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족보는 이스라엘 구원 역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의 구원 역사를 담고 있는 자취가 되기도 합니다. 세대를 거쳐 우리를 품어 온 태, 우리와 연결된 핏줄 역시 크게 다를 바 없기 때문이고, 그 덕에 지금 여기 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마태 1,19)
약혼녀의 임신은 혼인을 기다리는 신랑 입장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충격입니다. 배반한 여성에게 어떤 조처를 취해도 율법과 관습이 눈감아 주고 편들어 줄 처지일 겁니다. 하지만 의로운 사람 요셉은 마리아를 위해 물러나 주기로 합니다. 사랑과 겸손 위에 자라난 그의 "의로움"은 결국 순종의 열매로 완성될 것입니다.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마태 1,23)
복음사가는 예언서의 한 대목을 들어(이사 7,14 참조) 요셉의 결정을 숨죽여 바라보는 우리까지도 이해시키고자 합니다. 인간적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신비를 믿음으로 껴안아야 한다고 요셉과 함께 우리에게도 말을 건네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 대목에서 사건의 서술 안에만 등장하는 마리아나, 그 사건 앞에서 고뇌하는 요셉은 족보 속에 등장하는 이들과 다를 바 없이 소박하고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입니다. 실제로 성왕 다윗도 자신에 대해 "나처럼 가난하고 천한 몸"(1사무 18,23 참조)이라 일컬었고, 후일 불리울 마니피캇에서 마리아 역시 "그분께서 당신 여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루카 1,48 참조)다고 고백하지요. 주님 앞에 선 인간의 가난함과 비천함은 적나라한 실존인 동시에 희망입니다. 그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된 것이니까요.

사람은 태생이나 가문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은 곧, 자기 가문이나 집안에 대해서 자랑하는 것만큼 부질없고 민구스런 일도 없다는 뜻도 되지요. 이미 자기 집안의 역사를 보아서 알지만, 흠결 없이 완벽히 고귀한 족보는 희망사항이나 은폐의 증거일 뿐, 실제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있게 한 집안 역사의 흠 많은 자취들에 대해서 솔직해도, 당당해도 괜찮습니다.

구세주를 일으킨 "보잘것없는" 집안의 족보가 말해주듯, 비록 가난하고 비천한 죄인인 바로 우리가 구원 역사의 한 줄기, 한 토막을 끗꿋이 연결하는 중일 수도 있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처럼 연민하고 사랑하며 겸손히 순종하는 우리를 통해 인류에게 이루실 주님의 구원이 끊이지 않고 맥을 이어가는 중이니까요.

사랑하는 벗님! 머리로는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음으로 순종하는 가운데 신앙의 길을 묵묵히 걸어오신 벗님을 축복합니다. 벗님은 마리아와 함께, 구원의 신비와 우리 삶을 잇는 견고한 허브처럼 자리하고 있으니까요. 구원의 핏줄은 이렇게 믿는 우리 모두를 통해 오늘도 면면히 흘러간답니다. 마리아를 닮은 벗님은 복되십니다! 우리 구원의 시작이 되신 마리아의 탄신을 축하합니다. 그 구원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는 벗님의 탄생도 더불어 축하합니다.



◆ 출처:  원글보기; ▶ 작은형제회 오 상선 바오로 신부

 

 

 

 

[강론1]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

마태오 1,1-16. 18-23

 

-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참으로 완전한 사람은 자아에 죽고 주님께 사로잡혀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따릅니다!

 

 

오늘 우리는 성모님의 여러 축일들 가운데 탄생일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아버지 요아킴은 나자렛 출신으로 존경받는 부자였습니다.

어머니 안나는 베들레헴 출신의 신심 깊은 여인이었습니다.

두 분은 열심한 신앙인이었지만 연세가 들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요아킴은 자녀를 청하기 위해 광야로 들어갔고, 40일간 단식하며 기도를 했습니다.

안나 역시 집에 남아서 탄식하며 기도를 바쳤습니다.

두 분의 기도가 얼마나 간절했던지 마침내 주님께서 응답을 들어주셨습니다.

 

천사가 안나에게 나타나 온 세상에 이름을 떨칠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안나는 아기가 태어나면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광야에서 기도하던 요아킴 역시 안나와 비슷한 환시를 받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요아킴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안나는 성문 앞까지 마중을 나갔습니다.

