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와 詩魂

객관적인 아침/이장욱

나뭇잎숨결 2021. 8. 31. 03:58

 

객관적인 아침

 

- 이장욱

 

나와 무관하게 당신이 깨어나고

 

나와 무관하게 당신은 거리의 어떤 침묵을 떠올리고

 

침묵과 무관하게 한일병원 창에 기댄 한 사내의 손에서

 

이제 막 종이 비행기 떠나가고 종이 비행기,

 

비행기와 무관하게 도덕적으로 완벽한 하늘은

 

난감한 표정으로 몇 편의 구름, 띄운다.

 

지금 내 시선 끝의 허공에 걸려

 

구름을 통과하는 종이 비행기와

 

종이 비행기를 고요히 통과하는 구름.

 

이곳에서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소실점으로 완강하게 사라진다.

 

지금 그대와 나의 시선 바깥, 멸종 위기의 식물이 끝내

 

허공에 띄운 포자 하나의 무게와

 

그 무게를 바라보는 태양과의 거리에 대해서라면,

 

객관적인 아침. 전봇대 꼭대기에

 

겨우 제 집을 완성한 까치의 눈빛으로 보면

 

나와 당신은 비행기와 구름 사이에 피고 지는

 

희미한 풍경 같아서.

 

                                                                                     - 이장욱 「객관적인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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