두 분은 서로 부둥켜 않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드디어 출산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출산하고 보니, 결과는? 기대했던 아들이 아니라 딸이었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하던 당시 딸이다 보니 많이 두분의 실망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지만, 즉시 마음을 바꿔먹었습니다.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면서, 아기에게 마리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하느님께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리아가 세살이 되었을 때,

예루살렘 성전에 데려가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맡겼습니다.

 

성모님의 고향인 나자렛은 낙후된 지역 갈릴래아에서도 아주 후미진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전체 인구를 다 합해봐야 4백 명 정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 민족도 일제 강점기를 체험해봤기에,

당시 유다인들이 얼마나 힘겹게 살았는지, 나자렛의 마리아 역시 얼마나 팍팍한 삶을 살았었는지에 대해서는 즉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이 보잘 것 없는 산골 소녀 마리아를 총애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내려오실 당신의 통로이자 사다리로서 나자렛의 마리아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나자렛 마리아에게 전해진 특별한 소식,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소식은

마리아 개인에게 있어 너무나 영광스럽고 황송스러운 것이었지만, 동시에 두렵고 부담스런 소식이었습니다.

 

하느님의 크신 초대에 응답함으로 인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자신의 의지를 기꺼이 내려놓음으로 인해 완전한 시온의 딸, 하느님의 딸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중세기 신비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러한 성모님의 충만하고 역동적인 신앙을 명문장으로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완전한 사람은 자아에 죽고 주님께 사로잡혀 오로지 주님의 뜻만을 따릅니다.

자신과 자아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는 데서 참 행복을 느낍니다.

그는 언제나 하느님의 뜻과 진리만을 알고자 합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강론2]

 

<무소의 뿔과 같으신 분>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

 

     

    오늘은 성모 마리아의 지상 탄일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라는 오늘 복음 말씀대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을 도우셨기 때문에 구원의 또 다른 협력자가 되신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태오는 족보로 시작하며 성모님을 통한 그리스도의 탄생이 처음부터 계획되었음을 시사합니다. 이 족보 안에 들려면 그에 합당한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성모님은 어떻게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시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셨을까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큰일을 한 사람일까요?

『숫타니파타』라는 불교 경전에서는 깨달은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저 광야를 가고 있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렇게 깨달은 분은 우리 주위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요?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의사 김범석 씨가 자신이 본 죽음 중에 ‘특별하고 위대한 마지막’이란 제목으로 쓴 글이 있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본 그가 어떤 죽음을 가장 특별하고 위대하다고 보았을까요?

    

    그는 폐암 말기 어머니를 돌보던 딸의 편지를 인용합니다.

“엄마가 폐암 진단을 받고 많이 힘들어하셨는데 이제는 많이 다잡으셨어요. 선생님을 믿고 따르면서 저희 정말 열심히 치료받겠습니다. 우리 엄마 꼭 낫게 해주세요.”

    

    수술은 할 수 없는 상태라 생명 연장 수단으로 항암치료를 받자고 무미건조한 목소리를 말할 때 수많은 반응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편지 속의 ‘우리 엄마’는 3주에 한 번씩 항암을 하면서도 다른 의견을 제시하지도 않고 싫은 기색도 없이 시키는 대로 순종적으로 움직였습니다.

    

    마지막을 딸과 함께 지내기 위해 딸의 아파트 옆으로 이사와 손주들을 돌봐주고 손주들과 놀아주고 맞벌이하는 딸 가족을 위해 밑반찬도 해주고 주말엔 김밥을 싸서 북한산 등산을 하고 하산 길에 사우나에 들르는 등 다른 할머니들과 다를 바 없는 매우 일상적인 삶을 사셨습니다.

    

    길어야 1년이고 매우 고통스럽다는 폐암 말기였는데도 어머니는 아픈 기색 하나 없이 일상을 사셨던 것입니다. 딸은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엄마는 치료 의지가 매우 강해서 힘든 내색 안 하고 열심히 잘 치료받고 계세요. 일상생활도 아주 많이 잘하고 계시고요. 다른 분들도 잘 견디시는 건가요? 힘든데 저희 때문에 내색 안 하고 혼자서 참고 있으신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됩니다.”

   

    그렇게 암은 머리까지 전이되었고 더는 손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때 “방사선치료를 했는데 효과가 좋지 못하네요….”라고 말하면 환자들은 수많은 반응을 보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괜찮아요. 선생님이 잘 치료해주려고 이렇게 애썼는데 미안해요.”

    

    할머니는 오히려 말하기 주저하는 의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자신의 관리를 잘하지 못해서 상태가 나빠졌다면 자기 탓으로 모든 것을 돌렸습니다.

    그때 의사는 알게 되었습니다. 중간에 항암제를 몇 번 바꿔야 하는 적도 있었는데 그런 때도 할머니는 화를 내거나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서도 할머니는 마치 남의 일인 양 자기 죽음에 대해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무척이나 평온했고 담담했습니다.

    한 가지 손주들이 자신 없이도 잘 클 수 있을까가 걱정이지만 어차피 한 번 겪어야 하는 일이니 자녀들도 씩씩하게 잘 헤쳐나갈 것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얼마 후 담배도 피운 적 없는 할머니는 폐암에 걸려 딸 옆에 살며 1년 동안 남과 다를 게 없는 일상을 사시다 할머니는 그렇게 평온하게 돌아가셨습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본 김범석 의사 선생님은 이렇게 글을 마무리합니다.

    “할머니가 실제로 돈이 많았는지 대학은 나왔는지 그런 것들은 알지 못한다. 짐작하건대 가방 끈이 길지도 않았던 것 같고 넘치게 부유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역사책에 나올 법한 위인도 아니고 언론에서 칭송받을 만한 이력이 있는 분도 아니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평범한 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누구보다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까지 평범한 일상을 살아내는 일, 느닷없이 찾아온 운명을 받아들이고 본인 몫의 남은 삶을 평소처럼 살아내는 일.

 

    누군가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지켜본 그 노년의 환자는 평범함 속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분이었다. (중략)

할머니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특별했고 보통 사람이지만 위대한 사람이었다.”

    

    위대한 성인은 큰 업적을 낸 인물이 아니라 자기를 버리고 집착 없이 순리에 따를 줄 아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버리니 두려움도 없고 집착도 없고 모든 것에 ‘순응’(아멘!)합니다.

    

    진정 할머니는 암이라는 사형 선고에 놀라지 않았고, 세상 집착에 걸리지 않았으며, 분노와 원망을 하며 진흙에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 죽음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성모님은 그렇지 않을까요? 성모님도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은 분이셨습니다.

    사자는 소리에 놀라지 않습니다. 어떤 소리건 자신을 위협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신을 놀라게 한 것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지만, 요셉에게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알리며 설득하지 않습니다.

    

    또 성모님은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은 분이십니다. 거침이 없으십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듣고는 늙은 자신이 어떻게 아이를 갖느냐고 했지만 성모님은 당신은 주님의 종이니까 그냥 말씀대로 이루어지라고 하십니다. 두려움이 없으니 거침도 없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어도 성모님은 골고타 끝까지 예수님과 동행하십니다.

    

    성모님이 그렇게 두려움도, 거침도 없는 분이신 이유는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은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연꽃은 진흙에서 피지만 그 더러움이 연꽃에 물들지 못합니다. 성모님은 죄가 없으시기에, 자신을 봉헌하셨기에 죄에 물들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안나와 요아킴은 성모님이 어렸을 때 성전에 봉헌하였습니다. 하느님께 맡겨진 사람은 죄에 물들지 않습니다. 죄에 물들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이 죽었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을 죄에 물들게 만들 수 있는 유혹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에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야를 달리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는” 성모님의 모습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른 이들과 친교를 맺지 않고 독단적이라는 말일까요? 아닙니다. 자신이 봉헌되고 자아가 죽어 두려움도 없고 거칠 것도 없고 죄도 짓지 않는 사람이라면 마치 코뿔소로 상징되는 주님의 ‘도구’가 되어 주님 뜻대로 달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코뿔소의 ‘외뿔’은 코뿔소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외뿔처럼 ‘코뿔소의 도구’가 되려면 자신을 주님께 봉헌한 사람이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고 이런저런 상황에 좌절하며 세상 죄에 물든 사람은 누구도 코뿔소의 외뿔이 될 수 없게 됩니다. 코뿔소가 썩은 외뿔을 굳이 장착하고 달릴 필요는 없기 때문입니다. 코뿔소가 주님이라면 외뿔은 성모님이셨습니다.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찾아가실 때 그분을 그쪽으로 달리게 만든 것은 태중에 잉태된 코뿔소인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코뿔소는 또한 세상에서 외뿔이 없으면 아무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성모 마리아는 코뿔소라는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여 장착된 외뿔이십니다. 성모님은 우리도 그렇게 무소의 뿔처럼 가라고 어머니로서 모범으로 보여주고 계십니다.

 

 

출처:  원글보기; ▶  전삼용 요셉 신부의 매일 강론

 

 

 

 

 

 

[강론3]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

복음: 마태 1,1-16,18-23: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오늘은 성모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교회가 성모님의 성탄을 축일로 지내는 것은 구원의 역사적 측면에서 마리아의 위치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마리아에 관한 구약의 예언, 즉 창세기의 원복음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명히 하려는 그런 의미가 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시작이다. 마태오는 복음을 예수님의 족보(1,1-7)로 시작한다. 그것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는데, 첫째, ‘다윗의 후손,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이스라엘 백성과 관련된 인물이라는 점, 둘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로서의 합법성, 셋째, 구원 역사의 정점이며 종합이신 예수를 드러내고자 하는 것이다.


마태오의 이 족보는 우선 우리나라의 족보가 장자 중심으로 되어있는 것과도 다르지만, 당시의 유다이즘에서도 여인들의 명단이 열거되는 것은 특이한 일이다. 그들은 다말, 라합, 룻 그리고 우리아의 아내 바쎄바이다. 또 하나는 요셉과 관계없이 오직 마리아로부터의 예수님의 탄생이다. ‘요셉이 마리아에게서 예수를 낳았다’가 아니라,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선 네 여인은 죄인들이며, 예수께서는 그러한 죄인들까지도 구원하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이며, 둘째로 그들은 이방인들이다. 즉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백성을 구원하시고자 한다는 의미이다. 셋째로는 이 여인들이 다윗 가문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며, 넷째로 이 여인들의 결혼이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결혼이 아니었다. 마리아도 요셉과 관계없이 예수님을 잉태하고 출산하였다.


이 모든 것은 이방인이건, 죄인이건, 또 평범하지 못한 결혼을 한 사람이건 상관없이, 인간적인 결함이나 부족하지만, 하느님의 선택은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리아 역시 특별한 방법으로 하느님 구원계획의 도구로 선택되었음을 잘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의 구원계획은 인간이 예기치 못한 방법으로 인간이 지닌 어떤 결함에도 상관없이 당신의 주도로서 이루어진다. 즉 선택된 마리아는 인간적 장애를 극복하고 승리하는 하느님 섭리의 표징이 되고 있다.


둘째, 예수의 족보는 아버지와 아들로서 요셉과 예수 사이에 모종의 단절이 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마태 1,16). 여기서 예수의 출생에 초월적인 하느님의 개입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예수의 진정한 아버지가 신비롭게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이 족보는 예수를 다윗 가문에서 태어난 메시아로 제시하면서도, ‘예수의 어머니’로서 마리아의 역할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이 다윗의 후손임을 보증하는 요셉의 기능도 등한시하고 있지 않지만, 하느님의 구원계획 안에 더욱 중심이 되는 것은 마리아의 역할이라는 것을 강력하게 시사하고 있다.


또 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면서 마리아에게서 동정으로 잉태되고 태어난 사실을 명확히 한다. 요셉은 예수님의 탄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점은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에 그가 당황스러워하고 파혼까지도 생각하며 고민했던 모든 상황을 통해 분명히 드러난다. 그 탄생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이사야 예언자가 예언했던 임마누엘로서(이사 7,14),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메시아라는 사실과 더불어 마리아는 일찍부터 하느님으로부터 선택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지내는 마리아의 탄생은 우리 구원의 여명으로 이해되고 있다. 즉 구세주를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가기 위한 준비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마리아의 탄생으로 구원이 이제 시작되었다고 한다면, 우리는 이제 역시 작은 마리아로서 그리스도를 낳아 주어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는 모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삶을 우리가 잘살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여야 한다





 

 

 

 

 

[강론4]

 

 

 




2021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2021.09.08.mp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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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에 이민 오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모두 사연이 있습니다. 특히 오래 전에 이민 오신 분들의 이야기는 감동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한 형제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약은 청지기가 생각났습니다. 어려서 아일랜드 신부님께 영어를 배웠다고 합니다. 유학을 간 적도 없고, 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신부님 심부름을 다니면서 배운 영어였습니다. 70년대 말에 사우디로 일하러 갔다고 합니다. 건설현장의 통역으로 갔다고 합니다. 건설현장의 용어를 잘 몰랐고, 전문적인 영어를 몰랐기 때문에 3개월 만에 해고될 상황이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조기귀국하면 가족들의 생계도 막막하고, 당장 먹고 살 일이 걱정이었다고 합니다. 영국인 감독관에게 술을 한 병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술을 먹으면서 사정을 이야기하였고, 잘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감독관은 한국에서 회장과 간부들이 왔을 때 형제님을 불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다른 사람들 보다 일을 잘 하니 이곳에서 같이 일 할 수 있도록 협조를 부탁했다고 합니다. 감독관의 부탁을 들은 회장님은 간부들에게 그 사람이 계속 일 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기를 기회로 만들었던 형제님이 사우디에서 일을 마칠 무렵에 감독관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물었다고 합니다. 형제님은 가족들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과 미국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감독관은 형제님이 미국에서 일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고, 형제님은 미국에 와서 40년 동안 열심히 일하였다고 합니다. 35년 동안 같은 가게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집 주인은 더 좋은 조건으로 가게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형제님에게 35년 동안 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미국의 명절에는 주인에게 작은 선물을 드렸다고 합니다. 어머니날에는 부인에게 꽃을 드렸다고 합니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이기에 더 좋은 조건으로 가게를 얻으려는 사람이 나타나도 형제님이 일 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이민자의 사회에서, 낯선 미국에서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은 성실하게 일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마음과 마음이 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였다고 합니다. 신문사의 일을 하는 제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신앙은 일의 결과와 성과를 보기 전에 마음과 정성을 먼저 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입니다. 교회가 성모님에 대한 특별한 존경과 사랑을 드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모님은 시천주(侍天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태중에 모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양천주(養天主)하였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을 기르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신앙인으로서도 모범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전한 가브리엘 천사의 말에 이렇게 응답하였습니다.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성모님은 신앙인이 가야할 길을, 예수님께서 선포하실 하느님 나라를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 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니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


늘은 성모님의 탄생 축일입니다. 우리는 생일을 맞이하는 분들에게 선물하곤 합니다. 선물은 주는 분이나, 받는 분이나 모두 즐거운 법입니다.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선물은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기도, 우리들의 선행, 우리들의 나눔을 성모님께서는 생일 선물로 받고 싶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성모님의 탄생 축일을 지내면서 성모님께서 원하시는 선물을 드리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천주의 성모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시어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소서!”






※ 출처 : 미주가톨릭평화신문→ ( 오늘의 복음 묵상) ▶ 글쓴이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오늘 전례]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없다. 그러나 초대 교회 때부터 성모 신심이 계속되면서 동방 교회에서 먼저 이 축일을 지내기 시작하였다. 로마 교회에서는 7세기 무렵부터 이 축일을 지내 오고 있는데, 예루살렘에 세워진 ‘마리아 성당’의 봉헌일(9월 8일)을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로 정한 것이다.

입당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뻐하며 경축하세.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그분이 낳으셨네.<대영광송>

본기도

주님,
복되신 동정녀께서 성자를 낳으시어 저희 구원이 시작되었으니
동정녀 탄생 축일을 지내는 주님의 종인 저희에게
천상 은총의 선물을 내려 주시어
길이 참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미카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베들레헴에서 나오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한다(제1독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예언대로, 마리아에게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다(복음).

제1독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5,1-4ㄱ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2 그러므로 해산하는 여인이 아이를 낳을 때까지
주님은 그들을 내버려 두리라.
그 뒤에 그의 형제들 가운데 남은 자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돌아오리라.
3 그는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주 그의 하느님 이름의 위엄에 힘입어 목자로 나서리라.
그러면 그들은 안전하게 살리니
이제 그가 땅끝까지 위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그 자신이 평화가 되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또는>

<하느님께서는 뽑으신 이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8,28-30
형제 여러분,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이들을
당신의 아드님과 같은 모상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 아드님께서 많은 형제 가운데 맏이가 되게 하셨습니다.
30 그렇게 미리 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셨으며,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3(12),6ㄱㄴ.6ㄷ(◎ 이사 61,10ㄱ)
◎ 저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리이다.
○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
○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거룩하신 동정 마리아님, 복되시나이다. 정의의 태양, 그리스도 우리 하느님을 낳으셨으니 온갖 찬미를 마땅히 받으시리이다.
◎ 알렐루야.

복음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의 시작입니다.
1,1-16.18-23
1 다윗의 자손이시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2 아브라함은 이사악을 낳고 이사악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았다.
3 유다는 타마르에게서 페레츠와 제라를 낳고
페레츠는 헤츠론을 낳았으며 헤츠론은 람을 낳았다.
4 람은 암미나답을 낳고
암미나답은 나흐손을 낳았으며 나흐손은 살몬을 낳았다.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즈를 낳고 보아즈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았다.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6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하브암을 낳았으며 르하브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삽을 낳았다.
8 아삽은 여호사팟을 낳고 여호사팟은 여호람을 낳았으며
여호람은 우찌야를 낳았다.
9 우찌야는 요탐을 낳고 요탐은 아하즈를 낳았으며
아하즈는 히즈키야를 낳았다.
10 히즈키야는 므나쎄를 낳고 므나쎄는 아몬을 낳았으며
아몬은 요시야를 낳았다.
11 요시야는 바빌론 유배 때에 여호야킨과 그 동생들을 낳았다.
12 바빌론 유배 뒤에 여호야킨은 스알티엘을 낳고
스알티엘은 즈루빠벨을 낳았다.
13 즈루빠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야킴을 낳았으며
엘야킴은 아조르를 낳았다.
14 아조르는 차독을 낳고 차독은 아킴을 낳았으며
아킴은 엘리웃을 낳았다.
15 엘리웃은 엘아자르를 낳고
엘아자르는 마탄을 낳았으며 마탄은 야곱을 낳았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는데,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고 불리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셨다.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8-23
18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19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20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1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22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23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물기도

주님,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성자께서
어머니의 순결을 손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거룩하게 하셨으니
저희가 성자의 인성으로 도움을 받고 죄에서 벗어나
주님 마음에 드는 제물을 바치게 하소서.
우리 주 …….

<또는>

주님,
저희가 기쁨에 넘쳐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을 기념하고
이 예물을 바치며 간절히 비오니
동정녀 몸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성자께 구원을 받게 하소서.
성자께서는 영원히 …….

감사송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1 : 어머니이신 마리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하고
복되신 평생 동정 마리아 ( ) 축일에
아버지를 찬송하고 찬양하고 찬미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성모님께서는 성령으로 외아들을 잉태하시고
동정의 영광을 간직한 채
영원한 빛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낳으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사들이 주님의 위엄을 찬미하고
주품천사들이 흠숭하며 권품천사들이 두려워하고
하늘 위 하늘의 능품천사들과 복된 세라핌이
다 함께 예배하며 환호하오니
저희도 그들과 소리를 모아 삼가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또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감사송 2 : 마리아의 노래로 하느님을 찬미하는 교회>
거룩하신 아버지,
모든 성인을 훌륭히 이끌어 주신 주님을 찬미하고
특히 저희가 기념하고 공경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노래로
주님의 인자하심을 찬양함은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주님께서는 땅끝에 이르기까지 큰일을 하시고
대대로 자비를 너그러이 베푸셨나이다.
비천한 종 마리아를 돌보시어
마리아를 통하여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로 보내셨나이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 앞에서 천사들의 군대가 영원히 기뻐하며
주님의 위엄을 흠숭하오니
저희도 환호하며 그들과 소리를 모아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송

이사 7,14; 마태 1,21 참조
보라, 동정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아드님이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거룩한 신비로 교회의 힘을 길러 주셨으니
저희가 온 세상의 희망이시며 구원의 서광이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일을 맞이하여 더욱 기뻐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성경에 동정 마리아의 탄생에 대한 내용은 없지만 성모 신심은 초대 교회 때부터 이어져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한 여인에게 태어날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탄생은 기다림의 정점이었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이 언급한 여인이 성모님이심을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성모님을 통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느님의 오랜 계획(로마 8,28-29 참조) 안에 있는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위로이시며 피난처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탄생 축일입니다. 복음은 하느님의 구원 경륜이 인간의 역사 안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예수님의 족보를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을 실현하시고자 하느님께서는 마리아를 선택하시어 우리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시고 전구하시는 우리 신앙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의 탄생은 소중합니다. 이를 마음에 새기며 우리 모두 저마다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뜻을 찾아 기쁘게 살아갑시다.
(신우식 토마스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